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하루키라도 이런 편집을 한 102페이지짜리 책을

13,500원 정가를 붙여 나오다니.

많은 책들이 단지 팬시 상품으로서 기능하는 것으로 전락한지 오래지만

이런 책은 안 사는 게 맞다.


하긴 책을 팬시 상품으로 내세우는 트렌드를 만든 본진에서

이런 소리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20-10-21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팬으로서 저도 지금 책 받아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책값을 다시 확인했고요. 이건 너무한데요. 일본에서 하루키의 예전 책을 우리나라와 계약할 때 기억은 정확치 않은데 어마어마한 선인세를 요구했다던 기억까지 소환되네요. 그건 하루키의 문제일까요, 일본 출판사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우리 나라 출판사의 자세 문제일까요. 착잡하네요.

맥거핀 2020-10-22 12:57   좋아요 1 | URL
말씀듣고 일본판은 어떤가 싶어, 일마존 들어가서 찾아보니 일본판도 한 가격하네요. 1320엔이니까요. 책 가격을 뭐 페이수에 비례해서 매길 수는 없겠습니다만, 이렇게 단편소설 분량 밖에 안되는 글을 이런 식으로 책으로 묶어내는 것은 썩 유쾌하지가 않네요. 저런 것은 작가의 명성을 도리어 깎아먹는 일로 보이기도 하구요.

다락방 2020-10-22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의합니다. 저는 지난번 하루키 해피버스데이 였나, 그 책도 사놓고 너무 어이없었어요.. ㅠㅠ

맥거핀 2020-10-22 13:00   좋아요 0 | URL
요새 이런 게 일종의 트렌드인 거 같기는 합니다만, 가끔 보면 조금 심하다 싶은 게 있죠. 무거운 책을 들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춘 것일까요..? ;;;

2020-12-18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1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8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21-01-12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러스트 작가도 있으니 그 저작권도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하루키도 일종의 브랜드화 되어서 살 사람은 사니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거 같아요^^;

맥거핀 2021-01-13 16:56   좋아요 0 | URL
뭐 사실 출판사만 탓할 일도 아니지요. 이런 책을 원하는 독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대세를 잘 따라가고 있는 거라고 할 수도 있겠죠. 저같은 사람은 점차 올드스쿨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나보코프 문학 강의>의 몇 대목.


그러나 기성품처럼 진부한 일반화부터 시작한다면,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니 책을 이해할 실마리를 잡기도 전에 책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바리 부인>이 부르주아를 비판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미리 품고서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만큼 작가에게 지루하고 지독한 일은 없습니다. 예술 작품은 언제나 새로 창조된 세상임을 결코 잊으면 안 됩니다.

- p. 43


좋은 독자는 책에서 진짜 삶, 진짜 인간 등을 찾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압니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 사물, 상황의 현실성은 전적으로 그 책의 세계에 달려 있습니다. 독창적인 작가는 항상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하죠. 어떤 등장인물이나 사건이 이 세계의 패턴에 들어맞는다면, 우리는 예술적 진실의 기분좋은 충격을 경험합니다. 한심한 하청 문사인 비평가들이 '진짜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 그 인물이나 사물을 대입했을 때 그들이 아무리 비현실적으로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천재적인 작가에게 진짜 삶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p. 55


문체는 도구도 아니고 방법론도 아닙니다. 단순히 단어의 선택만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이 모든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존재인 문체는 작가의 개성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 또는 특징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문체를 말할 때는, 예술가 개개인의 독특한 본질, 그리고 그것이 예술적인 작품 속에 표현되는 방식을 뜻합니다. 모든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만의 문체를 갖고 있지만, 우리가 논할 가치가 있는 것은 천재적인 작가들 각각의 독특한 문체 뿐임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 p. 139


문학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에 대한 연구는 주로 기질이나 교육 때문에 진정한 문학의 미학적 울림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쪽 어깨뼈 사이의 그 분명한 짜릿함과 설렘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말입니다(몇 번이나 거듭 말하지만, 등으로 책을 읽지 않는다면 책을 아무리 읽어도 소용없습니다).

- p. 143


하지만 소설이나 시에 대해 실화냐는 질문을 던지지는 마세요. 스스로를 놀리지 맙시다. 문학에 실용적인 가치가 전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하필이면 문학 교수가 되고 싶어하는 특수한 경우뿐이겠죠. 에마 보바리라는 여성은 실제로 존재한 적이 없지만, <보바리 부인>이라는 책은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겁니다. 책은 사람보다 오래 삽니다.

- p. 249~250


맨 처음 이 사건들을 촉발한 사소한 요소가 무엇이든, 당시 프랑스의 상황이 어떠했든, 그가 프랑스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했든 모두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에마 보바리라는 여주인공에게 사회가 객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반대합니다. 플로베르의 소설은 인간의 운명이라는 섬세한 미적분을 다룬 작품이지, 사회적 조건화라는 산수를 다룬 작품이 아닙니다.

- p. 251


오스틴 폴더의 다른 메모에서 나보코프는 플롯을 "미리 생각해둔 이야기"로 정의한다. 테마, 테마의 가닥line은 "둔주곡에서 어떤 곡조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듯이 소설 속 여기저기에서 반복되는 이미지 또는 생각"이고, 구조는 "책의 구성, 사건 전개,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을 야기하는 것, 한 테마에서 다른 테마로의 이행, 인물들을 교묘하게 등장시키는 것, 또는 새로운 행동 묶음이 시작되거나 다양한 테마가 서로 연결되거나 소설을 진행시키는 데 이용되는 것"이며, 문체는 "저자의 특별한 어조, 어휘, 독자가 어떤 문장을 보았을 때 이건 디킨스가 아니라 오스틴의 문장이라고 외치게 만드는 어떤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편집자

- p. 64



앞의 몇 인용문에서 보듯이 나보코프는 작품의 사회경제적 측면이나 역사적 측면은 거의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그보다는 작품에서 나타나는 플롯, 테마, 그리고 문체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나보코프 문학 강의>에서 그러한 것들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예를 들어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의 경우라면,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소송 테마, 미스터리 테마, 아이 테마를 쫓거나, 작품의 구조적인 특징을 살펴 보거나, 무뚝뚝한 나열이나 비유, 돈호법과 같은 디킨스의 문체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 나보코프가 보았더라면 아주 좋아했을 영화가 있다.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 2000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타이완의 중산층 가정의 가족들이 겪는 소소한, 그러나 결코 소소하지만은 않은 며칠 간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를 두고 삶의 가치와 지향점에 대한 감독의 물음과 해답, 또는 과거와 현대가 묘하게 결합되며 가족이 재구성되는 타이베이라는 보편적이지만 특수한 공간을 다룬 것이라고 소위 비평적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의 나보코프의 관점대로라면 그것은 집어치워야 할 것이다. 그의 눈을 빌려서 보면, 여기서 보아야 할 것은 사회나 시간, 공간이 아니라 플롯이나 테마, 그리고 문체 - 영화로 치면 촬영기법이라고 해야할까 - 와 같은 것이고, 사실 그것을 빼놓고 보는 것은 영화의 10분의 1도 채 못보는 것이기도 하다. 초반의 10분을 한번 살펴보자.


영화의 시작. 짧은 암전이후 결혼식장에 서 있는 신랑 신부의 모습이 보인다. 신부는 어딘지 불만족스러워하는 듯 보이고, 남자는 그런 여자의 눈치를 살짝 본다. 그리고 음악은 어딘지 모르게 살짝 불길하다. 이것은 물론 뒤이어 등장할 다른 여자와 그 여자와 연결되어 등장할 이야기를 슬며시 암시한다.


다시 짧은 암전 후 음악이 서정적으로 바뀌며, 아이들이 등장한다. 모인 하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지만, 카메라가 집중하여 비추는 것은 아이들이다. 남자 아이를 둘러싼 여자 아이들. 뒤에 선 키가 큰 여자 아이들은 작은 남자아이의 머리를 번갈아가며 찌르는 장난을 치고 있다. 이는 나보코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두 가지의 테마를 가져온다. 하나는 여자 아이들에게 앞으로 계속 시달림을 받게 될 남자아이의 테마,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람은 누구도 뒤를 볼 수 없다는 보다 큰, 아마도 작품의 전체를 가로지르는 테마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앞서 등장했던 신랑 신부와 결혼식에 참석한 신랑 누나 부부와의 대화. 가장이 되었으니 앞으로 잘하라는 매형의 말이 앞서 뭔가 불만족스러워하던 신부와 연결된다. 또한 아이들이 어디 갔는지 찾는 장면이 바로 아이들의 모습과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등장인물들을 소개한다. 등장한 가족의 큰 딸인 팅팅은 할머니와 대화를 이어가는데,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은 앞으로 이어지게 될 내용을 다시 암시한다. 


그리고 다 끝난 결혼식장에 등장하는 또다른 여자 윤윤. 불편해보이는 할머니에게 자기가 며느리가 되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며 막무가내로 이야기하는 여자의 모습은 아주 극 초반부의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이는 여러가지의 효과를 불러오는데. 거침없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윤윤의 성격을 보여주기도 하며, 동시에 이 장면 이후 불편함이 한층 가중되어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 이후 이어질 사건에 대한 세심한 복선이 된다. 또한 이는 앞으로 이어질 아디(신랑)와 윤윤을 둘러싼 일종의 삼각관계 테마이기도 하다. 이 삼각관계 테마는 앞으로 여러 결로 여러 인물을 통해 반복된다. 


집안의 가장이자 아디의 매형 NJ와 딸 팅팅은 뒤집어진 결혼식 사진 뒤에서 대화를 나눈다. 할머니가 집에 빨리 가고 싶어한다는 말을 전하는 팅팅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불길하며 뒤집어진 결혼식 사진은 그러한 분위기를 가중시킨다. 물론 이는 신랑 아디와 신부 샤오얀의 앞으로의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서야 검은 화면에 제작사 등을 표시하는 오프닝 크레딧이 나온다. 그러나 이 오프닝 크레딧은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샤오얀 어딨냐며, 나오라고 그러다 천벌받는다며 소리지르는 윤윤의 목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린다. 사실 이 영화는 이처럼 화면과 매칭되지 않는 목소리 또는 대화가 계속 이어진다. 즉 화면에는 어떤 이들의 모습이 나오지만 같이 붙어 나오는 소리는 그 사람들의 목소리 혹은 대화가 아닌 경우가 많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불균질해 보이지만, 사실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기도 하다. 사실 우리는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을 보고 있지 않은 경우가 더 많으니까. 물론 그리고 이는 앞의 주요한 테마를 다시 연상시킨다. 우리는 누구나 뒤를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제서야 제목이 나온다. 하나 그리고 둘(A One and A Two). 어쩌면 윤윤 그리고 아디와 샤오얀. 그러나 그것은 물론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 샤오얀 그리고 아디와 윤윤. 오로지 그것은 관점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 할머니는 깊은 상념에 빠져 있다. 이 때 카메라는 오롯이 할머니만을 비추지만, 차에서 내리는 할머니를 팅팅이 부축한다. 아마 운전은 NJ가 했을 것이다. 그리고 팅팅과 할머니가 집에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을 CCTV가 비추고 있다. 왜 우리는 이 화면을 CCTV로 봐야 하는가. 카메라와 CCTV라는 이중의 화면, 이중의 필터를 거친 화면. 이는 카메라라는 어떤 절대자의 존재를 다시 상기시키며, 동시에 뒤를 보게 하는 카메라라는 거대한 테마를 다시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보다 간단하게 말하고 싶다. 즉 불길하다. 나는 불길하다는 것을 여러 번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잠겨진 문.


엘리베이터를 올라오니 가족의 옆집에 누군가가 이사를 오고 있고, 옆집의 이사온 리리와 팅팅은 처음으로 만난다. 앞으로 팅팅에게 이어질 또다른 테마를 위한 시초가 여기서 자연스럽게 변주된다. 카메라는 팅팅의 집안을 느리게 비추다가 부엌을 정리하는 팅팅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화면에 쓰레기를 버리라고, 그리고 베란다에도 쓰레기가 하나 더 있다고 말하는 NJ의 목소리를 입힌다. 자, 이 쓰레기가 불러올 것.


이 말을 하는 NJ는 방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중인데, 그는 멍한 표정으로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내가 뭘 찾으러 왔더라? 그리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팅팅의 모습이 여기에 붙는다. 이것은 두 가지의 잊음으로 변주된다. 하나는 이 잊음의 테마의 반복. 잠시 후에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내가 왜 내려왔더라?라고 말하는 어떤 남자를 만날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는 무엇인가를 잊고 살아온 NJ의 이야기로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팅팅이 하나의 쓰레기는 버리지만 다른 하나(베란다에도 있다는 그 쓰레기)는 잊게 될 것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팅팅)은 왜 잊어버렸을까? 쓰레기를 버리러 간 주차장에서 리리와 그녀의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며, 베란다에서 쓰레기를 정리하다가 다리 밑으로 밀회를 나누는 리리와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잊음은 다음의 이어질 일련의 사건들과 이어진다.



결혼식장에 돌아가기 위해 차를 탄 팅팅과 아빠 NJ의 대화는 샤오얀과 아디, 윤윤의 관계를 보는 이들에게 간단히 정리해서 들려주며, 동시에 이제 늙었나보다,라고 말했다는 할머니, 그리고 그 할머니에게 일어날 사건을 다시 암시한다. 물론 팅팅이 이 말을 꺼낸 것은 단순히 샤오얀과 아디, 윤윤의 이야기를 보는 이들에게 정리하여 보여주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이 삼각관계가 다시 팅팅 자신에게도 비슷하게 변주될 것임을 이 장면은 묘하게 연상시킨다.


그리고 다시 결혼식장, 식당에서 극성맞게 축하를 받는 신랑 아디와 신부 샤오얀. 이어지는 장면에서 다시 처음 등장했던 작은 남자아이, 그러니까 가족의 막내 양양은 식당 밖에서 결혼식에 참석한 다른 키큰 여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신발마저 빼앗긴다. 침울하게 다시 식당 테이블에 돌아온 양양의 모습을 카메라가 비추지만, 이 때 이 화면에 붙는 대화는 양양의 엄마(민민)와 테이블에 앉은 다른 어른들과의 대화이다. 임신을 한 샤오얀이 흠이 될 게 없다는 엄마의 말에 다른 남자 하나가 '여자는 그런 식으로 남자의 발목을 붙잡는다'는 식으로 대답한다. 즉 양양의 발목에 있던 신발은 이미 여자아이들에게 붙잡혔으며, 이때 양양은 슬며시 '뒤돌아본다'. 여자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즐겁게 노는 중이다.



이게 겨우 영화의 시작 후 10분이다.

그리고 버릴 단 하나의 씬도 없이 결혼식장에서 시작하여 장례식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2시간 50분이 넘는 영화이기도 하다. 2000년에 개봉한 이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을 나보코프는 볼 수 없었지만, 그리고 나보코프가 영화를 좋아했는지도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보았더라면 그는 아마도 척추에 "틀림없이 찌릿찌릿한 느낌"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장담할 수 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거핀 2020-08-27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풍이 지나가고...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 영화가 갑자기 보고 싶다. 지금 이 시간들은 끝나지 않은 거대한 태풍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바람은 잦아들고 매미는 울고 있지만..보이지 않은 태풍은 여전하다.

희선 2020-08-28 0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게 별일이었군요 앞으로 일어날 일 같은 거, 여자아이한테 괴롭힘 당하는 모습... 그런 건 정말 그냥 그런가 보다 할 듯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게 된다니... 결혼식으로 시작하고 장례식으로 끝난다니, 할머니한테 보이는 안 좋은 모습은 그거였나 싶네요 할머니가 죽으리라고 생각하다니, 아닐 수도 있을 텐데... 이름이 같은 글자 두번 쓰는 사람이 많네요 그건 그저 그 나라 사람 이름이 그런 것뿐이겠습니다

태풍 하나 지나갔는데 또 온다고 하더군요 2020년이 오기 전에는 뭔가 좋은 해일 거야 한 사람 많았을 텐데, 그렇지 않은 해군요 세상도 그렇고 저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게 세상 때문일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조금 영향이 있는 것도 같군요


희선

맥거핀 2020-08-31 10:23   좋아요 1 | URL
사실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더 좋아지는 영화들도 있거든요. 이 영화의 메시지는 간단하지만 큰 울림을 줍니다. 근데 그 힘은 그 메시지 자체라기보다는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사실 그런 게 영화라는 것의 가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메시지 자체가 아니라, 메시지를 직조하는 방식.

뭐 물리적인 태풍도 그렇지만, 코로나가 창궐하는 지금 이 시기는 뭔가 태풍의 한가운데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대로 이런 해가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피로합니다, 피로해요. 코로나도 그렇지만, 그 코로나를 앞에 두고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이 너무 많고 필요없는 논쟁들도 많아요. 그냥 조용히 영화나 보고 싶은 요즘입니다. 바로 <하나 그리고 둘> 같은 영화요.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82&aid=0000971669




신춘문예와 같이 발표되지 않은 작품을 심사하여 당선작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이미 발표된 작품을 심사하여 당선작을 가리는 '이상문학상'이 왜 이런 규정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상을 줄테니 3년간 작품을 양도하라...니, 도대체가? 애정하고 있는 김금희 작가인데..


올해 이상문학상은 패스할까나...



덧.

기사추가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28&aid=0002480594


최은영, 이기호 작가도 수상 거부. 올해 이상문학상 발표 무기한 연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희선 2020-01-07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을 주는 것에도 계약서가 있다니... 상을 줄 테니 그쪽 말을 들으라는 말이군요 세해 동안 작품을 양도하는 건 지난번부터였네요 왜 그런 걸 집어넣었을지... 그런 계약이 있어서 상을 받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대단합니다 그런 말하기 쉽지 않을 텐데...

맥거핀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몸 마음 다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희선

맥거핀 2020-01-08 17:20   좋아요 1 | URL
뭐 정확하게 말하면 상을 주는 것에 대한 계약서라기 보다는 책을 출판하는 계약서이겠습다만, 사실 상과 연계된 거라서 일종의 갑질처럼 보이죠. 말씀하신대로 김금희 작가 정도 되니 그래도 얘기를 할 수 있는 것 같고..

사실 따지고 보면 신진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이라든가 하는 부분에서는 더한 부분들이 많을 겁니다. 상을 줄테니 대신 너의 작품을 어떻게 하겠다는 식의...문단에 등단한다, 혹은 문학상을 받는다는 것도 이미 일종의 권력으로 작용한지가 오래되기는 한 것 같더라구요.

희선님도 늘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작금의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쟁들의 과열 양상이 놀랍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고, 온 인터넷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할 일인가. 물론 한 나라의 법무부 장관을 선정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인터넷 게시판들에 상주하며, 양 진영에서 온갖 글들이 양산되는 현재의 양상들을 보며, 각종 의혹을 찾아내고, 또 그 의혹에 성심성의껏 방어하는 그 대단한 열정들이 조금 놀랍다. 이렇게 말하면 냉소적으로 들리겠지만 사실 솔직하게는 그렇다.

 

나는 개인적으로 굳이 의견을 말하라고 한다면, 이이제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처단한달까. 현재의 사법부에 얼마나 곪은 부분이 많은지는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그에 총체적인 개혁이 필요함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의 적임자가 조국이라면 그 인물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솔직히 조국이 적임자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모든 도덕성과 제기되는 의혹들을 떠나서 그 능력적인 면에서 말이다.) 다만, 최근 느끼는 것은 조국과 나는 근본적으로 아주 먼 위치에 있다는 새삼스러운 확인이다.

 

강남좌파. 최근 조국을 둘러싼 논쟁에 의해 다시 수면 위에 떠오른 말 중에 하나지만,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것이 될 수 없는 것을 안다. 아니, 좌파는 되어도, '강남'좌파는 못 될 것이다. 나는 이미 서울에서 밀려난지 오래고, 서울 외곽부로 겨우 머리를 어떻게든 들이밀고, 비집고 용케 들어갈 수는 있어도, 강남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물론 '강남좌파'라는 용어가 단지 위치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농담을 섞어서 말하자면 그렇다. 그러니까, 그들과 나는 다른 곳에 서 있다는 새삼스러운 확인이다. 그것을 몰랐어? 몰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물론 나는 땀을 약간 흘리면서 말할 것이다. 아니 알고 있었지...근데 왠지 똑똑하고 멋있는 사람이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면 좋잖아, 그렇잖아, 너도 그렇지 않았었어? 라고 되물을 것 같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요즘 조금 씁쓸하다. 아니, 이건 정치에 냉소적으로 된다는 것과 조금 다른 문제다. ('이이제이'를 하려면 어떤 오랑캐가 조금 더 쓸만한지 면밀히 검토해야만 한다.) 나는 여전히 다음 선거에서 누군가를 선택할 것이고, 정치 뉴스를 꽤나 열심히 들여다보기도 할 것이다. 특정 정당은 두번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지지하지 못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결국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으니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접근(법률상으로, 혹은 절차상으로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들을 의심하지 않는다.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치밀한지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혹은 이는 단지 있는 절차들을 잘 이용한 것이거나, 있는 돈을 잘 활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할 때는 모종의 감정적 단절감이 느껴진다. 적어도 현재의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는 그러하다.

 

조금 다른 얘기겠지만, 영화 <기생충>에 대한 리뷰들이나 감상들을 보면서 아주 묘하게도 이 영화에 대한 태도가 자신의 계급적 태도나 위치와 연관되는 부분이 있는 것 아닐까 하는 느낌들을 받았었다. 그런데 왠지 현재의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쟁들을 보면 비슷한 감정들이 느껴진다. 아니 멀리 갈 필요가 없이, 적어도 나를 보면 그렇다. 물론 이것은 단지 새삼스러운 확인이지만, '새삼스러운 확인'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그것은 거의 항상 씁쓸한 감정을 낳는다.   

 

 

 

 

* 점심 시간에 뉴스를 보다가 문득 쓰는 뻘글. 덕분에 다이어트.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19-09-04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른을 보니 반대가 약간 우세하지만 결국 서로간의 진영논리에 빠져 상대방이 진실을 호도한다고 서론 비난하는 형국이죠.뭐 조교수가 워낙 진보의 아이콘처럼 포장되서 진보쪽에서 결코 포기하지 못하는 감이 없지 않은데 보수측 인사가 이런 논란에 휩싸였다면 아마도 죽었다 깨어나도 대통령이 임명하지 못햇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맥거핀 2019-09-05 10:24   좋아요 0 | URL
네..한국사회를 망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그 진영논리이기도 하죠. 항상 편을 갈라서 너는 이편인가, 저편인가를 묻죠. 저는 지금 상황이라면 솔직히 법무부장관이 된다 해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그 검찰개혁의 성과가 나온다고 해도, 필요이상으로 폄하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해요. 양쪽 다 물러나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AgalmA 2019-09-04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국의 압도적 존재감, 그의 위치가 가진 상징성 때문에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거 같은데요. 현 야댱쪽에선 현 정권의 흠집내기 뿐아니라 그가 법무장관이 되었을 때의 위험, 혹여나 있을 조국의 대선 진출까지 세 마리(더 있을 수도) 토끼 다 잡자는 심산에서 더 기를 쓰고 있는 것일 테고, 서민 입장에선 계층 불만 토로, 정치권 비난하며 불이 활활타기 좋은 장작이 나타난 거죠. 에효.
그나저나 맥거핀님 오랜만입니다^^

맥거핀 2019-09-05 10:29   좋아요 0 | URL
네, 오랜만입니다.^^ 조국님 덕분에 이렇게 얘기도 나누고, 좋네요.
아무튼 아쉬워요. 지금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사법부 개혁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그 능력적인 면을 검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법부 개혁이라는 게 지난 노무현 정부 때부터 수차례 시도되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현 사법부는 국민들 사이에는 일종의 견고한 성채와 같다는 인식이 있는데요. 조국이 임명되어서 과연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해낼 수 있을까, 산적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봐야하겠습니다만...뭐 그건 이미 물건너 가는 것 같습니다.
이게 단지 현 야당의 발목잡기 때문인가? 그것에도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구요.
 

 

 

최근 출퇴근 루트를 바꿨다. 조금 더 먼 코스로. 이 코스는 예전에 가던 루트보다 더 돌아가기는 하지만, 그만큼 사람이 한적하여 뭔가를 하기에, 예를 들어 책을 읽기에 좋다. 지금까지 다니던 길은 사람들에게 이리 저리 밟히다가 순식간에 밀려나 낙오자의 설움을 맛보는 길로 여기서 책을 읽다보면, 내가 책을 읽는 것인지, 아니면 책을 읽는다는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지만, 이제는 앉아서 올 수도 있고, 조금 더 집중하여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덕분에 20분 정도는 일찍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차피 무의미한 1시간 30분보다는 조금 더 의미있는 2시간이 낫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때는 늘 이어폰을 꽂는다. 요즘 이어팟이니 뭐니 분리형 블루투스 이어폰이 유행인데, 내가 귀에 꽂는 것은 휴대폰을 살 때 주는 구식 유선 이어폰이다. 한 때 음질이 좋다는 여러 이어폰을 번갈아 바꿔가며 써보기도 했고,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하는 거액의 지출이 필요한 이어폰을 구매해서 써보기도 했지만, 사실 지금은 별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지금의 음악듣기는 일종의 '책읽기의 보조적 수단'이고, 그 외에는 가끔 야구중계를 보기 위해 이어폰을 꽂는 것이 다니까. 아나운서의 신나는 '안타~!' 발음을 조금 더 잘 듣는다고 해도 주자가 홈에 들어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유선 이어폰을 꽂고, 종이책 같은 것을 손에 들고 있으면 구식으로 보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만, 뭐 별로,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책을 가방 속에서 꺼내들고 읽기 전에 먼저 정성을 다해서 음악을 선곡한다. 이어폰은 별로 안 중요할지 몰라도, 이거는 상당히 중요하다. 내가 책을 읽을 때 주로 듣기 좋아하는 음악들은 메탈 계열의 음악들이다. 헤비 메탈, 트래쉬 메탈, 멜로딕 데스 메탈, 하드 록, 블랙 메탈, 프로그레시브 록, 얼터너티브 록, 고딕 메탈, 펑크 락, 팝 메탈..뭐라고 불러도 사실 상관은 없고, 아무튼 되도록 우당탕탕 때려대는 시끄러운 음악들을 고른다. 일단 이런 음악들은 자연스러운 차폐의 효과가 있어(따라서 고가의 노이즈캔슬링 기능은 필요가 없다) 지하철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소음을 감소시킨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뭔가 멍~하게 만드는 느낌이 있다. 나는 이것을 눈과 귀를 분리시킨다, 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고 있으면 눈을 통해서 들어오는 글자들이 귀 쪽으로 흘러나가지 않고 머리 속으로 곧장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일종의 하이패스 구간이랄까. 언젠가 책이 전혀 읽히지 않을 것 같은 매우 시끄러운 공간에서 책을 읽게 되어, 그 공간의 소음을 이겨내고자 엄청난 음량으로 헤비 메탈 음악을 들었더니 놀랍게도 책읽기에 상당히 효과가 있는 것을 경험한 이후로는 줄곧 이 방법을 쓰고 있다. 뭐 논문 같은 걸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오늘의 책읽기를 위한 선곡은 2014년에 발매된 X-Japan의 <X singles> 앨범이다. 이것만 봐도 내가 메탈이라고 이름만 붙으면 시끄러운 음악은 아무거나 듣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다. 사실 X-Japan은 나에게 일종의 길티 플레져 같은 음악인데, 그것은 아주 시답잖은 이유다. 지금은 (아마도) 사라져 버렸지만, 예전에는 뮤비(뮤직비디오) 감상실 같은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 중에 아주 센 메탈 계열의 음악을 주로 틀어주는 곳이 있었다. 커다란 화면만 보이는 어둠침침한 공간에서 커피(도 주문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무슨 메탈에 커피인가)나 맥주 같은 것을 시키고, 신청곡을 (무려 종이에 펜으로 적어서) 신청하면 주크박스에 계신 분이 틀어주는 구조였는데, 나는 종종 수업을 빼먹고 여기에 들러서 시간을 때우고는 했다. 아무튼 거기에 베놈이나 디무보거, 크래들 오브 필쓰 같은 게 나오다가 엑스재팬 같은 음악이 나오면 저걸 신청한 넘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넘쳐나는 아유소리가 대단했는데, 나는 그 야유소리를 듣는 게 너무 즐거워서 종종 그런 음악들을 신청하고는 했다. 하긴 X-Japan의 'Endless Rain' 라이브에서 소녀들이 떼창하는 소리를 거기에서 들으면 꽤 민망하기는 했지만.

 

그런 X-Japan과 함께 하는 오늘의 지하철 길동무는 니시카와 미와다. 지난 번 <고독한 직업>을 다 읽지마자, 새로 출간된 <료칸에서 바닷소리 들으며 시나리오를 씁니다>를 샀다. (근데 왜 구글에서는 료칸에서를 치니 '파도소리' 들으며 시나리오를 씁니다,로 자동완성되지? 파도소리보다는 바닷소리가 조금 더 느낌이 서정적인 것 같기는 하지만...) 읽기 전에는 그녀 특유의 글맛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이건 왠걸, 그녀의 개그감과 글을 조직해나가는 솜씨는 조금도 줄지 않은, 아니 도리어 더 늘어난 듯 하다. 책장이 줄어드는 게 아까워 최대한 느릿느릿 읽었다. 사실 말은 쉬운데, 글에 읽는 이의 흥미를 돋우는 적절한 포인트를 찍는 것은 정말 의도한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이게 마치 엄청 쉬운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해서 짜증났다), 중간중간 적절한 (개그)포인트가 글맛을 돋운다. 예전에 네이버에 계시던 모님(여기서의 '모'는 숨기기 위함이 아니고, 닉네임의 가장 앞 자가 '모'다)의 글이 그랬는데, 지금은 글을 다 지우고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리셨다. 돌아와요 모님.

 

니시카와 미와의 <고독한 직업>을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가와카미 미에코의 인터뷰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를 읽고, 다시 니시카와 미와로 돌아와 <료칸에서 바닷소리 들으며 시나리오를 씁니다>를 읽고 있다. 어쩌다보니 최근의 반일 시국에 역행하는 책읽기를 하고 있으니 이거 문제가 심각하다(심지어는 엑스재팬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를 이쩌나.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를 읽으니 이 인터뷰집의 주된 내용이 <기사단장 죽이기>를 다룬 것이라, 상권만 읽고 버려둔 '긴 얼굴'이나 멘시키 씨를 다시 만나야 할 것 같다. 상권의 기억이 가물거리니 상권부터 다시 읽어야 하려나. 이로써 한동안 내 친일 독서 기조는 계속될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9-01 0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5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