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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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진리, 확실하다 혹은 이루게 하소서의 뜻. 이 영화는 둘 중 어느 쪽인가. 영화에서 자꾸만 영화밖의 다른 것을 말하게 될 때....슬프면서도 여전히 그가 무엇인가 찍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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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12-09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그가 무엇인가 찍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 하는 건 맥거핀님인거죠? 감독이 하면 큰일날 것 같은데..( ..)

맥거핀 2011-12-10 00:35   좋아요 0 | URL
아..애매한 문장을 썼네요.(100자로 줄이다 보니까요.) 물론 접니다. 그냥 제가 소소히 안도하는 중이죠.
 
숏컷 - Short Cut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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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시간이 짧아도 매우 지루한 영화가 있고, 상영시간이 길어도 꽤 흥미로운 영화가 있다. 영화 <숏 컷(Short Cuts)>이 바로 후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여러개를 오려붙인, 미국 LA의 아홉 커플(여덟 쌍의 부부와 한 쌍의 모녀)이 거의 동등한 비중을 가지고 등장하는 3시간 7분 짜리 영화이다. 이 영화는 그 제목이 의미하는 바대로 무수한 숏 컷들의 끊임없는 이어붙이기로 영화가 전개되는데,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이 영화는 고유의 리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동시에 그 모든 등장인물들을 관객의 뇌리에 고스란히 남겨놓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별 특이한 방법들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어떠한 플래시백이나 과도한 점프를 사용하지 않으며(즉 영화는 이 아홉 커플의 현재의 시간을 무심히 쫓아간다. 다만, 회상씬은 없지만, 등장인물의 대화로서 이루어지는 회상은 있다. 뒤에 또 이야기하겠지만, 이 대화들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과도한 카메라워크를 허용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조금 뒤로 물러서서, 이들에 대한 차가운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보다는 이 영화의 놀라운 리듬감은 그 숏 컷과 숏 컷들이 붙여지는 순간에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몇 가지 장면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웨이트리스 도린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피니건 부부의 어린아들 케이시를 차로 친다. 아이는 별로 다친 것 같지 않지만, 병원에 데려다주겠다는 도린을 뒤로 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집에 돌아와 갑자기 급격한 이상 증세를 보이며 피니건 부인이 따라준 우유를 마시지 않고 긴 잠에 빠진다. 컵에 가득 따라져 있는 우유를 클로즈업하며 컷의 마무리. 컷의 연결은 TV속 재난에 대한 위험을 이야기하는 공익(보험?)광고로 이어진다. 화면 속 우유컵이 탁자에서 쓰러지며 우유가 바닥에 쏟아진다. 이 화면은 도린의 집에서 도린의 남편 얼이 보고 있는 것인데, 얼은 아이에게 큰 사고를 입힐 뻔했다는 도린의 말을 시큰둥하게 들으며, 오로지 그것을 경찰이나 누군가가 보지 않았다는 것에만 안도한다. 또다른 장면. 첼리스트 여자가 농구를 한참 한 다음 옷을 모두 벗더니 갑자기 수영장에 뛰어든다. 그리고 마치 죽은 듯이 물에 떠 있다. 그것을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딸(첼리스트)과 사이가 좋지 않은 재즈여가수 어머니는 그녀에게 뻔한 수법(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수법)을 쓰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몰래 숨어서 지켜보는 수영장 청소부 제리가 있다. 그리고 컷의 연결. 한 여자가 나체로 물 속에 죽어 있다. 그리고 이것을 계곡에 낚시를 하러간 스튜어트 일행이 발견한다. 이 장면들은 이 영화의 대표적인 연결 장면들이다.

예를 든 첫번째 장면과 두번째 장면은 모두 시각적으로 장면이 연결된다. 피니건 부인이 따라준 우유컵과 광고 속 가득담긴 우유컵, 그리고 수영장에 죽은 듯이 떠있는 나신의 여자와 죽어서 계곡에 떠있는 나신의 여자 시체. 그러나 이 연결들이 단순한 시각적인 연결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의미적으로 볼 때 이 장면들은 이 등장인물들의 망가진 영혼들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한다. 사고를 당한 케이시의 컷 이후에 곧바로 그에게 해를 입힌 도린과 얼의 컷을 붙임으로써, 이들, 특히 얼의 추악한 진짜 속내를 드러내보인다. 두번째 장면도 마찬가지다. 수영장에 들어간 여자와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이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어머니, 그에 이어지는 컷은 계곡에서 나신의 시체를 발견한 낚시꾼들이다. 이들의 행동은 어떨까. 그것은 익히 예상이 가능하다. 이들은 이 시체를 물에서 꺼낸다거나,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하지 않고, 태연하게 술을 마시고, 그 물에서 물고기를 잡는다(즉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이 영화의 놀라운 편집의 예술은 이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장면들은 모두 의미망 아래 층위에서 작동하며 일종의 복선의 구실을 함으로써 표층의 의미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첫번째 장면에서 우유는 광고 속에서 모두 바닥에 쏟아진다. 이것은 결국 이 영화에서 케이시가 처하게 될 운명을 암시한다. 두번째 장면에서 수영장에서 나신으로 시체처럼 떠 있는 여자 첼리스트, 그리고 이것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제리. 이것은 이 여자 첼리스트가 닥치게 될 앞으로의 일을 말해줌과 동시에, 제리의 미래까지도 보여준다. 동시에 그 계곡 속의 여자에게 닥쳤던 범죄(성폭행)가 무엇이었는지 관객이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두 가지 장면을 예로 들었지만, 이 영화에서의 무수한 컷과 컷의 연결에는 이러한 장면들이 많다. 즉 이 컷의 연결은 세 가지 층위에서 작동을 하는데, 그것은 시각적인 컷과 컷의 연결이 하나고, 그것을 이야기하는 역(逆)의 의미망 발생이 하나고, 그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잠재된 욕구와 미래의 운명을 암시하는 연결이 하나다. 이 영화 <숏 컷>의 지속적인 리듬과 의미의 발생에는 바로 이 컷과 컷의 연결, 즉 로버트 알트만의 놀라운 편집 감각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실로 정교한 기술이며, 놀라운 감각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렇게 짧은 컷으로 이루어진, 그리고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의 교과서같은 편집이며, 전범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후에 이 영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말해지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도 결코 도달하지 못한 리듬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두 영화의 유사성은 마지막의 예기치못한 재난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마지막 예기치 않은 개구리비가 쏟아졌듯이 이 영화에서는 마지막 예기치 않은 지진이 발생한다. 어쩌면 예기된 재난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장률의 <중경>과 같이 폭발 직전의 욕망들이 끊임없이 누적된다는 인상이 있다. 아무튼 예기되었건, 예기치 않았건 간에 재난 그 자체보다는 재난 이후의 모습이 더 흥미롭다. 처음 이 지진이 발생할 때는, 시작부터 성적타락과 도덕적 해이가 가득한 추악하고 위선적인 모습만을 보여주었던 등장인물들에게 일종의 징벌로서 이 지진이 발생했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이 지진은 그들에게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들에게 지진은 진도 7인지, 진도 8인지에 대해 논쟁하게 하는 한낱 흥미거리일 뿐이며, 도리어 어떤 범죄를 덮어주는 좋은 기회일 뿐이다. 그것은 아마도 이 지진에 대한 리포팅을 영화 내내 가장 엉망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헬기조종사 스토미가 하는 것으로 상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들의 존재가 재앙 그 자체는 아니었을까. 영화의 시작은 유럽 파리떼의 습격을 리포팅하는 TV뉴스와 그들을 박멸하기 위해 헬리콥터로 뿌려지는 살충제들이다. 이 TV뉴스는 과장되어 있으며, 이들(파리)의 박멸을 일종의 전쟁과 거의 같은 급에 놓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파리와의 전쟁을 영화 시작부분에 이야기하면서도, 영화 중간에 파리 코빼기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박멸하여야 될 파리는 무엇일까. 이 등장인물들의 집 지붕으로 쏟아지는 살충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들 자체가 박멸되어야 할, 즉 유럽에서 온 재앙(미국인들)은 아니었을까. 영화 속 살충제를 뿌리고 차례로 내려앉은 헬리콥터들이 마치 파리처럼 보였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영화 내내 수많은 대사를 지껄인다. 때로는 너무 많이 지껄여대 이제 그만 좀 닥치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그 수많은 대사들은 거의 대부분 아무 의미가 없거나 음담패설이거나, 누군가를 욕하는 말들일 뿐이다. 발화는 끊임없이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서로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화가 아니다. (이것은 그들이 자주 보는 TV를 연상시킨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에게는 유달리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TV를 보는 씬들이 자주 배당된다. 그들이 무엇인가 바보 같은 대사를 하거나 바보 같은 행동을 저지를 때면 어김없이 TV가 틀어져 있다. TV는 과장되어 있고(파리에 대한 리포팅처럼), 거의 대부분의 경우 진실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도리어 아이들을 상대로 한 만화들이다. 앞에서도 말한 컷과 컷의 연결에서 등장인물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보여준 이후 연결되는 컷들이 TV 속 만화(코믹스)인 경우들이 있는데, 그것은 이유가 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입장만을 이야기하며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플래시백은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영화에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로만 이루어지는 회상이 있는데, 이 회상은 반드시 말하는 자의 숨김이나 듣는 자의 외면으로 끝난다. 즉 회상은 결코 과거에 대한 반성을 불러오지 않는다. 그 과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 불가해했던 과거를 애써 외면함으로서 현재의 추악한 자신으로만 남는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누군가의 죽음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영화 속 가장 불가해한 일은 파리떼의 습격도 지진도 아닌, 케이시의 죽음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끝내 케이시는 조금은 어리둥절한 죽음에 이른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삶은 그렇게 불가해한 일로 가득차 있고 역설적인 일로 가득하다. 이 영화는 앞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역(逆)의 컷으로 계속 이어진다. 또 영화 전체적으로 보아도 그러한 면이 있는데, 영화 속 위선으로 가득한 병든 영혼들 속에서도 그나마 가장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사람을 찾자면, 웨이트리스 도린이다. 그러나 이 도린은 결국 영화 속에서 가장 중대한 잘못(케이시의 죽음)을 저지른 사람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 불가해한 역설로 가득한 세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전체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각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에서도 그렇다. 대부분의 인간은 겉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동시에 위선과 위악을 가득 담은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결코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 현재만을 보고, 현재만을 생각할 뿐이다. 그것을 이 영화 <숏 컷>은 어떠한 회상도 없이 느리게 그들을 관찰하면서 붙여나간다.

우리는 단지 현재의 '숏 컷'만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어떻게 붙여질지는 우리 자신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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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6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 마지막 문장, 멋진데요?!

맥거핀 2011-12-06 16:5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민망하네요.ㅎ

Shining 2011-12-06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양한 영화를 보시는군요. 맥거핀 님의 리뷰는 언제나 놀랍지만 가끔은 영화 목록만 훑어도 감탄할 때가 있답니다^^; 저는 편협한 성격이라ㅠ 이게 잘 안 고쳐지네요ㅠ

맥거핀 2011-12-06 23:39   좋아요 0 | URL
요즘에 여러 자잘한 영화제들도 많고, 여러 좋은 기획들도 많아서, 좋은 영화들을 볼 수 있는 루트는 점점 늘어나는 편이지요.(뭐 하다못해 집에서 볼 수도 있구요.) 근데 뭐 영화는 많아도 시간이 잘 안받쳐주니..ㅠㅠ 알트만전 같은 경우에도 시간을 맞추다보니 보고 싶던 영화는 못보고 다른 영화들만 보고 왔네요.
근데 뭐 저도 편협한 건 마찬가지라..액션물이나 블록버스터 같은 것은 또 잘 안보네요.^^;

아이리시스 2011-12-06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말씀하셨을 때 훑어보다 이 영화에 관심이 갔는데 보셨군요. 저는 이제 영화 볼 때 100분 이상은 집중을 못하겠어요. 초딩의 집중력ㅋㅋㅋ

저 사진 한 장이 맥거핀님 글의 많은 부분을 상상가능하게 합니다. 사진이 막 시끄러워요, 으하하^^

맥거핀 2011-12-06 23:47   좋아요 0 | URL
아..저 장면은 영화의 거의 마지막이에요. 마구 떠들던 인물들이 잡담은 이제 그만이라는 식으로 레몬을 한입씩 깨무는 장면입니다. 알트만의 위트라 할수도 있구요. 뭐 인생의 신맛좀 보라는..;
100분의 집중력이면 뭐 슈퍼초딩인데요.^^ 저도 요즘에는 한 120분이 넘어가는 영화면 시작부터 약간 긴장을 해요. 뭐 이렇게 아예 긴 영화는 그냥 마음을 비우고요. 중간에 졸리면 자자 이런 식으로.^^

아이리시스 2011-12-08 01:33   좋아요 0 | URL
상업영화 아닌 그래도 <영화>란 걸 좋아한다 말하려면 100분은 초딩 집중력 맞아요. 하하하. 100분은 다들 집중하고 견디잖아요. 마음을 비우는 방법 좋겠군요. 끝까지 꼭 봐야한다는 강박이 그렇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맥거핀 2011-12-09 00:34   좋아요 0 | URL
사람이란 참 웃긴게, 뭐 어떻게든 참고 버텨야지...하면 대체로 잠이 오니까요. 근데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해도 안되는 영화도 있어요. 저는 예전에 <엑스맨> 볼 때 극장에서 3번인가 4번인가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한 적도 있어요. 그것도 짧게 그런거도 아니고 한 20분 보다가 한 5분 자다가 깨고, 그리고 다시 정신차려서 한 20분보다가 또 졸고..제가 `맨`나오는 영화를 워낙 안좋아하기는 합니다만..;
 
플레이어 - The Pl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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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에도 급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이 영화를 보고나온 헐리우드 제작자들의 표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하기는 찔리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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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12-01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자라는 것은 결국 B급일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는데도, 이 영화에서 늘 이야기되는 8분이 넘는 롱테이크 오프닝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된 S급의 영화인지를 알게 된다. 거대한 연극무대에 번갈아 밝혀지는 조명을 연상시키는 이 오프닝의 유려한(그야말로 유려한) 카메한 워크에 내재된 그 정교한 계산들. 이 계산들은 이곳이 단지 기의가 없고, 기표만이 떠도는 허위의 공간임을 관객들에게 바로 인식시킨다. 모든 것은 오로지 누구누구 식의, 누구누구 영화에 나왔던 한 장면이라는 식으로만 이야기되는 곳. 자신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은 오로지 자신과 관계된 다른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만 가능한 곳이 바로 이곳 할리우드라는 것을 말이다.

맥거핀 2011-12-01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 할리우드만 그런 곳이겠는가. 하다못해 영화리뷰를 쓰는 것에서도 기표만 떠도는 글들이 있다. 이 영화의 이 장면은 어떤 감독의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을 연상시키고, 이 장면은 다른 영화의 다른 감독의 다른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식의 이야기만 가득한 리뷰.(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적당한 감독을 선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키 카우리스마키나 코스타 가브라스 등 이름은 들어봤으나 많이 보지는 않았을듯한 감독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긴 이름이면 금상첨화.) 그런 리뷰들에서 가장 궁금한 점은, 그 장면이 실제 그 장면과 비슷한지는 둘째로 놓더라도, "과연 그게 칭찬이 되는가"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소설가에게 당신 문체가 참 이문열스러워요..라고 말하면 그 소설가가 좋아할까.

맥거핀 2011-12-01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그렇고 이 알라딘 영화 정보는 도대체 어디 것을 퍼왔는지..이 영화의 주연이 그레타 스카키와 셰어? 아니, 저렇게 메인포스터에도 떡하니 버티고 있는 팀 로빈스 형님은 어쩌고..그러다 로빈스 형님한테 혼나.
 
고스포드 파크 - Gosford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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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이 정지해 있을 때에도 계속 움직이는 카메라는 영화에 끊임없는 긴장과 활력을 불어넣는다. 여러 인물들의 동선과 배치, 구도는 단지 테크닉으로서가 아니라, 그 밑의 숨겨진 내면의 욕망을 드러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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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11-28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영화를 보시니 도움이 많이 됩니다. 리뷰도 좋구요. 일단 구체적이지 못한 뻔한 댓글로 인사드리고 갈게요, 다시 오겠습니다, 맥거핀님.^^

맥거핀 2011-11-28 23:09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아이리시스님. 글은 종종 몰래몰래 읽었었는데(영화리뷰도 그렇고) 제 서재에서 또 이렇게 인사를 드리네요. 앞으로 종종 뵙지요.

혹 이 영화 좋아하시나요? 밑의 글에서도 잠깐 쓴 것처럼, 로버트 알트만 전이 하길래 보고 온 영화입니다. 다른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맞아서 예상치못하게 이 영화를 보았는데, 이 영화도 꽤 좋았습니다.^^

2011-11-29 1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1 0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2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예전에 극장에서 매우 좋게 본 경험이 있어서, '제 값' 주고 디비디도 샀는데요. 다시 보니까 첨만큼 좋진 않더군요. 왠만하면 영화 2번 보는 건 (저에겐) 별로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ㅎ

맥거핀 2011-12-02 17:31   좋아요 0 | URL
저는 반대로 이 영화 DVD를 먼저 가지고 있었는데요(제 돈주고 산 것은 아니고, 잡지 부록으로요. ㅋ). 이번에 또 영화관에서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특히 이 영화같은 경우는 작은 화면으로 보는 것과 넓은 스크린으로 관람하는 것이 매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 알트먼 감독은 의도적으로 풀샷을 자주 쓰는데, 그 풀샷에서 뿜어져나오는 스케일과 구도를 보기에는 스크린만큼 좋은 것이 없겠지요.^^
 
머니볼 - Money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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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여러 내용 있습니다.)


1.
'머니볼(Money Ball)'이라는 말은 언뜻 야구에 대한 조롱처럼 들린다. '베이스볼'은 물론이고, '빅볼', '스몰볼'은 있었지만, '머니볼'이라는 말은 없었다. 돈 야구라니, 야구 앞에 기껏 가져다가 붙일 수 있는 말이 고작(혹은 무려) 돈이라니. 소위 말하는 '전통적인 야구광'들은 그 용어에서부터 거부감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튼 야구에 있어서는, 그리고 적어도 MLB(Major League Baseball)에 있어서는 그 용어에 거부감을 느끼든, 아니든간에 이미 돈이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야구에 있어서 돈은 중요한 요소였고, 애써 아닌척 해왔을 뿐이다. '머니볼'을 정확히 정의하기란 힘들다. 아주 간단하게만 말하면, 스몰 마켓의 구단이 적은 돈으로 최대한의 효율(승리)를 이끌어내는 야구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 빅 마켓의 구단도 원하기는 마찬가지다. 또한 적은 투자로 최대한의 이익을 이끌어내는 것은 야구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서도 그러하다. 

방법상으로 따지면, 그것은 선수의 보여지는 면보다 기록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라는 용어로도 이야기할 수 있는데, 결국 야구란 기록의 스포츠이며, 통계의 과학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선수를 선발하거나 평가하는데 있어서 그간의 통계, 기록에 입각하여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확률에 거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간 2할 5푼에 꾸준히 머물렀던 타자가 올해 3할을 칠 확률에 거는 것보다는, 당연히 그간 3할을 꾸준히 쳐왔던 타자가 올해도 3할을 칠 확률에 거는 것이 승산이 높다. 이것을 머니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러나 단지 기록의 중시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머니볼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는 그러한 방법에 숨어 있던 빈 구석을 발견해내는 것에 달려 있다. 즉 모든 구단들이 이렇게 기록(스탯)만을 중시했다면, 당연히 좋은 기록을 가진 타자가 더 높은 몸값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머니볼에서 발견한 것은 그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괜찮은 기록을 가졌지만, 저평가되던 선수들이 있다. 머니볼은 그런 선수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2.
물론 이것에는 맹점이 있다. 야구에서는 기록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좋아하는 게임 중에 '베이스볼 모굴(Baseball Mogul)'이라는 게임이 있다. 영화 <머니볼>의 빌리 빈처럼 MLB 구단 단장이 되어 야구단을 경영하는 게임이다(비슷한 게임으로는 OOTP 같은 것이 있는데, OOTP가 Mogul보다는 훨씬 세밀하다. 그러나 물론 너무 세밀하기 때문에 쉽게 지치게 만든다는 단점도 있다). 아무튼 이 게임의 목적은 실제의 현실과 같이 팀을 우승시키는 것인데, 처음에는 난이도가 꽤 높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금방 요령이 생긴다. 사실 방법은 간단하다. 많은 돈을 들여 좋은 선수를 영입하면 된다. 그러나 그럴 경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돈은 바닥나고, 팀은 파산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낮은 돈으로도 점차 높은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유망주들을 많이 영입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팀 페이롤(payroll: 연봉 총액)을 낮추고, 또 남는 돈으로는 FA 시장에서 알짜배기 선수들을 영입할 수 있으니, 당연히 팀의 성적은 올라가게 된다. 또 조금 더 악독한 방법으로는 팀의 유망주들을 빨리 장기계약으로 묶어, 오랫동안 싼 값에 활용하는 방법도 있고, 여러 다른 팀에게 약간 사기성있는 트레이드를 시도하는 방법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방법들이 통할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이 변수가 그리 높지 않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것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모굴 같은 게임에서는 아주 예외적인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수들의 능력치가 우리가 충분히 예상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게임에서의 유망주는 필시 몇 년이 지나면 스타플레이어가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정확한 그간의 기록에 의거해 어떤 선수를 스카우트했더라도, 그 선수가 팀에 와서 잘할지는 그다지 확신할 수 없는 문제다(예를 들어 책 <머니볼>에서 그야말로 '스페셜'하게 소개되었던 오클랜드의 유망주 포수 제레미 브라운은 메이저리그에서 몇 타석만을 소화하고는 사라져버렸다. 반면 비슷하게 좋은 평가를 받았던 닉 스위셔는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괜찮은 커리어를 기록중이다). 마이너 기록을 그다지 신뢰할 수 없는 신인의 경우라도 그렇고, 바로 전년도까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던 선수가 FA 영입 후 갑자기 기량이 엄청나게 저하되는 것은 흔한 경우다. 즉 현실에는 게임보다 엄청나게 많은 변수가 있고, 그 변수들이 기록의 신뢰를 급격하게 저하시킨다. 물론 이러한 기량의 저하 문제는 많은 변수 중 단 한가지일 뿐이다.

또 동시에 보이는 기록이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다. 예를 들어 기록은 팀 캐미스트리 같은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게임에서는 연봉이 높고, 좋은 능력치의 선수들만 잔뜩 수집해놓으면 팀의 우승은 떼놓은 당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야구는 결국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조합이 팀 전체에게 좋은 영향으로 작용하는가, 나쁜 영향으로 작용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게임에서는 1+1이 2가 되거나, 최소한 1.5는 되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1이나 -10이 될 수도 있다. 스포츠의 역사에서 한 팀에 모인 여러 스타플레이어들이 팀 캐미('융화력'?)를 저하시켜 팀에 마이너스의 영향을 끼친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들 수 있다. 이것은 영화에서도 보여지는데, 빌리 빈은 스탯만 생각하고 데려온 제레미 지암비를 결국 팀 캐미를 해친다는 이유로 내보내야만 했다. 이 부분은 도리어 머니볼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3.
그러므로 사실 <머니볼>은 따뜻한 이야기는 아니다. 딸과의 여러 에피소드나 선수들과의 관계, 빌리 빈(브래드 피트)과 피터 브랜드(요나 힐 - 사실 실제로는 '폴 디포데스타'라는 인물)와의 이야기 등으로 왠지 따뜻한 이야기 같다는 인상을 심지만, 그저 야구 이야기로 보면, 조금 더 잔혹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즉 그것은 다시 말해서 최소 투자에 최대 효율을 이끌어내는 경제학, 경영학의 법칙에 입각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사실 인간은 조금 밀려나 있다. 즉 이러한 경영은 거의 게임과 비슷하게 되어간다. 게임에서는 오로지 한 가지만 집중하면 된다. 그것은 팀의 우승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그런가. 예를 들어 게임에서라면 왕년에 스타였지만, 이제는 기량이 저하된 선수에게 고액연봉을 줄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다른 어떠한 이유에서 - 예를 들어 팀의 프랜차이즈로 팬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면 - 고액연봉을 주고라도 데리고 있을 필요가 있다. 또 인기가 조금 없더라도, 선수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다면 데리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게임에서는 선수들을 트레이드하거나 방출할 때 오로지 할 고민은 돈에 관계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라면 그 외에 그 선수의 기량 외적인 부분도 볼 필요가 있다. 야구는 기록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어떻게 보면 <머니볼>의 경영학과 경제학은 조금 특이한 경영학이고, 경제학이다. 예를 들어 머니볼 이론에서는 오로지 기록에 의거해 신인선수를 선발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어떤 회사가 오로지 대학에서의 학점과 자격증으로만 사원을 선발한다면 어떨까. - 나는 이것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특이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각본가로 <소셜 네트워크>의 아론 소킨을 선택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라 하겠다. 사실은 잔혹한 이야기를 뭔가 잔혹한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삶의 성찰이 있는 것처럼 그럴 듯하게 꾸며내는 것은 이미 그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으니까. 그리고 그런 면에서 아론 소킨은 <소셜 네트워크>와 비슷한 전략을 쓴다.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그의 발자취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마치 한 사람의 성장담인 것처럼 이야기를 교묘하게 뒤바꾸어 버린다. 그리고 그의 성공이 아니라, 그의 실패를 먼저 이야기하며 관객에게 어떤 동정심을 심는다. 예를 들어 <소셜 네트워크>가 친구와의 소송 문제에 휘말려 있는 마크 주커버그로 영화를 시작하고, <머니볼>이 2001년 양키스에게 패해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는 애슬레틱스, 그리고 주축선수의 팀 이탈을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영화의 제목들은 <마크 주커버그>나 <빌리 빈>이 아니고, 그렇다고 <페이스북>이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도 아니고, <소셜 네트워크>와 <머니볼>이라는 사실이다.



4.
빌리 빈의 오클랜드는 왜 포스트시즌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까. 뭐 여러 설명들이 있다. 예를 들어 포스트시즌에서는 정규 시즌보다 득점보다는 실점, 공격보다는 수비가 중시되기 때문에 빌리 빈의 방식이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는 분석이 있다. 즉 일정 정도 이상의 강한 투수력을 갖춘 팀들만이 오르는 포스트시즌에서는 낮은 점수에서, 그리고 적은 점수차로 승부가 갈리기 때문에 실점을 막아주는 수비가 중시되지만, 빌리 빈은 이를 별로 중요시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도 당시 오클랜드의 아트 하우 감독은 1루 수비가 엉망이기 때문에 빌리 빈이 높은 출루율 때문에 선호하는 스캇 해티버그를 1루에 세울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빌리 빈은 그것(수비)은 중요하지 않다고 소리치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사실 스캇 해티버그는 당시 론 워싱턴 수비코치의 헌신 하에 상당한 정도로 수비력을 끌어 올렸고, 또한 당시의 오클랜드는 팀 허드슨, 배리 지토, 마크 멀더 등의 강력한 투수진을 갖춘 팀이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이것을 결국 머니볼의 한계로 볼 수도 있다.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서는 정규시즌보다 변수의 통제가 훨씬 어려워진다. 포스트시즌에서는 감독과 선수들 모두가 정규시즌보다 높은 중압감에 시달리며, 기록보다는 경험이 더욱 중시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포스트시즌의 경우 한 두 가지의 돌발변수가 경기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으며, 한 게임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게임에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 즉 변수의 출현과 그 변수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확률에 대한 통제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는 말이다('머니볼'이라는 것은 결국 확률 게임이므로).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우리가 주사위를 100번을 던진다면, 1에서 6까지의 각 숫자가 나올 확률(1/6)을 예측할 수 있지만, 단 3번을 던져야 한다면, 1이 나올지 4가 나올지, 6이 나올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 또 한편으로는 포스트시즌의 경우 정규시즌 이후이므로 체력의 저하가 심각한 문제로 작용할 수 있는데, 신인 선수 또는 노장 선수가 중심이었던 오클랜드의 경우(왜냐하면 신인이거나 노장이라야 싸기 때문이다), 그것이 더욱 문제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아무튼 머니볼이 먹혀들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많은 팀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적어도 머니볼 야구가 인간적이지는 않아도, 혁신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빌리 빈은 아직도 오클랜드의 단장이지만, 오클랜드가 요즘에는 예전과 다르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까닭은 다른 많은 팀들이 머니볼을 활용하는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빌리 빈은 예전에는 저평가된 선수를 싼값에 데려올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빌리 빈이 높게 평가한 선수를 다른 팀도 높게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리어 머니볼 이론은 그 이론의 내용보다도, 도리어 그 혁신성과 그것의 쇠퇴라는 사실 자체가 더한 시사성을 줄 것이다. 야구에 빅볼도, 스몰볼도, 머니볼도 아닌 새로운 것이 나타날 수 있을까.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5.
마지막 빌리 빈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단장직 제안을 결국 거부한다. 그는 영화 내내 구단주에게 선수 영입 예산을 더 줄 것을 요청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하며 골머리를 썩는데, 그렇다면 빅 마켓인 보스턴의 영입이 꽤나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그가 결국 보스턴의 제안을 거부하는 이유는 영화 안에서도 모호하게 처리되지만, 사실 실제로도 조금은 모호한 측면이 있다. 그는 오클랜드를 그만큼 사랑했을 수도 있고, 적은 예산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이끌어내는 것을 도리어 매력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보스턴의 경우 빅 마켓이고, 오클랜드와 비교할 수 없는 많은 팬을 가진 팀이기 때문에 부담감이 훨씬 더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당시 딸과 멀리 떨어질 수 없어서 오클랜드에 결국 남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편, 영화 속 마지막에 보스턴이 머니볼 이론의 도입으로 2004년 결국 수십 년만에 우승을 차지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역시 조금은 모호한 구석도 있다. 당시 새로 부임한 보스턴의 테오 엡스타인 단장이 머니볼 이론의 신봉자였던 것은 사실이나, 그의 경영이 빌리 빈의 머니볼과 그다지 유사하지만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보스턴의 2004년 페이롤은 2003년보다 도리어 증가하였고, 이는 다른 팀의 페이롤 증가율을 넘어서는 것이었다(2003년 개막 페이롤 : $ 99,946,500 -> 2004년 개막 페이롤 : $ 125,208,542). 이를 머니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영화에 나온 아트 하우 감독(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빌리 빈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고집쟁이 영감처럼 그려졌지만, 그가 그렇게 실제로 대립각을 세웠는지는 확실치 않다. 책 <머니볼>에서는 도리어 약간 허수아비처럼 그려지는 측면도 있다. 확실한 것은 아트 하우 감독은 오클랜드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음에도 재계약에 실패하였고, 그 뒤 뉴욕 메츠의 감독을 맡았지만,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그 뒤에는 변변한 감독 자리에 앉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또하나 덧붙이자면, 빌리 빈은 오클랜드에서 처음부터 단장직을 수행한 것은 아니었고, 스카우터와 부단장을 거쳐 단장이 되었다. 그의 전임자는 샌디 엘더슨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머니볼 이론의 많은 부분을 먼저 주창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빌리 빈이 그토록 부르짖는 '출루율 중시'는 사실 샌디 엘더슨이 먼저 세운 원칙이었으며, 빌리 빈은 다만 그것을 충실하게 계승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사실 빌리 빈이 이 머니볼 이론의 모든 것을 고안한 것처럼 그려지는 것은 조금 지나친 부분이 있다.

6.
영화 속 과장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지만, 야구 중계를 껐다 틀었다 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빌리 빈의 모습을 보며 사실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적어도 저 동네에서는 저렇게 이기는 것에 목말라하고 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그런 반면 한국프로야구는 어떨까. 물론 이런 비교는 여러 논쟁을 낳을 수 있다. 수십개의 팀을 가진 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프로야구와 이제 고작 삼십 년을 조금 넘긴 이제 9개팀뿐인 한국프로야구를 비교하는 것은 넌센스일 수 있다. 또한 미국프로야구에서도 여러 생각을 가진 구단들과 구단주들이 있으며, 한국프로야구에도 반대로 여러 생각을 가진 구단들과 구단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프로야구를 보면 여전히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 투성이다. 그것은 굳이 비교를 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 현재 굴러가는 여러 일들만 보아도 그러하다. 선수협의회를 구성하였다는 이유, 혹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보복 트레이드를 당하고, 팀에서 방출당하는 선수. 상식적인 기준, 그리고 팀을 강화한다는 이유만으로 생각해보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트레이드와 영입들(왜 '오캄의 면도날'을 한국프로야구에 적용할 수 없는가). 팀의 승리에 가장 필요한 조직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자체의 존망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이 보이는 프런트. 팬들이 뭔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자동으로 망가져 기능을 하지 않는 팀의 온라인 게시판들. 툭하면 팀의 운영을 그만두겠다, 야구판에서 떠나겠다고 협박조로 말하는, 그러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팀이 생기는 것을 은근히(때로는 대놓고) 방해하는 구단주들. 그리고 예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거의 분명한 자신들의 자리보전에만 힘쓰는 한국야구위원회의 여러 인사들.

이들은 이기는 것에 관심이 있을까. <머니볼>에서 결코 이야기되지도 않고, 이야기될 필요도 없는 것 - 즉 누구나가 이기는 것을 바란다는 사실 - 을 이야기해야만,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는 이 한국프로야구의 어떤 숨겨진 초상들을 우리는 언제까지 보아야 하는가. 책 <머니볼>에는 이런 부제가 달려있다.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과학" 빌리 빈의 머니볼의 방점은 뒤편 "승리로 이끄는 과학"에 달려있는 데 반해, 우리의 머니볼은 여전히 그 앞에만 방점이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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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1-2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신랑은 프로야구에 엄청나게 열광을 합니다.
우리나라 남자분들 뿐 아니라 여자분들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열광을 하죠.

그렇게 많은 분들이 열광한다는 것은, 결국 수익과 관련짓게 되고
프로야구는 그만큼 큰 시장을 형성하게 되는거군요. 저는 워낙 스포츠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방면으로는 생각해보지 못 했습니다. 그저 잘 하는 사람, 인간 승리,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아요. 물론 그런 면도 있겠죠?

이 영화 보고 싶네요, 하기사 제가 요즘 하고픈 일이 한두개가 아니랍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한숨 푹푹.

맥거핀 2011-11-22 14:11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요즘에는 약간 야구에 시들해졌어요. 뭐 시즌이 끝나서 그런거도 있지만, 응원팀의 최근행보를 보니 그냥 다 시들해지네요. 그래서그런지 요새 팀의 주축선수들이 다 떠나는데도 뭐 그러려니 합니다.^^

사실 우리프로야구는 많은 분들이 열광하는데 비해서 아직도 조금 그닥..스러운게 많죠. 팀 운영하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팬서비스나 구장 시설도 상당히 많이 떨어지죠. 개인적으로 구단들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요새 하는 짓들을 보면 별로 발전한 게 없는것 같아요. 맨날 성숙한 관중문화 어쩌구 하는데, 그 전에 자신들의 운영문화부터 돌아보는 것이..

남편분께서 그리 야구를 좋아하신다면, 가끔 야구장도 가시고 그러겠네요. 야구도 너무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즐기는 마음으로 가끔 가는 것도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일단 좋아하는 선수를 한 명 찍어서 팬이 되보시는 방법을 추천해드립니다. 잘생긴 선수로.^^

2011-11-22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2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7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합리성은 결국 야만을 낳는다는 아도르노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던 게 며칠 전이라, 이 영화를 보면서 빌리 빈의 방식에 썩 몰입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차가운 이야기에 인물의 인생 역정을 씌워 따뜻하게 포장했다'는 맥거핀 님의 말에 고개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인 합리성에조차 도달하지 못한 한국야구 얘긴 더 한숨 나오는군요.
그나저나 저도 이런 리뷰를 쓰고 싶다는 (실현불가능한) 욕망이 드는, 알찬 리뷰입니다.

맥거핀 2011-11-28 13:1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섬님. 이 '머니볼'을 저는 몇년전 책으로 먼저 접했었는데요. 이게 영화로 나온다길래 "도대체 이 경제학적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로 만들지?"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빌리 빈의 방식이라는 게 나름 혁신적이라고 볼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떻게보면 차가운 혁신성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 책이 화제가 된 이후에 많은 경영자들이 이 책을 또 참고한 것으로 아는데, 이것을 일반 경영에 도입한다면 그것은 한편으로 또 어떨지..(예를 들어, 회사내 자판기의 판매가격을 올리는 뭐 그런 방법?^^; 하기는 남들 얘기만 하기 뭐한게 저도 사실은 이 내용을 회사 프리젠테이션에 써먹기도 했었습니다만..;)

말씀하신대로 한국프로야구는 그런 것을 아예 이야기하기가 좀 그렇죠. 말씀하신대로 합리적인 것이 '근대성'이라면, 우리 프로야구는 아직도 '전근대적'이니까요. 맨날 MLB와 야구 수준의 격차를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선수들의 수준에서보다는 이런 데에서 훨씬 격차가 벌어져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리뷰에 대한 칭찬도 감사합니다. 서재가서 살짝 보았는데, 좋은 리뷰가 가득하던데요, 뭘.^^)

Mephistopheles 2011-12-1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야구의 전문성이 결여된 이윤추구가 최대 목표인 기업의 악세사리 정도로 취급받아서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전 요즘같은 야구열기가 조금 걱정되기도 해요. 화무십일홍이라는데, 이렇게 잘 나갈때 내실을 다져야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런 모습은 안보이는 것 같아요. 허구연 해설위원이 강조하는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거의 보이지가 않으니까요.

얼마 전 항공사진으로 본 미 8군 야구장을 보고 한숨이 나오더군요. 해외주둔미군기지 야구장의 그 완벽한 인프라가 부러울뿐입니다.

맥거핀 2011-12-18 23: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Mephistopheles님.^^ 말씀하신대로 우리 프로야구는 확실히 태생의 한계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프로야구가 태어날 때 미국식 보다는 일본식 모델을 본따서 만들어졌고, 따라서 그 자체가 하나의 기업으로 볼 수 있는 미국보다는, 아직까지 모기업의 홍보수단으로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겠지요. 최근 NC의 김택진 씨나 고양의 허민 씨가 새로운 방식의 구단 경영을 표방하는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될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예전에 여러 기사들을 보니, 우리 프로야구의 경우 자체야구장을 가지지 못한 것이 또 이런 프로야구의 발전을 막는 걸림돌인 것 같아요. 구장은 아직까지 대부분 시의 소유이고, 따라서 매년 시에 막대한 사용료를 내야하는 구단으로서는 새로운 방식의 경영을 하기가 또 어려운 것도 사실인 듯 싶구요. 말씀대로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좀 더 되어야지요. 지방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만 해도, 엘지나 두산이 한 구장을 쓴다는 것 자체가 좀 난센스죠.

시에서 더 투자를 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제 생각에는 시는 물론이거니와 기업에서도 더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한다고 봅니다. 맨날 적자타령하는데, 이 홍보효과라는 것이 사실 정말 막대한 건데, 기업에서는 시에서 조금 더 해달라...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하는데, 시민의 세금을 그렇게 많이 쓸수도 없는 노릇이죠. 개인적으로는, 구단들이 그간의 이익에 비해서 너무 돈을 안쓰고 있다고 봅니다.(맨날 적자 타령하는데..글쎄요.)

네오 2012-02-0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에서야 이 영화를 봤네요 ㅋㅋㅋㅋ 야구광팬으로써 너무나 좋은 영화였어요 ㅋㅋㅋㅋ 한때 espn 메이저리그 들낙날락 하면서 선수들 스탯보면서 희희낙락했는데 ㅋㅋㅋㅋ 저도 마찬가지로 빌리 본의 사람장사가 영화로 이야기한다고 하면 과연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올까라고 생각했는데 ㅋㅋㅋㅋ통계학 나오는 순간 그래 바로 이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서요ㅋㅋㅋㅋ 아!!!! 작년에 봤으면 베스트10에 들어갔을텐테 ㅋㅋㅋ 아쉽네요 ㅋㅋ 예일대 경제학과ㅋㅋㅋㅋ 아!!!! 거기 피터 필립스 교수가 계량경제학 지존인데 뭐 논문도 탑쓰리 들어갈정도로 쓰시고 아무튼 그 쪽 출신들이 통계에 밝죠ㅋㅋㅋㅋ 한때 우러러 보던 대학과 학과가 나오니 더 감동요 ㅋㅋㅋㅋ 완전 쓰고보니 덕후처럼 썼네요ㅋㅋㅋㅋ 메이저리그랑 우리나랑 야구랑 비교하면 안되죠 ㅋㅋㅋㅋ 맥거핀님글 읽으니 영화속 궁금한게 풀리더군요 특히 왜 안간거야 레드삭스 이부분요..저는 레드삭스팬이거든욬ㅋㅋㅋㅋ

맥거핀 2012-02-05 01:11   좋아요 0 | URL
저도 한 4-5년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 열심히 봤었는데, (제가 마지막으로 광분(?)했던건 콜로라도의 10월의 기적 때..) 근데 그 이후로 잘 안보다보니까, 요즘에는 신진선수들이 누가 있나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딱히 어디 팬이라고 하기는 그렇구요. (래리 워커 있던 시절부터 콜로라도를 쬐끔 좋아하긴 했어요.)

그쵸. 사실 어찌보면 야구영화라고 하기는 좀 거시기한 면이 있어요. 책도 거의 경영학 서적쪽에 가깝고..네오님이 경제학 쪽에 좀 조예가 있으신 것 같던데, 이 영화가 그런 학문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또 흥미로운 면이 상당히 많았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