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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ㅣ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현주 옮김 / 새움 / 2022년 9월
평점 :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 왔습니다.
'인간실격'의 첫 문장입니다. 실제로는 서문이 추가 되어 있기에, 진짜로 저 문장이 소설의 첫 문장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가장 강한 시작의 문장이 저 문장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요.
저는 프로 문장가가 아니기 때문에 글을 쓰는데에 정해진 규칙이 없습니다. 마음가는 대로 쓸 뿐이지요. 평소에는 반말로 쓰는 평어체를 주로 사용하는데, 어쩐지 이번에는 존댓말로 쓰는 경어체를 쓰고 싶어지는 마음입니다.
방금 읽은 '인간실격'을 흉내내보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경어체가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 보고 저 스스로 놀라야 했습니다. 존댓말이 낯설게 느껴지다니요. 그동안 지속적으로 평어체를 계속 접했나봅니다. 요새 인터넷 웹소설이라는 데에 푹 빠져서 계속 웹소설만을 읽고 있었거든요. 최근에는 소설속에 빙의되는 내용이 유행인지라, 주인공에게 처단받는 악역으로 빙의한 내용의 소설을 하나 북마크해두는 참이였습니다.
최신 웹소설을 전부 다 읽어버릴 기세로 인터넷 세상에 빠져서 숨도 못쉬고 얕은 호흡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서평이벤트 게시판에 '인간실격' 이라는 글자가 타이밍 좋게 보인 겁니다. 마치 잠시 고전의 어깨 위에 올라 제대로 숨쉬면서 쉬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인간실격' 책을 산소 호흡기라도 되는 것처럼 간절하게 붙들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두근 뜁니다. 저에게 다자이 오사무의 이름은 '문호스트레이트 독스'라는 애니의 다자이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잡혀 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실제 다자이 오사무라는 사람의 설정을 캐릭터로 가져왔기 때문에 둘은 연결되어 있습니다.애니속에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작가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추측이 가능해지고 그를 진정으로 알고싶어지다고 하는 심한 갈증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래서 '인각실격' 책을 처음 읽는 것임에도, 제목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그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간실격' 책을 받았을때, 새움출판사가 낯이 익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바로 떠오르지는 못했었습니다. 그저 예전에 읽었던 책중에 새움출판사의 책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만 해보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인간실격' 책을 펴서 읽기 시작하니, 최근에 출판된 책 치고는 번역이 매끄럽지 못함을 느꼈습니다. 최근에 번역되는 책들은 읽기쉽게 매끄럽게 번역을 할텐데 굉장히 옛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책의 날개로 돌아와서 번역자를 살펴보고 뒷날개도 살펴보니, 이 새움출판사 책을 어디서 봤었는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 시리즈는 '위대한 개츠비' 책을 읽을때 접한적이 있습니다. 그때에도 번역이 어려워 정말 읽기가 힘들어 고난에 빠진적이 있어서 기억에 남아있었습니다.
책의 뒷날개에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원전으로 읽는 세계문학-
"쉼표 하나까지 살리는 정확하고 바른번역을 추구합니다. 원전의 표면적인 의미와 감추어진 매락을 최대한 살리고자 원전 그대로의, 작가가 원래 쓴 서술구조 그대로의 번역을 지향합니다. 독자들은 '원서'를 접하는 듯, 고전읽기의 즐거움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작가가 일본사람이라 우리나라와 어순구조가 같아서 다행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첫 문장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 왔습니다.'
부끄러움.
'인간실격'을 읽는 내내 주인공인 요조는 뭐가 문제일까? 를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요조는 어떤 아이였을까요?
대인기피증? 대인공포증?
저는 요조가 사람을 대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거부를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가볍게는 예민하고 우유부단한 아이, 좀더 나아가서는 사람과 교류를 어려워하니 이것도 자폐의 일종이라고 봐야하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읽어보니 요조는 사람은 물론 세상 그자체를 강하게 불신하는 아이였더군요. 아무것도 믿지 않고, 아무에게도 마음을 내주지 않는 꽁꽁 쌓여진 아이였던 겁니다.
그런 내용이 가장 강하게 표현된 부분이 마지막 부인인 요시코에게서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웹소설을 읽을때에는 글 읽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집니다. 어디가서 '저는 속독을 배우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저의 글 읽는 속도가 아주 느리다고 강조하곤 하는데, 웹소설 읽을때만큼은 없던 속독 스킬이 생겨나 글을 그냥 후루룩 읽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전소설, 특히나 유명하고 명작이라고 소문난 책이라면 글 읽는 속도가 하염없이 느려집니다. 한글자 한글자를 정독으로 읽어버리기 때문에 책을 붙들고 있는 시간도 많아집니다.
'인간실격'은 제일 뒤에 작가의 연보까지 다 합쳐도 총 페이지가 171페이지가 나오는 아주 작고 얇은 책입니다. 책을 빨리 읽으시는 분들은 단 몇시간만에 책을 다 읽어버릴 정도로 가벼운 책이지요.
하지만 저는 책을 정독으로 느리게 읽고, 또 일부러 중간중간 멈추면서 틈을 들여서 읽었습니다. 내용이 증발해나가는 것을 잡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읽다가 문득 자연스레 읽음이 멈춰지고 명상에 들어가듯 '인간실격' 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구간이 바로 마지막 부인인 요시코가 나올 때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요조라는 인간은 왜 저모양일까?
혀를 쯧쯧 차면서 읽었는데, 요조가 자기 부인의 아픔을 진정으로 아파했을때 무언가 다른 느낌이 온것입니다.
요조와 요시코는 정반대의 인물로, 요시코는 요조에게 없는 심성을 가진 인물임과 동시에 단하나의 희망, 그저 신 그자체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됩니다.
요조가 인간불신 그 자체라면, 요시코는 무구의 신뢰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요시코가 신뢰했기 때문에 더럽혀졌을때, 그 신뢰가 더렵혀졌을때, 요조는 차라리 몸이 더렵혀졌더라면...이러면서 신뢰가 무너진것을 마음아파합니다. 차라리 마음이 동해서 그런거였더라면 마음이 안아팠을지도 모르겠다는 요조를 보며, 과연 무구의 신뢰심은 죄의 원천인가? 라고 묻는 대목에 마음이 아파지기 까지 했습니다.
정말...죄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처음에 책을 받았을때에만 하더라도 11월 독서모임은 '인간실격'으로 해야지..라고 가볍게 생각했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나서는 이 작고 가벼운 책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져버립니다. 책이 무겁게 느껴질때, 어쩐지 손대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집니다.
그런 책이 저에게는 '싯다르타','칼의노래','프랑켄슈타인' 입니다. 여기에 이제 '인간실격' 도 포함시켜야겠군요.
정말 죄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책 속에서는 죄에 반대는 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책에 제일 마지막에 요조는 신과같은 아이였다고 하죠.
인간실격은 인간에서 실격되어 타락해 나가는 이야기가 아닌, 어쩌면 신이되는 이야기였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