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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연기하라
로버트 고다드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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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에 책을 받았을 때, 표지에 있는 덥수룩한 수염에 강한 눈빛의 남자가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봤을 때 조금 섬뜩했고, 두꺼운 두께에 놀랐다. 하지만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흡인력 있는 소설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어지는 사건들은 마치 내 숨통을 조여오는 것처럼 긴박하고 처절하다. 주인공을 따라 허덕이며 마지막까지 왔을 때는, 정말 이젠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력이 대단한 소설이었다.  

 

 

토비라는 한물 간 연극배우가 등장한다. 그에겐 사랑하는 아내 제니가 있다. 아니 지금은 옆에 없지만 아직 이혼 수속이 끝나지 않은 제니가 다른 곳에 살고 있다. 그들에겐 피터라는 아이가 있었지만 세상의 빛을 본지 4년 6개월 만에 하늘 나라로 가버렸다. 그때부터 그들은 서로를 탓하며 결국엔 함께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가끔은 모든 일이 그렇게 꼬여 풀 수 없는 매듭이 되어 버리고 만다. 제니에겐 이미 로저라는 남자가 있고, 그들은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토비는 그저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 하며 퇴물이 된 자신의 배우 인생을 묵묵히 살아갈 뿐이다.

 

사건의 발생은 토비가 아내가 살고 있는 '브라이턴'에 순회 공연을 가면서 시작된다. 그저 아내가 사는 곳이라 반가웠을 뿐인데, 아내가 의논할 일이 있어 그를 불러내고, 아내의 주위를 맴도는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내도 돕고, 아내도 보고, 아내의 마음도 돌리고! 일석삼조라 생각한 그는 적극 아내를 돕기로 한다. 하지만 그 사내와 로저와 얽힌 사연들이 토니의 삶까지 파고 들어와 그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공연에 빠지게 되고, 살인 사건에 휘말리고, 빠져 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게 되는 토비. 끊임없이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만든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이별을 선택할 것인가. 죽음인가, 삶인가 하는 거창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물건들까지도 무수히 많은 선택들을 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들이 쌓여가면서 우리들의 일부를 만들어 나간다. 그 선택들이 자신의 가치이고, 자신의 존재로 증명되는 것이다. 토비는 아내를 사랑한 순간부터 자신이 궁지에 몰린 막바지까지 단 한 순간도 하나의 가치를 놓지 않았다. 바로 '사랑'이라는 자신이 가진 가치였다. 그래서 모든 선택은 그 사랑이 중심이 되어 돌아갔다.

 

 

제목이 '끝까지 연기하라'라는 점도 있었고, 주인공이 토비가 연극배우라는 점에서 나는 몇 장 읽지 않았을 때, 이 책의 내용이 어떠한 순간에도 연극배우임을 잊지 않는, 연기에 대한 애착이 강한 한 남자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연극을 하여 성공을 거두는 이야기가 아닐까 예상했었다. 하지만 몇 장 지나지 않아, 그는 이상한 예감에 휩싸여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 약속 때문에 공연에 막무가내로 빠진다. 연극 공연에 대한 어떤 사명감은 없어보여서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제목이 말하는 '연기'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것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기를 의미했다.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끝까지 연기하는 것. 비단 토비의 이야기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오가며, 비리와 배반이 오가면서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다른 캐릭터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삶의 무대에서 자신이 가진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때론 긴박하게, 때론 전전긍긍하며 우리를 따라오라고 손짓했던 이 소설의 메시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 마지막은 어떤 긍정의 흔적을 남기고 끝이 나서 기분좋은 여운으로 기억될 것 같다. 나 또한 내게 주어진 삶의 무대에서 끝까지 연기하는 존재가 되리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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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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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학창시절 딱히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우러러 볼 정도로, 도무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어떤 시간 속에서는 나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부모 대부분이 바라듯 내 친한 친구들은 꽤나 공부를 잘 하는 아이였다. 생각해보면 도무지 어떤 부분에서도 털끝만큼 따라갈 수 없는 아이와 교제를 한다는 건 나의 열등감을 더 키우는 일인지도 몰랐다. 공부 세계에서 늘 우등이었던 내 친구는 공부 외에 우정과 친구에 대해서는 늘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고, 사소한 감정 다툼에는 아예 감정을 배제했다. 휴일이나 주말에도 시간이 나면 교과서나 문제집을 꺼내 공부를 했고,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게 연필로 밑줄을 그었다가 마치 자신이 천재라도 되는 듯 그 연필자국들을 지우개로 깨끗이 지웠다.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는 이 친구는 내가 조금이라도 자신보다 먼저 어떤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하면 심장을 쿵쿵대며 더 열을 내어 공부를 했다. 시험기간에 밥을 먹을 땐 늘 시간을 재어 가며 먹은 뒤, 자리를 떠야했고, 수면시간을 줄이기 위해 링거 투혼은 일상이었다. 나는 그들의 세계에 속하고 싶으면서도 늘 숨막히는 그들 세계를 막연히 바라보며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며 깜깜한 운동장에 홀로 앉아 수없이 박힌 별들을 바라보는 조금은 현실 밖에 머물렀던 학생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공부라는 것이, 점수나 등수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아마 어른들에게 물어본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이 네 미래를 결정하는 거라고 빙그레 웃으며 말하겠지. 그러는 부모들은 얼마나 공부를 잘 했을까. 그저 아이를 자신의 방패수단이나 대리만족- 자신이 이루지 못한 혹은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 은 아니었을까.

 

 여기 등수에 목을 매는 윤아라는 아이가 있다. 학교 마치면 학원, 학원 마치면 과외, 과외 마치면 예습과 복습, 시험공부까지. 그녀에게 휴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집에서 밥 먹는 시간에는 엄마가 식탁에 마주보고 앉아 책을 읽어 주거나 영어 청취 교재를 들어야 할 때도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엄마는 더욱 열을 내어 윤아의 성적에 목을 맸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돌아왔다. (생계를 자신이 책임져야 했으므로) 그런 엄마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를 그저 잘 하는 일이 아닌, 1등을 하는 일이었다. 또한 공부 잘 하는 아이를 사귀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윤아에겐 그 모든 게 내키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어느 날, 윤아는 학원 가는 길 시간에 쫓겨가며 달려가는데 학원이 보이지 않았고, 곧 지각할 것만 같았다. 엄마의 잔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아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시간 가게'를 만난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십니까?

시간이 부족한 분께 시간을 드립니다.

-시간가게

p.10

 

당장 시간이 필요했던 -학원을 지각하지 않기 위한 - 윤아는 시간을 사기로 했다. 시간은 하루에 한 번 10분을 살 수 있었다.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의 버튼을 누르고,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시간을 떠올리기만 하면 오묘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시간이 멈추었다. - 지나가는 자동차, 움직이는 사람들과 시계 모든 것이.

 

 

나의 가장 행복한 시간과 당장 내게 주어진 현재의 10분을 맞바꾸는 일. 내가 보기엔 너무도 손해보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윤아에겐 지나간 과거보다는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 어쩌면 엄마가 정해놓은  - 1등을 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처럼 보였기에 그 거래는 성사될 수 있었다.

 

 윤아는 시간 가게를 만난 이후, 자신에게만 주어진 10분이 있었기에 멈춘 시간동은 컨닝을 할 수 있었고, 책을 펼쳐 시험을 볼 수 있었고, 학원에 늦지 않을 수 있었다. 대신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듯 지금까지 윤아를 만들어 온 행복한 기억들이 소리없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좋아했던 할머니와의 추억,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의 추억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나오는 한스 또한 윤아와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얼마나 알고, 왜 알아야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바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성적이었고,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도 모른 채 공부를 했다. 휴식시간들이 조금씩 줄어져 가고, 자신이 좋아하는 낚시, 산책 등의 취미생활은 어느새 그와 멀어져 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은 이미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굳어져 갔고, 공부만이 유일하게 그의 벗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마 그는 아는 것이 두 배나 많은 2등보다는 차라리 절반을 아는 1등이 되고 싶었으리라.

수레바퀴 아래서, p.79,80

 

 

  시간을 사고 난 뒤의 윤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했고,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던 친구와의 약속도 잊게 되고, 할머니의 애정어린 표현조차 불쾌하게 여겨졌다. 신학교에 가게 된 한스는 자주 두통이 찾아왔고, 조금이라도 산책을 할라치면 다리가 아파왔다. 시간낭비란 생각에 친구 사귀는 것도 거리를 두게 되었고, 어떻게든 공부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잃어 버린다는 것은 곧 자신을 잃는 것과 같다. 윤아와 한스는 결국 '공부'라는 틀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 없는 공부는 결국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건강한 삶은 모두 나름의 내용과 목표를 갖고 있지만 한스 기벤라트는 그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수레바퀴 아래서,p.162 

 

 자신을 되찾기 위해, 행복한 기억을 돌려받기 위해 다시 시간가게로 향하는 윤아. 하일너라는 친구를 통해 공부보다 더 소중한 것들, 더 아름다운 것들을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하는 한스. 윤아는 행복한 기억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자신의 시간 10분을 내어주는 거래를 하고 다시 돌아온다. 그에 반해 한스는 점차 공부와는 멀어지고 시와 몽상과 하일너에게 빠져든다.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문득 돌아보면 사라지고 없는 10분 동안 윤아의 기억 속엔 끊임없이 어떤 기억들이 쳐들어온다. 그것은 윤아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행복한 기억이었다. 우리가 선망하는 것들이 내 속으로 들어올 때, 내가 온전히 누리지 못한 것들이 결과적으로만 내게 침투했을 때 그것이 과연 진짜 행복이라 말할 수 있을까?

 

혼란, 방황, 어지러움, 두통. 이것은 마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주어진 고문 같다. 약을 달고 사는 윤아와 두통에 시달리는 한스. 누가 그들을 책임질 수 있을까?

 


 한스는 모두에게 버림받고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기분으로 작은 정원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있거나 숲속에 누워 꿈을 꾸거나 괴로운 생각에 잠겼다. 독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곧 머리와 눈이 아파왔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펴도 바로 수도원 시절과 그곳에서 느꼈던 두려움의 유령이 되살아났고, 그것은 숨막히는 불안한 꿈의 한구석으로 한스를 몰고 가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그를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수레바퀴 아래서, p.147

 

윤아의 마지막은 희망적이었으나 -앞으로의 삶이 어찌될 수 없고, 어쩌면 어린이들이 봐야하는 책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 한스의 마지막은 비극이었다.

 

 

같은 시각, 아버지가 그토록 혼을 내려고 별렸던 한스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시커먼 강물을 따라 조용히 골짜기 아래로 천천히 떠내려가고 있었다. 구역질도 수치심도 괴로움도 모두 그를 떠났다.

 -수레바퀴 아래서, p.213

 

  요즘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두세살의 아이들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채 느끼기도 전에 영어조기교육에 열을 올린다. 몇 개월부터 영어를 노출시키느냐가 그 아이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듯 전전긍긍하는 엄마들의 모습을 본다.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성과만을 원하는 부모들을 위해 매일 같은 문장을 하루종일 강제 주시, 강제 투입 시키고 있다. 그것만을 반복했기에 아이들의 입에서 그 문장이 나올 때면 엄마들은 만족한다. 내 아이가 누구보다 잘 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또한 누구보다도 잘 하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주는 스티커에 목을 매고,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칠판 뒤로 가서 자신에게 스티커를 몰래 붙여 놓는다. 도대체 여섯 살짜리 아이가 무엇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은 뒤틀린 사회가, 엉망인 교육이, 일그러진 욕망이 만들어낸 이 시대의 부모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도대체 아이들의 인생은 누가 책임져 줄 것인가. 죽은 뒤에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 공부보다도, 등수보다도, 눈에 보여지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아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한스의 비극이 우스꽝스러운 일처럼 여겨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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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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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밤. 매일 밤이 찾아온다. 똑같은 밤인 것처럼 보이지만 매일 다른 빛깔로, 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밤은 찾아온다. 밤에 이어 찾아오는 새벽, 그리고 새벽이 사라지는 시각 고개를 내미는 아침. 그 사이 사이 우리가 잠드는 시각, 어쩌면 그 시간들 속엔 우리들이 모르는 신비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어느 시간과 공간을 비집고 불쑥 내게 다가올 것만 같은 예감도 든다. 어쩌면 밤과 새벽 사이의 시간은 우리를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세계로 불현 데려갈지도 모른다.

 

 

세 명의 좀도둑이 오늘도 빈집 털기에 한창이다. 고아원 출신의 그들은 근근이 먹고 사는 백수들이다. 각기 사정이 있어 빈집 털기에 혈안이다. 그러다 오래 전 문 닫힌 '나미야 잡화점'이란 곳에 흘러 들어간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밤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기묘한 체험을 한다. 그곳의 시간은 바깥 쪽의 시간과 달리 흘러갔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그곳. 신비하고도 묘한 그곳.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도착한 편지. 그 속엔 한때 고민상담소로 불렸던 나미야 잡화점에 보내는 편지였다. 올림픽 국가 대표 선수로의 길을 가야할지, 죽을 병에 걸린 사랑하는 사람 옆을 지켜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찬 편지를 시작으로, 그들 세 명은 편지 흠뻑 빠져든다. 물론 처음부터 빠져든 것은 아니었지만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자신들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반갑고 기뻐서 그 행동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들 세 명이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쓰는 방식으로 글이 이어지다가 점차 각기 다른 주인공들의 시점으로 바뀌어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잠시도 손에 놓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미야 잡화점이 어디선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어 오늘밤에도 누군가를 위해 우유상자에 답장을 넣어둘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가수가 되고자 달려온 꿈과 생선가게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운명에의 갈등, 자신의 존재가 엄마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았다고 믿었던 한 소녀의 아픔, 얼른 경제력을 갖추어야만 하는 사무직 여성이 호스티스의 길로 가는 데에 있어서의 갈등, 비틀스 음악을 사랑했던 한 녀석이 부모의 야반도주로부터 벗어난 자신만의 삶 이야기까지... 그속엔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의 이야기들이 그득했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한 번쯤은 해봤던 고민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어 더욱더 몰입할 수 있었다.

 

어떤 농담에도 진지한 답장을 해주었던 나미야 잡화점 주인 할아버지. 미치도록 사랑했던 여인과 도주에 실패하며 자신을 돌아본 젊은 시절의 그때.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고민과 갈등, 그것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이야 말로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에 대해 고민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리라. 그래서 그는 결국 나오지 않은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선택이 잘한 일이었다고, 또한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편지를 그녀에게 보냈다. 그녀는 평생 그 편지를 간직하며 독신으로 살아갔고, 이 할아버지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진심어린 편지를 썼다. 그 편지는 어쩌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치유하는 방식이었으리라.

 

 

 ○월 ○일(여기에는 제사 날짜를 기입하도록 해라) 오전 0시부터 새벽까지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 창구가 부활합니다. 예전에 나미야 잡화점에서 상담 편지를 받으셨던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그 편지는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습니까? 도움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을까요. 기탄없는 의견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때처럼 가게의 셔터 우편함에 편지를 넣어주십시오. 꼭 부탁드립니다. P.188  

 

 

나미야 잡화점의 부활. 그것은 죽어서도 나미야 잡화점에 고민을 상담하러 편지를 넣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실어주기 위한 할아버지의 영혼이 깃든 날이 아니었나 싶다. 잠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순간 그들에게 기적이 찾아왔으니 말이다.  

 

사랑이 사랑했던 여인, 그 여인이 운영했던 환광원이라는 고아원. 그곳 출신인 좀도둑 세 명. 그리고 나미화 잡화점을 찾는 환광원 출신의 사람들. 그리고 환광원을 위험에 빠뜨리고 없애버리려고 수작을 벌이는 이들. 그들 사이에서 할아버지는 죽어서도 '사랑'을, '사람'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연결을 알아보기 위해 보냈던 좀도둑들의 백지 편지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의 현재에 답장으로 찾아온다. 진심어린 할아버지의 편지. 그 편지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들이 했던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의심했던 사람을 믿게 되고, 어쩌면 그들 인생을 바꿀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기적을 믿는다.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주 단순한 관심임을. 지극한 정성임을 기억하려고 한다. 세상에 하찮은 존재란 없다.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들의 기적은 이제 다른 방식으로 빛이 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는 나미화 잡화점에 홀딱 반해버렸고, 당장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어떤 고민이라도 들어줄 할아버지의 영혼을 가슴 벅차게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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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게의 전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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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 중에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다. 거기서 나오는 주인공들 중 좋은 책을 만드는 멋진 출판사를 꾸려나가는 것이 꿈인 '한정원'이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그녀는 좋은 집안에서 좋은 부모 밑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다 누린다. 하지만 그 드라마에서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가난한 집 딸이었는데, 병원의 실수로 아이가 뒤바뀌었다는 사실.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과연 그녀의 그 밝음과 삶을 긍정하는 성격은 상황이 바뀐 뒤에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내가 그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정원이라는 여자가 최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좋은 것들을 발견하는, 그래서 그걸 믿고 나아가는 힘과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시궁창 같은 삶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그러한 가운데 자신을 합리화 시키며 과연 선(善)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곤 했다. 아니 그것보다도 선이라는 것이 악에 맞대응하여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심은 언제나 고개를 가로 젓는 것으로 끝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희망 없어보이는 세상 속에서 책과 드라마 같은 예술 분야는 우리에게 언제나 '선'은 이겨야만 하고, 결국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단언해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러니 꼭 그 믿음을 버리지 말라고 말이다.

 

 '원숭이와 게의 전쟁'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나는 일본의 전래동화 내용을 알지 못했기에 어떤 내용일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전래동화 내용을 찾아 읽어보고 이 제목만큼 이 내용에 적합한 제목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교활한 원숭이가 착한 게를 속여서 게의 재산을 갈취한 후에 게를 죽여버리고, 이에 증오심에 가득 찬 게의 새끼들이 계략을 꾸며 원숭이를 죽여 복수한다는 내용이 그것이었다.

 

 마지마 미쓰키는 6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남편이 일하고 있다는 신주쿠 가부키초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가사키 외딴 섬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던 미쓰키는 연락이 되지 않는 남편 도모키를 만나러 무작정 그곳으로 갔지만 남편은 없고, 남편의 친구인 준페이를 만나게 된다. 준페이는 얼마 전 일어났던 뺑소니 사건의 범인을 두 눈으로 확인한 까닭으로 자수한 사람이 자신이 본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건에 연루되고, 도모키와 함께 그 사건에 발을 담그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진짜 범인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미나토임을 알게 되고, 그를 협박하여 돈을 얻어낼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엉뚱하게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게 된다. 정치와는 무관한 소시민인 그들에게 나타난 거대한 정치세력. 미나토가 죽인 사람은 집안의 원수인 '에노모토 요스케'였고, 그가 죽기 전에 가지고 있던 중요한 서류가 정치계에 비리가 잔뜩 담긴 거라 그것을 찾는데 혈안이 된 사람들과 맞서 거대한 거래를 하듯 준페이는 뜻밖에 국회의원 준비를 하게 된다.  고작 술집에서 일하던 한 남성이 자신의 고향에 내려가 사람들을 모아 문화적인 페스티벌을 열면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강력한 국회의원 후보를 몰아내어 결국엔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쾌거를 거머쥔다. 물론 그 과정에 있어서는 음모도 있었고, 그를 도와주려는 야쿠자 세력의 피해도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의 승리는 '선'하고 '약한' 자에 대한 보상 심리를 안겨주듯 후련하고 통쾌한 면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요시다 슈이치가 말한 자신이 원하는 세상의 한 모습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을 알아보듯이 거대한 힘이나 권력은 없지만 그들이 가진 에너지와 힘을 뿜어내며 조금씩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그 진심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주 작은 나비의 몸짓이었을지 모르나 결국 그 결과는 거대했고 엄청났다.

 

미나토 게이지의 비서였던 소노 유코는 평생 멋진 정치가를 키워 내는 것이 꿈이었는데 준페이를 통해 그 꿈을 실현하고, 어디서나 리더십을 발휘하며 문화적,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준페이는 국회의원에 당선됨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또한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신주쿠의 거리를 헤매던 마지마 미쓰키는 자신의 가게를 차리게 되고, 호스티스에 대한 별다른 재주가 없어보였던 도모키는 매니저로서의 삶의 도약기를 펼쳐낸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듯, 있는 듯 없는 듯 여겨졌던 각자의 존재감이 그들의 일상 속에서 조금씩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누구도 그 시작은 미미했을 것이다.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나중이 결정되는 것이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퍼뜨리는 사람들의 위력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사람들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또한 이 책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약자의 편에 서서 결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선'이라는 것이 승리하고야 만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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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번역 프리랜서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형섭은 출판사를 연결해주는 에이전시 측의 연락을 받고 한 카페에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는 먼저 카페에 도착했고, 카페의 문은 닫혀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새떼가 날아드는 소리에 이끌려 그 옆 레코드 가게로 향하고, 비틀즈의 노래였음을 알게 된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읽고 있는 레코드 가게의 한 여인. 텅 빈 공간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음악. 어디선가 일어난 듯한 광경을 보고 있는 듯한 묘한 기시감. 그날은 이상하게도 모든 게 다 어떤 강한 기운이 자신을 이끄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레코드 가게를 나와 늦게 도착한 에이전시 측 사람과 장소를 옮겨 이야기를 나누다가 출판사 측에서 전화가 와 술집에서 그들을 대접하고 싶다고 하고, 그렇게 이끌려 도착한 술집 '블루문'. 그곳에서부터 이미 뭔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형섭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한 남자다. 가끔 잃어버린 기억 때문에 자신의 존재까지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갔다.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나름 자리를 잘 굳혀가고 있던 중 신상무의 딸을 소개 받아 결혼에 골인한다. 그의 딸 승미는 사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고, 그녀를 사랑했기에 모든 걸 다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매일 술을 마시고, 자주 외박하며, 가정을 나몰라라 하면서도 언제나 형섭만은 그녀를 집에서 묵묵히 기다려주고, 이해해주기만을 바랐다. 그것은 결코 오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형섭조차 온전하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어쩌면 둘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도 닮아 있었으므로 서로를 견뎌낼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내 경우는 젊은 날이 공백 그 자체였다. 아무런 흥분도 없이 무기질 청년처럼 밋밋하게 이십대를 보냈던 것이다. 뒤늦게 엄습하는 이 야릇한 떨림은 그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 같은 것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근사한 추억의 성을 쌓고 싶은데, 그런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겠다. 추억을 만드는 것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이십대처럼 어느 정도느 무모해야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추억이 생기는 것이다. p.54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살아가는 형섭. 번역 프리랜서를 하며 겨우 겨우 끼니를 해결하며 별다른 일이 없이 살아가는 형섭에게 제법 큰 건의 번역일이 들어왔고, 어떤 이끌림으로 인해 레코드점에 들어갔고, 블루문이라는 술집에 들어가 준비된 아가씨와 오래도록 술을 마시며 출판사 측 사람과의 접촉을 기다렸으나 그 사람은 끝끝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난 날, 집으로 돌아오니 E라는 사람으로부터의 팩시밀리가 와 있었다.

 

 형섭에게서 잘려나간 과거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게 될 거라는. 그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벌레 구멍'을 찾아내게 되면 E가 누구인지 알게 될 거라는 내용의 팩시밀리.

 

 

 그렇게 해서 나는 형섭과 함께 그의 과거 속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걸어 들어갔다. 어떤 조합이, 어떤 시점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 호기심을 가득 품기도 하고, 아주 조금은 두려움에 떨기도 하면서 말이다.

 

 

 잃어버린 기억, 잘라나가버린 과거. 이것에 대해 오래 생각을 해봤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 일이 생겨나는 것일까. 그것은 형섭에게는 피하고 싶은, 들춰내기 싫은 상처였다. 덮어놓고 나면 그저 사라져버릴 줄 알았던 과거였다.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생각이 났다. 아오마메는 택시를 타고, 택시 속에서 들려오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듣고 있다가 어떤 지점에서 내려 구두를 신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곳은 1984년이 아닌 미래도 현재도 과거도 아닌 달이 두 개 떠 있는 다른 세계, 1Q84년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곳에서 전혀 다른 자기 자신을 만난다. 하지만 덴고와 아오마메는 서로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기에 그들은 각기 다른 상황, 다른 장소에 있지만 그들은 같은 세계를 살아간다고 볼 수 있었다.

 

 아오마메가 1Q84로 들어가게 된 통로는 음악이 있었고, 그들을 연결하는 세계를 상징하는 것은 달이 두 개 떠있다는 것이고, 그들의 만남은 '공기 번데기'의 형태가 있었다. 그 공기번데기는 아오마메의 형태이기도 했지만 덴고가 고쳐 쓴 소설이기도 했다.

 

 형섭은 레코드점에서 들려온 새떼 소리에 이끌려 간 곳에서 들려온 비틀즈의 음악. 그것을 시작으로 과거로 들어가는 문에는 벌레 구멍이 있었고, 블루문의 주인인 E가 늦은 밤 텅 빈 방에서 함께 있던 것은 누에고치였다. 그 누에고치는 바로 잃어버린 형섭의 과거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어린 시절 자신이 사랑한 유진이었다. 유진과 함께 늘 붙어다녔던 희배라는 친구가 바로 E였고, 그는 산 자가 아니라 이미 죽은 자였다. 그랬다. 유진과 희배는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과거였고, 잃어버린 기억이었고, 잘려나간 자신의 일부였다.

 

 

"모든 사람들이 시간에 대해 각기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면, 실은 모두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인 셈이잖아. 그렇다면 사람은 영원히 서로 만날 수 없는 존재란 뜻이겠지." p.219

 

"멀리인 가까이에, 혹은 가까운 멀리에. 우린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를 끌어아고 있는지도 몰라. 비록 마주 보고 있지만 너와 나 사이에는 굉장한 거리가 가로놓여 있어. 사람이란 서로에 대해 늘 그런 존재들인 거야." p.223

 

형섭이 사랑했던 유진. 아버지의 자살, 자살한 아버지의 얼굴을 본 유진. 죽은 아버지를 가장 먼저 발견한 유진. 어머니의 남자로부터의 성폭행. 그리고 희배 아버지와 유진의 아버지와의 만남과 관계. 그것을 본 희배. 그 이후로 유진을 못살게 굴던 희배. 형섭이 사랑한 유진. 죽고 싶어하는 유진.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게, 숨을 쉴 수 있게 자신의 목을 조여달라는 유진. 유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다른 세상으로 보내고 싶었던 형섭. 그 이후의 유진의 죽음. 유진과 함께 겪어냈던 모든 시간들이 형섭에겐 너무도 버거웠던 과거의 기억들.

 

 

"오늘 난 한 편의 옛날 영화를 보러 왔네. 영화가 끝나면 나는 내 공간으로 돌아갈 걸세. 현실의 세계로 말일세. 여기가 바로 내 벌레 구멍일세.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회복한 공간 말일세." p.301

 

 형섭, 희배, 유진을 연결시켜주며 다시 만나게 해준 처음과 끝은 바로 '옛날 영화' 였다. 영화와 함께 펼쳐지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는 흥미진진했고, 마음이 조금 저려왔다. 어쩌면 상처와 마주하는 우리들의 자세일지도 모르고,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 빠져나오기 위한 몸무림일지도 몰랐다.

 

 나는 죽은 자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동안 나를 지배하던 어둠, 곧 죽음의 그 음습한 그림자들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냄새도 맛도 보이는 것도 만져지는 것도 없는 이 무표정한 세계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나는 그가 내쉬는 긴 한숨 소리를 듣고 있었다. p.303,304

 

 

 어쨌든 형섭은 죽은 자의 곁이 아닌, 산 자의 곁에서 진짜 삶을 살아보기로 한다. 늘 죽음의 그림자를 등에 지고 살았고, 그 어떤 것에도 토를 달지 않고 과거를 잃은 채 살았지만 다시 한 번 살아낸 과거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은 것이다. 온 생애에를 거쳐 다시 만난 덴고와 아오마메처럼. 상처를 직면하기 두려워 마주할 수 없었던 자기자신을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사람처럼 그렇게 그는 레코드 가게에서 만난 선주와 함께 일상을 다시 한 번 새롭게 살아볼 작정인 듯 하다.

 

 다 읽고 나니, 이상하게도 누군가 내 가슴을 할퀴고 피를 낸 것처럼 아니 그 시간들을 이제 막 다 거쳐온 것처럼 숨가쁘고 처절해졌다. 그러면서 모든 게 희미해졌다. 아주 오래된 영화를 아주 오래 전 겪은 내 과거를 떠올리듯 보고나서 자막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제야 그것이 현실이 아닌 영화라는 걸 깨달은 사람처럼. 내내 어둠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영화관을 빠져나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멍한 시선처럼.

 

이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차가운 바람을 쐬며 현실의 시간 속으로, 내가 만들어낸 세계 속으로 용기있게 걸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간에 시간은 끊임없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아무리 무덤 속에 앉아 있다 하더라도 시간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나 기쁨 혹은 슬픔이나 괴로움처럼 어쩌다 끊어지고 이어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 완전히 동일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과거의 나와 완전히 동일한 나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차별없이 적용되고 똑같은 속도를 우리에게 부여한다.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순간순간을 깊이 사색하며 살아가는 거다. 시간은 모든 것에 평등하다. 나는 오늘 이 절대적 평등을 믿기로 한다. 이제부터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련다. 살아가며 느끼게 마련인 견딜 수 없는 고통, 용서되지 않는 시간, 이 추운 겨울의 막막함, 혼자라는 두려움 혹은 서툰 사랑 하나하나까지도 뜨겁게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가야지. 살아야겠다. p.30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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