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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평점 :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외할머니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꽤 넓은 마당에 잔디를 심으셨다. 굉장히 현실적이신 외할머니는 그곳에 채소를 심어서 경제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다. 그러나 엄마는 잔디밭 뿐만 아니라 마당이 아니라 텃밭이라고 해야 할 정도의 공간을 꽃밭으로 만드셨다.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게 꿈인 나는 당장 내가 그런 집에 살지 못하는 대신 엄마네 집이라도 그렇게 꾸며보고자 틈만 나면 잔디밭의 풀을 뽑는다. 그런데 이놈의 풀은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다. 그래도 악착같이 풀을 뽑다가 문득 만약 잔디가 뽑아야 할 대상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잔디는 생명력이 강해서 웬만해서는 죽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풀을 보고 생명력이 강해서 잔디에게 해를 끼친다고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어떤 경우는 잔디밭에 있으니 풀을 뽑긴 하는데 꽃이 너무 예뻐서 차마 뽑지 못하고 망설이기도 했다. 아마 그 꽃이 벼룩이자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른 봄이면 잔디 새싹이 나오기 전에 풀들이 나온다. 먼저 자리를 잡기 위해서다. 또, 풀이 난 곳을 파보면 영락없이 땅속에 잔디 뿌리가 있다. 뿌리 내리기 좋은 자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땅속에서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얘네들도 서로 좋은 자리가 어디인지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걸 보며 참 신기했다. 이렇게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구나. 그런데, 나는 무슨 근거로 잔디만 남기고 나머지는 하찮게 취급하는 것일까. 하지만 여전히 잔디 자리를 빼앗는 풀을 보면 호미를 들고 만다.
그러면서 전에는 관심없었던 풀에 관심이 갔다. 무슨 풀인지 알고나 뽑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들꽃이라고 하니 그렇게 불려야겠다. 아무래도 '풀'이라는 단어보다 '들꽃'이라는 단어가 더 쓸모있어 보이니까. 여하튼 잔디밭에 자라는 들꽃을 보며 도감을 뒤졌다. 바랭이, 뚝새풀, 방동사니, 띠풀. 그래서 이젠 하나를 뽑아서 '이런 풀'이 많다고 하지 않고 이름을 말한다. 비록 뽑더라도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다.
뚝새풀은 원래 논에 많이 난다. 모내기 하기 전이면 논바닥을 가득 채웠던 풀. 바람이 살짝 불면 잔물결을 일으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위에 눕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뚝새풀은 작고 불그스름한 꽃이 핀다. 그래서 동생이 조카,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에게 그걸 고추가루라고 장난을 쳐서 진짜 그런 줄 알았다며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한다. 요즘에는 그처럼 많은 뚝새풀을 보기 힘들다. 풀이 그만큼 자라기 전에 미리 논을 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제초제를 줘서 아예 풀씨를 말려버리기도 한다.
붉나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작가의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는 들꽃 이야기를 읽다 보니 어렸을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그리고 시골에서 만났던 많은 식물들이 새롭게 떠오른다. 귀화식물인 다닥냉이를 보며 이주노동자의 힘들고 고달픈 삶을 생각하고 그 둘을 하나로 연결시켜 읽는 이를 공감하게 만든다. 귀화식물이라고 무조건 배척하고 없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역할을 인정해주듯 이주노동자의 역할도 인정해주자는 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이처럼 들꽃을 이야기하며 우리네 삶의 이면을 들춘다. 애써 바라보고 싶지 않은 면을 들춤으로써 조금 더 진실에 가까워지라고 하는 듯하다. 아, 그런데 이 작가의 그림이 워낙 익숙하다지만 잘 모르는 들꽃이 나왔을 때는 그림을 보고 어떻게 생긴 건지 감을 못 잡겠다. 아무래도 도감을 옆에 놓고 읽어야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