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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러시아 다가온 유라시아
정성희 지음 / 생각의길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아, 진짜 양서를 만났다.
400여페이지 하나하나가 온통 새로이 배우는 지식으로 가득 찬 책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지금 정부가 자꾸 러시아와의 접촉과 관계를 암중모색하는 현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러시아에 대해 궁금해진 게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였다.
그리고.. 러시아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고, 있다 해도 매우 왜곡되게 알고 있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크게 유라시아라는 범주로 설정해서, 이에 대한 모든것, 역사, 정치, 경제, 국제관계, 문화 등을 토막지식 처럼 깨알같이 모아놓고 있다.
그냥 러시아와 유라시아(정확히는 독립국가 연합; CIS)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고 싶은 것 모두가 담겨있다고 보면 된다.
1. 우리는 서양사를 잘못 배웠다.
- 생각해보니 우리가 배운 서양사는 반에 반쪽도 안된다. 그냥 영국과 프랑스의 역사를 배운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영토의 크기와 지나온 세월들을 보라. 영향이 미미한 듣보잡 나라였을까?
학교에서 뭘 배웠나? 러시아 혁명 전후 외에는 없잖아.
티무르 제국,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유라시아의 반 이상을 몇백년 동안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오랜 세월동안 이들 나라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학교에서 배웠어?
그만큼 우리는 영국과 프랑스에 치우친 내용으로만 편향되게 배운 것이었다.
이 책에서 이들 제국들에 대한 간략한 역사만으로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나비효과처럼 서양사에 미친 영향이 엄청났음에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미국이라고 답할 것이며 나머지는 연합군(실제로는 영국/프랑스)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유럽인들에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러시아라고 한다. 실제 2차대전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나라는 러시아였다(2700만여명이 죽었다..). 연합군이 치열하게 싸운 전투는 ? 노르망디 해전? 발지 전투? 러시아의 스탈린그라드는 무려 900일을 싸웠다. 진주대첩이 따로 없다..
2. 핵심은 결국 유라시아 철도다. 그런데 낭만적으로 생각하지는 마시라.
- 우리 정부가 러시아에게 찝적 대는 목표는 대략 두가지로 요약된다고 생각한다:
: 가스관으로 대표되는 에너지원 (그래서 탈원전하는구나.. ). 이게 과연 옳은 판단인지 아니면 아주 나라를 러시아에 종속시키려고 갖다 바치시는 건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고 말이다.
: 그리고 유라시아 철도에 편입되는 것이다. - 이는 20여년전 DJ 의 구상을 현대에 와서 실현하려는 것 같다. 참으로 거대한 스케일이로다...이거지?
유라시아 철도가 한반도 남단까지 연결된다면 크게 봐서 거대한 유라시아 경제 공동체가 조성될 것이고, 그런 셋팅에서 전쟁의 위협은 사라질 것이고, 미래의 먹거리가 확보될 것이고, 통일도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고.. 등등 낭만적인 전망들이 한두개가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일단 북한이 걸리적 거리는 건 기본이고,
이번 독서에서 알게 된 것인데, 철로의 규격(철로의 폭; gauge) 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전세계 표준에 맞는 표준궤를 사용하지만, 러시아는 광궤 (Wide gauge)를 사용한다.
즉, 우리나라 철로를 북한쪽 철로에 맞닿는 걸로 해결될 정도로 간단한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유라시아 체제에 들어가려면 전국에 넓디 넓은 광궤를 기존 표준궤에 추가해서 깔아야 한다.
현재 속초에서 러시아 항구까지; 부산에서 나진까지; 신의주에서 중국쪽으로 가는 세 단계로 계획 중이라 한다.
잘 되면 좋긴 할텐데, 완성되기까지 들 비용과 노동력하며... 출혈이 이만저만이 아닐듯.
여기서 나가는 돈만 해도 나라 곳간이 탈탈 털릴게 뻔한데.. 비급여의 급여화를 비롯한 각종 복지 정책은 어떻게 하시려나.. 걱정된다.
게다가 러시아는 타국 열차가 자국에 입국하는 걸 불허하는 반면(갈아타야 한다), 자기들꺼는 마음대로 타국에 간다. 치사빤쓰다..
나쁘게 보면, 가스관에 더해서 교통망까지 러시아의 손아귀에 놓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무슨 유라시아 철도를 타고 유럽을 횡단하는 여행을 즐기는 식의 낭만? 웃기지 마라. 현실은 시궁창이다.
...이런 현실감을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깨닫게 해준다.
정말 러시아와의 관계는 빈틈없이 잘 수립해야지, 잘못하면 바가지 쓰기 딱 좋다. 무서운 나라다.
3. 딱 한 가지 불만 사항.
- 진짜 읽는 동안 꾸준히 거슬린게.. 제대로 된 전체 지도가 제공되지 않는다.
(국소 지도들이 군데군데 있긴 하지만..)
여러 낯선 지명들을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위치와 orientation 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런 류의 서적에 당연히 있어야 할 전체 지도가 안 실려 있더라고! (책 표지에서 보이는 약식 지도가 다이다. 정식 지도도 필요하거든..)
그래서 구글 지도 펼쳐놓고서 독서를 병행할 수 밖에 없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난 스탈린그라드, 레닌그라드가 모스크바 시내 중심에 있는 광장인줄 알았다. 천안문 광장처럼..쩝..)
나중에 개정판 내시면 꼭 지도를 탑재하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