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방 그림책 보물창고 31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이유진 옮김, 한스 아놀드 그림 / 보물창고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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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모의 생각과 달리 아이들에게 있어 동생의 출생은 시련의 시작이다. 특히 첫 아이의 경우 그동안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반으로 나누어야 하니 그 상실감은 오죽할까. 아니 차라리 반으로 나눠지면 좋으련만 반의 반도 남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책에는 유독 형제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때론 싸우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는... 그러나 결국 나중에는 안다.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베라도 동생이 태어나면서 엄마를 빼앗겼다고 생각해서 아예 다른 곳으로 사랑을 찾아 나선다. 그것이 바로 장미 덤불에 살고 있는 쌍둥이 동생이다. 태어나자마자 뛰어나가 장미덤불 아래로 숨어버린 동생. 도대체 왜 거기에 숨었을까? 그거야 어찌됐든 베라에게는 그런 동생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동생은 언니를 그냥 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 꼭 '사랑하는 언니'라고 부른다. 왜 베라는 사랑에 그토록 집착할까. 아마도 동생이 태어나면서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하기에... 이제는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그랬던 것일까.

베라는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때면 동생 윌바리가 살고 있는 비밀의 방으로 가서 실컷 놀다 온다. 거기서는 윌바리가 여왕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다 있으며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그토록 갖고 싶은 강아지도 있다. 엄마와 아빠는 돈도 많이 들고 힘 들어서 안 된다고 하는 강아지 말이다. 그러나 베라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바로 남동생에게 해롭기 때문이라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동생 때문에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아마도 자신을 거부하는 것으로 느꼈으리라.

그러나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일까. 윌바리는 장미가 시들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듣기 싫다는 언니에게 억지로 들려준다. 왜? 쌍둥이 동생이면 나이도 얼마 되지 않는데... 이렇게 베라가 도피처에서 떨어져나와 스스로 설 수 있게 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엄마가 동생에게 신경을 더 써주는 것이 자신을 미워서가 아니라 단지 동생을 좀 더 돌봐줘야하기 때문임을 이제는 알게 된 것일 게다. 그만큼 자랐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즉 윌바리가 죽는다는 것은 베라가 더 이상 가상의 동생을 찾아갈 필요가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윌바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달이 떠오른 뒤에야 베라는 집으로 돌아간다. 방에는 아빠가 사온 멋진 선물이 기다리고 있고... 이제 베라는 소원이었던 까만 푸들을 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원에 있는 장미는 시들었고 비밀의 방으로 가는 구멍도 사라졌다. 아니 어차피 더 이상 비밀의 방으로 갈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진짜 친구가 생겼으니까. 강아지는 단순한 강아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는 수단이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척도다. 그럼으로써 이제는 남동생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가슴 뭉클하면서도 우리 큰 아이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어린 시절을 보냈겠구나를 생각하면 어쩐지 짠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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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인형 미라벨 그림책 보물창고 32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이유진 옮김, 피자 린덴바움 그림 / 보물창고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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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번 어린이날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다른 때 같으면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을 사러다니느라 힘들었을텐데 그만해도 컸기 때문인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없기 때문인지 별 말 없이 지나갔다. 하긴 둘째야 미리 당겨서 원하는 것을 갖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시기별로 원하는 것이 있다. 또한 그 당시에 유행하는 것을 원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도 브리타는 인형을 몹시 갖고 싶어한다. 아마도 배경으로 보아 아이들 놀잇감으로 인형이 막 대중화될 때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여하튼 읍내 장난감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인형이 몹시 갖고 싶지만 브리타 부모님은 그런 것을 사 줄만큼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 물론 브리타도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인형 대신 진짜 살아있는 닭을 인형인 양 안고 다니는 것이겠지. 하긴 외딴 곳에서 친구도 없이 혼자 놀려면 얼마나 심심했을까. 그럴 때 인형이라도 있으면 위안이 많이 될텐데...

그러나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브리타에게 아주 특별하고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엄마 아빠가 시장에 가고 브리타 혼자 집에 있는데 어스름 저녁에 어떤 할아버지에게 울타리 문을 열어주고 받은 씨앗을 심는다. 씨앗에 물을 흠뻑 주라는 할아버지 말대로 브리타는 정성껏 씨앗을 돌본다. 그러다 마침내 씨앗에서 굉장한 일이 일어난다. 바로 인형이 자라는 것이다. 자라고 자라서 결국은 인형이 뽑힐 정도까지 자란다. 그러나 신기한 것을 그게 다가 아니다. 말까지 하는 것이다. 물론 말은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절대 하지 않고 브리타와 둘이 있을 때만 한다. 아이들책을 보다 보면 흔히 나오는 이야기. 그러나 이 책이 씌어진 때를 감안한다면 그런 플롯을 먼저 사용한 것은 바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신의 이름이 미라벨이라고 밝히는 당돌한 인형 미라벨과 함께 브리타는 이제 더이상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을 것이다. 이제 닭이 사용했던 침대를 미라벨에게 주지만 미라벨은 브리타 침대에서 같이 자겠다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결국 닭이 그 침대를 계속 사용하게 되었고... 하지만 여전히 닭도 브리타와 함께 붙어다닌다. 첫 페이지의 그림과 마지막 페이지의 그림 변화가 재미있다. 읽는 도중에 아이는 약간 무섭다고 한다. 실은 나도 그랬다. 마치 말하는 인형이 무슨 일을 벌이지나 않을까 해서 괜히 긴장했었다. 아마도 그런 종류의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간에 이상한 할아버지를 만난 부분의 그림은 색상이 다른 그림과 구별된다. 그럼으로써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 하다. 아주 오래전에 씌어진 이야기라서 요즘의 그림책 경향과는 차이가 나지만 역시나 작가의 상상력은 대단하다. 지금까지 많은 책을 보아왔지만 인형이 자란다는 이야기는 보질 못했다. 글의 분량이 결코 적지 않은데도 지루한 줄 몰랐다. 역시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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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라진 어느 날 마음이 자라는 나무 11
루스 화이트 지음, 김경미 옮김, 이정은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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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있어 엄마란 어떤 존재일까. 나도 어렸을 때 낯선 곳에 가면 엄마 옆에 꼭 붙어 있으려 했고 엄마가 없으면 괜히 작아지고 불안했었다. 불안함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왜 그리 작아졌었는지... 어디에도 의지할 데가 없다는 그 느낌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가서 아이가 내 옆에만 있으려고 하면 답답하다. 그냥 혼자 있어도 될 텐데, 어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하고 말이다. 이래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나보다.

세상 전부였고 믿고 의지했던 엄마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떨까. 그 전에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고 그렇다고 외적으로 힘든 상황이 닥친 것도 아닌데 사라졌다면...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은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겠지. 그렇다면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라면... 그래도 마찬가지고 심한 충격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싶다. 적어도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우드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기특한 모습까지 보인다. 그렇다고 우드로가 마음의 상처를 전혀 입지 않았느냐면 그건 아니다. 나름대로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심지어는 다른 핑계를 대서라도 엄마의 행동을 합리화 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은 자신의 현실과 마주하는 힘을 스스로 기르고 엄마에게서 자신을 분리시킨다.

집시도 겉으로 보기엔 부족한 것 없고 아름다운 외모와 누구든 감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멋진 금발을 가졌음에도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 5살 때 겪었던 아빠의 죽음에 대한 기억은 두고두고 집시를 괴롭힌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병이 있다.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겪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집시는 엄마와 자신의 아픈 기억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회피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상처란 피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그 다음에 극복하고자 노력해야만 상처가 아무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예전처럼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집시 엄마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없었겠지.

우드로의 엄마이자 집시의 이모인 벨이 연기처럼 사라진 사건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아픔을 돌아보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서로란 가족일 수도 있고 타인일 수도 있다.-진정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한다. 그 중에서도 우드로와 집시의 자기 자신 찾기로의 여행은 읽는 이를 가슴 뭉클하게 만든다. 책을 읽는 내내 '문화적 차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절실히 느꼈다. 서로를 자신의 잣대로 바라보지 않고 상대방을 그대로 봐 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아이들이라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할머니 할아버지라도 말이다.) 나도 아이들을 그렇게 대해야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마음 아파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도 아픈 마음을 치유할 수 없음을 알았다는 우드로의 말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누구나 아픔은 갖고 있으며 그것은 그 외부 조건으로 인해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자신만이 그것을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앞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다. 한창 자라나는 정확히 말해서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는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우드로와 집시에게 자신을 대입하며 읽겠지. 그리고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그들처럼 아이들도 자라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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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진아 팬클럽 회장님 책읽는 가족 54
이용포 지음, 한지선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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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머니 할아버지의 정을 모르고 자랐다. 외할머니만 계셨었는데 다정다감하신 성격이 아닌지라 자주 놀러가지도 않았고 사근사근 말을 한 기억도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외가에 가는 것을 가장 좋은 일로 생각할 정도로 정을 듬뿍 받는다. 큰 아이는 외가에 가면 할머니랑 잘 정도다. 아마 우리 아이들이 크면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많고 특별한 정도 느끼겠지. 그런 면에서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주시고 정도 듬뿍 주시니까.

늙는다는 것은 어느 생물이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은 워낙 매스컴에서 이야기를 많이 해서 '고령화 사회'라던가 '노인문제'라는 말을 다들 알 것이다. 비록 실감하거나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이용포 작가는 작정하고 노인 문제를 꺼낸다. 그분들의 삶이 어떠한지 고민이 무엇인지 또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처음에는 단편이라는 것을 모르고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하며 다음 장을 넘겼는데 아무래도 내용이 이상해서 보니 각각이 다른 이야기였다.

5편의 이야기가 모두 노인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비록 화자는 아이지만 단지 이야기를 이끌어 갈 뿐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모두 독자가 읽으며 느끼는 것이다. 혼자 사는 노인의 외로움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살림만 하며 누구의 아내나 어머니, 할머니로만 살다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삶을 사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또한 노인의 재혼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치매 문제도 다루는 등 노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대부분의 상황을 골고루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읽는 내내 과연 아이들이 이 상황들을 얼마나 공감할까 내심 궁금했다. 아니 걱정됐다. 비록 세 편의 이야기가 아이가 주인공인 일인칭 시점을 취하고는 있지만 자꾸만 그 안에 어른이 오버랩된다. 아무래도 작가의 입김이 너무 세게 작용한 것은 아닐런지...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마지막에 자식들이 대문을 밀고 들어오며 엄마를 부를 줄 알았는데 몇 줄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끝내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한편으론 무조건 끝을 행복하게 마무리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작가인 것 같아 좋으면서도 할머니가 안스럽다. 이런 것이 바로 여운이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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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체험 학습 5학년 1학기 - 교과 내용에 따라 놀토를 즐겨요!
씨앗들의 열린 나눔터 핵교 지음, 박동국.이예휘 그림 / 아이즐북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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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최대한 보고 만지는 산교육을 중요시한 덕분에 아이들을 꽤 많이 데리고 다녔다. 그러나 가끔 너무 이른 시기에 데리고 갔다던가 사전 지식 없이 갔다온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내 마음 속에는 그래도 갔었다는 뿌듯함이 자리잡고 있지만 아이 마음 속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어디를 갔던 것 같다라는 마음만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어떤 때는 아예 아무 기억도 없단다. 아무래도 체험학습을 시키는 데도 요령이 있고 시기가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어디를 가기 전에 최대한 사전조사를 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거기서 또 한 가지 막히는 것은 바로 그 체험이 시의적절한가라는 문제다. 현재 배우는 것과 연계해서 갈 곳이 있고 나중에 가도 되는 곳이 있건만 무조건 내 기분대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들 교과서를 모두 통달하고 있을 수도 없다. 아무리 체험학습을 중요시한다지만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다.

그런데 마침 교과와 연계한 체험학습 안내서가 나왔다. 이런 책이 얼마나 반갑던지. 게다가 놀토에 한 곳씩 가면 되도록 순서까지 정해져있다. 물론 내 수고로움이 덜어지는 대신 그 장소에 대한 기대와 애착은 덜 하겠지만 이게 어딘가. 각 장소에 대한 자료와 배경 등 이야기까지 전부 있으니 따로 자료를 찾을 필요도 없다. 돌아다녀보니 이처럼 미리 자료를 보고 가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것은 아주 많은 차이가 있음을 절감한 터라 이런 자료가 그지없이 반갑다.

이미 다녀온 곳도 있고 전혀 몰랐던 곳도 있어서 여러 감정이 교차되며 책장을 넘겼다. 진작 이런 것이 있었다면 거기 가서 그처럼 허무하게 돌아보진 않았을텐데... 그래, 거긴 참 좋았어 등. 거기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다음에는 여기를 가야겠군이라는 다짐이다. 멀다고 제쳐두었던 곳이나 막연히 동경만 하고 엄두를 못 냈던 곳도 이제는 자료까지 있으니 다녀와야겠다. 학기 초에 볼록렌즈와 오목렌즈 때문에 아이가 어려워하는 것을 보면서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어서 마냥 안타까워하기만 했는데 늦게나마 과학관을 다시 가서 자세히 살펴보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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