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모래 위의 두 발
안도핀 쥘리앙 지음, 이세진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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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73년생 글을 쓰는 엄마의 딸로 태어난 두 살의 타이스. 하지만 남은 삶은 겨우 1년이라고 했다. 그 오빠 가스파르는 전학한 날 아이들 앞에 서서 담담하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름은 가스파르. 사는 곳은 파리이지만 여동생 타이스가 이염성 백질 이영양증이라는 병에 걸렸고 그 아래로 태어난 아질리스 역시 많이 아파서 마르세유에서 살게 되었노라고. 어쩌면 막내 여동생은 살 수 있을지 몰라...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대로 이야기 한 덕분에 가스파르는 이사 온 동네에서 또래 친구 하나 없이 살게 되었다고 했다. 전염병이 아니라 유전 질병임을 알리 없는 아이들에게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모두 옮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여졌던 것일까.


 


타이스. 그저 걸음걸이가 좀 이상하고 손을 약간 떠는 정도만 인지하고 있던 부모는 처음에는 아이의 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더랬다. 앞 서 방문한 두 군데의 병원에서도 특별히 큰 병이라고 지적하지도 않았고 차차 저절로 나아질 성장통 정도로만 보았을 뿐이었으니까. 둘 다 건강한 부모에게서 태어나도 각각 보인하고 있는 병력이 아이에게 몽땅 전해지게 되면 타이스처럼 앓게 될 수 있다고 한다. 아이는 아릴설파타제 a라는 특수 효소를 만들어내지 못하여 몸 속 미엘린이 파괴되어 신경계의 마비가 진행되다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말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눈까지 머는....종국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에 걸려 있었다. 겨우 두 살인데.


 


 


p44  결과를 듣는 것과 결과를 기다리는 것, 둘 중 뭐가 더 끔찍한 것일까


 


 


프랑스 50만 독자를 울린 감동 에세이의 끝은 아이의 투병기로 끝나는 오픈 결말이기를 바랬건만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적막한 어느 날, 타이스는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타이스가 이제 막 숨을 거두었다 는 표현이 두 눈을 먹먹하게 만든다. 엄마의 읊조림처럼 타이스는 아주 예쁘게 살다 갔다. 결코 모자라지 않을 사랑을 듬뿍 받은 채. 치료법이 없는 유전병 선고를 받게 되면 정신이 없을 법도 한데 그 와중에 가족은 서로간의 유대감과 사랑을 되새긴 것 같았다. 누구나 태어난 이상 한 번은 죽는다지만 그 시기를 스스로 정할 수 없고 세상을 떠날 나이가 두세살이라는 건 너무 가혹하게 여겨진다. 여전히


 


p217  공감은 마음을 연다


 


는 말처럼 놀람, 슬픔, 괴로움, 안타까움, 사랑은 프랑스 독자들을 너머 멀리 위치한 동양의 한 나라에서도 나누어졌다. 불행을 과시한 적도 알아 달라고 한 적도 없다는 글쓰는 엄마는 사소한 것이라도 기쁜 일은 함께 기뻐하고 싶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녀가 기록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는 소중했다. 그들 가족뿐만이 아니라 읽는 우리들에게도. 예전에 보았던 수잔 서랜든 주연의 영화 <로렌조 오일>의 강한 엄마처럼 타이스의 엄마도 두 딸의 투병 앞에 강해져야만 했을 것이다.


 


그 여동생인 아질리스 역시 같은 병을 앓으며 아홉 번째 생일을 지나고 있고 저출산 국가인 프랑스에서 이들 가족은 이례적이라 해도 좋을만큼 아르튀르라는 건강한 사내 아이를 또 얻었다고 한다. 네 명의 아이 중 한 아이를 잃었고 다른 한 아이는 투병 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하거나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읽는동안 두 눈이 퉁퉁 붓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가족의 마음으로 읽혀졌던 이 이야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난치병을 돕는 단체 ELA가 널리 알려지면서 같은 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기 때문이리라. 좀 더 알려지면 한 아이라도 더 도움 받고 살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젖은 모래 위의 두 발>이라는 제목은 상징적이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오래 살다 가진 못했지만 아이는 부부에게 아주 특별한 한 아이였으며 읽는 독자들의 마음 속에도 그 이름을 남길만큼 특별한 아이였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타이스에게. 평범한듯 했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가족의 이야기는 그래서 진한 감동을 남기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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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 펄 벅이 들려주는 사랑과 인생의 지혜
펄 벅 지음, 이재은.하지연 옮김 / 책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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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벅이라는 작가는 좀 독특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되는 작가다. 1892년 웨스트버지니아주 태생이면서 중국에서 성장했다. 미국인인 것이 분명하면서도 중국인 왕룽 일가를 주인공으로 한 3부작 <대지>를 집필했으며 <모란꽃>,<북경에서 온 편지>등 중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써왔다. 그뿐인가. <살아 있는 갈대>에서는 한국에 대한 그 애정도 엿볼 수 있다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못해 뭐가 사족을 달기 어려웠다.

 

2차 세계대전으로 중국이 내란에 휩싸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귀국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대한 소설들을 집필하게 되지 않았을까. 서양인이면서도 동양인의 삶에 시선을 두고 있던 여류 작가. 전쟁을 겪은 세대이면서도 좌절하지 않았던 여성. 글을 쓰고 가정주부로 살기 보다는 두 팔 걷어붙여 설립한 '펄벅 재단'을 통해 직접 봉사활동에 나선 사람. 나는 그녀를 이렇게 기억하게 되었다.

 

물론 <딸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속 충고들은 유인경 기자가 쓴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나 <내일도 사랑을 할 딸에게>와 비교했을 때 현대적이지 못한 내용들이 더러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 세상을 살아간 세대의 여성이 그것도 전쟁과 결혼이라는 풍파를 겪은 여성의 충고는 귀기울여들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면 고민없이 이 책을 펼쳐들기를 권한다.

 

특히 여성은 약자인가 를 두고 설파하는 이야기는 읽은 뒤에도 곰곰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만들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약자'란 정지 상태에 머물러 있는 자로 국가와 민족을 불문하고 지속적인 약자들이 있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자유로워야 할 미국 여성들조차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 약자의 위치에 서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 당시에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약자였던 '여성'이 지금이라고하여 그 위치가 변했을까. 세상이 변하고 산업이 발전해도 어떤 면에서는 여성은 여전히 약자 중 하나로 머물러 있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체감할 수 있는 평등의 시대가 올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펄 벅 여사가 그러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딸이 결혼하려 데려온 남자가 딱히 맘에 들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현명한 충고를 해 주려 말을 고르고 고르는 어머니. 혼전 임신으로 괴로워하며 사연을 보내고 심지어 찾아오기까지 한 여성에게 냉정하고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어른.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그녀는 더이상 내게 소설가가 아니었다. 그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오랜 역사에 대한 현명한 수다를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벗이기도 했으며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먼저 자신과 화해하라! 고 등두드려주는 오래본 동네 친한 아주머니 같기도 했다.

 

P230  소설가는 자신이 쓴 책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

 

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충분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생각된다. 내가 발견한 그것들을 다른 이들도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아무 설명없이 이 책을 다음 주 가장 먼저 연락하게 될 사람에게 선물주어야지!! 라는 재미난 일을 꾸며(?)본다. 그리고 뜬금없이 어느날 물어봐야지. 그 책에서 뭐라고 하디?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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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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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라는 명칭이 낯선 세대도 있을 줄 안다. 1992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소련은 해체 되었다. 미국과 서로간 견제국이었던 거대 소비에트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은 당시 어린 나이의 내게도 적잖은 충격을 안겨줄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사망소식 자체가 충격적이었던 북한 김일성의 죽음이나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던 공산국가 소련의 해체는 그 벽이 무너져 통일이 된 동독과 서독의 통합보다 더 큰 놀라움일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전세계 누구라도 그 붕괴를 보며 경악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환호든 실망이든.

 

안타깝죠. 많은 것이 잊혀히고 있으니까....
P 377

 

 

1990년 공산준의의 패배라고까지 불려진 그 날이 지나고 20년동안 러시아의 사람들은 어떻게 변화되어져 왔을까.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소설 코러스'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인터뷰이들의 지난 세월을 현장감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세컨드 핸드 타임>은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나 정작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그리 환호받지 못하는 작품으로 남고 말았다. 그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어 버린 셈이니 심기가 불편해질 밖에-.

 

우리에게 있어 구 소련은 그저 공산주의 국가 였을지도 모른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기껏해야 날씨가 추운 나라, 문학국가, 보드카의 나라, 발레국가 정도의 인식이 있지 않았을까. 아, 또 하나가 보태어졌구나! 김연아의 메달색을 바꾼 올림픽 주최국. 그 정도 외에는 깊게 관심두지 않았던 나라 소련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유가 주어지면 모두가 행복할 줄 알았건만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은 이념이 아닌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읽게 되었다. <국제 시장>이나 <쉰들러 리스트>처럼.

 

사실 많이 불편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소설의 형태가 아닌 방대한 양의 다수인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의 형태이다보니 익숙치 않아

한 사람의 사연이 끝나는 시점에서 끊어 읽기를 하였기 때문에 읽는 속도도 더디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하지만 끔찍하다고 해서 비켜가면 안되는 일이기도 했다. 함께 안타까워해야할 사람의 역사였고 귀기울여야 할  누군가의 사연들이었으며 알고 지나가야할 1990년대였기 때문이다. 결코 아름다운 시절이 아니었다고 그들은 회상하고 있다. 두 개의 다른 이념이 서로 충돌하면서 오랫동안 서로 이웃으로 지내왔던 작은 마을 내에서 서로를 죽이는 무기로 변질되기도 했고 탐하던 남의 아내를 갈취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으며 그 변화를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줄을 놓은 사람들에게는 독으로 남기도 했다고 전한다. 익숙했던 세상이 뒤집혔다.

 

P400  우린 그때 가증스러울 정도로 순진했어요..옐친의 1990년대..

        그 시절이 행복한 시절이었는지, 광란의 10년이었는지...

 

어린 아이인 채로 그 시기를 지나친 사람들은, 1991년과 1993년 사태의 공포보다는, 왜 자신의 부모가 남들처럼 부자가 되지 못했는지에 더 원망의 마음을 품고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른으로 그 시기를 지나친 사람들에게는 상처를 남긴 시절이었다. 다름아닌 이웃들이 악마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P13   모두가 자유에 흠뻑 취해 있었지만 정작 자유를 얻을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방대한 양을 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러시아를 소련을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차라리 글보다는 영상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영상에 대한 목마름을 갈구하며 읽어낸 책이 바로 <세컨드 핸드 타임>이었다. 똑같지는 않지만 우리에게도 광복 이후 이런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살진 않았지만 또한 그 시기부터 지금까지에 대한 근대역사는 교과 과정에서 자세히 배우지 못해 잘 알지 못하지만 분명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혼돈의 시기가 있었으며 정의로운 사회와 먼 거리의 시절을 살아낸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러시아 인들이 느끼는 것과 대한민국 국민이 국가를 두고 느끼는 마음 가운데 공통의 감정도 있지 않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이념적 공감이 아니라 희망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공감에 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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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 푸른숲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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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언 플린은 마이다스의 손이다. 그녀가 쓴 작품들은 하나 같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고 수상작이 되어 주목을 받아왔다.

<나를 찾아줘>의 원작소설과 영화를 각각 보았던 나는 영상도 글도 너무나 강렬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음권을 읽고 실망하면 어쩌지? 고민이 될만큼 처음 읽은 그녀의 작품은 대박!이었다. 이후 '최고의 책'이라고 극찬 받은 <다크 플레이스>를 읽고 이번에 읽게 된 <나는 언제나 옳다>가 세번째로 읽는 그녀의 작품이다. 곧 <몸을 긋는 소녀>를 읽기 위해 구매 리스트에 올려놓은 상태이고.

 

하지만 집필 순서대로라면 <몸을 긋는 소녀>,<다크 플레이스>,<나를 찾아줘>,<나는 언제나 옳다> 순이라고 한다. 순서가 뒤바뀌어도 올드한 느낌이나 처녀작이구나 ! 싶은 유치한 구석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그녀는 타고난 스토리텔러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왜 이제야 작품을 세상에 내어놓은 것일까.

 

사실 그녀는 1988년부터 10년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서 TV평과 영화평을 담당하던 기자였다고 한다. 2015년에 만화 구성 작가로 데뷔하면서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저널리스트, 만화 구성 작가 라는 글밥 커리어가 생긴 그녀는 200자 원고지 200매가 안되는 분량의 단편 소설 하나를 툭 던져내어놓았다. 3만 7519자, 193매, 96페이지....이토록 간결하고 짧으면서 독자의 정신을 휘몰아칠 작품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 시작은 마치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쓴 11분의 시작처럼 담담했다. 11분 속 마리아가 창녀인 자신의 직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펼쳐보이듯 <나는 언제나 옳다>속 그녀 역시 남자들의 성적 욕구를 손으로 충족 시켜주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에 대한 고백이 참으로 담담했다. 그 시작은 발칙했지만.

 

 

P5  내가 손으로 해 주는 그 일을 그만둔 건 실력이 달려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해서 그만둔 거지

 

 

사회적으로 가장 터부시하는 것 중 하나인 성에 관한 묘사를 어쩌면 이렇게 그 인물의 성격에 딱 맞게 터뜨리며 이야기의 첫 신호탄으로 쏘아올릴 수 있는지......! 상당히 영리한 시작이었고 흥미로운 첫단추가 아닐 수 없겠다. 이로 인해 앞으로 이 여인이 발목잡히게 될 일들에 대한 기대심리를 한 껏 높여놓는 것은 물론 약간 공포스러우면서도 스릴러 분위기가 조성되는 중반부를 지날 때에도 여인에 대한 안쓰러움이나 당연하다는 식의 감정이입은 제외하고 오롯이 사건에 푹 빠져 어느 쪽이 진실을 털어놓는 쪽인지 두 사람을 두고 저울질 할 수 있도록 장치해 두었다는 점에서 나는 작가의 치밀한 계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가 많았던 엄마의 딸로 태어난 주인공은 십대가 되어 스스로의 길을 개척했다고 하는데 그 일이 바로 '성스러운 손'에서 근무하게 된 일이었다. 남성들을 상대로 불법 유사 성매매(?)를 하면서 동시에 여성들을 상대로는 점을 봐주던 그녀 앞에 어느날 수전 버크가 나타났다. 똑똑해 보이는 이 여성은 아들이 딸린 홀아비와 결혼하여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 하나를 낳아 가족으로 살아가던 중 최근 100년쯤 된 저택을 리모델링하여 이사하면서 가정내 문제가 붉어져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열 다섯 살이 된 남편의 아들. 사춘기 소년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흡사 귀신에 빙의된 듯 못되게 구는 아들 덕에 '카터후크 메이너'(저택의 이름)에서의 삶은 공포물로 변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외국 장기 출장 중이라는 남편은 주인공의 단골 손님이기도 했는데 어찌된 우연인지 그 아내 역시 그녀의 단골이 되어 자택 방문을 통해 그녀는 이제 퇴마사의 역할까지 도맡게 되었던 것이다. 한 몫 크게 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저택을 들락거리기 시작하던 그녀에게 15세의 소년 마일즈는 "누구를 믿을래요?"라고 물어왔다.

 

 

누구를 믿어야 하나.....

 

인터넷에 떠돌던 풍문으로 보자면 저택은 100년 전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였다. 백화점계의 거물이었던 카터 후크가의 가족 전원이 공들여 지은 저택에서 살해당했다. 그 범인은 첫째 아들 로버트. 올려진 카터 후크가의 사진 속 문제의 아들이 마일즈와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가짜 영매사였던 여주인공은 수전 버크에게 위험을 알려주기 위해 저택으로 향했고 그녀가 잠시 911에 전화를 걸러 간 사이 나타난 마일즈는 새엄마와 자신 중 누구를 믿을거에요? 라고 묻게 된다.

 

 

"의붓 아들이 나와 내 아이를 죽일지도 몰라요" 

 

VS 

 

 "완벽한 결혼을 원했던 새엄마가 나와 아줌마를 죽일 거에요.

수전이 당신을 찾아간 일이 우연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수전의 하이힐 소리가 계단을 오르고 있다. 시간이 별로 없다. 자, 누구를 믿어야 좋을까.

그 어떤 끔찍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시간에 쫓기고 상황에 떠밀리고 결정을 종용당한다. 이 짧은 소설을 읽는동안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옮긴이가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은 4개의 플룻이 교차되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또한 가족이라는 집단 속 심리를 이용하여 '한 지붕 아래 함께 사는 가족이야말로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임을 각인 시킨다. 우리는 괴롭히는 건 멀리 있는 타인이나 공개적인 적이 아니라며.

 

다시 읽어도 빈틈이 없다. 꽉 짜여진 문살을 보듯 그 어느 한 페이지도 군더더기처럼 붙어 있는 장면들이 없다. 반대로 영화화 되었을 때 너무 짧지 않나? 싶을 정도로 그 각색이 걱정되는 길이감으로 쓰여졌다, 이 소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읽는 내내 섬뜩했다. 자극된 부분이 상상력인지...공포심인지....모르고 몰두하며 읽을 정도로 흡인력이 강한 소설이라 마지막 책장을 덮기 전에에 바로 지인들에게 카톡을 돌렸던 책이 바로 길리언 플린의 <나는 언제나 옳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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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숲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권수연 옮김 / 포레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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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편의나 오락을 위해서 종족 혹은 다른 종을 실험체로 만드는 생명은 지구상에 오로지 인간 하나일 것이다. 동물실험을 하는 화장품조차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판에 그 대상이 사람이었다면 그들이 그 앞에 '인류를 위해서'라는 대의 명분을 붙였건 아니건 간에 밝혀지는 순간 용서받을 수 없는 질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숨겨뒀다면?? 세상에 감쪽같은 비밀이 어디있나!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관여된 일이라면 소문은 나게 마련이다.

 

 

p206  Dufa lex, sed lex....법은 엄하다, 하지만 그게 법이다

 

 

시작은 이러했다....

 

여섯 살의 후안은 도망쳐야만 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양아버지 우고 가르시아가 양어머니를 현장에서 죽여 토막내는 것을 본 순간. 야반도주 후 그는 굉장히 공격적인 블랙 하울러 멍키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자라났고 한 몸에 네 개의 인격을 지닌 남자로 재탄생하여 사회로 나왔다. 그 누구보다 위험한 악마. 그가 발디딘 도시는 그래서 피와 살육의 현장으로 변모해나갔다.

 

2008년 22세의 마리옹은 좋은 가정에서 자라 간호사로 재직중이었으나 첫번째 희생자로 낙점되었고 28세의 세포유전학을 전공한 넬리 역시 피살을 면치 못했다. 뒤이어 발견된 34세의 조각가 프랑세스카에 이르기까지...세 여인의 유일한 공통점은 풍만했다는 것.

 

낭테르 지방 법원 소속의 판사인 잔이 이 사건에 주목하고 동료 판사 프랑수아 텐과 함께 파고들면서 조금씩 범인의 윤곽을 잡아가나? 싶은 순간, 그녀의 눈 앞에서 텐이 온 몸에 불이 붙은 채 타 죽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심층적으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 잔에게는 사실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생채기가 가슴 속에 존재하고 있었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가 달랐던 아홉살 차이나는 언니 마리가 처참히 살해되고 나서 그녀의 인생도 백팔십도 달라져버렸던 것이다. 더 사랑받는 딸이었기에 갑작스런 언니의 죽음 앞에 갚을 게 많아져버린 그녀는 여성들을 위한 수사판사가 되겠다는 일념하게 가열차게 살아왔지만 문득 서른 다섯에 멈추어 서서 보니 인생은 참으로 허망했다. 판사라는 직함 외에는 재산도 남자도 가족도...어느 것 하나 평범하게 주어진 것이 없었으므로.

 

반대로 그런 그녀이기에 걸릴 것이 가속력을 붙여가며 사건에 몰입하던 중 요아킴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고 앙투안 페로, 알폰소 팔린, 요아킴 팔린, 늑대소년의 네 인격으로 살아가는 남자와 마주 섰다. 피곤한 얼굴의 의사, 환한 미소의 변호사, 생기 없는 얼굴의 알폰소, 원숭이 모습을 한 늑대소년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진실을 고백하는 범인의 품에서 탈출하면서 그녀의 머릿 속에 스치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그냥 사는 것! 정의로움보다는 삶을 택한 그녀가 등장하는 <악의 숲>은 인간이 얼마나 잔혹한 생명인지 보여줄 뿐 희망의 빛은 차단해놓고 있는 소설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리얼한 결말이 아닐까. 우리 대부분은 그녀처럼 살아가고 있으니까.

 

프랑스 스릴러의 황제로 불리우고 있는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작품 중 하는 <크림슨 리버> 단 하나만 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별로 감흥을 받지 못했다. 이 작품 역시 가슴에 큰 멍이나 감동을 남기지는 못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렇다. 다만 가장 현실에 가까운 결말을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으면서 내 안에는 이런 두려움이 살고 있지 않는가? 조용히 자문해 보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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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론 2015-12-15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어보니 무서워서 읽을수 있을까하는 두려움 드네요

마법사의도시 2015-12-15 17:49   좋아요 0 | URL
읽은 후 잔재영상이 많이 남으신다면......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 표지나 줄거리보다는 훨씬 유~~~할 거에요. 직접 읽어보신다면....가학적인 묘사나 작의적으로 몰아가는 소설은 아닙니다.

퍼론 2015-12-15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한번 도전!!!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