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우리는 영웅의 탄생을 기다리고 이를 기억한다.


영웅의 반대편에 있는 악역은 어떠한가?


악역의 탄생이 고작 해야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캡틴 아메리카가 열등한 신체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희생 정신만으로 영웅이 된 것인가?


물론 그는 열심히 노력도 했겠지만 혈청을 맞았다.


나는 조커를 변호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조커를 옹호하거나 정당화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인생이 희극과 비극의 집합체라고 할 때


행복이라는 달콤한 언덕에 올라가기란 얼마나 어려우며


반대로 불행이라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야 한다.


생의 한 가운데로 어느 날 갑자기 내몰리게 되었지만


길은 각자 자신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었던 길을 돌아볼 미래의 나를 위해서.


그때의 나에게 떳떳하기 위해


오늘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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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9-10-09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축하드려요 방랑님~
알라딘 서재 페이지에 들어가니 방랑님 글이 알라디너의 선택에 뽑혔어요~~~
우앙 축하 축하

방랑 2019-10-09 22:28   좋아요 1 | URL
헉.. 그그런 일이..몰랐네용ㅎㅎ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우리들은 수용소에도 막사를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주 극소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도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지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수감자의 내면적 자아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심리적, 육체적 요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감자의 자유의사에따른 결정에 있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수감자들을 심리학적으로관찰해 보면 내면세계가 간직하고 있는 도덕적, 정신적 자아가 무너지도록 내버려둔 사람이 결국 수용소의 타락한 권력의 희생자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무엇이 내적 소유‘를 이룰 수 있으며 또 이루어야만 하는것일까?

만약 강제수용소에 있는 사람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이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으면, 그는 자기가 하나의인간이라는 생각, 마음을 지니고 내적인 자유와 인격적 가치를 지닌 인간이라는 생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거대한 군중의 한 부분에 불과한 존재로 생각한다. 존재가 짐승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사람은 글자 그대로 번호가 되었다.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번호‘ 의 생명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그 번호의 이면에 있는 것, 즉 그의 삶은그렇게 중요한 것이 못 된다. 그의 운명과 그가 살아온 내력 그리고 그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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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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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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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나는 막사 맞은편에 있었다. 바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창문 옆에서 얼어 붙은 손으로 뜨거운 수프가담긴 그릇을 들고는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창밖을보게 되었다. 방금 전에 밖으로 옮겨진 시체가 동태 같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시간 전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곧 다시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아무리 감정이 무뎌진 수감자라고 할지라도 분노를 느끼는 순간이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 분노는 육체적인 학대와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면서 느끼는 모멸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피가 머리로 솟구쳤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가전혀 알지도 못하는 내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고백할 것이 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동료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나서 내 분노가 어린아이처럼 누그러졌다는 사실이다.
"저렇게 짐승 같고 야비하게 생긴 작자가 우리 병원에 오면아마 간호사들이 대기실에도 들여보내지 않고 쫓아낼 걸."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 말할 나위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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