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음악 시간을 기억하시나요?

무대 공포증을 이기며 교탁 앞에 나가 가창 시험을 치르던 시절...


그 시절 우리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되새기는 에세이가 나왔습니다.

<<한 줄도 좋다, 우리 가곡-내 쓸쓸한 마음의 울타리>>




장석주 시인이, 시인의 삶에 때로는 푯대가 때로는 위로가 때로는 기쁨이 되었던 서른네 곡의 우리 가곡을 추억합니다.


여기, 그 한 곡을 미리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완전 연소의 사랑

 

그해 가을 마가목 열매가 유난히도 빨갛게 익어 아름다웠다. 동네 텃밭에는 까만 씨앗이 촘촘히 박힌 꽃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해바라기가 고개를 기우뚱한 채 서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는 마른 옥수수 대는 바람이 불 때마다 서걱거렸다. 나는 반듯하고 하얀 이마 아래 검은 눈썹을 가진 애인과 헤어졌다. 애인은 딸기와 커피 우유를 좋아하고, 영작英作과 브론테 자매와 프랑소와즈 사강을 좋아했다. 흑단 같은 머리에서 미나리 향 같은 샴푸 향이 나던 애인이 나를 떠났다. 내가 삼나무 같은 신의를 저버리고 허튼 거짓말을 했던 게 들통이 났기 때문이다.


가을이 왔다. 은행나무들이 도립한 거리에 군밤 장수들이 나타났다. 하천에는 누가 내다 버렸는지 개의 사체가 방치되어 썩어가고,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은 고엽제 후유증을 앓았으며, 파고다공원 뒷담 아래에는 노인네들이 나와서 훈수 장기를 두었다. 상고를 나와 은행에서 근무하며 야간대학을 다니던 친구의 형이 사법고시 1차 시험에 붙고, 동네에서 마트를 하던 여자는 외간 남자와 바람이 나서 곗돈을 들고 야반도주했다. 사람들이 풍문을 수군거리는 동안 겨울이 왔다. 나는 장롱에서 동내의를 꺼내 입고 시립도서관을 다니며 니체와 바슐라르와 하이데거 책을 찾아 읽으며 파란 노트에 서정시를 써나갔다. 시립도서관 창문에 성에가 끼었다. 나는 시가 잘 되지 않는 날엔 공연히 시립도서관 창가를 서성거렸다.



사랑은 타오르는 것이고, 타오르다 마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가곡을 처음 들었다. 사랑의 곡조와 가사가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북녘 찬 하늘에는 서릿발 묻은 발을 날개 아래에 모으고 기러기 떼가 날았다. 수도꼭지를 틀면 콸콸 나오는 수돗물에서는 쇳내가 났다. 내 오른쪽 중지 끝마디에는 만년필에서 흘러내린 파란 잉크가 묻어 있었다. 그해가 끝날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나는 대학 영문과의 입학생도 되지 못했고, 동해안 포구의 오징어잡이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밀항도 하지 못했다.


탈대로 다 타시오/타다 말진 부디 마소라는 구절은 사랑의 이상이 완전 연소라는 암시를 담고 있다. 몸과 마음을 다 불사르며 사랑하는 것, 이것은 반이성적 미친 상태라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고른 숨결의 사랑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반쯤은 얼이 빠졌거나 미친 상태에서 뻗치는 열광의 힘이다. 열광이 사랑의 한 성분인 것은 맞다. 내게는 그런 열광이 부족했던 것일까?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사랑은 더 이상 변치 않는다. 변심할 마음 한 줌조차 다 타버렸기 때문이다. 반만 타고 꺼지는 사랑일랑 아예 시작조차 말아야 옳다. 세상에 쓸모없는 게 다 태우지 못하고 중도에서 작파한 사랑이다. 그러니 반만 타고 꺼지는 사랑은 시작을 하지도 말자. 사랑을 하려거든 자기를 다 불살라야 할 일이다. 그 연소는 제 몸과 마음은 물론이고, 제 안의 근심과 불안과 욕망을 다 태우는 일이다. 가슴팍에 한 줌 재만 남을 때까지 다 태우고 꺼져야 하리.


<<한 줄도 좋다, 우리 가곡-내 쓸쓸한 마음의 울타리>>는 다양한 예술이 전하는 한 줄의 의미를 마음에 새겨보는 에세이 시리즈, '한줄도좋다'의 1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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