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희와 나 - 2017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기호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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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발랄과 도발을 지향하던 이기호의 소설 역정도 중반기에 다다른 듯하다. 아마도 (레비나스를 의식해서)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의 허구를 고발하려 한듯한데 내용과 주제가 식상하다. 무엇보다 윤리자(작가본인)와 비윤리자(한정희)를 나누어 전자에 무게를 두려는 작의는 민망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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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03-05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어서 감각과 글발이 쇠해질 수는 있다. 언제나 경쾌하고 재미진 문체로 글을 쓰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다. 다만 내가 이기호의 작품에 아쉬움을 느꼈던 것은 작가를 여전히 윤리의 담지자로 여기면서, 공동의 윤리에 반하는 하나의 캐릭터를 설정하는 집필 과정이 지나치게 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오늘까지 17회를 이어온 황순원문학상 수상작들 중에서 내 기억에 뚜렷이 남은 작품은 하나다. 그것은 제 2회 수상작인 김원일의 ‘손풍금‘이다.
 

 

1. 희곡 작가인 배삼식은 십여 년 전에 연극계의 원로였던 故 장민호(1924~2012)와 故 백성희(1925~2016)의 연극 편력과 업계에 미친 공로를 기리고자 한 편의 희곡을 헌정했다. 그 작품이 '3월의 눈'이다. 

 

2. 노부부는 형편이 어려운 손자 내외를 위하여 평생토록 살았던 한옥을 팔고 요양원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연극의 줄거리는 이것이 전부이다. 작가는 이처럼 단순한 줄거리 안에서 우리 일상의 갖가지 세목들과, 변화하는 세속에 대한 나이 든 이들의 만감을 섬세한 필치로 형상화한다.

 

3. 무대에 설치된 한옥에는 화분, 장독대, 약탕관, 빨래판, 섬돌과 같은 물상들이 갖추어져 있다. 무엇보다 관객들 눈에 띄는 것은 들보에 매달아 놓은 흰 끈이다. 거동이 어려운 노부부는 신을 신거나 벗을 때 흰 끈을 손으로 붙들고 몸의 균형을 잡는다. 일상에 대한 작가의 관찰력이 빛나는 대목이다.

 

4. 팔순의 노부부는 오딧빛 툇마루에 앉아서 냉기와 온기가 섞인 삼월의 볕을 받으며 대화를 나눈다. 아내인 '이순'은 자신의 서툰 뜨개질과 남편의 머리 모양을 탓하고 남편인 '장오'는 나른한 표정으로 침묵을 하거나 가볍게 단답으로만 대꾸한다.

 

5. 다시 말하자면 이들의 대화에는 이른바 '필수적'이거나 '실용적'인 성격을 띤 부분이 없거나 드물다. 노부부는 의미와 쓸모가 엷은 얘기들(문풍지 바르는 법, 전쟁 통에 준치를 구해서 먹었던 기억, 겨울이면 아들이 눈을 쓸던 모습, 이발소 사장이 가게를 처분해서 큰돈을 벌었다는 풍문 등등)을 하는 데만 집중한다. 더러는 '이순'이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종적을 감춘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고, '장오'가 종주먹을 흔들며 분통을 터뜨리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이 연극에서 '아주 중요한' 장면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6. 누군가는 이 연극에 대해 '옛것에 대한 그리움과 정겨움을 담았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리얼리즘적인 전통 내에 이 작품을 위치시켜서 그만한 위의와 경의를 부여하려 한다. 이러한 평가들은 모두 조리와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연극을 보면서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인 "고도를 기다리며"를 수차례 떠올렸다.

 

7.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희곡은 다층적이고도 다면적인 의미를 지향하는 '열린' 텍스트이기에 여러 각도에서 해석할 여지를 가진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고도를 기다리며"는 시간의 전방위적 공격에 버티고, 버티는 우리 인간들의 우습고도 서글픈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8. 시간은 무한하나 인간과 인공품은 유한하다. 사람은 언젠가 무덤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며 인공품은 (인간보다 수명이 더 길 수도 있으나) 본래의 모습을 잃어서 마모되고 해체되는 수순을 밟는다. 부언하면 '장오'는 하루가 지나면 요양원으로 가야 하고 한옥은 조만간 개발업자들의 손에 무너지게 된다.

 

9. "3월의 눈"은 시간의 공격에 버티는 방법을 두 가지로 보여준다. 하나는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그러했듯이) 무의미한 행동의 반복을 통하여 시간이 가하는 압박을 한시적으로나마 잊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부부는 다음 날이면 한옥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살아야 함에도 문풍지 바르는 법을 얘기한다. 또한, 그들은 노인의 머리 모양과 위생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으며, 당장은 구하기 어려운 생선(준치)의 맛도 품평한다. 말하자면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작품의 주된 내용(집이 헐리고 그 집의 거주자는 다른 곳으로 떠난다)과는 별다른 상관 관계가 없음에도, 역설적으로는 상관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효과를 낳는다. 즉, 이들은 조만간 도래할 착잡한 순간을 잊고, 견디고자 의미와 쓸모, 소통과 같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기 자체'에 열성을 쏟는 것이다.

 

10. 그러나 '말하기'만으로 자기 마취적인 효과는 있어도 자기 치유적인 결과를 얻기란 어렵다.

 

11. 극의 말미에서 '장오'는 집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섭섭할 것도 억울할 것도 없어. 이젠 집을 비워줄 때가 된 게야. 그래도 이 집이 나보다 낫군. 흩어질 땐 흩어지더라도 뭐가 되도 된다네. 책상도 되구, 밥상도 되구.' 이 대목에서 시간의 공격에 버티는 두 번째 방법이 나온다. 그 방법은 인정과 달관의 자세로, 후손과 후세에 대해서 무조건적/영원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12. '장오'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자손(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종적을 감춘 아들, 한옥을 팔아서 빚을 갚으려는 손자 등)들을 원망하지 않으며 노부부의 주거지에 침입해서 이익을 챙기는 외부자들(대청의 마룻장을 뜯어가는 개발업자들, 관광객들에게 한옥을 보여주는 통장 등)을 탓하지 않는다. 부언하면 그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선악의 시선으로, 이분법의 관점에서 보는 방법을 거부한다. 그는 한옥을 이루었던 재료들이 또 다른 편의품이 될 것이며, 한옥이 머물렀던 자리에 노인의 자취가 사라지더라도 그곳에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 마련되고 번성할 것임을 믿는다.

 

13. '장오'의 위와 같은 믿음은 허상과 오류에 기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세파와 노화에 지쳐서 크게 마음을 다치고는 '속 편한' 믿음으로 자신을 위안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장오'의 믿음은 노인의 마음바탕에서 비롯하는 '어떤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준다. 시간의 공격을 받으면서 자유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하여 모든 것들은 해체와 소멸의 경로를 따라간다, 그럼에도 인간과 그의 인공품 속에 깃든 '특유한 성질'은 다른 형태로 이월되어서 잠시나마 보존될 것이다, 이러한 이월과 보존의 지난한 연속적 과정'만큼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요컨대 3월의 눈은 시간의 공격성과 영원성에 버티는, 어느 초연한 노투사의 헛될지도 모를 기대와 희망을 보여주는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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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18-03-14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3월의 눈>이 눈眼인가요 눈雪인가요. 제가 늙은이라 혹하며 읽었습니다.

˝이들은 조만간 도래할 착잡한 순간을 잊고, 견디고자 의미와 쓸모, 소통과 같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기 자체‘에 열성을 쏟는 것이다 ˝

이 부분에서 들이대고 싶기도 하지만,

3월의 바람부는 오후에 좋은 글이네요.

수다맨 2018-03-15 09:54   좋아요 0 | URL
초원님,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눈은 아래 곰곰발님의 댓글에서 나오는, 하늘에서 내리는 그 눈이 맞습니다.
이 연극은 매해 3월이면 국립극단에서 했는데 최근 삼년 동안은 소식이 없다가 올해 2월부터 다시금 명동극장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감명 깊게 보았던 연극이어서, 알라딘 서재에 감상평을 몇 글자 성마르게 적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3-14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원 님, 雪입니다. 제가 속초에서 1년 살았는데 강원도 분들이 말씀하시더라고요. 강원도에서 폭설이 내리는 때는 12월이 아니라 3월이라고...

수다맨 2018-03-15 09:59   좋아요 0 | URL
저도 2년간 강원도 양구에서 군복무를 한 적이 있는데 그곳은 3월에도 기운이 낮고 폭설이 내리더군요.
이 연극의 연출가인 손진책은 ‘3월의 눈은 내릴 때 그 모습이 찬란하나 땅에 떨어지면 가뭇없이 녹으며, 이는 우리의 인생을 닮아 있다‘는 코멘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코멘트에 크게 공감을 한 적이 있는데, 곰곰발님 댓글을 읽고 제 경험을 돌아보니 어쩌면 강원도나, 그보다 추운 지방에서 사는 분들은 연출가의 말에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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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에서 나올법한 클리셰(불륜 등)를 삽입하지 않고 한 남녀의 결혼생활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이상을 바라는 여자와 현실에 집중하는 남자의 생활은 균열과 균형의 지점을 함께 보여준다. 그리하여 결혼이란 시간의 공격속에서 관계의 유지를 끝내 이어가는 과정이란 것을, 씁쓸하게 알려주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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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02-25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한 정적인 내용의 소설이 이스라엘에서 남다른 판매 부수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은 자못 놀랍게 여겨진다. 여느 로맨스 소설(들)이 남녀 사이의 애정과 갈등의 밀도를 다루는 데 역점을 둔다면 이 작품은 다만 한 부부의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결혼 생활을 낱낱이,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아내는 이상을 좇는 사람이기는 하나 요리와 육아와 배우자 지원에 정성을 다하고 있으며, 남편 또한 가족의 부양과 학업의 연마, 안정적인 직장을 얻는 데 최선을 다한다.
그럼에도 이 부부는 애정의 퇴색과 소통의 부족을 가져오는, 시간의 공격 앞에서 여러 차례 흔들리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남녀의 장기적인 관계 형성에 위기를 가져오는(정확히 말해서 위기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요인은 불륜도, 팜므파탈도, 가정 폭력도 아니라 바로 시간이라는 것을 이 소설은 알려주는 듯싶다.

2018-02-25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7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7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8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2-25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즈. 이 사람 남자인데 섬세하게 글을 다룰 줄 아는 분 같더군요. 서사 때문에 소설 읽는 맛이 나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문체 때문에 읽는 맛이 나는 소설도 있는데 오즈는 후자의 경우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수다맨 2018-02-27 10:16   좋아요 2 | URL
코맥 매카시나 아모스 오즈 같은 작가들이 참으로 섬세한 문체의 소유자이지요. 물론 전자가 하드보일드에 가깝다면, 후자는 서정파에 속하는데 두 사람 모두 감상이나 주관에 함몰되지 않게끔, 견고한 지성의 힘이 문체 안에서 발휘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신경숙, 윤대녕, 김연수 등이 주로 서정적인 문체를 구사하는데 이들의 작품에는 지성의 힘이 현저히 떨어지기에 결국에는 감상 과잉이라는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곤 합니다. 그렇기에 결국 가부장제를 수호하는 억척어멈의 한풀이(신경숙), 성적 파트너를 찾아서 지방을 떠도는 ‘불쌍한‘ 나 (윤대녕), 나이는 사십대인데 대학생 새내기 감수성에만 안주하는 인물들(김연수) 등이 소설의 바탕을 이루는 한계를 지니지요. 특히나 평론가들은 김연수의 소설에 대해서 지성적인 산물이라는 식으로 평가를 하던데 저는 김연수가 청춘 체험의 자장磁場 안에서만 창작의 질료를 얻고 위안을 받으려는, 퇴영적/소아병적 정서가 그의 소설에 잠재해 있다고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2-27 12:08   좋아요 0 | URL
사십대의 김연수가 대학생 새내기 감수성에만 안주한다... 캬,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수다맨 2018-02-28 12:06   좋아요 1 | URL
그렇기에 저는 김연수가 청춘 체험의 영역에서 멀리멀리 벗어난 글을 쓸 때에만 비로소 성공을 거둔다는 인상을 받고는 합니다. 그런데 그런 작품들(예컨대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은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고 김연수는 과거와 현재의 체험에서 우러난 글들을 주로 쓰지요. 부언하면 그가 자신의 대학생 새내기 감수성을 무책임성이나, 낭만성과 결합시킬 때 그의 작품들은 소설적 밀도와 긴장을 상실하고 사십대 남자의 허영과 푸념 섞인 중얼거림으로 전락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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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위대한 시인의 시구보다 신파조의 유행가 가사가 사람의 마음을 더 흔들 때가 있다. 이 글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의 서사버전이다. 초로의 남자가 옛 연인에게 바치는 연서는 통속적/신파적이나 복거일 특유의 정갈한 문체가 작품이 삼류의 늪으로 가는 것'만큼'은 철저히 차단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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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02-21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거일의 몇몇 걸작들(예컨대 ˝비명을 찾아서˝)에 비하면 이 소설은 범작의 반열에 들기에도 실로 어려운 작품이다. 또한, 김연수/윤대녕 등이 이러한 소설을 썼더라면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박한 평가를 내렸을 듯도 싶다.
헌데 복거일의 신파적 로맨스에 대해선 나는 (공정하지 못하게) 호평을 하지는 않더라도 박한 평가를 주지는 않는 편이다. 그의 몇몇 작품들에는 노년에 접어든 남자의 비애와 감상, 남성 편향적/편의적인 사고가 넘쳐나고 있는데 이것이 (이상하게도) 그렇게까지 밉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글은 아무리 이성적/지성적인 면모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철없고 아집 심하고 여성의 애정을 끝없이 갈구하는 ‘애 같은‘ 나이 든 남자의 심리를, 특유의 담백하고 정갈한 문체로 정확히 묘파할 때가 있다.
 

 

 

 

 

 

 

 

 

 

 

 

 

 

 

 

괴물

 

최영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은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ㅡ 2017년 황해문화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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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6 1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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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6 14: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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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7 09: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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