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
복거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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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병든 작가의 마음 풍경이 곱고도 정갈한 문장으로 드러난다. 노 작가는 추태를 떨거나 고상을 부리지 않으며 겸허하고도 의연하게 자신이 할 일을, 해왔던 일들을 헤아린다. 느슨한 서사 속에 우러나는 사유는 깊고, 마음은 따뜻하다. 드디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노년 소설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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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3-29 0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기막히군요.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한다라....
사실 비명을 찾아서'는 그 당시로서는 정말 신선했습니다. 매우 뛰어난 작품이기도 했고요.
영어공영화 발언 때문에 복거일을 극우파 비스무리하게 말하는데
사실 좀 억울한 면이 있으실 겁니다. 오히려 진보입네 하면서 뒤로는 온갖 패악질하는 유사 진보보다는 차라리 복거일의 솔직함에 땡기기도 합니다. 조만간 술 한잔 합시다. 봄이잖아요. 난 봄에 술마시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딱임...

수다맨 2014-03-29 11:53   좋아요 0 | URL
적어도 복거일은 자기 소신대로 말하고, 쓰지요. 영어 공용어화는 사실 나름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거칠게 정리하면, 영어를 제2의 모국어 삼자는 거지요. 어렸을 적부터 공부시키고고, 관공서나 회사 같은 곳의 공문도 한글/영어로 이원체제화하자는 거지요. 이게 약 20년 전에 나온 주장인데, 사실 오늘날 상황은 복거일이 말했던 대로 돌아가고 있지요.
복거일이 암투병중에 이 글을 썼다고 하더군요. 소설로서 그리 잘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노인의 체취와 정신이 오롯이 배어 있어 꽤나 뜻 깊은 독서였습니다.
조만간 한 번 뵙지요. 봄술이 원래 은근한 맛이 있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3-29 13:05   좋아요 0 | URL
오, 암 투병 중이신가요 ? 허어. 꼿꼿한 양반이셨는데.... 오래 사셔서 죽비 같은 글을 계속 쏟아내야 할 터인데 안타깝군요. 이런이런.....
하여튼 꽃술 한 잔 합시다....

수다맨 2014-03-29 15:58   좋아요 0 | URL
암세포가 너무 많이 퍼진 모양이라 손쓰기가 어려운 것 같더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때문에 이 책이 임종을 눈앞에 둔 자의 유서이자, 잠언처럼 읽히더군요.
음주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에메랄드 궁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향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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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이 있으되 재미만 추구하지 않으며, 신파가 있으되 싸구려로 주저앉지 않는다. 깊이가 있는 신파와 해학에는 언제나 눈물과 어혈이 담겨 있다. 소설은 모텔 안에서 벌어지는 치정과 비극을 에누리 없이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희망과 용기를 가져야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역설한다. 이 소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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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3-27 0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메랄드궁에 대한 칭잔을 여럿 듣습니다....
함 읽어봐야겠네요...

수다맨 2014-03-27 12:21   좋아요 0 | URL
역대 세계문학상 수상작 중에서 거의 본좌 급이 아닐까 싶습니다 ㅎㅎ
위 100자평은 사실 곰곰발님 말을 좀 비틀어서 쓴 겁니다. 언젠가 깊이가 있는 신파에는 눈물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ㅎㅎ 그 말씀이 이 소설에 딱 들어맞습니다.
 
프린세스 바리 -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정윤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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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진화한 공선옥 같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공선옥 소설에서 흔히 드러나는 신파나 청승은 절제되어 있다. 타락한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깊고, 시장과 공장 풍경을 그려내는 문장은 섬세하며, 연민이나 동정 없이 결말을 향해 치닫는 서사는 힘차다. 이 작가, 남성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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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3-22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화한 공선옥이라.... 이 짧은 표현이 임펙트가 강하네요.
딱 느낌이 옵니다.
공선옥이 정직하기는 하면 좀 투박하죠. 지나치게....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으나 단점이 되기도 하는...

수다맨 2014-03-22 12:03   좋아요 0 | URL
투박하기보단 저는 공선옥 소설을 읽으면 신파나 청승 같은 게 조금은 느껴지더라구요. 깊이가 있는 신파나 청승이면 좋은데, 가끔은 가족로망스나 (설익은) 모성주의로 후퇴하려는 신파가 느껴져서 조금 꺼려집니다. 근작인 "명랑한 밤길"에서 이런 게 확 느껴져서 조금은 거북하더라구요(물론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매력으로 느껴지기도 하겠습니다만).
 

이 세상엔 확실히 도둑놈 같은 것들이 들끓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나라와 동족에게 예사로 해를 끼치고, 사회를 좀먹는 해충이나 독충 같은 인간들 말이다. 정치적인 투철한 신념도 없고, 국가와 민족에게 봉사하려는 정신자세도 돼 있지 않으면서, 이권과 감투욕에 미쳐서 정치를 한답시고 휘젓고 돌아가는 놈들, 국민의 공복이라는 책임있는 자리를 이용해서 뇌물이나 받아먹고 공금이나 들어먹는 탐관오리배들, 국가의 동량인 인재 양성을 빙자하여 육영사업을 한다는 미명 아래 폭리도 이만저만이 아닌 지독한 학교 장사꾼들, 사업을 합네 하고 기상천외의 간계를 꾸며 어머어마한 나랏돈을 끌어내어다가는 뒷구멍으로 말아먹지 않으면 고작 독점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내 가지고는 시세의 몇 배인 엄청난 가격으로 소비자를 골탕먹이는 협잡 사업가들, 품질을 속이고 가격을 속이고 심지어는 가짜 물건을 진짜로 속여 팔아먹는 사기상인들, 이런 악질 도배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이니, 제 정신 가진 사람치고, 그 입에서 욕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손창섭, "길", 북갤럽, 3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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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부녀"를 읽고 손창섭의 매력에 푹 빠져서 그의 전 작품들을 사 모으는 중이다. 단편전집은 작년에 다 샀고 장편인 "삼부녀"와 "인간교실", "길"까지 구했지만 그의 최후의 대표작인 "유맹"은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 이 책이 헌책방에도 없었기에 출판사(실천문학사)에까지 직접 전화를 걸었지만, 재고는 출판사 보관용으로만 한 권 남아 있다고 하며, 앞으로 재판을 찍을 일은 없을 거라고 한다. 이 책은 E북으로라도 사거나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 제본이라도 뜨려고 한다. 

특히 위와 같은 손창섭 특유의 독설은, 흠모하지 않을 수 없다. 신형철은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도대체 가능"하냐며 감탄을 표했지만, 나는 달리 말하고 싶다. 대체 "손창섭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 도대체 가능"하냐고 말이다. 나는 이 이야말로 한국의 진정한, 거의 유일한 리얼리스트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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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3-19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손창섭 책을 삼부녀 빼고는 모두 도서관에서 봤습니다. ( 유맹은 저도 못 읽었군요. ) 3일 연휴일 때 도서관 가서 창섭 소설, 평론, 기타 기사 등등..... 그래서 집에는 달랑 삼부녀가 전부예요.
뭘 좀 말하고는 싶은데 후다닥 읽어서 서평을 쓰기는 그렇고...

그러다가 오직 서평을 쓸 목적으로 오늘 인간교실 구매했습니다. 인간교실 기억나는게 이게 막 신간이어서 도서관 신간 코너에 있더라고요... 유맹은 아무래도 그 이후에 출간되었나 봅니다. 도서관에 없었던 걸 보면 말이죠...하여튼 지금 읽고있는 책들만 읽고 나면 손창섭에 대해 말 좀 해야겠습니다.

수다맨 2014-03-19 22:08   좋아요 0 | URL
삼부녀에 확실히 과장이나 비약이 없지 않아 있다면 "인간교실"은 조금 더 정통소설에 가까우면서도 장차 "삼부녀"와 이어지는, 고리 같은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곰곰발님도 말씀해주신 것 같은데, 손창섭은 혈연주의적 공동체와 계약에 묶인 일처일부제를 끔찍이도 증오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구성원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또다른 패거리주의나 패밀리주의(우리가 남이가!)로 변질되기 쉽지 않습니까. 손창섭이 꿈꾸었던 공동체는 ㅡ다소 추상적인 문학적 형상화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ㅡ 핏줄이 다르고 연령이 달라도 상처 입은 사람들의 유대와 믿음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삼부녀"에서 그런 것을 아주 멋지게 보여줬죠 ㅎㅎ 곰곰발님 말씀처럼 이 사람이야말로 한국 최고의 작가라고 봅니다.
 
인간교실
손창섭 지음 / 예옥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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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소설이란 이런 것이다. 좋은 소설이란 당대성과 보편성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에 대한 폭깊은 이해와 속악한 세속을 꿰뚫는 시각, 그럼에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한줄기 희망을 가지고 있다. 손창섭은 당대의 미쳐돌아가는 성풍속과 군부정권 치하의 타락한 현실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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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4-03-15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말을 보태자면, 이 소설의 품격과 가치는 오늘날 소설들과 비교해 봐도 전혀 떨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그 이상의 광휘를 뿜어내고 있다. 감히 말하자면, 나는 이 소설과 맞먹는 한국의 리얼리즘 소설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이 소설에서 손창섭은 "죄와 벌"의 도스토예프스키에 비견된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3-16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읽으셨군요. 손창섭은 단편과 장편 모두를 섭렵한 전무후무한 괴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이 사람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시대를 미리 내다보는 당대성은 마치 신들린 무당 같습니다. 한국 문단이 민족 노선에 빠져서 고은 같은 이를 대표 작가라고 숭배해서 그렇지 손창섭을 따를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수다맨 2014-03-16 11:29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손창섭을 한국의 훌륭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생각했지만, "인간교실"까지 읽고 나니 그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곰곰발님 말씀처럼 손창섭이 한국 근대문학사를 빛내는 최고의 작가인 것 같습니다.
아, 이 소설 읽고 나니 서양의 위대한 고전을 한 편 읽고 난 기분이 드네요. 흔히 손창섭이 신문에 쓴 연재소설들은 통속소설이라 평가절하되곤 하던데, 이건 뭐 요즘 장편이랑 비교해 봐도 '클라스' 자체가 다릅니다. 인간과 시대를 외부자로서 그린다는 것, 이것을 이 작가만큼 해낸 사람을 앞으로 보기 힘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