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곰돌이 푸우 이야기 ㅣ 동화 보물창고 51
앨런 알렉산더 밀른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7월
평점 :
둘째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정에서 한 달간 지낸 적이 있다. 큰아이가 네 살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함께 곰돌이 푸우를 많이 봤다. 지금도 '곰돌이 푸우'하면 떠오르는 것이 낭랑하면서 마음씨 착해 보이는 크리스토퍼 로빈의 목소리와 어리숙해 보이지만 친근한 푸우 목소리와 푸우가 노래하는 모습이다. 거기에 더해 10월의 한적하면서도 따사로운 햇살이 함께 떠오른다. 그것은 당시 시골에서 지냈기 때문에 떠오르는 영상이다. 만약 곰돌이 푸 비디오를 그냥 아파트에서 봤다면 지금처럼 그런 아련한 향수로 기억나진 않을 것 같다. 그 후로 둘째가 컸을 때도 푸우를 많이 봤던지 곰돌이 푸우가 기억나는지 물어보니 당연하단다. 그러면서 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아직도 어딘가에 인형도 있을 것이다.
비록 원래의 곰돌이 푸우가 내가 지금 기억하는 푸우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 곰돌이 푸우가 무지 좋다. 꿀을 따 먹기 위해 노래하며 나무 위를 오르다가 결국 덤불로 떨어지던 모습, 로빈에게 우산을 가지고 와서 비가 오는 것처럼 벌을 속여달라고 부탁하는 모습 등 여러 내용들이 영상으로 떠오른다. 만약 영상으로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그러면 순수하게 내가 상상하는 모습으로 등장인물들을 재창조했겠지. 하지만 영상으로 접했기 때문에 다른 장면들을 더 쉽게 기억하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추억을 떠올리는 좋은 시간이었다.
비디오를 보면서도 푸우의 재치와 유머 때문에 웃었지만 책으로 읽으니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특히 푸푸우가 토끼네 집에 가서 꿀을 너무 많이 먹어 문에 낀 이야기, 어찌나 재미있는지 혼자 깔깔대며 웃었다. 뭐, 문에 끼인 장면이 재미있다는 게 아니라 푸우가 토끼에게 안에 누가 있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재미있다. 어른들에게는 결코 통하지 않는 대화지만 어른이 읽어도 무척 재미있는 대화다. 분명 객관적 논리적으로 따지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데 재치와 유머, 위트(같은 뜻의 단어를 반복해서라도 이 느낌을 정확히 표현하고 싶은데, 적당한 말을 못 찾겠다.)가 잔뜩 느껴지니 이걸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다.
먹는 것 앞에서는 모든 것이 리셋되는 푸우지만 미워할 수가 없다. 다른 인물이라면 너무 자제심이 없다느니 돼지 같다느니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푸우는 그마저도 귀엽다. 친구에게 꿀단지를 선물하기 위해 들고 가다가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깜빡 잊고 꿀을 다 먹질 않나, 친구 집에 가서도 두리번거리며 먹을 것만 찾는 푸우지만 욕심부리지 않고 친구들을 아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푸우가 전혀 밉지 않다. 아니, 오히려 사랑스럽다. 어디 푸우 뿐인가. 모든 친구들이 그렇다.
앞 부분에서 푸우는 항상 거꾸로 쿵쿵대며 걷는다기에 왜 그러나 의아(비디오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했는데 마지막에서 그 의문이 풀렸다. 로빈이 푸우의 다리를 잡고 계단 올라가는 장면을 떠올리니 어찌나 웃기고 귀엽던지. 그걸 또 '로빈이 푸우를 거꾸로 들고 올라갔다'고 하지 않고 '크리스토퍼 로빈 뒤로 푸우가 계단 올라가는 소리를.'이라고 표현하는 작가의 재치라니. 곳곳에 이런 재치가 있어서, 책 읽는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실 웃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