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바탕에 주홍 글자 A
-간통의 A(adultery) - 능력 있음의 A(able) - 천사의 A(angel)


인터넷에서는 불륜 얘기가 한창이다. 외국에서 몰래 만났다더라, 어느 호텔을 갔다더라. 카카오톡 대화가 올라오고 함께 주고 받은 이야기들은 외설스럽게 포장되어 야하고 자극적인, 혀를 쯧쯧, 하는 반응이 뒤따랐다.



간통죄가 폐지된 사유는 성적자기결정권, 자유의지가 헌법에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간통죄가 폐지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륜에 대한 시선은 사회에서 주홍글자를 낙인찍는다.



불륜 얘기라고 하면 몰래 숨어서 보아야 할 것 같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불륜 당시의 상황이 아니라 불륜 이후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일까. 여주인공 헤스터는 붉은 주홍글자를 가슴에 달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에 있는 주홍글자의 의미는 변한다. 간통의 A(adultery) - 능력 있음의 A (able) - 천사의 A(angel)



주홍글자가 없는 엄마에게 가지 않으려는 펄. 헤스터는 딸인 펄을 과연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키울 수 있었을까? 그리고 펄은 어른이 되어 헤스터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딤스데일 목사가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은 마치 죄와 벌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의 고백은 작위적이고 가식적으로 들린다. 죄와 벌의 주인공이 한 살인보다야 불륜이 훨씬 죄의 과중으로는 가볍겠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두 여자(헤스터, 펄)가 삶은 어떻게 갚을 것인가. 헤스터는 주홍글자를 달고 있었지만 딤스데일은 아무것도 벌을 받지 않았다. 물론 죄책감은 컸겠지만 세상의 멸시를 받거나 손가락질을 당하지는 않았으니. 로저 칠링워스의 방향 없는 복수만이 남아 딤스데일을 괴롭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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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한 모험을 떠나다
-무엇이든 가질 수 있지만, 누구나 가질 수는 없다.



언젠가 신문에서 고전의 순위를 매긴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꼭 읽어보아야 할 고전 1위가 돈키호테라고 해서 응? 이랬던 적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돈키호테는 얇은 책으로 보통 초등학생 때 만났던, 상상속의 기사가 되어 산초와 함께 떠나는 모험이었다. 왜 이 책이 그만큼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아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돈키호테는 1,2로 나누어져 있고 약 900페이지가량 즉 18000페이지 정도 되는 무시무시한 두께를 가진 책이 아닌가. 완역본으로 본다면 좀 다르지 않을까 싶었지만 보기에도 두려운 두께 때문에 사실 시작을 하기가 어려웠다.



폭염으로 인해 독서는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이유는 돈키호테의 모험을 명랑하게 풀어주는 세르반테스의 필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처럼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물론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한 여자를 둘러싸고 얽혀 있는 사랑이야기들은 돈키호테를 깜빡 놓고 갈 만큼 매력적이다.



편력기사 돈키호테의 상상은 현실에서는 초라하다. 환상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열정적일 수 있는가! 풍차를 가지고 싸울 때나 혹은 양떼 무리에서 싸울 때의 돈키호테는 광기에 사로잡힌 정신병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무언가를 위해 순수하게 미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상실의 시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지만, 누구나 가질 수는 없다. 어른이 되면 당연히 할 줄 알았던,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일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에 구애받지 않으며 자유롭게 살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지, 즐기는 일을 해야지. 취미는 꼭 가져야지, 악기도 배우고 운동도 하고. 말로는 그렇지만 실제 현실은 어떤가. 일이 끝나면 집에 오기 바쁘고 집에 오면 취미는커녕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얼마쯤 검색에 검색을 하다가 보면 잠잘 시간. 잠자고 일어나면 아침, 또 반복.



자기계발서를 극혐, 으로 여기는 이유는 이러한 자신의 나태함을 반성하는 것과 타인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것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성공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들의 도전을 무모한 것으로 여기기가 쉽다. 더욱이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마치 돈키호테의 모험을 비웃고 그의 환상을 겉으로는 치켜세우면서 현실로 믿게 만들었던 공작 부부처럼. 또 돈키호테로 하여금 진정한 패배를 실감하게 했던 삼손 카라스코처럼.



제정신을 차리고 환상에서 나온 돈키호테는 죽음을 맞는다.

-친구여, 내가 세상에 편력 기사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고 믿는 잘못에 빠져 자네까지 거기로 끌어들이고, 자네마저 나와 같이 미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 것에 대해 나를 용서하기 바라네.

-아아! 나리, 돌아가시지 마세요, 제발. 제 충고 좀 들으시고 오래오래 사시라고요. 이 세상에 살면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고의 미친 짓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죽어 버리는 겁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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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한 모험을 떠나다
-무엇이든 가질 수 있지만, 누구나 가질 수는 없다.



언젠가 신문에서 고전의 순위를 매긴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꼭 읽어보아야 할 고전 1위가 돈키호테라고 해서 응? 이랬던 적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돈키호테는 얇은 책으로 보통 초등학생 때 만났던, 상상속의 기사가 되어 산초와 함께 떠나는 모험이었다. 왜 이 책이 그만큼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아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돈키호테는 1,2로 나누어져 있고 약 900페이지가량 즉 18000페이지 정도 되는 무시무시한 두께를 가진 책이 아닌가. 완역본으로 본다면 좀 다르지 않을까 싶었지만 보기에도 두려운 두께 때문에 사실 시작을 하기가 어려웠다.



폭염으로 인해 독서는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이유는 돈키호테의 모험을 명랑하게 풀어주는 세르반테스의 필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처럼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물론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한 여자를 둘러싸고 얽혀 있는 사랑이야기들은 돈키호테를 깜빡 놓고 갈 만큼 매력적이다.



편력기사 돈키호테의 상상은 현실에서는 초라하다. 환상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열정적일 수 있는가! 풍차를 가지고 싸울 때나 혹은 양떼 무리에서 싸울 때의 돈키호테는 광기에 사로잡힌 정신병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무언가를 위해 순수하게 미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상실의 시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지만, 누구나 가질 수는 없다. 어른이 되면 당연히 할 줄 알았던,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일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에 구애받지 않으며 자유롭게 살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지, 즐기는 일을 해야지. 취미는 꼭 가져야지, 악기도 배우고 운동도 하고. 말로는 그렇지만 실제 현실은 어떤가. 일이 끝나면 집에 오기 바쁘고 집에 오면 취미는커녕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얼마쯤 검색에 검색을 하다가 보면 잠잘 시간. 잠자고 일어나면 아침, 또 반복.



자기계발서를 극혐, 으로 여기는 이유는 이러한 자신의 나태함을 반성하는 것과 타인의 성공을 부러워하는 것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성공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들의 도전을 무모한 것으로 여기기가 쉽다. 더욱이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마치 돈키호테의 모험을 비웃고 그의 환상을 겉으로는 치켜세우면서 현실로 믿게 만들었던 공작 부부처럼. 또 돈키호테로 하여금 진정한 패배를 실감하게 했던 삼손 카라스코처럼.



제정신을 차리고 환상에서 나온 돈키호테는 죽음을 맞는다.

-친구여, 내가 세상에 편력 기사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고 믿는 잘못에 빠져 자네까지 거기로 끌어들이고, 자네마저 나와 같이 미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 것에 대해 나를 용서하기 바라네.

-아아! 나리, 돌아가시지 마세요, 제발. 제 충고 좀 들으시고 오래오래 사시라고요. 이 세상에 살면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고의 미친 짓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죽어 버리는 겁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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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의 공존 : 사랑, 갈등, 오해, 비극.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이미 알고 있었던 이야기들의 원전을 보게 되다니 색다른 기분이다. 책이 주는 엄청난 두께(700페이지가량)에 비하면 여러 단편들이 모여 있으니 잠깐 쉬었다가 다시 읽어도 글의 흐름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처음 읽을 때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이 책에서는 (천병희 번역) 신들의 이름이 로마 식으로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윱피테르-제우스, 유노-헤라) 라틴어 발음은 고전 라틴어 발음을 따랐다고 하니, 조금만 참고 읽으면 나름의 재미가 있다.



다양한 신들과 다양한 인간들의 공존. 그리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랑, 갈등, 오해, 비극.



책에서 나오는 신들은 인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아니, 당연한 말인가. 인간은 신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그리스 로마 신화,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추려 보자면.



[01 인간의 과도한 욕심에 대한 경계 : 파에톤의 죽음, 미다스의 손, 예언녀 시뷜라]
태양신의 아들인 파에톤의 소원은 아버지의 마차를 모는 것. 아버지임을 확인시켜 줄 다른 증표도 파에톤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만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못하겠어?

미다스는 신에게 닿으면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하는 손을 요구한다. 정말로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하게 되었다.

예언녀 시뷜라는 신에게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오래 살 수 있도록. 하지만 깜빡하고 만 것은, 젊음. 젊고 오래 사는 것이 아닌, 늙어가면서 오래 살게 되는 시뷜라.




[02 이룰 수 없는 사랑 : 나르킷수스, 퓌라무스와 티스베, 퓌그말리온, 이피스]
나르킷수스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퓌라무스와 티스베는 암사자에게 죽은 것으로 오해해 결국 죽음에 이른다. 마지막 죽음 대목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된다.

퓌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조각에 매혹당한다.

이피스는 소녀로 태어나 소년으로 길러졌지만, 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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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5-12-21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달 구매해서 책장에 버티고 있습니다 ㅎㅎㅎ
 

끝나지 않을 레시피 : 달콤하고 쌉싸름한 인생


한편의 요리 영화를 보는 느낌. 레시피와 함께 부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한 여자의 이야기. 모처럼 마음 편히 쉬는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곳곳에선 신비로운 장면이 나온다. 티타의 눈물, 피가 요리에 미치는 영향은 신화적이다. 물론 책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모습이 다소 아쉬움을 남기기는 했다. 여자가 주인공이지만, 그녀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는다. 오직 요리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따뜻한 공간 부엌. 그러나 이를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는 따뜻하지 않다. 가족의 전통은 막내딸은 결혼하지 말아야 하고, 반드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을 때까지 모셔야 한다는 것.



막내딸 티타는 그러한 자신의 그러한 운명을 여전히 증오하지만, 마마 엘레나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사랑인 페드로를 언니에게 양보해야 했다. 물론 여기서 페드로의 선택도 상식적이진 않다. 아무리 티타 곁에 있고 싶어도 그녀의 언니와 결혼을 하다니. 사랑하는 사람 옆에 있기 위해서 한 선택이라고 페드로는 말하지만. 티타는 페드로와 함께 도망치길 원했다. 그가 정말로 티타를 사랑했다면 끔찍한 집에서 함께 탈출하도록 도와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페드로보다는 존이 훨씬 낫다. 그래서인지 결말에서 티타의 선택이 싫었다. 티타는 정말 페드로를 사랑했던 것일까.



티타의 집에는 남자가 없다. 마마 엘레나, 두 언니, 티타. 남자가 없는 곳에서 이 집안을 움직이는 것은 마마 엘레나의 절대적인 권력. 학대와 세뇌에 길들여진 세 자매. 티타의 언니이자 페드로와 결혼한 로사우라는 집안의 전통을 이어가려고 한다. 딸이 태어나자 `이 아이는 나를 죽을 때까지 돌볼 거야. 결혼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로사우라의 모습은 마마 엘레나의 환영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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