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청춘 목록

불량청춘 목록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
박상률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월

한 출판사에서 출판된 두 권의 책을 비슷한 시기에 읽었다. 두 권 다 청소년 소설이었지만 한 권의 저자는 남자였고 또 다른 한 권의 저자는 여자였기에 사뭇 필체나 풀어내는 방식이 달랐다. 좀 더 쉽게 읽히던 여자작가의 책에 비해 다소 거친 감은 있지만 이것이 남자들의 세계인가 싶어 재미를 붙여가며 읽어나간 책이 바로 [불량청춘 목록]이다.

70년대 인기 만화 책의 표지같은 표지를 넘기면 조그마한 소도시가 등장하고 그 소도시엔 타지에서 집안이 쫄딱 망해 도망치다시피 건너와 살게 된 현우가 살고 있다. 지인의 소개로 숯불갈비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부모와 가난하다는 것을 인지하기에 자꾸만 소심해지고 기가 죽는 현우. 이런 현우를 괴롭히는 "버섯즙" 불량 패거리들.

용돈벌이 삼아 방과 후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는 현우는 학우들의 괴롭힘도 괴롭힘이지만 담임 선생님의 차별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더 받고 있었는데 이런 현우를 주의 깊게 바라보며 옆에서 늘 도와주는 친구가 바로 반장 진식이다. 애초에 현우네는 진식이네와의 친분으로 인해 연고가 없는 이 소도시로 이사와 터를 잡게 되었고 구두닦이를 하고 있지만 왕년에는 한 주름 잡던 주먹계의 전설 "불곰"이었던 진식이 아빠로 인해 여러 고비들을 넘어갈 수 있었다. 지구는 슈퍼맨이 지키고 현우네 집은 불곰네가 지키는 격이랄까.

그래서인지 현우는 진식이라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지만 모범생이자 리더십이 뛰어난 진식이는 진식이대로 남모를 고민을 하고 있었으니....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는 겉으로 보이는 것 외에도 어른들은 잘 알지 못하는 참으로 많은 고민들이 산재해 있는 것만 같았다.

이상한 나라의 폴에서 사악한 버섯돌이가 있듯 현우와 진식이가 우정을 쌓으며 커가는 이 땅에는 버섯즙 패거리라는 악의 싹들이 있는데 이들은 반성도 할 줄 모르고 오로지 괴롭힘과 복수의 세계에만 집착하는 우울한 영혼들이어서 읽는 내내 마치 실제로 살아있는 인물들인양 미워하기도 했다. 요런 녀석들, 정말 남학생들만 우글우글한 학교에 꼭 몇몇 씩은 있는 애들이 아닐까.

불량 청춘 목록은 거칠지만 색다른 세상을 맛보는 듯한 재미를 깨알같이 선물해준 책이었다. 오랜만에 학창시절로 돌아가 살짝 남학교의 일상을 몰래 살펴본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비너스에게

비너스에게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
권하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12월

청소년 소설은 보통 성장소설의 형식을 띄는데 그 성장통이 "성적"인 것이라면...?

그것도 남다른 성적 취향을 다룬 것이라면....?

너무나 예민한 주제이기도 하거니와 풀어나가기 어려운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권하은 작가는 현명하고도 재미나게 그리고 일상적으로 풀어내고 있어 놀라울 따름이다.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동일 출판사의 타작가에 비해 훨씬 읽기 쉬운 문체에 풀어나가는 시선도 따뜻하기만해서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만 아니라면 여느 성장소설과 진배없어 보이기도 했다.

다르다는 것이 나쁘다???

라는 인식을 확 뒤집어주면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임을, 다르지만 차별받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는 착한 소설이라 더 사랑스럽다. 의사인 돌싱맘의 조용한 아들이었던 열여덟의 성훈이는 평범했다. 내집처럼 드나들며 머슴밥을 먹을 수 있는 진한 우정을 자랑하는 친구녀석도 있고, 학교 성적도 고만고만 했으며 특별히 튀거나 불량한 학생도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동경하는 선배가 생겼으니 그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으로 엉뚱한 일을 벌이고말면서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을 뿐이다. 선배의 생각들이 궁금해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고픈 마음에 시작된 작은 거짓말은 들어줄 사람없는 고3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알바"로 변형되었고 인기를 타면서 성훈이는 "고3들의 남동생"으로 불려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친해지고 싶은 형과도 친해졌지만 그와 단둘이 있다가 그만 키스를 해 버리고 말았으니.....이 일로 인해 학교에서는 자퇴를 하고 엄마는 머리를 싸매고 눕기 시작했다.

여자보다는 남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적 취향.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된 성훈을 위해 엄마는 동일한 취향을 지닌 의대 동창을 찾아내었고 엄마의 동창 양나가 운영하는 시설에 오는 남다른 아이들과 수의사 현신의 도움으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엄마와의 관계 역시 단절시키기만 했던 과거와 달리 이야기의 물고를 틀 노력을 시도한 결과 회복세로 들어서게 되었다.

나와의 화해, 가족과의 화해, 세상과의 화해는 있지만 타협은 없어서 더할나위 없이 멋있었던 소설 [비너스에게].

생각보다 재미있게 술술 읽혀서 반나절만에 금방 읽고말아 묘한 아쉬움이 남았던 소설 속에는 내겐 그저 평범한 열 여덟살 성훈이 있었다. 특별하지만 특이하지는 않았고 독특했지만 별나지는 않았던 재미난 소설 비너스에게.

동성애라는 코드를 다루고 있지만 다른 이들 역시 그 어떤 잣대 없이 그저 재미나게 읽어주기를......!

개님전

개님전 ㅣ 시공 청소년 문학 50
박상률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진도 하면 진돗개~!!가 제일 먼저 떠올려지는데,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을뿐 진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섭섭해할 거라도 생각해 본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겠다 싶어졌다. 이 책을 읽고나서는.

사실 섭섭함을 남기고 할 내용의 책은 아니었다. 진돗개라서 일반 개들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살거라고 생각하며 읽은 개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남다르지 않아 가슴아프고 실망슬웠으니까. 사람이라면 인생을 바꾸어볼 생각이나 해 볼 것을. 개로 태어났기에 개의 팔자이거니 생각하면서 가족과 헤어져야 하다니....!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시각으로 보자면 한없이 슬프겠지만 이야기는 늙은 어미개 황구가 더이상 출산을 하지 못하게 되자 마지막으로 낳은 누렁이 형제는 어미곁에서 떼지 않고 키우려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이별하게 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황구는 마지막 출산으로 다섯을 놓고 셋을 잃었다. 노랑이와 누렁이만 살아남아 곁에서 무럭무럭 커나갔었는데, "오수의 개"처럼 황씨 할아버지를 불구덩이 속에서도 구하면서 할아버지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더랬다. 그들은 그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쥐도 잡고, 아기 똥도 먹고, 집안에 들어온 고양이도 쫓아내면서 생존해나가고 있었으나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그만 돌아가시고나자마자 아들은 황구의 두 새끼 개들을 상여꾼과 옷장사에게 각각 팔아버렸다.

가까운 곳의 상여꾼에게 팔려간 노랑이는 장터에서도 보고, 오며가며도 자주 보았지만 멀리 가버린 누렁이는 볼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늙은 어미의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는데 어느날 그 보고픈 누렁이가 대문앞에 나타났다. 먼길 온 자식인데 먹일 것이 없이 빈 젖을 물려야 하는 어미의 마음. 개를 화자로 한다고 해도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모성을 자극하고야 말았다.

<개님전>은 판소리에서 사설부분만 소설형식으로 재구성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보니 처음 읽을 때는 문체의 낯설음 때문에 읽는 속도가 느렸었지만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웃음짓게도 만들고 구수한 사투리가 정감있게 느껴져 읽는 스피드를 높이게 만들었다. 비록 진도의 풍습이나 역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해도 황씨 할아버지네 개들의 삶 속에서 인간도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애환이 묻어나 있어 읽는 재미에 가속도를 붙여주었다.

가끔 동물을 향해 "인간보다 낫다"는 표현들을 하곤하는데, 그건 짐승보다 못한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같아서 말이 들려올때마다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카톡으로 그런 소식들을 서로 전달하며 "세상사는 일이 참 예전같지 않아"라고 얘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이가 이만큼 들었나? 싶어지기도 하고. 하지만 반대로 반려동물들과 잘 살아가는 사람들, 봉사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올때면 그래도 세상에 대한 희망을 품어도 좋을 듯 해서 기분이 한결 업되어지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토록 단순한가보다. 개들의 인생도 단순할 거라고 생각했건만. 그들의 눈을 통해본 세상은 사람의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가족과 헤어지면 슬프고, 운명이라 인생을 받아들이면서도 좀 더 나은 방법을 찾고자 하고. 그래서 이 책이 동화나 청소년 문학이 아닌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동화처럼 여겨졌다. 적어도 내게는-.

뿔

[eBook] 뿔 (체험판)
임은정 / 문화구창작동 / 2012년 5월

영화[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전국민은 "꼭 잡고 싶었다"는 열망을 가슴에 품었다. 그 울분과 안타까움이 겹쳐져 영화는 그리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이 포스터에 적은 문구처럼 우리는 범인을 꼭 잡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 시골 경찰서의 환경은 너무나 주먹구구식이었고 엉망이었다. 찍어서 아무도 범인으로 만들기에 급급했고 증거를 분석하기보다는 우겨세워서 범인으로 몰아가기에 바빴다. 어쨌든 빨리 누군가라도 잡아넣어서 민생치안을 안정시켰다는 국민적인 인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끝나버렸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여기 그 영화 속에서처럼 주먹구구식 수사의 희생물로 젊은 날을 바쳐야했던 한 남자의 삶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 단 한번 밖에 살지 못한다는데 이 남자의 인생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것이며 또 누가 보상한들 만족스러울까 싶어질만큼 그의 인생을 보고있자니 눈물부터 차오른다.

목회자가 되고자 꿈꿨던 한 젊은이는 사상범으로 몰리게 되고 결국 모든 꿈들을 접고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만화방 주인으로 살아가지만 그조차 삶이 넉넉치 못해 아내와의 사이는 틀어질대로 틀어져 있었다. 마흔을 바라볼 나이에 만화방에 들락거리던 10대 후반의 어린 여자아이의 흠모대상이 되지만 그에겐 바람조차 사치인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놈의 술은 그 어린 아이를 어린 연인으로 만들어 버렸고 어쩔 수 없이 시작된 관계지만 그는 책임감을 느껴야했다.

집에는 아내가 만화방의 단칸방에는 애인이 있는 생활. 코딱지만한 동네에서 소문이 안날래야 안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가운데 파출소 소장의 딸내미가 마을에서 유일하게 TV가 있던 몇 안되던 장소인 만화방에 다녀오겠다고 나갔다가 성폭행을 당한채 목졸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마을 전체가 발칵 뒤집힐 일이었다. 범인 색출은 어렵고 증거는 충분하지 않고 누군가는 잡아 넣어야하고....이 시절에 불륜남이자 사상범이었던 그는 그들의 좋은 먹잇감이었고 결국 고문과 조작의 과정을 거쳐 오랜 시간의 옥살이가 시작되었다. 면죄부를 얻기까지 39년. 그 억울한 세월을 뒤집고 무죄를 증명하기까지 세상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는 어느새 78세의 노인이 되어 버렸다. 목회자가 되어 남은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의 소망은 단 하나 억울함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죄를 지은 자들이 죄사함을 받는 것이 면죄부인데 그에겐 죄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 도리어 면죄부가 되어버린 이상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평범하게 살아온 내게 그것이 가장 충격이었으며 한 사람의 망가진 인생을 국가에서조차 보상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마음 불편해지는 진실이었다.

삶은 왜 이렇게 잔인한 것일까. 어딘가에서는 그 진범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세월동안 또 다른 범죄를 지으면서 살았을 수도 있고 그 이후에는 멀쩡한 인격의 사람인척 하고 어느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자신의 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 남자의 인생을 몽땅 지옥으로 만들어 놓고서도.

이 책은 범인이 아닌 정원섭씨가 그 억울함을 풀어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가장 궁금했던 한 가지는 빠져 있다. 그래서 범인은 누구? 인가 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공소시효는 지나버렸겠지만 그때 그 범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이게 바로 누와르

이게 바로 누와르!
나서영 지음 / 심심 / 2012년 4월

누와르는 프랑스어로 검다는 뜻이란다. 하지만 누와르, 느와르 라고 하면 예술 영화 내지는 홍콩 영화들이 떠올려지는데 그들을 예로 들어 설명했던 예술가들 때문에 머릿속에 인이 박혀 버려 그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초록색 표지의 책한 권을 읽으면서 나는 또 다른 누와르와 만나게 되었다. 기존의 생각들을 날려버릴만큼 통쾌하고 재미난 소설 한 권.

[이게 바로 누와르]는 상상하지도 않았던 재미를 가져다준 소설이다. 하지만 그 재미 안에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작지만 고스란히 담겨 있어 마냥 웃으며 읽게 만들지는 않는다. 심각하게 고민하고 문제의식을 갖게 만들지는 않지만 웃고 떠드는 속에서 풍자의 맛이 느껴지는 개그프로그램을 보듯 [이게 바로 누와르]는 그렇게 읽혀진다.

인구 6만의 도시 용주군. 광역시 급 큰 도시는 아니지만 용주군은 그들만의 룰으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너비의 지역이었고 이 중심가엔 3F짜리 건물인 혜영빌딩이 있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면서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었던 그들은 어느날 굴러온 돌에 박힌돌이 움직여지듯 한 일을 당하게 된다. 애초부터 6명의 남자로 구성된 친목단체였던 이들은 벤츠를 몰며 들어온 심씨형제에 대항해 지역을 지켜내려는 이들로 변모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발전이 좋은 것인지 지켜내는 것이 좋은 것인지에 대해 각각 찬반의 의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찬반론의 결론 도출을 내어보기도 처음이라 읽는 내내 즐거웠고 단편 드라마를 보듯 펼쳐지는 전개에 정신없이 휘말리기도 했다.

누와르에 대한 느낌이나 정의가 어찌됐든 간에 이야기는 한 작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형제와 친목단체간의 반목을 넘어서 힘과 권력의 맛을 잘 살려내고 있었다. 누와르하면 떠올려지던 몇몇 배경음악들이 책을 읽는 내내 귓가를 맴돌았지만 어느 것도 이 이야기와 어울리지는 않았고, 누와르가 가진 미학적 잔혹성이나 미장센적 장면들을 추려보긴했지만 영상화 했을때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누와르라는 제목과 참 잘 어울렸다. 서로의 이권을 두고 다투는 형국이긴하지만 그 속에는 그들나름의 정의가 있고 당의가 있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의 사회가 담겨 있어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효과까지 소설을 읽으며 누릴 수 있어 독자에겐 일석이조가 되는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