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부부의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 - 떠나고 싶다면 이들처럼
이성종.손지현 지음 / 엘빅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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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이던가, 자전거 여행을 통해 주인공의 성장을 그린 <불량한 자전거 여행>이라는 동화를 읽고 한동안 자전거 여행에 대해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여기저기 여행기들을 찾아보다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돌아다니지 않는데 그런 여행기를 읽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짐했다. 비록 나는 그렇게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지만 내 아이는 그런 여행을 하도록 해야겠다고. 편하게 가만히 앉아서 정보를 얻는 여행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부딪쳐가며 하는 여행을, 적어도 젊었을 때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돌아디닌 곳 중에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했다는 사람들이 있었던가? 글쎄,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안전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일 게다. 그래서 이들도 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고 주변에서도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었다 한다. 실제로 이들이 겪은 몇 번의 문제들에 대해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당시는 정말 지옥을 갔다 온 기분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책이 나왔다는 건 안전하게 잘 다녀왔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독자는 미리 알고 있으니 급박했던 상황이 덜 느껴질 것이다. 결론이 이미 정해져있으니까. 

숱하게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가며 많은 나라들을 지나는 동안 이들이 겪었던 모든 일들이 결코 재미있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힘들지만 웃을 수 있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 때문일 게다. 될 수 있으면 현지인들과 어울리기 위해 애쓰고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그들의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 이런 건 여행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말처럼 쉽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들도 현지인들이 돈을 달라고 하거나 무슨 물건이라도 얻으려고 달려드는 모습에서 때론 실망하기도 하고 때론 안타까워 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현실이다. 자본주의의 속성을 이미 알아버렸기에 예전만큼 순수한 마음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 보면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믿음이 아직은 유효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시간에 대한 나의 촉박함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이들의 일정이었다. 살라마 말라이카 고아원에서 며칠 쉬면서 봉사도 하며 지낸 날이 3주에 가깝고, 모잠비크의 한인 회장이 마련해준 휴식처에서 일주일을 쉬었단다. 처음에 휴식을 취했다길래 길어야 이틀이겠거니 했다. 대개 외국여행을 가면 길어야 일주일에서 보름이니 생각지도 않은 휴식에 일주일을 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이들에게서는, 아니 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사람들에게서는 우리와 같은 시간 관념이 통용되지 않는가 보다. 이러니 얼마나 여유로울까. 그곳에서보다 돌아와서 시간에 대해 생각하는 기준이 다를 것 같다. 이러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매일 시간에 쫓기고 경쟁에 쫓기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생은 했겠지만(원래 모든 여행은 고생이다.) 그래도 부러워하는 이유가 바로 이점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확실히 다르다는 점. 

내가 틈만 나면 이야기하는 게 있는데 바로 휙 지나가는 여행이 아닌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는 점이다. 그게 꼭 외국 여행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그런 여행을 하며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하도 무서운 세상이라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해서 예전처럼 쉽진 않아도, 그래도 진심은 통히리라 생각한다. 이들처럼 해외여행을 그런 식으로 떠날 수는 없겠지만(꿈은 꾸고 있지만 꿈 꾼다고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역시 젊음은 좋다.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하긴 그래도 자전거 여행은 사양했을 테지만. 원래 십 년 전으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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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뇌 - 독서와 뇌, 난독증과 창조성의 은밀한 동거에 관한 이야기
매리언 울프 지음, 이희수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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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금, 지난한 책읽기였기에 드디어 다 읽었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나서 계속 다른 일이 끼어들었기에 시간이 걸린 이유도 있겠지만 매끄럽지 못한 문장 때문에 속도가 느려지고 때로는 앞 장으로 다시 가느라(그야말로 작가가 말했듯이 초보독서가들이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 하는 행동이었다.) 시간이 몇 배는 더 걸렸다. 물론 그것을 몽땅 번역 탓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워낙 학술용 단어가 많이 나오고 내용 자체도 상당히 전문적이라 내가 이해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더라도 만족한 문장들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난독증에 대해 알고 싶어서였다. 책을 꽤 읽는다고 여기는 나조차도 가끔은 단어를 반대로 읽는다던가 글자를 빼놓고 읽는 일이 종종 있어서 의아했다. 또 어떤 사람은 특정한 글자만 다른 글자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 기회에 난독증에 대해 '확실히' 알고 싶었는데 그건 좀 무리한 욕심이었나 보다. 하긴 난독증에 대한 연구 역사가 길지 않기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고 충분한 데이터도 축적되지 않았으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확실히 알려면 전문정보를 다룬 책을 봐야할 텐데 그러기에는 내 능력을 벗어나는 범위일 게다. 

그렇다고 많은 시간을 소비한 책 읽기가 헛되었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우선 인간의 뇌가 처음부터 책 읽기에 맞춰진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읽으며 의아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당연하다.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글자가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다만 조금씩 세월이 지나면서 뭔가 기록해야 할 일이 생기고 전해줘야 할 일이 생기면서 문자의 필요성을 느꼈고 더불어 문자가 창조되었고 지금까지 발전해 왔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자각했다. 그 전까지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이런 게 바로 책을 읽는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 싶다. 소크라테스가 우려했던 문자로만 받아들여서 거기서 지식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더 확장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흔히 자폐아는 특정한 부분이 유난히 발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난독증도 일견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한다. 그것을 여기서는 뇌의 활성화 영역을 스캔한 자료를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일을 0%와 100%로 나눌 수 없듯이 난독증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책에서 예로 든 다 빈치나 에디슨, 아인슈타인만 보더라도 그렇다. 또한 현대에서도 어느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이 알고 보니 난독증이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문제는 작가가 지적했듯이, 또한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바로 이러한 난독증 때문에 자신감을 상실하고 위축되어 다른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잃을까 우려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고 조금 과장을 하자면 인류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책에서는 시종일관 어린 시절의 독서 경험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이 또한 내가 가장 관심 갖는 부분이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부분이라 많이 공감이 되었다.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책에서 다양한 단어를 만나야 언어가 풍부해진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고 직접 느끼기도 했다. 그러므로 육아를 담당하는 사람은 부모가 됐든 보모가 됐든 책을 많이 읽어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책을 접할 형편이 안되는 아이와 어렸을 때부터 충분한 책을 접한 아이의 언어구사력을 추적조사한 예에서도 보듯이 유아기의 책은 아주 중요하다.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을 이렇게 다시 한번 확인했다. 

책을 읽으며 내내 들었던 아쉬움 하나. 우리 언어를 가지고 이처럼 방대한 연구를 한 사람이 있을까하는 점이었다. 내가 그런 쪽에 관심이 없기에 못 봤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여기저기서 겉표지만이라도 봤던 책 내지는 이슈가 되었던 책을 돌이켜 보면 없었던 듯하다. 여기서 예로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라서 우리 언어로 치환시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 책에서도 잠깐 언급되지만 그것은 이런 문자도 있다는 수준에 그친다. 우리도 우리 언어에 대해 연구하고 고심한다면 아무리 배우기 쉬운 문자라지만 여전히 글을 몰라 어려워하고 더 나아가 다른 언어를 배우는데도 주저하는 많은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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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신 택리지 : 서울 경기도편 - 두 발로 쓴 대한민국 국토 교과서 신정일의 신 택리지 4
신정일 지음 / 타임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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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여행을 가다가 우연히 닭실마을을 지났다. 어디선가 들어보긴 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아 곧바로 검색해 보니 한과로 유명한 마을이란다. 또한 택리지에서 길지로 꼽았던 충재 권벌의 집이 있는 곳이란다. 길지라. 명당이라는 얘기잖아. 결국 돌아오는 길에 닭실마을을 돌아보았다. 풍수지리는 전혀 모르기에 길지라니 그런가보다 했지만 아늑한 느낌이 들긴 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났다. 게다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라니 더 반가웠다. 또 오랜시간 동안 나라의 중심지였던 서울이 들어있으니 지리에 관한 지식뿐만 아니라 역사에 관한 지식도 얻을 수 있겠다는 욕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느 정도는 충족되었으나 내가 예상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글쎄,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탓도 있겠지만 여러 자료에서 인용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작가는 전국을 발로 돌아다니며 언제 이 많은 자료들을 읽었을까 싶어 감탄하며 읽긴 했다. 아마 작가의 이야기로 풀어낸 역사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같은 류의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시종일관 객관적인 시각을 잃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니 적응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서울의 구석구석을 훑어가며 각 지역에 얽힌 전설이나 역사를 들려준다. 가끔 의미가 너무 커서 어디있을까 큰 기대를 하며 읽었는데 지금은 소실되고 표지석만 서 있다는 글을 읽을 때는 어찌나 안타깝던지. 물론 그러한 뒷이야기를 전혀 몰랐을 때는 안타깝다던가 원래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글을 읽고 나니 무척 안타깝다. 역시 알고 볼 때와 모르고 볼 때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이야기가 많았다. 

경기도도 마찬가지다. 확실히 내가 알고 있는 곳을 이야기할 때는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져서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는데 잘 모르는 곳에 대해서는 지식으로만 들어왔다. 고향 동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던데 솔직히 그곳은 그 집안 사람이 아니면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을 못 봤다. 그렇다면 내가 다른 지역 이야기를 읽으며 상상하는 운치 있는 모습과 실제의 모습은 다를 수도 있겠다. 

자연은 스스로 조금씩 변하고 인간이 개입하면 훨씬 많이 변하는 게 당연한 이치건만 미처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에 적용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금의 한강 모습을 그냥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근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져서 가장 많이 변한 곳이 바로 서울과 경기도건만 우리는 그냥 지금의 모습만 기억한다. 하긴 동탄 신도시가 생기기 전부터 그곳(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다녔는데 지금의 번듯한 도로만 기억나는 걸 봐도 굳이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도 없다. 책을 읽으며 어디가 길지(여기서도 왜 길지인지 그런 얘기는 없었던 것 같다.)인지보다 어떻게 변했나에 더 눈길이 갔다. 다만 아쉬운 건 해당 지역에 대한 지도가 있었으면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야 발로 걸어다니며 직접 보았기에 눈에 선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가 훨씬 많을 테니까. 그리고 원각사지10층석탑이 13층석탑이라고 되어있다. 사진설명에서는 제대로 되어 있으나 글에서는 계속 13층이라고 썼다. 아마 오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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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항하는가 -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
세스 토보크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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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존재하지 않고서는 국민이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독립운동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라는 게 모든 것에 우선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정당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 국가는 필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가끔 다른 나라에게 못되게 구는 행태를 보면서 과연 그 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국가가 다른 나라 사람에게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을까 의아할 때가 있다. 일례로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했을 때 악랄하게 행동했던 것을 일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과연 그들은 국가라는 이름 뒤에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내지는 전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모든 사람들이 식민지배와 착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까 싶기도 했다. 어느 사회나 잘못된 정책을 눈치채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니까. 지금까지 일본은 워낙 전체주의적인 국가라서 모르는 것인가 답답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는 걸 알았다. 그들 사회에서도 자신들의 지난 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떨까. 명분이 없는데도 무리하게 전쟁을 일으키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며 다른 나라를 뒤에서 조종하는데 그에 대해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어디나 의식이 제대로 정립된 사람이 있기 마련이므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당연하다. 한편에서는 국가의 이익에 위배되는 행동이라며 비난을 퍼붓더라도 말이다(문득 얼마전에 있었던 우리의 어떤 사건이 오버랩된다). 다만 아무래도 내가 그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없기에 기회가 오지 않으면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세스 토보크먼처럼 비록 자기 나라의 치부가 드러나더라도 옳은 말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게 내게는 소중한 기회다. 

솔직히 굵직한 사건 외에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잘 모른다. 워낙 세계를 주무르는 나라다 보니 다른 나라보다 정보가 조금 더 많을 뿐이다. 책을 보며 답답했다. 우리가 우러러 보고 따라가기 위해 기를 쓰는 나라가 이런 모습이라니. 비록 현재의 수정자본주의가 잘못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여기에 나타난 모습을 보면 우리가 그 분야는 전부 따라잡은 셈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도 이럴진대 우리라고 별 수 있겠나 싶어서. 일종의 패배감이자 열등감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민주주의의 역사는 우리가 훨씬 짧으니까. 

거대 자본에 좌지우지되는 경제정책이나 대홍수 이후 오히려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일부 기업가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이 어쩜 우리와 똑같은지, 역시 잘 배웠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심성이 같아서 그런 건지 현대의 자본주의가 그렇게 갈 수밖에 없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그들의 세세한 내막을 모르기 때문에 내용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만은 충분히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너무나 급진적이어서 차마 더 이상 실을 수 없었단다. 이러한 것조차 어디나 별반 다르지 않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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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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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중국에 출장 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급박했던 상황이나 안타까웠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는 것 정도다. 다만, 친구 어머니가 그때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건너서 들었다.(대신 성수대교 붕괴 때는 몇 시간 전에 그 다리를 건넜기 때문에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당시 일련의 커다란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던 때라 삼풍백화점도 그런 일들 중 하나로 남았다. 물론 그걸 소재로 나온 영화도 있지만 연속성은 없어 보인다. 

첫 이야기가 백화점이 무너진다고 하니 바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어른이라면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원인도 아니고 부실공사로 백화점이 무너진 일은 전무후무한 일일 테니까. 그러면 이 소설이 언제를 이야기하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다지 오래전 일도 아니고, 나도 사회생활을 막 하던 때의 이야기니 모든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세컨드인 박선녀의 삶을 따라가서 그냥 읽기만 하면 됐다. 어려운 살림에 일찍 사회에 나가 어찌어찌 하다보니 술장사를 하게 되었고 그러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영감의 둘째 부인으로 되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러나 박선녀의 이야기가 끝나고 김진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했다. 이건 거의 역사서나 다름없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해방되어 전쟁까지 치르고 그것도 모자라 군부독재 시절과 민주화를 거치는 과정을 고스란히 통과한다. 정말이지 현대사를 압축해서 들려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현재 모든 사람의 로망이자 권력과 재력의 목적지인 강남 형성사까지 곁들여진다. 예전에는 현재 강남 지역이 벌판이었다느니 힘겹게 사는 동네였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그곳이 생긴 과정은 잘 몰랐다. 아니, 관심도 없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영화 <친구>를 연상시키는 주먹들의 세력변화도 그려진다. 마치 조폭 영화를 보는 듯 그들의 모습이 자세하게 나온다.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사를 따로 보여주지만 결국 어느 지점에 가서는 서로 연결되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또한 당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실제의 지명이 그대로 사용되고, 인물(비록 가끔 가명을 썼지만)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누구를 말하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현대사의 질곡을 거칠게나마 훑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깊은 울림 같은 그런 것, 책을 덮고 나서 멍해지는 그런 느낌이 없다. 뭔지 모르겠지만 약간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소설을 지식으로 접근한 느낌이랄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책을 덮고 났을 때 혹은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강남이 만들어질 때 이랬구나 내지는 사람이 약삭빠르게 움직여야 잘 산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가끔은, 이래서 부동산으로 부자된 사람이 많으니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아직도 부동산에 모든 걸 투자하는구나라는, 약간 허탈함마저 느꼈다. 언제 기회되면 문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에게 현재 만날 수 있는 좋은 문학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이런 책을 읽고도 별다른 게 느껴지지 않는 나의 이 메마른 감수성을 탓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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