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재미는 있으나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매력이 느껴지지는 않는 초기작입니다.
주인공 정도의 경력과 열정이면 편의점 알바 마스터라 칭해도 될 듯 합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이 맞지않나 싶습니다.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의 내가 바로 이날 확실히 탄생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전염하면서 인간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편의점이 연주하고 편의점이 작동하는 소리 속에서 흔들리면서 나는 내일 또 일하기 위해 눈앞의 먹이를 몸속에 채워넣었다.
학교 교지편집부에서 만난 해진, 정윤, 희영 세사람이 교지편집부를 거쳐 해진은 기자로, 정윤은 대학원으로, 희영은 기지촌 활동가로 나가는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학창시절 옳다고 믿었던 그리고 지금도 옳다고 믿고 있는 그 곳에 있지 않은 저 자신을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겉보기와는 다른 그 곳의 모순과 그에 따른 고민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모두 각자의 길을 후회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걸었으면 합니다.
작가가 역사에 근거한 한국인의 특질을 작가 본인의 해석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독창적인 해석과 글솜씨로 인해 설득 당하면서 읽었습니다.^^
종이 유전자를 공유하는 생물 집단이듯 문화적 유전자를 공유하면 민족이 된다.
고조선뿐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 역시 원주민과 이방인의 평화적 결합체다. 분명히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결과적 평화다.
한국인은 혼혈민족이되, 배타적 혼혈이라는 이중적인 속성을 갖는다. 혼혈이 완료된 시점부터는 더 이상의 혼혈을 거부해왔다.
물론 한국에 진정한 의미의 목회자, 사제, 승려는 많다. 그러나 한국에서 불교와 기독교가 대중적 차원에서 무속의 영역을 벗어난 적은 없다.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재난 상황으로 인지하면 한국인은 더없이 희생적이다.
역사는 건축물인데도 링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조선은 임금이 나라를 사유화 한 게 아니라 사대부가 임금을 국유화한 나라다.
신문고가 왕이 내 소리를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면, 격쟁은 내 소리를 강제로 들려주는 삿대질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욕망의 동물인 한국인은 ‘자신이 동의할 수 있는 정글‘을 원한다.
조선은 한국인에게 혁명적인 기질과 못된 성깔을 물려주었다, 조선인의 시신에서, 마침내 한국인이 태어났다.
각 종 소설에서 인간형 로봇은 인간들이 하기 싫어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뼈의 기록‘에 안드로이드 염습사가 나옵니다. 감정이 있는 안드로이드, 사람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불가능성, 그것이 아름다움이지. 같고, 다르고, 불가능을 이야기 하는
언어를 취하면 우리는 얻게 된 모든 감각이 죽어. 언어는 감각을 납작하게 만들어. 시고와 판단이 형태에 묶이지.
주인없는 물건은 쉽게 죽는다.
언어를 취하면 우리가 얻게 된 모든 감각이 죽어. 엉어는 감각을 납작하게 만들어. 사고와 판단이 형태에 묶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