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1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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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슬픈 내용이었나.



가난뱅이인 아빠가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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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길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는 길이 아니다

외교관 저택과 더불어

예전부터 진짜 부자, 소위 양반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살았던 곳

또 돈만 있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사회적 명망이 있어야 한다고.

반지하 가족의 터전이 되었던 골목길은

세검정을 지나서 나온다





기록적인 폭우로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

그 집은 너무 평온했다

미제 텐트는 방수가 잘 되니까

그리고 말한다

어제 비와서 다행이야 미세먼지 사라지고 오늘 날이 맑잖아




가난은 인간을 벌레로 만든다

더 정확히는

가난에 대한 혐오감이 인간을 벌레로 만든다

돈을 벌지 못했던 그레고리가 벌레가 되었듯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은 기생충이 되었다

주인이 불을 키면

샤샥 숨기 바쁜 바퀴벌레처럼




사랑과 감기는 숨길 수 없다고 하던가

가난에서 오늘 삶의 빈곤은 숨길 수 없다

그것은 냄새로도 나타난다

가난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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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9-06-03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와 같은 관점에서는
˝가난은 가진 것이 적은 것이 아니고 원하는 것이 많은 상태˝라는 정의는
가난한 사람들이 만든 정의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변신.시골의사의 표지는 언제 봐도 인상적이네요.
좋은 한주 되세요.

방랑 2019-06-03 12:30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것처럼 가난의 정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기생충 영화 보셨나요?
한번 봐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수상 여부를 떠나서 참 잘 만든 영화에요

초딩 2019-06-04 10:07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아 새로 나온 영화네요 ~ 챙겨 볼게요
감사합니다 :-)
 

서울책보고

잠실나루역 1번 출구에 있어요

헌책방들 구역으로 되어 있는데

주제별이 아니라 책 찾기는 힘든 편입니다

그래도 시설 잘 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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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혐오한다는 것



가난은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가난을 추억으로 삼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난이 추억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가난은 ‘극복‘되어야 한다.
<흥부전>의 흥부처럼.




흥부는 자신의 가난했던 시절의 일화를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야기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매를 대신 맞아가면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던 일화.
29명이나 되는 자식들(금슬이 좋아 자식들이 29명이라고 책에 나와 있다.)을 먹여 살리느라
흥부, 흥부 아내가 힘들게 일했어야 했던 과거의 지난 일들을.




또 흥부는 웃으면서 말할 것이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을 거라고,
그러니 지금 ‘가난‘하고 ‘착한‘ 당신은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가난은 추억이 될 수 있을까?
지금 우리에게 가난은 ‘현재‘이며 극복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또 나에게 주어진 가난은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태어나면서 부모와 가정환경을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주위환경은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유독 요즘 인터넷 게시판에는 가난한 사람은 자식을 낳지 말라는 글이 눈에 띈다.




그러나 가난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다.
태어나면서부터의 가난은 선택할 수 없지만
일정 시점 이후에도 한 사람이 계속 가난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처럼 여겨진다.
가난이 게으름의 결과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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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9-05-17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혐오의 주체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주체의 자격에 대해서도요 :-)
 

메이데이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의 노동력으로 생산물을 얻고, 그 생산물을 판매한 금액의 일정 부분은 자신이 쓰고 나머지를 프롤레타리아에게 지급한다. 실제로 노동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뿐이다. 부르주아는 생산수단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하지 않고도 부를 축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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