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제나는 오래 전에 읽었던 공지희 장편동화 "영모가 사라졌다"에 나오는 판타지의 세계이다.
아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아버지를 피해 어느 날 사라져 버린 영모,
영모가 친구 병구 그리고 고양이 담이와 함께 간 곳이 라온제나이다.
순 우리말로 "즐거운 나"라는 뜻을 가진 라온제나...
라온제나, 라온제나... 입안에 맴도는 이 말이 너무 좋아 알라딘 내 서재의 이름이 되었다.
즐거운 나로 가는 길...
이미 첫눈이 내렸고, 스산한 바람과 쉽게 어두워지는 저녁 하늘은 겨울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음을 알리는 증거이다.
주말을 함께 보낸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 간 월요일 아침...
나는 즐거운 나를 찾기 위한 길을 나선다.
새벽부터 내린 비에 낙엽은 젖어 길가에 쌓여있고, 출근 시간이 지난 도로는 한산하다.
여름 내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가로수의 무성한 잎도, 나란히 우산을 쓰고 그 길을 걸어 학교로 향하던 아이들도,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등산을 하는 초로의 노인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바람에 흩어지는 비가 내려 창문마저 열어 놓을 수 없는 버스 안은 비릿한 냄새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의 세계에 빠져 있다.
314번 버스를 타고 가는 30분...
가방 속에는 두 권의 책이 들어 있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반복해서 들려온다.
밀린 숙제처럼 내 맘을 무겁게 하는 수전손택의 "다시 태어나다"와 가볍게 읽기 위해 넣어 가지고 다니는 송정림의 "내 인생의 화양연화"
버스 안에서 읽기에는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폈다.
물론 좀 더 조용하게 생각할 수 있는 장소였더라면 수전손택의 책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가겠다는 마음은 이성적 의지일뿐 나는 버스 안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바깥 풍경을 보는데 쓰고 말았다.
우울한 날씨는 사람의 마음마저도 서글프고 아련하게 만들어 버린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혹은 세 번정도 시내 서점을 찾아간다.
즐겁고 기쁜일을 기념하기 위해 책을 사고, 속상하고 슬플 때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책을 산다.
서점에 있는 책들의 표지를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책을 훒어보다가 못내 좋으면 집으로 가져온다. 최근에는 서점에 더 자주 가는 편인데 마음이 심란하고 울적할 때 찾아가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진다. 그리고 내가 갖고 싶은 책을 찾았을 때는 고민마저도 잊고 흥분한 마음이 된다.
늘 같은 자리에서 말없이 나를 위로해주는 책들...
그들의 너그러움과 아름다움 앞에 나는 겸손해진다.
특히, 내가 알라딘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지하로 내려가는 길에 언제나 나를 반갑게 마중하는 작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빈집 중에서) ... 내가 사랑하는 시인 기형도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풀 중에서)... 시인 김수영 그리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와 칼의 노래 김훈이 보인다.
선한 미소를 가진 이해인과 박완서 그리고 박경리가 그곳에 있다.
월요일 오전... 알라딘에는 클래식이 흐르고, 수많은 사연을 담고 그 자리에 머무는 헌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따스한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헌 책들... 이미 누군가의 손길이 지나간 책장을 넘기며 이 책의 주인을 상상해 본다. 서가에 빼곡하게 꽂힌 책들 중에 특히 나를 사로잡은 몇 권의 책...
문학동네와 열린 책들 그리고 시공사에서 나오는 세계 문학을 모으는 중인데 오늘은 열린 책들과 시공사 책이 새로 나와 기쁜 마음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서가 한 켠에서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파스칼 키냐르의 책을 발견했다.
모든 책들에는 작가의 사연도 담겨져 있지만, 그 책을 구입한 사람들의 사연도 함께 쌓여 가는 것
같다. 욕심대로 7권의 책을 모두 구입해 돌아오는 길.... 여전히 날씨는 흐리고 추웠지만 책이 주는 깊은 위로에 감사하며 돌아왔다.
그리고 오후 일상에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