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신화와 전설 2
베르나르 브리애 외 지음, 마르셀 라베르데 외 그림 / 지엔씨미디어(GNCmedia)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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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즈음부터 지금까지 각 나라나 대륙별로 신화를 읽고 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의지로 읽는 것이라면 중도에 포기했겠지만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라서 아직 이어지고 있다. 중간에 잠깐씩 건너 뛴 것도 있어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런 책들은 언젠간 꼭 읽어보리라 생각중이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보니 마치 뭔가 운명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원래 뭔가에 관심을 가지면 그와 관련된 것들이 주변에 갑자기 많이 나타나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하지 않던가.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야기들을 두 권의 책으로 묶었단다. 물론 그 많은 신화와 전설을 두 권으로 묶는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잘 선택하면 가능할 듯도 하다. 게다가 이 책은 보통의 책보다 훨씬 두꺼우니까. 뭐, 두껍다고 겁낼 필요는 없다. 어린이책인만큼 줄 간격이 넓은데다 그림이 많아서 금방 읽을 수 있으니까.

대개 신화나 전설이 나라별로 묶여 있는데 반해 이 책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첫 번째는 용에 대한 이야기들을 묶어 놓고 두 번째는 바다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묶어 놓고 마지막 장은 상상 속의 동물들로 묶어 놓은 것이다. 물론 장단점은 있다. 이렇게 묶어 놓으니 각 나라마다 비교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계속 읽다보면 어느 나라의 이야기인지 정리가 안 된다는 단점이 있다. 아무튼 이렇게 묶어 놓은 점이 신선했다.

용에 대한 인식은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서양에서는 주로 나쁜 역할로 나오며 꼭 없애야 하는 대상으로 나오는 반면 동양에서는 사람을 도와주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진다는 점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상상의 동물들만 따로 묶어 놓아서 흥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원래 신화나 전설이 그렇다고 하지만-이야기가 애매하게 끝나거나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 신나게 시작하다가도 나중에는 '이거 뭐야'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너무 알려주기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대개 지금의 모습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래서 그렇게 되었대요'라는 식의 이야기가 많은 법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인지를 밝혀 주었으면 훨씬 재미있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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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이 들려주는 홍길동전
최태림 지음, 김고은 그림 / 세상모든책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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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하면 가장 생각나는 것이(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서얼에 한이 맺혀 아버지에게 호부호형을 못하는 것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는 장면이다. 언젠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이것을 변형하여 풍자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홍길동이라는 이름은 관공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이 아닐까. 이름난에 예시로 적어 놓는 이름이 바로 홍길동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시리즈 중 구운몽을 읽었었는데 그때 구운몽 자체의 이야기보다 김시습이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역시나 이번에도 허균의 일생이 더 마음을 끌었다. 게다가 홍길동전은 워낙 많이 알려져 있어서 책을 읽지 않았다할지라도 대강의 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혹시 언젠가 읽었던 것은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다. 이 기회에 홍길동전도 읽어보고 허균의 일생도 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알다시피 허균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그의 누이 허난설헌도 그랬고. 비운의 여류작가라는 타이틀이 항상 따라붙는 게 바로 허난설헌이지 않던가. 그렇다면 허균도 평탄하지 않았다는데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허균은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좋아서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글재주가 저절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엄한 아버지가 글을 가르쳐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방탕한 생활을 했다지. 그래도 나중에 마음을 잡고 학문에 정진해서 벼슬길에 오르니 다행이다. 물론 나중에는 유배를 많이 가긴 하지만.

허균에 대해 따로 이야기를 한다거나 홍길동전만 따로 읽는 것보다 이렇게 함께 보는 것이 훨씬 좋다. 작품이란 시대를 떠나서 해석할 수 없고 작가의 삶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니까. 뒷부분에 일생 후반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는 참 안타깝다. 결국은 순리대로 죽은 것이 아니라 역적으로 처형을 당했으니까. 이 책은 허균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자신이 죽는 장면을 설명할 때는 약간 이상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허균에게 공감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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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이 들려주는 구운몽
최태림 지음, 경혜원 그림, 설성경 감수 / 세상모든책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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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하면 떠오르는 것은 서포 김만중, 일장춘몽을 나타낸 소설이라는 기계적인 답변이다. 왜? 바로 학교 다니면서 시험을 위해 외웠던 것이니까. 그러나 정작 김만중의 생애에 대해서는 모른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치자. 그러나 구운몽의 내용도 모르고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하려면 왠지 어깨가 움츠러든다. 그 당시에는 읽어보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공부했으면 엄청 쉽고 재미있게 했을 텐데 아쉽다. 하긴 지금 아이들은 그렇게 이야기해 줘도 모르니 그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도 지금의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

그런데 김만중의 생애와 구운몽을 동시에 만나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바로 이 책. 표지를 보고는 '김만중이 들려주는'이라는 부제가 왜 붙었을까 생각했는데 읽고 나니 이해가 간다. 김만중이 화자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시작이 된다. 그리고 구운몽을 지은 이야기가 나오면서 소설 구운몽이 전개된다. 소설이 끝나고 나면 다시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죽은 후의 일까지도 김만중의 입을 빌어 이야기한다. 그런데 중간에 구운몽을 읽을 때는 이게 김만중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소설 구운몽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잠시 혼동이 되기까지 한다. 그만큼 작품 속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서포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던 해에 태어났단다. 그 시기는 한창 당쟁이 심했던 때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는 서포가 태어나기 전에 강화도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러니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김만중의 어머니는 두 형제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자 어떻게든 책을 구해다 줄 정도로 자식 교육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단다. 김만중은 서인에 속해 있었기에 당시 남인이 정권을 휘두르던 때라 여러 번의 유배를 간다. 결국 유배지에서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만다. 

흔히들 구운몽은 어머니를 위해서 지은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 보다는 당파싸움을 하기 보다는 서로 협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게다가 구운몽은 바로 인현황후를 폐위하는 것에 반대했다가 유배를 갔을 때 지은 것이기 때문에 왕을 존경하는 신하의 충정으로 이해하기도 한단다. 어찌되었든 구운몽이라는 소설 자체는 지금의 생활풍습과는 거리가 멀어서 읽는 내내 이런 나라가 있나라며 읽었지만 마지막에 성진이 꿈에서 깨어나고 자신의 우매함을 깨닫는 모습을 보며 그것은 시대와 상관없이 언제나 유효한 이야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다지 어렵지 않으니 초등 고학년인 딸에게 읽어보라고 해야겠다. 내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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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보내기 재판놀이 최하림 시인이 들려 주는 구수한 옛날이야기 19
최하림 글, 김 담 그림 / 가교(가교출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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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재차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실 나도 아이들에 대해 그리고 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는 뻔한 결말에 뚜렷한 권선징악이 드러나는 그런 옛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아이들책에 대해 조금씩 눈이 떠지면서 그동안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아이들의 발달 과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한 채 내 기준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나마 요즘은 옛이야기의 중요성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했는지(아니면 원래 많았는데 내가 미처 몰랐는지) 옛이야기 그림책이나 동화책이 많이 나온다. 참 반가운 일이다.

이 책에는 옛이야기가 세 개 들어 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는 생소한 이야기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는 좀 특이하다. 암행어사가 남루한 차림으로 지나는데 마침 어느 집에서 암행어사를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부르는지 알고 놀랐지만 알고 보니 딸들이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자신들의 처지를 그대로 놀이에 풀어낸 것이다. 아이들이 놀이를 끝내고 한숨을 지으며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는 소리를 듣고 암행어사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떠난다. 즉 어사의 임무 중 하나가 될 일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나 할까. 아니면 어사로서 백성들의 어려운 일을 풀어줄 힌트를 얻었다고나 할까.

두 번째 이야기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무릉도원에 갔던 이야기. 그러나 천도복숭아를 따면 안 된다는 말을 어기는 바람에 하마터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뻔한다. 세 번째는 멸치의 꿈 해몽에 얽힌 이야기로 생김새가 이상해진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두 번째 이야기의 경우 마지막에 나그네에 대한 이야기만 있고 방안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옛이야기는 원래 논리적으로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좀 애매하게 끝난다. 또 세 번째 이야기에서도 읽는 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병어나 꼴뚜기 메기 등이 마지막에 왜 갑자기 나왔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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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서역국으로 복 타러 가네 최하림 시인이 들려 주는 구수한 옛날이야기 17
최하림 지음, 서선미 그림 / 가교(가교출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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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는 워낙 비슷비슷해서 정확히는 알지 못하더라도 읽어보면 어디선가 읽은 듯한 느낌이 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책도 읽으면서 분명 어디서 읽었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는 '원천강 오늘이'이야기와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아마 두 이야기 말고도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는 옛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모두 복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자신의 복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고 서천 서역국으로 복을 타러 가는 정 도령의 이야기로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바꾸려는 인물이 나오고, 두 번째 이야기는 자신의 적은 복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며 자신도 모르게 덕을 쌓아 복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로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정 도령은 자신의 복을 더 타오기 위해 어딘지도 모르는 서천 서역국으로 떠난다. 가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데(원래 옛이야기가 모두 그렇듯이) 그 사람들의 부탁을 다 들어주기로 한다. 그러나 어렵게 도착한 서천 서역국에서 자신의 복이 그것 밖에 안 되니 지금처럼 살라는 부처님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떼를 쓰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선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아무것도 못 얻은 것이 아니다. 지나오면서 부탁받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때마다 자신도 모르는 복이 들어온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나보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복이 없는 박복덕이라 불리는 여인의 삶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신의 복이 없음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운명을 묵묵히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우연히 저승으로 잡혀간 사또에게 저승 곳간에 있는 쌀을 본의 아니게 빌려주고 훨씬 많은 삼백 석을 받는다는 그런 이야기다. 그러나 여기서 마지막에 사또의 쌀 삼백 석의 출처를 밝히는 부분은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에게서 받아다가 준 것이라니... 그렇다면 부모가 그 정도의 재물이 없으면 어쩌란 말인가. 옛이야기는 생략하고 건너 뛰어도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데 별 무리가 없는 장르 아닐런지. 

주로 옛이야기를 입말로 되어 있는 것을 읽어서 그럴까. 이상하게 이것은 친근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또한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하는 흔적들이 오히려 거북했다. '내 복이라도 남은 것이 있으면 드리고 싶은걸.(37쪽)' 이라던가, '저는 복을 더 타지 못했지만 세 가지 부탁을 모두 들어주셨으니 아주 헛된 걸음만은 아니었습니다.'(43쪽) 등의 표현처럼 말이다. 비단 이것이 과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옛이야기를 읽다가 이처럼 작가의 적극적인 입김이 느껴지는 글을 읽어서 그렇게 여겨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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