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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불행한 2월의 아이로부터 묘한 끌림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2월의 마지막날 여행을 시작했다.
3월부터 학기가 시작되는 이상한 학교에 리세는 입학한다.
모두들 꺼리는 2월의 마지막 날, 불행한 2월의 소녀가 되어.
무엇인지 모르는 모호한 상태에서 시작된 그녀의 기숙학교 생활에서 룸메이트 "유리"는 보호자이자 안내자가 되어 주고 있다. 유리를 통해 듣는 학교의 둘레.
남자이자 여자인 학교장이 운영하는 '파란 언덕'이 있는 이 학교는 세 부류의 아이들이 맡겨진다. 자식을 과보호하는 부유한 부모들이 고급스런 학교에 보내고 싶어 잠시 맡긴 "요람",
뭔가 특수한 직업을 갖고 싶어서 자유스럽게 개인교사에게 전문교육을 받기 위해 입학한 "양성소", 집안 사정이 있어서 집에서 원치 않는 아이들이 맡겨지는 "묘지"
이 세부류의 패밀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학교는 3월의 나라이다. 3월에 들어와 3월에 나가는....그 곳에 2월의 아이인 리세가 들어섰다.
그녀는 기억을 잃었다. 1년전부터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은 세부류중 어느 부류인지도 모른채, 이 곳에 의탁된다. 하지만 무언가 아련한 것은 리세를 신비스럽게 만들고 특히나 소수만이 초대장을 받을 수 있다는 원장의 차모임에서 리세는 아주 특별한 영매가 된다.
리세의 입학 전 사라진 두 아이 중 한명이 이미 죽은 상태라는 것을 리세가 밝혀내는 동안, 그날 한 아이가 또 살해된다. 그리고 그날 들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
이 이야기 속에는 미스테리와 스릴러처럼 밝혀지지 않는 것을 쫓게 만드는 추격자 같은 심정이 녹아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의 역할에 대한 비밀과 교장의 비밀, 사건이 거듭될 수록 끝으로 향해갈수록 덧붙게 되는 아쉬움들이 수반된다. 특이한 것은 범인의 존재보다는 리세의 과거가 더 궁금해진다는 것이다. 살인사건을 뒤로 하고라도.
갇혀진 공간. 이 폐쇄 공간 속에서 아이들의 움직임은 아주 감질맛나는 군무같다. 그들은 비밀이 없는 이 곳에서 자신들의 공간과 비밀을 공유해 나간다. 하지만 그 비밀이라는 것도 사실은 다들 공공연한 비밀인 셈이다. 그 속에서도 핑크빛 희망은 존재한다.
3월의 첫날 입학한 햇살같은 미소년 요한.
언제나 툴툴대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는 듯 하지만 누구보다 순수한 눈으로 리세를 쫓고 있는 완소남 레이지.
애정의 눈길인지, 의혹의 눈길인지 모르지만 그녀를 주시하고 있는 소녀들의 로망인 교장.
그래, 요한도, 유리도,나도 ....모두 거짓말쟁이들이야...
라는 고백을 할 때 쯤 요한에게서 가 있던 시선은 레이지에게로 옮겨진다.
"거짓말이 아니었네...그 녀석하고 누가 더 잘 춰?"
"레이지일까?"
"그렇게 나와야지."
레이지의 질투일까. 진심이 묻어나는 한 마디.
레이지에 대한 그리움을 그녀는 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기억을 되찾는다. 왜 이곳에 보내졌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왜 2월의 아이가 되어야 했는지...그리고 주변인들과의 관계정리도 함께.
종국엔 우리는 여왕님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게된다.
이 책은 참으로 특별한 책이다.
오랜세월동안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던 [당신들의 천국]의 부동의 1위자리를 위태롭게 했던만큼이나 매력적이었으며, 아쉬움으로 오랫동안 책장을 덮지 못하게 만든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찾아 오랜세월을 헤매어 온 듯 하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언급된 책 중 이 책은 최고의 책이다. 감히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