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수염 생쥐 미라이 보림문학선 9
창신강 지음, 전수정 옮김, 김규택 그림 / 보림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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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절감했다. 중국 작가의 책을-이 작가의 책을 포함해서-몇 권 읽어보았지만 아주 재미있었다거나 의미있었다고 여겨진 책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리와 같은 문화권이라서 신비한 맛이 덜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재 중국의 모습이 보여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지금의 중국 모습을 안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은 여전하리라고 짐작한다. 우리도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 문화가 남아 있으니까.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생쥐 미라이가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그럼으로써 인간의 지식을 습득하여 인간과 자유자재로 이야기하고 심도 있는 토론을 한다는 이야기, 인간인 즈루이가 오히려 인간과는 교류를 하지 못하다가 시궁쥐인 미라이를 통해 위안을 삼고 딸까지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이야기지만 미라이 집안의 생쥐들을 통해 인간의 세속적이고 비열한 모습을 꼬집고 싶어하는 작가의 마음을 너무 쉽게 드러내고 말았다. 특히 미라이의 형인 미자자는 욕심많고 교활한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의 기력이 약해지는 것을 알고 후계자가 되기 위해 술수를 쓰는 모습이나 자신의 약점을 드러냈다가도 금방 가면 쓴 모습으로 돌아가는 등의 모습을 통해 직설적으로 그런 부류의 인간을 풍자하지만 솔직히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무기력해진 아버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집안의 질서가 잡히고 다른 가족을 통치하는 생쥐 가족의 모습을 보며, 만약 문화가 전혀 다른 곳에서 살았던 사람이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궁금하다. 중국이니까 그런 모습으로 가족을 그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다. 진짜 생쥐들이 어떻게 군집생활을 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싫어하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되는 바람에 다른 의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려지고 말았다. 작가가 미자자의 가족을 일부러 그런 모습으로 그렸다기보다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환경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이야기를 하고 권모술수를 쓰지 않는 미라이를 보며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래, 그렇게 살아야 해라고. 때로는 위험에 처하고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부딪치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가는 삶은 마치 군자의 모습 같다. 미라이가 생쥐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다른 생쥐들과 다르게 사색을 즐기고 가치를 다른 곳에 두는 모습에서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이 연상됐다. 어쨌든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우리 작가의 동화가 훨씬 재미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세련되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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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이의 왕따 탈출기 미래의 고전 29
문선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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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이 중소도시, 아니 오히려 시골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 정도로 주변 환경과 여건이 도회지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아파트 단지가 조성됐다고는 하지만 그 주변으로는 오랜 시간 동안 마을을 이루며 산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일까. 흔히 왕따를 당하는 아이도 생각만큼 많지 않고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웬만하면 용서되곤 했다. 일례로 둘째네 반 어떤 아이는 시험지를 고친 것이 들통나서 선생님한테 엄청 혼났어도 왕따를 시키지 않았다.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 모르게 야단쳤다지만 웬만큼 눈치가 있는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고 부모들도 알고 있었지만 흔히 이야기하듯이 부모들이 쉬쉬하며 그 아이와 놀지 못하게 하진 않았다. 만약 대도시의 규모가 크고 학부모 치맛바람이 센 학교였다면 달랐을까. 모든 상황을 다 경험할 수 없기에 뭐라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현실에서는 동화에서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 안심이 된다.

 

  흔히 왕따를 당해서 전학을 가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소문이 나게 된다. 게다가 왕따를 당한 아이의 경우 그 상처 때문에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수민이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다만 수민이는 공감 능력이 있어서 왕따를 당하는 친구를 보며 자기의 경험을 떠올리고, 결국 그 친구를 돕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사실 말이 쉽지, 자기가 난처한 상황에 빠질 게 뻔한데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용기 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제3자의 입장이니까 객관적으로 옳은 말을 할 뿐 내가 당사자이거나 내 아이가 그런 상황이라면 그처럼 쉽게 이야기하지 못할 것 같다. 아이 키우면서 장담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처럼 정확한 표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수민이의 용기가 대견하게 느껴지고 이런 아이가 있다는 데서 희망을 품게 된다. 비록 동화라서 그런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는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용기를 내는 현실의 아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수민이가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이구동성파에 들어가고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갈등하는 과정은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겪는 과정일 것이다. 분명 수민이도 자신이 이용당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일종의 자기최면을 건다. 안 그러면 자신만 더 비참해질 테니까. 대개는 그런 방식으로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법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구동성파는 수민이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고 귀찮은 일을 처리하는 졸개 정도로 취급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정작 수민이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계속 변명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민이가 나쁜 행동을 했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데는 자신을 지지해 주고 사랑해 주는 가족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것이 수민이와 다른 친구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경제적 상황과 상관없이 화목한 것,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꼭 필요한 가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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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우 이야기 동화 보물창고 51
앨런 알렉산더 밀른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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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정에서 한 달간 지낸 적이 있다. 큰아이가 네 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함께 곰돌이 푸우를 많이 봤다. 지금도 '곰돌이 푸우'하면 떠오르는 것이 낭랑하면서 마음씨 착해 보이는 크리스토퍼 로빈의 목소리와 어리숙해 보이지만 친근한 푸우 목소리와 푸우가 노래하는 모습이다. 거기에 더해 10월의 한적하면서도 따사로운 햇살이 함께 떠오른다. 그것은 당시 시골에서 지냈기 때문에 떠오르는 영상이다. 만약 곰돌이 푸 비디오를 그냥 아파트에서 봤다면 지금처럼 그런 아련한 향수로 기억나진 않을 것 같다. 그 후로 둘째가 컸을 때도 푸우를 많이 봤던지 곰돌이 푸우가 기억나는지 물어보니 당연하단다. 그러면서 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아직도 어딘가에 인형도 있을 것이다.

 

  비록 원래의 곰돌이 푸우가 내가 지금 기억하는 푸우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 곰돌이 푸우가 무지 좋다. 꿀을 따 먹기 위해 노래하며 나무 위를 오르다가 결국 덤불로 떨어지던 모습, 로빈에게 우산을 가지고 와서 비가 오는 것처럼 벌을 속여달라고 부탁하는 모습 등 여러 내용들이 영상으로 떠오른다. 만약 영상으로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그러면 순수하게 내가 상상하는 모습으로 등장인물들을 재창조했겠지. 하지만 영상으로 접했기 때문에 다른 장면들을 더 쉽게 기억하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추억을 떠올리는 좋은 시간이었다.

 

  비디오를 보면서도 푸우의 재치와 유머 때문에 웃었지만 책으로 읽으니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특히 푸푸우가 토끼네 집에 가서 꿀을 너무 많이 먹어 문에 낀 이야기, 어찌나 재미있는지 혼자 깔깔대며 웃었다. 뭐, 문에 끼인 장면이 재미있다는 게 아니라 푸우가 토끼에게 안에 누가 있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재미있다. 어른들에게는 결코 통하지 않는 대화지만 어른이 읽어도 무척 재미있는 대화다. 분명 객관적 논리적으로 따지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데 재치와 유머, 위트(같은 뜻의 단어를 반복해서라도 이 느낌을 정확히 표현하고 싶은데, 적당한 말을 못 찾겠다.)가 잔뜩 느껴지니 이걸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다.

 

  먹는 것 앞에서는 모든 것이 리셋되는 푸우지만 미워할 수가 없다. 다른 인물이라면 너무 자제심이 없다느니 돼지 같다느니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푸우는 그마저도 귀엽다. 친구에게 꿀단지를 선물하기 위해 들고 가다가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깜빡 잊고 꿀을 다 먹질 않나, 친구 집에 가서도 두리번거리며 먹을 것만 찾는 푸우지만 욕심부리지 않고 친구들을 아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푸우가 전혀 밉지 않다. 아니, 오히려 사랑스럽다. 어디 푸우 뿐인가. 모든 친구들이 그렇다.

 

  앞 부분에서 푸우는 항상 거꾸로 쿵쿵대며 걷는다기에 왜 그러나 의아(비디오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했는데 마지막에서 그 의문이 풀렸다. 로빈이 푸우의 다리를 잡고 계단 올라가는 장면을 떠올리니 어찌나 웃기고 귀엽던지. 그걸 또 '로빈이 푸우를 거꾸로 들고 올라갔다'고 하지 않고 '크리스토퍼 로빈 뒤로 푸우가 계단 올라가는 소리를.'이라고 표현하는 작가의 재치라니. 곳곳에 이런 재치가 있어서, 책 읽는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실 웃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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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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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사막에서 만난다는 신기루를 아스팔트 도로에서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앞쪽에 비가 왔거나 물이 흘렀는 줄 알았는데 막상 그 자리에 가 보면 아무것도 없이 멀쩡해서 의아해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신기루라는 것을 알았다. 사막에서 보는 신기루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도로에서 보는 신기루조차 신기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모르긴 해도 사막에서 만나는 신기루는 더욱 신기하겠지. 아니다, 사막에서 만나는 신기루는 신기한 게 아니라 허탈할지도 모르겠다. 힘들게 찾던 오아시스가 눈앞에 나타나 이제 살았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라면 얼마나 힘빠질까.

 

  몽골 여행 이야기로 시작하는 앞부분을 읽자마자 든 생각, 이금이 작가가 몽골에 다녀왔구나! 아무리 소설이 허구라 해도 작가의 경험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니까. 전에 캄보디아에 다녀왔는데 우연히 그곳을 배경으로 한 청소년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어찌나 몰입해서 읽었던지, 책 속 인물들과 다시 한번 캄보디아 여행을 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만약 내가 몽골을 다녀왔더라면 이 책 또한 엄청 몰입해서 읽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몽골은 가보질 못했다. 대신 다음에 몽골을 간다면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원래 모녀는 웬수와 친구의 경계를 넘나드는가 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딸은 나중에 큰 힘이 된다는데, 과연 내 딸도 그럴지. 아니, 그 보다 앞서 나는 우리 엄마에게 그런 딸인지 자문해 본다. 솔직히 무뚝뚝한 성격이라 전화도 잘 안하고 사근사근 대화도 잘 안하니 그런 딸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엄마의 대화 상대가 그래도 아들인 남동생보다는 내가 낫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여하튼 엄마와 나도 한때는 엄청 싸웠던 기억이 난다. 청소년인 딸도 나와 엄청 싸운다. 솔직히 다인이와 다인이 엄마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싸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 보니 나와 엄마의 싸움이 그랬고 지금의 나와 딸의 싸움이 또한 그렇다. 그러니까 별 것 아닌 일로 서로 예민하게 군다는 얘기다.

 

  모든 것을 정확하게 계획하고 행동에 옮기는 엄마와 그것을 못 견뎌하는 오빠를 보며 한편으론 엄마의 그런 관심이 자기에게서 비껴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한편으로는 시샘하는 복잡한 감정의 딸 다인이가 함께 몽골을 여행하며 겪는 마음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다인이는 엄마 친구들을 보며 엄마의 학창 시절을 추측해 보기도 하고 엄마도 한때는 소녀였다는 점을 기억해 낸다. 사실 딸에게 엄마는 언제나 엄마일 뿐이지 엄마에게도 꿈 많았던 학창시절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다. 누구나 어린 시절을 거치며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는 하지만 엄마에 대입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하되 마음으로 공감하지 못한다고나 할까.

 

  앞부분은 다인이의 시점이고 뒷부분은 다인이 엄마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그렇다고 동일한 시기를 다른 시각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간을 이야기하므로 하나의 사건에 대해 둘의 생각의 차이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사소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왜 그렇게 자식에게 올인하는지 그 배경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편이 낫겠다. 물론 그렇다고 엄마의 그런 행동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내가 그런 생활에 동의하지 못하기에. 그래도 고비 사막을 여행하고 돌아와 빠듯하게 돌아가는 생활의 덧없음을 조금은 이해하는 듯한 엄마의 변화에 약간 숨통이 트였다. 나는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는 것도 하나의 경험이자 공부며 추억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인이 엄마는 빨리 자퇴를 해서 좋은 대학 가길 원하는 걸 보며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어쩜 그렇게 우리집과 반대인지. 이런 책을 읽으며 위안을 삼는 것은 나는 적어도 다인이 엄마처럼 아이들을 몰아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 신경을 안 쓴다고 오히려 불만이다. 세상은 참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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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kg 마음이 자라는 나무 29
비르기트 슐리퍼 지음, 유영미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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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딸이 이 책을 보더니 얼른 집어든다. 딸의 목표도 45kg이니까. 그러면서 그 몸무게는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란다. 그랬나? 하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더라도 목표치가 45kg이라는 사람들이 몇몇 있는 걸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워낙 마른 사람들은 차라리 뚱뚱한 게 낫다고, 마른 건 저주라고까지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모두 내가 처한 상황이 아닌 다른 상황에 대한 동경이 있는 듯하다. 사실 나도 살이 많이 빠진 적이 있는데(결코 다이어트를 했던 건 아니다. 그리고 지금은 나갈만큼 나간다.) 몸무게가 지나치게 적게 나가면 쉽게 지치고 피로해진다는 걸 알기에 무리하게 살 빼는 일이 그닥 바람직하다고 생각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우리 집에도 둘이나 있다. 남편과 딸-이 다이어트를 시도한다. 물론 그 중 상당수는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지만 말이다. 넬레도 끊임없이 몸무게에 신경쓰며 음식을 조절한다. 기름진 음식은 먹지 않고 야채와 과일을 주로 먹으며 따라서 패스트푸드도 먹지 않는 바람직한 식습관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이야기가 줄곧 넬레의 목소리로 전개되기 때문에 독자는 넬레가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이라는 사실을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 중에 기름기가 흐르는 음식을 안 먹는다거나 드레싱이 듬뿍 뿌려진 샐러드를 안 먹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그것에 비추어 보면 넬레가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몸무게에 집착하고 음식을 먹지 않거나 먹더라도 다시 토하는 걸로 미루어 보통 사람들의 다이어트와는 조금 다르다고 느낄 수 있다.

 

  거식증. 간혹 유명한 배우가 거식증에 걸려서 뼈만 남은 모습으로 다이어트의 부작용에 대해 말하는 걸 본 기억이 난다. 그러나 거기까지일 뿐 거식증에 대해 잘 모르겠다. 그래서 사실 이번 기회에 거식증에 걸린 사람들의 심리 상태나 증상 등을 간접체험하기를 기대했다. 원래 소설의 기능 중 하나가 간접체험이니까. 그러나 이야기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약간 다르게 전개된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넬레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것들 위주로 전개되다 보니 거식증의 증상인지 아니면 그냥 과하게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의 증상인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가 넬레를 객관적으로 관찰한 '사실'을 꼬집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뭐, 라르스가 그 역할을 하긴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솔직히 거식증에 걸린 사람들의 심리상태가 어떤지 궁금했었는데 그에 대한 시원한 답을 듣지 못해 아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거식증이란 원래 음식을 먹고 싶어도 몸에서 거부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먹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생기는 것인지 궁금했단 얘기다. 넬레가 음식을 안 먹으려고 하는 행동을 보면 먹고 싶지만 참는 것으로 여겨지니까. 여전히 나는 그 맛있는 음식을 두고 왜 안먹는지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이니 그 상황이 머리로는 이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지나친 다이어트 열풍 속에서 자아를 잃어가는 사람들이 줄어들길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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