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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뇌 - 하버드대 뇌과학자의 뇌졸중 체험기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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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환자가 토로하는 고통을 의사가 어떻게 알까 궁금하다. 의사가 병을 '알고'는 있더라도 '앓아'본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현인데 의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이론적으로는 알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알고 있을 뿐이지 느끼는 것이 아니잖은가. 의사인 친구 오빠가 하루는 다쳐서 동생인 친구가 소독해주는데 아프다고 난리치며 하는 말이 환자가 아프다고 할 때 뭐가 아프냐고 면박을 줬는데 진짜 아프더란다. 이처럼 경험해보지 않은 것은 아무리 설명해줘도 가슴으로 느끼긴 힘들다.
그런데 뇌과학자가 뇌졸중을 경험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니 마치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이 저승을 이야기해 주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품었던 게 사실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솔직히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기대했기에 다 읽고 나서 뭔가 허전함을 느끼는 것일까 생각해 봤다. 아마 뇌졸중이 일어나는 원인부터 진행되는 과정과 재활하는 동안의 세세한 이야기를 기대했나 보다. 일종의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뇌졸중을 설명해 주길 바랐던 셈이다. 헌데 그보다는 작가가 뇌졸중이 시작될 때부터 병원에 가기까지를 아주 세세하게 이야기하는 반면 재활의 과정은 상당히 개략적으로 설명한다. 마치 짧은 기간동안 아주 쉽게 회복된 것으로 여겨질 정도다. 8년이란 시간 동안 회복되었다니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뇌졸중이 발병하고 뇌가 어떻게 상처를 입는지, 어떻게 작동을 멈추는지 아주 세세하게 보여준다. 처음에 증상이 나타났을 때 샤워를 하러 가는 게 아니라 얼른 전화를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긴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알고 난 후 이렇게 말하는 건 쉬운 법이다. 뇌과학자조차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일이 커진 후에야 자각하니 일반인은 오죽할까. 뇌졸중이 일어나면 바로 수술하는줄 알았는데 저자의 경우 2주일 후에나 수술을 했단다. 그동안 체력을 보강하고 집에서 꾸준히 재활 치료를 했다는데 그 사이 뇌가 더 망가지는 건 아니었나 보다. 이왕이면 그런 설명도 좀 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좌뇌가 손상되어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면을 상실한 대신 감성적인 우뇌가 우세해졌기에 저자는 끊임없이 우뇌적으로 설명한다. 어쩌면 그게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원한 것은 좌뇌의 역할에서 나오는 과학적이고 명확한 설명이었는데 작가는 계속 우뇌의 역할에서 나오는 감성적인 어투로 설명을 하고 있으니 뭔가 허전함이 느껴졌던가 보다.
어떤 일을 할 때, 심지어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머릿속에서는 혼자 중얼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저자는 이것을 '뇌의 재잘거림'이라고 표현했는데 아주 적절한 표현이지 싶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생각한다'고 하는 것 같던데 재잘거림이라는 표현이 더 그럴 듯하다. 이것은 좌뇌에서 맡는 역할인데 저자는 이것을 잃어버려서 오히려 명상에 빠질 수 있었다고 한다. 뇌졸중에 걸린 사람 중 이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특히 뇌졸중에 걸린 것을 알아차린 순간 멋지다고 생각했다니, 지금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 아닐까). 저자도 때로는 재활을 포기하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좌절하기도 했다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