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아침에 조선일보 기사를 잠깐 봤다. 평소같으면 지나칠 신문이지만, 책에 관계된 기사라 잠깐 눈길이 갔다. '한국인의 모순... "책도 안 읽으면서 노벨 문학상 원해"' (제목부터가 조선일보스럽다.) 지하철에서 인쇄매체를 들고 있는 사람이 (토익책, 전공서적, 신문 등등 합쳐서) 수백명 중에 12명 뿐이라는 이야기(왜곡과 과장이 심한 조선일보지만, 내 경험상 딱히 부인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성인의 연간독서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 

 

뭐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만 해도 독서율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특히 요즘에 들어서는 책이 잘 읽히지가 않는다. 어디를 이동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책 한 권이라도 가방에 들어있어야 안심이 되는 편이지만, 요즘에 들어서는 그 안심을 직접 꺼내 확인해보는 일이 드물다. 대신 반쯤 홀린 듯한 눈으로 멍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새로나온 기사가 없는지 뒤적거리고 있다. 스마트폰에서는 계속 놀랄만한 이야기들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니까. 예를 들어 2월 17일자 중앙일보 뉴스 '박 대통령 "모두 물에 빠뜨려놓고 꼭 살려내야할 규제만 살리도록 전면 재검토"' (오마이갓. 만약 9.11후 미대통령이 "건물을 무너뜨려" 어쩌구 하는 발언을 했으면 미국에서는 어땠을까. 아무래도 그분은 생각보다 교묘한 것 같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긴데, 이 정부의 기본 전략은 아무래도 '쓰레기에다 더 큰 쓰레기를 끼얹어 예전 쓰레기를 잊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거기 낚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몰아닥치는 쓰레기들에 정신이 팔려 가방 속의 안심을, 혹은 의식을 잃어가는 중은 아닐까.

 

 

책이 잘 읽히지가 않는다. 그런 와중에서도 책에 대한 욕심은 줄지 않아서, 쌓아놓은 책들의 탑은 점점 높아만가고, 도무지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서평단 도서를 두 권 또 추가하는 것이 잘하는 짓일까.) 다만, 가까운 세계에 조금 더 발을 디디고 있는 이야기들을 보고 싶다. 어딘가 붕 떠 있는 듯한 이야기들은 거기에 미끄러져 들어가는 데, 혹은 다시 빠져나오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카인>과 <그들>이 그랬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또 너무 가까운 세계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의 책들은 영 당기지가 않으니...나는 또 여전히 그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미적미적거리고 있나보다. 의식을 잃어가면서,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신을 차려야지, 정신을!)

 

 

 

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문학동네

 

아무래도 윤대녕의 소설을 첫등에 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윤대녕의 소설이라고 하면, 아주 오래전 어느 지방 소도시에 있을 때 윤대녕의 신작을 사러 돌아다니던 일이 떠오르는데(인터넷서점의 당일배송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고릿적 시절 얘기다), 온 시내를 다 돌았음에도 결국 책을 구하지 못하고, 대신 윤대녕 소설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쓸쓸한 모양의 도서관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그 곳에 갇혀있었던 것 같은 사서에게 윤대녕의 예전 소설을 빌려 거기에 만족해야 했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윤대녕의 이 책을 읽으면 그 때의 책을 구하러 다니던 열정이 되살아날까.

 

 

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창비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책 소개를 보니 흥미가 생겨서 골랐다. (책 소개로 미루어보건대) 윤대녕의 키워드가 '쓸쓸함'이라면 아마도 이 작가의 키워드는 '예민함'인 것 같다. 하긴, 지극히 내성적인,이라는 말은 지극히 예민한,이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고, 예민함이란 소설가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단길, 김원일, 문학과지성사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어떠한 것은 계속 남아있다. 이제 칠순을 훌쩍 넘긴 노작가가 소구하는 아직 끝나지 않는, 끝날 수 없는 풍경. 그 풍경 속에 조용히 들어가봐도 괜찮을 것 같다.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되는 법, 모신 하미드, 문학수첩

 

이 책은 전적으로 작가의 전작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읽고 받았던 강렬한 인상에서 고르게 되었다. 책 소개를 보니 이야기를 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언뜻 <주저하는 근본주의자>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확실한 것은 책을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눔의 세계 : 알베르 카뮈의 여정, 카트린 카뮈, 문학동네

 

휘성이 부릅니다. '안되나요'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REBBP 2016-03-04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눔의 세계를 넣었다가.. 소설인지 아닌지 조금 헷갈려요. 그리고 떠오르는 과 윤대녕 두 권이 저랑 겹치네요. 화이팅 ~~

맥거핀 2016-03-04 16:10   좋아요 0 | URL
네..저도 guiness님 페이퍼봤어요. 떠오르는...은 사실 guiness님 페이퍼에서 처음보고 고르게 된 책입니다.^^ 나눔의 세계는 책분류를 보니 가능할 것 같아서 넣었어요. 물론 안될 것 같지만.

달걀부인 2016-03-04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서재에서 놀다보면, 나란 인간은 더럽게 책일끼에 게으르군, 생각하다 한발만 그 바깥 세상으로 나가면 상상불가능한 상태들을 보게 되곤해요. ㅜ ㅜ 일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않는 사람들..그러니까 인문학서적 아니라도 계발서든, 레이디경향이든 아무런 읽는 행위를 하지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자영스레 주어지는 정보들은 또 너무많아 그런 정보들이 지식이겠거니 해서 뭘 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오히려 그 아집과 독선이 책을 통해 깊이 삶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존재로 낙인찍히는 경우...암튼 알래딘서재안과밖이 때때론 천국과 지옥(소통의 문제에 있어서는)으로 느껴지네요. 글 잘 읽었어요.

맥거핀 2016-03-04 16:2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달걀부인님. 저도요. 작년말에 알라딘에서 통계 같은 것 보여준적 있잖아요. 거기에 뭐 지역에서 상위 몇 %, 뭐 이런 거 나오던데, 제가 너무 높은 순위라 깜짝 놀랐습니다. 예전 수능에서 이런 % 정도로 나왔으면 참 좋았을텐데..이런 생각을 조금 했어요.^^ 사람들이랑 얘기하다보면 좋아하는 작가 같은 거 말할 때(사실 말할 때도 별로 없지만) 적당히 조절(?)해서 말해야하는거, 여기 알라딘에서 자주 왔다갔다하시는 분들은 아마 누구나가 느끼실겁니다.

그런데 솔직히 한편으로는 그런 점을 느끼기도 해됴. 그런 알라딘 서재 안과밖의 소통이 나눠지기도 하지만, 알라딘 내부에서도 여전히 소통의 지점은 멀구나, 아니 어떤 면에서는 도리어 더 매끄럽지가 못하구나 하는 생각을 (여러 지나가는 일들을 보며) 느끼기도 합니다. 달걀부인님 말씀 들으니 우리가 책에서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게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2016-03-04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4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03-04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래서 책을 사는 일을 멈출 수가 없어요. 여기 들어오지 말걸. 몰랐는데 모신 하미드의 신간을 알게 되네요. 제목이 저래서 제발 소설이 아니기를...바랐는데 소설이네요. 세상에 읽을 책이 많아서 설레이고 좋기도 하지만, 확실히 읽는 속도가 책 구매 속도를 못따라가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그리고 위의 댓글을 읽고) 저는 여태껏 학교 성적으로 그렇게 높은 순위를 차지해본 적이 없었어요. 수능 성적이 상위 0.2%였다면 지금쯤 제 인생은 완전히 달라져있을텐데..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었습니다. 아하하하하.

맥거핀 2016-03-04 16:48   좋아요 0 | URL
저도 제목만 보고 저게 뭔가 싶었는데, 소설이더군요. 제목부터가 아주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모신 하미드의 저번 소설은 처음 한 두장부터 우와..이랬는데, 이 소설은 어떨지..

그런데 다락방님이 0.2%밖에(?) 안되나요..그럼 그 위에 있는 분들은 뉴규? 궁금하네요. 저도 이게 성적표였으면..하는 꿈을 잠깐..꾼 다음..현실에서 쓸쓸히 모니터를 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응?)

기억의집 2016-03-04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대녕의 책을 사러 돌아다니는... 저는 그 대상이 배수아였는데, 지금은 아예 한국문학을 안 읽고 관심도 없어지니, 책을 사러 돌아다니며 흥분되었던, 다음 서점에서 책을 샀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의 발걸음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휴, 지금은 페북에 배수아 보여도 친구신청 안 하게 되더라구요. 배수아씨가 친구요청 받아주시지 않겠지만서도...페북에 많은 문학종사자들, 출판인들이 많지만, 참 이상하죠. 막상 페북 들여다 보는 것으로 만족하니.... 친추 요청은 안하고 싶더라구요.

전 스마트폼 없애고 와이파이 전용 타블렛으로 사용하니 어디 다녀도 책을 읽게 돼요~

맥거핀 2016-03-05 00:20   좋아요 0 | URL
아..배수아 작가님 좋아하셨다니 저도 더 반갑습니다. 저도 예전에 한 배수아 했거든요.^^ 최근에 나온 유목민...그 에세이도 사놓기는 했는데 여전히 책탑 어딘가에 있답니다. Axt에서 요새 자주 보니 그것도 반갑더군요. 배수아 작가 페북도 있었군요. 저는 몰랐어요 뭐 그런데 저도 친추는 안할 것 같습니다. 아니, 아마도 무시당할 것 같다는 생각에 못할 것 같군요. 저는 소심하니까요.; 저는 그런데 맨날 출판사 페북 같은데만 돌아다녀서 그런지 맨날 `알 것 같은 친구`에 전혀 모르는 출판사 사람들만 뜨더군요.

아..그런 좋은 방법이..저도 스마트폰 그냥 피처폰으로 바꾸고, 이북 기기나 하나 살까요...라고 하지만, 사실 그렇게 못할 거 뻔히 아는 스마트폰 중독자..

비의딸 2016-03-04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히지 않는데도 쌓아놓은 책탑은 자꾸만 높아간다거나 하는 고민은 저만 하는게 아니였군요, 멍하게 스마트 폰을 뒤적이는 것도 그렇고. 이래서 이웃이 필요한 건데 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책이 줄어드는 듯 하거든요.. ^^ 추천하신 책, 다 좋지만 모신 하미드의 책은 꼭 선정되면 좋겠어요.

맥거핀 2016-03-05 00:23   좋아요 0 | URL
네..저도 선정이 되면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것 같습니다. 책탑 치워야하는데...한번 책탑에서 치워져 책꽂이로 들어가게 되면 한동안 잊어버릴 걸 잘 알기에, 일부러 압박감을 느끼려고 쌓아두기는 하는데 볼 때마다 저도 제가 한심스러워요. 그래도 자기 전에 어떻게든 한 권씩 집어들기는 하는데, 그 속도보다 항상 새책을 사는 속도가 더 빨라요.

cyrus 2016-03-04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게 언론에서는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로 책 구매비용, 독서 인구 수가 점점 감소된다는 내용을 많이 보도하는데 정부는 꿈쩍을 안 합니다. 독자와 출판사는 법 하나 때문에 점점 힘들어져 갈 뿐입니다.

맥거핀 2016-03-05 00:25   좋아요 1 | URL
매출 자체는 줄었지만, 대형서점들, 인터넷서점들의 영업이익 자체는 늘었다는 뉴스는 봤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도서정가제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는데, 현재의 도서정가제는 뭔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정가`로 파는 것 같지도 않은데..) 보완이 시급해 보입니다.

2016-03-05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7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이바 2016-03-05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들 너무 읽기 힘들지 않나요.ㅜㅜ 읽고 한달 정도 지나니 다시 읽어볼까? 하는 마음도 조금 들긴 하는데 엄두를 못 내겠어요. 윤대녕 작가와 관련된 맥거핀님의 추억이 좋아요. 저는 한국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기다리던 분이 많으셨나 봐요. 막연한 호감이 싹트고 있어요. 나눔의 세계는 분류는 맞는데 소설이라 보기가 애매해서... 근데 진짜 요즘 카뮈 관련 책 자주 나오는 것 같아요. 몇 달 격차로.

맥거핀 2016-03-07 13:48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윤대녕의 소설은 읽은지가 몇 년은 된 것 같아요. 헤르메스님이 서평단 추천글에 윤대녕에게 최근에 많이 실망하셨다,고 쓰셨던데 저도 별로이면 어떡하나하고 살짝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영화든 소설이든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감독)가 많이 나빠진 것을 보면 마음에 좋지가 않죠.

그들은 확실히 읽기가 어려워요. 심리묘사도 치밀하고,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네들 입장에서는 어떤 공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 부분들도 많구요. 아무튼 소설에 문체나 묘사나 독특한 부분이 있어요. 제가 리뷰가 늦어지고 있는 것은 꼭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요.^^

프레이야 2016-03-05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탑이 여기저기 쌓여가고
집중력은 덜해지고‥난감합니다. 확실히 예전보다 뭔가 떨어지고 둔해지는 느낌이예요. 아무래도 스맛폰탓도 좀 해야겠어요. ㅎㅎ

맥거핀 2016-03-07 13:50   좋아요 0 | URL
사실 스마트폰은 죄가 없죠. 그것을 보는 제가 죄가 있죠.^^ 그런데 사실 영화든, TV든, 스마트폰이든 요새는 읽을거리,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라 책이 그만큼 저한테있어서도 등한시된느 부분은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지내시죠? 여행기 잘 읽고 있습니다. 늘 부러움을 마음 한 켠에 담고...^^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최근에 어떤 분께서 왜 요즘에 글이 뜸한지 물어봐주셨다. 글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일단은 여러 일신상의 변화가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던 일이 달라졌고, 정해진 루틴이 깨졌으며, 그와 다른 이유로 인해 일상의 리듬도 불규칙해졌다. 예전에는 어떤 정해진 시간이 있어서 어떤 시간을 어떻게 유용할지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면, 요즘에는 그런 계획이 어려워졌달까. 아무튼 예전에는 남는 시간들을 보고, 읽고, 쓰는 것에 비슷하게 배분했다면, 요즘에는 그 남는 시간들이 불규칙하게 산재되다 보니, 그 시간들을 보거나 읽는 쪽에 주로 쓰는 것 같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내 경우에는 이상하게도 주위가 시끄럽거나 집중이 안되면 뭔가를 쓰기가 힘들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에는 음악을 듣거나, TV를 틀어놓고 (가끔 화면에 눈길을 줘가며) 읽는 경우도 많지만, 쓸 때는 어떤 빈 공백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빈 공백들은 여러 자질구레한 이유로 잘 만들어지지 않고, 나는 그럴 때마다 늘 쓰기를 희생시키는 것 같다.  

 

물론 알라딘에 글쓰기가 뜸해진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을지 모르겠다. 글쎄..(이 얘기를 하면 쓸데없이 길어질 것 같아서, 최대한 짧게 이야기하면) 늘 찾아가던 단골 식당에서 주방장이 바뀐 느낌이랄까, 혹은 인테리어가 갑자기 너무 모던하게 바뀌어서 나같은 올드 스쿨 패션은 더이상 출입하면 이 미적감각을 심하게 저해시킬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나와 맞지 않는 도구인 북플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예전에 내가 알던 여러 분들이 알라딘에 잘 보이시지 않게 된 것에도 이유가 있을 터고, 어쩌면 그 외에 다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무엇인가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최근에 들어서) 종종 했다.

 

안해도 될 얘기를 여기 하나 더 첨부하자면 그래서 사실 얼마 전에 블로그를 옮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디앤루니스에서 한달 적립금 10만원이라는 달콤한 미끼를 내걸고 '펜벗'인가 하는 서평단 비슷한 것을 모집하기에 지원했었다. 여기 되면 이 참에 여기로 터전을 옮길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결과는 뭐, 보시다시피...아무튼 사람이란 참 간사한 것이 그렇게 다른 곳에서 물먹고 나면 내가 있는 곳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알라딘에서 여러 혜택을 많이 받은 것도 사실이니까. 이달의 당선작으로 적립금도 많이 받았고, 서평단으로도 계속 운이 좋게 뽑히고 있다. (말이 나왔으니 몇 마디 더 첨부하자면 얼마전 '이달의 당선작' 문제가 서재에서 화제에 오른 적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무엇이 어떻게 바뀌든 간에 결국은 여러 말들이 나오리라고 본다. 누가 선정하든, 다시 말해서 알라딘 MD가 하든, 어떤 위원회가 하든 간에 기본적인 전제, 즉 누구나가 자신의 글이 선정되기를 바라고, 글을 보는 관점에는 서로 간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어떤 글들은 내 떨어지는 감식안으로 보기에도 부족해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이상문학상도 아니고^^ 그렇게 정밀한 잣대를 들이대야만 할까.(하긴 뭐, 이상문학상도 꼭 잘 써서 뽑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아, 이번 김경욱 작가 말하는 것은 아니고요, 저는 김경욱 작가 좋아해요. 예전에 싸인도 받았는데...) 조금 부족한 글에 격려의 의미로 줬다고 하면 안될 이유가 있을까. 그 글을 쓰신 분들이 격려를 받아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쓰게 되리라고 믿으면 안될 이유가 있을까. 돌이켜보면 나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니까.)

 

아무튼 그래서 결국 얻은 깨달음은 지금 하고 있는 이거(서평단)라도 잘 해야 되겠다는 것이고, 잊지 말고 책 추천도 해야되겠다는 것이다. 아니, 뭐 뜬금없이 글의 전개가 이래요,라고 욕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지만....  

 

 

 

러브 레플리카, 윤이형, 문학동네

 

윤이형 작가의 단편집이다. 저번에 단편 '쿤의 여행'을 읽었을 때는 그리 강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는데, 이번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단편 '이웃의 선한 사람'은 상당히 독특하고 신선했다. (개인적으로는 대상 수상작보다 나은 느낌? 아니 자꾸 김경욱 작가를 디스하는 것처럼 보일까 우려되는데, 그건 아니고..싸인도 받았다니까.) 작가의 다른 소설들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잃어버린 머리, 안토니오 타부키, 문학동네

 

<페레이라가 주장하다>의 맥을 잇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아직 그 책을 사놓고 읽지를 못하고 있으니 이번에 같이 읽고 연작 리뷰를 쓰겠다. (물론 선정이 안 될 것을 알고 지르는 말)

 

 

작가의 책, 패멀라 폴, 문학동네

 

이 책과 테리 이글턴의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이 소설과 인문 쪽에 애매하게 걸쳐져 있는데, 인문 쪽에서는 이 책들에 대한 추천을 해주신 분들이 있는데, 우리도 질 수는 없죠. 분발해서 한 권 가져 옵시다!

 

 

 

캐나다, 리처드 포드, 학고재

오에 겐자부로 단편집, 현대문학

 

에이바님과의 내멋대로 약조를 지키기 위해 추천....하는 것만은 아니고, <캐나다>는 소설의 서두("나는 우선 우리 부모가 저지른 강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다음에는 나중에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가 흥미로워서, <오에 겐자부로>는 가지고 있는 현대문학 단편선 시리즈 컬렉션에 추가하려고 추천.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REBBP 2016-02-04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달 적립금 10만원이라면, 뭐 조건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대거 빠져나갈만한 대형 미끼인데요? 전 좀 아꼈다가, 나중에 옮겨야할 상황에 처하면 처들어가봐야 겠네요. 깨깽하고 물러설 때 물러서더라도 말이죠ㅎㅎ 안그래도 어제 비댓으로 에이바님과 당선작 선정 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일들을 이야기 많이 했는데.. 비슷한 생각이십니다.... 길게 썼다가 그냥 지웁니다. 이 곳 커뮤니티는 참으로 조심스럽습니다. ^.^

맥거핀 2016-02-04 17:25   좋아요 1 | URL
네..알라딘도 뭔가 더 파격적인 조건이 있었으면 좋겠...아니, 그럼 더 말들이 나오려나요?^^; 아무래도 반디가 조금 블로그 쪽에서는 약한 감이 있으니 더 사람을 모으려고 그러겠지요. 알라딘도 처음에는 이달의 당선작 적립금 같은 것도 이보다 훨씬 쎘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아무 말 없이 너무 썰렁한 것보다는 그래도 말들이 있는 게 낫긴 한데, 가끔 민감한 주제는 여기저기 불똥이 튀는 경우가 있어서 조심스럽죠. 친구 추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선작 같은 재미없는 얘기 말고 책에 대한 얘기 많이 나눠요.^^

다락방 2016-02-04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에 대한 맥거핀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어떤 기준을 세우든 또 그 기준에 대해 밝히든(명확히 밝혀라!) 안밝히든(이런 기준이라면서 왜 이런 글 뽑아?) 말은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 당선작 선정기준이 문제다, 라고 하지만 `그런 엉망인 글들을 뽑아놓다니` 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그런 생각을 하는 본인들의 기준이니까요.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잘썼다`라고 생각하는 건 `못썼다` 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지극히 주관적이니까요. 공개적으로 `못쓴 글들 뽑아놨다`라는 당선작들중엔 제 글도 있어서 참 뭔가 좋지 않은 기분이었지만, 어쨌든 공개되는 글을 쓰는 이상 잘썼다는 평가나 못썼다는 평가나 다 감당해야겠지요. 중심을 잡는 건 글 쓰는 자의 몫인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익숙한 닉네임을 보는 건 여전히 반갑고 따뜻합니다. 맥거핀님의 닉네임은 제게 익숙하고요.
:)

맥거핀 2016-02-04 17:34   좋아요 1 | URL
네..뭐 누구나 사실 선호하는 글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는 법이니..그럴리야 없겠지만, 알라딘에서 유명 작가나 평론가 몇 분을 모셔서 당선작을 뽑는다 해도 말들이 안나오겠습니까? 모두들 조금 더 유연한 기준을 가지는 것도 제 생각에는 나쁘지 않지 않나 생각합니다.

암튼 너무 높은 기준을 세워도 고인 물이 될테고, 그렇다고 아무 기준도 없다면 있던 물들도 다 새나가겠지요. 신선한 물들이 계속 흐르게 하는 게 중요할 텐데 그건 쉬운 일이 아니겠죠. 다락방님 말씀이 옳다고 봅니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의 기준과 주관을 명확히 세워나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겠죠.

저도 다락방님 익숙하죠, 물론. 아니, 안 계시면 이상하다 생각하겠죠.^^

cyrus 2016-02-04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상품, 적립금 받는 걸 좋아하는데 반디에 블로그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요. 더 받고 싶은 욕심에 거기도 노릴 법한데,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알라딘 당선작으로 뽑힌 제 글이 반디 당선작으로 뽑힌다는 보장이 없거든요. 알라딘에서처럼 반디에 가서 평소대로 글을 써도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한 번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알라딘이 완전히 파산되서 이 웹사이트 자체가 폐쇄된다거나 당선작 제도가 폐지되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요. 알라딘이 사라지면 다른 인터넷 서점으로 옮길려고요. 제로베이스로 다시 시작해야죠. 당선작 제도가 없어져도 계속 알라딘에 남아 있을 겁니다. 제가 여러 곳에 동시에 활동하는 것을 안 좋아해요. 하나하나 보는 게 귀찮거든요. 욕심을 자제하는 중입니다. ^^

맥거핀 2016-02-05 00:40   좋아요 1 | URL
알라딘이 없어지면 또 어디론가로 가기야 하겠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어디가서 무엇인가를 쓰고 있겠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동시에 여러 곳에 글 올리고 하는 것을 귀찮아서라도 못해요.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구요. 뭐 그렇다고 그렇게 하는 분들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다만 제가 좋게 보지 않으니, 제가 그런 식으로 하면 우스운 거겠죠.

뭐 글쎄요. 아무튼 어디간다 하는 것도 사실은 조용히 가야죠.^^ 이렇게 공개적으로 글 쓰는 건 안가겠다는 거죠. 어디가서 제로베이스부터 시작하는 것도 쉬운 일도 아니고, 또 여기서 알게 된 좋은 분들도 참 많으니.. 아무튼 저는 마음이 약해서 알라딘이 늘 조금 더 부드러웠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냥 소심해서 그래요.

에이바 2016-02-04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감사합니다. 캐나다와 오에 겐자부로를 올려주셔서... 내심 어떤 책을 밀어주실까 기대하고 있는데 발가락까지 합쳐 포따봉 슬쩍 올립니다.ㅎㅎㅎ

기네스님 말씀대로 의견이 비슷합니다. 제 생각도 올려볼까 했는데 음... 좀 고민되네요. 한잔 하기 전에 후딱 써보겠습니다.

다락방 2016-02-04 21:32   좋아요 1 | URL
(살짝 발을 걸치며) 저 지금 와인중입니다. 에이바님, 건배요!

맥거핀 2016-02-05 00:40   좋아요 1 | URL
아니 근데 책 내용을 보다보니 정말 흥미로워보이더군요. 저도 최소한 그 둘 중에 한 권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작가의 말> 같은 책은 사실 되도 좀 골치....그러나저러나 두 분의 댓글을 보니 저도 이 야밤에 갑자기 한 잔이 땡기는 것이..근데 그러면 안되겠죠.ㅎ

넙치 2016-02-05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알라딘이 책 후기보다는 책 전기에 치중하는게 싫어, 알라디더들하고 소통을 원래도 안 했지만 더욱 안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읽고 싶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책을 읽은 후의 느낌을 더 소중히 생각해요.. 읽고 싶은 책이 있어 책 후기를 읽기 위해 검색하면 읽었다는 말은 없고 죄다 로쟈처럼 책소개..-.-;

맥거핀 2016-02-11 16:02   좋아요 0 | URL
책 전기라는 말씀 재밌네요. 저도 비슷합니다. 읽고 싶은 책에 대해 말하는 글은 많지만, 정작 읽은 후의 감상을 자세히 풀어놓는 글은 적은 것 같습니다. 좋다면 왜 좋은지, 안 좋다면 왜 안 좋은지를 열심히 생각하려는 자세가 중요할 듯 싶어요. 남 얘기 할 것 없이, 저도 사실 가장 난감할 때가 이렇게 책 추천 글 쓸 때예요. 이건 어쩔 수 없이 써야하지만, 늘 `읽고 싶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할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아무튼 댓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설에 장기간 자리를 비우다 보니..넙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6-02-05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B.B 2016-02-1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위터에 뜬 오에 겐자부로 단편선을 클릭해서 알라딘으로 들어왔는데 서평난엧맥거핀 님 아이콘이 보이 더라구요. 이런 경로로 들어와 글을 읽었네요! 겐자부로 책 담아두고 갑니다.

맥거핀 2016-02-15 01:01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또 뵈니 더 반갑습니다.^^ 아마 B.B님과 제가 북플에서 친구로 맺어져 있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군요. 네..이번에는 오에 겐자부로 책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높아보이기는 하지만, 어떨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일주일의 시작인데, 좋은 한 주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계획은 그랬다.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를 읽고자 펼쳐들었더니 뭔가 재밌어보이기는 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재미가 없는 것 같고(그러니까 개콘의 재미없는 코너 보는 느낌이랑 비슷하달까..), 새해 벽두부터 왜 이런 내용을 'JTBC 뉴스룸'도 아니고,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도 아니고, '그것이 알고싶다'도 아니고 하필이면 소설에서 봐야할까 싶어서....조금 기다리기로 했다. 뭘 기다리기로 했냐고?

 

그러니까, <댓글부대> 같은 영 안 땡기는 책이 서평단 도서로 선정되는 대참사(?)를 막고자, 마지막까지 기다리는 거지. 어차피 내가 고르는 책들은 비주류일 가능성이 높고, 여러 서평단 분들이 고르는 책 중에서 높은 표를 받은 책들 중에서 영 땡기지 않는 책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책들에 표를 던져, 많은 표를 받은 책들 중에서 (내 관점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책들을 골라내는 거지..일종의 캐스팅보트랄까. 남들은 늦게 올린다고 보겠지만, 늦은 게 아니라 나는 기다린거라네, 친구. 아무튼 계획은 그랬다. 

 

그러나 신간평가단 책추천 글쓰기 마감시한이 약 1시간 30분 앞으로 다가온 현시점, 지금까지 추천을 해주신 서평단분은 총 12분. 내 투표를 제외하고도 아직 6분이나 더 표를 던지셔야 한다. 그렇다고 더 기다리자니 아무래도 마감시한을 넘길 것 같고...캐스팅보트는 무슨 캐스팅보트...이 간단한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으니..

 

아무튼 그간 들인 노력이 억울해서라도 중간집계 결과를 살짝 발표해보자면, 현재까지 표를 많이 받은 책들은 다음과 같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그들>과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이 공동 6표, 카뮈의 <페스트>가 5표, 루 월리스의 <벤허>와 조디 피코의 <코끼리의 무덤은 없다>가 공동 4표. 그 밖에 <울지 않기>, <사슴의 왕>, <스타타이드 라이징> 같은 책들이 3표씩 얻었지만, 아마도 이번에는 위의 4표 이상 얻은 책 중에서 선정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이 중에서 개인적으로 나아보이는 책 두 권을 골라 지우가 피카츄를 보내는 심정으로 밀어주고, 나머지 책들은 그냥 신간소개(?) 차원에서 올려본다.

  

 

 

  

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은행나무

카인, 주제 사라마구, 해냄

 

카뮈의 <페스트>는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조디 피코의 <코끼리의 무덤은 없다>는 전혀 모르는 작가라서, 루 월리스의 <벤허>는 그 책이 선정되면 지하철에서 들고 다니며서 읽기에 심히 애로사항이 꽃필 것 같아서, 그리고 영화로도 너무 많이 봐서 뺐다. 그러다보니 남는 책이 저 위의 두 권.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정병선 옮김, 오월의봄

 

사실 이 달에 가장 읽고 싶은 이 책이었다. 얼마 전의 아이유에 관련된 논쟁에서 이 책이 화제에 오른 적이 있는데,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많은 사람들이 내용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알고보면 정말 '이상한' 얘기가 많은 책인데, 주석과 함께 읽으면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 많을 듯 하다.

 

 

바느질하는 여자, 김숨, 문학과지성사

 

김숨 작가의 원고지 2천 2백 매의 장편. 시간을 투자해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김숨은 계속 해왔는데, 손가락이 뒤틀리고 몸이 삭도록 바느질을 하는 여자. 그들이 왜 글을 쓰는지, 아니 왜 바느질을 하는지 그 이야기가 길게 펼쳐질 것 같다. 바느질은 글쓰기와 닮았다.

 

 

소각의 여왕, 이유, 문학동네

 

손홍규의 <그 남자의 가출>과 이유의 이 책 중 어느 책을 추천할까 생각하다가, 이미 이 책이 2표를 받고 있어서 혹시나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그만.

 

 

덧.

위에 쓴 지우가 피카츄를 보내는 심정이란 이런 거다. 피카츄가 이렇게 되묻는 심정.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은빛 2016-01-0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우가 피카츄를 보내는 심정이라~
이 만화는 피카츄만 보내면 필승 아닌가요?
무조건 이긴다는 마음으로 보내신건가요? ^^

맥거핀 2016-01-06 01:16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니까 위에 조금 잘못 썼네요..이렇게 되묻는 피카추를 보는 지우의 심정이라고 써야하는데,,아무튼 저는 고압전기 취급 특별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아뇨˝하고 답하는 지우의 멍한 표정이랄까요. 잘 알지도 모르는 책을 추천하는 그런 멍한 심정입니다.^^ 감은빛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선 2016-01-06 0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다렸다 마음에 드는 거 밀어주려 한 건가요 시간을 조금 남겨두고 쓰시다니... 저는 《사슴의 왕》 재미있을 것 같던데... 이건 두권이고 두권 합치면 꽤 두껍다고 합니다 앞에 그림 봤을 때 떠오른 건 <원령공주>였는데, 거기에 그런 말도 있더군요 김숨 책도 한번 보고 싶다, 하는 생각을 잠깐 했군요 지난해에 한번 라디오 방송에 나왔거든요 말하는 게 한강하고 비슷한 느낌이 들더군요 이름도 한 글자라는 게 같네요

<벤허>는 왜 그런 거죠 저 이거 어렸을 때 영화로 봤어요 극장에서... 학교 다닐 때였던가 잘 생각나지 않는군요(전차경주하는 게 생각나는군요 소개글을 조금 보니 종교와 상관있는 거더군요 영화에 그런 것도 나왔는지...) 얼마전에 이 책 나온 거 보고 소설이었구나 했습니다 책을 좀 마음 써서 보고 나서 예전에 본 영화 소설이 원작인 게 많다는 걸 깨닫기도 했습니다(이거 오래되지 않았군요) 한때는 우리나라 소설을 많이 봐서 그런 생각을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소설로도 영화 많이 만들었지만, 그런 소설은 잘 못 봤네요

표가 많은 게 되는 거겠죠


희선

맥거핀 2016-01-06 23:50   좋아요 0 | URL
믿으시건 안믿으시건 기다린 건 사실입니다만, 보시다시피 결과물이...<사슴의 왕>은 보니 두 권 짜리이고, 권당 500페이지가 넘더군요. <벤허>를 제외시킨 것도 같은 이유인데, 너무 길어요~ 저는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읽을 때가 꽤 있어서 무거운 책은 상당히 곤란한 경우가 있어요. 물론 어떤 책들은 무거움을 감수하고 읽어야할 필요도 있지만, 신간평가단 책은 되도록 안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 있네요.

저는 <벤허>를 꽤 여러번 반복해서 많이 봤어요. 그 영화가 TV에서 꽤 자주 하잖아요. 얼마전에 보니까 EBS에서도 하던데...내용도 다 알고 있고, 어떤 장면들은 세세하게 컷단위로 설명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인데도, TV에서 하고 있으면 또 보게 되네요. 그런 영화들이 몇 개 있어요. 어쩔 수 없이 다시 멍청하게 아..이제 그 장면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하고 보고 있는 영화들. 말씀하신대로 이 영화의 전차경주 장면은 압권이죠. 사실 잘보면 특수효과(?)들이 상당히 허접하기는 하지만, 그게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희선 2016-01-07 00:35   좋아요 0 | URL
중요한 건 아니지만, <벤허>극장에서 본 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 했는지도 모르겠군요 어쩌면 텔레비전으로 봤을지도... 책이 두꺼워서 그렇군요 그거 할 때마다 보시는군요 알았다면 봤을지, 텔레비전은 안 보니... 전차경주하다 어떤 사람 떨어져서 전차에 깔리기도 했죠(다른 것보다 이런 게 생각나다니...) 특수효과, 그 영화 처음 만들었을 때는 새롭다 생각했을 것 같네요 지금 그걸 만들면 훨씬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예전에 본 것과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어떤 것이든 처음 보고 들으면 새롭게 느껴지겠죠 시간이 흘러서 보고 저런 걸 좋아했나 하기도 하죠

고양이 발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일본 속담일 거예요 이런 참견을... 일본 사람들이 고양이를 많이 좋아하잖아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기도 한 듯해요 길고양이 돌아다니는 거 싫어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먹이 주지 마라, 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희선

맥거핀 2016-01-10 17:16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일본 속담이군요. 그런 속담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고양이가 그만큼 발 빠르게 뭐를 많이 한다..그런 뜻일까요? 아까 오전에 <동물농장>인가 그 프로를 잠깐 봤는데, 불쌍한 고양이가 한마리 나오더군요. 사람이 합성수지 같은 데에 일부러 빠뜨렸을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어찌 그런 짓을 하는지..

맞아요. <벤허>가 처음 개봉했을 때는 특수효과도 그런 특수효과가 없었죠. 아카데미 특수효과상을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네요. 말씀하신대로 현재 기준으로는 떨어지지만, 당시에 어떤 감흥들이 영화 그 자체와 혼합되어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죠. 저는 TV에서 고전영화 같은 거 하면 많이 봐요. 요즘에 EBS에서 자주 고전영화를 해서 많이 보고 있습니다. 예상외로 좋은 영화들이 많이 하더군요.

AgalmA 2016-01-06 0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계획엔 어쩐지 늘 동의가 됩니다. 피카츄를 보내는 심정은, 일 바쁠 때 고양이 발이라도 빌리고 싶다와 비슷하달지...

맥거핀 2016-01-07 00:01   좋아요 0 | URL
아..그런데 그런 말이 있나요? 일 바쁠 때 고양이발을 빌린다..저는 솔직히 처음 듣는 말이라..근데 재미있네요. Agalma님 올리시는 글은 늘 잘보고 있습니다. 생각을 많이 해야해서 종종 머리가 아프지만..그래도 좋습니다.^^

AgalmA 2016-01-07 04:32   좋아요 0 | URL
저야 글의 편차가 심하지만 맥거핀님 글이야말로 몰입해야 하는 리뷰라 전 마음 다짐을 하고 글을 열어 보는데요~ㅎ
요즘 널널한 페이퍼를 자주 올리는데, 새해 공부 다잡아 봐야겠습니다.
고양이발...다들 보통 쓰는 줄 알았는데 아녔군요-ㅁ-;; 제 주변에선 일상 대화로 자주 써서...출처는 저도 모르지만 바쁠 땐 정말 그 말이 💡
맥거핀님 글 올해도 잘 보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자주 좀 출몰해 주세요ㅎㅎ!

맥거핀 2016-01-10 17:20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Agalma님 글은 읽다가 한 두 문장이 갑자기 어 무슨 뜻인가, 생각해봐야 할때가 있어요. 이보다 너무 공부 많이 하시면 저는 어려워서 잘 못 읽어요. 하하. 자주는 못와도 신간평가단 때문에 그래도 주기적으로 계속 오게 될 듯은 합니다. 저 자신을 위해서도 자주 글 쓰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요새 자주 안 쓰니 요새는 글 하나 쓰기도 힘드네요. 위에 글도 막상 써놓고 보니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cyrus 2016-01-06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인터넷에 `포켓몬스터`를 검색하면 `지우의 만행`이라는 제목의 사진 글이 있어요. 만화에 나오는 지우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해석(?)한 글인데 나름 설득력이 있어요. 대세는 지우가 아니라 로켓단입니다. ^^

맥거핀 2016-01-06 23:5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방금 봤는데, 저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이 자식이...포켓몬은 예전에 조카들이 가끔 봐서 같이 볼 때가 있었는데, 보고 있으면 은근히 재미있어요. 예전에 포켓몬 대백과사전인가 조카 사줬는데..은근히 재미있어서 제가 더 봤다는...

아이리시스 2016-01-06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기엽따 피카츄♥ 그그그 페스트가 더 낫지 않나요? 읽기가 제일 어렵겠지만😌 이거해도 맥거핀님 계획대로 잘 안되잖아요😒😒😅 댓글부대 의외로(미얀) 좋나요? (그들)은 연말에 산 유일한 소설인데 재미있어보여요 화이팅.(피카츄, 누나 간다 휘리릭)

맥거핀 2016-01-06 23:57   좋아요 0 | URL
페스트가 더 나았으려나요? 사실은 읽는 것보다도 그게 선정이 되면 리뷰를 제대로 쓸 자신이 없어서..기존에 리뷰들도 엄청 많고, 뭔가 새로운 리뷰는 도저히 안 나올 것 같아요. <댓글부대>는 한 반 정도 읽었는데, 작가님이 뭘 하시고자 하시는 건 알겠는데, 역시 제 취향은 아닌걸로....물론 취향의 문제와 좋은 소설의 문제는 별개겠지만요.

아이리시스 2016-01-06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할말 못했네.. 맥거핀님 있잖아.. 그래도 맥거핀님이 매번 리뷰쓰러와서 좋아요☺ 불안한 낙원 리뷰는 언제 볼 수 있나요오? 이 말 못한것같은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해요😊😊

맥거핀 2016-01-06 23:59   좋아요 0 | URL
저도 아이리시스님이 여전히 알라딘에 계셔서 좋습니다.(그러니까 딴 데 가지 마시고...) 딴 데 안간다고 약속하면 불안한 낙원 리뷰를 써드립죠...(라고 하지만 어차피 써야하는 현실...) 아이리시스님도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물론 건강은 당연!
 

   

  

가끔 이야기가 만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김영하의 <읽다>에 인용된 신형철의 이 글(<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나온 글이다.)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를 이야기하는 글이지만, 그것은 최근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약속된 장소에서>를 떠올리게 했다.

 

<롤리타>라는 소설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지만, 그 말은 한 인간을 이해하는 말이 아니라 오해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사내를 이해하는 길은 오로지 그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방법밖에 없다. 제대로 읽기만 한다면 우리는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을 집어던질 수 있게 될 것이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새삼 되새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읽다> p.153~154)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전에 먼저 전채요리 격으로 하루키의 이 책 <약속된 장소에서>를 읽었다. 세기말의 일본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는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 사건을 하루키가 접하고, 그들이 어떤 집단인지를 탐구하기 위해 옴진리교 신자(옛 신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묶은 하루키의 이 책은 (이렇게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예상보다 재미있었다. 하루키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지하철 사린 사건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언더그라운드>와 대칭을 이루는 책이지만, 그 구성은 약간 다르다. 피해자들의 진술을 묵묵히 그대로 들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던 <언더그라운드>와 달리 <약속된 장소에서>의 하루키는 조금 더 적극적이다. 그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박도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서 심리학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세계를 읽을 수 있는 하나의 독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이들의 이야기를 거름망 없이 그대로 읽었을 때의 어떤 '위험'을 하루키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느낀 어떤 '재미'라는 것도 그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흔히 종교집단에 빠지는 사람들을 비논리적이거나, 감정적, 혹은 단순하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은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매우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다. 이들은 사회의 일반적인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것이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의 빈틈을 옴진리교가 파고 들었다. 즉 이들은 현세가 가지는 어떤 가치들 혹은 현세 그 자체에 대해 '의문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의문들이 주는 '번뇌'를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그 '번뇌'를 해소시켜 더 높은 차원의 인간(혹은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옴진리교에 빠져들었다. 옴진리교는 그들의 의문에 대해 해답을 주었고, 존사(아사하라 쇼코)는 그 의문을 알기 쉽게 그들에게 풀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우리 누구나가 느끼는) 사회가 가지는 수많은 모순들과 의문들, 그 의문들에 답을 얻고 그것으로 번뇌를 벗어날 수 있다면 적어도 그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심리학자는 그것을 반대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말이죠, 번뇌와 소모가 없다면 종교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번뇌를 버리면 그 사람은 이미 부처니까요. (번뇌를 버리는 건 수행이 아니로군요.) 네. 그건 이미 부처지 인간의 수양이 아니에요. 그러나 우리는 신이나 부처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 번뇌가 사라졌나 싶으면 여전히 남아 있는 거죠......(중략) 그래서 그런 수준의 (옴진리교) 사람들은 번뇌와 더불어 살아갈 힘이 조금 부족합니다. 안타깝긴 하지만요. 하긴 다른 방향에서 보면, 우리 범인(凡人)보다는 순수하거나 매사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그건 역시 엄청나게 위험한 일입니다. 그 사람들이 모두 부처의 나라로 간다면 상관없겠지만,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한은 상당히 큰일이죠. 그래서 저는 인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번뇌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역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약속된 장소에서> p.289~299)

 

번뇌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불가능한 인간들, 혹은 번뇌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즐겨 다루는 인물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아들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맞닥뜨린 부모들, <환상의 빛>의 남편이 왜 죽었는지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여자, <걸어도 걸어도>의 죽은 아들(또는 형)의 빈자리를 안고 살아가는 가족, 혹은 <아무도 모른다>의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엄마의 부재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 (그리고 <디스턴스>에서는 옴진리교 사건을 둘러싼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것을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떤 과거의 사건들이 남긴 잔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즐겨 그리기 좋아했던 인물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무엇인가 답을 알고 싶어했지만, 이미 떠난 사람들은 아무런 답도 그들에게 주지 않거나, 혹은 이미 줄 수 없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인물들은 어떨까. 이야기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이야기는 남아있는 사람들 속에서 시작한다. 15년 전 집을 떠난 아버지의 부고. 그 부고를 듣고 두 여동생과 같이 살고 있는 큰딸 사치(아야세 하루카)는 자신은 가지 않겠다며, 동생들을 대신 보내지만, 마음을 돌려 뒤늦게 장례식장에 나타나고 거기에서 아버지의 두번째 부인이 낳은 딸, 그러니까 이복동생 스즈(히로세 스즈)를 만난다. 그리고 사치는 이제 갈 곳이 없어진 스즈에게 같이 살 것을 권한다. 다시 말해서 사치는 고레에다 인물들의 자장 속에 있다. 아무 답을 주지 않는 인물이 떠나며 남긴 잔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 번뇌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다시 그리려고 하는 것일까.

     

그런데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레에다 감독이 그려냈던 것이 단지 번뇌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자체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가 즐겨 그렸던 것은 바로 그들의 '시간'이었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속에서 그들은 항상 긴 시간을 지나왔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에서 그 흔한 플래시백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로 돌아가 그들에게(정확히 말하면 영화를 보는 우리들에게) 어떤 해답을 주는 것을 그는 반칙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대신에 그 긴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내는 쪽을 늘 택했고, 그래서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나타났던 것은 플래시백이 아니라, 긴 시간의 서술이었고, 그에 따른 시간의 점핑이었다. (이 영화에서도 수많은 예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의 초반부 출발하려 하는 기차에서 사치가 스즈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한 후, 그것에 뒤이어 바로 스즈가 세 자매를 찾아오는 씬이 붙는 것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간의 점핑은 어떤 급작스럽다는 느낌을 관객에게 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도리어 그들의 긴 시간을 관객이 같이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같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 그것을 이렇게 바꿔서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번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보다보면 문득 이상한 씬의 연결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영화의 초반부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아버지가 살던 마을을 돌아보던 세 자매에게 스즈가 아버지가 남긴 유품이라며 오래된 사진을 들고 오고, 세 자매가 추억에 빠져 사진을 들여보던 장면이 있다. 통상적인 영화 문법이라면 여기에서 세자매의 시점 숏, 그러니까 사진을 보여주는 컷을 끼워넣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감독은 끝끝내 사진은 보여주지 않고, 그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매들의 옆모습만 비춘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세 자매는 스즈에게 마을에서 네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냐고 묻고 스즈는 산에서 마을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이 좋은 곳으로 그녀들을 데려간다. 그리고 자매들은 스즈에게 마을의 풍경이 지금 우리가 사는 곳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때쯤이라면 한번쯤 마을의 조망컷을 끼워넣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감독은 여전히 그것을 관객들에게 제공해 줄 맘이 없다. 뒤늦게서야 그 조망을 바라보는 (스즈를 포함한) 네 자매의 뒷모습을 비추며 조망컷을 멀리에서 살짝 제공할 뿐이다. (비슷한 예는 후반부에서 찾을 수도 있다. 배 안에서 불꽃놀이를 보는 아이들, 그것을 보여주며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여줄 법도 하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검은 밤바다에 비친 흐릿한 색으로만 그것을 보여주거나 불꽃놀이에 넋이 빠져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만 비춘다. 그리고 뒤늦게 회사 옥상에서 동료들과 불꽃놀이를 보는 둘째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의 컷을 여기에 연결시키며 그들의 뒷모습과 함께 이 불꽃놀이를 살짝 보여준다. 마치 "이렇게라도 살짝 봤으니까, 됐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여기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이나 조망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것을 추억에 빠져서, 혹은 자신들의 마을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보고 있는 자매들의 리액션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 때 이런 질문이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자매들의 (다른 무엇인가를 보는) 옆얼굴, 혹은 뒷모습을 보는 이 시선은 누구의 시선일까. 아니, 나는 그것이 죽은 아버지의 시선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대신에 단지 감독은 우리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이들을 같이 지켜봐 주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라고 묻고 싶다. 그들의 긴 시간을 같이 지켜보자, 감독은 우리 관객들에게 이렇게 권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어쩔 수 없이 혼자 찍혀야하는 컷을 제외하고는 카메라는 좀처럼 인물을 혼자 잡는 법이 없다. 자매들은 늘 둘이나 셋이 함께 카메라에 잡혀 있고, 카메라는 집안의 어딘가, 혹은 바깥의 어딘가에서 묵묵히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유령의 시선이지만, 그러나 절대 으스스하지 않다. 그것은 어쩌면 이들의 죽은 아버지나, 혹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나가고 이들을 대신 키워준 외할머니의 시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묵묵히 물러나 이들의 대화를 무심히 지켜보거나 이들의 무엇인가에 열중한 뒷모습을 잡는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카메라에 대고 우리가 사이가 좋거나, 혹은 좋아졌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영화는 그저 둘이나 셋, 혹은 네 명 전체가 같이 있는 모습을 카메라를 통해 긴 시간 묵묵히 보게 만든다. 이 이상의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그러니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말을 놓아도 될까,라며 쭈뼛거리던 자매들이 왜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쓰잘데 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는지. 매실주를 한잔만 마시고도 기절해버리던 소녀가 어떻게 독하게 담궈진 매실과 그렇지 않은 매실을 구별해 언니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혹시 있었을지 모를 번뇌가 어떻게 되었는지 말이다.

      

아니 나는 그들에게 있어서 번뇌가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약속된 장소에서>의 심리학자의 말대로 사람이 번뇌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통해 한가지를 아주 어렴풋하게 생각해 볼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그 번뇌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번뇌에 이길 수는 없지만, 지지않을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것은 긴 시간 동안 견뎌내며 그것들을 오래동안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론 쉬운 것이 아니다. 긴 시간을 견뎌내는 것은 힘들고, 어딘가에서 옴진리교와 같은 쉬운 답이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며 기다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어떻게 번뇌를 품고 살아갈 것인가. 이것을 이렇게 바꿔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떻게 번뇌를 안고 죽어갈 것인가. 고레에다 감독의 이 영화는 장례식으로 시작해서 장례식으로 끝나는 영화다. 그런 영화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15-12-30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종교와는 아무 상관없는 책에서 부처 이야기를 잠깐 봤는데,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길게 나오지 않고 제가 다 기억하지 못해서 집착하지 않아야겠구나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생각처럼 잘 안 되는 것이기도 해요 마음을 먹으면 그때는 뭔가 자유로워진 듯한데, 시간이 흐르면 다시 전으로 돌아가 있으니까요 그 책을 본 건 삶은 쉽게 끝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때고, 그 뒤에도 그와 비슷한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이어지다니... 제가 그렇게 이어서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사람은 시간 걸리고 어려운 것보다 빠르고 쉬운 걸 더 좋아하기도 하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건 귀찮아서 하기도 싫은데, 어떤 건 시간 걸려도 하는군요 어떤 때는 일부러 그러기도 하는군요 이 말은 좀 상관없는 걸까요 꼭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죠 그 책 본 지 시간이 많이 지나서 거의 잊어버렸지만, 그거 보면서 ‘저 사람들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데 갈 수 있었구나(공동생활을 했던 것 같은데)’ 한 것은 떠오릅니다 그곳에 가면 더 나았을까요 번뇌, 종교나 누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니겠죠

영화는 짧은 시간 동안 하는 거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길죠(책도 그렇군요) 그 사람들 시간을 지켜보기 혹은 함께 하기... 그렇게 하면 함께 산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처음에는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그것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사람, 호모 사피엔스는 왜 생각하고 괴로워해야 하는 건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요새 이런 생각을 합니다


희선

맥거핀 2015-12-31 14:47   좋아요 0 | URL
인간이 부처를 지향할 수는 있겠지만, 아마도 부처가 될 수는 없겠죠.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하는 말도 결국 인간이 집착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출가를 하는 승려들도 모든 것을 버리고 들어간다고 하지만, 그들도 사실 계속 어떤 유혹에 시달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다스리고 하잖습니까. 그분들도 그러신데 우리 속세에 사는 인간들이 어찌 집착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집착을 안고 살되, 다만 그 집착에 먹히지 않도록 계속 조심하면서 살 수밖에 없겠죠.

말씀하신대로 인간은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이고, 늘 쉬운 길을 찾는 존재에 가까우니까요. 멀리 갈 것도 없이 저만해도 늘 얼마나 쉽게 사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는데 말이죠. 종교에 심하게 멀리 떨어진, 그렇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서 그래서 종교가 주는 답은 늘 아리송하고 알 수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위에 인용한 책 <약속된 장소에서>를 보면 그들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명쾌한 해답`같은 말이거든요. 그런데 바로 그 `명쾌한 해답`이 그들을 무서운 길로 이끈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영화는 아주 짧은 영화라도 아주 긴 시간을 담아낼 수 있죠. 그게 대단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결국 영화는 시간을 다루는 예술이니, 이 시간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는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AgalmA 2015-12-30 0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형철 평론가 롤리타 얘기 저도 인상 깊어서 밑줄 쳐 놓은 적 있는데^^

맥거핀 2015-12-31 14:38   좋아요 0 | URL
오..신형철 씨 책은 사실 밑줄을 치자면 한도끝도 없죠..^^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부족한 글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살리미 2015-12-30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를 만번 누르고 싶네요^^ 제가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 다 있어요.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사실 원작이 더 훌륭하네 하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저는 고레에다 감독의 스타일이 살아있어서 너무 너무 좋았답니다.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감독의 영화에서는 배우가 그렇게 빛나는 건가봐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맥거핀 2015-12-31 14:36   좋아요 1 | URL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극장에 신작이 나왔다하면 왠만하면 가서 챙겨보려고 하는 감독입니다. 그의 영화를 보다보면 인생공부를 하는 느낌이랄까요. 산다는 것이 어떤건지 늘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 본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그렇게 느꼈을 거예요. 저기에 가서 살고 싶다. 단지 풍광이 좋아서가 아니라, 저 사람들과 일원이 되어서 살고 싶다고 말이죠. 그게 또 현실에서의 삶의 원동력이 되는 듯 합니다.^^

2016-02-03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04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드니 빌뇌브, 2015  

     

 

(영화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가끔 과녁을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화살이 있다. 아니면 이런 표현도 가능하겠다. 가끔 궤도를 벗어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열차가 있다. 빗나간 화살, 혹은 탈주하는 기관차, 그것들은 현실에서라면 무엇인가 어긋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영화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때로 어떤 화살은 과녁을 벗어나 다른 더 좋은 목표물에 명중하며, 어떤 열차는 궤도를 벗어나 낯설지만 강렬한 곳에 관객을 데려다 놓는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이하 <시카리오>)의 과녁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대한 마약조직(카르텔)이 저지른 극악무도한 범죄가 영화의 시작부에 드러나고, 이들을 잡기 위해 특별한 팀이 결성된다. 목표물은 명확하고, 영화는 정해진 목표물을 잡기 위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을 잡기 위해 특별수사팀은 조직의 본거지인 멕시코 후아레즈로 향하고, 계획은 거칠어 보이지만 나름 치밀하게 수행된다. 작전은 성과를 올리고, 이 특별수사팀은 점점 적의 심장부에 가까이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어떤 미심쩍은 컷들이 끼어든다. 예를 들어 후아레즈를 둘러싼 주위의 황량한 사막과 같은 풍경을 드론으로 훑어내려가면서 찍는 익스트림 롱샷은 왜 필요한 것일까. 중심이야기의 흐름을 단절시키면서 등장하는 민머리 남자와 그에게 축구를 하러 가자면서 보채는 아들의 이야기는 왜 여기에 끼어들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야기는 점점 방향을 살짝 틀어나가기 시작한다. 마약조직을 소탕한다는 이 명확한 목표, 혹은 이 작전에는 어딘지 모르게 찜찜함이 있다. 그것은 관객이 이 작전에 거의 아무 것도 모른채로, 혹은 마약조직을 소탕한다는 목표만을 가지고 참여하는 케이트(에밀리 블런트)와 거의 동일한 위치에 놓여 있기 때문에도 그렇다. 케이트는 마약조직이 벌인 끔찍한 참상을 보고 이 작전에 자원하여 참여하지만, 이 작전에는 (관객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모르는 어떤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일단 이 작전을 이끌어가는 CIA의 책임자 맷(조쉬 브롤린)이나 소속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남자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의 존재부터가 그렇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권한을 가졌기에 도로 한복판에서 총격전도 거리낌없이 실행하는 것일까. 그래서 작전 도중에 케이트는 여러 차례 맷과 설전을 벌인다.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려달라. 당신들이 도대체 여기에서 벌이고 있는 (불법을 넘어서 무법에 가까운) 이 일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맷은 여기에 답한다. 당신이 지금은 우리를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우리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들을 잡는 영화의 어떤 태도다. 예를 들어 1차로 마약조직 보스의 형을 체포하여 데려오는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후, 맷과 케이트는 건물 밖에서 설전을 벌인다. 이 때 재미있는 것은 카메라의 위치다. 통상 이런 장면에서라면 둘의 설전을 보다 타이트하게 숏과 반응숏으로(때로는 클로즈업을 섞어가며) 잡거나, 혹은 오버 더 숄더샷으로 처리할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카메라는 한껏 물러나 그들을 원경으로 잡는다. 그들의 대화는 들리지만(그래서 자막으로 처리되지만), 어쩌면 이런 거리라면 실제로는 대화가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마치 이것은 영화가 그들 중 누구의 편도 들지 않겠다는 태도인 것처럼 보인다. 즉 이 때까지 대부분의 관객은 케이트의 위치에 서기 때문에(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을 보다 가까이에서 잡는 것은 케이트의 어떤 답답함, 울분에 관객이 너무 쉽게 동화되는 효과를 불러올지도 모른다. 관객들을 보다 물러나게 함으로써 관객은 보다 깊숙하게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의 설전을 본다. 이것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겠다는 태도이거나, 혹은 이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인 것처럼도 보인다. 이보게 케이트, 그거 중요한 거 아니라구, 사실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네, 친구.

  

  

그렇다면 무엇이 의미가 있는가. 영화의 마지막에 도착하는 것은 이상한 출구이다. 케이트와 함께 터널을 빠져나온 관객이 도착하게 되는 곳은 사실상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변한 것은 있다. 보스는 죽었고, 조직은 그 힘을 어느정도 잃었다. 그러나 그 힘의 공백을 무엇이 채우는가. 다른 거대한 힘, 아마도 그보다 훨씬 강력할지 모를 어떤 힘이 채운다. 그러니까 영화는 이상한 출구를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케이트와 동일시 된) 관객이 기대하고 본 것은 힘의 공백이었지만, 실제로 영화가 제시한 출구는 힘의 균형, 그리고 그 힘의 균형이 실제로 의미하는 '거의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음'이다. 다시 말해서 관객은 마약조직의 소탕을 보게 될 것을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무참히 배반당한다. 그것은 감독이 굳이 마지막에 끼워넣은 영화의 컷이 상징한다. 특별히 놀랄 것도 없는 일들, 그들에게 있어서 당연한 삶이 그렇게 지속된다. 그것은 영화의 초반부 특별수사팀이 후아레즈에 들어갈 때 무심히 그들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을 수 있겠다. 거의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면 이 영화가 이렇게 끝냄으로써 남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김영하는 <읽다>에서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를 다루며, 그것을 오르한 파묵이 이야기한 '감춰진 중심부', 그러니까 "소설과 다른 문학 서사의 차이는 감춰진 중심부가 있다는 것이다"라는 이론과 연결짓는다. 즉 소설에는 '감춰진 중심부'가 있으며, 독자는 이 감춰진 중심부를 찾길 희망하며 소설을 읽기 때문에, 소설이라는 것이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중심부를 찾는가, 못찾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중심부에 다다르는 과정이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는 '감춰진 중심부'에 도달하고자 애쓰는 독자들이 그곳에 쉽게 도달하지 못하도록 독자들과 게임을 벌인다. 플로베르는 '거의 아무런 주제도 없는 아니 적어도 주제가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 책을 쓰고자 했다. 플로베르의 태도는, 중심부가 아니라 독자가 중심부에 다다르는 과정, 다다르려고 애쓰며 어떻게든 독자 자신의 고유한 내면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 다시 말해서 플로베르는 주제와 교훈, 그러니까 중심부를 강조하는 소설을 낡은 것으로 보이게 했으며, 따라서 플로베르에게서 현대소설이 시작되었다면 그것은 이 때문이라고 김영하는 말하고 있다.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에서도 마찬가지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 영화에서도 어떤 '감춰진 중심부'를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을 '마약 조직의 소탕(케이트)'이라고 불러도 좋고, '힘의 균형을 찾음으로서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맷)'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보게 되는 것은 어떤 중심부가 아니라 산재해 있는 것들, 중심을 알 수 없는 어떤 무심하고 황량한 풍경이다. 영화의 초중반에 걸쳐서 점점이 걸쳐져 있는 어떤 낯선 컷들이 있다. 마약조직(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는 도시 후아레즈를 원경에서 잡는 컷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 이들의 삶은 이 영화의 일련의 과정이 불러온 연쇄를 통해 파괴에 이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파괴된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파괴가 너무나도 무심히 당연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며, 그것이 점점이 후아레즈라는 거대한 죽음의 도시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영화의 주인공은 케이트나 맷, 혹은 알레한드로나 마약 조직의 보스가 아니다.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후아레즈라는 거대한 사막의 도시가 아닐까. 그 사막의 도시에서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총격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당연하게 들리는 총격 소리에 무심하며, 수많은 마약은 그곳에서 생산되어 여전히 미국과 전세계의 도시로 흘러들어간다. 사막이 확장되는 것처럼 마약이 불러오는 파괴는 그렇게 확장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호쾌한 액션이나 스릴을 보게 되리라 기대했지만, 우리가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어떤 출구없는 미로의 풍경이다. 예를 들어 그것을 케이트가 알레한드로를 향해 겨눈 총의 방아쇠에 놓인 손가락이라 말할 수도 있다.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이지만, 이 때 우리는 케이트와 마찬가지로 질문을 하게 된다. 그 손가락에 힘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 그를 쏜다고 해도, 그가 쓰러진다고 해도 무엇이 달라지는가. 좋은 영화는 질문에 대해 답을 주는 영화가 아니라, 답을 알고 있었다고 믿었던 것을 뒤집어 질문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덧.  

그래도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는 덧붙이고 싶다. 드니 빌뇌브의 이 영화 <시카리오>는 예상했던 궤도를 벗어나 그보다 더 강렬한 곳으로 관객을 데려다놓는 영화지만, 한편으로 흥미로운 것은 그러면서도 그 원래 궤도에서 줄 수 있는 재미를 거의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야간 투시경 화면이나 CCTV 화면의 활용 같은 것은 익숙한 설정이지만 적절한 편집으로 실제감을 가중시키며, 기존 스릴러 영화나 액션 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컷의 활용은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예를 들어 줄지어 달려가는 자동차를 위에서 잡는 컷과 그에 어울리는 강렬한 음악의 조화 같은 것). <그을린 사랑>이 상대적으로 소재의 강력함에 기댄 것 같은 인상을 줬다면 이 영화에서는 감독의 역량이 그보다 잘 드러난 것 같다.

    

소위 상업영화를 주로 즐기는 관객이나 예술영화를 주로 즐기는 관객이나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영화가 아닐까. 다만 '암살자의 도시'라는 부제는 붙이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지만.

 

 

 


댓글(5)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5-12-17 0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7 0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31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리미 2015-12-30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를 보고나서 혼란에 빠졌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왜 그랬는지 정리가 되는 느낌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맥거핀 2015-12-31 14:3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오로라^^님. 명쾌하게 적이 있고, 아군이 있는 이런 문제라고 영화 초반에는 생각했는데, 마지막에는 저도 혼란스러웠습니다. 확고한 원칙주의자인 케이트가 결국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