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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남자가 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단 5일간 상대의 정신을 쏘옥 빼놓고 5일 후엔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 5일 후에 자살할 거면서 세상에 아이를 임신시켜놓은 남자. 그 남자에 대한 그리움반 미움반으로 애증의 삶을 살아온 여인 엘리스. 외롭게 살다 스무살 무렵 인생에 갑자기 끼어든 남자 때문에 평생 남들을 피해 숨어서 살아야만 했던 그녀는 과잉기억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인간에겐 "망각"이라는 기능이 있어 기억하고 싶지 않는 것들을 흘려버릴 수 있어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되는데 그런 행운이 그녀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마치 조금 전에 일어난 일처럼 세세한 것까지 기억해내고야 마는 그녀의 능력.
그렇기에 신비한 남자 신가야와의 만남과 이별은 그녀에겐 또 다른 고통의 순간으로 남고 말았다. 10년이 지난 후, 그녀가 알게 된 진실은 그래서 무한 감동이면서도 끝없는 아픔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는데, 10년전 그의 자살은 그녀와 그녀의 딸을 지켜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고 그럼으로 인해 10년 후 5일 동안 다섯명의 죽음을 예언해내며 아내와 딸을 지켜냈다. 결국 이 이야기는,
10년 전에 죽은 남자로부터 지켜지는 사랑하는 두 여인에 대한 이야기
인 것이다. 테러로 아내를 잃은 FBI 요원 사이먼. 그가 엘리스와 미셸을 찾아오며 꼬여있는 과거는 실타래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10년 전에 죽은 남자가 벌이는 복수극에는 이 만남 또한 예견되어 있었고, 길을 지나치다 도움을 받은 거지조차 10년 후 그 쓰임이 있었으니 우리가 오늘 스치고 지나간 인연의 옷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딱히 가르침을 전하진 않지만 소설은 그래서 불교의 윤회 사상을 떠올리게 만들고 달라이 라마의 덕행을 가슴에 새기게 만든다.
P11 십년 후 오늘 초승달 아래서 암살을 당하실 겁니다. 삶과 죽음은 라마의 손에 달렸습니다.
라고 전해지는 예언. "십년 전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로 전달되는 그의 메시지들. 왜 십년이라는 세월을 묵혀야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화가를 꿈꿨던 엘리스의 삶은 분명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변해버렸다. 이 모든 일이 한 가문에서부터 비롯되었으니 불패의 가문인 호크쉴드 가문은 그들의 가문을 지켜나가기 위해 "궁극의 아이"들이 가진 힘을 악용했고 대가 끊기자 호크쉴드 가문은 다섯명의 "악마의 개구리"들을 통해 이어졌다. 그들이 바로 밀스타인/쉬프/페임벌린/킨데마이어/벨몽이다. 10년후 차례차례 죽어나가는 이들이 바로 악마의 개구리 멤버인데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욕심에 대한 뉘우침 없이 세상을 하직하는 모습은 악마 그자체로 비춰진다.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최우수상을 받음과 동시에 독자들로부터 무한 극찬을 받고 있던 [궁극의 아이]. 꼭 읽어보고 싶던 소설이었기에 혹 너무 큰 기대감에 실망하게 될지 몰라 걱정했으나 기우였다. 좋은 작품은 귓가에 누가 속삭여도 머리와 가슴이 그 감동을 고스란히 흡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