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일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9
리처드 포드 지음, 박영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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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문구와 최일남, 루시디와 마르케스와 같은 입담이 대단한 작가들의 작품을 빼면 고백과 수다가 과도한 소설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작품의 핵심적인 서사(정신병을 앓는 아들과 여행하는 아버지)로 직핍하지 않고 이혼한 중년 남성의 내면을 추적하는 데만 작가가 ‘너무나도‘ 공을 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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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1-31 1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론 이혼한 중년 남성의 외양과 심리를 추적하고 묘사하려는 포드의 문장은 섬세하면서도 탁발한 부분이 적지 않으며 어지간한 공력도 엿보인다. 문제는 작가가 서사를 흡인력 있게, 적극적으로 펼쳐내기 보다는 초반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 중년 남자의 고백의 양을 늘리는 데(이혼남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에만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범박하게 말해서, 핵심을 바로 집어서 말하지 않고 변죽만 울리고 있는 모양새다.
2권을 읽고서 다시 말해야겠지만 유명한 작가의 책 치고 약간의 실망감이 든다.
 

 

 

 

 

 

 

 

 

 

 

 

 

 

"트럭은 발효기 앞에 멈췄다. (산란계) 병아리들의 최종 목적지였다. 발효기는 농장에서 발생하는 가축의 분뇨를 처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시설로 높이 7M, 지름 1M 80CM 정도의 은색 원통이다. 내부에서는 회오리형 칼날이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는데 흙과 분뇨를 넣고 3개월 정도 발효시키면 토양에 직접 살포해도 되는 수준의 비료가 됐다. 먼저 흙과 분뇨장에서 퍼온 시꺼먼 닭똥을 채워 넣었다. 다음으로 자루를 풀고 병아리들을 쏟아부었다. 병아리들은 마대 자루만 한 동물의 사체인 양 커다랗게 덩어리진 채 떨어졌다. 여전히 살아 있는 병아리들이 있었지만 쏟아지는 동료들의 사체 속에 파묻혔다. 부화장에서부터 이어진 삐약 소리는 우리가 한참을 걸려 모든 병아리들을 집어넣고 마침내 발효기를 작동시킨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웅 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누런 병아리 덩어리들이 똥과 뒤섞이는 동안에도 삐약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삐약 소리는 농장장이 사무실로 돌아간 다음에도, 우리가 발효기 주변을 청소하고 떨어진 병아리들을 주워 모아 집어넣은 다음에도, 계사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근무가 끝나고 식당으로 내려갈 때도 계속 들려왔다. 빌어먹을 삐약 소리는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마냥 도무지 멈추지를 않았는데 믿을지 모르겠지만 다음 날 새벽 계사로 올라갈 때도 발효기 안에서 울리는 병아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ㅡ 한승태의 "고기로 태어나서" 중에서

 

 

저자는 실제로 충청남도 금산에 있는 부화장에서 일한 적이 있으며 위 인용글은 그러한 경험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육계鷄를 제외한 나머지 병아리들, 산란계 수평아리나 병이 든 병아리들은 대부분 회오리 칼날에 몸이 잘려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육계 농장의 최대 지출은 사료비인데 육계 이외의 병아리들에게까지 모이를 먹인다면 그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가 일상에서 주로 먹는 육계는 자라는 속도가 다른 닭들보다 훨씬 빠르며, 그만큼 이윤을 보장해 주는 동물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찰스 부코스키는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라는 산문집에서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끔찍하다. 우린 얼른 뒈져서 여길 떠나주는 게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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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 2019-01-19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끔 무언갈 먹고 싶다는 생각 자체만으로도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언제나 이지적인 글, 비평 감사합니다.

수다맨 2019-01-21 09:55   좋아요 0 | URL
이렇게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소설 보다 : 가을 2018 소설 보다
박상영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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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별로였다. 박상영의 글은 좋았으나 작가 본인의 사적인 이야기에(만) 계속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나머지 둘은 관념적(인물들이 붕 떠 있다)이고 감상적(도시화된 신경숙같다)이다. 특히 최은영은 맑은 인간(들)과 폭압적인 사회라는 구도만을 한결같이 강조, 반복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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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1-13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나는 ‘맑고 약한 인간‘을 보듬고 강조하려는 소설은 문학적인 성취를 거두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쓴 적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오늘날 글쟁이가 해야할 일들은 덕성과 윤리의 강조를 포함해서, 그러한 것들이 사회에서 아이러니하게 파열되고 탈색되는 지점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만일 이 작가가 촌티나 신파와 같은 (나 같은 인간의) 저열한 평가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글을 쓰려면 그만한 서사 전략과 심오한 안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학내에서 일어나는 과거 사건이나 시위장에서 일어났던 여혐 사태와 같은, 몇몇 충격적인 소재들 위주로 맑고 약한 인간들의 심리와 실존을 쓰려는 작법은 그 강밀도나, 충실성이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실로 2019-02-06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다맨님의 글 항상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한때 최은영의 작품이 왜 베스트셀러인지 의아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1. 포식자와 희생자라는 전통적으로 호소력 있는 서사구조의 전형을 띠고 있음.
2. 한국의 독자(문학의 소비자)는 냉철한 지적 비판 의식보다는 감정의 위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음.
3. 현재 문학의 주류 소비자는 20-30대 여성으로, 1, 2 항목에 민감한 감정적 결속을 느끼는 성향을 띰.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지만, 절대적 진실은 아님에도 그것이 진실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서사 구조, 때로는 안일한 판단력을 조장하는 이러한 작품 성향들에 대해 출판사는 자정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너무도 얕고 편협한 독자층은 비판력을 상실한지 오래.

결국에는 자기 주관과 소신이 있는 작가들이 결속해야 한다고 보는데, 거대 출판사의 이윤추구 성향과, 시류를 타는 힘 있는 작가들(페미니즘, 퀴어 문학)의 ‘약자를 자처하는 갑질‘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는 문단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답이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비판 의식을 드러낼라 치면, ‘잠재적 성범죄자‘, ‘주류 기득권의 폭압‘으로 몰아붙이는 분위기이니, 자기 편이 아니면 모두 적폐세력으로 몰아 붙이는 파시즘과 뭐가 다른가 싶은 요즈음입니다.

한국 문학은 원래 재미가 없었지만 점점 재미가 없어지고 있어요. 한국 문단에는 더 이상 이청준 같은 작가는 나올 수 없고, 이 척박한 토양에서는 미셸 우엘벡이나 필립 로스 같은 작가가 등장하는 일도 당분간 요원해 보입니다.

수다맨 2019-02-07 13:36   좋아요 0 | URL
고견을 이렇게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최은영 소설이 독서 시장에서 인기를 얻게 된 세 가지 원인과, ‘약자를 자처하는 갑질‘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크게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저는 특히나 한국 작가들이 좌파/우파의 민감한 영역과, 남성과 여성의 내밀한 부분을 두루 돌아볼 줄 아는 상상력과 비판 정신이 크게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집필 노력을 전방위적으로 투사하지 못하고 자신이 소속된 에콜의 당파성을 옹호하는 데 치중한다고 해야 할까요.
이를테면 과거 이문열과 복거일 같은 작가들은 경제 성장이나 보수 반공과 같은 용어에 과중한 의미를 부여한 나머지 권위주의 정권의 폐단과 해악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죠. 그리고 이른바 과거 ‘좌파 계열‘에 속하는 작가들은 ‘인권‘과 ‘민주‘와 ‘노동‘이라는 개념을 중시하면서도 북한의 인권 유린이나 비민주적 행태에 대해선 제대로 된 문학적 응전을 보여주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봅니다. 다른 얘기를 좀 하자면, 황석영의 ˝손님˝과 같은 소설을 읽노라면 한국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외세(소련, 중국, 미국 등)에 한정해서만 찾으려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순정한 한국인들과 (그들을 이용해서 한반도를 착취하려고 했던) 사악한 외세라는 이분법적인 구도에 의해서 서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것이실로 님께서 일부 언급하신 것처럼 소설 쓴다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서사 세공이나 문장 수련에 앞서서) 재래적인 전통 서사를, 위로 일변도의 정서를, 당파성이 투사된 이분법적 구도를 먼저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나라에서도 미셸 우엘벡이나 필립 로스와 같은 문단이나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정직하고 치열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작가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실로 2019-02-1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마따나 식견 있는 분과 의견을 나누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외람되지 않는다면 자주 들러 의견 남기겠습니다. ^^

수다맨 2019-02-11 15:41   좋아요 0 | URL
식견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제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기는 그냥 짤막한 독후감을 쓰는 제 놀이터 같은 곳입니다 ㅎㅎㅎ 이렇게 댓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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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매혹은 있는데 한 방은 없고, 화려함은 있는데 중량감은 없다고 느껴지는 소설이다. 기억을 상실한 흥신소 직원이 소수의 단서만을 가지고 과거를 추적하는데 그렇게 찾아낸 비시 정권 치하에서의 삶이란 무이자, 불확실이자, 안개라는 결과는 묘한 여운이 없지는 않으나, 어딘가 개운찮은 느낌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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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의 열매 - 개정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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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강의 글을읽고 감명을 받은적이 드물다. 내가본 한강의 소설속 인물들은 대체로 ‘~척‘하는데에만 충실하다. ‘슬픈 척‘, ‘힘든 척‘, ‘절망적인 척‘ 그녀의 글들은 인간 내면의 만감을 서사적으로 끝까지 파헤치지 못하고 어느순간부터 정형화된 사유나, 화사한 이미지의 나열로 귀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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