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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냥
황인규 지음 / 인디페이퍼 / 202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 띠지에 '엄격한 중세 수도원에서 사라질 운명의 에피쿠로스학파 대 저작,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둘러싼 책 사냥꾼의 아찔한 지적 모험!'이란 문구를 보면서 예전에 빠져 읽었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떠오른다. <장미의 이름>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수도원에서 도서관의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2권을 둘러싼 각축 끝에 대도서관이 불에 타는 결말이라 인상 깊었다. 소설가 황인규 작품 <책사냥>에서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대상으로 어떤 지적 모험이 펼쳐질지 사뭇 기대가 크다.
으레 이탈리아의 로마나 어느 도시에서 이야기가 시작할 줄 알았는데, 생뚱맞게 한국에 있는 부산 광안리 어느 수녀원의 은퇴 신부가 나온다. 작가와 성직자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한 지 43년, 그때 로마 가톨릭 대학 시절의 공부했던 노트 하나가 <책사냥>의 본론으로 시작된다. '포조 브라치올리니', 초기 르네상스 인문주의 사상을 신학의 테두리 안에서 해석하고자 자료를 찾다가 바티칸 도서관의 비밀 장서고에서 발견한 인물이다.
포조는 평생 로마 교황청에서 일하다가 말년에 피렌체 공국의 서기장을 역임했지만, 젊을 때는 교황청 사무국의 스크립토르(필사가)로 들어가 고대 문헌을 발굴했던 책 사냥꾼이자 인문주의자였다. 비밀 장서고에서 발견한 문서에서 포조는 젊은 날의 어느 사흘간의 행적을 고백한다. 독일의 풀다 수도원을 찾아 수도원장과 면담하면서 콘스탄츠 공의회 이야기를 하게 된다. 종교개혁 바람이 휘몰고 있는 요하네스(요한) 23세 교황 후반시기의 콘스탄츠 공의회를 위주로 가톨릭 교회사가 담겨 있어 초기 르네상스 역사를 살짝 눈여겨볼 수 있다.
그리고 보물찾기 모험과 같은 세상에 묻혀 있는 귀중한 책을 찾아내어 세상에 알리는 책사냥 이야기가 시작된다. 포조에 의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이 세상에 나오게 된 내용은 책의 후반부에 펼쳐진다. <장미의 이름>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이 도서관과 함께 불타버렸지만, 포조는 무덤으로 갈뻔한 천년의 고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구해냈다. 거의 모든 내용이 팩트인 것 같은데, 어느 것이 픽션인지 잘 모르겠다.
저자의 세밀한 구성과 사건의 열거는 얼마나 치밀한 조사와 취재했을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장서관에서의 책을 구해내는 스토리마저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만큼 흥미진진하고 몰입하게 구성진 소설이다. 움베르트 에코 소설의 오마주라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줄거리다. 역사와 필사가의 책사냥이라는 재미난 주제와 함께 다양한 소재의 박물학적 지식은 작가가 그리 단순한 이야기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작가 황인규의 다른 작품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신작도 기대해봄 직하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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