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소설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정유정.지승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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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의 첫 장을 넘겼을 때가 떠오른다. 첫문장부터 독자를 사로잡아라! 는 작법서의 충고가 바로 떠올려질 문장.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 첫 문장을 발견한 정유정 작가의 책은 어떻게 쓰여진 것일까. 이후 작가의 다음 작품들을 꾸준히 찾아 읽고 있지만 <7년의 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첫인상은 보통 3초 만에 결정된다는데 <7년의 잠>의 경우엔 1초도 걸리지 않았던 것.



그 멋진 제목도 작가가 정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를 읽으면서 확인했다. 작가가 정한 애초의 제목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이 붙여진 이야기를 쓰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개요를 쓴 후, 머리에 김이 날 정도로 자료를 수집했다는 작가는 인터넷 지식보다는 발로 뛰는 성실하고 믿음직한 방법을 선택했으며 해당 분야의 책을 쌓아가며 탐독했다고 한다.



아주 공들여 쓴 그 소설을 나는 너무나 편하게 읽었으니 작가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문득 읽다보면 작가가 어디서 영감을 받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이야기를 완성해냈을까? 궁금해지는 책들이 있다. 너무나 전문적인 영역이라 그 취재력이 궁금해지는 이야기가 있는 반면 상상력과 영감의 원천이 궁금해지는 이야기들은 각각 어떻게 쓰여졌는지 그 과정을 이처럼 속시원히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날까.

 

 

소설이 완성되어가는 과정부터 작가의 생각을 가감없이 확인할 수 있었던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는 바람이 선선한 가을,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찬찬히 읽기 참 좋다. 관심을 둔 분야여서 더 꼼꼼히 읽기도 했지만 읽다가 잠시 접어 두어도 다시 펼쳐서 읽었을 때 무리 없이 이어 읽기 좋은 책. 인문학 서적처럼 즐겁게 읽은 책 한 권이 전하는 여운의 꼬리가 참 길다.

 

 '작가의 영업 기밀'을 솔직하게 알려준 정유정 작가의 다음 소설의 소재는 또 무엇일까. 첫문장이 충격적이지 않더라도 끝까지 읽은 후 진한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싶다. 인터뷰를 통해 본 작가의 진심이 모든 독자에게 전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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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주
이정연 지음 / 고즈넉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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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둘 중 하나일 것이라 순항은 생각했다
청정무사의 풍문이 거짓이거나
청정무사가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옳은 일이라 허락했거나.
물론 지금의 그로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모를 일이었다
p157

 

 

 

 

민중은 꼭두각시가 아니다. 글자의 반포를 두고 갈등을 빚은 <뿌리 깊은 나무>에서처럼 금주령을 사이에 두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밀주>에도 비밀조직이 등장한다. 왕과 한 나라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숨은 거대권력이라....매력적인 요소이지만 <밀주>의 반전은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영조 11년, 왕이 금주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술은 여전히 사람들 곁을 맴돌고 있었고 암암리에 거래되곤 했다. 영조 실록에 '술 마신 신하의 목을 베다'라는 대목이 나올 정도니 재산여하, 벼슬유무를 떠나 술을 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나보다. 그 중 제사상에 술 대신 식혜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효' 와 직결된 젯상에조차 올릴 수 없거나 너무 비싸서 몰래 구할 수 없었다면 대체 누가 검계의 술을 구매하였는가? 주 구매처는 누구였으며, 당시 조선의 기방은 다 폐업상태였나?라는 의문이 든다. 밀주전담반금란방과 아무도 터치할 수 없는 '오궤신'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 정체가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한양최대밀주조직.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그들의 뒷배는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금한 자도 허한 자도 한 사람임을 알고나니 맥이 탁 풀려버렸다.



구설수가 많고 컴플렉스 덩어리였던 한 남자가 왕에 올라 이룬 업적도 많았으나 그의 권력에 희생된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니 그를 좋은 왕이라 불러야할 지 그렇지 않은 왕이라 기억해야할 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story....

1755년 9월 8일 영조는 금주령을 시작했다. 그리고 검계 조직은 몰래 빚은 밀주를 빙고에 보관했다. 하필 밀주가 보관된 빙고에서 사람이 죽었다. 수장으로 알려진 철주와 2인자인 진기는 그 죽음을 두고 서로의 거짓말을 확인했고 상대의 손바닥만 스쳐도 손금을 단박에 읽는다고 소문난 우포청 손금부장 장붕익은 그간 모아온 사람들의 지문으로 수사망을 좁혀나가기 시작했다. 더불어 오궤신 중 한 명인 바히르의 제안으로 금란방에서 버리는 밀주에 약간의 치자를 섞어 검계와 함께 일하는 자까지 솎아내기 시작했다. 좋은 꽤였으나 그들의 힘은 위로도 옆으로도 너무 넓게 뻗쳐 있었다.

 

 

오궤신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을 모두 이뤘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p435

 

 

맡은 바 일을 훌륭히 해냈으나 너무 잘 해내어 도리어 죽음을 맞이해야했던 오궤신, 이수판, 석포, 바히르, 한길을 대표해 왕 앞에 선 붕익에게 임금은 상이 아니라 한쪽 눈을 앗아갔다. (이 중 한길은 살아남아 붕익과 함께 검계의 뿌리를 쫓아 창원으로 향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을 버리지 못한 남자와 허망함에 눈물을 흘려야했던 임금.이정연 작가의 역사스릴러 <밀주>는 천만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온 것만큼 재미있었지만 시대와 인물을 되새김질해보면....영조치하는 역시 씁쓸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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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탐정 정약용
김재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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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이 낯익다했더니 <훈민정음 암살사건>,<색, 샤라쿠>,<경성 탐정 이상>,<섬, 짓하다>를 쓴 작가였다. 학자로만 알고 있던 정약용을 탐정으로 불러들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작가가 정약용을 통해 그리고 사건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유랑탐정 정약용>>은 수수께끼 풀어가듯 읽으면서 한 남자를 뒤쫓게 되는 이야기다. 이정명 작가의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과 '가리온'의 대치캐릭터만큼 멋진 구도를 기대하게 만드는 소설이기도 했다.

그 이름도 집안도 업적도 모두 유명한 '정약용'이라는 모범생 선비는 소설 속에서 삼미자라 불리고 있었다. 천연두를 앓아서 세갈래 눈썹이 된 그와 일곱살 많은 벗인 가환의 앞에 던져진 연쇄 살인 사건은 흉측했다. 발견된 시체들의 장기가 사라졌다. 장기밀매가 없었을 시대인 조선 시대에서 살인범은 그들의 장기가 필요했던 것일까. 읽을면 읽을수록 궁금하기 짝이 없게 만드는 <유랑탐정 정약용>은  하루만에 다 읽었을만큼 막힘없이 술술 읽혔다.

 

 

하나가 시작되었지만 시작된 하나가 없듯이
하나가 끝났으나 그 하나는 끝난 것이 아니다

 

 

 

아쉽게도 평등교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사이비 종교집단을 소재로 했던 드라마 <구해줘>에서처럼 조선시대에도 비틀린 믿음,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구나 정도로 여겨졌을 뿐이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찾아든 곳에서조차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던 사람들의 생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애초에 영화 '조선명탐정 시리즈'처럼 코믹한 스토리를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기에 결말은 예상대로였다. 작가의 최신작인 <이웃이 같은 사람들>을 같은 시기에 함께 읽었는데, 후자쪽이 훨씬 더 치밀하게 쓰여진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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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장의 재판 -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작 케이스릴러
박은우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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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청계산장에서 마약과 섹스파티가 열린 10월.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벤츠....주차된 차만 봐도 어떤 사람들이 초대받았는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한 파티에서 총성이 울린다. 애초에 누가누구인지 알 수 없는 가면파티에서 과연 경찰은 무사히 인질들을 구출해낼 수 있을까. 범인들이 인질들 속으로 숨어들어가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인데........!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작인 [청계산장의 재판]은 케이블 tv속 범죄드라마들처럼 장면장면이 머릿 속에 잘 그려진 소설이다. 범죄는 복수를 목적으로 철저하게 계획된 만큼 수면 위로 떠오른 과거의 사건이 산장의 인질극과 함께 경찰 앞에 던져졌다.

여고 2학년을 납치해서 집단 강간하고 살해한 5명은 아무런 형벌을 받지 않았다. 법망을 피해간 것이 아니라 권력층이었던 그들의 부모는 가짜 범인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자식들의 죄를 덮었다. 뿐만 아니라 딸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던 가장과 그 가족까지 몰살된 사건은 억울하게도 파묻혀 버렸다. 드라마 [리턴]의 악벤져스들이 떠올려졌고 복수를 위해 신분을 숨긴 채 자신의 삶을 포기한 가족들의 희생이 겹쳐졌다.

복수의 끝은 달콤하지 않았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을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 역시 철저하게 망가져 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영화화 된다면 숨막히게 빠른 속도로 몰아가는 한 편, 그 끝이 허망함이 아니라 애잔함이 남겨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최근에 읽은 오타 아이의 [범죄자]의 결말에서 보여준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지옥을 가지고 있다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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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장군이 된 꼬마 장승
노경실 지음, 김세현 그림 / 두레아이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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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동화와 창작동화 외에도 번역 작업까지 활발하게 활동중인 작가 노경실의 동화 <천하대장군이 된 꼬마장승> 은 동양화 그림작가 김세현의 그림까지 더해져 전통빛깔로 반짝반짝 빛난다. 실시간 검색어로 오르내리는 국내외 흉흉한 소식들로 피폐해진 마음을 달래기에 '동화'만큼 적당한 힐링처가 또 어디 있을까. 그래서 도망치고 싶을 때 만나는 친구가 아니라 '위안처'같은 든든한 친구, 동화. 이번달에는 꼬마장승을 만났다.



이제는 민속촌 입구에서나 볼 수 있는 장승들은 사실 마을 어귀마다 서 있던 푯말이자 수호신이었다. 10리나 5리 간격으로 세워서 이정표 구실을 하기도 했다는데 '전설의 고향'이나 공포영화에 가끔 등장해서 평소엔 참 무섭게 여겨졌다. 물론 제주 하르방처럼 귀여운 석장승도 있겠으나 나무로 만든 목장승은 표정도 무섭고 오랜 세월 속에서 비바람을 버티고 서 온 관계로 낡고 그 색이 바래져 더 무섭게 느껴졌나보다.



그런 장승의 느낌을 싹 지워버린 것이 바로 꼬마 장승 천둥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미지가 강했던 장승계에 꼬마 장승이라니.....상상도 못해본 캐릭터의 등장에 어리둥절했던 것도 잠시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고 작은 동물들을 놀라게 만들어서 '말썽쟁이','사고뭉치','고얀녀석'이라고 불리는 장승에게선 심각하면서도 권의적인 표정 따윈 어울리지 않았다.

 

장난이 치고 싶어서 근질근질...엄마 아빠의 꾸지람에 기가 죽는 것도 잠시!! 금새 개구진 표정이 되어 버리는 꼬마 장승 '천둥이'. 이름까지 천둥이여서 천둥벌거숭이같이 느껴지는 천둥이는 사고를 쳐 놓구선 아궁이에 던져질까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쳐 버렸다. 하지만 집떠나면 고생이라고 금새 산적들에게 붙들려 갖은 고생을 다 하던 중에 '흰돌마을'을 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용기를 낸 천둥이.


사고뭉치에서 대장군감으로 칭송받기까지 작은 성장통을 거쳤지만 꼬마장승은 든든하게 마을을 지켜냈다. '어른들에게는 웃음을 준 이 동화가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읽혀질까. 한국적인 동양화 그림은 또 어떤 느낌이 들까.' 궁금해하는 지인들에겐 얼른 책을 펼쳐보라고 권했다. 글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동화에선 당연히 내용부터 눈에 들어오지만 사실 그림이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동화책에선 그림부터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체적인 밸런스나 색감이 한국적인 이 동화책은 외국 어린이들 눈에 더 신기하게 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고 말았다. 선물로 주면 참 좋아할텐데...라는 아쉬움과 함께.


실제로 꼬마장승을 본 적은 없지만 동화를 읽고난 후, 여행 중 마주치게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반가울 것 같다. 살짝 동화속 천둥이의 개구진 모습을 떠올리면서....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은 후 재미나게 읽은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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