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Inheritance, 2020
감독 - 본 스테인
출연 - 릴리 콜린스, 사이먼 페그, 코니 닐슨, 체이스 크로포드
부유한 정치가인 ‘아처 먼로’가 갑자기 사망한다. 유언장을 펼쳐보니, 뜻밖에도 부인과 아들에게는 엄청난 유산을 물려주고 딸 ‘로렌’에게는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변호사는 남들 모르게 비밀리에 봉투 하나를 건넨다. 아버지가 그녀에게만 남긴 것이라면서 말이다. 봉투에 있던 USB의 영상을 본 로렌은, 지하 벙커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30년 동안 갇혀 있었다는 남자 ‘모건’을 만나게 되는데…….
주연을 맡은 두 배우가 익숙하다. 우선 릴리 콜린스는 영화 ‘백설공주 Mirror, Mirror, 2012’에서 처음 봤고, 사이먼 페그는 명작 ‘새벽의 황당한 저주 Shaun Of The Dead, 2004’로 얼굴을 익힌 배우였다. 사이먼 페그는 주로 코미디물에서만 접했던 배우였기에, 스릴러 장르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도 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아쉬웠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설정을 밝혀야 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하겠다.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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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지하 벙커에 갇혀서 악과 독으로 똘똘 뭉친 남자와 사회 물은 먹었지만 그렇다고 찌들지 않은 젊은 검사의 심리 대결로 이어진다. 아니, 이어질 뻔했다. 거의 반평생을 갇혀 살면서 악의로 가득한 사람을 상대하기엔, 상대가 너무 순진했다. 그러니까 범죄자의 거짓에 휘둘리다가 진실을 알고 충격과 공포에 놀란 꼬꼬마 검사의 고군분투기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버지는 딸에게 저 사람의 처분을 맡겼는지 몰랐다. 남자가 자신이 갇혔던 이유라고 얘기한 게 말이 되지 않았다. 교통사고의 공범이자 목격자이기에 가뒀다고? 그리고 30년 동안 가둬두고 가끔 찾아와 얘기하고 게임을 하고 그랬다고? 그냥 아버지가 그 남자를 너무 사랑해서 납치 감금했다는 게 더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딸은 그걸 믿었다! 검사라면서! 자기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은 희생자를 몰래 묻을 정도의 사람인데, 겨우 공범의 협박이 무서워서 평생을 가뒀다고? 그런 말을 믿은 거야? 어떻게 검사가 범죄자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어? 설마 범죄자들 사이에서 호구 검사라고 불리는 거 아냐? 다른 뭔가가 있는지 왜 조사 안 해? 영화 초반에 강성이고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걸 보여주는데, 후반에서는 그런 성격이 완전히 무너진다. 막말로 그를 풀어주면 어디 가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일지 모르는데, 그걸 허용한다고? 범죄자가 안 그러겠다는 말을 믿어? 30년 동안 독을 품은 남자의 말을?
결말 부분에 가면, 진짜 이유가 나온다. 왜 로렌만 유산을 적게 받았는지, 왜 그의 처분을 그녀에게 맡겼는지 말이다. 그는 교통사고의 공범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엄마를 강간한 남자였다. 그러니까 로렌은 모건의 딸이었다. 만약 아처가 모건을 가둬두고 그의 딸이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며 자라는 모습을 복수라고 생각했으면, 30년 동안 가둬둔 이유로 충분하다. 그런데 그것도 모건이 로렌에 대한 애정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영화를 보면, 모건은 로렌에게 애정이 거의 없었다. 차라리 한두 살 때까지 로렌을 모건과 만나게 해서 딸이라는 인식이 생긴 다음 빼앗았다면, 더 괴로웠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다른 방법도 많은데 굳이…….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든다. 아처는 무슨 생각으로 로렌에게 그를 떠넘겼을까? 아마 그는 로렌을 진심으로 딸로 여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사랑했다면, 그녀를 자기 친딸로 여겼다면 절대로 그녀에게 진실을 알 기회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모건에 관해 알 수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아처가 죽고 아무도 방문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는 굶어 죽지 않았을까? 아, 혹시 재개발해서 땅을 파헤쳤을 때 시체가 나올까 봐 겁먹은 걸까? 그런 거였구나. 시체 처리를 맡겼는데 애가 너무 순진해서 넘어가고 만 거였구나. 아니면 로렌의 출생마저 용납할 수 없어서 존재 자체가 죄악이라 생각해, 그녀에게도 복수하고 싶었던 걸까?
초반까지는 긴장감도 적당하고 둘의 대결이 흥미로웠는데,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이게 뭐야라는 생각과 함께 좀 지루했다. 용두사미가 된 거 같은 영화였다. 특히 ‘아임 유어 파더!’라는 대사가 너무도 밋밋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 유명한 대사가 나온 작품은 부자간의 대립이 극에 달했을 때 나와 충격이 컸지만, 이 영화는 흐름이 지루해지고 어느 정도 그럴 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을 때 나와서인지 그냥 그랬다.
나름대로 연기 괜찮게 한다는 소문이 있는 배우와 괜찮은 설정으로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이건 마치 상급 한우를 잘 구워보겠다고 하다가 너무 구워서 뻣뻣하고 질기며 바싹 마른 나뭇가지로 만들어버린 느낌이랄까? 육포도 잘 만들면 맛있는데, 이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