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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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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작가에 대한 내 생각을 정의하자면, '영화 같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그녀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며, 매끄럽고 흡입력 있다. 특히 그녀의 작품 중 제일 처음으로 만났던 <내 심장을 쏴라>10분이 고작인 학생의 쉬는 시간을 모두 쏟아 붓고도 점심까지 굶으며 봤을 정도였으며, 이후 그녀의 이름을 달고나오는 책은 무조건 내 읽어야 할 책 목록 1위가 되었다나는 소설가를 꿈꾸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녀의 팬으로서 그녀가 가진 능력과 에너지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그녀야 말로 진정한 이야기꾼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엔진에 이상이 생겼단다. 새 소설을 떠올려도 뜨거워지지 않는 피, 써지지 않는 원고글을 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감마저 생겼다는 그녀였다. 글을 쓴다는 단 하나의 공통점 속에서 나는 그녀가 느꼈을 그 공포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그건 "선택사항이 아니""생존의 문제"였다. 이야기꾼에게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결국 엔진을 찾기 위해 그녀는 여행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 승민이 꿈꾸었던 신들의 땅, 안나푸르나가 그녀의 목표였다. 생애 첫 해외여행지로 안나푸르나를 선택하는 작가의 모습은 엔진에 이상이 생겼다기보다 브레이크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조금 아이러니랄까하지만 그게 또 그녀다워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물론 속으로 '난 안해. 아니 못해'라고 생각하면서.

 

후배 작가 김혜나와 가이드 검부, 포터 버럼과 함께 떠난 환상종주. 실제로는 끔찍할 정도로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버겁고, 차라리 죽고말지 싶을 정도로 지쳤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입을 통해 듣는 이야기는 꽤, 아니 굉장히 즐거웠다. (물론 이 말을 작가님 앞에 대놓고 할 용기는 없다)

 

무엇 하나 꼽을 것 없이 모든 것이 환상적이었다. 소설과는 또 다른, 아니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듯한 그녀의 입담은 심지어 고산병으로 죽을 뻔한 위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가슴속에 품어놓았던 기억들을 펼쳐놓을 때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검부와 나누는 대화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는 혼자 빵 터져서 킥킥댈 수밖에 없었다. 진지할 때는 그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감탄할 정도로, 평소(...) 때는 너무 솔직하고 시원시원해서 보는 사람이 다 웃어버릴 정도로, 그리고 힘들 때는 혼자서 링으로 들어가는 선수처럼 이를 악물고 강단 있게. 정말이지 그녀의 완급조절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게다가 글에 더해진 안나푸르나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파랗게 펼쳐진 하늘과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대지의 모습은 현실 같으면서도 현실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사진보다 그녀의 이야기가 더 현실감각이 더 떨어지는 탓에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가 사진이 등장하면 그때서야 ", 이거 에세이지?"하는 심정이었다. "이거 소설이 아니었어!"하는 깨달음이랄까. 어쨌거나 글도 사진도 모두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또 안나푸르나를 향해 그녀가 물었던 질문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나 자신과 싸울 수 있을까. 그때 답해왔던 목소리가 똑같은 답을 들려주었다. 죽는 날까지.", 종주의 마지막에 검부가 그녀에게 했던 말 "you are a fighter", 그녀 스스로의 다짐 "죽을 때까지, 죽도록 덤벼들겠다"도 모두 눈물날정도로 멋졌다. 그녀의 기나긴 싸움에 박수를 치며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게도 묻고 싶어졌다. "넌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니?"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척이나 즐겁고 또 행복한 일이었다. 끊임없이 나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다그녀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엔진으로 우리에게 돌아왔고, 누구보다 열렬하게 에너지를 뿜어냈다. 굉장하다. 멋지다. 존경스럽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차오름이었다. 그녀처럼 안나푸르나 환상종주를 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나 역시 그녀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책으로 인해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진정한 이야기꾼이라고. 그리고 거기에 더해 몇 가지 수식어를 더 붙이려고 한다. 최고의 파이터, 멋진 언니, 함께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굉장한 에너자이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You are a best"라고. 그리고 당신의 엔진이 언제나 힘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소설가를 꿈꾸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녀의 팬으로서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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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 길 위에서 배운 말
변종모 지음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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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혼자 중얼거리는 듯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알아듣지 못할 말로 독백하는 어린 배우를 보고 있는 것 같았고그것이 못내 불편하기까지 했다. 몇 번이고 손에 잡았다가 놓으며 "그래도"를 반복해야만 했다. 당연히 읽는 속도는 더뎌지기만 했다.

 

결국 내가 선택해낸 최후의 방법은 펼치는 대로 보는 것이었다. 이 책을 순서대로 읽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시간이나 장소 같은 흐름에 따라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일반적인 여행기와는 다른 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그제야 나는 "그래도"라며 각을 잡고 앉았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다시 책을 잡았다최근에 내가 한 선택 중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한다.

 

오랜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 작가는 많은 것들을 겪고 느끼고 생각했다. 만남과 이별, 나눔과 얻음, 새로움과 친숙함, 깨달음과 후회그리고 그 속에서 수많은 말들이 그를 지나갔다. 어떤 말들은 그와 마주보았고 어떤 말들은 그를 스쳐지나갔으며 또 어떤 말들은 그와 함께 걷다가 그 자리에 멈춰서 손을 흔들었다. 말 하나하나에 잊지 못할 추억이, 치열한 고민이, 소중한 감정이 담겼다. 작가는 그 말들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는 것은 내가 작가의 시선으로 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같지만 다른 시간에 다른 공간에서 다른 것을 경험을 한 작가와 나는 같을 수 가 없었다. 한 순간에 나를 잡아끄는 낯설고도 어지러운 풍경에 헤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나는 작가의 시선을 하는 대신 나만의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영원히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었다.

 

나만의 시선으로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새로운 경험을 진심으로 즐거워할 수 있었다나는 작가가 지나간 길을 나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보고 느끼고 음미했다. 그리고 남겨진 말에 공감하고 감탄하며, 그 밑에 혹은 그 옆에 나의 말을 덧붙였다. 내 안에도 차곡차곡 말이 쌓여갔다. 그것은 내 안의 것이기도 했고 작가의 것이기도 했고 내가 만났던 그 누군가의 것이기도 했다. 분명한건 그것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하는 말들도 누군가의 눈에는 독백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즉 이해할 수 없고 답답하기만 한 혼잣말 같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더 느슨한 마음으로 조금 더 끈기를 갖고 지켜본다면, 그리고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분명 생각이 바뀔 것이다.

 

''라는 존재는 이미 나 아닌 다른 무엇, 다른 누구와 함께하며 이루어진 것이기에 온전히 혼자인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말이라는 것 역시 나와 나 아닌 다른 무엇과 누군가가 서로 만남으로서 탄생하는 것이기에 온전히 한 사람만의 것일 수 없다. 결국 나의 말이 당신의 말이자 우리의 말이며,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 역시 나의 말이자 당신의 말이자 우리의 말 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시선으로 말들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어설프게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프롤로그를 통해 작가가 직접 "모든것은 나로부터 비롯되고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아야 세상의 다반사를 의식하고 너의 마음을 인식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한 것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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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2: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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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2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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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질병과 절망에 대한 책이 아니다. 내 멋진 마지막 한 해의 기록이다."

 

이 책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섣부른 말은 작가에 대한 실례이자, 독자에 대한 방해일 뿐이다. 그저 귀를 기울이는 순간 마음 깊이 스며드는 그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2.

 

 

 

 

 

 

 

 

 

 

 

 

 

 

눈이 즐거운 사진과 마음이 즐거운 글의 만남이 고마울 따름이다.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짧지만 강렬한 문장으로, 부드러운 이야기로 독자들을 미소 짓게 만드는 책이다.

 

 

3. 

 

 

 

 

 

 

 

 

 

 

 

 

"가격은 저럼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오래도록 인정"받는 것들이라는 책의 소개는 별로 와 닿지가 않는다. 브랜드는 가격만으로 그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는건 잘 알고 있지만, 낯선 이름들의 향연에 머릿속에서는 이미 경보령을 울린지 오래다. 나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먼, 어느 별나라의 이야기 같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이건 단지 책일 뿐이다. 이야기를 담고 있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책. '명품', '브랜드'라는 단어에 부담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 이건 책이고, 우리는 새로움을 접할 기회를 얻는 것이니.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새로운 브랜드와 그 브랜드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알게 되는게 꽤나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덤으로 낯선 사람과 단짝이 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4,

 

 

 

 

 

 

 

 

 

 

 

 

 

<어느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가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또 에세이를 냈을까. 독자로서 정말 즐겁고 또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그래도 책을 펼치기도 전에 부드러워지는 마음은 솔직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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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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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추리소설을 읽은 것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다. 당시 계속해서 연재되던 시리즈를 읽으며 기다림의 미학을 배웠던 것이 추리소설과 관련해서 내가 기억하는 것의 전부다. 그때는 꽤 열성적이었었던 것 같은데 언젠가 부터 아예 손에서 놓아버렸다. 어떤 이유에서건(대개 절절한 이유가 있다) 살인이 일어나고, 예리한 눈을 가진 주인공이 진실을 알기 위해 애쓰다 위험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추리소설을 굉장히 가볍게(어떤 의미로 하찮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듣는다면 굉장히 분노할만한 말이다. 하지만 한 번 박힌 인상이란 바뀌기 힘들다. 특히 그것이 어릴 적부터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인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른들은 내가 추리소설을 읽으려고 하면 “그런 쓸데없는 것을 뭐 하러 읽어?”라고 했고, 추리소설을 읽고 있으면 “좀 더 수준 높은 걸 읽을 수 없어?”라고 눈치를 줬다. 게다가 “너도 그런거 읽어?”라고 하던 다른 아이들의 반응(이 아이들 역시 어른들에 의해 학습된 상태다)도 무시하기 힘들었다. 처음엔 아무도 모르게 추리소설을 빌려 읽었지만, 나중에는 빌린다는 그 행위 자체도 부끄럽게 여기게 됐으니 말 다 한거다.


추리소설과 거리가 멀었던 만큼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이름은 처음 접한 것이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받아든 책은 깔끔하지만 멋스러운 표지가 꽤 인상적일 뿐, 무지에서 오는 거리감에 쉽게 손이가지 않았다. 의무감 비슷한 것에 의해 겨우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챈들러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머리말을 발견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에 한해서 결코 너그러워질 수 없는 애독가들의 특징을 잘 알기 때문에 그 한 마디가 내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마음이 편해지고 나니 책을 읽는 것은 한층 수월했다.


편지들에서 나타나는 레이먼드 챈들러는 굉장히 솔직하고, 자신이 하는 일과 작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우아하게 분노를 표현할 줄 알고(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간결하지만 딱딱하거나 차갑지 않은 사람이었다.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매 장마다 그만의 매력이 넘쳤다.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신랄한 때도 있지만, 대개 존경스러울 만큼 깊이 있는 말이 담겨있었다. 특히 1장 작품론에서 받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작가의 스타일까지 훔칠 수는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 작가한테 그럴 스타일이 있다면 말이지만. 대개는 누군가의 결점만 훔칠 수 있을 뿐입니다.”(46p),

 

“생명력을 지닌 글은 모두 가슴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대단히 피곤하고 지칠 수도 있는 고된 일이지요”(56p),

 

“스스로 터득할 수 없는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배움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70p),

 

“스타일이 모방되거나 심지어 표절되다 보면, 마치 내가, 나를 모방하는 이들을 모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오거든요. 그러니 그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가야만 하는 겁니다.”(73p)

 

 등의 글쓰기에 대한 그의 말은 심도 있는 조언으로 느껴졌다. 그 외에도 애거서 크리스티, 헤밍웨이 등의 작가들에 대한 그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대조해보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고, 할리우드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에 괜히 내가 주눅 들었으며, 그의 소설을 읽기도 전에 주인공인 필립말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또 일상에 관한 이야기는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누군가의 편지를 읽는 것은 그리 좋아하는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추억에 끼어든다는 생각에 조금 꺼려지기도 하고, 당사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읽는 것 자체가 지루할 때 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서늘한 편지(‘싸늘’이 아니다)를 읽는 것은 고인을 기리기에도, 그리고 조언이나 감동과 같은 무언가를 얻기에도 손색이 없다. 아니 오히려 두 팔 벌려 환영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을 정도다.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 그리고 그로 인해서 추리소설을 읽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 것은 모두 이 책 덕분이다. 책을 덮는 순간 “도서관에 가볼까?”하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만큼 그가 매력적인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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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 마스다 미리 산문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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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는 표지에서부터 아기자기한 느낌이 묻어나는 책이다. 연녹색의 삐뚤삐뚤한 글씨에 모난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둥글둥글한 그림. 읽을지 말지 고민하며 몇 번을 망설이게 하는 화려한 표지의 책들과는 달리 편안한 마음으로 펼쳐들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산문집인 만큼 마스다 미리 씨 자신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사투리를 쓰는 자신, 친구들과 함께 하는 자신, 옛 노래를 기억하는 자신, 장래를 고민하는 자신, 일에 있어서 최선을 다 하는 자신. 그건 그녀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그녀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맞아, 나도 그랬어!'라며 손바닥을 마주치고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맞장구치면서 내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내 앞에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책이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해야 한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이 가진 매력적인 면모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호스트 역할이 어려워 버벅거리고, 영어 학원 반편성 테스트에 앞서 도망쳐버리며, 느낌이 좋은사람이 되기위해 애쓰다 그 이상의 관계를 놓치는 그녀의 모습은 꼭 어린아이 같다. 서투르지만 보는 사람마저 웃음 짓게 하는 발랄함이 있다. 그와 반대로 경험을 통해 얻은 자기 자신만의 지혜를 가졌으며, 상대의 잘못에 대해 정확히 사과를 요구하고, 친구들을 한 유형으로 뭉뚱그리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닮고 싶은 어른이다. 당당하고 올곧으며,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안다. 아이와 어른이 공존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면모지만, 그녀처럼 생생하게 드러나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공감하고 감탄하면서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엔 나 자신과 사람들에 대해 되돌아보는데 까지 도달하게 된다. 나를 이루고 있는 일상이 이토록 반짝거린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었을 뿐 나도 꽤 행복한 존재라는 사실을, 나도 꽤나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 세상에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것은 머리를 세게 치고 지나가는 강렬함이 아닌 잔잔한 울림이 주는 깨달음으로, 마스다 미리 씨가 독자들에게 주는 기분 좋은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이 잔뜩 있다는 그녀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늘 하루는 또 무엇을 할까. 반짝반짝. 오늘 하루는 또 무슨 일이 있을까. 반짝반짝. 생각만으로도 충만한 이 기분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저마다 반짝이는 일상이 한데 모인다면 얼마나 예쁜 반짝임을 낼지. 아마 그녀의 작품은 내 추천목록에서 빠지지 않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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