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히어로즈 1 - 슈퍼히어로즈여, 무스크라트를 수호하라! 슈퍼 히어로즈 1
제로니모 스틸턴 지음, 성초림 옮김 / 사파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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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직장을 다닌답시고 당췌 시간적 여유가 없길래 학교에서 틈날 때 리뷰를 쓸 요량으로 며칠을 들고 다녔다. 그런데 아이들이 책상 위에 많은 책들 중 자꾸 이 책을 집어들고 대출해 달란다. 그건 학교 책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설명을 해야했다. 어른이 보기에는 표지가 정신없고 내용도 허무맹랑해서 이걸 읽으려나 걱정하는 것과 반대로 아이들은 표지만 보고도 재미있을 것 같단다. 하긴 <프래니>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아이들에게(우리 아들에게도!)는 엄청나게 인기있는 걸 생각하면 전혀 이해못 할 바도 아니다. 

  제로니모의 환상모험이 슈퍼히어로즈라는 새로운 이야기로 선보이는 첫 번째 책이다. 원래 사람들은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평소에는 보통 사람과 똑같았다가 위험하거나 어려운 일이 닥치면 아무도 모르게 변신하고 나타나 도와주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이야기도 그런 식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셋이 함께라는 것. 물론 때로는 진짜 명석한 두뇌를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얼떨결에 문제를 해결하지만 말이다. 

  제임스 본드가 갖고 다니는 기상천외하고 최첨단을 달리는 무기를 연상시키는 각종 장치가 등장한다. 이미 그런 곳에서 다양한 무기와 장치들을 봤기 때문에 읽으면서 말도 안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평상시에는 피자배달을 하다가 누군가가 위험에 처하면 슈퍼히어로로 변신하는 매그넘과 평소에는 중학생으로서 학교생활에 충실하지만 가장 현실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요요의 활약이 펼쳐진다. 그런데 슈퍼히어로즈이면서 슈퍼주책바가지와 요요 매그넘은 잘 모르는 레이디블루의 정체는 뭘까. 슈퍼히어로즈이지만 베일에 쌓인 인물로서 아직까지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다. 요리사라기 보다는 마법사에 가까운 코페르니카 또한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편집장 제로니모가 펼치는 환상모험보다 슈퍼히어로즈가 펼치는 모험이 더 재미있다. 아마 그동안 내가 '무슨무슨 맨'에 단련되어 있었기 때문일 게다. 이제 내 소임을 다했으니 내일 학교에 가지고 가서 약속한 아이에게 빌려줘야겠다. 아이들의 반응을 보고 내가 생각했던 아이들의 모습과 실제의 아이들 모습을 비교할 수 있겠지.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좋은 책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사실을 여러 번 경험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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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우리 얘기 들리세요? - 아이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따뜻한 이야기
롭 부예 지음, 김선희 옮김 / 다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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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존 어빙의 서문을 읽지 않았다. 작가 소개 또한 읽긴 했어도 그냥 글자만 읽었던 듯하다. 나중에 책을 다 읽고 나서 서문과 작가 소개를 다시 한번 읽으니 그제야 그 말이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읽으며 줄곧 이것이 소설인지 아니면 작가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쓴 글을 모은 것인지 궁금했던 터였다. 우리네 아이들이 쓴 글을 문집 형태로 낸 책이 있으니까 이것도 그런 종류일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그러다가도 문체가 너무 안정적이고 내용도 아귀가 딱 맞는 것이 아이들 작품은 아니겠거니 싶기도 했다. 여하튼 그렇게 의문과 기대를 품고 다시 서문을 읽으니 역시 소설이었다. 아이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더라도 전적으로 작가의 창작품이라는 글귀가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동 문학의 작품들을 탐독하고'가 무슨 의미인지 절로 다가온다. 처음부터 각자의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인데 제시카를 통해 테업트 선생님이 소개해 줬다는 책이 나온다. 바로 <열네 살의 여름>. 문득 책꽂이 어딘가에 꽂혀 있었던 기억이 나서 그 책 먼저 읽었다. 오래 전에 사 놓고 아직 읽지 않았던 책이었는데 이 기회를 통해 읽었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영미권 부분을 훑어 보다가 문득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와 <산사나무 아래에서>가 눈에 들어오길래 그 책들 먼저 읽었다. 헌데 뒷부분에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의 주인공인 제시를 이야기하고 인터뷰 부분에서 <그래도 내일은 희망>을 언급하는데 모두 내가 읽었던 책이라 어찌나 반갑던지. 특히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의 경우 책에 대한 정보를 들은 것도 아니고 제목을 들어본 적도 없는, 순전히 무언가에 이끌리듯 읽었던 책이다 보니 마치 운명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누구나 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어린이들은 특히 심하다. 그래서 부모가 자기 아이 말만 듣고 상황을 판단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테업트 선생님의 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다행히 독자는 한 가지 사건에 대해 여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때문에 그나마 객관적인 눈을 가질 수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나 친구들을 이간질 시키는 못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본인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는데 여기서 피터와 알렉시아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결론은, 그들도 모두 똑같은 아이들이라는 것. 마음속에 아픔이 있거나 판단력이 부족할 뿐이지 그들이 본래 나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피터도 나중에 자신이 던진 눈 때문에 테업트 선생님이 혼수 상태에 빠졌다며 자책하고 스스로를 벌 주고 있었다. 알렉시아도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지적해 주는 선생님이 밉지만 그것이 관심과 사랑을 전제로 한 충고라는 사실을 알기에 변하려고 노력했다.

  각각의 아이들이 일기처럼 글을 쓰는 형식이기 때문에 자기의 환경에 대해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설명이 필요하면 간략하게 과거를 이야기할 뿐이다. 그래서 애나가 툭 하면 결혼 반지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때로는 뜬금없이 왜 선생님이 결혼 반지 끼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의아할 정도였다. 그러나 모두 이유가 있었다. 제시카도 마찬가지다. 계속 아빠 이야기를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뭐랄까, 현재가 아닌 과거에 집착한다고나 할까. 아니 그 보다는 자신과 관련된 아빠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라본 아빠를 판단하는 듯하다. 또한 지나치게 책에 집착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와 아빠의 이혼을 겪으며 아빠를 용서하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마저 아빠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해서 책 속으로 도피했던 것이다.

  테업트 선생님이 혼수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선생님은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그동안 아이들이 변할 기회를 만들었다면 병원에 누워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했다. 그것도 선생님이나 어른의 도움을 받아서 변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말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모두 변하고 나서-심지어 어른들도 변했다-교실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존 어빙이 서문에서도 말하듯이 이 책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우연이 하나도 없다. 처음엔 우연인 듯하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억지스럽거나 부자연스럽지 않다. 잘 짜여진 양탄자처럼 씨실과 날실이 잘 맞물려 있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오랜만에 사람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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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 스티커 - 제9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작은도서관 35
최은옥 지음, 이영림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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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스티커를 참 좋아한다. 어른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데도 아이들은, 속된 말로 목숨 건다. 헌데 그러한 스티커를 방귀 뀌는 아이에게 주겠다? 기발한 발상이다. 사실 방귀나 트림은 자연스런 생리현상이라고는 하지만 마음놓고 내보이기에는 부적합해 보인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방귀를 트는데 시간이 걸리는 법인데 하물며 교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방귀를 뀌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민구네 반은 몇 명이 아니라 전부 방귀를 텄으니 전보다 무지 친해졌겠다.

  특별히 방귀를 자주 뀌는 사람이 있단다. 아마 민구도 그런 유형이 아닌가 싶다. 집에서야 괜찮지만 교실에서는 얼마나 곤란했을까. 오죽했으면 남들이 모르게 뀌는 방법-책상 탁 치고 재채기 하면서 방귀 뀌기,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 가기, 아침밥 안 먹기 등-을 고안해 냈을까. 전에 둘째 친구들 몇 명이 모여서 공부를 하는데 누군가가 방귀를 뀌어서 냄새가 났지만 장본인이 무안해할까봐 모두 참고 있던 기억이 난다. 한 번 정도야 그렇게 봐줄 수 있고 실수라고 넘어갈 수 있지만 민구처럼 시도 때도 없이 방귀가 나오려고 한다면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민구의 고통을 알게 된 선생님 처방이 기막히다. 전에는 괴물처럼 보였던 선생님이 이제는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처럼 보였을 것이다. 뭐, 어찌보면 선생님도 함께 동참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긴 하지만. 그리고 민구에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얌전한 혜린이도 방귀를 많이 뀐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민구를 궁지에 몰아넣은 장본인이 혜린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때는 이미 방귀 덕분에 혜린이가 친근하게 느껴지고 좋아진 다음이다. 어느 교실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일을 재미있게 들려주는 책이다. 게다가 방귀 스티커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서 모든 친구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고, 덩달아 건강까지 염려하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선생님, 아니 작가의 재치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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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 만난 개, 프라이데이
힐러리 매케이 지음, 햇살과 나무꾼 옮김, 오승민 그림 / 시공주니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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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대개 자기의 경험위주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경험이란 것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지협적인 것이어서 일반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 그런 우를 범한다. 이 또한 내가 경험한 바를 기초로 이야기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나도 일반화의 오류를 종종 범한다는 얘기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면서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

  큰아이는 여자아이고 어렸을 때부터 워낙 책을 좋아했고 잘 읽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녀가 책을 안 읽어서 걱정이라고 하소연 할 때 '엄마가 책을 읽어줘라' 내지는 '엄마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라' 등의 뻔한 조언을 했다. 내가 그렇게 해서 우리 아이가 책을 좋아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환경에서 자란 둘째는 그닥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즉 이론과 현실은 항상 함께 간다는 보장이 없으며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는 말이 증명되는 셈이다.

  또한, 큰아이는 책을 한번 읽으면 그것이 재미있든 없든 끝까지 읽기를 고집한다. 그런데 책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별로 재미없다가도 마지막에 책장을 덮을 즈음 감동이 밀려오거나 때로는 아예 책을 읽고 한참이 지난 후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런 책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조금 지루하거나 밋밋하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읽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재미있어 진다는 얘기다. 이 책 <금요일에 만난 개, 프라이데이>도 그런 책 중 하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헌데 이곳 학교 아이들은, 책을 많이 접하지 못하는 환경 탓인지 아니면 빨리 변하고 자극적인 대중매체 탓인지 처음에 조금만 지루하면 읽다고 그만 두는 경향이 강하다. 내가 아무리 책은 마지막까지 읽어야 진정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해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아이들에게 책은 당장 그 시간을 즐기는 도구일 뿐이라는 얘기다. 참 안타깝지만 이것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기에 나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이들이 종종 와서 묻는다. 재미있는 책 좀 추천해 달라고. 그런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내가 추천해 준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아이가 별로 없다. (오히려 주변의 선생님들이 더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추천해 준 책이 재미있었다고 말할 때 힘이 나는 반면 별로 재미없었다고 하면 머리속에서는 다른 회로가 돌아간다. 이 아이에게는 이런 종류의 책이 안 맞는 것일까 등등. 그러다 물어본다. 끝까지 읽었느냐고. 그러면 모두 조금 읽다가 재미없어서 안 읽었단다. 바로 이것이다. 처음부터 재미있는 책이 과연 얼마나 되느냐 말이다. 허나 이 또한 아이들의 특징일 수 있으니 그것만 갖고 비난할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이들에게 선뜻 추천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행간을 읽어야 웃을 수 있는 재치와 위트를 아이들이 얼마나 이해할까 싶은 우려도 있다. 아무래도 지역적 특성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개에게 물리고 나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즉 트라우마가 있던 로빈이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아주 유쾌하게 그려진다. 소극적이고 조용한 로빈은 왈가닥 이웃이 이사오면서 조금씩 바뀐다. 자동차 사고로 아빠를 잃고 나서 친구들이 로빈을 위한답시고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아빠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 자연스럽게 로빈은 외톨이가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나중에는 로빈에게 금지어였던 아빠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극복한다. 아픔은 무조건 감춘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지만 가장 손쉬운 방법 또한 감추는 것이다. 그러니까 로빈이 개에게 물려서 개를 두려워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은 개를 기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이어진다. 하지만 단순히 개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로빈 주변에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을 따라가며 웃다 보면 어느새 로빈의 상처가 아물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인물들의 성격이 재미있다. 로빈의 엄마는 비록 외아들을 키우지만 아들에게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다(어느 부모인들 안 그렇겠냐만)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자신의 기분을 솔직히 드러낼 뿐이다. 오히려 로빈은 엄마의 눈치를 보며 감정을 숨겨서 어떤 때는 엄마와 아들이 바뀐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리고 가장 요주의 인물이자 매력적인 인물인 옆집의 쌍둥이와 선댄스. 그들의 행동은 어떤 일이든 요절복통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문득 걔네 엄마는 얼마나 힘들까 싶기도 하다. 제 삼자야 웃으면서 아이들이 독창적이고 재미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모든 행동이 결국 말썽으로 이어지니 말이다. 특히 지나치게 똑똑해서 비정상적인 선댄스의 말과 행동은, 웃음 그 자체다. 그렇지만 그 모든 일들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행간에 의미를 숨겨 놓았다. 이것이 내가 그토록 재미있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댄은 잠깐 마음이 끌렸다가 이내 자기가 적과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140쪽) 라는 것으로 비록 미워하지만 함께 놀고 싶어하는 아이의 마음을 잘 나타내는 식이다. 만약 여기서 '댄은 놀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적이었던 아이들과 놀 수는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면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까. 모르긴해도 그냥 평범한 문장에 대한 평범한 느낌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런 문장으로 인해 행간의 의미가 무엇인지 느끼는 묘미란.

  "그래도 앤트가 생각 깊게 부모님의 자명종을 들고 와서 아이들이 이 문제로 옥신각신하지는 않았다."(174쪽)를 읽을 즈음에는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자명종을 가지고 온 것이 왜 생각 깊은 것인가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어 보면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뒤집어지게 웃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분을 읽으며 혼자 어찌나 킬킬대며 웃었던지 둘째가 그렇게 재미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민주주의가 돌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자명종, 그러나 그것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다음 행동도 예측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작가는 어떠한 문제든 아무렇지도 않게 시침 뚝 떼고 이야기하니 독자는 더 웃을 수밖에 없다. 로빈이 개를 키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선댄스의 마음을 나타내는 부분도 그렇다. 사람들을 불러오라고 기껏 낭떠러지에서 올려보내줬더니 댄이 전화할까봐 꼼짝않고 기다리는 부분을 묘사한 장면도 그렇다. 댄의 모습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으니 독자는 당연히 선댄스가 사람들을 데리고 올 때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댄의 물음에 대답하는 선댄스라니.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사람들을 부르러 가지 않은 이유를 말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상황파악 못하는 그 모습을 보며 한심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선댄스는 그 전의 행동으로 미루어 충분히 가능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전에 잠을 자다 갑자기 일어나서 울었던 이유까지 알 수 있다. 더불어 이 사건으로 인해 댄은 이들과 친구가 된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일은 어른의 역할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이다. 벼랑에서 떨어지려는 댄을 구해준 것도 결국 아이들이고(이 상황에서도 선댄스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고 오히려 댄을 구해줬다고 착각한다. 또한 로빈은 선댄스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둔다.)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아이들이다. 어른들은 자세한 상황을 모른 채 사건의 결과만 알 뿐이다. 그런데도 이것이 전혀 어색하다거나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어른의 역할이 잘 드러났다고나 할까.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선댄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가족과 이웃들의 모습을 보며 만약 선댄스가 우리나라에서 산다면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아니, 그보다 선댄스와 같은 혹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그리는 우리 동화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분명 있긴 있을 텐데 선뜻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처럼 유쾌하게 그리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대개 그 가족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거나 그 안에서도 성장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사회 문화적 차이겠지. 하지만 그러한 차이를 인정한다 해도 책 읽기의 재미는, 글쎄. 진지하고 가라앉은 동화도 좋지만 이젠 유쾌하고 발랄하며 위트있는(그러나 톡톡 쏘는 듯한 요즘의 문체와는 약간 다른, 그야말로 행간에 많은 이야기가 있는) 우리 동화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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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미해결 사건 파일 4 - 왕위 후계자 실종 사건 셜록 홈즈의 미해결 사건 파일 시리즈 4
트레이시 버렛 지음, 하정희 옮김 / 아롬주니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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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야 학교마다 도서관이 잘 마련되어 있고 도서관 이용이 보편화되었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사서'는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에 도서관이 따로 있던 학교가 얼마나 되었을까 싶다. 학교에 있던 책을 각 교실에 나눠줘서 학급문고처럼 만들었던 것을 떠올리면 도서관 비스무리한 게 있긴 했나 보다. 그러나 역시 도서관이라고 명명된 곳은 본 기억이 없다. 어쩌면 오히려 각 교실에 책을 나눠 준 것이 내겐 잘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읽고 싶은 마음껏 책을 꺼내서 읽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한 가지 종류의 책만 읽었다는 점이다. 고로 어떤 책들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오로지 기억나는 것은 셜록 홈즈가 나오는 책만 있었다는 것 정도. 다 읽고는 옆 반에 있는 책까지 몽땅 읽어댔으니 엄청 빠져있긴 했나 보다. 그렇게 추리소설에 대한 사랑은 중학교 때까지 계속되었다. 마침 친구네 집에 코난 도일의 책이 많아서 열심히 빌려 읽었더랬다. 그 친구는 나중에 전학을 가서 이름도 가물가물하지만 책을 빌려줬다는 것만은 기억할 정도니 추리소설을 어지간히 좋아하긴 했나 보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추리소설에 대한 기억 내지는 향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의 기억이 거의 전부다. 그 후로 우리 작가의 작품을 조금 읽긴 했는데 그닥 재미있지 않아서 접은 기억도 난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난 홈즈가 살짝 등장하는 추리소설. 홈즈의 후손이 활약하는 책이지만 코난 도일의 후손이 쓴 책은 아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일까, 아니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해서일까. 당연한 얘기지만 예전의 그런 설렘은 없다. 아무래도 전적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책이기 때문에 코난 도일의 홈즈와는 추리 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역시 사건이 어떤 식으로 해결될까, 혹은 누가 범인일까를 추측해가며 읽는 재미는 변함이 없다. 다만 사건의 실마리가 어쩜 그렇게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그걸 어찌 그렇게 정확히 알아내는지, 때로는 너무 빠르고 정확해서 김 빠지기도 한다. 이미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들이 등장하는 것 뿐이라는 생각 때문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씌어진  추리소설의 매력은 바로 아이들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그들이 스스로 풀어간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제나와 잰더 남매는 왕위 후계자이자 제나의 친구인 앨리스가 사라지자 앨리스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여기에는 역시 주변 인물의 음모가 있고 출생의 비밀이 있으며 전문 분야에서 도움을 주는 이들이 있다. 게다가 잰더는 카메라와 같은 기억력을 갖고 있으니 탐정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춘 셈이다. 셜록 홈즈가 해결하지 못한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건들이 때마침 일어나 주어서 예전의 기록을 살피며 현재의 문제를 풀어간다. 이들이 셜록 홈즈의 후손이기 때문에 혹시나 셜록 홈즈의 자취를 느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건 전혀 아니고 현대에 맞는 새로운 사건들과 새로운 방법들이 등장한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코난 도일의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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