내 인생의 원투 펀치 라임 청소년 문학 3
에린 제이드 랭 지음, 전지숙 옮김 / 라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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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말썽꾸러기에 제멋대로인 청소년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들의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평가할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여하튼 간혹 나 자신이든 아이든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주인공인 데인을 보면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누구나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데인 워싱턴은 그야말로 밉상인 친구다. 공부는 잘하지만 그 외의 것에선 못된, 불량한 학생인데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약간의 특혜를 받는다. 성격은 못됐지만 공부는 잘해서 학교의 입장에서 보면 데리고 있으면 도움 되는 그런 친구라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아이 같으면 진작 다른 학교로 전학처분을 받았을 테지만 데인은 교장 선생님의 배려로 한 번의 기회를 더 가질 수 있었다.

 

  처음에 데인이 친구의 목을 누르고 위협하는 장면을 보며 이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 자식이 이러고 다니는 걸 알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퍼뜩 들었는데 읽다 보니 뒤로 갈수록 그들의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그러한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세한 것을 알기 전에는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데인의 속사정을 알고 나서, 그의 행동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느낀 것은 원래 악한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데인은 자신의 화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라서 잘못 표출해서 그랬을 뿐이지 빌리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인간에 대한 연민도 있고 밑바닥에는 사랑과 신뢰가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그것을 느끼고 깨닫고 변하기에는 우리 인간은 너무 나약하다. 옆에서 응원해 주고 자신의 모습을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변화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뻔한 사실을 알고 있으나 그게 또 쉽지만은 않다는 게 문제다. 다행히 데인은 빌리와 실리라는 친구 덕분에 자신의 무슨 점이 잘못되었는지, 왜 그러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빌리가 지도책을 보며 아빠가 계신 곳을 찾기 위해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풀 때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미국 지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그냥 문맥을 따라 글자를 읽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빌리 아빠가 사실은 돌아가셨는데 빌리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두 개의 달 위를 걷다>를 읽으며 마지막에 느꼈던 강한 충격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왜 빌리가 데인을 두려워하면서도 좋아했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빌리는 다운증후군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데인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보통 아이 같으면 데인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않았을 테고 데인의 단점을 정확하게 지적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둘의 대화를 읽으면 유쾌하면서도 통쾌하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아주 치밀하게 상황과 인물을 배치했다는 생각도 든다.

 

  아빠를 두려워하면서도 잊지 못하는 빌리와 아빠에게 거부당했기 때문에 모든 것에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데인을 보며 어른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그들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순전히 어른의 잘못 때문에 데인과 빌리가 그렇게 된 것이니까. 빌리와 데인은 어른의 도움이라기 보다는 친구, 정확히 말해 서로의 도움으로 아픔을 극복하고 앞으로는 적어도 자신의 부모들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데인이 잘 살고 있는 생부를 보고 돌아서는 장면은 안타까우면서도 기특하다. 분노를 표출하는 데도 적절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 앞서 왜 자신이 그러한 분노를 느끼는지 서서히 깨닫는 데인을 보며 데인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를 보여준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것을 직시하고 변하느냐 아니면 그냥 그대로 사느냐가 다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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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나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4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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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청소년책은 두꺼워서 술술 읽힌다. 또한 한 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가 없어서 더 빨리 읽는다. 그러나 읽는 것과 읽고 나서 곱씹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분명 읽을 때는 재미있게, 다른 일을 다 미루면서까지 푹 빠져 읽었는데 읽고 나서 며칠 지나니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저 밋밋하게, 보통의 청소년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재를 좀 더 재미있게 이야기했다고나 할까. 아니다, 읽으면서 한 가지 불편한 게 있긴 했다. 바로 주인공 정호가 끊임없이 가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때다. 정호가 부모님에게 화를 낼 법도 한데 속으로만 화를 내고 겉으로는 말 잘 듣는 아들을 연기하고 있는 게 답답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라도 부모님께 화를 내는 자신을 질책하는 장면이 더욱 불편했다. 오로지 가족을 위하여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생각이 투영된 것인지, 아니면 독자가 그것을 불편하게 느끼도록 해서 청소년을 이해하도록 하려고 한 작가의 의도대로 내가 움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가족을 외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청소년까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감정도 눌러야 하는 것인지, 그저 씁쓸할 따름이다. 물론 나중에는 정호가 선생님들과 부모님 앞에서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터트렸지만 거기서 이야기가 끝나는 바람에 정호의 변화된 모습을 볼 기회가 사라졌다.

 

  솔직히 정호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 아무리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팔이 뒤틀리고 짧아 제 기능을 못하는 아버지와 다리를 심하게 절고 키가 작은 어머니를 아무런 괴로움 없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낼 만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기 때문에 정호는 아무와도 어울리려 하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서 지내고 싶어하는 것일 게다. 그러면서도 정호는 부모님을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더 한심해서 괴로워하는데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아니지. 효은이가 그 역할을 했구나. 그나마 정호와 비슷한 경험을 먼저 겪은 효은이 덕분에 정호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어른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것은 단지 잔소리일 뿐이지만 친구가 하는 얘기는 똑같은 내용이라도 충고가 되는 청소년의 특징을 잘 드러내준다. 때마침 정호 주변에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효은이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면서도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우연에 김이 빠지기도 한다. 

 

  한 마디로 이 책은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기 보다는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는데 큰 비중을 둔 듯하다. 여기에 살고 있으면 당연히 이곳의 영향을 받기 마련인지라 나도 가족을 가장 중시하긴 하지만 가끔은 그런 문화가 부담스럽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가족 때문에 포기해야 할 때, 혹은 가족의 경조사를 챙기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미뤄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나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감동적으로 읽은 사람도 있을 테니 순전히 가치관이 달라서 생긴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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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내 일기 읽고 있어? 라임 청소년 문학 2
수진 닐슨 지음, 김선영 옮김 / 라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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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폭력이나 친구관계를 다루는 대개의 어린이 청소년 책에서 가해자나 피해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책은 봤어도 가해자 가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책은 못봤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의 원작인 <우아한 거짓말>은 아마도 피해자의 언니가 동생의 죽음 뒤에 가려진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있고, 동생의 상황은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이끌어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즉 피해자의 가족이 중심을 이루는 책이다. 반면 이 책은 가해자의 가족이 세상에 적응해 가는 이야기다. 어찌보면 가해자는 가해자이기 이전에 피해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책은 솔직히, 읽으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이미 사건이 터진 뒤에는 보이는 문제들이 왜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고, 조금 더 일찍 상황을 눈치채서 조치를 취했더라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이런 이야기가 단지 소설일 뿐이라는 위안으로 삼기에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분명 비슷한 사건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기에.

 

  친구를 권총으로 쏘고 자신도 자살한 형으로 인해 풍비박살난 헨리의 가족이 좌충우돌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는 이야기가 헨리의 일기글 형식으로 이어진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기에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간 헨리와 아빠는 그 누구도 그들 가족에게 일어났던 일의 단서를 찾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애쓰지만 세상 일이란 그렇게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다. 유난히 형과 가까웠던 엄마는 정신적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헨리는 그런 엄마를 어떻게든 빨리 정상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정상이라고 우기고 싶어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일이라는 점을 서서히 받아들인다.

 

  헨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형 제시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감정적으로 이해가 간다. 물론 그렇다고 방법이 옳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하필이면 형이 죽인 사람이 헨리와 가장 친한 친구의 오빠였기 때문에 헨리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더 있는 셈이다. 진작 사람들이 스콧이 헨리의 형에게 어떻게 했는지 눈치챘더라면 아예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누가 더 잘 했고 잘못했고를 따질 게 아니라 그런 문제가 일어나게 방치했던 주변 어른들에게 화가 난다. 그러면서 동시에 혹시 내가 지금 그런 어른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스콧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다른 친구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주 못되고 비열한 행동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헨리 가족에게 복수할 생각만 하고 있다니, 사람은 참 자기중심적인가 보다.

 

  헨리가 일기를 쓰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형과 비슷한 상황이 닥칠 위기에서 헨리는 형처럼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는 점이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일 게다. 만약 형의 일을 피하고 감추기만 했다면 헨리에게 그런 용기가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 그나마 헨리를 괴롭히던 트로이가 퇴학을 당하는 부분에서는 시원하기까지 했다. 사실, 헨리 가족같은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쉽게 마음을 열긴 쉽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들에게 아무 잘못이 없더라도 선입견이라는 것은 무서운 법이니까. 그래도 헨리 주변 친구들과 같은 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헨리 가족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었다. 덕분에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 그동안 불편한 진실에 마음 아프고 찌뿌둥했던 마음이 조금 펴졌다. 이 글을 쓰며 문득 오래 전에 읽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우아한 거짓말>을 생각해 보니 그 책은 가슴이 많이 아프고 직설적이며 독자가 천지 가족과 거의 하나처럼 느꼈다면 이 책은 가슴 아픈 것은 동일하지만 아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위트를 잃지 않고 감정을 최대한 배제시키며 헨리 가족과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게끔 하는 것을 느꼈다. 어느 것이 더 낫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방식이 이렇게 다를수도 있다니, 이것이 문화의 차이인지, 작가적 특성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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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토끼 어딨어? 모 윌렘스 내 토끼 시리즈
모 윌렘스 글.그림, 정회성 옮김 / 살림어린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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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책은 기본적으로 성장을 이야기한다. 어린이에게 책을 읽히고자 하는 목적과 부합되는 지점이 바로 그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이야기 하는 방식이 어린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방식이라면 어린이들에게 외면받기 쉽다. 그래서 어른들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커다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책을 '발견'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그야말로 찾은 게 아니라 발견한 책이 있으니 바로 이 책이다. 물론 처음에 이 책만 봤을 때는 그냥 흔히 어린이책에서 만날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갖고 싶었던, 혹은 우연히 갖게 되었지만 흠뻑 빠져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물건이 생기면 그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하는 게 어린이의 마음이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물건이 하나만 있지 않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이는 좌절을 맛보지만, 원래 아이는 순수한지라 금방 자기 것이 소중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트릭시도 꼬마 토끼 인형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얼른 유치원에 가지만 유치원을 들어서는 순간 친구가 똑같은 인형을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좌절한다. 서로 자기 것이 더 좋다고 우겨보지만 정답은 없다. 결국 둘 다 인형을 빼앗기는 수밖에. 그래도 집에 돌아갈 때 인형을 다시 받아서 좋아하는 걸 보면 외형은 똑같아도 거기에 부여한 의미가 각자 다르기에 결론적으로는 유일한 것이 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셈이다. 철학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 설명을 하지 못할 뿐이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아이들은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다.

 

  그렇게 평범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잠을 자다 문득 깨닫는 트릭시. 자신의 토끼 인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낌으로 아는 것이다. 새벽에 전화를 하자니 실례가 되기에 다음 날 전화하자고 달래보지만 아이는 듣지 않는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소냐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결국 그 새벽에 둘은 중간 지점에서 만나 서로의 인형을 되찾는다. 그리고, 둘은 똑같은 마음으로 인형을 대한다는 사실을 느껴서인지 단짝 친구가 된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내용이다. 처음 1권만 읽었을 때는 그냥 평범한 이야기,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다음 권인 <내 토끼가 또 사라졌어!>를 읽은 다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발견의 기쁨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고나 할까. 트릭시가 훨씬 많이 자라 여전히 토끼를 들고 다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잃어버리지만 대처하는 방식은 예전의 트릭시와 상당히 다르다. 그것을 구구절절 자랐으니 그러면 안 된다가 아니라 그냥 책장을 넘기면서 잔잔하게 글을 읽고 트릭시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트릭시가 많이 자랐구나!'하는 걸 느낄 수 있는 그런 경험, 오랜만에 맛봤다. 그래서 이 책은 반드시 두 권을 함께 보길 권한다. 그것도 <내 토끼 어딨어?>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내 토끼가 또 사라졌어!>를 읽기를.

 

  이 책을 읽고 모 윌렘스를 처음 알았는데, 아니 처음 인지했는데(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전에 그의 다른 작품을 읽었다.) 알고 보니 이미 세계의 많은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란다. 잠시 그림책과 떨어져 지냈더니 그러한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나 보다. '그림책의 위대한 발견'전에도 모 윌렘스 부스를 따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모처럼 좋은 그림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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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머시기데이 라임 청소년 문학 1
핀 올레 하인리히 지음, 이덕임 옮김, 라운 플뤼겐링 그림 / 라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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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다양한 계기와 경험을 통해 조금씩 성장한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내가 언제 죽는가에 대해 전혀 상관하지 않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그 시기가 조금이라도 늦춰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고, 남편이 차를 가지고 출퇴근할 때 퇴근 길에 가게에 들러 먹을 것도 안 사온다고 서운해했던 것들이 내가 막상 운전하고 보니 중간에 가게에 들른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를 돌아보면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면에서 파울리나도 힘든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모두가 이처럼 힘든 상황을 통해 성장할 필요는 없겠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극복하고 성장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

 

  파울리나도 어느 날 갑자기 환경이 바뀌었으니 얼마나 힘들까.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를 온 것 하나만으로도 힘들텐데 엄마와 아빠가 이혼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처럼 파울리나의 방황이 전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큰 집에 아빠 혼자 살고 엄마와 자신은 오히려 작은 집으로 이사한 것도 이해가 안 가고 집안이 이상한 플라스틱 손잡이 천지인 것도 적응이 안 되는 것이다. 파울리나 부모님의 사이가 전부터 안 좋아서 눈치를 챘더라면 이처럼 황당하지는 않을 텐데 파울리나의 회상에 의하면 그것도 아니었으니 더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그래서 파울리나는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는 오로지 아빠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만 한다.

 

  파울리나의 시선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독자는 전적으로 파울리나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아니 엄마는 도대체 왜, 딸이 이렇게 힘든데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너무나 평범하게 생활하는가 말이다. 또 할아버지는 얼마나 쿨한가. 아들과 며느리가 이혼했다는데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자기만의 생활방식에 대한 예찬만 늘어 놓는 걸 보며 문화차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기도 했다. 최근에 방영된 모 드라마에서는 이혼한 딸 문제에 적극 개입해서 사돈한테까지 찾아가는 우리네 문화와는 달라도 너무나 많이 다르다.

 

  그러나 엄마의 현재 상태를 알고 자신을 데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과 아빠도 파울리나와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차츰차츰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긴 누구나 현실을 바꿀 수는 없기에 종국에는 받아들이게 되는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단순히 부모의 불화로 이혼하고 그러한 사실 때문에 방황하는 이야기였다면 차라리 마음이 더 편했을 텐데, 인간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러한 상황이라 더 안타까웠다.

 

  마지막까지 아빠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헤쳐나갈 것이라는 암시를 주면서 끝을 맺는데, 바로 앞 장에서는 파울이 파울의 아빠를 만나는 모습을 보고, 아빠란 어딘가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생각할 줄 알았다. 헌데 바로 다음에 아빠의 책임과 의무를 상기시켜서 조금 의아했다. 또한 제목으로 설정된 생일파티가 파울리나에게 어떤 변화의 계기를 주었는지 모르겠다. 위에서 말한대로 파울의 생일파티에 참석하고 파울리나의 아빠를 이해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러나 파울의 아빠에 대해 잔뜩 궁금증을 유발시켜 놓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아주 쿨하게 그 상황을 벗어나는 그런 방식이 우리에게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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