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가토 - 2012년 제45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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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대학내 운동권의 생활사이자, 수직적인 남녀 관계가 온존했던 풍속사로서는 읽을 가치가 충분하나 소설적 성취도가 대단한지 의문이 든다. 단순히 ‘하연이의 가족찾기‘가 아니라 학생운동 세대의 변모로 인한 운동성/실천성의 종언 문제를 핵심적으로 다루었다면 더좋은 소설이 되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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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8-27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로서는 이상하게도 소설 속 중심 인물들(하연, 인하, 정연 등)보다는 조연급 비중이라고 할 수 있는 유보살이나 권보살 같은 이들에게 호감이 갔다. 부언을 하자면 이들은 명리(인하)나 정의(정연)에 조금도 집착하지 않으며 결손 가족이라는 트라우마로 인해 생겨나는 분노와 슬픔을 쉽사리 표출(하연)하지도 않는다. 어제가 있었으니 오늘도 있고, 오늘이 있으니 내일도 있을 것이라는 체념적/달관적인 마음으로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꿋꿋하게 살아 나간다. 내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나 권여선은 먹물들보다는 이런 인물들을 그려낼 때 필력이 더 돋보인다.
 

 

 

"여기 눈을 감은 채 더 높은 보수를 받고, 여기 눈을 감은 채 더 헐거운 정직성의 기준을 요구하는 데서 나는 286이니 386이니 하는 인위적 패거리가 만들어내는 실패의 교훈을 느낀다. 첨단 과학 발전의 세계화 시대에 정치적 정직성이니 정책의 공평성이니 하는 덕목들이 말짱 힘 빠진 주장임을 잘 안다. 그렇다고 거기 무슨 마땅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럴수록 이 시대에 더욱 절박한 제목이 정치적 정직성이라고 믿는다."

ㅡ 故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인 '영웅본색'의 한 대목

 

나는 조국에 대해서 잘 몰랐던 사람이다. 물론 단편적으로 아는 것들이 아주 없진 않았다. 그가 서울대 법대에서 교수를 했고 강준만이 분류한 이른바 '강남 좌파'에 속했다는 것, 그럼에도 강남이라는 수식어가 피수식어를 압도하지는 않을 만큼 친자본적/친기업적 행보를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 그렇다고 좌파적인 삶을 일관되게 살았느냐 하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사회의 부정과 불의에 대해선 쓴소리를 하려고 했다는 것. 범박하게 정리를 하자면 이 정도가 내가 아는 조국이라는 사람이었다.

최근 들어서 조국과 관련된 사적인 정보들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고위 공직자에 임명되려는 사람일수록 그 이의 신상과 관련된 자료들은 대부분 미담이나 훈담보다는 탈법이나 위법과 근접한 경우가 잦으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웅동학원, 사모펀드, 종합소득세 지각 납부, 후보자 아들의 이중국적 보유 등등. 그 중에서도 이른바 속된 말로 '끝판왕'이라고 부를 법한 의혹은 후보자의 딸과 관련된 것들이다. 고등학생의 제 1 저자 의학논문 등록, 공주대 인턴 근무시 제3저자 논문 등록,  6학기 연속 장학금 수령(부산대 의전원), 단 3학점만 받았음에도 2학기 연속 장학금 수령(서울대 환경대학원) 등등 온갖 의혹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허위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이므로 신문과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명백한 불법으로 규정 지을 만한 것들은 생각보다 적다. 그럼에도 다수 사람들은 조국 일가의 과거사와 현 실상에 대해서 고운 눈길을 보내지 않고 있다. 그들은 조국이라는 공직자의 언행 불일치를, 특정 기득권의 일가가 남보다 나은 학업적인 혜택을 받으면서 그로 인해 부와 명예까지 세습되는 것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이 정권이 강조한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성이 실은 공염불이라는 것을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신평 변호사의 페북 글에도 나오듯이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로 나누면 (누가 귀족이고 누가 하층인지) 잘 보이지 않으나 기득권/비기득권 세력으로 나누면 누가 위계를 만들고 금권을 물려주며 권력을 휘어잡고 있는지 보인다. 물론 조국은 박근혜/최순실/김기춘과 같은 국정을 농단하여 부정부패를 조장하고 법 질서를 개판으로 만든 이들과 함부로 비교하면 안 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계급과 지위를 후손에게 대물림하고 있으며 이러한 행태는 지금은 자한당의 발호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사생활과는 별도로 검찰개혁을 수행할 이는 그밖에 없다는 이유로 부차적인 문제처럼 취급하는 이도 적지 않아 보인다. 실례를 들자면 작금의 민주당 지도부와 안도현/공지영 같은 사람들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들은 과거의 적은 군부정권과 그 하수인들, 지금의 적은 자한당과 그 추종자들이며 그 외의 사안들에 대해선 너무나도 협애한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이런 이들은 해당 업계(정계/문학계)에서 본인들이 더 이상 비주류나 피억압자가 아니며 이제는 기득권의 한 축이 되었다는 것조차 잊고 있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은 정유라라는 특정인의 언행에 대해서 크게 비난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 덕분에 그러한 특권을 누리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고 심지어 자신을 '금수저'로 보려는 이들에게 부의 세습도 일종의 능력이라는 식으로 답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처럼 무지하고 무례해 보였던 정유라는 좀 더 똑똑하고 유연한 기득권의 딸(들)로, 개정판이자 확장판이자 심화판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며 이러한 부활은 앞으로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조국 개인의 장관 임명 여부를 넘어서) 절차의 공정성과 정치(인)의 정직성에 대한 재인식과, 재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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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8-24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특혜는 세습된다는 것. 그 사실보다도 더 참담한 것은 특권층의 특혜를 위해서 국가 제도가 그들의 특혜를 위해 봉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보다도 더 참담한 것은 공평한 룰을 생명으로 여겨야 할 교육 제도의 시뻘건 민낯을 보야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보다도 더, 더더더더욱 참담한다는 것은이 불공평이 소멸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증후 !

수다맨 2019-08-24 18:57   좋아요 0 | URL
곰곰발님 말씀처럼 불공평이 소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 불공평이 심화, 확대되지 않으면서 교육 제도의 평등이 (조금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하는데 지금은 기득권의 이권 세습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좌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0
임레 케르테스 지음, 한경민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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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남자는 ‘살아남은자‘의 기록을 부지런히 출판사에 투고한다. 원고반려의 과정이 이어지고, 무익한 노동의 시간은 계속되며, 그의 분신과도 같았던 동료들은 미치거나 해외로 도피한다. 좌절로만 점철된 인생을 살아내면서도, 끝내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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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8-1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전반생(홀로코스트 체험, 잦은 해고로 인한 생활고, 거듭되는 원고 반려 등)과 전작(˝운명˝)에 대한 이해도가 없다면 ˝좌절˝은 복잡하고 난해한 글 모음 정도로 여길 수밖에 없다. 임레 케르테스는 참담과 궁핍과 좌절로 점철되었던 자신의 유년/청년/중년 시절의 체험들이 단계적으로, 선형적으로 읽히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작중에서 주인공 쾨베시의 분신으로 보이는 인물(노인, 씨클러이, 베르크 등)들을 만들어서 이들의 고됨과 견딤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기도 하고, 관념적인 대화나 사변적인 지문을 대거 삽입시켜서 읽는 이의 혼란감과 막막함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창작 기법을 이해는 하겠으나 독자로서 그다지 애호하지는 못한다. 어쨌거나 읽어내기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유년 시절에 수용소에서 끔찍한 체험을 겪고, 연명을 하고자 여러 가지 직업(신문기자, 공장 노동자, 군인, 간수 등)을 전전하면서도 무능자로 취급 받으며, 필생의 역작을 썼음에도 세상으로부터 냉대와 외면만 당하는 이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프게 다가왔다.
 
가족 - 개정판
이창래 지음, 정영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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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래는 한국적인 소재(위안부 등)나 경계인의 실존을 서사화할 때보다 자신이 실제로 발디디고 있는 장소(중산층)의 허실과 균열을 들여다볼 때 문학적 완성도가 더 높아진다. 극적인 서사나 흥미로운 반전은 없으나 어느 중년 남자의 가족사와 가족관계의 실상을 섬세하게 서술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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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7-30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나에게 이창래가 노벨문학상에 근접한 작가냐고 묻는다면, 지금 시점에선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노벨문학상은 (그 이면에 온갖 정치적 거래와 야합이 있기도 하지만) 일국의 문호에 걸맞는 이가 성실하고도 도저한 문학적인 경력을 쌓은 끝에. 생애의 막바지에 마땅히 받아야 하는 영예이기도 하다. 부언하면 내 안목으로는 영미권에 이창래보다 더 잘 쓰는 작가들은 많다. 그럼에도 이창래는 유려한 문체와 섬세한 시각으로 특정 인물/관계/장소에 대해서 우리가 간과하거나, 잊으려고 했던 내밀한 부분들을 포착하는 데 장기가 있다. 나는 이 작가의 이러한 장점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싶다.
 
쇼룸
김의경 지음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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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낙오의 상태에서 허덕이는 여성 인물들의 자기 위무적인 소비 행위(이케아 방문)가 결국에는 자기 기만적인 치장이자, 열등감과 열패감을 가중시키는 과정이란 것을 극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시류와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겪어낸 삶의 중량을 소설에 싣고 있는 작가를 ‘간만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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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7-17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유명한 ‘젊은 작가상‘의 후보군으로도, 집중적인 비평적 조명의 대상으로도 이 작가가 거론되는 것을 나로서는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김의경은 절대 다수의 갑남의녀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았는지 후세인들이 알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 나라 문학사에 그 이름 석자를 올려야 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