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눈을 감은 채 더 높은 보수를 받고, 여기 눈을 감은 채 더 헐거운 정직성의 기준을 요구하는 데서 나는 286이니 386이니 하는 인위적 패거리가 만들어내는 실패의 교훈을 느낀다. 첨단 과학 발전의 세계화 시대에 정치적 정직성이니 정책의 공평성이니 하는 덕목들이 말짱 힘 빠진 주장임을 잘 안다. 그렇다고 거기 무슨 마땅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럴수록 이 시대에 더욱 절박한 제목이 정치적 정직성이라고 믿는다."

ㅡ 故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인 '영웅본색'의 한 대목

 

나는 조국에 대해서 잘 몰랐던 사람이다. 물론 단편적으로 아는 것들이 아주 없진 않았다. 그가 서울대 법대에서 교수를 했고 강준만이 분류한 이른바 '강남 좌파'에 속했다는 것, 그럼에도 강남이라는 수식어가 피수식어를 압도하지는 않을 만큼 친자본적/친기업적 행보를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 그렇다고 좌파적인 삶을 일관되게 살았느냐 하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사회의 부정과 불의에 대해선 쓴소리를 하려고 했다는 것. 범박하게 정리를 하자면 이 정도가 내가 아는 조국이라는 사람이었다.

최근 들어서 조국과 관련된 사적인 정보들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고위 공직자에 임명되려는 사람일수록 그 이의 신상과 관련된 자료들은 대부분 미담이나 훈담보다는 탈법이나 위법과 근접한 경우가 잦으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웅동학원, 사모펀드, 종합소득세 지각 납부, 후보자 아들의 이중국적 보유 등등. 그 중에서도 이른바 속된 말로 '끝판왕'이라고 부를 법한 의혹은 후보자의 딸과 관련된 것들이다. 고등학생의 제 1 저자 의학논문 등록, 공주대 인턴 근무시 제3저자 논문 등록,  6학기 연속 장학금 수령(부산대 의전원), 단 3학점만 받았음에도 2학기 연속 장학금 수령(서울대 환경대학원) 등등 온갖 의혹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허위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이므로 신문과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명백한 불법으로 규정 지을 만한 것들은 생각보다 적다. 그럼에도 다수 사람들은 조국 일가의 과거사와 현 실상에 대해서 고운 눈길을 보내지 않고 있다. 그들은 조국이라는 공직자의 언행 불일치를, 특정 기득권의 일가가 남보다 나은 학업적인 혜택을 받으면서 그로 인해 부와 명예까지 세습되는 것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이 정권이 강조한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성이 실은 공염불이라는 것을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신평 변호사의 페북 글에도 나오듯이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로 나누면 (누가 귀족이고 누가 하층인지) 잘 보이지 않으나 기득권/비기득권 세력으로 나누면 누가 위계를 만들고 금권을 물려주며 권력을 휘어잡고 있는지 보인다. 물론 조국은 박근혜/최순실/김기춘과 같은 국정을 농단하여 부정부패를 조장하고 법 질서를 개판으로 만든 이들과 함부로 비교하면 안 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계급과 지위를 후손에게 대물림하고 있으며 이러한 행태는 지금은 자한당의 발호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사생활과는 별도로 검찰개혁을 수행할 이는 그밖에 없다는 이유로 부차적인 문제처럼 취급하는 이도 적지 않아 보인다. 실례를 들자면 작금의 민주당 지도부와 안도현/공지영 같은 사람들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들은 과거의 적은 군부정권과 그 하수인들, 지금의 적은 자한당과 그 추종자들이며 그 외의 사안들에 대해선 너무나도 협애한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이런 이들은 해당 업계(정계/문학계)에서 본인들이 더 이상 비주류나 피억압자가 아니며 이제는 기득권의 한 축이 되었다는 것조차 잊고 있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은 정유라라는 특정인의 언행에 대해서 크게 비난했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 덕분에 그러한 특권을 누리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고 심지어 자신을 '금수저'로 보려는 이들에게 부의 세습도 일종의 능력이라는 식으로 답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처럼 무지하고 무례해 보였던 정유라는 좀 더 똑똑하고 유연한 기득권의 딸(들)로, 개정판이자 확장판이자 심화판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며 이러한 부활은 앞으로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조국 개인의 장관 임명 여부를 넘어서) 절차의 공정성과 정치(인)의 정직성에 대한 재인식과, 재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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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8-24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특혜는 세습된다는 것. 그 사실보다도 더 참담한 것은 특권층의 특혜를 위해서 국가 제도가 그들의 특혜를 위해 봉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보다도 더 참담한 것은 공평한 룰을 생명으로 여겨야 할 교육 제도의 시뻘건 민낯을 보야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보다도 더, 더더더더욱 참담한다는 것은이 불공평이 소멸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증후 !

수다맨 2019-08-24 18:57   좋아요 0 | URL
곰곰발님 말씀처럼 불공평이 소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 불공평이 심화, 확대되지 않으면서 교육 제도의 평등이 (조금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하는데 지금은 기득권의 이권 세습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양평역 2번 출구 앞에는 먼지가 날리는 중이어서 시야가 부옜다. 양복을 입은 세 명의 남자들이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면서 하느님을 믿는지 물었고 이차선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은 매연을 내뿜으면서 서행했다. 도로 양편에는 무언가를 부수고, 만드는 공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펜스 너머로 보이는 포클레인은 삽날로 쇳덩이를 부수는 중이었고 반대편에서는 노란색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비계 위에서 회색빛 타일을 건물 외벽에 붙인 뒤 이음새에 실리콘을 부어서 마감을 했다. 누군가는 이러한 풍경을 보면서 아쉬움이나 불쾌감과 같은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을 테지만 나로서는 정서적 친밀감과 심적인 편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곳의 풍경은 안산의 어딘가를, 공장이 밀집한 공단 지역이나 개발의 손길이 크게 미치지는 않은 역사 앞, 피부색과 눈빛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생계를 도모하는 어느 거리의 정경과 닮아 있었다.

 

나는 직진을 하다가 외벽이 유백색인 건물에 도착했다. 유리문 앞에는 사진전과 관련된 내용이 쓰인 노란색 배너가 있었고 벽 너머에서는 남자 바리스타가 커피를 유리컵에 따르는 중이었다. 사진전이나 그림전을 간 경험은 드물었으나 카페 안에 갤러리가 있다는 애기를 들었던 적은 없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왔고 카페 한구석에 있는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발견했다.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니 개나리색 천이 드리워진 입구가 보였다. 그곳이 갤러리였고 작가는 구석진 곳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갤러리는 지하에 있어서 공기가 위쪽보다 상대적으로 서늘했다. 작가가 바닷속 온도와 질감을 살리고자 이러한 공간을 택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피부에 찬기가 끼치고 회남색 타일들이 깔린 바닥을 보고 있으려니 머릿속이 어두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윳빛 벽에는 단원고 교실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이 잇따라 붙어 있었고 갤러리 한가운데에는 작가가 그곳에서 직접 가져온 책상이 조명을 받아서 윤광이 흘렀다. 책상 위에는 바나나우유와 여러 종류의 과자들과 노란색 조화, 겉표지에 도라에몽이 그려진 책과 하트 모양의 포스트잇들이 있었다. 작가는 책을 펼쳐서 책상의 주인인 남학생의 아버지를 보여 주었다. 그의 얼굴은 수척했고 책상에는 마른 꽃들이 많았다. 학생의 아버지는 교실에 들를 때마다 꽃을 가져왔고 그것이 시들어도 치우지 않았다. 그의 아내, 학생의 어머니는 교실에 들렀다가는 참척慽의 고통이 늘어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여지껏 이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작가의 설명도 이어졌다.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이라는 소설에는 월남전 참전 경력이 있는 레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전쟁에서 살아온 뒤에도 살육의 경험들로 인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되면서 육체와 정신이 망가지는 지경에 이른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PTSD에 시달리는 재향군인들을 돕고자 여러 재활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지만 레스와 같은 인물들이 비극적인 경험의 반복 재생에서 벗어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작중에서 레스는 (재활 프로그램의 일환인) 중국 식당에서 음식을 고르고 식기를 사용해서 식사하는 행위 일체에 거부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물컵을 드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을 흘리며 그곳에 있는 동양인들을 보면서 정글 속에서 맡았던 누군가의 땀내와 바닥의 흙내를 기억하며 몸서리를 친다.

 

누군가의 죽음에서 비롯한 개개인의 심적 고통은ㅡ 이것이 예상치 못했던 참척이건 원치 않는 살육이건 간에ㅡ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그들이 피의 정글을, 피의 바다를 결국에는 통과한 셈이니 더 이상 과거의 기억에 얽매여서 살아서만은 안 된다는 논지의 주장을 할 때가 있다. 그러한 논리의 주장자들은 피와 관련된 극적인 경험을 해 보지 못한 사람들로 보인다. 피의 정글과 바다를 거쳐 온 뒤에도 해당자들의 몸에는 피가 묻어 있다. 앞으로 그 이의 생애에 행복과 축복과 관련된 사건들이 이어진다고 해도 그 피는 완전히 씻겨지지 않는다. 도리어 피로서 피가 씻기는 광경을 평생 동안 마주하는 고통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갤러리에서 내 시선에 유난히 들어왔던 사진은 교실 안 풍경과 복도 정경이 겹쳐진 듯한 모습으로 찍힌 작품(맨 아래 사진)이었다. 하나의 사진 안에 두 개의 장면이 중첩되어 있어서 작품은 사실의 재현이라는 본래 목적을 초과해서 몽환적이고도 착란적인 이 미지를 포착하는 데 성공한다. 작가는 카메라의 오작동으로 인하여 실수로 이 사진이 찍혔으나 그러한 결과물이 마음에 들어서 결국 전시회에 걸게 되었다는 사정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 '실수'는 단순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안산의 교실에서 사진을 찍고 찍느라 길고긴 시간을 보냈던, 본인의 작가적인 노력과 열정에 따른 운 좋은 보상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작가는 설명이 끝난 뒤에도 타인의 슬픔에 반응하고 공감하려 하는 공동체주의와 이타주의를 여러 번 말머리에 올렸다. 그 이의 창작 목적은 슬픔과 죄책감, 애도와 희망에 방점을 둔 것으로 내게 보였다. 나는 이 작가가 착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약간의 우려가 들었다. 이 사진들이 지닌 의의와 가치를 그 정도로 한정 지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에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선 이 사건의 반복 언급에 염증을 느끼거나 나아가 폭언을 일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이들은 크게 두 부류인데 첫 번째는 여전히 503에 대한 애정과 흠모를 가지고 있으며 세월호 사건이 그들의 영도자에게 부정적인 여파를 주었다고 보는 이들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세월호 사건과 비견될 정도인 비극적인 사건들(예컨대 천안함 참사)이 있음에도 사람들이 오로지 전자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후자는 소홀히 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이들이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 역사에서 일어난 끔찍한 비극들을 총괄적/복합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이해도의 결여를 드러내고 있으며 나아가 서로 다른 망자(들)의 존엄에 위계와 차등을 나누려는 저의(천안함 사건은 군인들의 위대한 순국이나 세월호 사건은 단순 사고사일 뿐이다)마저 엿보인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의견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무례하며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반성적/발전적으로 성찰한 만한 기회와 동력을 조금도 제공해 주지 못한다.

 

나는 갤러리에 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국가 권력의 폭압적인 작용(5.18 민주화 항쟁)과 국가 권력의 태만적/무책임적 행태(세월호 사건)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동전의 이름은 집정자와 그 추종 세력의 자격 미달이자, 정부의 존재 의의 상실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사건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망자들에 대한 연민과 추도도 필요하겠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이제 세월호 사건은 공식적인 기억의 장이자,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역사의 '아프고 부끄러운' 기록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 있다. 그럼에도 현재 이러한 과정에 반기를 들면서 503의 석방과 명예 회복을, 망자와 그 유가족들의 존엄을 훼손하려는 시도들이 여러 층위(인터넷, 광장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극언을 하자면 사람으로서 도리와 염치를 저버린 이들에게는 그에 따른 대접을 해야 한다. 이들의 발언을 '표현의 자유'라는 문구를 통해서 감싸거나, 관용주의적인 태도로 대해서는 안 된다. 요컨대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세월호 사건을 조롱/폄훼/왜곡하려는 이들에게 비난과 처벌이라는 이름의 몽둥이를 좀 더 제대로, 휘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망각에 맞서서, 재현의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작가의 집념에 진정으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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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2 2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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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들의 학교
박민정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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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본 이 작가의 장기는 인물들의 다양한 시점과 시국의 흐름을 알려주는 정보들을 결합해 당대성(약자 혐오)을 지닌 소설들을 쓴다는 것이고, 단점은 작품들이 흐름상 외부 소통에의 여지를 (애초부터) 차단한 듯한 비관적/폐쇄적 자의식으로 기울어질 때 독자로서 읽기가 갑갑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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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6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7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들에게 여성은 민족의 일원이라기보다 민족적 승리에 따라 교환되는 하나의 전리품일 뿐이다. 그 중간에 자리한 자이니치 후손들에게도 민족이라는 지표는 중요해 보인다. 하나(소설의 주인공)가 우연히 들어서게 된 교토조선중고급학교에서 마주친 이들은 지도에 없는 '조선'을 국적으로 둔 시대착오적 존재이면서도, 조국에 대한 긍지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지나친 자부심은 언제나 지독한 열등감의 이면이 아닌가. 민족에 대한 자이니치 후손들의 강박은, 한국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박양을 죽인 기노시타 미노루의 원체험과 연관된다."

ㅡ 강지희의 '키클롭스의 외눈과 불협화음' 중에서

 

어느 비평가가 쓴 해설을 읽다가 이 대목(위 밑줄 친 부분)에 이르러 눈길이 멎었다. 위 글은 민족주의와 가부장제가 어떤 방식으로 여성을 가해와 혐오의 대상으로 삼았는지 분석하는 텍스트였다. 글의 문맥마다 여성으로서의 괴로움과 집필가로서의 수고로움이 드러나 있었으나 재일 교포들(지도에도 없는 나라를 국적으로 둔 시대착오적 존재)에 대해서 다소나마 단선적인 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재일조선인 2세이자 에세이스트인 서경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해방 이후) 외국인으로 간주된 재일조선인들은 외국인 등록 수속을 할 때, 자기의 '국적'을 신고하고 기입해야 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는 한반도에서 민족분단을 둘러싼 대립이 심화된 상태로, 조선 사람들의 독립국가는 아직 성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국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국적을 기입하라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많은 재일조선인은 국적란에 '조선'이라고 기입했다. 그것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국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조선반도 출신, 조선민족의 일원이라는 의미, 즉 국적이 아니라 민족적 귀속을 나타내는 신호였다.

(중략)

'조선적'에서 '한국 국적'으로의 기재 변경은, 대한민국에 국민등록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즉 남과 북으로 나뉜 분단국가 중에서 남쪽의 국민으로 귀속할 것을 강요한 것이다..... 시점을 달리해보면 재일조선인이라는 집단은,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가 합작해 행사한 압력에 의해 둘로 갈라져, 한편은 난민 상태를 강요당하고, 다른 한편은 한국 국민이라는 틀 안에 갇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까지 여전히 '조선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본시 조선은 하나'라는 생각을 소중히 간직하려는 사람들, 재일조선인이 형성된 역사의 기록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자발적인 난민으로서 기꺼이 불리한 지위를 택하고자 하는 사람들, 또는 단지 기재변경을 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 등 다양한 입장이 뒤섞여 존재한다."

ㅡ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 중에서

 

재일조선인들이 여전히 '지도에도 없는' 조선적을 유지하고 조선이라는 이름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상술한 것처럼 다양하다. 그들 중에는 (비평가의 표현처럼) 시대착오적인 사람들도 있겠으나 난민의 고통과 설움을 안고 살면서도 조선이라는 시공간을 일종의 심리적인 귀의처歸依處로 삼으려는 이들도 존재한다. 또한, 난민의 형성 과정을 역사화, 기록화하기 위해서 불편을 무릅쓰고 조선이라는 이름을 각별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약자들-그 이름이 여성이건 성소수자이건 노동자이건 난민이건 간에-이 수모와 고통을 받았던 역사적, 사회적인 실태를 고찰하는 일은 참으로 값지고 중요하다. 다만 비평가가 차별(들)의 역사에 대해서 논하려고 할 때 특정한 집단이 받았던 차별은 예민하게 검토하면서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는) 다른 집단이 겪었던 차별을 범상한 시각으로 이해해선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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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9-05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다맨 님, 추석 전에 얼굴 한번 봅시다아..
 

 

 

 

 

 

 

 

 

 

 

 

 

 

 

"4년 동안 법사위원을 하면서 검찰과 법원을 죽 지켜봐왔는데, 과거처럼 정권이 판사에게 형량을 쪽지로 전달해 판결케 하는 쪽지 재판이나 수사 과정에서 잔혹한 고문을 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그러나 요즘 검사들과 판사들을 보면 이들의 의식이 국민 전체를 평등하게 바라보면서 사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된다. 단순 집회 참가자를 쉽게 구속하면서 수백억 원을 횡령한 재벌은 불구속하거나 집행유예로 풀어주지 않나. 법조문만 제대로 적용해도 이들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의해 형이 가중돼야 할 인물들이다. 기업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했다고 해서 풀어준다.

정몽구 회장 판결을 보면 사회 공헌 기금 액수가 형량에 반영됐다고 한다. 돈을 낼 수 없는 사람은 형을 더 많이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법 앞에서 자신의 재력에 따라 평등도가 달라진다는 것 아닌가. 대법원장이 취임 초기 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관 개개인은 독립적인 존재라고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화이트칼라 범죄가 엄단됐는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경제권력, 정치권력 등 권력층과 평소 교류를 해오고 봐주고 그러기 때문에 그런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 로비가 계속되는 것이다.

ㅡ 노회찬, '떡값 검사' 촌철 살인의 비평가' 중에서

 

노회찬은 혁명가였다. 이 사회의 전복을 꿈꾸었던 사회주의자였고 노동 해방을 쟁취하려 했던 투사였다. 정부는 그에게 국가보안법을 위배했다는 죄를 물어서 감옥에 보냈다. 영어囹圄의 시간은 이 년 구 개월이었다.

그가 옥고를 치르고 출소했을 때(1991년)에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 붕괴, 체제 변동의 시간을 겪어내고 있었다. 어제의 사회주의는 만민 평등의 대의를 간직한 빛나는 이름이었으나 그의 시야에 들어온 사회주의는 결국에는 자본주의보다 미만未滿하고 열등한 체제에 다름 아니었다는, 세상의 농담거리가 되어 있었다.

그는 세상의 변화를 인정하고 반체제적 전위 조직이 아니라 대중 친화적인 진보 정당 건설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맑스와 레닌을 읽었다는 그의 '무거웠던 언어'는 대중들과의 지속적인 접촉과 소통을 통해서 지향과 논리는 명학하되, 해학과 비유와 재미는 튼실한 '일상의 언어'로 바뀌었다. 그는 레드 콤플렉스의 망령에 시달렸던 이 나라 사람들에게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분배 받는 평등한 사회'가 진보가 지향하는 세계라는 것을 대중들에게 역설하려 했다.

평생을 진보 정치의 대변인이자, 파수꾼으로서 살아온 그에게 불법자금 수수 혐의는 무거운 부담감이자, 죄책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는 유서에서 청탁과 대가는 없었으며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인 모금이었기에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인이 말하는 '정상적인 후원 절차'란 도대체 무엇인가.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국회의원 한 명에게 개인이 후원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은 500만원이다. 그리고 국회의원 한 명이 일 년에 최대로 받을 수 있는 모금 한도는 1억 5천만원(선거철에는 3억원)이다. 이러한 자발적인 모금과 국가로부터 받는 급여가 있어도 국회의원이 의정 활동을 하려면 상당한 액수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정설이다.

어제자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국회의원들이 의정 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고 한다. 이를테면 정몽준, 안철수와 같은 기업인 출신의 정치인들은 자산이 많기에 정치자금법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리고 일명 KS(경기고-서울대) 라인이라는 엘리트 코스를 거쳐서 여의도에 입성한 정치인들은 자산이 많지는 않더라도 주변에 인맥(의사, 변호사, 판사, 대기업 중역 등등)이 튼튼하기에 '음성적'인 형태로 그들로부터 후원금을 받는다. 이 경우 외부 누설의 부담이 없기에 정치자금법의 감시망에 걸릴 확률도 드물다. 이번에 노회찬 의원에게 돈을 전달한 사람도 그와 동창인 경기고 출신의 변호사였다고 한다.

나는 고인의 실수를 탓하기에 앞서 '돈 없이는 정치할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주리를 틀려는' 이 나라의 금권 지향적인 정치 풍토를 비난하고 싶다. 그리고 '진보 정치인'은 정치적 정직성이라는 가치를 다른 이념 성향의 정치인들보다 '더' 철저히 지키도록 강요하려는, 진보를 '도덕적 순결주의'의 프레임 안에서만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일체의 흠결조차 없는 정치인을 만나고자 한다면 차라리 종교인을, 탈속인脫俗人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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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18-07-25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가 이젠 없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요..ㅠ
삼성과도 싸운 그가 그럴리 없다고 말했던 저같은 사람들이 그를 벼랑으로 몰았던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좋지 않네요.

수다맨 2018-07-25 14:18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들었을 때에는 오보인줄 알았습니다. 저는 노회찬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도 모르지만 어떠한 시련이나 또는 실수가 생긴다고 해도,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내릴 인물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거든요.....
이날 점심에 최인훈 작가의 부고 소식까지 들으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더군요. 그날은 거인들이 떠나간 하루였고, 그늘지고 얼룩진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빛을 모으고 밝히려고 했던 현인들이 우리와 작별을 고했던 시간대였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