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뫕님의 서재 (뫕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05 Nov 2026 21:51:52 +0900</lastBuildDate><image><title>뫕</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뫕</description></image><item><author>뫕</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사랑이 배반의 눈가림이 될 때, 나의 삶을 다시 내 것으로 돌려두는, 그 깊고 세찬 용기라니. - [낯선 사람 - 어느 사랑의 회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616250</link><pubDate>Thu, 05 Nov 2026 20: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6162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131922&TPaperId=176162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546/27/coveroff/k6621319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131922&TPaperId=176162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낯선 사람 - 어느 사랑의 회고</a><br/>벨 버든 지음, 손백희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10월<br/></td></tr></table><br/>#은행잎4기 #은행잎서재 #벨버든 #낯선사람<br/>*서평도서제공: 은행나무<br/><br/>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덮고 나서도 한참을 분노와 경멸에 떨었다는 것?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참담했다는 것? 읽다 말고 정말이지 피가 거꾸로 솟다 못해 심박수 경고가 수차례 울렸다는 것? 어떻게 사람이 사람 가죽을 쓰고 이렇게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짓만 골라가며 할 수가 있나?<br/><br/>상대와의 신뢰를 배반하고도 조금의 죄책감과 책임의식조차 갖지 않으려는 종자들은 동서고금 젠더노소를 막론하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똑같은 소리를 하는 걸까? 자기 말대로 해야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라고, 네 책임도 있다고, 누구나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다고… 물론 그 모든 것이 제 편의에 부합할 때만.<br/><br/> p.34 그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우리 결혼 생활에서, 내게서 뭐가 부족했는지,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 여자와 사랑에 빠진 건 아니라고 했다. (…) 그는 완벽히 침착했고, 목소리도 낮고 차분했다. 그런 그의 태도 때문에 화내고 망가지고 혼란스러운 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신속하고 가볍게 받아들여야 할 상황 같았다.<br/><br/> p.142 내 마음속 한구석에는 남편에게 일임하는 게 좋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가 우리 집 돈 관리를 하는 것이 우리 가족을 위한 기여이자, 나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어딘가 낭만적인 면도 있었다. 똑똑하고 품위 있는 남자, 헌신적인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가 우리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는 모습 말이다. 나는 나대로 맡은 책임이 있었다. 육아, 학교 식사, 숙제, 아이들 재우기 등. 그러니 그가 우리 재정 관리를 하는 건 당연했다. 역할을 분담해서 우리는 각자 맡은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br/><br/><br/> 울화통이 치밀어 가슴을 두드리게 한 원인은 비단 이 상황의 원흉 뿐만이 아니다. 그에 더해 이 '파탄'의 이유가 일방적인 배신과 이기심이 아니라 '배신당한 여자', '질리게 만든 여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 썩어빠진 생각을 여상한 농과 냉소로 내던지곤 툭 털어버리는 이들이 숱하게 맴돌았기 때문이다. 마치 어제까지의 친분이 '정상'에서 떨려나간 그를 조롱하고 끌어내릴 명분이고 동력이라도 되는 양.<br/><br/> 이 책에 끝끝내 '사이다'는 없다. 통쾌한 복수와 '정의' 따위는 희미한 소망처럼, 채 빛나보지도 못한 채 거듭 뭉개지고 꺾여버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니, 그와는 완전히 별개로, 저자의 서사는 다시 자신의 것이 되었다. 주변에 떠밀려, 언젠가의 상처를 보상하기 위해, 그 순간에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타인에게 넘겨준, 스스로 써내려가고 '다른 주인공'의 뒤로 물러서버렸던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세계에 당당히 자리했다.<br/><br/> p.293 스스로를 지키지 않았던 순간, 갈등 대신 편안함을 택했던 순간, 알기보다 모르기를 선택했던 순간들을 직시했다. 그 순간순간의 결정이 모여 지금 이 자리에 온 것이다. (…) 하지만 나는 남편을 믿고 따르며 그의 의견에 모두 동의했던 한 여자로서, 과거의 나에게도 연민을 가져보려 했다. '다 사랑을 위해 한 일이었다. 그건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br/><br/> p.326 온라인에서든 현실에서든, 사회가 허용하는 여성의 자리에서 이탈하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곳에서 여자는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야 하고, 남자는 자신이 저지른 일로 누가 얼마나 파괴되든 상관없이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행동하는 것이 용인된다. 그런 부류들이 지키려는 것은 더 큰 무언가. 즉 특정한 삶의 방식과 그 방식이 주는 안온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br/><br/><br/> 나름의 '책임'이 있었다 해도, '실패하지 않을 기회'가 있었다 해도 세상이 원하는 '완벽한 피해자'와 '정숙한 여성상' 따위를 정면으로 걷어차버리고 온갖 비난과 조롱에 맞닥뜨렸다 해도, 그리고, 여전히, 때때로 슬픔과 미련에 휩싸인다 하더라도, 자기의 삶을 움켜쥐고 놓지 않겠다고 한다.<br/><br/> 혹자는 싹 잊고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수라 말할지 모른다. 틀렸다. 당사자에겐 원망할 권리도, 배신감에 치를 떨고 반추하며 슬퍼할 권리도 있다. '털어내지' 못한다 해도, 펄펄 뛴대도, 때때로 주저앉는대도 그저 또다른 삶이다. 그가 살아가기로, 삶은 여전히 이어져나간다고 말하는 이상, 연대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그의 선택을 지지하고 곁을 지켜주는 것뿐이다. 탓도, 책임추궁도, '달라진 삶'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br/><br/> 물수리의 생태에 비추어 되돌아보든, 언제고 되돌아올 고통에 휩싸여 거꾸러지든, 저자와는 사뭇 다른 서사를 써나갈 또다른 누군가의 삶에서든, 그래, 인생은 이어진다. 누구에게든 언제나 바깥, '나'라는 존재는 남아있는 것이다. 그 연약하고 간신한 희망은 여기서 다시 싹튼다. 꿋꿋하게, 여전히.<br/><br/> p.309 우리는 모두 남자들이 만든 구멍을 대신 메우고, 그들의 나쁜 짓에도 침묵하며, 품위 있게 모른 척하도록 교육받았다. 내게 일어난 이야기를 출판하는 것은 그 구멍에, 제임스가 남긴 깊은 균열에 빛을 비추는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뒷수습하며 품위를 지키는 역할을 거부하고 있었다.<br/><br/><br/> 이 회고의 힘은 저자 한 사람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내내 곁을 지키며 지지해온 이들을 조명하는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상처를 고백함으로써 같은 고통에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선례가 되어주었다. 그가 이 부당한 상황에 순응하지 않은 데에는 그 자신의 용기 뿐만 아니라 먼저 자립한 여성들, 언젠가 배반당하고 치를 떨었던 이들, 이 상황이 옳지도, 참아서 해결되지도 않음을 경험하고 증언해온 이들이 있었다. 이제 그 또한 하나의 가능성이 되었다.<br/><br/> 몇번이고 제목을 되돌아봤다. Stranger, 낯선 사람. 종장에 이르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 남자'가 저자에게, 자기가 배신한 관계에 한순간에 그런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라고만 생각했다. 덮고 난 지금, 이제는 안다.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 되었다고. 그가 놓쳐버린 가족들의 삶은 영영 낯설어지며, 자기만의 방식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처음부터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br/><br/> p.335 이제 제임스를 생각하면, 그때 내게 손을 흔들던 그 남자가 떠오른다. 그는 악인이 아니다.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는 내 아이들의 아버지이며, 여러 해 동안 사랑과 행복을 준 사람이다. 자기 삶과 미래에 대해 다른 결정을 내린 사람이다. 나는 그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546/27/cover150/k6621319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5462706</link></image></item><item><author>뫕</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울렁울렁 일렁일렁 풋사랑과 생기로 단단히 무장한 젊은 미시마의 욕망의 자아상 필리버스터 - [파도 소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611674</link><pubDate>Tue, 03 Nov 2026 18: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6116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1012&TPaperId=176116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75/87/coveroff/k50213101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131012&TPaperId=176116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파도 소리</a><br/>미시마 유키오 지음, 이진명 옮김 / 교양인 / 2026년 10월<br/></td></tr></table><br/>*서평도서제공: 교양인<br/><br/> 거장이라고는 해도 사망(이라고 해야 할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죽기는 했으니) 당시 향년 45세, 어리지는 않아도 나름 젊은 나이였으니 '젊은 날'의 그와 후기 작품세계를 구분하는 일은 영 난감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대가의 반열에 올라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기 이전, '소설가 미시마'로만 존재하던 때, 끓어오르는 혈기와 생명력을 주체하지 못하던 때의 작품은 이후의 냉소와 거시적 세계관의 시기와는 퍽 다른 면모를 보인다.<br/><br/> 그런 의미에서 〈풍요의 바다〉를 시작으로 미시마의 작품세계에 파고든 독자에게 『파도 소리』에 드러나는 작가의 자의식과 모상을 탐구하는 일은 당황스러운 동시에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내내 깔끄럽게 느껴졌던 부분도 이와 별개라고 할 수는 없으니. 서설가는 무엇을 그려내는가? 재-구성된 세계에서 그는 어느 위치에, 어떻게 거하는가? 질문들은 이 이야기를 풋풋하고 거친 사랑의 단편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이유와 멀지 않다. <br/><br/> p.98 신지의 마음속에는 도덕적인 것에 대한 맹목적인 경건함이 있었다. 첫째로 그는 아직 여자를 몰랐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여자라는 존재가 지니고 있는 도덕적인 핵심을 건드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 오래도록 깨어날 수 없을 듯한 취한 기분과 문밖의 기괴한 파도 소리, 나무 끝을 뒤흔드는 바람 소리가 자연의 한결같이 고조된 가락 속에서 함께 물결치고 있음을 느꼈다. 이 감정에는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듯한 지복이 깃들어 있었다.<br/><br/> p.102 치요코는 도쿄가 그리웠다. 이렇게 폭풍이 부는 날에도 아무렇지 않게 자동차가 오가고 승강기가 움직이며 전차가 혼잡한 도쿄가 너무도 그리웠다. 그곳에서는 '자연'이란 것들은 일단 정복되어 있고 아직 버티고 있는 자연의 위력은 적이었다. 그러나 이 섬에는 사람들 모두 자연의 우방이었고 자연의 힘에 가세했다.<br/><br/><br/> 미시마의 도덕적 결벽성, 흠결없는 자아상과 순수에 대한 집요한 고수는 주인공 신지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우직하고 무심한 심성과 단조로운 반복으로 하루하루 쌓여가는 일과는 작가가 열망해온 남성성과 결부된 것처럼 보인다. 또한 그것은 외부에서 주어진 지위나 처세술 따위가 아닌, 타고난 '근성'과 부단한 수행으로 증명된 성취라고 말해지는 듯하다.<br/><br/> 그의 주인공은 미숙하다. 서툴고 거칠다. 그러나 이는 부족함이 아니라 오히려 세파와 정념에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성을 드러내는 면모로 그려진다.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하는 주인공은 그 자신만의 속도를 지니고 있다. 동시에 어떤 '숭고함'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자격은 그 자신의 성취로 얻어지는 동시에 초월적인 가호, 고유하고 신비한 '도덕'의 보호 아래 있다. 마치 영웅의 그것과도 같은 초월적 각성과 단련이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성장은 거듭 증명을 요구받고, '시험'을 통과한 후의 '자격'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성취물이 된다.<br/><br/> p.56 두 사람의 볼이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 서로의 내음이 바다 냄새처럼 강하게 퍼지면서 서로의 열기가 뜨겁게 느껴졌다. 마르고 갈라진 두 입술이 맞닿았다. 소금 맛이 조금 났다. 신지는 하쓰에의 입술이 해초 같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이 지나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경험에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얼른 몸을 떼고 일어섰다.<br/><br/> p.205 신지는 귀를 기울였다. 그 사내다운 얼굴 바로 위에는 태풍이 있었다. 그는 낮잠을 자는 듯 포근한 자연의 품 안에도, 지금 이 순간처럼 광기로 얼룩진 향연의 자리에도 똑같이 초대받을 자격이 있었다. 비옷 속에서 비 오듯 땀이 나서 가슴과 등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비옷을 벗어던졌다. 그러자 목이 둥근 흰 셔츠를 입고 맨발이 된 신지의 모습은 어둠과 폭풍 속에서 혼자만 우뚝 솟은 것처럼 보였다.<br/><br/><br/> 그러나 이 작품을 이상 일색으로만 읽는다면,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놓치기 십상이다. 작품 내내 두드러지는 시각적 묘사는 일방적인 관음과, 자연 그리고 그 일부로 살아가는 이들의 생명력에서 뿜어져나오는 관능 사이를 줄타기하며 이어진다. 후자를 근현대 서구의 전능신의 무구하고 순결한 피조물보다는 사납고 위험한, 이해 너머에 발을 걸친 야생의 짐승에 가까운 이미지로 이해한다면 어떨까.<br/><br/> 작가가 그려내는 여성상에 어쩐지 은근한, 성애보다는 멸시 어린 경외의 대상와도 같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유와 가깝다 여기는 것이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그 시선은 사람의 매력이나 욕망어린 이끌림보다는 잘 자란 과실과 짐승에의 경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br/><br/> p.14 청년은 주방 문 앞에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넙치는 이미 흰 법랑 대접시에 놓여 가늘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아가미에서 피가 흘러나와 희고 매끄러운 살갗에 번지고 있었다.<br/><br/> p.173 장작불 주위로 밀치락달치락 법석을 떨고 있는 수많은 유방 중에는 이미 시들어버린 것도 있고, 마르고 딱딱해진 건포도 같은 젖꼭지만 흔적처럼 남아 있는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 잘 발달한 대흉근이 무거운 유방을 아래로 처지지 않게 넓은 가슴팍 위에 단단히 떠받치고 있었다. 그와 같은 생김새는 그들의 유방이 부끄러움을 모른 채 날마다 태양 아래에서 과실처럼 자라 왔음을 말해준다.<br/><br/><br/> 다시 앞으로 돌아가, 주인공을 통해 그려지는 자아상은 여러 인물을 안팎으로 조명하며 거듭 단호하게 고수된다. 이는 일견 대조의 형태를 띄나 결과적으로는 주인공의 '오염될 수 없는 본질'을 선명하게 그려내기 위한 장치로 보이기도 한다. 동시에 모종의 고집, 그 자신조차도 이렇게 해야만 지켜낼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겨준다. 이는 비단 그의 '종착지'를 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br/><br/> 미시마의 작품들 전반에서 느껴지는 예민하고 위태로운, 신경질적이기까지 한 집착은 그를 둘러싼 명성과는 달리 그가 스스로를 얼마나 혹독하게 몰아붙였는지, 그렇게 벼려진 '극의'가 도달한 자기파괴적 결말이 어떻게 숭고로 고착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조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을 풋풋한 사랑의 포말로 소개할 것이다. 우뚝 선 존재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인간 미시마의 연약하고 사나운 발버둥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것은 사랑 이야기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길 일이지만.<br/><br/> p.148 '그 애가 정말로 그렇게 말했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그 이상 기대하면 못써. 그 애가 정말로 그렇게 말했지. 그걸로 만족하고 그 이상 그 애의 사랑을 기대하면 안 돼. 그 애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내가 왜 못된 짓을 한 걸까. 나의 질투 때문에 어째서 그 애를 지독한 불행에 빠뜨렸단 말인가. 더구나 내가 배신했는데도 그 애는 나에게 예쁘다고 말하는 선물을 주었어. 속죄해야 해. 무언가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한 보답을 다해야 해.'<br/><br/> p.232 그제야 신지는 생각했다. 그토록 고생했지만 결국 하나의 도덕 안에서 두 사람을 자유로웠으며 신들의 가호는 단 한 번도 그들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고, 마침내 어둠에 둘러싸인 이 작은 섬이 두 사람의 행복을 지키고 사랑을 이루어주었다고. (...)  신지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 모험을 헤쳐 나온 것은 자신의 힘 덕분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75/87/cover150/k5021310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4758799</link></image></item><item><author>뫕</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두려워하라. 연약하라. 미지는 창이 되고 믿음은 칼이 되어 ◼을, 기필코, 반드시. - [항밈학과 같은 건 없습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590814</link><pubDate>Sat, 24 Oct 2026 22: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5908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131118&TPaperId=175908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81/7/coveroff/k3521311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131118&TPaperId=175908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항밈학과 같은 건 없습니다</a><br/>QNTM 지음, XCninety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10월<br/></td></tr></table><br/>*서평도서제공: 황금가지<br/><br/> 생각해보라. 생각할수록 생각될 수 없는 것을. 생각했으되,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듣고, 겪었으나 전해질 수 없는 것을. 한 걸음 나아가, 당신이 바라본 것이, 뇌리를 스친 '그것'이, 당신의 의식을, 차원과 인식의 지평 너머에서 ◼◼하고, ◼◼◼◼ 나머지, 혹은, 본능적으로, ◼◼을 ◼◼한다면, ◼을 찢고, 다가와, 휘감고, ◼◼후에,  자, 지금 당신은, 뭘까.<br/><br/>익숙한 그림처럼 흉측한 몰골의 악의 무리로부터 '평범한' 일상을 지켜내는 그림자 영웅이 아니라, 연구하고, 수집하며, 패퇴하기를 반복하는, 대체 무엇인지 알 수도 떠올릴 수도 없는 그런 희한한 집단이 있다. 그들의 업적은, 아니, 존재는 숨겨지며, 지워지고, 잊혀진다. 그들이 상대하는 '것'은 이해와 통제 너머에 군림한다. 아니, 그렇게 믿어져왔다. 그러나, 핵심과 처절한 무력의 교집합 어딘가에 거하는 '◼'은, 순식간에 ◼◼의 ◼◼과 ◼◼ 그 자체를 ◼◼◼◼◼ 시작하는데…<br/><br/> p.20 "항밈은 전파되지 않는 관념이에요. 항밈성 개체 및 현상은 정보를, 특히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거둬가서 집어삼키죠. (...) 직접 관찰할 수도 있고 눈에도 멀쩡히 보이지만 아무것도 없다고 인식해요."<br/><br/> p.336 녀석이 지닌 악의적인 중력이 인간성과 그 모든 인간의 관념을 자기 궤도로 끌어들여 알아볼 수 없도록 왜곡시킨다. 그 아래에서, 그 맥락 안에서 모든 것은 최악의 형태로 타락한다. 기쁨은 복수의 쾌감이 되고 자립심은 병적 유아론이 된다. 사랑은 숨 막히는 폭력이 되고 자부심은 굴욕이 되며 가족은 덫이 되고 안전은 피해망상이 되고 평화는 불만이 된다. 사람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하여 문명은 궁극적으로 혐오로 뒤덮인 폐허가 된다.<br/><br/><br/> 우리는 패배했다. 수없이 패배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처참히 ◼◼되고 있다. 우리와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수많은 이들의 ◼◼ 따위는 존재한 적도 없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으나 아무도 알지 못하는 채, 천천히, 완전히 망각되고, 인식과 존재의 세계 바깥으로 내던져진 채 ◼◼◼갈 것이다. ◼◼되었다는 사실조차 ◼◼질 때까지.<br/><br/> ◼◼이 인간과 접촉할 수 가능성이 존재하며 인간 존재와 떨어질 수 없이 결부되는 한 그를 피할 방법은 없다. 우리는 필연히, 무와 유의 경계가 무용케 들이닥치는 트롤리 레버 앞에, 선로 위에, 차창 너머에 붙박여 끝없이 절망할 운명이다. 그럼에도 어째서 발버둥치고 치받기를, 번번이 실패하고 처참히 무너질 줄을 알면서도, 순응과 평화 대신 발악하고 반격하기를 포기할 수 없는가?<br/><br/> p.98 "사람들이 있었어, 우리보다 훨씬 발전된 기술을 지녔을. 수천 년 전에 존재했을 테고, 어쩌면 수만 년 전이었을까. 정확하게는 몰라.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명하기도 어렵고. 문화적 밈복합체가 치명적으로 피폭당해 버렸으니까, 이 문명의 핵심 문화 개념, 이들이 창조한 존재들, 이들이 무엇을 상징했고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지 모두 이제는 알 수도, 전파될 수도 없어."<br/><br/> p.342 "우리는 지금껏 어느 때보다도 더 처참하게 실패했음에도 여전히 비밀 조직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지. 기구 바깥의 그 누구도 우리에게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뜻이야. (…) 우리도 결코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테지. 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지? 내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냥 죽는 사람은 없어. 누구도 아무 일 없이, 저절로 죽지는 않아. 죽음에는 원인이 있으니까."<br/><br/><br/> 그 답을 찾아 수없이 헤매왔다. 묻고 부딪히고 들이받다 픽 죽어버리기를 반복해왔다. 그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뼈저리게 무력해지는 지점, 가장 취약하고 또 가장 연약한 곳이 우리의 인간성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 눈 뒤편, 뇌 깊숙한 곳, 의식의 심층에 처박아넣는 안식의 손길 대신 등 뒤의 세계를 지키기로 마음먹는, 마주치는 시선에, 다음, 또 다음에 끝없이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는 실패할 것이다. 패배하고, 절망하고, ◼◼◼할 것이다.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망설일 것이다.<br/><br/>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끝내 사라지기 전까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완과 미지의 실마리를 붙잡고 일어설 누군가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은 이 비합리와 연약함을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다.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하기 때문에, 그의 세계에 '가능성이라는 가능성'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말해왔듯 홀로 전능함은 곧 절대적인 무능에 다름아니다. 그러므로, 언젠가의 ◼◼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패배가 아닌 '다음'의 선언을. "항밈학과 같은 건 없습니다".<br/><br/> p.46 리는 컴퓨터로 가서 미지체 항목을 다시 열어 희생자 수에 막대기를 하나 더하고, 지금부터 시도해 볼 방법을 정확하게 기록한다. 자신이 마지막 희생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방법 역시 실패했다는 사실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br/><br/> p.147 애덤은 마리를 믿는다. 마리가 얼마나 빠르게 흩어진 퍼즐 조각들을 다시 맞출 수 있는지를 안다. 말도 되지 않는 세계를 상대로 싸우며 진실만을 분리해 낼 수 있다는 것도. 그녀라면 우주 전체를 상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날카로운 불안감 하나가 뱃속을 찔러 온다. 애덤은 결국 이 말을 삼키지 못한다. "하지만 지면? (…) 지면 어떡해?"]]></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81/7/cover150/k35213111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4810733</link></image></item><item><author>뫕</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상처입고, 상처입히는, 불리지 않을 이름을 들여다보는 일. - [변신 이야기 - 2026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590478</link><pubDate>Sat, 24 Oct 2026 18: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59047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131200&TPaperId=175904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26/82/coveroff/k49213120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131200&TPaperId=1759047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변신 이야기 - 2026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a><br/>박서련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10월<br/></td></tr></table><br/>*서평도서제공; 은행나무<br/><br/> 단편집, 개중에서도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은 것엔 언제나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다. 소개나 작가 목록에 기대보다는 겁부터 집어먹기 때문이다. 분명 어느 작품인가엔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 모였으니 내 마음에 꼭 들어맞는 글이 하나쯤 없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 순간은 몹시도 짧아 허망한 마음으로 마지막 장만 팔랑이며 부여잡고 있을 꼴이 뻔하다… 뭐 그런 생각에.<br/><br/> 지난 한 해에 발표된 단편소설들 중 빼어난 작품을 추리고 가려 심사한다는 김유정문학상도 벌써 20회차를 맞았다. 그간의 수상작들을 쭉 톺아보고 난 후에 읽는 올해의 후보작들은 각별하고 걸출하다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동시에 그만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변해왔는지, 그 안에서 문학은 무엇을 찾고, 드러내고, 돌파하고자 애써왔는지 몸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br/><br/> p.48 〈김채원, 태양에서 멀리〉 치워 없애야만 하는 악이 존재하고 그 악에 맞서 싸우는 선이 있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됐다. 누가 보아도 선한 (그런 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인물들이 고통받는 이야기, 고통 속에서 발견하는 반짝이는 우정이나 사랑 같은 것들. 에구, 눈부셔라. 에구, 싫어라. 솔지는 이 모든 것에 필요 이상의 적의를 가졌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솔지의 약점을 건드렸다.<br/><br/> p.97 〈박민경, 별개의 문제〉 그 불안 속에서 엉뚱하게도 음식물 처리기가 떠올랐다. 만약 정말 늦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것일 거다. 개를 집어삼키고 흔적 하나 없이 사라지게 할 거대하고 똑똑한 구덩이.<br/><br/><br/> 주제와 서사를 달리하는 여섯 작품은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문학은 문학이기 위해, 다른 무엇도 아니고 문학이기에 할 수 있는 일과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수없이 물어온 흔적이 지금, 여기의 취약하고 연약한 것의 형태를 입고 그려졌다는 느낌을 준다.<br/><br/> 언젠가의 문학은 세상을 바꿀 창이었다. 동시에 어딘가의 문학은 사상의 지평이었고, 또 누군가의 문학은 읽는 이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어야 할 책무를 졌다. 그 모든 것을 두고 묻고자 한다. 현실이 상상을 불가하게 한다면, 현실이 발을 떼고 나아가기를, 드러내기를, 균열-하기를 거부한다면, 아니, 부인한다면. 이 이야기들은 무엇을 선언하는가. 금을 내고 추악하고 피흘리는 '것'을 까발리는가.<br/><br/> p.90 〈박민경, 별개의 문제〉 진심이 된다는 건 멈추지 못한다는 뜻이니까.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하는 딱 그만큼 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갈 수밖에 없는 게 진심이니까. 그건 스스로를 매일 시험대에 올리는 일이자 밤잠을 설치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br/><br/> p.166 〈함윤이, 굴은 구르지 않는 돌〉 "어떤 때 애인은 나한테, 아니, 나를 통해서 뭔가에 항의하려는 것 같았어요. 가끔 그가 큰 소리로 말하길, '그쪽' 남자들이 '이쪽' 여자들을 때리고, 욕보이고, 아무렇지 않은 체 살아가고 있어. 그러면서 내 몸을 마구 주물렀어요. 내가 아파, 아파, 소리치고 내 살이 빨갛거나 파랗게 변할 때까지요. 그런 뒤에 애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어요."<br/><br/><br/> 감히 평하고자 한다. 이것은 경계의 이야기다. 침범하고 틈입하며 범람하는 변경, 언제나 우리-아님인 동시에 우리-안의 위험을 상기하. 가장 찬란한 진창, 무저갱의 끝이다. 앞이고, 과거이며, 순간마다 도래하는 미래이다. 가장 마지막의 가능성이고, 허리째 잘려나간 이름이다. 자격 없는 이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시도이다. 여전히 미약하고, 더없이 취약하다.<br/><br/> 이 진부한 패배의 또다른 이름은 지금의 세계, 있는 그대로의 자리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세계에 상처입고 비틀리는 이들의 면면, 일 것이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뻔뻔하고, 치졸하고, 가만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취약한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그 교차점들에서 상처를 읽었다. 차마 말이 되지 못한 것, 비로소 그 이름을 부르게 될 때, 문학의 길은 어디로 흐르고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두려워하며, 혹은, 조용히 떠는 채.<br/><br/> p.68  〈김채원, 태양에서 멀리〉 그러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농담 중에 한 개씩, 두 개를 골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가까이서, 그 다음에는 멀리서. 그것들은 솔지 말고는 아무도 웃지 않는 농담이었다. 솔지 말고는 아무도 듣고 웃지 않는, 그러나 때때로 빛을 발하는 솔지만의 불행.<br/><br/> p.181 〈함윤이, 굴은 구르지 않는 돌〉 빛이 가까워질수록 숨이 가빠졌다. 눈을 들면 절반쯤 설치된 조명등 빛이 여자들을 비추고 있었다. 움켜쥔 피부처럼 붉거나 푸른 빛에 잠긴 얼굴들, 그녀들은 돌들 틈에서 만들어진 양 보였다. 또는 그저 돌 자체로, 굴속에서 오랜 시간 흘러내리고 솟아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br/><br/><br/>#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변신이야기]]></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26/82/cover150/k49213120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4268214</link></image></item><item><author>뫕</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짐승아, 인간이 되어라. 태어나지도 자라지도 못한 채 맴도는 슬픈 짐승이 되리라. - [다윈 영의 악의 기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568857</link><pubDate>Tue, 13 Oct 2026 00: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5688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4471&TPaperId=175688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274/91/coveroff/89582844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4471&TPaperId=175688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다윈 영의 악의 기원</a><br/>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09월<br/></td></tr></table><br/>*서평도서제공: 사계절출판사<br/><br/> 태초에 뭍으로 기어오른 짐승이 있었다. 이윽고 그것은 땅을 밀어 서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기 시작했다. 따스한 피가 도는 살갗을 맞대고 겁에 질린 밤을 보냈다. 어느샌가 그들 중 누군가가 두 발로 일어서 얼굴을 마주했다. 시선을 숨기지 않는 눈과 매달리지 않고도 능히 오르는 다리, 무른 살갗과 움켜쥐는 손은 다가서고 끌어안으며 심장을 맞대는 존재를 가능케 했다.<br/><br/> 우우, 울음이 아닌 '말'을 속삭이기 시작한 순간, 인간은 기만하고 찬양하고 몰두하는 짐승이 되었다. 그렇게 우와 열을 넘어 새로운 선이 그어졌다. 초월이라는 선이. 뛰어넘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그 재목이 정해져있다는 믿음으로 패이고 쌓아올려진, 차원. 어느 작가가 말했듯, 피에 젖은 3키로짜리 스펀지. 무리 안의 짐승, 무리를 만드는 짐승, 무리 위에 서는, 우월한, 짐승. 이 짐승은 입을 열어 말했다. "나".<br/><br/> p.404 루미는 갑자기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 그런 이탈이 불안하기 보다는 오히려 다른 차원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은 특별한 감상을 주었다. 경계를 뛰어넘은 초월자가 된 것처럼.<br/><br/> p.832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대는 굴욕적인 모습을 한대도 비웃음을 살 일은 없었다. 앞에서 미약한 빛이 느껴졌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터널이 끝나 가려 하고 있었다. (…) 그런데 그 때 맞은편 검은 차창 위로 한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무릎을 꿇지도, 두 손을 비비지도 않는… 똑바로 선 인간.<br/><br/><br/> 인간이 너와 나를 구분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이는 시원에서 갈라지는 고통을 내포한 생태에 기인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끔찍한 단절, 절대적인 공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둘 뿐이다. '태어남' 이전에서 벗어나지 않기, 혹은 모든 것을 '자기'로 끌어들여 하나가 되기. <br/><br/> 전자는 절대적인 신뢰와 순수로 불변의 안락함을 얻을 수 있고, 후자는 수없이 맞닥뜨리는 '다름'을 매끄럽게 묵살하는 포식이다. 이 둘은 일견 다양한 형태와 언어로 드러나면서도 변화를 거부하고 절대적인 신뢰에 순응하려는, 그렇게 책임과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며 반복되었다. 질서, 권력, 창조, 안정, 진화, 문명, 순수, 정화, 나.<br/><br/> p.213 세상을 바꾸는 일? 루미야, 그건 어린아이들이 꾸는 하룻밤의 몽상일 뿐이란다. 갖고 놀던 장난감이 지루해 발로 부수어서 재조립하는 것과 비슷하지. 아이들은 잠깐씩 그래도 돼. 어차피 금방 꿈에서 깰 테니. 하지만 나이를 먹고도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 이 있다면, 주의하고 경계해야 한단다. 이 완벽한 세상을 바꾸려 한다면 그건 용서할 수 없는 반란이고 폭동이…<br/><br/> p.322 다윈은 자신을 둘러싸고 흐르는 기류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교복에 얼마나 선망의 눈길을 보내는지, 자신의 존재에서 얼마나 깊은 열등감을 느끼는지 조금도 인식하지 못했다. 저렇게 많은 걸 가진 인간이 어떻게 자기 스스로에게 저렇게까지 무감각할 수 있을까.<br/><br/><br/> 이 작품의 전개가 퍽 분명함에도 읽는 이를 거듭 혼란에 빠트리는 것은, 어쩌면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와 독자가 꼭 닮아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800여쪽의 이야기가 정결과 부정, 흑과 백, 순수와 혼란, 인간과 짐승을 가르고 접붙이기를 반복하는 동안 독자는 판단하고, 한 편에 서며, 가려내다 결국 한 지점에 갇혀 헤매지 않을 수 없다. 그를 이렇게 부르고, 아니, 시뻘건 오물처럼 퍼붓고 싶다. 오만, 오만, 오만!  <br/><br/> 과거를 말끔히 지워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오만. 죄와 벌, 선과 순수가 매끄럽게 나뉜다는 착각, 그를 완벽하게 판가름힐 수 있다는 오만. 태생부터 무결한 '시조'가 될 수 있다는 오만. 결코 뒤바뀔 수 없는 우열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오만. 순수한 빛이 투명한 유리같은 존재를 곧게 뚫고 환히 비추리라는 오만. 완벽이 존재한다는, 혹은, 완벽 너머의 초월에 순종하고 나아가 그 자신이 되리라는 오만. 나와 타자를 완벽히 규정할 수 있다는, 오만.<br/><br/> p.153 "그게 정말 잘못이었는지, 아니면 상위 지구만을 제외한 모두의 바람이었는지를 따져 봐야 했는데, 애석하게도 그럴 기회조차 갖지 못했지. 처벌의 순간이 오자 모두 뒤로 물러나서 9지구를 지목했으니까. 결국엔 보기 좋게 9지구만 죄의 땅이 돼 버렸지." 루미가 남자를 신경 쓰는 듯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 관용이라고 하잖아요. 주도 인물들이 아닌 이상 국가 발전을 위해 용서하고 다시 기회를 주는…"<br/><br/> p.445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단다. 애초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으니까. (…) 넌 그들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했지만, 악마적인 면은 결코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야. 아무리 똑같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어도 그런 사고 체계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구나."<br/><br/><br/> 이 오만의 연대기는 멈출 곳을 찾지 못한 채 질주한다. 역설적으로, 그 모든 과정은 '성장'을 표방하는 동시에 그것을 대가로 치른다. 무비판적인 순진은 무비판적인 신뢰에 기인한다. 그것은 그 대상을 옮겨가거나, 복제하고 이식할 뿐 '다름'의 존재를 부인한다. '나'의 '바깥'을 부인함으로서 변화, 이동, 변/태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한다. 순수로의 질주는 원형의, 시원적인 순진을 필요로 한다. 이 얼마나 정결하고 매끄러운 퇴보란 말인가.<br/><br/> 그리하여 이 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아버지의 아들에서 한 명의 인간으로 거듭나는 성장기이자 핏줄로 이어져온 칼자루를 거머쥐는 결단이나, 그 아래에는 진화에 대한 통념 향한 지독한 조소라 할 수 있겠다. 어린양에서 두발로 선 존재로, 무리 없이 살 수 없는 짐승에서 "무릎을 꿇지도, 두 손을 비비지도 않는… 똑바로 선 인간"으로 진일보한다는, 완벽을 향한 직진이라는 순진한 믿음. 그렇게 무결의 존재, 바깥을 잃고 무리 위에 서는 우월한 짐승은 입을 열어 말한다. 나, 오직 나.<br/><br/> p.179 "하지만 애초에 더 나은 세계가 되느냐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 바퀴가 다시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거. 나쁘게 변한 세계보다 사람들을 더 무기력하게 만드는 건 사슬에 묶여서 꼼짝하지 않는 바퀴니까. 아무것도 변하는 것 없이 모든 게 제자리에만 멈춰 있다면 인간은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 <br/><br/> p.470 그러나 웃고 있는 제이의 사진이 놓인 제단에 다윈을 안고 선 순간, 나는 왜 내가 다원을 제이 앞으로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는지 깨달았다. 다윈은 한 마리의 양이었다. 내가 저지른 죄를 속죄하기 위해 제물로 바치는 양.]]></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274/91/cover150/89582844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2749186</link></image></item><item><author>뫕</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WWYD? or What would I and we do? - [왜 나는 항상 옳고 너는 그른가 - 갈등, 변절, 내로남불의 시대를 이해하는 도덕심리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562932</link><pubDate>Fri, 09 Oct 2026 18: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56293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1587&TPaperId=175629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16/0/coveroff/k5921315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1587&TPaperId=1756293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왜 나는 항상 옳고 너는 그른가 - 갈등, 변절, 내로남불의 시대를 이해하는 도덕심리학</a><br/>오둔 달 지음, 배동근 옮김 / 북트리거 / 2026년 09월<br/></td></tr></table><br/>*서평도서제공: 북트리거<br/><br/> 인간이 '짐승과 인간'을 구분하게 되면서, 인간이 '금수만도 못한 처지'로 전락해 뒤엉키는 꼴을 보며, 배반과 대립과 회유의 경험, 정치적 갈등과 수사의 고도화로 인헤 그 필요성을 절감함에 따라, 소위 '도덕성'이라는 것을 규명하려는 시도는 끝없이 이어져왔다. <br/><br/> 무엇이 '선과 악'인지, 도덕이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고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최소한 합의된 정의에 이를만큼의 규명이 가능할런지, 어디서 날아든 것인지 아니면 인간 본성에 기본으로 탑재된 것인지,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인지 없던 게 생겨나는 일인지, 수도 없이 묻고 공방해온 역사가 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전방위적 물음 또한 켜켜이 쌓여 지금에 이르렀다.<br/><br/> p.37 도덕성을 정의 내린다고 어떤 도덕적• 경험적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 도덕성을 정의 내린다고 해서 무엇이 옳거나 그른지 혹은 좋거나 나쁜지, 또는 사람들이 무엇을 옳고 그름, 좋고 나쁨으로 판단하는지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그 정의는 우리가 도덕성과 도덕적 변화를 연구할 때 기준을 잡아 줄 뿐이다.<br/><br/> p.55 변덕은 우리가 도덕성에 기대하는 일관성을 위배한다. 도덕에 일관성을 기대하는 까닭은 그것이 보편적이고 가역적이며 편파적이지 않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황금률과 정언명령의 척도이다. 우리의 도덕관은 그것이 우리에게 유리한지 혹은 불리한지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저질렀든, 당신이 나에게 저질렀든 혹은 p가 r에게 그랬든 잘못은 잘못이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변덕스러운 도덕 감각을 마주할 때 느끼는 실망은 결국 일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br/><br/><br/> 왜 나는 융통성 있으면서도 일관적이나 너는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고 자명한 선을 무시하는가? 왜 나는 합리적인 근거에 따라 '옳음'을 지향하나 너의 그것은 변덕과 맹신에 기반하는가? 왜 '그 때 그 사람들'은 이토록 자명한 선을 두고 불보듯 뻔한 악에 동조하고, 매달렸는가? 인간의 본성에 '선'이, 이타심과 공존을 가능케하는 어떤 부분이 내재되어 있는가? 아니면 정말 '악하게' 태어나 '선'을 학습하며 자라나는가?<br/><br/> 그렇다면, 똑같이 배우고 자란 '그들'에겐 대체 무슨 문제가 있길래 저 모양이란 말인가? 여전히 도덕성이 인간의 생존을 담보하지는 못해도 강력한 지지력 중 하나임을 말할 수 있는가?  쉽게 풀기 어려운 문제다. 나부터도 '선'이라는 개념 자체와 성질로서의 '선함', 암묵적이거나 성문화된 '사회 규칙'과 '도덕'과 '도덕성'을 마구 섞어 쓰고 있으니 그 용어와 각각의 영역의 분리부터 모호한데다 스스로를 '옳다'고 생각하는 각자가 상대를 악마화하고, 혹은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는 마당에 제삼자적 분석이 용이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br/><br/> p.80 한 가지 질문은 두 사람이 어떤 행동이 해롭고 도덕을 위반하는지 아닌지를 놓고 의견 차이를 보이는가이다. 틀림없이 어떤 이에게는 해로워 보였던 행동이 또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아 보일 수 있다. (…) 도덕심리학 논의를 할 때, 결정적인 질문은 어떤 행위가 진실로 해롭냐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것이 해로울 가능성이 있다고 인식하느냐이다.<br/><br/> p.207 도덕심리학이 던지는 질문은 왜 교육자, 연구자, 학생들이 특정 상황에서 부정행위나 권위에 대한 복종 문제를 놓고 의견이 달라지는가 하는 점이다. 실험을 통해 입증해야 할 질문은 도덕적 판단이 행동을 이끄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끄는가이다. (…)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지만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런 힘이 없다면 인간의 도덕성은 무력해질 것이며, 우리는 그런 존재를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인간이라고 여기기 어려울 것이다.<br/><br/><br/> 이 난감한 영역에 발들이는 학문이 바로 도덕심리학이다. 저자는 무엇이 옳은지, 왜 옳게 '되는지'가 아닌 사람들이 무엇을 기준으로 도덕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혹은 '느끼는'지를 연구와 현실의 사례를 통해 도덕심리학의 관점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아울러 종장에 나아가서는 이것이 연구 데이터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독자를 이 흥미로운 영역에 초대한다.<br/><br/> 지금 이 순간에도 상상을 뛰어넘는 폭력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언동이 버젓이 울려퍼지고 있다. 이에 혹자는 이해를 말하고 한편에서는 화합을 말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그조차도 찍어 눌러 말살하려 세를 불린다.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는 동안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한 생각은, 이런 현실을 두고 근원적인 해결책에 앞서 당장 뭘 할 수 있는지를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 그대로의 '현실'일 것이다.<br/><br/> p.251 미디어, 대화, 또는 교육을 통해 받아들인 세상이 어떠한지에 대한 서로 다른 믿음과, 그 믿음이 만들어 내는 서로 다른 판단의 연결 고리들은 두드러진 정치적 견해 차이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이런 차이는 어떤 사람들의 도덕적 관점이 변덕스럽다거나, 혹은 모든 사람이 이기주의, 편협한 지역주의, 비합리적인 충동 따위에 지배되는 변덕스러운 도덕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두 집단 사이의 이런 균열은 공정성에 대한 관심사와 각자 인식한 빈부 격차의 원인 사이에 서로 다른 연결 고리를 채택할 이유를 발견하면서 초래된다.<br/><br/> p.286 상황에 따른 도덕적 변화는 어떤 사람이 같은 행동을 상황에 따라 도덕적으로 옳다고 판단하기도 하고 그르다고 판단하기도 하는 이유를 물을 때 우리가 다루게 되는 문제다. 상황적 변화는 발달적 변화가 선행되어야만 가능하다. (…) 다행히도 아이들은 진공 상태에서 태어나고 자라지는 않는다. 개개인의 평생에 걸친 도덕적 변화는 이미 변화를 겪었고 여전히 겪고 있는 공동체와 문화 속에 깃들어 있다. 어디에나 숨어 있다.<br/><br/><br/><br/> 미래 혹은 어딘가의 '당사자들'에게 나 또한 분명 타협과 변덕을 일삼고 악에 동조한 '그름' 중 하나이다. '현장' 밖의 소시민 중 하나이고, 내가 경험하는 현실은 화면 너머의 언설과 이따금의 시위, 일상적인 진저리에 불과하다. 마침표로 질주하지 않고 물음표와 쉼표를 나누는 사회란 정말 가능한 일일까.<br/><br/> 좌절 대신 저자와 함께 다시금 믿어보려 한다. 모른다, 우리는, 타인의 세계와 미래를. 그러니 더 생각해볼 수 있다고, 이해와 대화를, 지지와 변화를 꿈꿔볼 여지가 남아있다고 믿을 수 있다고, 그렇게 말이다. 책에서 거듭 말해지듯 우리는 변덕스럽지만 그렇지 않다, 라는 말처럼.<br/><br/> p.361 도덕심리학을 정확하게 적용한다는 것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인이 실제로 품고 있는 도덕적 관심사들, 연결, 조정과 변화의 근거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br/><br/> p.362 이면에 숨겨진 도덕심리학을 알게 되면 우리의 판단은 더 온건해질까? 때로는 그렇다가도 때로는 더 가혹해지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배우게 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오직 바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의 사례를 판단받을 시간이 왔을 때, 우리의 심판자들이 자신들의 도덕심리학적 성찰의 순간을 충분히 오래 이어 가며 우리가 택한 변화의 이유들이 그들과 어떻게 달랐는지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16/0/cover150/k5921315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160059</link></image></item><item><author>뫕</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We are what we lose… +a - [잃기일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529835</link><pubDate>Mon, 21 Sep 2026 22: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5298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131774&TPaperId=175298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73/78/coveroff/k5121317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131774&TPaperId=175298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잃기일지</a><br/>이선진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09월<br/></td></tr></table><br/>#은행잎4기 #은행잎서재 #이선진 #잃기일지 #시리즈n<br/><br/>*서평도서제공: 은행나무<br/><br/> 언제부터였을까. 아니, 언제일지 중요할 리가 없다. 똑, 떼내어 샅샅이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싹 뜯어내 납작 펴박아놓고 보니 견딜만한 듯도 싶었다. 그렇게 '나'를 뛰쳐나가 '진진주'가 된 이 사람의 마음을 구하시오. 구해주시오…<br/><br/>진진주는 진진주를 바라본다. 진진주는 진진주를 생각한다. '내'가 없으니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없다. 진진주의 세계는 진진주의 사전 발치를 배회한다. 진진주는 가진 적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 그렇게 '나'는 진진주의 이 빤빤한 세계를 가볍게 찌그러트리는 존재가 있으니, 다섯살 조카 되시겠다.<br/><br/> p.21 진진주는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무한궤도에 갇혀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적을 알아야 나를 알 수 있다는 말을 현 상황에 적용해보자면, 진진주가 속속들이 알아야 할 적은 무한궤도였다. 그건 진진주의 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진주가 스스로의 아군이라는 뜻은 아니었다.<br/><br/> p.39 이렇듯 세상이 저 맘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마다 진진주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내가 아니라 진진주다. 내가 아니라 진진주다, 나는! 그리하여 이 글의 어떤 문장도 '나는'으로 시작될 수 없는 거였다. 세상은 언제나 요지경, 내 맘대로 돌아가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쉽지 단 한 번도 내 맘대로 뒤집어지지 않았으니까.<br/><br/><br/> 진진주씨의 애매하게 구차한 세계를 감싸는 방벽은 애매하게 단단한 방벽이고, 이는 애매한 사전 어드메를 유령처럼 맴돌고 있다.  진진주는 아프다. '내'가 아니라 시간이 아프고, 빗금치고 지워진 자리 아래 파묻어둔 말을 이따금 떠올린다. 진진주는 무너지지 않는다. 만취 상태로 진상을 좀, 많이, 부리긴 하지만. 진진주는 애매하게 해냈으므로. 뭐든간에. 모르긴 몰라도. 아무튼.<br/><br/> 이야기는 내도록 소란하다. 구질구질하고 뒤죽박죽-한다. 그 익살 너머에 어떤 얼굴이 있을까. 고개를 쪽 빼고 들여다보았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을 보았다. 너 뭐야, 말끝이 발끝에 가 붙은 물음에 나, 나, 나, 하고 더듬는 듯, 춤추는 듯 흔들리는 답이 돌아왔다. 바라보았다, 빤히, 알 수 없는 얼굴로. 그제서야 깨달았다. 얼굴인 줄 알았던 '면'이 '말'이었음을. 몇 겹이고 중첩되어 울려오는, 낯설지 않은.<br/><br/> p.109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은 곧 내가 생각하는 것이자 내가 느끼는 것이자 내가 읽는 것이자 내가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것들의 총합이거나 총합보다 훨씬 더 큰 무엇이었다. 다만 나는 나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읽고,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 건지 좀처럼 알지 못했다.<br/><br/> p.122 내가 내 이름을 입에 담던 그 순간, 나는 오래전 나도 모르는 사이 출발한 어떤 단어가 비로소 내게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이윽고 공복처럼 텅 비어 있음에도 아스라이 반짝이는 허공의 귀퉁이에 이렇게 썼다. I am what I love.<br/><br/><br/> '진진주'가 그 혼란스럽고 정신사나운 시간 바깥으로 걸어나올 때까지 누가 기다려주었느냐 묻고 싶었다. 낯선 균열 앞에 설 수 있게, 누가 당신 곁에 소음이 아닌 이름으로 머물렀느냐고. 부르고, 열고, 땀에 젖은 얼굴로 마주하라. 이는 밖으로 나오라고, 나가지 말고 나와, 나와 함께-이자는 요청이다. 기꺼이 혼란-하고 흔들리자는 초대다.<br/><br/> 진진주의 사전에는 사랑이 없었다. 사랑이 있기 전까지는. 사랑을 잃기 전까지는. 잃은 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잃음'의 흔적 '나'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게 하므로. 균열하고, 흔들리고, 나날이 구질구질한 나날에, 삼킨 말들의 사전에, 새카만 덧칠에 되비치는 얼굴에, '진진주'를 나서는 '나'에게 말하고 싶다. 진진주 아닌 '내'가 찾아낼 말을. We are what we lose.<br/><br/> p.196 "얼른 밖으로 나와." 먼저 문밖 복도로 나선 펄이 나를 부르는 소리. 아니, 어쩌면 펄이 아니라, 시간이 나를 부르는 소리. … 그렇다면 그때 나는 어느 쪽으로 나가야 했을까? 시간 밖으로 나가야 했을까? 내 밖으로 나가야 했을까? 아님 내 안의 시간 밖으로 나가야 했을까?<br/><br/> p.222 이윽고 우리를 향해 걸어오던 두 사람이 순간적으로 우리와 나란해졌을 때, 이제껏 내 사전에 없던 눈 한 송이가 비로소 내 침묵 위에 내려앉았을 때, 이석기가 춥고 휑한 제 손목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괜찮으니까 천천히 해요. 아직 시간 많아요."]]></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73/78/cover150/k5121317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737881</link></image></item><item><author>뫕</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문을 두드리며, 죽지도 않고, 수없이 죽임당하며. - [비상구는 왼쪽에 - 『자본』의 세계사와 마르크스 없는 한국사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529749</link><pubDate>Mon, 21 Sep 2026 22: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5297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131366&TPaperId=175297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39/69/coveroff/k4421313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131366&TPaperId=175297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상구는 왼쪽에 - 『자본』의 세계사와 마르크스 없는 한국사회</a><br/>강신준 지음 / 사계절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리뷰는 사계절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br/><br/> 마르크스는 죽었다! 하나의 유령이 요참난 한반도를 떠돌던 때, 한참 전부터. 이후에도. 지금까지도. 죽었다. 죽고 있다. 침묵당한다. 그 죽음은 언제나 과거의 유산이었고, 현재의 공포였으며, 도래할 환상이었다. 너나할 것 없이 우경화 사회를 말하는 시대다. 청년도, 중장년도, 매스컴도, 일터도. '극우'라는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는 한편 낙인이라 말한다. 우려와 분노와 절망과 염세가 뒤엉켜 구른다.<br/><br/> 그럼에도, 의문한 적 없는가? 역사의 승리며 '인간 본성'까지 끌어붙인 자본주의를 위시한 사회는 왜 아직까지 고통스러운가? 어째서 실패와 붕괴로 누더기 땜질하듯 이어가야 하는가? 공산주의라는 '타락'은 무슨 이유로 상상의 여지 없이 부정되고, 영원한 위협이자 필연히 패망한 과거이기를 끝없이 요구받는가? 미래는 자본주의, 더해진 자본주의, 완전한 자본주의와 함께 침몰해야 할 운명인가? 아무도 이 '밖'에 살아갈 수 없을까?<br/><br/> p.77 자본주의의 교환은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않은 사람, 노동하는 사람과 노동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 이들의 관계는 교환이라는 구조에서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방적입니다.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않은 사람, 노동하는 사람과 노동하지 않는 사람, 판매만 하는 사람과 구매만 하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대립적이고 배타적이며 적대적입니다. 노동빈곤은 이 구조가 만들어낸 것입니다.<br/><br/> p.108 공동소유를 강화하려면 관계가 평등해야 합니다. (...)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까요? 노동하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먹고살 수 없게 됩니다. 먹고사는 일에 필요한 부, 즉 노동시간을 얻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이제는 자신이 직접 노동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노동하지 않는 사람은 사라지고 노동하는 사람만 남습니다. 모든 사람이 노동을 '하는' 관계로 바뀝니다.<br/><br/><br/> 한국은 물리적 기반이 얕은 국가다. 사람에 의존하여, 아니, 인간 '자원'을 쥐어짜가며 연명해온 역사다. 바닥까지 싹 털려먹힌 식민지배에 짧고 혼란한 해방 정국, 전쟁과 파산까지 줄지어 겪었으니 사람도 사회도 단위가 짧고 규모가 작다. 우당탕과 엎치락뒤치락의 대명사가 아닐 수 없다. 대다수가 노동자인데도 노동운동과 노동자 혐오가 극에 달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상 몹시 자연스러운 동시에 순전한 인위의 결과다. 다름을 상상할 수 없이 파멸과 공포 사이에 갇혀 진동한다. 와해되어 간신히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br/><br/> 저자는 작금의 '극우 득세'에 짧고 굵은 지적을 던진다. 마르크스가 없는 사회에서 자본주의는 폭주하고 사회는 길과 목표를 모두 잃었다고. 그 결과 이 지경이, 와해와 갈등으로 점철된 지경이 됐다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 정말로 와버렸고 여전히 변혁의 움직임이 꿈틀댄다. 선택하라. 일어서라. 노이로제와 무한동력처럼 끌어다 쓴 '마르크스 죽이기' 너머에 문이 있다. 비상구는 왼쪽에 있고 우리는 너무 오래 막다른 길에 매달려왔다. 갈 길이,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br/><br/> p.187 한국 자본주의는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수출 대자본과 억압적으로 수탈당하는 저임금 노동이 결합한 기형적 케인스주의로 편성되었습니다. (…) 한국의 케인스주의는 부족한 부분을 모두 수출로 메우는 방식으로 작동했습니다. 이 구조에서 자본주의의 야만적 속성을 비판하는 마르크스는 눈엣가시가 됩니다. 매판 세력이 만들어놓은 마르크스 없는 사회가 계속 유지되어야 하니까요.<br/><br/> p.221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사회제도는 개인이 사망한 다음에도 이어집니다. 그 사람의 후손들이 거기에서 계속 살아갑니다. 그래서 제도를 변혁하려면 그 제도를 변혁할 사람이 계속 필요합니다. 야만에 갇힌 한국사회가 문명으로 탈출할 방법은 하나입니다. 마르크스의 유산을 수용하는 것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39/69/cover150/k4421313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396903</link></image></item><item><author>뫕</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우리, 이 유일한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함께가 아니라면 모두가 죽는다. - [닭뼈와 플라스틱 - 범람의 시대에 사라지지 않는 것]</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506320</link><pubDate>Thu, 10 Sep 2026 00: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5063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130743&TPaperId=175063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9/52/coveroff/k5621307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130743&TPaperId=175063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닭뼈와 플라스틱 - 범람의 시대에 사라지지 않는 것</a><br/>남종영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08월<br/></td></tr></table><br/>*서평도서제공: 북트리거<br/><br/> 심심찮게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번쯤은 우스개 반, 자포자기 반으로 내뱉은 적도 있을 것이다. 인류 멸종이 진정한 친환경이다. 인구 과잉 시대다, 인간 개체를 줄여야 한다. 동시에 동시에 지금의 일상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해외여행, 때마다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 시장에 나오기도 전에 재고로 처박혀 쓰레기장으로 직행하는 옷이며 '소품'들. 경계를 넘는 사람과 물건, '자본', 대란템, 쟁여템.<br/><br/> '기후위기' 논쟁에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 되고도 남은 지금, 위기는 재앙이 되었고, 절멸로의 직통열차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도 몇 남지 않았다. 혹자는 말한다. 기술 개발을 열심히 해서 대응하면 되지 않을까? 또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우리 모두가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니 이 꼴이 났다고, 불편한 삶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고.<br/><br/> p.6 우리는 '범람'과 '은폐'의 시대를 산다. 그 어느 시대보다 치킨을 많이 먹지만, 정작 살아 있는 닭은 보이지 않고, 그 역사도 기억하지 않는다. 가장 값싸게 소비되어 변덕과 싫증으로 버림받은 플라스틱은 땅에 묻히고 잘게 쪼개져 바다에 은폐된다. 지구는 닭뼈와 플라스틱이 범람하는 행성이 되었다. 인류 활동은 지구의 물리, 화학, 생물학 시스템을 교란하여, 지금 지구는 1만 1만 1,700년 전부터 지속된 지질시대 '홀로세'의 평형에서 이탈해 새로운 지질시대를 맞고 있다. 인간이 창조한 지질시대, 인류세다.<br/><br/> p.43 지구를 착취하며 이득을 취한 이들은 인류세라는 용어를 통해 과거를 지우고 기술에 기댄 '새로운 시작'을 강조하려 한다. 반면, 선진국과 거대 자본의 욕심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인류세가 이들의 과거 책임을 망각하게 하는 '탈도덕적인 효과'가 있다면서, 지배 계층에 강력하게 경고하는 개념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 "그렇다면, 이 파괴적인 시대는 정확히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가?"<br/><br/><br/> 고귀한 야만의 신화에서 알 수 있듯 인간의 환경파괴와 그로 인한 전지구적 붕괴는 현대인이 '자연 생태계'에서 쏙 빠져나와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라 현대의 전세계적 경제와 착취 네트워크가 인간이 감당 가능한 선을 아득히 초월해버렸다는 데에 있다. 싸고 빠르게 찍어내고 재빨리 치우고 묻어버린다. 애써 찾아낸 해결책을 외면하고 시시각각 밀려들어오는 위협을 임시방편으로 틀어막는다. 자본이 눈앞의 멸망을 막아주리라, 자본자본, 주문을 외치며.<br/><br/> 그러므로 뭘 해보기도 전에, 이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문제라고? 작금의 현실은 모두의 책임이라고? 누가 '우리'인가? 내 집 쓰레기를 돈 주고 떠맡긴 집에서 냄새가 난다고 떠맡은 쪽에도 공동책임을 요구할 것인가? 모두의 책임은 역설적으로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게 된다. 본문에서 거듭 등장하는 '인류세'에 대한 비판의 일면에는 이런 지적이 있을 것이다. 모두의 책임인 동시에 모두가 같은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br/><br/> p.61 자연만이 아니다. 에너지, 노동, 식량, 돌봄, 돈, 생명 등 일곱 가지가 '저렴해지는' 매커니즘이 자본세에 있다. (...) 플랜테이션 사업을 확장시킨 신용과 부채 매커니즘 속에서 돈도 흔해졌다. 무한히 팽창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화폐도 싸구려다. 생명도 싸구려가 됐다. (...) 무어는 저렴함이라는 무기가 플랜테이션, 나아가 자본주의가 확장하는 전략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인간과 동식물은 물론, 지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가능한 적은 비용으로 동원하고 있다.<br/><br/> p.218 인간의 번영은 지구의 번영에 의존한다. 행성적 경계를 침범해 지구 시스템이 망가지면, 인간은 아무리 경제가 성장해도 행복할 수 없다. 반대로 사회적 기초를 충족 못 하는 삶도 불행하긴 마찬가지다. (...) 자원을 개발하고 재화를 생산하지만, 생태적 한계는 넘지 않아야 하고,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기초를 충족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개발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br/><br/><br/> 직면해야 한다. 돌아갈 낙원은 애시당초 존재한 적 없었고 '전환점'은 지나친 지 오래라는 것을. '우리 인간'은 단 한 순간도 무구한 적 없었다는 것을. 그 앞에서 불편과 불행은 달콤한 환상처럼 달성 과제 따위가 아니다. 누가 누구에게 죄를 빌고 용서만 받으면 마법처럼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유일한 세계를 죄 파먹다 이 지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총력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br/><br/> 저자의 말처럼 "다섯 번째 멸종의 최대 수혜자"였던 인류는 "지금은 대멸종 사태 최대의 가해자가 되었다(133)". 유례없는 이 재앙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함께 살지 않으면 몽땅 끝장이라는 현실 앞에서 '정해진 답'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쉽지 않을 일이다. 그러나 오직 그뿐이다. 창백한 푸른 점에 살아가는 찰나의 생물. 어렵고 낯설어질 수밖에. 우리가 정말 '우리'이기 위하여.<br/><br/> p.273 어떻게 하면 '인류'를 경험할 수 있을까? 사물의 의회를 통해 비인간과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될 때, '나'는 비로소 '인간이라는 종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류로서 나는 어떻게 지구에 대해 책임지고, 기여할 것인지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인류'는 허공에 뜬 개념에서 벗어나, 비로소 발 디딘 현실의 땅 위로 착륙한다.<br/><br/> p.284 탄소 배출량 장부의 숫자를 '0'으로 맞추더라도, 누군가의 희생을 쥐어짜는 삶이 계속된다면, 그곳은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것은 단순한 탄소의 균형을 넘어, 이 행성에 동승한 가난한 사람들과 뭇 생명들과 맺는 '관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9/52/cover150/k5621307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395200</link></image></item><item><author>뫕</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네가 나를 괴물이라 불렀을 때, 나는 너에게 *** **** **이 되었다 - [셸리 숍앤센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477655</link><pubDate>Fri, 28 Aug 2026 19: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47765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130846&TPaperId=174776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6/77/coveroff/k7121308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130846&TPaperId=1747765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셸리 숍앤센터</a><br/>설재인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08월<br/></td></tr></table><br/>모름지기 사람이 할 말이 있거든 분명하게 하며 주장할 바가 있다면 눈치에 휘둘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 또한 미덕이고 자질이라고 오래 주장해왔다. 정론이야 어떻든지 간에. 그런 이유로 시작부터 영 걱정스러웠다. 이 양반 작품을 한두 편 읽은 게 아닌데 과연 그간의 태도와 한계선을 뒤엎고 '바디 호러'의 본령인 피와 살점, 사방으로 흘러나오는 체액에 몰두할 수 있을지. 그렇게 탈규범과 이질성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을지.<br/><br/> 결과적으로 기대 밖이라면 밖이나 퍽 실망스럽지 않은 형태의 밖이다. 그래. 버릴 수 없다면 휘두르는 것도 방법이다.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다면 답이 나올 때까지 부수고 뒤엎어 끄집어내는 것 또한 방법이다. 굳이 따지자면 인간의 본질이란 바이오동력 오물통 내지는 비용 많이 드는 온열가죽주머니 정도 아닌가.<br/><br/> p.18 어차피 대중의 미감은 주입된 대로 형성된다고 염 박사는 결론 내렸다. 만약 웨일홀에 널브러진 인체 기관들로 새 종족을 만들고서는, 아주 귀엽고 고급스러운 모습이라며 오랫동안 세뇌한다면 다음 세대쯤에는 그것들이 보편적인 반려동물이 되지 않을까?<br/><br/> p.235 그건 어쩔 수 없는 사고지, 누군가의 악의가 만들어낸 일이 아니니까. 허튼 짓, 모난 짓, 튀는 짓만 안 하면 편하게 평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대중은 그렇게 무엇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중인지 모르는 채로 편히 희희낙락했다.<br/><br/><br/> 권력은, 거칠게 말해, 규정하는 힘이다. 내가 누구인지, 상대가 무엇일지를 규정하는 힘이다. 말을 정하는 힘이다. 옳고 그름의 선이 본래부터 그어져있지 않으니, 선을 긋고 지우는 것 또한 권력을 쥔 자의 권한이자 생리이다. '그'의 언어로 '나'를 변호하는 데에는 불가항의 한계가 있다. 착한 노예는 인간이 아니다. 주는 밥을 신나게 처먹은 가축의 끝은 도살이다.<br/><br/> 누군가를 정말이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무치다 못해 죽기를 마다하지 않을 만큼 간절하게 매달리도록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비교다. 나와 같은, 나보다 더한 이가 차고 넘치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는 것을 코앞에서 나자빠지는 '동류'들로 증명해주는 것. 결코 나의 의지에 달려있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노력에 달렸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것.<br/><br/> p.10 센터의 프랑들은 세 평짜리 방에 두셋씩 살았다. 각각의 방은 흙바닥과 철창으로만 되어 있었고, 그래서 옆이나 저 너머의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다 볼 수 있었다. 봉사자가 자신의 방을 지나쳐 다른 프랑의 방으로 향할 때마다 프랑들은 눈을 있는 힘껏 크게 뜨고 두 손을 턱 밑에 댄 채 눈을 깜빡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br/><br/> p.162 "존재는 취급에서 나와. 우리가 취급받는 대로 우리는 존재해. 너도 나도 다 쓰고 태워버릴 것으로 취급받지. 그러니까… 우린 마치 플라스틱 같은 거야. 쓸 땐 신나게 사용해놓고 나중에는 악한 것이라며 손가락질하겠지."<br/><br/><br/> 작중 풍경이 꼭 그렇다. 이 얼마나 여상하고 평화로운지. 흉한 것은 처박아 치우고 사랑스러운 순간만 냅다 쭉 빨아먹고 버리면 그만이니. 없는 것들이야 없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못 산다고요? 그건 어쩔 수 없지. 실로 인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생겨먹었다. 이 세계는. 오래 전부터, 느리게 반복되며.<br/><br/>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작가는 '있는 힘껏 크게 뜬 눈과 턱 밑에 괸 손'으로 호소하는 대신 묻는다. 아랫도리며 배때지 싹 까놓고 보면 대체 무엇이 인간이냐고. 그는 아름다운, 오래된 순리를 박살낼 작정이다. 독자를 향해 선전포고한다. 끝장나게 으깨 부수고 아주 곤죽을 만들어서라도 과연 어디가 얼마나 다르게 생겨먹었을지, 지금부터 똑똑히 보여주겠다고. "머리가 왕왕 울리고 밑이 쑤시는(298)" 감각을 뇌리 깊숙이 때려박을 참이라고.<br/><br/> p.133 "네가 이 나라를 구할 수 있어. 세상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어.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을 솎아내기만 해도 충분해. 혹시 인간을 공경한다는 죄책감이 든다면 마음을 편히 먹으렴. 그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하니까, 괜찮아."<br/><br/> p.276 그래, 뭐, 아무래도 좋았다. 이왕 받은 거 실컷 써주리라 다짐했다. 이게 정의라고 애써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것은 생존이었다. 약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br/><br/><br/> 세상이 망한다고 울부짖는 자는 그 세상에서 안주하는 자 뿐이다. 얻어맞는 자는 안다. 나를 짓밟는 저것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 또한 나, 무수한 '나'들이라는 사실을. 큰 불은 불씨를 삼킨다. 화근이 세상을 불살라버리는 꼴을 보여주겠다. 읽는 이가 불길의 어느 편에 서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당신 말은 누구의 혀인가? 누가, 무엇이 '나'이겠는가?<br/><br/> 마지막에 도달한 독자는 분명 살자고, 살아야겠다고 외치는 이들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더럽혀진 얼굴로 시원하게 웃어버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불안하고 불온한 존재의 등을 있는 힘껏 밀어주고 싶어질 것이다. 물론 어디서 어떻게인지가 문제겠지만… <br/><br/> p.164 "씨발, 밑이 뜨겁다고! 좋다고! 살자고!" 노엘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어쩜 이렇게 똑같은 기분을 느끼는 걸까, 그게 우습고 신기해서였다. 비가 아무리 내려도 당겨진 불을 끌 수는 없을 듯했다.<br/><br/> p. 273 프랑이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인간들이 제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가련한 생명들이 어떻게 하면 탄생의 굴레를 벗고 자유로이 생존할 수 있는가? 서로를 구원하는 것이 방법이었다.<br/><br/><br/>*서평도서제공: 나무옆의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6/77/cover150/k7121308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567770</link></image></item><item><author>뫕</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노래하니, 들으소서. 한 남자의 이야기를. - [오뒷세이아 - 영원한 고전, 철저한 고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amp;lt;오디세이&amp;gt;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466146</link><pubDate>Sat, 22 Aug 2026 23: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4661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6462&TPaperId=174661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40/12/coveroff/893247646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6462&TPaperId=174661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뒷세이아 - 영원한 고전, 철저한 고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lt;오디세이&gt;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a><br/>호메로스 지음, 김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서평도서제공: 을유문화사<br/><br/> 최근의 영화화로 흥행작의 원작! 이라는 황당무계한 타이틀까지 달게 된 이 불멸의 고전을 보라.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떠도는 자들의 슬픔을 노래하게 한, 전율과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여전히 무엇이 남는지 묻고 또 묻게 한 바로 그 작품을, 감춰진 이름, 오래 고통받았으나 끝내 지워질 수 없었던 이름들을, 『오뒷세이아』를.<br/><br/> 『오뒷세이아』의 내용은 오랜 세월 변주되며 잘 알려져왔고, 수많은 영웅들과 괴물에 대해서도, 온갖 비유와 상징, 현실과 신화를 넘나드는 요소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하는, 나 같은 독자가 분명 수두룩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를테면 같은 표현이 어떻게 이 괴물과 저 용사에 같고 또 다르게 붙어지는가?<br/><br/> p.356  제10권 이렇게 말하자, 부서져 내렸소, 그들의 소중한 심장이, 떠올랐던 것이오, 라이스트뤼곤인 안티파테스가 한 짓이, 심장이 큰 퀴클롭스가 남자를 먹어 치우던 폭력이, 그들은 쟁쟁하게 울었소,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러나 어떤 일도 일어나진 않았소, 눈물 흘린다고.<br/><br/> p.357  제10권 밖으로 튀어나온 건 심장이 큰 에우뤼로코스의 제비였소. 걸어서 갔소, 그와 함께 스물 두 명의 동료가 울면서, 뒤에서 애곡하는 우리를 두고 그들은 떠났소. 발견했소, 골짜기에 깎아 다듬은 바윗돌로 지어진 키르케의 집을, 사방이 잘 보이는 곳에서.<br/><br/><br/> 뿐만 아니라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사람 간의, 혹은 신과 인간 사이의 의례에 초점을 맞춰 읽는다면 줄거리나 개별 신격을 중심으로 읽을 때와 어떻게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물을 만하다. 『일리아스』에서 보복과 전투, 장례, 감사제가 반복해 나타난다면 『오뒷세이아』의 경우에는 환대와 이방인-손님, 물리적/개념적 가정 구성의 안팎 그리고 속죄의식과 보속에 대해 반복해서, 점진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br/><br/> 그렇다면 죄의 형태나 속죄의례, 그에 필요한 고난과 해결에 대해서도? 설령 그 죄에 어떠한 의도나 자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부정' 의 '옮겨붙음'이 조선, 중국의 중앙집권형 군주제 국가에서의 연좌죄 개념의 그것과는 퍽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신'과 그의, 저주나 벌에 대한 인식, 속죄-정화를 위한 과업과 절차 등에서 나타나는 인물 간의 해원이나. 세계관을 어떻게 그려볼 수 있을까?<br/><br/> p.195 제4권 '너에겐 아직 운명이 아니네, 사랑하는 이들을 보는 것도 잘 지은 집과 그대의 조국 땅에 이르는 것도, 아이귑토스의, 곧 제우스로부터 떨어지는 그 강의 물로 다시 가서 신성한 헤카톰베를 바치기 전에는, 불사의 신들에게, 넓은 하늘을 차지하는 그분들께. 바로 그때 그 신들께서 허락하실 거네, 네가 갈망하는 여정을.'<br/><br/> p.349 제10권 나는 말했소, 심란한 심부로. '나를 해쳤소, 못된 동료들이, 그들에 더해 지독한 잠까지. 고쳐 주시오, 친구들, 그대들에겐 능력이 있잖소.' 이렇게 말했고, 부드러운 말로 호소하면서. 그들은 조용해졌소. 아버지는 이야기로 응답했소. '꺼지시요, 섬에서 빨리, 산 자들 가운데 가장 치욕스럽소! 내겐 법도가 아니오, 돌봐주는 것도, 보내 주는 것도 복된 신들에게 미움받은 그런 남자를 말이오. 꺼지시오, 불사신들에게 미움받았기에 이리로 온 것이니.'<br/><br/><br/> 유비에 관해서도 눈여겨 볼 만한 장면들이 많다. 구혼자들의 만행과 귀환한 오뒷세우스의 보복에서 반복되는 제물-포식과, 부자간의 해후에서 반전된 형태로 제시되어 그 비극성을 더하는 새끼 잃은 맹금의 비유라든지. 직접적으로 제시된 이미지 뿐만 아니라 이런 건 어떨까. 페넬로페와의 해후에서 보여지는 나무를 통째로 쓴 침대가 오뒷세우스의 귀환 가능성을 암시 혹은 담보하고 있었다든지.<br/><br/> 같은 수사를 사회적 신분이 다른 이들에게 부여하는 장면들 또한 재미를 더하는 요소 중 하나다. 돼지치기, 장군, 왕비 모두에게 고귀함과 탁월함이 있다. 그들 자신의 성품이 그러하다면. 고난을 이겨내 끝내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면 더더욱!<br/><br/> p.539 제16권 텔레마코스는 부둥켜안았다, 훌륭한 아버지를, 애탄했다, 눈물을 쏟으며. 그 둘 양쪽 모두에게 애곡의 욕망이 솟아 올랐다. 울었다, 쟁쟁하게, 맹금류들보다도 더 요란스럽게, 수염수리나 갈고리발톱의 독수리들보다도, 그놈들 새끼들을 사냥꾼들이 날지도 못하는데 잡아갔을 때보다도. 그렇게 그들은 눈썹 아래로 연민스러운 눈물을 떨구었다.<br/><br/> p.705 제22권  발견했다, 곧이어 오뒷세우스를 죽임당한 시체들 사이에서 피와 선혈로 얼룩진 그를, 마치 사자와 같았으니, 그놈은 들판에 있던 소를 잡아먹은 뒤 떠나가는데, 보라, 그놈의 가슴과 양쪽의 볼때기가 온통 피범벅이었으니, 무서웠다, 얼굴을 쳐다만 봐도. 그렇게 오뒷세우스는 얼룩졌다. 두 발과 위쪽 두 손이.<br/><br/><br/> 『오뒷세이아』는 수천년의 세월과 동서고금을 넘어 마음 깊은 부분을 건드리는 불멸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동시에, 여전히 수많은 질문과 새로움이 솟아나는 샘이기도 하다. 명쾌한 정답과 딱 떨어지는 해결책을 주지 않음에도 수많은 이들이 전율하고, 마음에 새기며 지도로 삼아온 이유는, 어쩌면, 그 이야기의 본질이 인간사, 인생의 기저에도 닿아있기 때문일지 모른다.<br/><br/> 오늘의 독자, 내일의 관객, 또다른 언젠가의 작가는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언제, 어디의 누구든 또다시 낯선 닮음을 보게 되리라 믿는다. 그 길에서 분노하고, 두려워하며, 전율하고, 슬퍼하며,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인간의 형상을, 만물에 깃든 신의 그림자를 읽어낼 것이다. 인간이, 여전히, 인간인 한...<br/><br/> p.212 제4권 "자고 있니, 페넬로페, 소중한 심장으로 애통해하면서? 맘 편히 살아가는 신들은너를 그냥 놔두진 않을 거야, 울게도 괴로워하게도, 아직 귀향할 수 있으니까 네 아이는, 신들에게 무슨 죄를 짓지는 않았으니까."<br/><br/> p.569 제17권 그놈을 전엔 젊은 남자들이 데리고 나가 야생 염소와 사슴과 토끼를 쫓게 하곤 했었는데, 주인이 떠나고 없는 그때 버려지다시피 누워 있었다, 똥 더미 속에, (…) 거기에 개가 누워 있었다, 아르고스가 진드기 투성이로. 바로 그때, 그놈이 보았다, 가까이에 있는 오뒷세우스를, 꼬리를 흔들었고, 양쪽 귀를 아래로 내렸지만, 더 가까이 더 이상 그때 주인에게로 다가갈 수는 없었다.<br/><br/>#오뒷세이아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40/12/cover150/893247646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401298</link></image></item><item><author>뫕</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보라, 두렵고 매혹적인 그것을. 눈동자 속에, 마주치는 시선에. - [괴물의 탄생 - 우리가 찍은 낙인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466129</link><pubDate>Sat, 22 Aug 2026 23: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4661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5073&TPaperId=174661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24/68/coveroff/89323250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5073&TPaperId=174661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괴물의 탄생 - 우리가 찍은 낙인의 역사</a><br/>수레카 데이비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서평도서제공: 현암사 <br/><br/> **괴물, 그들은 왜 두렵고도 매혹적인가. 다르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차이라는 강을, 건널 수 없는 그 강을 사이에 두고 '우리'와 '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은 절대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다름, 그들의 야만성과 생명력은 언제나 강력하고 신비로우며 '근원적 동물성'으로 간주되기에 인간 아닌 인간들, 괴물들은 그렇게나 아름답고 두렵다.**<br/><br/> **괴물은 침범하는 자다. 규범을 넘어 일탈하고 흘러나가는 존재다. 그들에게는 전염성이 있어 생각만으로도, 존재만으로도 오염의 가능성이 된다. 그들은 고유한 동시에 가변적이어서 위협적이다. '괴물성'은 '우리'의 '복잡하고 질서 잡힌' 아름다움과는 달라 단순한 동시에 무질서므로 정의되고, 표적지어질 수 있다.**<br/><br/> p.11 괴물 만들기는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이자 위력적인 매도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공동체는 추상적인 두려움과 관념에 물리적 형태를 부여하고 잠재적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집단과 개인을 규정하며, 그들을 정상적인 육체나 믿음이나 행위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로 취급한다. 사회가 사람을 정의하고 분류하는 방식의 핵심에는 '표준'과 '괴물'에 대한 가정이 깔려 있다.<br/><br/> p.102 민족과 이민족을 구분하려면, 그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중간자'를 불러내 벽 속에 가두어야 한다. 경계를 흐리는 존재인 괴물을 무력화해야 한다. 공동체는 특정 개인들을 괴물로 규정함으로써 주변부로 몰아내고 어느 정도까지는 지워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가 아무리 그들을 과소평가하거나 문제 삼아도 이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여러 혈통을 이어받고 서로 다른 기대 사이에 끼인 채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br/><br/><br/> **괴물성의 존재는 '우리'에게서 영구히 몰아내져 '순수성'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주는 동시에 언제나 종식 불가능한 위험이다. 교활하고 치밀한 동시에 순진하고 야생적이다. 괴물은 자연-성이다. 괴물은 자연의 섭리와 질서를 위배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반드시 통제되어야 한다. 규칙과 체계의 일부가 되어 언제고 제거, 아니, '삭제' 가능한 존재이다. 그래야만 한다.**<br/><br/> **저자가 제시하는 사료들에서 볼 수 있듯, 권력과 체제를 흔드는 존재로서의 괴물은 '우리'라는 '참된-인간'과는 본질적으로 달라 절대로 '우리'의 일부로 편입될 수 없다. 동시에 '우리'는 언제나 괴물-됨의 위협을 안고 있는 존재다. 체제에 충실하지 않거나 규범에서 벗어나는 존재는 언제든 인간 '이외'로 미끄러질 수 있고, 그곳에서 돌아오는 일은 '본래적으로' 인간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br/><br/> p.87 '인종'이든 '민족'이든 둘 다 개인과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개념이다. 몸, 행동, 혈통, 시민권에 관한 생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선택된 역사인 것이다. (…) 자기네와 '다른' 집단 사이의 경계에 걸터앉은 개인을 불법적이거나 별스러운 존재로 식별하고 낙인찍어야 비로소 별개의 종족이나 인종 같은 것이 성립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이런 개인들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 경계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임이 드러날 것이다.<br/><br/> p.227 개인이나 집단을 어느 한 범주에 들어맞지 않는 골칫거리로 낙인찍는 사람들은 (...) 인간의 범주가 유연하다는 사실을, 인간의 몸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쉽게 변한다는 사실을,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단순한 경계가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어쩌면 미래의 어느 시점, 또 다른 삶, 평행 우주에서는 자신들 역시 골칫거리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외면하고 있다.<br/><br/><br/> **공고하고 엄밀한, 확신과 질서의 세계에서 괴물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질서를 지탱하는 힘이자 질서의 존재 그 자체이기도 하다. 대조적으로, '변신'에 덜 적대적이고 존재의 경계는 더 모호한 사회에서는 퍽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필사적으로 진보해온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에 역행하는 국제적 흐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법과 학문의 언어를 탐욕스레 두른, 괴물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을.**<br/><br/> **이 책이 괴물의 역사가 아니라 괴물의 탄생, 괴물 만들기의 역사인 이유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괴물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괴물을 만들어내고, 규정지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괴물들'에 경의를 보낸다. 범람하고, 더럽히며, 파괴하고 매혹할 우리, 절대 우리일 수 없는 근원적 다름들에게. 또한, 무엇보다도 '무엇'인 이들에게, 비인간으로 밀려나는 세상에서 손을 잡고 함께 '무엇'이 되는 이들에게.**<br/><br/> p.146 당신은 누구에게 공감하는가? 얼마나 깊이 공감하는가? 공감은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따라서 가장 인간다운 사람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지도, 즉 사적인 지형도와 같다. 갈등 없이 서로에게 공감하는 다문화적인 정치체, 범주의 자유로운 혼합과 초월을 찬미하는 정치체를 만들 수 있을까?<br/><br/> p.351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곳'에도 희망을 걸 수 있다. (...) 우리가 아는 유일한 세계, 달아나거나 버리기보다는 지키기 위해 노력할 가치가 있는 우리의 터전이다. 괴물은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문이다. 괴물은 곧 우리 자신이다. 자, 이제 우리가 할 일을 시작하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24/68/cover150/89323250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246807</link></image></item><item><author>뫕</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나-쓰기-긋기-그리기-직조하기-창조하기-고백하기-풀어-내-놓기 - [자화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449138</link><pubDate>Thu, 13 Aug 2026 20: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4491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0626&TPaperId=174491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78/64/coveroff/k022130626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0626&TPaperId=174491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화상</a><br/>에두아르 르베 지음, 정영문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08월<br/></td></tr></table><br/>*서평도서제공: 은행나무<br/>#은행잎4기 #은행잎서재 #에두아르르베 #자화상<br/><br/><br/> 자서전이 아닌 자화상인 이유를 알겠다. 극도로 촘촘하게 쌓아올리는, 덧대고 선을 긋고 겹치고 덮어씌우는, 집요하고 치밀한, 어느 순간 탁 풀리는 공백이 정교한 형상으로 나타났다 사라져버린다. 몇 문장을 따라해보다 포기했다.<br/><br/> 샅샅이 훑어내는 추격? 아니, 묘사, 그래, 묘사. 그것에 기묘한 쾌감과 수치심을 동시에 느낀다. 선 하나, 점 하나, 장면 하나가 모여 쉴새없는 반추와 회상을 소묘한다. 영사기 도는 소리가 착착착, 들려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br/><br/> p.8 내 삶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삶을 사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다.<br/><br/> p.94 나는 가끔 특별한 이유 없이 전화번호부를 뒤적인다. 나는 영화를 볼 의도 없이 지면에 실린 영화 시놉시스를 읽는다. 나는 편성표를 읽지 않고, 채널을 돌려 무작위로 TV를 본다.<br/><br/><br/> 읽는 내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렇게까지 오래, 적어도 이 생각을 완전히 회상불가능한 정도로 잊기 전에 누구도 내게 말해줄 수 없게 될 과거의 일화를 말하고 싶었다. 거짓말을 하고 싶었다. 가장 수치스러운 기억을 꺼내보이고 싶었다.<br/><br/> 자랑스러운 일화에 온갖 장식을 덕지덕지 붙여 번쩍 들어올리고 싶었다. 언젠가 베푼 보잘것없는 친절을 죽기 직전까지 떠벌리고 싶었다. 보물처럼 모아둔 칭찬을 싹싹 닦아 늘어놓고 싶었다. 허세를 부리고 싶었다.<br/><br/> p.7 10대 때, 나는 《인생 사용법》이 사는 법을, 《자살 사용법》이 죽는 법을 가르쳐줄 거라고 생각했다.<br/><br/> p.50 소름이 돋을 때면 수 세대 전 내가 짐승이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나는 시력을 잃지 않을 것이고, 청력을 잃지 않을 것이며, 팬티에 오줌을 싸지 않을 것이고, 내가 누군지 잊지 않을 것이며, 그 전에 죽을 것이다.<br/><br/><br/> 다시 없을 행복한 순간을 말하며 웃고 싶었다. 돌이킬 수 없는, 아직 잃지 않은 기회에의 그리움에 엉엉 울고 싶어졌다.<br/><br/> 이 모든 것을 빼곡히 적은 노트를 탁, 소리나게 덮어버리고 서랍 가장 깊은 곳에 숨기고 싶었다. 얼마 안 가 꺼내보고 뒤져보다 언젠가 여는 방법을 잊어 골머리를 싸맬만한 방법으로. 언젠가 정말, 꼭 필요한 때에 딱 한 번만 꺼내보겠다는 마음으로.<br/><br/> p.69 나는 내 내부 장기를 전혀 본 적이 없다. 단지 거울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몸의 어떤 부분들을 보았지만, 어떤 부분들은 거울이라는 매개물을 통해서도 결코 본 적이 없고 뭔지도 전혀 알 수 없다.<br/><br/> p.143 내가 언제 죽든 열다섯 살은 내 인생의 중간이다. 나는 삶 후의 삶은 있지만 죽음 후의 죽음은 없다고 믿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지 묻지 않는다. 내가 거짓 없이 '죽어가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한 번뿐이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은 이미 지나갔을 수도 있다.<br/><br/><br/> 한 사람의 생을 덧그리고 덧덧칠하고 덧덧덧그으면, 그 끝은 무엇이 될까. 쉴새없이 생동하는 동시에 모든 순간을 한데 모은 기묘한 상이 되리라는 생각을 한다. 생의 종장을 끌어다 꽝, 찍어버린 이가 집요하고 난잡하게, 파괴적이고 사랑스럽게 그러모은 삶을 보며.<br/><br/> 예감한다. 언젠가 삶에서 나를, 나에게서 세계를 소거하려는 결단 앞에서 이 책을 반드시 떠올리고야 말리라는.<br/><br/> p.142 내가 나눈 가장 아름다운 대화는 청소년기에 친구의 집에서 나눈 것이었다. 우리는 친구 어머니의 술을 무작위로 섞어 만든 칵테일을 마시며 말라르메가 자주 드나들었다는 그 큰 집의 거실에서 해가 뜰 때까지 얘기하곤 했는데, 밤새 나는 사랑과 정치와 신과 죽음에 관한 담론을 풀어냈고, 때로는 바닥을 굴러다니며 생각해낸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중 단 한마디도 철회하고 싶지 않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78/64/cover150/k02213062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786493</link></image></item><item><author>뫕</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듣기, 지극한 사랑과 환대의 마음에 대하여. - [심장 듣기 -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437934</link><pubDate>Fri, 07 Aug 2026 19: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43793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130221&TPaperId=174379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8/84/coveroff/k1021302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130221&TPaperId=1743793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심장 듣기 -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a><br/>유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8월<br/></td></tr></table><br/>*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br/>#유지영 #심장듣기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br/><br/><br/> 오래도록 이야기해왔다. 읽는 일은 곧 듣는 일과도 같다고. 잘 읽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하고, 잘 듣기 위해서는 나의 '자리'를 내어줄 필요가 있다고. 듣기는 말하기와 말하는 사람, 이 둘의 존재를 전제해야만 한다.<br/><br/>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아무도 없는 세계에 덜렁 놓인 사람이 아무도 없느냐고 물을 때조차 그는 듣는 사람을 전제하고 있다고. 듣기와 말하기는 이토록 서로를 필요로 한다. 혼자, 너무도 혼자인 고독, 스스로를 쪼개 바라볼 수조차 없는 외로움 속에서는 아무것도, 스스로의 존재를 전할 수조차 없다는 뜻이다.<br/><br/> p.7 내가 뭔갈 듣기로 결정했다면 그건 내가 그걸 듣고, 느끼고, 변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된다. 우리는 결국 들은 것이 된다. 단지 내가 들은 내용뿐 아니라 듣는 태도를 통해서도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다. 듣기는 그렇게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br/><br/> p.87 "말하기는 적극적이고 의식적인 주체적인 외향적 행위인 반면, 듣기는 수동적이고 반응적인 내향적 응대처럼 보인다. 과연 그러한가?" 듣기는 단순히 수동적이고 반응적인 응대가 아니다. 듣기는 오히려 적극적인 상대에서만 가능하다. 귀는 입과 달리 늘 열려 있는 기관이지만 누군가의 말을 새겨 듣는다는 건 선택적 행위이기 때문이다.<br/><br/><br/> 바꾸어 말하면, 최소한 스스로에게 타자로 인식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자기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시작도 끝도 없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혹은 들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세계와 전능자는 듣기와 말하기 모두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들을 수 없고, 아무도 듣지 못하니 말하기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적막한 절멸이란 말인가.<br/><br/> 여기서 물을 수 있다. 듣기에는 무엇이 요구되는가. 이는 다시 처음의 생각으로 돌아간다. 듣기 위해서는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단단히 틀어쥐고 올라앉은 나의 자리를 말하는 이에게 내어주어야 한다. 말하는 이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그의 초대에 응해야 한다. 그의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br/><br/> p.48 인터뷰를 하다 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감각을 만나게 된다. 내가 말하는 이의 말을 아주 정확히 듣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지막 퍼즐 조각의 모서리가 빈 공간에 딱 들어맞은 것 같은 정확감, 내가 어찌저찌 흘러온 삶이 말하는 이의 삶과 밀착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물론 그것은 순전히 나만의 착각일지 모르고, 말하는 이의 감정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말을 '나는' 그렇게 들었다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br/><br/> p.115 듣는 행위에는 이렇듯 비생산적인 구석이 있다. 귀를 기울여서 잘 듣는, 잘 들으려 애쓰는 일은 생산적일 수도 효율적일 수도 없다. 듣는 것만으로는 그 무엇도 생산해낼 수 없고, 자랑도 되지 못한다. 그러니 듣기에 성공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형태일 것이다. 매순간 인간을 이해하는 일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듣는 일이 한 명의 인간을 이해하는 최선의, 그리고 최소한의 행위라는 걸 인정하는 것.<br/><br/><br/> 동시에 '듣는 나'를 그 세계에서 소거하지 않아야 한다. 말하는 이를 이 장에 홀로 남겨두지 않아야만 그의 말을 허공에 던져버리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듣고 말하기란, 누군가의, 나의 말을 잘 듣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제각기 소리높여 '나'의 자리를 다투니 기다리고 바라볼 여유가 없다. 크고, 많고, 사나운 목소리에 작고, 약하고, 느린 말이 설 자리가 없다. 하물며 듣기의 자리란 얼마나 좁고, 얕고, 위태로울까.<br/><br/> 저자가 인용한 판결문을 보며 김진영의 『단 한 사람』을 떠올렸다.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오직 그 한 사람을 위해 힘껏 내뻗는 손이 있다면, 오직 단 한 사람이 또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홀로 남겨두지 않는 세상이, 귀 기울여 듣는 사람 하나만이라도 꼭 있으리란 믿음을 잃지 않는 세상이 그 한 사람을 그대로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br/><br/> p.105 내 안에서 이미 옳고 그름이 정리된 주제라면 어느 한쪽의 편에 서는 게 크게 주저되지 않는다. 가치중립이라는 명제 아래 어떤 목소리는 과대 대표되고 어떤 목소리는 과소 대표된다고 믿어서다. 과소 대표되는 이들의 목소리를 더 정확하게 듣기 위해 그들의 편에 선다. 어떤 목소리는 편파적일 때 더 정확하게 들린다.<br/><br/> p.116 나에게 잘 듣는 일이란 구체적으로는 그런 것이다. 쓸모를 증명할 수 없으나 그 증명할 수 없음으로 인해 무가치해지지는 않는 일. 그것은 잠시나마 '나'를 넓혀가는 일이다. 내가 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아는 일이다.<br/><br/><br/> 부디, 이 사납고 잔인한 세상에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끊이지 않기를 바란다. 듣기 위해 눈을 마주치고, 이해하기 위해 어깨를 기울이고 가슴을 맞대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연약하고 짧은 삶, 한 명이 외로운 홀로가 아닐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뿐이리라.<br/><br/> p.198 듣는 사람이 없이는 말하는 사람이 없고, 말하는 사람이 없이는 듣는 사람이 없다. 이 문장을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듣는 사람의 곁에 말하는 사람이 있고, 말하는 사 람의 곁에는 듣는 사람이 있다. 두 역할은 어느 한쪽으로 고착될 새도 없이 수시로 바뀐다.<br/><br/> p.199 앞으로도 내내 오직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듣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 설령 그것이 실현 불가능한 소망일지라도 계속 소망하고 싶다. 이렇게 겁도 없이 쓴 문장이 앞으로의 내 삶을 붙들어줄 족쇄가 되기를 바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8/84/cover150/k1021302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388400</link></image></item><item><author>뫕</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비밀의 들판, 언젠가의 당신을 만나 내가 향할 그곳에서. - [비밀의 들판 -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436158</link><pubDate>Thu, 06 Aug 2026 20: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19466181/174361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0423&TPaperId=174361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52/36/coveroff/k7421304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0423&TPaperId=174361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밀의 들판 -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a><br/>마거릿 주혜 리 지음, 장상미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08월<br/></td></tr></table><br/>*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br/><br/>#비밀의들판 #마거릿주혜리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br/><br/>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자기의 역사를 찾는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 사람은 사람의 몸에서 태어나 사람의 몸으로 살아간다. 자기 정의는 역설적으로 타인에게 비춰 보이는 나, 타인과의 관계 어딘가에 위치하는 나, 나를 둘러싼 관계의 이름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이유로 나를 이해한다는 것,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 그 삶의 궤적을 좇는다는 것은 그 기원과 현재를 훑고, 감각하고, 음미하는 것과도 같다.<br/><br/> 위, 아래, 좌우(?)까지 고루고루 잃어가며 살아온 결과, 가장 큰 아쉬움은 그의 삶을, 기억을, 언젠가의 시절을 말해줄 사람이 점점 줄어가다 기어코 한 명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나의 OO은 말했다.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알더라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고. 언젠가 너의 어린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도 너뿐인 때가 올테니 지금이라도, 틈 날 때마다 자주 말해주고 싶다고.<br/><br/> p.16 나는 신문 기록, 수감 중 읽은 책 목록, 공산주의자 동지들과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 직접 고안했던 암호 등 내 할아버지 이철하의 짧은 생애에 관한 사실들을 밝혀냈지만, 정작 내 존재 자체에 깊이 스며든 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이었다. 그 이야기들은 내 몸을 파고 들어 와, 손녀였고 딸이었으며 마침내 어머니가 된 나라는 사람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내 몸에서 풀어내야 했다.<br/><br/> p.58 나는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 어느 도시에 살면서도 진정으로 내 집에 머무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나는 그 이유가 할아버지의 삶이 잊히고 만 사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이리저리 떠도는 성인기의 내 삶에서 단 하나 변함없는 것은 더 전망 있는, 더 흥미로운, 더 '나은' 어딘가로 이동하려는, 탈출하려는 충동뿐이다. 내 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 자리는 다른 누군가에게 속해 있다는 느낌으로만 채울 수 있었다.<br/><br/><br/> 누군가를 영영 보내고 온 날엔 으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누구가 아닌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뭘 좋아하고, 어떤 꿈을 꾸고, 어느 길을 따라 마침내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아왔을까. 그 가슴에 무엇이 싹트고 시들어 묻히고야 말았나. 내도록 아쉽고 궁금했다. 서럽기도 했다. 그가 평생에 걸쳐 지키고 쌓아온 것들,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삭이고 숨겨온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br/><br/> 그렇게 그가 따돌려진, 숨이 턱에 차도록 쫓아다니게 한 세월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누가 그의 삶을 들어주었을까. 누가 그 자신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묻힌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고이 닦아 전해주었을까. 그 이야기의 이름을 안다. 상처. 상처. 상처.<br/><br/> p.123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들은 바로는 아기 때 자신에게 결핵을 옮긴 이가 할아버지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마도 감옥에서 옮았을 것이다. (...) 아버지가 전혀 알지 못했던 부친이 남긴 유산이,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갔거나 적어도 주요인을 제공한 전염병이었던 것이다. 잠복기를 거친 다음 발병해 조직을 훼손하고, 결코 온전히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그 병. 아비 없이 자라난 상처. 아비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처. 내게로 대물림된 그 상처.<br/><br/> p.198 내가 묻는다. "할머니가 지내던 집 사람들은 정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아니면 중국으로 탈출한 가장 민강에 관해서 언급한 적은요?"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한다. “내 주위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민강을 언급하는 것도 들은 적 없고. 나는 애초에 왜 일본인들이 한국에 있었는지 조차 몰랐어. 그 시대는 그랬지."<br/><br/><br/> 저자가 추적하는 가족들의 계보는 복원해낸 조부의 삶, 침묵 속에 전달된 조모의 삶, 소외와 포기로 점점이 이어져온 모부의 삶이라는 낱알들의 모음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삶, 자기가 살아오지 않은, 알 수 없었던 시대, 파편화된 기억으로만 존재해온 일화를 한데 모아 가족과 핏줄로 이어져는 더 큰 그림이자 새로운 시작에의 첫 획이다. 여전히 미완이며, 영영 완결될 수 없는 '것'을 위한.<br/><br/> 그리하여 종국에는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가 아닌, 무엇이 남는가, 무엇이 끝내 살아남아 귓가로 입속말로 손때 묻은 흔적들로 전해지는가. 저자가 끝내 도달한 '미완'에서 진정 자기 자리를 찾은, 어쩌면 영영 그럴 수 없게 된 과거와 현재의 의의를 묻기를 바란다. 그렇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들어봐, 너의 이전을 말해줄게. 들어봐, 나는 이 몸으로 이어져 왔으니, 우리는 어느 몸에서 갈라져 어느 '곳'을 살아가는 몸인가…<br/><br/> p.380 마침내 집에 온 기분이다. 특정한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는 베이 에어리어는 아이와 함께 있는데도 여전히 거쳐 가는 곳으로 느껴지고, 한국은 좀 더 익숙하지만 그래도 외국이다. 나에게 집이란 장소가 아니다. 존재의 상태다.<br/><br/> p.387 옛날 옛적에 자기가 태어난 나라가 전혀 편하지 않은 소녀가 있었어요. 소녀는 혼자만 다르게 생겼고, 먹는 음식도 달랐어요. 사람들은 소녀에게 묻곤 했어요. "넌 어디 출신이야?" 소녀가 "휴스턴"이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은 다시 물었어요. "아니, 진짜로 어디서 왔냐니까?" (…) 여성은 여전히 두 나라 어디에서도 편하지 않지만, 가족과 함께하면서 비로소 집에 온 기분을 느끼게 되었어요. 엄마와 달리 아이들은 과거를, 자신의 조상이 누구인지를 알고 자랄 거예요. 여성은 진심으로 바랐어요. 아이들이 그들 자신과, 어디가 되었든 자신이 살기로 선택한 곳에서 편안히 머물기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52/36/cover150/k7421304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523666</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