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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의 미궁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기시 유스케의 전작 [13번째 인격]을 충격적으로 읽으며 작가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하나의 작품이 좋은 작품이었다면 다음 작품도 반드시 읽어 얻어 걸린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필력이 우수했음을 확인하고 싶은 못된 버릇 때문이었다.
기시 유스케. 그는 역시 연이어 읽게 된 작품에서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크림슨의 미궁]은 시작부터 좀 묘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었다. 목숨을 건 서바이벌이라는 소재는 흔한 소재가 되어 버렸다. 그 유명했던 일본의 잔인했던 서바이벌 영화도 있었고 미국 영화 쏘우도 그 류라고 볼 수 있으며 최근에는 [헝거게임]에서도 그 맥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야 그 참신성과 잔혹함 때문에 입에 많이 오르내리게 되지만 잦아지면 익숙해져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라 [크림슨의 미궁]을 펼쳐들면서 "또"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하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재미는 달라진다는 사실이 이 소설로 입증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크림슨의 미궁. 꼭 그리스 어느 섬의 괴물이 나올 듯한 미궁을 뜻하는 제목 속에서 우리는 올드보이의 시작처럼 이동되는 시작을 맛보게 된다. 후지키 요시히코. 40세. 서바이벌 소설의 주인공으로는 다소 노쇠한 듯 한 주인공인 후지키는 큰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다 회사의 도산으로 실업자가 되었고 자식이 없는 가운데 아내와의 이혼도 예고된 상황이었다. 자연스레 실업자이자 동시에 노숙자가 되어 버린 후지키.
그를 기다리고 있는 앞날이라는 것은 과거와는 달리 우중충하고 어두운 것으로만 생각되던 어느 날, 전향성 기억상실증을 앓는 것처럼 낯선 곳에 버려진 자신을 발견한다. 앞 뒤의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 이상한 날에.
그에게 주어진 휴대용 게임기 화면 속에서 "화성의 미궁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시작되면서 그는 생명 서바이벌의 아바타 중 하나가 된다. 도중에 몇몇 플레이어들과 만나게 되지만 그 중 게임기를 망가뜨려버린 오토모 아이라는 여자와 함께 이동하게 되고 플레이어들은 게임기의 지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 한 명만 살려준다는 게임의 세상 속으로....
인간은 한계 상황에 오면 인면을 상실하게 되는 것일까. 다른 팀인 나라모토,쓰루미 조가 함께 하던 세노오의 인육을 먹으면서 그들은 식시귀로 변해버렸고 다음 허기를 채우기 위해 시시각각 후지키와 아이팀으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은 꼭 바이오 하자드의 한 장면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현실인지, 가상공간인지 헷갈리기 시작하고 인간인지, 아바타인지 구분이 모호해질 무렵 인육을 먹어 신체까지 변화되고 있는 나라모토와 쓰루미의 본능적인 추격을 받던 후지키는 가까스로 살아 [화성의 미궁]에서 탈출한다.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물음과 함께 그가 다시 기억을 되돌려보면 정작 아이는 너무나 이상한 점이 많은 여자였는데, 그녀는 이름에서부터 장애가 있던 청각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거짓같았다는 것이 결론내려졌다.
아이가 의심되는 가운데 후지키에게 친구 후카야가 들려준 이야기 하나는 아주 충격적인 것이었는데 스너프 비디오계에서 세미다큐멘터리 식으로 리얼 서바이벌을 찍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구매자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게임처럼 리얼하게 찍는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지만 그들이 인간을 마치 아바타처럼 게임의 도구처럼 살생하게 몰아간다는 사실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재미를 위해 인간의 잔혹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서로를 죽고 죽이게 만드는 살생 게임. 그 현장성을 위해 카메라 장치를 단 인물도 그 사이에 밀어넣어 생생하게 리얼 생중계를 한다니......
[크림슨 미궁]은 그 붉은 책 표지 만큼이나 무섭고 잔혹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는 소설이었다. 어쩌면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오랜세월 군만두만 먹고 살아남았던 것보다 더 잔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