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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평점 :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나오는 '현대지성 클래식'시리즈를 만나고 고전을 쉽게 접하고 있다. 이 클래식 시리즈 책들은 원문을 완역해 출판하므로 전부 '원전 완역본'이라는 표식이 붙어 있다. 유명한 고전을 완역을 했다는 문구에서 어려워서 읽을 수나 있을까라는 걱정과 긴장감이 우선적으로 먼저 드는데, 직접 읽어보면 번역이 현대어로 굉장히 매끄럽게 잘 되어 있기에 어려움 없이 잘 읽을 수가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가 출판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 초록색 표지의 시리즈들을 꼬박꼬박 보았으며,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책이 출판되자마자 반가운 마음으로 신청해서 받아본 것이었다.
이번 아리스토텔레스 책의 번역가는 박문재 선생님으로 28번인 소크라테스의 변명 편을 번역해 주신 분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책이야말로 초월 번역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읽는데 아무 걸림돌 없이 쉽게 읽을 수가 있다. 그렇게 매끄러운 번역으로 소크라테스를 만나니 마치 소크라테스가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아저씨처럼 느껴졌는데, 느껴지는 이미지에서와는 달리 글 속에 그의 말은 너무나도 날카롭고 논리정연하며 감동을 주기에 책 자체에 푹 빠졌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읽는 것만으로 앎이라는 것과 모른다는 것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진정성과 지혜가 느껴져서 감동으로 읽었던 책이었다. 그러니 이번 아리스토텔레스 책도 비슷한 기대와 같은 감동을 느낄 것으로 예상하고 표지만 빠르게 훑고, 쉽게 책 속으로 들어가고자 얼른 책을 펴보았는데, 어쩐지 글이 쉽게 안 읽히기에 낯선 어려움과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다시 표지로 돌아와서 번역가 선생님이 같은 분 맞는지 살펴보고 번역가 선생님의 이력 부분으로 넘어가서 읽어보고 살펴보게 되었다.
이번 아리스토텔레스 책은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책을 쉽게 읽어 보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의 천재적인 두뇌를 쉽게 접해보려 했다니 어찌 가당찮은 생각이었던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책을 차근차근 살펴보니 이번 책은 연설할 때 설득의 기술에 관해 논하고 있는 수사학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였으니 스승들의 현자와 같은 철학들을 배우고 얼마나 물려받았을까. 또한 그는 본인 자체의 철학의 세계를 위대하게 키운 또 한 명의 현자였다. 그래서 서양철학사의 위대한 철학자를 뽑으라고 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아리스토텔레스이고 그의 글들이다.
"1998년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사를 뽑는 설문 조사에서 현대 철학자들에게 1위를 받은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년에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방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생전에 다뤘다고 하는 분야들이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심리학,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미학, 동물학, 식물학, 자연학, 철학사, 정치사 등으로 굉장히 폭넓었다. 생애 후반에는 불경죄로 고발된다고 나오지만 재판받았다는 내용은 없고, 그저 타 지역으로 떠난 후에 6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한다.
이번 책에서는 그의 수사학에 대한 철학을 들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그의 말과 생각을 들으면서 그의 논리에 대해 우선 감동할 준비를 하고 책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수사학의 정의가 설명되어 있는 부분에 '설득력 있는 요소들'이라 쓰여있는 부분에 주석이 달려있어서 주석 부분을 읽어보았다. '설득력 있는 요소'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피스티스'라고 한다고 한다. 그리스어로 된 원전에는 이 부분이 '피스티스'라고 써진 건지 아니면 그리스어로도 '설득력 있는 요소'라고 쓰여있는데, 이를 번역가분이 이에 맞는 그리스어는 '피스티스'라고 표현해놓은 건지 책만을 가지고는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만일 그리스어 원전에 이 부분이 '피스티스'라는 단어로 쓰여있었다면 이 부분은 번역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피스티스'라고 써두어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피스티스'는 변증학에서 '증거'라고 말한다고 한다.
수사학은 각각의 사안과 관련해 거기 내재된 피스티스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조언을 위한 연설, 법정에서의 변론, 선전을 위한 연설을 잘하기 위해서 어떤 피스티스를 써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배우는 책이 이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책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다른 이름은 '피스티스'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말로 신뢰를 주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어떤 것은 화자의 성품과 관련되어 있어서 성품과 미덕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설득하려면 본인의 성품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청중이었을 때 연설가를 바라보는 시선에 성품이 들어가 있었던 거 같다. 내 말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내 성품이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도 신경 써야 하는ㅈ것이다.
어떤 것은 청중의 심리상태와 관련이 있어서 각각의 감정이 어떤 것이고 감정의 특징은 무엇이고 감정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설득을 하는 이유는 듣는 이가 판단하도록 하기 위함인데, 감정적으로 결정해버리는 인간이기에 설득할 때도 감정의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은 뭔가를 증명하거나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말 자체에 관한 것이어서 삼단논법을 통한 추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말하는 자들이 신뢰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말 자체를 선택하기 보다 청중의 심리상태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수사학의 고유한 방법론은 설득이고, 설득은 일종의 증명 작업이라고 한다. 설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삼단논법이라고 하는데, 책의 초반 부분에 사람들이 삼단논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재미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말하는 자들은 삼단논법을 생략하고 그 외에 다른 보조적인 방법인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들이 감정적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결정하는 사람이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재판 시에 재판관이나 배심원들을 향해서만 사용한다고 하는데, 대중을 상대로 연설할 때에는 감정적인 연설이 아니고 자신의 연설이 사실인지만 보여주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깐 말하는 자들이 삼단논법을 사용하면 듣는 이가 삼단논법을 알아들어야 하는데 듣는 이들이 그만큼 지혜롭지가 못하니 감정적인 부분을 설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사학에 관해 글을 쓴 사람들이 실제로는 수사학과는 아무 상관 없는 전문 기술을 설명하는 데 몰두해왔고, 그 때문에 법정 변론을 선호해왔음을 밝혔다.
진리와 정의는 그 반대되는 것보다 본성적으로 더 힘이 있기 때문에 수사학이 유용한 것이다. 따라서 판단이나 판결이 적절하게 내려지지 않아 진리와 정의가 패배했다면, 그것은 변론한 사람의 잘못이기 때문에 그들이 비난을 받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정의의 본성적인 힘' 부분을 읽고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한참이나 생각에 빠졌었다.
판단하는 자는 무엇을 판단하는 것일까? 옳고 그름. 옳다는 것은 정의일 것이다. 그러니 판단하는 자는 무엇이 정의이고, 누가 정의로운 자인지 손을 들어주는 자일 것이다. 여기서 정의가 졌다는 말은 무엇일까? 둘 중에 누가 정의인지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사안이 난해하고 복잡하다는 것일까? 아님 정의의 반대세력의 힘이 판단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적인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일까?
진리와 정의는 본성적으로 힘이 있는 게 맞을까? 진실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다고 믿고 싶은 것일까? 그것이 믿고 싶다고 여기는 것일지라도 판단에서 정의가 이기지 못했다면 그것은 변론가의 패배로 변론가의 잘못이기에 비난받아야 한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며 꽤나 감동스럽고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