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공원 - Jurassic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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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클라이막스 씬은 지금 다시 보아도 영화의 활력을 그대로 유지시키며, 영화의 메시지를 다시 강조하는 명장면이다. 20년이 거의 되어가는 지금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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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1-18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네21에 나왔던 스필버그 특집기사를 보고, 스필버그의 영화를 찾아서 보고 있다. 사정상 여러번 잘라서 영화를 보았음에도, 거의 매장면 스릴과 위트와 활력이 흐른다. 브라키오사우러스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과 마지막 클라이막스 씬이 압권. 특히 티라노의 뼈 모형을 앞에 두고, 티라노가 벨로시랩터를 물어뜯으며 주인공이 위기를 벗어나는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다시 강조하며, 스릴과 리듬을 훌륭히 유지시킨 아무나 찍을 수 없는 장면이다.

예전에 마이클 크라이튼의 원작이나, 영화를 보며, 카오스이론을 이야기하는 말콤박사가 왜 계속 나오는걸까, 이 이론이 이 이야기에서 왜 자꾸 이렇게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일까 의문이었는데, 그 의미를 조금은 알겠다. (그럼 그런 말콤박사를 섬에 불러들인 존 해먼드야 말로 사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영화가 주는 (카오스와 관련한) 교훈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유효하다 못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랜트 박사가 아이들을 무서워하는 것, 그리고 2편에서 말콤박사와 딸과의 관계, 그리고 아이들의 행동이나 딸의 행동들을 생각해보면 스필버그가 아이들을 보는 시각이 상당히 재미있는 듯 하다. (예전의 'ET'같은 영화와 연관지어 보면 더 그러하고..)

맥거핀 2012-01-18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공룡같은 거대한 생물이 이 지구상에 등장하여 어느순간 멸종하여 버린 것에 상당히 관심이 간다. 관련된 책들을 좀 찾아봐야 겠다.

2012-01-1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싯적에 원작소설을 읽으며, 말씀하신 '카오스 교훈'이 정말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각 장 앞에서 조금씩 변화하는 카오스 이론 그림과 함께.
물론 영화 개봉 당시 재미있게 봤었지만, 그냥 잘 만든 오락영화거니 했는데요, 맥거핀 님 말씀을 읽으니 다시 보고 싶어지는군요.

그러고 보니, 독서취향은 예전보다 협소해지고 완강해진 듯 합니다. 옛날에는 그냥 친구방에 굴러다니던 마이클 크라이튼 소설도 보고 하던 제가, 요즘은 진짜 제가 마음에 들어 고른 책만 보는 경향이 있어요.

맥거핀 2012-01-18 22:46   좋아요 0 | URL
아..저도 책에 있던 거 기억나요. 그 프랙탈 곡선인가 그랬죠. 고딩 때 이 책 볼 때는 쌩뚱맞게 이게 뭐야 이랬던 거 같기도 한데, 지금와서 보니 크라이튼 씨 소설이 단지 액션 오락물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조금은 드네요. 예전에는 저도 그런 소설들 많이 봤었어요. 기억 나시죠? 로빈 쿡이니, 마이클 크라이튼이니, 존 그리샴, 시드니 셀던이니 아마 좀 보셨을 듯. 근데 저도 요즘에는 마찬가지로 독서의 폭이 협소해진듯. 말랑말랑한 마음의 옛날이 좋았어요. 지금은 내가 뭐라고, 아 이 책은 좀...그러고 있죠.;

Shining 2012-01-18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공룡을 무서워해서; 이 영화 보면서 거의 덜덜 떨었던 기억만 나요;
'영화를 봤다'는 기억만 있고 실체가 거의 사라진 영화 중의 하나거든요.
맥거핀 님의 말씀을 읽으니 다시 찬찬히 영화를 보고 싶네요, 지금도 공룡은 무섭지만;
(겁이 참 없는 편인데 뱀이랑 공룡은 유일하게 무서워요;)

맥거핀 2012-01-18 22:53   좋아요 0 | URL
저도 공룡은 무서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습니까. 그 거대한 티라노를 딱 맞닥뜨리는 것을 상상해 보면요. 특히 영화에 나오는 벨로시랩터같은 애들은 정말 무섭고요. 근데 이 영화는 그런 공룡이 무서워도 볼만한 가치가 있어요. 저도 예전에는 단순 액션 스릴러물, 혹은 호러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스필버그 씨는 아주 녹록하지만은 않은 메시지를 꽤 넣어놓았더라구요. 그리고 옛날 영화들 보면 또 재미가 있는게 배우들의 비교적 풋풋한 예전모습도 볼 수 있으니 흥미롭구요. 이 영화를 예로 들자면 이 때만 해도 별 비중없는 역할이었던 사무엘 잭슨같은 경우.

아이리시스 2012-01-1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 공룡은 귀여워요. 미드 <테라노바>요ㅋㅋㅋ 저도 이거 봤다는 기억은 있는데 그때랑 완전 기억이 다르네요. 그런데 맥거핀님 어째서 갑자기 [쥬라기 공원]을 보신 겁니까, 이 겨울에! 라고 묻기에는 제 취향도 뭐 별로 그다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맥거핀 2012-01-18 22:56   좋아요 0 | URL
공룡영화랑 겨울이 좀 쌩뚱맞기는 하네요.ㅋ 씨네21에서 스필버그 씨 전작들 칭찬을 하도 해서 좀 챙겨보려고 하거든요. 스필버그 씨 영화들을 극장에서 본 게 거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작품들이고, 이전 작품들은 그저 TV에서 띄엄띄엄 보았던 기억밖에는 없는데, 좀 제대로 챙겨봤으면 싶어서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몇 번이나 보았고, '태양의 제국'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기는 하지만요.)

아이리시스 2012-01-19 03:17   좋아요 0 | URL
이번에 [워 호스]도 스필버그 연출이던 것 같은데, 저는 동물이 나오는 걸 잘 못보겠어요. 뭐랄까, 아킬레스건 같아요. <태양의 제국>은 본 건줄 알았는데 눈물이랑 착각했네요. 87년도 영화니까 못본 게 당연하기도 하지만 민망;;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중학교 때 단체관람으로 끌려가서 봤는데 그때는 진짜 전쟁영화가 싫어서 졸기만 했어요. 아.. 뭔가 꼭 다시 보고싶은 것들이에요. 저는 로만 폴란스키도 멈춰있는데ㅋㅋㅋ

맥거핀 2012-01-19 23:18   좋아요 0 | URL
하하..라이언 일병 구하기. 저는 이 영화 소개팅에서 만난 분과 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가 없는 선택이죠. 몇 번 만나지도 않은 분과 170분짜리 전쟁영화를 본다라..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보며, 아마 그분은 저에게로의 상륙을 일찌감치 포기하셨겠지요. 아마 나라도 안 선택할 겁니다.
'태양의 제국'은 강추하는 영화입니다. 아직도 그 영화에 나오는 유명한 곡 'Suo Gan'을 들으면 뭔가 아련해져요. 무려 크리스찬 베일의 데뷔작이기도 하구요. 군국주의 미화 논쟁으로 저평가되는 부분이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군국주의 미화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요. 스필버그가 스펙타클한 액션으로만 알려진 경향이 있는데, 이 영화나 '뮌헨'이나 '쉰들러 리스트' 같은 것을 보면, 이런 부문에도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네오 2012-01-30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소캐팅 그분과의 170분의 전인미답의 침묵의 데이트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구절이 심금을 울립니다~ 그러니깐 언해피엔딩이라는 거죠? 애프터도 없이요?

맥거핀 2012-01-30 17:31   좋아요 0 | URL
암튼 그분이 지금 없는 걸로 봐서는 어찌되었건 언해피엔딩이죠.ㅎ 그러니까 교훈은 "매우 못만든 로맨티코미디 하나가 열 잘만든 전쟁영화보다 낫다.""보고나서 기억에 남는 영화를 보지 말고, 보고 나서 기억에 남지 않는 영화를 봐라. 그녀만 기억하면 되지, 영화 따위는 기억해서 뭐할 것이냐" 라는 거죠.

하긴..일단 영화같은 건 안보는게..;

네오 2012-01-30 17:56   좋아요 0 | URL
아~ 이글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에 대한 칭찬을 하고 싶었서요^^ 저는 정말 이 분 마음속깊이 애정을 보냅니다~

그리고요~ ㅋㅋㅋㅋㅋ 로맨틱에 대한 영화에 대한 조언 매우 동감입니다^^ 사실 저도 이런이유때문에 로(맨스)코(미디)를 가리지 않고 보지요 ㅋㅋㅋㅋ

맥거핀 2012-01-30 18:18   좋아요 0 | URL
저도 최근에 영화를 다시보니 스티븐 스필버그 씨가 확실히 그간 상당히 저평가되어 있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하긴 영화를 몇십년이나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죠.
 
Jam Docu 강정 - Jam Docu KANG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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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2011년이 지나갔다. 그들은 여전히 다사다란(多邪多亂 - 많이들 사악하고 많이들 엉망진창)했고, 우리들도 여전히 보이게, 때로는 보이지 않게 다사다란(多死多瀾 - 많이들 죽었고, 많이들 파란만장)했다. 그래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2011년에도 많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너무 많은 큰 일들은 기억하기도 힘들고, 언급하기에도 힘들다. 다만, 우리를 웃겨주었던 몇몇 사건들과 연관된 인물들은 잠시 추억해 보기로 하자. '올해의 개그상' 개인 부분은 막판 김문수 도지사의 혼신을 다한 맹추격이 있었지만, 강용석 전 의원이 <화성인 바이러스>에 '고소집착남'으로 출연하는 '신의 한 수'를 둔 덕분에 무난히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그러길래 김문수 도지사가 먼저 '이름집착남'으로 출연했으면 마땅히 역전 수상의 기쁨을 누렸을텐데, 애석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리고 '올해의 개그상' 단체부분은 어버이연합, 한나라당 비대위 등등 여러 단체가 경합을 벌였지만, 아쉽게도 '뉴세븐원더스 재단' 및 그의 팬들에게 대상 및 부상인 황금삽이 수여되었다. 이 경우는 본 단체의 활동보다 팬들의 놀라운 응원 및 지지가 수상의 원동력이 된 경우라 할 수 있겠는데, 이 팬들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것은 천혜의 자연, 아름다운 섬 제주를 운운하며, 동시에 그 제주의 자연을 파괴하는 해군기지공사를 강행하는 것인데, 비슷한 예를 들자면, "우리 딸 세상에서 가장 이쁘다"라고 하면서, 생일선물로 성형외과 시술권을 선물하거나, 나는 여자친구 따위는 필요없이 혼자 살거라고 공공연히 떠들면서, 결혼정보회사에 몰래 등록하여 괜찮은 여자 없다고 진상을 부리는 경우 등을 말할 수 있겠다.

 

뭐 농담은 그쯤 하고, 아무튼 그 해군기지 건설로 파괴되고 있는 강정마을을 다룬 <Jam Docu 강정>을 보고 왔다. 해군기지 건설과 그에 따른 반대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경계 도시>의 홍형숙 감독, <레드 마리아>의 경순 감독, <오월愛>의 김태일 감독 등 총 8명의 독립영화 감독들이 각각 카메라에 담아낸 영화이다. 그 제목이 어느 정도 말해주듯, 이 영화는 아마도 즉흥의, 그러므로 탄생되지 않을 수 있었던, 동시에 탄생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좋았을 영화이며, 동시에 그만큼 시급한 영화이기도 하다. 즉 이 영화의 초점은 무엇보다도 그 '시급성'이며 다른 영화와는 달리 일정한 시간들이 지난다면, 이 영화의 가치는 현저하게 떨어질지도 모른다(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떨어지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예전의 '어떤 사건'을 다룬 영화가 지금에도 가치가 있는 것은 지금 역시도 그러한 사건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여전히 유효한 시기라는 또다른 반증일 것이므로 말이다. 그러므로 동시에 그런 작품들이 언젠가 단순히 유머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기가 오기를 고대한다. 저런 말도 안되는 개그같은 시절이 있었지 하하.) 그러나 즉흥적이고 시급하다고 해서 이 영화의 가치나 구성의 질이 낮은 것은 아니다. 8명의 감독이 만든 작품들이 연결되어 있는 옴니버스적 구성이지만, 흔히 말하는 'Jam' 연주가 그렇듯, 각각의 악기(작품)들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조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즉 8개의 작품들은 이 사태를 바라볼 수 있는 여러 관점들을 적절하고 다채롭게 전달해주고 있으며, 어느 한 작품이 너무 튀거나, 특별히 질적으로 떨어지는 부분이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 이 작품의 구성적인 면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는데, 각각의 작품의 제목이 시작되고, 마지막에 짧은 크레딧이 흐르고, 다시 다음 작품이 시작되는 구조가 아니라, 전체의 앞과 뒤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형식의 짧은 영상이 첨부되어 있고, 한 작품에서 다음 작품으로 이어질 때 역시 짧은 영상으로 부드럽게 연결하고 있다. 각 작품의 제목은 그 화면의 한 구석에 살짝 떠오를 뿐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이 영화 전체의 엔딩 크레딧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각각의 작품 크레딧이 아니라 ['Jam Docu 강정' 사회적 제작단]이라는 크레딧이다.)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의 이유는 여러 갈래에서 찾을 수 있다. 일단 짧게 스치고 지나가는 미국 미사일 방어(MD) 체제와 관련하여 동북아 지역의 불안과 위험을 고조시키는 도화선 중의 하나로서 강정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분일 뿐이고,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왜 해군기지가 필요한가?"가 아니라, "왜 하필이면 이곳 '제주도 강정'에 해군기지가 필요한가?"의 질문일 것이다(그러므로 강정 문제하면 으레 언급되는 평화를 위해서는 안보가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이나, 평화를 언급하는 사람들을 종북빨갱이로 몰아가는 식의 주장은 약간 핀트가 어긋났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해군기지가 더 필요한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포인트는 '왜 이곳 강정인가'라는 문제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언젠가 우리는 해군기지 자체를 반대하며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현재 그것에 포인트를 맞추는 것은 득이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제주 강정마을에는 붉은발말똥게, 연산호, 맹꽁이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며, 2009년 12월 제주도 의회가 관련 법안을 날치기 통과하기 전까지 이 지역은 '절대보전지역'에 속했다. 그것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강정의 자연풍경들을 꼽는 권효 감독의 <말똥게의 사진수업>이나 천혜의 연산호 군락지를 보여준 후 바다 속으로 투하되는 케이슨(바다를 메우기 위한 시멘트 블록이며 하나가 약 20m 크기. 영화에 나오는 장면은 강정 이전 해군기지 후보지였던 제주 화순에 투하되는 장면이며, 현재 강정의 사람들은 이의 투하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을 보여주는 양동규 감독의 <범섬에 부는 바람> 등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강정에는 해군기지를 위한 공사가 계속되는 중이며, 명물인 구럼비 바위는 이미 폭파되었고, 수백 마리의 붉은발말똥게는 해군이 설치한 통발에 갇혀 죽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의 건설을 둘러싼 절차상의 문제일 것이다. 그 말이 의미하는 축소된 함의와 다르게 '절차상'의 문제는 마을 주민들의 생존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그런 문제로 보여지는데, 김태일 감독의 <마을의 기억>이나 경순 감독의 <안녕 구럼비>, 최하동하 감독의 <코사마트와 나들가게> 등이 그것이다. 해군은 제주도 화순과 위미 등의 지역에서 이미 해군기지 건설의 반대에 봉착하였고, 이곳 강정에서는 일부의 주민들을 얄팍한 보상금으로 회유한 후 재빨리 건설 지역으로 선정하여 버렸다. 그 증거들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강정은 후보지로 선정된 후 일주일만에 주민들을 대상으로 찬반 투표에 들어갔고, 최종적으로 건설이 결정된 2007년의 마을임시총회도 1천여 명의 주민 중 고작 80여 명의 해녀와 노인들만이 참석해 투표가 아닌 박수로 건설안이 통과되었다. 그런 와중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제주도지사 소환을 투표로 이루어내고자 했지만, 낮은 관심으로 소환 투표는 개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현재 강정은 찬성과 반대의 주민들로 나뉘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것을 영화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예를 들어 작게는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나뉘어 자신의 뜻과 다른 가게의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고, 크게는 친형제가 갈라져 더 이상 얼굴을 안보는 비극이다. 그 비극 속에서 정부는 그 분열을 조장하고,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억대의 소송을 걸고, 전면에 나선 사람들을 업무 방해로 잡아넣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겁을 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가 말해주는 또하나의 문제는 외부인들의 고민이다. 감독과 제작진을 비롯하여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과 힘을 합쳐 활동하는 상당수의 활동가들은 결국 '외부인'이다. 이러한 외부인들은 정부에서 흔히 말하는 대로 때로 '전문시위꾼'으로 비춰질 수도 있으며, 반대만을 위한 반대론자로 보여질 수 있다. 반대운동에 열심히 참여하였으나, 지금은 약간 의욕을 잃은 한 주민의 말대로 이들에게 "왜 이제서야 오셨냐?"는 말을 물을 수도 있다. 절차로 막을 수 있는, 힘을 모아 저지할 수 있는 때에는 어디 있다가, 구럼비가 파괴되고, 기지 건설이 시작되는 지금에서야 왜 나타났는가라는 물음. 한편으로 그 질문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이곳이 외부인들이 대거 나타날 때마다 4.3 등 모진 시련을 겪어야 했던 제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마을의 기억>이나 홍형숙 감독의 <구럼비에 멈춰서서>는 보여준다. 연대에 나서면서도, 그것이 누구를 위한 연대인가, 과연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자기반성, 그리고 그에 따른 진정성 있는 활동이 되어야만 이 반대운동이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이 작품들은 말한다.

 

그러므로 외부인의 입장이 될 수 밖에 없는 나의 입장에서 묘하게 울림이 다가오는 것은 <뻑큐멘터리-빡통진리교>로 잘 알려진 최진성 감독의 <중국집으로 간 항공모함>이다. '항공모함을 너무나도 좋아해 해군이 되었던' 최진성 감독은 마트에서 뽀로로 낚시대를 사서 거기에 프라모델 항공모함을 붙여 질질 끌고 다닌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용산 국방부 앞. 아무도 보아주지 않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그 정문 앞에서 '무키무키만만수'는 <투쟁과 다이어트>라는 곡을 그야말로 열창하고, 그 옆에서 실성한 사람처럼 감독은 낚시대에 달린 프라모델을 끌고 돌아다니고 있다. 거기에 몽롱하게 따라붙는 나레이션.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정말 이들은 무엇을 위해서, 그 앞이 안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이러고 있는 것일까. 영화를 본 날의 기억. 영화를 보러 가니 이 추운 날씨에 아무도 없는 극장 앞에서 두 사람이 탈을 뒤집어 쓰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음악을 틀어놓고 '퍼포'(옛날 식대로 말하면 '마임')를 하고 있다. 잠시 후 그들은 극장 안으로 들어와 탈을 벗고 잠시 쉬면서 나를 포함한 2-3명의 관객들에게 강정에 대한 전단지를 나눠 준다. 딱했다. 아니, 딱한 것은 이 추운 날씨에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그들이 아니라, 극장 안 유리창으로 그들의 뒷 모습을 보는 나와 그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는 우리들이었다. 우리야말로 아마도 물어야 할 것이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영화 안에서 인상적으로 나온 '무키무키만만수'의 곡 <투쟁과 다이어트>의 가사. (그들의 홈페이지 http://mukimukimanmansu.co.cc/에 가면 음악도 들을 수 있다.)

 

왜 내가 이러고 있나 (다같이!)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아이고!)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어머니!)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아버지!)

 

그냥 잘 살고싶다오

편히 잘 살고싶다오

있는 그대로 살고싶다오

그게 그리 큰 꿈이었던가

 

그들은 배불리 먹고

고급스런 상점에 들어가네

나는 여기에 남겨져서는

운동만 열심히 해야하지 (투쟁!)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이렇게 운동만 하고

건강은 자꾸 나빠지는데

먹고싶은 것 먹지 못하고

배가 고파도 참아야하네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왜 내가 이러고 있나

왜 내가 이러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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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 <Jam Docu 강정> 무료 공개
    from MacGuffin Effect 2012-03-28 18:29 
    독립영화, 인디영화를 주로 (유료로)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인디플러그' 사이트에서 영화 을 무료로 공개중입니다. (인디플러그에 감사드립니다.) 해군기지 건설과 그에 따른 반대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경계 도시>의 홍형숙 감독, <레드 마리아>의 경순 감독, <오월愛>의 김태일 감독 등 총 8명의 독립영화 감독들이 각각 카메라에 담아낸 영화입니다. 아래의 곳으로 가시면 되고, 회원가입만 하시면, 결
 
 
맥거핀 2012-01-0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교롭게도 계속 다큐만 보게되네.

아이리시스 2012-01-05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 게 많아 행복한 세상이잖아요!

"왜 내가 이러고 있나" 맥거핀님에 대한 것들인 줄ㅜㅜ

누군가 어딘가에 해군기지는 어차피 필요하지 않냐고 하던데요. 이 와중에 세계자연경관 그런데에 뽑힌 제주도 아이러니고요. 참 아름다운 곳인데 어째서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지키는 게 이토록 힘들까요. 맥거핀님 다큐쟁이ㅋㅋㅋ

맥거핀 2012-01-06 15:56   좋아요 0 | URL
어딘가에 해군기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그럼 집앞마당에 해군기지 짓고, 옥상에는 공군기지 지으라고 하세요.(-_-; 병맛스런 댓글) 불공평한 세상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세계 7대자연경관 같은 것은 TV에서 대대적으로 축하쇼를 하면서,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도, 강정은 거의 아무데서도 이야기되지 않으니까. (저도 지난번에 PD수첩에서 이야기를 하길래 알게되었습니다.)

쓸데없이 위에 많이 썼지만, 화면을 보고나면 왜 이것을 저지해야하는지 이해가 되요.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데를 왜? 이 생각부터 드니까.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눈이 먼저 반응을 하니까.

낚시성 제목이군요. 죄송합니다. 제 얘길 쓸 걸 그랬나요? ㅎ

마녀고양이 2012-01-05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은 한숨을 짓게 하는 리뷰군요............... ㅠㅠ
왜 하필 강정인가 에서 시작하여, 한 마을의 사람들이 웬수보다 더한 꼴로 싸우는 것과, 그런 상황에서 나타난 외부 사람들. 각자의 이해 관계가 얽혀있고 그것이 풀 수 없는 매듭이 되어가는 느낌이예요. 어떻게 해도 엄청나게 손상된 그 상채기는 복구하기 힘들겠죠.

강정 마을을 지키기 위해 들어간 활동가들의 뜻은 물론 올바르지만,
저는 그보다 먼저 반대편(친정부)에 선 사람들을 생각해도 마찬가지로 안쓰럽고 가슴아파요.

맥거핀 2012-01-06 16:06   좋아요 0 | URL
확실히 목적의식이 있는, 정치적인 다큐죠.(하지만, 물론 모든 영화는(다큐를 포함해서) 정치적이지 않습니까. B급 정크무비라도요.)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고, 몇 개 다른 리뷰를 찾아서 읽었는데, 같은 영화를 보고도 감상이 많이 달라요. 특히 이런 나름 민감한 정치적인 문제를 다룬 영화에 있어서는 말입니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 있으니 반대를 하거나, 찬성을 하겠지만 말입니다. 특히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일단 논리적인 설득이 잘 먹히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의 왜곡된 역사에서 비롯된 문제이겠지만요. (다만 그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는 얘기들에는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영화의 만듦새가 심하게 떨어진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는 못하겠더라구요.)

말씀하신대로 찬성한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고, 우리가 잘 모르는 내부사정이 있겠지요. 근데 그 자신의 찬성이라는 것이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이라면 그 찬성에 찬성해야할까라는 생각은 있어요. 언제부턴가는 다른 사람의 희생의 별로 신경쓰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 같기는 하지만요.

무거운 얘기를 하다보니 쓸데없이 덧글도 무겁네요.^^;

꽃도둑 2012-01-1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숨과 자괴감과 분노와 무력증이 동시에 밀려드는 리뷰네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어떤 일은 꼭 막았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고,,,,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그 모두는 자신의 가치판단으로 결정을 했을 테지만
결과는 비극적이라는 거죠... 형제가 등을 돌리고 아주 평화롭고 사이좋던 공동체가 무너지고 아름다운 자연은 파괴되는 그야말로 탐욕의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사실 없다는 거죠, 막아내기엔 너무 무력하다는 게 화가 나는 거죠, 그러다 지쳐 포기하고,,, 4대강도 그렇고 강정마을도 그렇고,,. 깨어나야죠..그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맥거핀 2012-01-10 15:3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어떻게 보면 외부의 활동가들이야 자신들의 신념을 가지고 싸움에 뛰어든 사람들이지만, 여기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전혀 원치않는 과정에서 문제에 휘말렸으니까요. 여기있는 어떤 주민들도 정부의 반대편에서 생존을 건 투쟁을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반대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 찬성을 위한 투쟁이더라도 말입니다.)

아무튼 여기에 앉아서 이렇게 글줄이나 남기는 것도 한심스럽기는 한데, 이런 리뷰로 한명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게되었으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을 하며 애써 죄책감을 지워봅니다. 이런 영화, 이런 문제일수록 한명이라도 더 아는 것이 큰 힘이니까요.

karma 2012-01-10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제야 맥거핀님 리뷰도 읽었는데, 제가 쓴 리뷰는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에 비하면 너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리뷰였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그나저나 [잼 다큐 강정]은 제목을 좀 더 자극적으로 지었어야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폭발까지는 아니더라도 입소문을 타고 계속 좀 이슈가 되길 바랐는데 그렇게 되질 않아서 안타까워요 ㅠㅠ

맥거핀 2012-01-10 15: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조금 더 자신의 마음을 끌어쓴 리뷰가 되지 못하고, 검색하면 알 수 있는 이야기로 채운 제 리뷰보다는 karma님 리뷰가 더 좋은 리뷰죠. 하기는 저도 개인적으로는 자극적인 홍보나 자극적인 영화제목 모두 싫어하기는 하지만, 이런 영화야 말로 자꾸 논쟁적인 이슈를 끌어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다른 영화와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마이웨이'같은 영화가 친일 문제로 이슈화되는 것과 비교해보면요.)

이런 영화야 말로 장기상영하며, 계속 좀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하는데, 결국은 상업적인 논리에 매몰될 수 밖에 없는 귀결이고 보면, 다큐멘터리가 상업영화와 동일한 루트에서 경쟁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구조가 조금 이상해보이기도 하죠.

2012-01-18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은 "현재상영"이라는 문구가 반갑군요.
글 하나에 영화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다양한 단상을 자연스레 녹여낸 것과, 또 그것이 영화 바깥의 풍경과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이, 이글도 마치 한 글 안에 여러 이야기가 훌륭한 '잼'연주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 무척 글을 잘 쓰십니다.
물론 이런 한가한 칭찬을 하기엔 영화나 글이 담고 있는 문제가 너무도 심각합니다만.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분명 이 나라는 돈에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게 역력해서(버스를 타고 어딜 가든 풍경을 보는 게 괴로울 때가 많지요. 시골이든 도시든 길이든 들이든 산이든 강이든...), 그걸 보는 게 너무 싫어서 차라리 외면을 하고 싶긴 하지만, 그래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늦추면 당장 이런 일이 중대하게 발생을 하니 정말 모두 정신차리고 감시하고 발언하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네요. 그런 의미에서 이 다큐 감독들, 그 영화관의 2~3명 관객들, 이 글의 필자(맥거핀님) 모두 고마울 뿐입니다.^^

맥거핀 2012-01-18 22:41   좋아요 0 | URL
참 안타까워요. 일단은 찬성을 하건, 반대를 하건 좀 보고난 다음에 하면 좋으련만, 결국 볼 사람만 보는 그들만의 영화가 되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정상적인 홍보 루트가 없으니, 대다수가 하는지도 모르죠. (현재 이 영화 네이버 평점이 5점대에요. 1점과 10점의 영화평이 번갈아 오르는 영화를 보지도 않은 평점들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죠. 물론 알바들이 암약하기도 하지만, 거기 20자평들 보고 있으면 아주 재밌어요.)

확실히 이 나라가 약간은 제정신이 아니게 돌아가는 건 사실이겠지요. 가끔 인터넷 게시판들 보면 그런거 있잖아요. 서로 도시들 고층빌딩 사진 올려놓고 발전경쟁하는 거. 그런 거 보면, 이 나라에서 MB씨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4대강을 개발하는 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마저도 들어요. 해군기지 찬성론자들의 주장도 그런 것과 연관되지요.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해군기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너네는 왜 반대하는가, 너네는 단지 매국노일 뿐이라는 주장. 그런데 그 발전이란 게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요. 발전하는 나라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어나가고 이루어진 발전은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요. 답답한 마음 뿐입니다.

글 칭찬도 감사하구요. 그런데 칭찬은 독이니 딱 10분만 좋아할께요.^^

맥거핀 2012-03-0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2.3.7. 정부, 구럼비 바위 폭파 강행 시도
 
오래된 인력거 - My Barefoot Friend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쓴다. 기본적으로 좋은 글이란, 좋은 리뷰란 글쓴이의 관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글일 것이다. 그리고 좋지 않은 리뷰들의 공통된 특징 중의 하나는, 글쓴이의 생각이 왔다갔다하거나 백과사전적인 정보만이 가득한 리뷰일 것이다. 물론 항상 자기 눈에 눈곱은 보지 못하는 법이어서, 말은 이렇게 해도, 내 지나간 리뷰들을 보면, 뭐 이런 소리만을 잔뜩 써놨지 하는 리뷰들이 부지기수다. "지금 다시 쓰라고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텐데"라고 하면 이야기가 복잡해질테니 더 이상의 생각은 관두기로 하자. 아무튼 글을 쓰기 전에는 대체로 한 두 가지의 생각은 정리하고 쓰는 편인데, 이번에는 정말 잘 모르겠다.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지 생각이 복잡해진다.

 

이성규 감독의 <오래된 인력거>는 영화의 시작과 끝에 비슷한 장면을 붙여두고 있다. 이 영화는 인도 캘커타의 인력거꾼 샬림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취재한 다큐멘터리이다. 그 샬림은 영화의 처음 더 이상 자신을 찍지말라고 화를 낸다. 당신은 나의 친구도 아니고, 나는 더 이상 찍히고 싶지 않다, 당신은 그저 외국인일 뿐이며, 언젠가 돌아갈 사람일 뿐이라고. 그러나 감독은 카메라를 뿌리치는 그를 껴안으며 말한다. 다 이해한다고, 우리는 친구이지 않냐고.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병든 아내의 병원비를 내기 위해, 그간 삼륜차를 사기 위해 모아둔 돈을 쓰려고 결심하며 다시 한 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이 돈을 이렇게 써야 하다니, 어떻게 모은 이 돈을. 그리고 말한다. 눈물을 흘리고, 힘들어하는 나를 찍지 말라고. 제발 나를 좀 내버려두라고.

 

이 장면들을 보는 상당수의 관객들은 마음이 복잡했을 것이다. 그 장면들을 앞에 두고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아마도 그러한 마음들을 감독에게 묻는 관객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그 마음의 한 가지 질문. 왜 제작진은 샬림을 위해 삼륜차를 사주지 않았는가. 감독은 말한다('오래된 인력거 블로그' 제작노트 http://blog.naver.com/report25?Redirect=Log&logNo=150127999834). 제작진은 샬림을 위해 삼륜차를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모았다. 그러나 샬림은 그 돈으로 고향에 집을 지었으며, 우리는 그 결정을 존중한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다큐멘터리는 감성적으로 풀 수 있지만, 온정주의로 풀어서는 안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샬림 개인의 인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신분제와 착취구조인 인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더 나아가 그것이 인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와도 연관되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는 점이라는 것. 이와 관련하여 김영진은 <씨네 21>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835호). "<오래된 인력거>는 이 지점에서 솔직하다. 설령 그것조차 자신들의 윤리적 곤란을 드러냄으로써 정당화하려는 방편으로 삼는다고 비난한다면 할 수 없지만 나는 그렇게는 보지 않았다. (중략) 대체로 우리는 세상의 어두운 그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불행을 소비하지만 그것에 대해 별다른 도덕적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정면으로 그 불편함을 드러낸다."

 

글쎄. 이 영화가 그 균열을 지그시 응시하고 드러내보임으로써,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윤리적 불편함을 안겼다는 지적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그것(불편함)이 과연 충분했는가라는 질문에는 조금 의문이 간다. 김영진은 "이 당당함이 제3세계 사람들의 삶을 구경거리화하는 대다수 인습적인 텔레비전 카메라의 굴레를 벗어나게 해준다. (중략) 카메라로 그의 삶은 보편적 휴머니즘이라는 틀 안에, 공감과 연민과 위로의 틀로 가장한 수직적인 시선의 압제에 굴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그것을 소비하는 우리들은 과연 이 영화를 본 이후에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감독이 말한 '신분제와 착취구조에 대한 관심, 그것이 우리 문제임을 인식하는 것'이 어떤 식으로 가능할 것인가. 불행한 인도의 인력거꾼들을 위해 모금활동을 하는 것, 아니면 혹시라도 있을 인도여행에서 그저 낯선 관광객이 되어 인력거를 타지 않는 것(그러나 영화에 따르면 이 인력거도 보기 안좋다는 이유로 인도 정부에 의해 곧 금지될 예정이다), 인도 정부에 카스트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 물론 이는 농담이면서, 농담이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런 영화를 도리어 그런 불편함을 사라지게 하는 진통제로서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도의 카스트제도, 그리고 그와 연관이 있는 가장 원시적인 노동이자 비인간화된 노동처럼 보이는 인력거(물론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때로는 상상이상의 모든 것을 대상화하니까),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지독한 가난, 아무리 벗어나고 싶어도 대를 이어 대물림되는 지독한 가난. 우리는 사실 대부분 그런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즉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예상할 수 있는 어떤 장면들은 영화 속에서 빠짐없이 재생된다. 그것에는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새로움의 차이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그 영화를 소비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 그래도 이런 영화 봤으니 되었어, 왠지 마음의 짐을 조금 덜한 것 같잖아, 이런 면죄부. (<워낭소리>가 결국 어떤 식으로 관객에게 소비되었는지를 이와 연관하여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즉 이 영화의 어떤 아이러니한 점은, 앞과 뒤에 샬림이 자신을 찍지 말라고 화를 내는 장면을 붙이면서도, 그 모든 장면들, 즉 샬림이 찍힌 모든 장면들을 결국 영화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단순하게 말해서, 찍지 말라고 항변하는 샬림의 장면을 보고 있다는 이 사실 자체가, 도리어 역으로 그 화면을 보는 사람들의 윤리적 면죄부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고 있지 않을까. 이 영화는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즉 관객을 조금 더 몰아붙였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김영진이 <하얀 정글>에 한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 본다면, 이 영화는 어쩌면 "결국에는 관객을 정면으로 공격해서 항복을 받아내려는 의지와 결기는 없는 상태"가 아닐까. 그러므로 궁금해지는 것은 사실 영화의 마지막 이후이다. 자신을 찍지말라고 카메라를 뿌리치는 샬림을 어떻게 설득하여 이 영화는 탄생되었는가, 그리고 그 이후 샬림의 삶은 어떻게 되었는가. 영화는 그러나 어떤 설명 없이 약간은 급한 봉합을 한다는 인상이 짙다. 샬림은 그 이후로도 가족 때문에 길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나레이션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한편으로는 이 영화에 있어서 나레이션의 역효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외수의 나레이션은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친절하다. 그래서 때로 관객의 감정을 미리 예단한다는 느낌을 준다. 즉 내가 판단하기 전에 나레이션이 판단을 내려준다. 이것은 TV 다큐멘터리를 오래해온 감독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미덕은 여러 군데에 있다. 김영진의 말대로 이 영화의 카메라는 단순히 구경거리로 그들을 비추려고 하지 않으며, 단순히 수직적이고 타자적인 관점의 카메라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을 보면서 예를 들어, 외국인을 속여서 물건을 파는 장면을 보면서 도리어 통쾌함을 느끼게 되고, 인력거가 단순히 운송 수단이나 가난의 문제에만 연관된 것이 아니라, 인도 사회의 계층 문제와 착취구조의 문제와도 연관된 것임을 이해하게 되며, 샬림의 영화 속 낙관적인 태도들이(감독은 샬림이 인도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친절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넘어서려는 결기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가장 마법같은 순간이 있다. 영화 속 샬림의 동료이자, 샬림보다 더한 영화적 인물인,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노즈를 잡은 한 장면. (샬림이 밝음으로 결기를 보여준다면, 마노즈는 반대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침묵으로서 결기를 보여준다. 제작노트에 보면 이 장면은 마노즈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찍었다고 한다.) 마노즈는 어렸을 때 고향에서 천민이었던 아버지가 카스트 전쟁 때 지주에게 맞아 죽은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그 지주들을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샬림의 질문에 대답한다. 도망칠 것이라고. 그리고 그러면서 카메라를 지그시 응시하는데, 카메라에 잡힌 그 눈은 공포에 질린, 그리고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힌 눈이다. 이어지는 컷은 10년 전 당시의 마노즈를 우연히 촬영한 컷. 감독은 10년 전 카스트 전쟁을 촬영하면서 어린 마노즈를 우연히 촬영했었고, 오랜 후에 마노즈의 이야기를 듣고 이 컷을 찾아낸 것. 마노즈의 그 눈은 온연히 바로 그 어린아이의 눈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공포와 분노를 오롯이 잡아낸 이 영화라는 마법. 오로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대상만을 오랫동안 응시하고 기다릴 수 있는 영화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 마법.

 

그래서 2시간도 채 안되는 영화는 때로 그 천배, 만배의 시간을 우리에게 경험하도록 한다. 물론 그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감독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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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1-03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이거 종편에서 해주지 않았어요? 종편출범할 때 다큐가 좋은 게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그린란드(?) 하여튼 그쪽이었구요! 제가 관심있게 콘텐츠들을 봤었는데ㅋㅋ 찜해놓고 기다렸는데 결국 종편채널 네 개에 눈붙이고 앉아있기가 어쩐지 죄(?)스러워서 못봤어요.(실제로는 시간을 놓친 거ㅋ) 드라마는 봤는데(빠담빠담 같은 정우성 나오는 거) 그래도 배우들은 외주제작한 경우에는 본인 작품이 어느 방송사에서 방영할지 알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죄책감을 덜었달까. 하하.

영화로 나와서 좋네요. 그때 맨발로 달리는 걸 보고 이것도 건방진 얘기겠지만 참 서글펐거든요. 하지만 그 할아버지는 열심히 살고 계신 거잖아요. 저보다도 훨씬. 그래서 짐을 제맘대로 덜어냈어요. 인도처럼 양면적인 국가가 또 있을까 싶어요. 영화를 보면 정말 눈부실 정도로 색감이 좋아서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운 나라 같은데, 이젠 인도에 가보고 싶다는 말조차 사치인 것 같아요. 가고 싶지 않아요. 10년동안.. 황홀한 집념이네요. 무려 무산에서도 하네요! 우리집 근처 동네에 있는 극장인데 처음 들어보는 데서요.ㅜㅜ

새해 복 많이 받고 계세요, 맥거핀님?ㅎㅎㅎ

맥거핀 2012-01-03 19:14   좋아요 0 | URL
종편에서 했었나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극장에서 봐서. 종편도 이런 컨텐츠를 많이 한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요즘에 사실 종편을 본 적이 없어서 뭐가 하는지도 전혀 몰라요. (아..하나 아네요. 소녀시대하고 남자애들 나오는거..;;) 빠담빠담도 노희경씨 극본이라 그래서 보고싶기는 한데, 왠지 양심에 찔려서..(그럼 소시는?-_-)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인도에 대한 인상이 딱 하나 남았는데, 아..사람 진짜 많다, 정말 많다 이 생각만 했어요. 땅덩이에 비해 사람이 너무 많은 거 아닐까. 그래도 놀라운 것은 살림을 비롯하여 거기에 나온 상당수의 사람들이 뭐가 좋은지 싱글싱글 웃고 있는 것..예를 들어 영화 중반부에 폭우가 퍼부어 완전 물바다가 된 장면이 있는데, 거기 사람들은 뭐 이정도 가지고..이런 표정으로 여유있게 웃더라구요. (이런거야 말로 타자적인 시선일지도 모르지만..)

새해에는 아직까지 일복만..하하.

2012-01-04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2-01-04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 영화였군요..다큐멘터리인가요? 작년에 본 영화 한편(아고.. 제목이 생각이 안나네요.. ㅠㅠ) 보고 거의 탈진상태가 되어버렸는데 이 영화도 왠지 그럴 것 같은..

맥거핀 2012-01-05 00:53   좋아요 0 | URL
다큐멘터리구요. 인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감독도 한국 분이고, 한국 제작진들이 주로 만든 영화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그렇게 힘든 영화는 아니구요. 감독이 TV 다큐 쪽에서 오래 경력이 있으시다고 하던데, 한편으로 그래서 약간 TV 다큐 느낌도 있어요. 즉 그렇게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영화는 아닙니다. 결코 가볍다고는 할 수 없지만...여력이 되시다면 한번쯤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되네요.^^

네오 2012-01-30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지는 않았지만 종편방송에 방영한다고 시끄러운 작품인걸로 기억해요~

맥거핀 2012-01-30 18:19   좋아요 0 | URL
근데 한편으로는 종편에서 이걸 한다고 하니 뭔가 살짝 의심을 하게 되는게, 저도 마음이 역시나 너무 편협한가 봅니다.
 
하얀 정글 - White Jungl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의사는 너무 늦었다고 했다.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나는 뭐라고 말을 좀 더 듣고 싶은 눈길을 의사에게 애타게 보냈지만, 그는 이제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제 그만 나가달라는 투로 문을 힐끗 바라보았을 뿐이다. 불과 몇 주 전의 일이다.

 

그 몇 주 전의 경험. 기침이 너무 심해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고, 목은 부어 올랐다.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었지만, 버티다 못해 종합병원에 갔다. 이비인후과 진료를 신청했더니, 진료가 가능한 의사가 특진의사뿐이라며, 그래도 괜찮으면 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특진이라는 게 그 이름이 보여주는 만큼의 그런 '스페샬'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의사는 내 목구멍을 아주 잠깐 들여다보더니 감기는 이미 다 나았는데 병원에는 뭐하러 오셨냐는 투로 이야기하고는, 처방전을 적어주었다. 1분 남짓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아마도 내가 입을 잘 벌리라는 의사의 지시에 조금 더 효과적으로 따랐더라면 그 시간은 훨씬 단축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특별한 시간을 입 하나 제대로 벌리지 못해 몇 십초나 잡아먹다니, 아주 죄송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나는 아주 효과적이고, 게다가 효율적으로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기본진료비에 거의 준하는 특진비가 추가된 처방전과 진료권을 손에 쥔 채 병원을 나왔다. 정말 스페샬한 것은 이제 막 만들어져 반짝반짝 빛나는 마그네틱 진료권뿐이었다.

 

의사이기도 한 송윤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은 그 짧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중반부, 감독은 대형종합병원의 진료실에 들어가는 각각 환자의 진료 시간을 카운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이러한 대형병원의 형식적이고도 짧은 진료를 비판하는 인터뷰를 그 위에 작게 붙인다. 위의 인터뷰어가 몇 마디 채 끝내기도 전에 들어갔던 환자가 나오는 것이 보인다. 30초도 안되는 시간. 연이은 환자들의 진료 시간은 모두 1분에 미치지 못했고, 이 5명의 환자의 평균 진료 시간이 계산되어 자막에 뜬다. 평균 31초. 물론 이것은 이 영화의 여러 이야기들 중 그나마 가장 애교있는 편에 속한다. 당연히 위에 적었던 내 짧은 경험은 그런 애교축에도 못 들어간다. <하얀 정글>은 간단히 말해서 '의료판 도가니'이다. 여기에는 현재 병원들이 저지르고 있는 여러 다양한 행태들이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소개된다. 나쁜 짓의 향연, 스페샬한 퍼레이드. 그것은 일일이 적기에도 지치는데, 병원 광고가 허용된 이후, 광고 회사에 의뢰해 만들어지는 각종 후기 식의 광고들, 돈을 더 벌기 위해 행해지는 과잉검진과 과잉시술, 그에 비례해서 줄어드는 환자당 진료시간들, 부당한 과다 의료비 청구, 일반실을 줄이고 특실을 늘리는 병원의 새로운 재테크, 제약회사와 의료기기회사와의 커넥션으로 이루어지는 특정약품과 특정기구들에 대한 거의 반강제적 강요... 급기야는 부당 의료비 청구를 제소하였다는 이유로, 다행히 병이 다 나아 돌아간 환자에게 "나중에 재발하였을 때 보자"는 식의 폭언, 또는 부당한 진료에 대해 항의하면 "아니 다른 가족분들도 다 우리 병원 다니시는데, 나중에 어쩌실려고 그러세요"는 식의 멘트를 날리는 경우를 보고 있으면, '아 이게 병원일까, 아니면 조폭집단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본 분들은 '그런 이야기는 요즘 점점 여러 다양한 논의들이 나오는 의료 민영화가 되었을 때 이야기가 아닌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현재 우리의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영화 전반부에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한 후, 영화 후반부에 앞으로 우리 현실로 다가오게 될지도 모를 의료 민영화나 건강보험 민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세하게 소개되는데, 그러므로 그것을 본 내 느낌은 의료 민영화란 "지금까지 뒷구멍으로 해오던 나쁜 일을, 이제는 대놓고 떳떳하게 하겠다"라는 소리로 들린다. 영화 속에서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답변에서 말한다. 의료서비스 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데, 서비스가 나쁘면 안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자연히 도태되지 않겠습니까. 아이고, 정남아, 정남아, 아니 증현아, 증현아, 이거 마 궁둥이를 확 주차삐까. 당신이 이해를 잘 못하는 듯 하니, 예를 하나 들어주겠다. 당신이 지금 엄청난 설사로 집을 향해가는 매시매초마다 예수님과 부처님을 번갈아 영접하는 중이다. 그 때 가까이에 상당히 더러워보이는 화장실이 보인다. 당신은 더럽다며 그걸 멀리하고 꼭 집에 가서 일을 치르겠는가. 괄약근의 기능이 좋은 증현 씨는 가능할지 몰라도, 나라면 불가능하다. 의료 서비스는 산업이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마이클 무어는 <식코>에서 간단하고도 효과적으로 이야기했다. 당신이 지금 막 강도를 당했는데, 운좋게 바로 앞에 경관을 만났다. 그런데 그 경관이 "이봐요, 특별근무수당을 지금 내셔야, 저 범인 쫓아드릴 수 있는데요."라고 한다면? 아니면 지금 막 집에 불이 붙어 소방서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소방서에서 "일단 출동비부터 결제하세요. 그럼 출동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러나 현재 병원이 하는 행동은 어떤가. 사람이 죽어가도, 일단 원무과가서 '정산'부터 하라고 한다. 아니면, 나가세요. 이게 병원의 행태라는 것이다. 병원이라는 것이 소방서나 경찰과 같은 공공서비스와 같음을 보여주는 즉, 소방서나 경찰서나 병원이나 사람의 목숨, 생활과 직결되어 있다는 효과적인 비유.

 

 

한편으로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이것을 단순히 선과 악의 대비로만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부당하게 당하기만 하는 환자가 선이고, 의사들이 무조건적인 악은 아니라는 점(실제로 영화 중 좋은 의사를 만난 경험을 들려주는 환자 부모의 이야기도 있다). 의사들을 무조건적인 악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 역시 압박과 유혹에 시달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자세하게 이야기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의료수가(酬價) 역시 상대적으로 낮으며, 의사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환자를 상대하고 더 많은 수익을 올릴 것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현재시각 병원에 내원한 환자수가 일정한 간격으로 의사들에게 문자메시지로 통보되며, 연속되는 회의에서는 각 과별로 수익이 비교되어 1등부터 꼴찌까지 등수가 매겨진다. 그리고 동시에 MRI를 한 번 촬영할 때마다 월급이 만원씩 올라간다고 노골적으로 의사들을 회유하기도 한다. 의료수가는 낮고 환자들을 많이 상대해야 수익이 올라가니 각 환자별 진료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과잉검사와 시술이 늘어날밖에(과잉검사는 한편으로 의료사고와 관련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만이 악일까. 문제는 시스템이다. 그들을 둘러싼 거대한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내고 운영하는 정부. 영화는 영리하게 그 시스템의 기원을 밟아 그것의 문제점을 파고 들어간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 의해 탄생한, 태어나기는 태어났으나 아무도 신경쓰지 않은 건강보험제도. 그것이 노태우, 김영삼을 거쳐 진보정권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이제 '그분'에 의해 어떠한 운명에 처했는지.

 

다큐멘터리라는 관점으로만 보았을 때, 이 영화 <하얀 정글>은 아주 좋은 다큐멘터리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내러티브는 산만하고, 이야기는 때로 중심축을 조금 잃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고, <식코>를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식코>만큼 재기발랄하지는 않다. 어떤 부분은 더 설명이 필요할 듯 싶은데, 그냥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고, 어떤 부분은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손바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컷들이 몇 번 삽입되는 것은 의료에 있어서 낙수효과(落水效果, trickle down effect : 쉽게 표현하면 ‘번짐’ 을 의미한다. 물이 번짐처럼, 어떤 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개인의 소득이 증가하여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듯 한데, 그 의미를 설명하지 않으니, 조금 쌩뚱맞은 컷으로 보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다큐의 문제라고 보이는 것은, 문제의 제시와 강조에만 그칠 뿐 그 다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다큐가 해결책을 제시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결국 제시하는 결론은 '민영화 반대'인데, 그렇다면 민영화만 안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미 병원들은 각종 나쁜 짓을 하고 있다. 중간에 그 대안으로 스치듯이 제시된 것이 '주치의 제도'인데, 그것도 설명이 상당히 빈약한 감이 있다. 아마도 이러한 것은 이 영화의 모호한 지향점과도 관련이 있다. 이 영화에서 결국 관객에게 요구하는 것은 분노와 행동이다. 그러나 분노와 행동 이전, 관객을 사로잡는 것은 '공포'가 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의 감독은 의사이고, 동시에 그 남편도 의사이다. 그런데 이들 역시도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대해 일종의 두려움을 보여준다. 부부 의사도 이럴진대, 그렇다면 일반 우리들은? 일반인들은 의료에 있어서는 영원한 약자이며, 병원에서 우리의 생각을 마비시키고, 의사의 지시에 거의 무조건적으로 따르게 만드는 근원에 있는 것은 결국 공포감이다. 분노를 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그 공포감부터 제거해야 한다. 단순한 감정적인 분노가 아닌 필요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분노는 결국 이성의 힘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하얀 정글>은 우리의 의료 현실이 하얀 정글임을 보여준다. 우리들은 그 정글에 놓여진, 놓여질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다. 중요한 것은 그 정글의 묘사에 치중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정글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할 말은 이것밖에 없다. 보아라, 무조건 보아라. 내부 고발자들의 통렬한 내부 고발이 줄줄이 이어지는 이런 이야기를 아마도 브라운관에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찾아서 볼 수 밖에. 누군가는 이것은 이미 다 아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크린으로 다큐멘터리를 볼 때, 관객이 미리 지녀야 할 오로지 한 가지의 마음가짐이 있다면, 불꺼진 극장에서 넓은 스크린으로 한 시간 이상을 집중해서 보는 것은, 거의 대부분 상상 이상의 체험이 되며, 동시에 당신에게 새로운 관점의 가능성을 던져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섣불리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 한 해, 여러 영화들에 대해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잘도 떠들어댔지만, 그 영화들 모두 안 봐도 좋고, 지금 쓰는 이 리뷰도 엉망진창의 거지 같은 리뷰라고 생각해도 좋으니, 보아라.

 

어디든 안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피할 수도 있다. 우리는 자유가 있으니까. 우리는 영광스럽게도 '새로운 자유주의'라고 이름붙여진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그러나 아마도 우리가 끝끝내 피하지 못할 것은 병원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하얀 정글에서.

 

 

덧.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0923.html

http://goo.gl/XRKV5

 

링크한 글은 <한겨레 21>과 <라포르시안>에 실린 송윤희 감독과 의사이자 영화평론가인 황진미 씨의 '자칭' 설전. 그러나 어차피 황진미 씨에게 비판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뭔가 다른 비판적인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본 글도 봤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현직 의사의 글도 좋고. 그런데 의사 분들은 30초 진료로 워~낙 바쁘셔서 이런 영화는 안보시는 듯 하다. 찾아보기는 하는데 영 눈에 안 띄네.

 

 

추가 덧(2012.1.3.).

글쓴분의 허락을 얻어, 블로그 글을 하나 링크해둔다. 의사분의 글인 것 같은데, 아마도 현직임상의이신듯한 글쓴이의 이야기가 영화의 이해에 있어 또다른 관점을 줄 수 있을 듯. (확실히 의사분들 입장에서 보는 것과 일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온도차가 있는 듯.)
http://ayako.egloos.com/465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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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1-12-30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양한 영화를 보시는군요. 저는 영화관에서 다큐멘터리 본지가 언제인지;
이런 세상에선, 아프지 않는게 최선인 것 같구나 싶기도 하네요.. 이제 감기는 다 나으신거죠? 아프지 마세요ㅠ

맥거핀 2012-01-01 15:28   좋아요 0 | URL
제가 원래 좀 골골대는 편이라 감기를 겨울에는 늘 달고 살아요. 그래도 이번 겨울에는 초반에 크게 넘겼으니 좀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아..그리고 이 영화는 꼭 챙겨서라도 보셔요. 영화가 좋으니 보라 이런 것 보다도, 요즘 세상에 어떻게든 버틸려면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이 됩니다. 나중에 상영이 끝나더라도 다운받으셔서라도(아마 인디플러그 같은데에서 다운로드 가능할 겁니다) 보세요.

마녀고양이 2011-12-30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식코를 보고 싶었는데, 아직 하나도 못 봤네요. ^^

얼마 전 동네 약사께서 막 화를 내고 계시더라구요. 아마 약을 편의점에서 파는 것과, 그리고 약의 의료보험 수가 때문인거 같았어요. 그리고 저도 입을 잘 못 벌려서 이비인후과 의사가 엄청 짜증을 내던, 비슷한 경험을...... ^^

절대 산업화가 되면 안 되는 것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의료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니요. 거기다
의사들 역시 버는 사람은 벌고 뺑이치는 사람은 치고... 엄청난 성형외과들 보셨죠!

맥거핀님, 오늘도 좋은 영화 리뷰 읽고 갑니다.
새해에 즐거운 일 가득하시고, 건강하세요.

맥거핀 2012-01-01 15:32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새해가 오기 전에 잊지 않고 들러주셨네요(저는 이렇게 새해가 온 후에 댓글을 달고 있지만..). 희망찬 새해 맞으시고, 늘 서재에서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물론 건강도 잘 챙기셔야하구요.

이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건강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더 하게 되었어요. 본문에도 썼지만, 현재와 같은 한국 사회에서 아프게된다는 것은 단순히 본인의 건강 문제 이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다른 건 신뢰할 수 없어도, 법관이나 의사, 교육계 등등은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데, 법조계도, 의료계도, 한편으로는 교육계도 점점 균열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 참 걱정이 됩니다. 2012년 첫날에 희망찬 얘기를 하고 싶은데, 올해에는 또 어떤 일들을 보게 될지 걱정부터 되네요.

맥거핀 2012-01-03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글 추가.
 
드라이브 - Driv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결말부 내용이 '약간' 있음)

 

 

 

아무래도 이 영화는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봐야지 싶어서, 영화가 거의 씨가 마르려는 시점에 극장에 다녀왔다.

 

개봉 이후 이 영화 <드라이브>에 대한 평은 대체로 두 개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수많은 걸작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멋진 장면들과 환상적인 씬들이 가득한 영화광을 위한 영화라고 말하는 평과 다른 하나는 관습적이고 뻔한 스토리의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유럽 영화의 소스와 멋진 음악을 살짝 얹어 그럴듯하게 포장한 영화라는 평(이러한 것은 영화 속 '버니'가 자신이 예전에 만들었던 영화들에 대해 자조적으로 냉소하면서 말하는 것과 정확하게 겹친다)이다. 물론 이 두 가지 평들이 공유하는 지점도 역시 두 가지 정도 있는데, 그 하나는 그야말로 멋지고 환상적인 음악들이 영화 전체를 뒤덮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영화는 유독 '폼'을 잡는 영화라는 점이다. 그것을 <씨네 21>의 김도훈은 다음과 같이 재미있게 표현했다(<씨네21> 829호). "<드라이브>는 그저 개폼의 영화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뭔가가 존재하는 영화인가. 물론이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는 처음부터 끝까지 개폼으로 달려가는 영화다. 다만 우리는 좋은 개폼과 나쁜 개폼을 구분해야만 한다." 과연 '좋은 개폼'이란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쳐두고라도, 이 말은 적어도 한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이 영화 <드라이브>가 그 '폼'을 영화 내내 전혀 숨길 생각이 없다는 점, 도리어 그 폼을 영화 내내 과시하면서 뻔뻔하게 (거의 일부러) 내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많은 액션 영화, 누아르 영화에서 그 폼을 일부러 내보이던 것은 거의 일종의 장르적 관습과도 같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과도한 '폼' 즉 허세 또는 '젠체'는 영화 전체를 너무 뒤덮고 있어, 약간은 기이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를 영화 <아저씨>와 비교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설정상의 여러 부분을 <아저씨>와 공유하고 있다. 정체가 전혀 설명되지 않은 한 남자가 이웃집의 여자와 어린 아이를 위해 전모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사건에 끼어든다는 것. 그러나 내 생각에는 그것은 설정상의 부분일 뿐이고,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아저씨>와는 조금은 다른 측면들이 있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아저씨>는 거대한 조직과 일인의 대결 양상이다. 사건은 처음에 커다란 무게로 몰아닥치고, 주인공은 하나 하나의 미션을 클리어해가며 적의 심장부로 잠입해 들어간다. 반면, <드라이브>는 처음에는 아주 작아 보였던 사건이 점점 혼란스럽게 꼬여간다는 인상이 짙다. 예전 숀 펜이 나왔던 영화 <유 턴>처럼, 주인공의 사건은 조금씩 비틀어지며,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악화되고, 처음의 작은 사건은 나중에는 그야말로 주인공의 모든 것을 걸어야하는 커다란 사건이 되어 버린다. 보다 근본적인 차이는 이 영화를 도대체 어떤 영화로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아저씨>의 경우 전형적인 액션물이다. 즉 관객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원빈의 머리깎기나 몸매이기도 하겠으나) 주인공의 액션이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 <드라이브>를 액션물로 보기에는 조금은 무리가 따른다. 결정적이고 무자비한 액션이 몇 군데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액션 장면은 몇 장면 되지도 않을 뿐더러, 거의 눈깜박할 새 지나가 버린다. 도리어 '액션 그 자체'보다 영화가 중시하는 것은 액션의 전후이다. 예를 들어 그 액션이 막 시작되기 이전의 숨막히는 긴장감, 액션이 시작되기 이전 그가 뒤집어 쓰는 가면, 적을 만나러 가면서 꺼내드는 장도리를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즉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액션 그 자체가 아니라, 액션을 둘러싼 아우라, 다시 말해서, 액션의 '폼'이다.

 

이것을 이렇게 비유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저씨>는 대전 액션 게임, 혹은 슈팅 게임이다. 스테이지를 거쳐갈수록 적은 강해지며, 최종전에는 그 적의 보스를 무너뜨리고 '클리어'를 쟁취해야 한다. 물론 대전 액션 게임에도 스토리는 있다. 그러나 그 스토리는 사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저 뒷 배경에 불과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각 스테이지에서 적과 싸우는 것을 만끽하는 것, 그 자체이다. 그에 반해서 이 영화 <드라이브>는 전략 시뮬 게임이다. 전략 시뮬 게임 같은 것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전략적인 사고, 빠른 판단력, 민첩한 행동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폼'이다. 즉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의 시뮬성, 현실감이다. 예를 들어 전장(戰場)을 배경으로 한 전략 시뮬 게임에서 헤드셋을 쓰고, 분대장의 지휘를 받고, 서로 무선교환을 하며 진지하게 게임에 임하는 것. 그런 게임을 전혀 좋아하지 않거나, 겉에서 단순하게 볼 때는 그것은 그저 바보 같아 보이는 개폼일 뿐이다. 그러나 그 게임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적을 잘 조준해 총을 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 실제의 전장에 있는 것 같은 시뮬성, 아우라, 폼을 느껴보는 것. (예를 들어 바로 그런 것을 위해서, 스타크래프트 중계를 하는 사람들이 마치 실제의 전쟁인 것처럼 그렇게 피를 토하고, 게임에 임하는 게이머들에게 우주복처럼 생긴 옷을 입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단순히 '게임을 잘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그 옷은 도리어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뮬, 아우라, 신화화를 덧붙이는 것은, 그것에 사람들을 빠져들게 하려면, 다른 말로 해서 고도로 '상품화'하려면 필수적이다.) <드라이브>도 비슷한 전략을 쓴다. 그 폼을 지속적으로 관객들에게 주입시켜, 영화 속 어떤 것들을 거의 체험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 영화의 첫 장면, 카메라는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의 시점에 맞추어져 있다. (이것은 예를 들어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이 "내일만 사는...' 하는 유명한 대사를 하는 장면과 비교된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운전하는 원빈을 정면으로 잡는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그 멋있는 대사를 내뱉는 원빈의 얼굴을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운전하는 라이언 고슬링을 정면으로 잡는 시점은 제한적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 차에 타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라이언 고슬링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수정 주: 2-3개의 정면샷은 거의 라이언 고슬링의 얼굴을 반쯤 가리고 눈깜빡할 사이 지나가버린다. 반면 원빈의 정면샷은 조명의 도움을 받고, 길게 지속된다.)) 경찰 무선과 농구 중계를 동시에 틀어놓고, 드라이버는 운전대를 잡고 5분의 시간 안에 '일'을 마치고 의뢰인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5분이 거의 다 되어, 그들이 나오고 경찰의 추격을 받기 시작하는 순간, 영화의 모든 관객들은 드라이버와 같이 경찰의 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입장이 된다. 도로에서의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는 전략 시뮬 게임. 자 이제 어떤 전략으로 추격을 따돌릴 것인가. 물론 드라이버는 멋지게 미션을 클리어하고, 곧이어 환상적인 음악과 함께 제목이 스크린에 떠오른다. (아마도 상당수의 관객은 여기에서부터 입이 떡 벌어졌을 것이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영화적인 체험', 말 그대로 영화로 느낄 수 있는 것의 극대로구나!)

 

 

 

 

그러나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것은 한편으로 이 이후이다. 대부분의 시뮬이 그 시뮬성을 자연스럽게 중화시켜 그 시뮬을 현실에서 체험하는 데에서 느끼는 모순을 최대한 덜 인식도록 하는 데에 비해, 이 영화는 그 시뮬성을 거의 의도적으로 드러내보이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시뮬을 이야기하는 시뮬레이션, 일종의 메타 시뮬이 된다. 그것은 영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나는데, 예를 들어 라디오 속 농구 중계가 현실의 농구 경기장으로 이어지는 아까 말한 처음의 장면도 그러하거니와, 주인공의 직업을 스턴트맨이라고 하면서 그에게 가면을 쓰도록 하거나, 버니와 같은 영화제작자를 등장시키는 것이 그러하다. 영화 속에서 스턴트맨으로서 가면을 쓰고 (주인공 대역으로서) 가상 영화의 스턴트를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뮬 속의 시뮬이며, 동시에 영화라는 것이야말로 그 시뮬을 지속적으로 되풀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의 최후의 액션이 그의 그림자로 보여지는 것이 이것의 일종의 상징은 아닐까. 그림자야말로 우리 가까이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뮬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당신이 손으로 '그림자 개'를 만든 경험을 떠올려 본다면 말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다른 것을 연상하게끔 하도록 한다. 이 주인공의 기이한 무표정들과 대사를 처리하는 방식들이 불러오는 이상한 SF의 뉘앙스들 말이다. 마치 우리가 시뮬로 만들어진 가상의 캐릭터를 볼 때에 오는 이상한 착각. 예를 들어 마지막 주인공이 그러한 공격을 받고도, 별 충격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것은 이상하게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도리어 일종의 해피엔딩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게임의 가상 캐릭터가 죽어도 다시 돈을 넣으면, 다음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따라서 이 영화를 누아르로 보기에도 뭔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 누아르라면 주인공의 비극적인 파멸이 뒤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영화 전체적으로의 보여지는 '시뮬임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시뮬레이션'은 단순히 몇 장면만으로 이야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니콜라스 윈딩 레픈은 기이한 모순의 화법을 쓴다. 시뮬레이션은 결국 모순적인 성격을 지닌 것, 즉 최대한 현실에 가깝게 만들어져야만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현실이 아님을 그 시뮬을 행하는 자들에게 최후에는 인식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시뮬레이션 속의 시뮬성을 드러내는 방법은 그것이 가진 기이한 모순성을 자꾸 끄집어내어 관객들에게 인식시키는 방법이다. 위의 김도훈의 말을 다시 가져와 본다면, 이 영화는 분명 개폼의 영화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개폼임을 지극히 잘 알고 있는, "나 개폼 맞아. 그러니 이 개폼을 더 잘 보도록 해"라고 하며, 자꾸만 드러내는 개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좋은 개폼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라고 하겠다.) 그것은 장병원이 리뷰에서 말한(<씨네 21> 830호 전영객잔) 신화적 세계의 히어로가 가질 수 밖에 없는 경계의 모순, 즉 인간에 가까운 내면과 초인에 가까운 외면이 보여주는 모순이 이 주인공 캐릭터에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로도 나타나고, 로맨스와 극도의 폭력이 결합된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뇌리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엘리베이터 씬에서도 나타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 속에서 시종일관 깔리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80년대 레트로 풍의 음악과 이 긴장감을 자아내는 폭력적인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는 화면들과의 불균질한 매치로서 보여지기도 한다.

 

그 음악들 중 처음 주인공 드라이버와 아이린(캐리 멀리건)과 아이가 차로 드라이브를 하는 장면과 나중에 영화 후반부에 다시 한 번 흐르던 'A Real Hero'라는 아름다운 음악이 있다. 그 반복되는 후렴구 "Real human being and a real hero". 가사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리얼의 인간과 리얼의 영웅. 진정한 인간만이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다. 시뮬레이션 속 가상의 드라이버는 리얼한 'Human Being'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리얼한 'Human Being'은 아닐지라도 리얼한 'Hero'였다. 캐릭터는 떠나갔지만, 나는 다시 동전을 집어 넣고 스타트 버튼을 누른다. 게임 속 캐릭터는 결코 죽지 않으니까. 이게 바로 게임이라고. 아니, 이게 바로 영화라고.

 

 

덧.

 

누군가가 올해의 가장 멋진 영화가 <드라이브>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뭐 그럴 수도...라고 하겠지만, 누군가가 올해의 가장 멋진 캐릭터가 이 영화 속 '드라이버'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화가 날 것 같다. 라이언 고슬링은 새로운 형태의 마초맨을 만들어냈다. 캐리 멀리건도 그 덕분에 아주 아름답게 나온다(상대역이 멋있어야 역할이 빛이 나는 법이니까). 라이언 고슬링에게 '올해의 캐릭터'를, 라이언 고슬링과 캐리 멀리건에게 '올해의 커플'을 내맘대로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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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12-22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그냥 달리는 영화로 보이는데, 저는 스릴러를 가장 좋아하고 그담이 범죄나 공포고, 사실 액션도 고만고만/멜로나 드라마는 거의 안봤어요, 지금까진. 올해의 가장 멋진 영화가 될 수도 있을까요, 이 영화. 드라이버는, 제가 운전 자체를 못해서 논할만한 것도 못되고.. 아하! 영화음악은 맥거핀님을 떠올리며 볼 수도 있겠어요!^^

맥거핀 2011-12-23 12:05   좋아요 0 | URL
매우 추운 날, 잘 지내고 계신가요? 아..서울이 아니라서 좀 덜 추우실 수도 있겠네요. 서울은 이번 겨울들어 간만에 매우 추운 날씨. 아무 대비없이 밖에 나갔다가 귀가 떨어져나갈뻔..ㅎㅎ

사실 이 영화는 제목이 드라이브지만, 드라이브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은 아니구요. 뭐..개인적으로 멜로물로 볼 수도 있지 않나..생각됩니다. 저는 초반에 이 영화처럼 쭉 빨려들어가는 느낌은 간만이었어요. 거의 영화관에서 몸을 앞으로 빼고, 어...거리면서 봤지요. 나중에 기회가 되신다면 꼭 한 번쯤 보시는 게 어떨까 생각이 됩니다. 물론 영화음악도 좋구요.^^

Shining 2011-12-23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글 읽지 않았습니다!(당당히 말하기) 왜냐하면 저는 이 영화 언제라도 꼭 보고 말거니까요ㅠ 그러니까 이 글은 영화 본 후에 읽을래요, 그래도 되죠?^^ 얼핏 듣기만 해선 모르지만, 이 영화 왠지 완전 제 스트라이크존 같거든요. 보고말테야..라고 타오릅니다ㅋ

맥거핀 2011-12-23 12:08   좋아요 0 | URL
이 영화 카피가 `당신의 심장에 드라이브를 건다..` 뭐 그런거였던 거 같은데요. 네..드라이브 겁니다. 강력 회전 스핀 드라이버 뭐 그런거. 저 같은 경우는 영화 후반부보다 전반부가 훨씬 좋았던 것 같아요. 그 불안하고, 두근두근한 뭐 그런거. 영화 초반 30분까지는 거의 올해 영화 중 넘버원급이네요.

뭐 리뷰야 영화본 이후에 읽어주시는 게 저로서는 좋죠. 할 얘깃거리도 있구요. 영화를 안 본 분에게 아무리 얘기해봤자, 그거 뭐 결국 아저씨랑 똑같네..이런 소리밖에 못 듣죠. 대신 나중에 꼭 읽기로 합의합시다.-_-;

Shining 2011-12-24 14:12   좋아요 0 | URL
네, 합의할게요ㅋㅋ 영화 보고나서 꼭 읽겠습니다-_-*

2011-12-27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도무지 언제쯤 이 영화를 보게 될지 몰라서, 일단 읽었습니다.
대놓고, 끝까지, 개폼 잡는 영화. 그런 영화 좋아해요. 게다가 음악과 장면이 모두 아름다운 영화라면 더 좋아해요.
시뮬을 얘기하는 시뮬이라.. 어떤 영화일지 궁금해집니다. 관심 가졌으니,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욧.^^

맥거핀 2011-12-28 12:50   좋아요 0 | URL
음..좋은 크리스마스를 보내셨는지, 괜찮은 연말을 보내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언제쯤이 될지 모르지만 이 영화 꼭 한 번쯤 보셨으면 좋겠네요. 특히 더구나 개폼을 좋아하신다면 말입니다.^^ 이 영화는 뭐 개폼을 빼면 영화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정도니까요. 음악도 정말 좋구요.

에일로이 2011-12-28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도 정말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멜빌의 `사무라이`를 강하게 연상시키기도 하더군요^ ^ 아무튼 올해의 발견이라 할 만한 영화에요.

맥거핀 2011-12-28 12: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헤르메스님.^^ 평론가들이나 리뷰어들 사이에 멜빌의 그 작품을 비교하여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조금 있더라구요. (저는 사실 그 영화를 보지 못해 할 말이 없지만요. 고전영화 잘 몰라요.;) 저도 올해의 베스트에 뒤늦게 넣어 봅니다. 초반부 몰입감이 상당했어요.

Shining 2012-02-20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약속대로 <드라이브> 보고 맥거핀님의 리뷰 읽었습니다-_-*
예상대로 제 스트라이크 존이었어요.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도, 캐리 멀리건의 샤방한 얼굴도 영화에 적합했다는 것에 동의하구요. 오오, 헤르메스 님의 댓글을 보니 멜빌의 <사무라이>를 떠올린 것이 엉뚱한 예측은 아니었군요.

그나저나, 저는 언제나 맥거핀님처럼 일관성있고 조리있게 글을 쓸까요(휴).

맥거핀 2012-02-21 00:02   좋아요 0 | URL
네..모두들 이렇게 Shining님처럼 약속을 잘 지킨다면, 우리 사회가 정말 따듯하고 아름다운 사회가 될텐데, 라는 국정홍보처스러운 뻘생각을 뜬금없이 해봅니다.

그쵸..이 영화 상당히 괜찮습니다. 처음에 음악이 깔리고, 제목이 화면에 떠오를 때 두근두근하지 않았나요? 여러 분들이 멜빌 영화를 이야기하시니 한번쯤 봐서, 저도 나중에 다른 영화 얘기할 때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Shining 2012-02-21 10:1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 아이리시스님한테도 의지짱이란 소리 들었는데ㅋ
저는 공정하고 깨끗한 사회를 응원합니다-_-(이러기ㅋ)

맞아요, 두근두근하면서 뭔가 빠져드는 느낌. 엘리베이터신도 좋지만,
그래도 역시 이 영화의 백미는 오프닝+_+

맥거핀 2012-02-22 01:25   좋아요 0 | URL
요새도 오프닝에 깔렸던 음악을 가끔 듣고 있어요. 들을 때마다 뭔가 내가 그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 기분이 묘해집니다. 이런 말은 오바인듯도 싶지만, 영화가 뭔가 아름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