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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 푸른숲 / 2015년 11월
평점 :
길리언 플린은 마이다스의 손이다. 그녀가 쓴 작품들은 하나 같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고 수상작이 되어 주목을 받아왔다.
<나를 찾아줘>의 원작소설과 영화를 각각 보았던 나는 영상도 글도 너무나 강렬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음권을 읽고 실망하면
어쩌지? 고민이 될만큼 처음 읽은 그녀의 작품은 대박!이었다. 이후 '최고의 책'이라고 극찬 받은 <다크 플레이스>를 읽고 이번에
읽게 된 <나는 언제나 옳다>가 세번째로 읽는 그녀의 작품이다. 곧 <몸을 긋는 소녀>를 읽기 위해 구매 리스트에 올려놓은
상태이고.
하지만 집필 순서대로라면 <몸을 긋는 소녀>,<다크 플레이스>,<나를 찾아줘>,<나는 언제나
옳다> 순이라고 한다. 순서가 뒤바뀌어도 올드한 느낌이나 처녀작이구나 ! 싶은 유치한 구석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그녀는 타고난 스토리텔러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왜 이제야 작품을 세상에 내어놓은 것일까.
사실 그녀는 1988년부터 10년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서 TV평과 영화평을 담당하던 기자였다고 한다. 2015년에 만화
구성 작가로 데뷔하면서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저널리스트, 만화 구성 작가 라는 글밥 커리어가 생긴 그녀는 200자 원고지 200매가 안되는
분량의 단편 소설 하나를 툭 던져내어놓았다. 3만 7519자, 193매, 96페이지....이토록 간결하고 짧으면서 독자의 정신을 휘몰아칠 작품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 시작은 마치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쓴 11분의 시작처럼 담담했다. 11분 속 마리아가 창녀인 자신의 직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펼쳐보이듯 <나는 언제나 옳다>속 그녀 역시 남자들의 성적 욕구를 손으로 충족 시켜주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에 대한 고백이
참으로 담담했다. 그 시작은 발칙했지만.
P5 내가 손으로 해 주는 그 일을 그만둔 건 실력이 달려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해서 그만둔 거지
사회적으로 가장 터부시하는 것 중 하나인 성에 관한 묘사를 어쩌면 이렇게 그 인물의 성격에 딱 맞게 터뜨리며 이야기의 첫 신호탄으로
쏘아올릴 수 있는지......! 상당히 영리한 시작이었고 흥미로운 첫단추가 아닐 수 없겠다. 이로 인해 앞으로 이 여인이 발목잡히게 될 일들에
대한 기대심리를 한 껏 높여놓는 것은 물론 약간 공포스러우면서도 스릴러 분위기가 조성되는 중반부를 지날 때에도 여인에 대한 안쓰러움이나
당연하다는 식의 감정이입은 제외하고 오롯이 사건에 푹 빠져 어느 쪽이 진실을 털어놓는 쪽인지 두 사람을 두고 저울질 할 수 있도록 장치해
두었다는 점에서 나는 작가의 치밀한 계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가 많았던 엄마의 딸로 태어난 주인공은 십대가 되어 스스로의 길을 개척했다고 하는데 그 일이 바로 '성스러운 손'에서 근무하게 된
일이었다. 남성들을 상대로 불법 유사 성매매(?)를 하면서 동시에 여성들을 상대로는 점을 봐주던 그녀 앞에 어느날 수전 버크가 나타났다. 똑똑해
보이는 이 여성은 아들이 딸린 홀아비와 결혼하여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 하나를 낳아 가족으로 살아가던 중 최근 100년쯤 된 저택을 리모델링하여
이사하면서 가정내 문제가 붉어져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열 다섯 살이 된 남편의 아들. 사춘기 소년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흡사 귀신에 빙의된
듯 못되게 구는 아들 덕에 '카터후크 메이너'(저택의 이름)에서의 삶은 공포물로 변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외국 장기 출장 중이라는 남편은 주인공의 단골 손님이기도 했는데 어찌된 우연인지 그 아내 역시 그녀의 단골이 되어 자택 방문을 통해 그녀는
이제 퇴마사의 역할까지 도맡게 되었던 것이다. 한 몫 크게 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저택을 들락거리기 시작하던 그녀에게 15세의 소년 마일즈는
"누구를 믿을래요?"라고 물어왔다.
누구를 믿어야
하나.....
인터넷에 떠돌던 풍문으로 보자면 저택은 100년 전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였다. 백화점계의 거물이었던 카터 후크가의 가족
전원이 공들여 지은 저택에서 살해당했다. 그 범인은 첫째 아들 로버트. 올려진 카터 후크가의 사진 속 문제의 아들이 마일즈와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가짜 영매사였던 여주인공은 수전 버크에게 위험을 알려주기 위해 저택으로 향했고 그녀가 잠시 911에 전화를 걸러 간 사이
나타난 마일즈는 새엄마와 자신 중 누구를 믿을거에요? 라고 묻게 된다.
"의붓 아들이 나와 내 아이를 죽일지도 몰라요"
VS
"완벽한 결혼을 원했던 새엄마가 나와 아줌마를 죽일 거에요.
수전이 당신을 찾아간 일이 우연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수전의 하이힐 소리가 계단을 오르고 있다. 시간이 별로 없다. 자, 누구를 믿어야
좋을까.
그 어떤 끔찍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시간에 쫓기고 상황에 떠밀리고 결정을
종용당한다. 이 짧은 소설을 읽는동안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옮긴이가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은 4개의
플룻이 교차되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또한 가족이라는 집단 속 심리를 이용하여 '한 지붕 아래 함께 사는 가족이야말로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임을 각인 시킨다. 우리는 괴롭히는 건 멀리 있는 타인이나
공개적인 적이 아니라며.
다시 읽어도 빈틈이 없다. 꽉 짜여진 문살을 보듯 그 어느 한 페이지도 군더더기처럼 붙어 있는
장면들이 없다. 반대로 영화화 되었을 때 너무 짧지 않나? 싶을 정도로 그 각색이 걱정되는 길이감으로 쓰여졌다, 이 소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읽는 내내 섬뜩했다. 자극된 부분이
상상력인지...공포심인지....모르고 몰두하며 읽을 정도로 흡인력이 강한 소설이라 마지막 책장을 덮기 전에에 바로 지인들에게 카톡을 돌렸던 책이
바로 길리언 플린의 <나는 언제나 옳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