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탐정 이상 5 - 거울방 환시기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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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거울방 환시기, 2020

  작가 – 김재희

 

 

 

 

 

  인천의 교동도라는 작은 섬에는 슈하트 학교라는서양식으로 소녀들을 교육하는 학교가 있다그곳에서 한 학생이 실종되었고그 부친이 이상과 구보에게 딸을 찾아달라 사건을 의뢰한다섬에 도착한 두 사람은 서양의 선진 문화와 신식교육을 가르친다는 교육 취지에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한다특히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은거울의 방이라는 장소였다규율을 지키지 않는 학생들을 가두는 곳인데사방이 거울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그러던 중사라졌던 학생이 죽은 채 발견되고 그 범인으로 이상이 지목되는데…….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다. 2012년에 첫 번째 이야기가 나왔으니, 8년 만에 끝을 맺는 셈이다. 8년 동안 다섯 권이라니왜 8권이 아닐까 하는 아쉬운 마음도 조금 든다이번 이야기는다른 네 권과 달리 단 한 개의 사건만 다루고 있다물론 그렇다고 사건이 딱 하나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마치 마술사가 입에서 끈을 계속해서 뱉어내듯이사건 하나를 파헤치니까 이어서 여러 사건이 줄줄이 이어졌다.

 

  막을 내리는 이야기답게앞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사람과의 인연이라든지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사건의 해답이 확실하게 끝을 냈다흐음그 당시에는 왜 마무리가 어정쩡하냐고 의아해했는데작가는 다 계획이 있었다다만 오랜만에 등장한 사람에 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안타까운 부분이 있을 뿐이다이 책의 시간적 배경은 앞선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다그렇지만 뭐랄까앞선 이야기들보다는 일제 치하라는 느낌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그냥 서구의 신문물이 한참 들어와서 혼란스러웠던 개화기 시대라는 인상이 더 와 닿았다.

 

  인천과 교동도 그리고 경성을 오가는 사건 속에서 이상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해 보였고구보는 그런 친구를 걱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그 와중에 학교에서는 기이한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학생들의 비밀스러운 증언은 교직원에 관한 의심에 불을 붙이고…….

 

  범인아니 그 조직의 주동자가 꾸민 계획은 참으로 교묘했다그런 부분까지 세세하게 계산해서 행동하다니하지만 그렇게 꼼꼼하게 짜놓은 계획이 너무 쉽게 무너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왜 범인들은 이중 삼중으로 대안을 짜놓지 않는 걸까자신의 계획이 너무 완벽해서 허점 따윈 없다고 자신했거나 상대를 너무 얕본 게 아닐까아니면 탐정이 주인공이 이야기라서그래도 이중 삼중으로 짜놓은 함정을 파헤치는 탐정이 더 멋있지 않을까 싶다교동도에서의 계획은 괜찮았는데 경성에서 벌인 일은 좀 허점이 많아 보였다그 당시에는 그게 제일 적합하고 나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지금의 시각으로 봐서 아쉬웠다는 거니까.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요즘은 범인의 사연 같은 건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범인이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궁금해서 그런 걸 밝히지 않은 작품을 보면 왜 안 알려줌?’하고 궁금해할 때도 있다그런데 또 어떨 때는왜 굳이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냐면서 너무 자세히 알려준다고 투덜거리기도 한다도대체 내 마음이지만나조차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이 책에서도 범인의 사정을 주절주절 설명하기 때문이다그것도 두 번이나한 번은 범인의 회상으로그리고 또 한 번은 이상의 설명으로어차피 비슷한 이야기니까 한 번으로 줄이면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시리즈를 이어가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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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Irregulers, 2021

  제작 톰 비드웰

  출연 매켈 데이비드새디아 그레이엄조조 마카리

 

 

 

 

 

 

  빅토리아 시대런던 뒷골목에는 비비와 제시’, ‘빌리’ 그리고 스파이크네 명의 친구가 함께 살고 있다제시는 환각을 보며 괴로워하고비비는 그런 동생을 안타까워하면서 무리의 대장 격으로 활동하고 있었다그러던 중비비는 왓슨이라는 남자에게서 사건 의뢰를 받는다아기들이 사라지는데그걸 조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어쩌다 신분을 숨기고 무리에 끼어든 레오폴드‘ 왕자까지다섯은 런던의 밤거리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뒤쫓는데…….

 

  베이커 221B, 왓슨여기까지 보면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기본 설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바로 셜록 홈즈’ 시리즈다그 시리즈를 보면셜록 홈즈가 거리의 정보를 모으기 위해 동네 꼬꼬마 아이들에게 의뢰하는 장면이 나온다아하그렇다면 이건 그 베이커 거리의 꼬꼬마들을 주연으로 내세운 드라마구나그런데 음아이들이 조사하는 게 일상적인 것이 아닌초자연적 사건이다까마귀를 조종해 갓난아이를 유괴하는 초능력자라든지 사람을 복제하는 마법을 쓰는 주술사 등등게다가 몇몇 사건들의 현장은 처참하고 끔찍하기까지 하다이거 왓슨이 이런 장면 보기 싫어서 애들을 고용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아니그러면 그건 그것대로 왓슨의 인성이……하여간 셜록 홈즈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실존 인물을 들이밀면서 기괴한 초자연적 사건을 해결하는그런 성격의 드라마였다.

 

  주인공인 비비가 동양계이고왓슨이 흑인인데 그건 뭐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제일 신경 쓰이고 거슬리는 건셜록 홈즈와 왓슨의 성격이었다언제였더라! ‘에놀라 홈즈 Enola Holmes, 2020’에서도 느꼈던 부분이다스핀 오프 격으로 시리즈를 만들려면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게 있다오리지널에 해당하는 원조의 기본 설정을 지켜주는 것이다. ‘CSI 시리즈나 크리미날 마인드 시리즈에서 스핀 오프 격에 해당하는 다른 지부들의 이야기를 만들면서원조그러니까 라스베가스’ 지부나 ‘BAU’ 팀을 완전 개차반으로 만들어 버리면 과연 그 시리즈를 사람들이 좋아했을까이미 끝난 드라마지만지금도 사람들이 추억에 젖어 이야기하거나 케이블 TV에서 재방영을 하고 사람들이 찾아보고 그럴까아닐 거다.

 

  그런데 왜 셜록 홈즈의 스핀 오프격이라고 말할 수 있는아니스핀 오프도 되지 못하고 기본 설정을 따와서 만드는 시리즈들은 왜 오리지널을 엉망으로 만드는지 모르겠다솔직히 에놀라 홈즈에 나오는 마이크로프트나 셜록 캐릭터의 성격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여기에서는 더 형편없다각본가가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어보기나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이건 스포일러가 될 거 같은데…….

 

  그냥 뒷골목 아이들의 이야기로 만들어도 꽤 재미있을 거 같은데굳이쓸데없이셜록 홈즈와 엮으면서 어정쩡하고 이상한 드라마로 만들었다원작을 보면 셜록 홈즈가 기분 전환으로 약을 하는 게 나오긴 하는데여기서는 완전 약쟁이 폐인으로 만들었고왓슨은 개XX 사이코패스가 되어버렸다마이크로프트는 병X으로 나오고 말이다드라마의 주연인 비비를 띄워주기 위해서세 사람을 그렇게까지 바닥으로 내몰 필요가 있을까 싶다셜록은 셜록 대로비비는 비비 대로 각자의 분야에서 활약하는 방향으로 만들 수도 있는데 말이다.

 

  보기 시작한 거라서 꾸역꾸역 시즌 1을 끝까지 다 보긴 했는데, 2시즌은 아마 안 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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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콜링
제이슨 스톤 감독, 토퍼 그레이스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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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Calling , 2014

  감독 제이슨 스톤

  출연 수잔 서랜든길 벨로우스엘렌 버스틴토퍼 그레이스도널드 서덜랜드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한 여인이 집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한다경찰은 몇 년 만에 벌어진 살인 사건에 총력을 기울이지만연이어 사람들이 죽은 채로 발견된다그들의 공통점은 나이가 많거나 병을 앓아왔고 천주교 신자라는 것그리고 입을 벌리고 죽었다는 것이다경찰은 언어학 교수인 신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그들이 ‘Libera 자유라는 단어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그리고 마침내 경찰은 범인의 목표를 알아차리는데…….

 

  조용한 마을연쇄 살인종교그리고 자유키워드를 보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광신도에 의한 살인일까 아니면 믿음 때문에 벌어진 살인 같은 자살일까거기다 보안관의 알코올 또는 약물 중독 증세와 불안정한 심리 그리고 그리 좋지 않은 가정 분위기까지 더해지면이런 추론을 할 수 있다이 보안관 경찰 고위층과 마찰을 빚고부하직원 통솔에도 어려움이 있겠네조사하던 경찰 한 명이 죽고 그 책임감 때문에 폭주하는 거 아냐?

 

  그렇다영화는 그런 가설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특이한 건보안관이 여자라는 점그렇다고 해서 여자라서 무시당하거나 차별받는 건 보이지 않았다보안관이 고위층과 싸우는 건그녀의 중독 증세와 신경질적인 태도 때문이다하긴 나라도 약물 혐의가 있는 직원이 증거도 없이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아니꼽긴 할 것이다또 약이나 술 처먹고 헛소리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하여간 영화는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경찰과 신부의 고군분투기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했지만뭐랄까……신앙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만 남기고 끝난다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신앙심 때문에범인은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죄책감 없이 죽일 수 있었다희생자들 또한그의 현란한 말솜씨에 넘어갔는지 아니면 역시 깊은 신앙심 때문인지그의 행동에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았다하긴 요즘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신앙심이 깊으면 못 할 일이 없어 보이긴 하다그러니까 영화에서처럼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도 있을 것이다.

 

  범행 현장은 끔찍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드러나지도 않았고범인과 경찰의 머리싸움도 그리 돋보이지 않았다중요한 힌트나 범인의 동기는신부의 입에서 다 나왔다이 정도면 신부가 범인 내지는 공범이 아닐까 싶었다설마 고해성사로 범인을 알지만말은 못 하고 힌트만 주는 걸까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그런 건 나오지 않았다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뜬금없이 초면인 경찰에게 성경의 비밀이나 숨겨진 비화를 얘기해줄 리가 없다아니면 신부에게 능력이 있어서경찰은 단어 하나만 보여줬지만 이거 알아연쇄 살인에 사용된 단어구나이 단어를 썼다는 건 범인이 연쇄살인마고 목표는 바로 그거지.’라고 금방 알아차릴 수 있거나 말이다그것도 아니면 이미 비슷한 짓을 저지른 자가 여러 명 있어서딱 보자마자 알 수 있었거나.

 

  그래서 분명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경찰이 뒤를 쫓는 영화지만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신부의 엄청난 힌트가 주어진 다음범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그래서 중반 이후 범인의 정체와 목표가 드러나면서없던 긴장감은 찾아볼 수가 없어졌다영화는 이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메울까 고민하는 것 같았다.

 

  결말은 너무 쉽고 허무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마무리 지어졌고마지막 장면은 이게 뭔가 하는 허탈감만 줬다이런 마무리는 귀신이나 악마가 등장하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거 아닌가?

 

  힌트가 너무 쉽고 빠르게 드러났고마무리는 너무 급했고 어정쩡했다설정은 흥미로웠는데흐름은 그 흥미를 마이너스로 깎아버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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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Slasher : Solstice. 2019

  제작 아론 마틴

  주연 케이티 맥그라스브랜던 제이 맥라렌스티브 바이어스

 

 

 

 

  1년 전하지 파티가 열리던 밤, ‘키트라는 남자가 괴한의 습격을 받는다아파트를 돌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돕지 않았고결국 그는 죽고 만다그리고 1년 후또다시 하지가 돌아왔고 작년의 그 괴한이 나타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는데…….

 

  슬래셔 시즌 3의 부제는 하지의 살인이다하지라고 하니하지 축제가 생각나고 자연스레 영화 미드소마 Midsommar, 2019’가 떠오른다우리는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지에 집에서 팥죽을 끓여 먹는데외국은 밤이 제일 짧다는 하지에 광란의 파티를 벌이는 모양이다살인은 덤이고 말이다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먹는 것이 남는 것이고이불 밖은 위험하다.

 

  드라마는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만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새벽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첫 번째 희생자가 등장하면서 마지막 생존자가 아파트를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그리고 1년 전 키트의 사망 이후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왜 그들은 목격자이자 방관자여야 했는지그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교차 편집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아파트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정치적 성향 그리고 다양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차별과 혐오광적인 집착 그리고 SNS를 통해드라마는 지구 온난화나 환경 보호 같은 문제를 제외한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점을 건드리고 있었다.

 

  희생자가 참수당했다는 이유로참수형을 하는 건 무슬림 테러단체이기에, ‘사디아는 다른 아이들에게서 테러리스트라 불리며 린치를 당했다그런 그녀를 도와주는 건레즈비언 커플의 자식인 과 코너’ 젠과 코너 남매는 어머니가 자살한 이후정신이 망가진 어머니의 애인 엠버를 돌보며 살고 있었다. ‘은 백인 우월주의자에 동성애자는 물론이고 인종 차별주의자였다아마 거의 모든 것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람인 것 같다심지어 자기 딸도 말이다그는 아파트의 다른 주민들을 무시하고 경멸한다당연히 사디아나 젠과 코너 남매는 그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다. ‘바이올렛은 조회 수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남편과의 관계가 점차 서먹해지지만그것마저 자신의 유튜브 홍보에 이용한다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양심은 오래전에 팔아먹은 모양이다.

 

  제목답게살인마는 사람들을 엄청 잔인하게 죽여나간다집 안에 있는 물건이 흉기로 변하는 모습은 으아……핸드 블렌더가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평소에도 하고 있었는데여기서는 진짜로 위험하다고 확실히 못을 박아준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는 시리즈였다그리고 퍼가요는 나쁜 거다은행이나 카드 회사가 퍼가는 것도 기분 나쁜데, SNS의 퍼가요도 그리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 드는 건그 아파트는 관리사무소나 부녀회 내지는 경비실 같은 게 없었나지하실에서 누군가 뭔가 하는 걸어째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어떻게 그럴 수 있지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드라마 진행이 너무 쉬워질 것 같아서 뺀 건가아니면 미국은 원래 그런 존재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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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심령학자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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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배명훈

 

 

 

 

  스승인 문 박사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조은수는 박사의 연구 기록을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된다문 박사는 고고심령학계의 대가였지만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보다는 연구에 집중하는 걸 즐겼다그래서 대중적인 인지도는 별로 없지만학계에서 박사를 빼놓고는 고고심령학을 말할 수 없었다그러던 중안개 낀 새벽마다 서울에 거대한 검은 성벽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괴현상이 일어난다카메라에 찍히지는 않지만많은 사람이 그것을 보았고 존재를 느꼈다그리고 성벽이 나타난 날은자살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증하는 기현상까지 일어난다은수는 동료인 김은경과 문 박사의 지인인 파키노티 박사와 함께이 현상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한다장벽은 왜 나타나고사람들은 왜 죽어 나가는 걸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하지만, ‘고고심령학이라는 학문은 없다작가가 고고학과 심령학을 결합하여 만들어낸창작의 산물이다시간적 배경이 현대이고 사건이 벌어지는 서울역이나 용산 같은 장소는 실제 있는 곳이긴 하지만현재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고고심령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려면귀신의 존재를 학문적으로 인정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이 작품에서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고이를 이용해 고고학적인 연구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나온다그래서 고고심령학과에 처음 입학하면오래전에 살았던 어린아이의 유령을 만나는 게 통과의례였다그리고 그 학과에는주기적으로 조은수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이 입학한다이 대목에서는 온다 리쿠의 소설 여섯 번째 사요코 六番目小夜子가 떠올랐다물론 조은수와 사요코 두 존재의 분위기는 좀 다르지만.

 

  이 책에서는 고고심령학이라는 말 외에도, ‘요새빙의 要塞憑依라는 단어가 등장한다단어의 뜻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서처음 봤을 때는 무슨 의미인지 와닿지 않았다읽다 보면 이런 의미구나라고 짐작이 가는데사실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그냥 엄청난 대재앙이 벌어진다는 것 정도만 추측할 뿐이다이 책의 세계관에서는이런 단어가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유령이 존재한다는 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말이다어떻게 보면 불친절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그냥 내가 그 세계에 던져졌다고 생각하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진다그래서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걸까?

 

  책은 나라별로 다른 장기 규칙과 구전 동요에 관한 학문적인 토론이 나와서얼핏 보면 복잡하거나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그런데 읽다 보면그런 처음 생각은 싹 사라진다대신 코끼리와 소년의 우정과 집착약속에 집중하게 된다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코끼리 쇼 같은 건 사라져야 한다는 거였다이 지구상에서 상아 때문에 사냥당하고 서커스에서 고통받는 코끼리 없게 해주세요이런 마음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초반의 우려와 달리중후반으로 갈수록 눈을 뗄 수 없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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