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사람과 동물
지사동(지구와 사람과 동물) 지음 / 애니북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작가 - 지사동(지구와 사람과 동물)






  인간들이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지만, 이 지구에는 인간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한다. 그 생명체들 중에는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종류도 있고, 인간에 의해 사라진 부류도 있으며, 인간이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유형도 있다. 이 책은, 세 번째를 제외한 다른 두 유형에 속하는 생명체, 그 중에서도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미 멸종한 태즈메이니아늑대부터 조만간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는 오랑우탄, 가마우지, 갈라파고스 땅 거북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황소까지 총 열 여섯 종류의 동물이 등장한다.



  동물들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멸종하는 건, 대개 그들이 살던 환경이 바뀌거나 사라지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 왜 환경이 변했을까? 공룡처럼 운석이 갑자기 떨어지는 불가항력적인 일을 빼고, 대부분의 환경 변화는 거의 인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는 100% 확실히 인간 때문에 일어난 문제이다. 그러니까 동물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거의 인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과 관련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누가 사고를 당하거나 죽어도, 내가 아는 사람이 포함되지 않으면 신문 시가의 글자 그 이상의 의미는 갖지 않는다. 우리가 말 한마디 섞지 않은 외국 사람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도, 그 사람을 나 혼자라도 알고 있고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거나 뭔가 공감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지 로메로’감독이 사망했을 때,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난 무척 슬펐다. 하지만 그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냥 외국인 한 명이 죽은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동물이 멸종위기에 처해있다고 아무리 주위에서 얘기해봤자, 알지도 못하고 공감되는 것도 없으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미 멸종한 거 뭐 어쩌라고, 숲을 보호하자고? 왜? 인간이 먼저 살아야지. 말도 못하는 동물 그거 없으면 좀 어때서?’ 이런 반응이 먼저 나올 수도 있다.



  이 책은, 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삶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들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지금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보여준다. 그걸 보면서, ‘이 동물은 이렇게 생겼고 이런 습성을 갖고 있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몰랐던 그들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를 준다. 이제 그들과 인간은 아무 접점이 없는 관계가 아니라, 적어도 하나둘은 알고 있는 사이가 된다. 그러니 이제 멸종되거나 그런 위험에 처한 동물의 기사를 보면, 예전보다는 관심을 더 기울이게 된다. 그런 의미로 만화로 접근한 이 책의 방식은 무척 좋았다. 아무래도 줄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어쩐지 너무 의미 부여를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굳이 그들의 독특한 생활방식에서 인간적인 교훈을 찾아야 했을까? 물론 동물들에게서도 본받을 점이 무척 많다. 하지만 매번 교훈적인 마무리와 감동을 부여하려다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이건 좀 억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너무 인간위주의 시각으로 해석한 것은 아닐까? 어떻게 보면 다큐 만화라기보다는 우화 만화에 더 가까웠다.


  그런 점만 빼면,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2 - 중국의 여명에서 로마의 황혼까지
래리 고닉 글.그림, 이희재 옮김 / 궁리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 - The Cartoon History of the Universe II

  부제 - 중국의 여명에서 로마의 황혼까지

  저자 - 래리 고닉





  이 시리즈의 1권 리뷰를 언제 올렸나 검색해봤더니, 세상에! 무려 3년 전이었다. 예전에 보았던 1권과 개정판으로 나온 1권의 미묘한 차이 때문에, 그냥 책장에 모셔둔 지 어언 3년. 예전에 1,2권을 읽은 기억이 서서히 지워질 때쯤 되니, 다시 시동을 걸어보기로 했다.



  이번 책에서는 중국과 인도, 그리고 로마 시대를 다루고 있다. 사회생활도 다루고 있지만, 아무래도 저 시기에 발생한 여러 종교와 사상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와 거기에 얽힌 여러 가지 신화와 이야기, 그리고 문학 작품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불교의 발생과 기본 교리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중국에서는 요순시대를 지나 춘추전국시대를 다루면서, 공자와 맹자 그리고 법가와 같은 여러 사상가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진시황의 출생의 비밀(...)과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한나라 말기의 상황도 다룬다. 마지막으로 로마에서는 로마의 건국신화와 귀족과 시민의 대립과 전쟁, 그리고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같은 여러 가지 정치가들의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거기다 그 시대에 발생한 기독교에 대한 얘기도 들어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감탄하게 된다. 세계사에 대한 저자의 방대한 지식도 그렇지만, 그걸 핵심적인 내용만 간추리면서도 부가적인 설명까지 놓치지 않는 편집 실력에 놀란다. 그뿐인가? 각 나라와 인물별로 특징을 잘 살린 그림 역시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면서 재미도 있으니, 저자는 금손에 능력자라고밖에 할 수 없다. 덧붙여서 사는 지역과 직업, 그리고 직위에 따라 다른 인물들의 옷차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런데 의문이 들었다. 왜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사투리를 쓰는 걸까? 앞에서는 표준말을 하다가 갑자기 어느 페이지에서는 사투리를 쓰기도 한다. 왜 그렇게 번역했는지 잘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은 이제 개를 키우지 않는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 - 澤村さん家はもう犬を飼わない, 2015

   작가 - 마스다 미리







  다작하는 작가 마스다 미리의 신작이다. 일본에서는 몇 년 전에 나온 모양이다. 음, 예전 작품까지 주르르 나오기에 다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이 시리즈는 ‘평균 연령 60세’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노년의 부모와 독신인 딸이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세 사람의 나이 평균이 60세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점점 노령화되어가는 사회를 은근히 말하는 것 같다. 아무리 노인이 두 사람이나 있다고 해도, 어린 아이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평균 연령이 내려갔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노령화 사회에 대한 불안이나 결혼하지 않는 젊은 세대에 대한 비판적인 얘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대신 나이 듦과 그에 대비하는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70세와 69세 밖에 되지 않은 ‘시로’와 ‘노리에’ 부부는 아직 한창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죽음에 대해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장례식에 어떤 노래를 틀면 좋을지 고르기도 하고, 통장이라든지 보험 관련 자료들을 딸에게 알려주는 등등, 어떻게 보면 딸에게 상당히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면서 동시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준비한다. 그러면서 노년의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고 행동에 옮긴다. 예를 들면 좋아하던 DVD를 빌려보는 것으로 모자라 남에게 전파도 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보겠다 다짐도 하고 ‘좋은 일’을 찾으며 흐뭇해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사소한 것에서도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저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0세인 딸 ‘히토미’는 혼자 살아간다는 것에 생각한다. 지금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지만, 나중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도 하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물론 아직도 창창한데 자기들이 죽으면 이렇게 하라는 얘기를 하거나 혼자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부모의 말에 화도 내지만 말이다. 그나마 그녀에게 다행인 것은, 아직 독신인 친구들이 곁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하나 남은 친구마저 결혼하고 나면, 그 기분은 참……. 히토미는 자기가 얼마나 행운인지 알까? 부럽다…….



  끝부분에 예전에 개를 길렀을 때의 이야기가 짧게 수록되어있는데, 그 에피소드의 제목은 ‘사와무라 씨 댁이 4인 가족이었던 시절’이다. 하아, 읽으면서 어릴 적에 길렀던 강아지 생각도 나고, 그 녀석이 죽었을 때 펑펑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끝까지 읽고 다시 처음부터 보니, 어딘지 모르게 책의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왜 70밖에 되지 않은 사와무라 부부가 자기들의 죽음 이후에 대해 준비하려고 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작가의 다른 이야기들처럼, 이 책 역시 무척이나 잔잔하다. 잔잔해도 너~무 잔잔하다. 이렇다 할 별다른 사건도 없고 어떻게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한 가족의 일상인데, 그러면서 또 갑자기 마음을 훅 치고 들어오기도 한다. 하긴 그게 이 작가의 매력이긴 하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가 나오길 기다린다. 위에서 다작하는 작가라고 했지만, 솔직히 이 작가는 다작해주길 바라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의 시간 -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제 -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원제 - お茶の時間, 2016

  저자 - 마스다 미리







  읽을 때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내가 가지 않았던 새로운 세상을 엿볼 기회를 주는 작가들이 몇 명 있다. 그 중의 한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마스다 미리'이다. 처음에는 수짱을 주인공으로 하는 감수성 짙은 만화를 그린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쓴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만화가 아닌 글로 접한 그녀의 세계는 어쩐지 여운을 많이 남기는 내용이었다. 이후 그녀가 자신의 일상을 그린 만화를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저자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전에도 언급한 것 같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줄거리를 적을 수가 없다. 에피소드별로 사건이 나뉘어져있고, 그녀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몇 줄로 요약하기엔 간단하지가 않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남들과 약간은 다른 생각의 흐름과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파악하는 시선, 그리고 다양한듯하면서도 언제나 한 가지 주제로 뻗어가는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 차의 시간 역시 그런 저자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전체적인 얘기를 하자면, 저자가 그동안 차와 함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타인을 바라보면서 듣고 생각하고 느꼈던 감정들에 대한 만화이다. 보통의 쇼트케이크보다 좀 비싼 종류를 먹으면서 느낀 행복이라든지 독특한 버터빵을 먹으면서 엄마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든지 카페에서 공부를 강요하는 엄마와 어린 딸을 보고 느낀 당혹감과 어린 시절의 추억 등등. 물론 카페에 갔던 일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신칸센에서 마시는 차의 맛이라든지 부모님과 함께 할 때의 느낌 같은 것도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 차 한 잔을 마시면서 그렇게 많은 생각과 반성과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좀 놀라웠고 부러웠다.



  위에도 적었지만, 저자의 생각은 자유로우면서 동시에 한 가지 주제를 얘기하고 있었다.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자신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반성과 희망을 얘기한다. 그런 그녀의 태도는 대사에서 알 수 있다. 그에게 차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생각하는 세계로의 초대장과 같은 게 아닐까?




  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차를 마시는지 되짚어봤다. 음, 우선 난 주로 커피를 마신다.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체질이기에 내가 마실 수 있는 종류는 아메리카노 하나뿐이다, 아쉽게도. 한때는 홍차를 많이 마셨는데, 얼음 넣은 홍차는 별로여서 다시 커피로 돌아왔다. 일을 거의 해놓고 여유가 생겼을 때, 모니터를 앞에 두고 커피를 준비한다. 요즘은 날이 더워 얼음을 가득 넣어 마시는데, 뉴스나 게시 글에 집중하다보면 반 넘게 녹아버릴 때도 있다. 아니면 책을 읽으면서 마시려고 할 때도 있는데, 책을 읽다보면 커피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냥 한가하게 차를 마시면서 사람들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나에게 차 마시는 시간은 온전히 쉬면서 사색에 잠기는 것이 아닌, 다른 일에 부수적으로 딸린 시간이었다. 맹물은 맛이 없으니까 대신 먹는 느낌? 조만간 나에게도 차만의 시간을 줘봐야겠다.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상상을 하면서 사람들을 볼까?



 근데 마스다 미리 실망이다. 케이크 한 조각에 배부르다니! 어째서? 원래 사람은 밥배 케이크배 따로 있는 거 아닌가? 그리고 디저트 카페에 가면 밥배가 자연스레 케이크배로 바뀌면서, 거기 있는 케이크 다는 아니어도 반은 먹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 사은품으로 온 뭐라고 해야하지 프레임? 하여간 이 사진들을 찍기 위해 엄청 머리를 굴렸다. 우선 책과 내 보틀을 먼저 찍고, 휴대 전화위에 프레임을 올려놓고 맞춘 다음 아이패드로 찍어서 멜로 보낸 다음 음 크기를 조절했다. 두번째 사진은 프레임의 말 칸에 맞워서 폰에 글을 쓰고 그 위에 프레임을 올린 다음 아이패드로 찍어서 멜로 보내고 이하 생략...나 좀 천재인듯 ㅋ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왕조실톡 5 - 두 명의 왕비 조선왕조실톡 5
무적핑크 지음, 와이랩(YLAB) 기획, 이한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제 - 두 명의 왕비

  작가 - 무적핑크

  감수 - 이한






  어째서인지 이 시리즈 5권이 없다는 사실에 부랴부랴 주문을 했다. 어쩐지 6권을 읽는데 이상하더라니……. 이번 5권은 부제에서 보면 알 수 있지만, 조선 왕조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바로 ‘인현왕후’와 ‘장희빈’이다. 요즘이야 그 모든 일이 ‘숙종’의 계략대로가 아닐까하는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예전에 숙종은 그야말로 유약하고 존재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인물이었다. 하여간 이번 책은 ‘인조’의 결혼에서부터 시작해서, 현종 대에 일어난 ‘예송논쟁’을 거쳐, 두 왕비의 교체로 유명한 숙종 시대 그리고 뒤를 이은 ‘경종’까지 다루고 있다.




  표지를 보자, 풍선껌을 씹고 있는 예쁜 왕비와 선글라스를 낀 왕비가 대립하고 있다. 보자마자 누군지 짐작이 간다. 껌 씹는 왕비 옆에 서서 선글라스 낀 왕비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슬픈 표정의 어린 왕자는 아마 경종이 아닐까? 두 어머니 사이에서 방황해야했던 그의 아픔이 느껴진다. 그리고 왕비에 안긴 왕은 누굴까? 책을 읽고 다시 보니, 아마 현종이 아닐까 싶다.



  전에는 예송논쟁이 왜 그리 문제가 되나 싶었다. 아무 것도 아닌 상복 입는 일에 왜 그리 자존심과 핏대를 내세우나 생각했는데, 헐 그게 아니었다. 이건 왕의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였다. 아버지가 왕이라서 내가 왕이 되었는데, 아버지가 왕이 되는 것에 이의가 있는 상황. 막말로, 여기서 밀리면 왕인데 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런 문제였다. 신하들 입장도 비슷하다. 내가 모시는 분의 정통성이 흔들린다면, 권력을 휘두르는데 문제가 생긴다. 반대로 왕을 흔들어놓아야, 그 밑에서 관료를 하는 반대파를 몰아내기 쉬운 입장 정도? 처음에는 그냥 두 관료의 대립이었는데, 동조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들이 몰리면서 범위가 확대되고 말았다. 이게 왕의 권력이 좀 강하면 억누른다거나 해보겠는데, 현종은 어렸고 병약했다.



  어떻게 수습이 되긴 했지만, 그 앙금은 계속 남아 나중에 숙종 대에 왕비가 교체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뒤끝 짱이다, 진짜. 사람의 원한은 진짜 무시무시하다. 왜냐하면 왕비가 바뀐다는 건, 왕비 한사람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그녀의 가문과 지지자들까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숙종이 너무 유약해서 신하들의 입김에 부인을 갈아치운다는 식의 인식이 강했다. 드라마를 봐도, 숙종은 하는 거 없이 그냥 장희빈의 애교에 넘어가 헤벌레했다가, 나중에 인현왕후에게 ‘내가 사람을 못 알아봤다.’고 미안해하면서 한탄하는 게 다였다.



  하지만 요즘은 좀 달라졌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혹시 왕비 자리를 놓고 신하들을 견제하고 억눌렀던 게 아닐까하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숙종의 재발견이라고 해야 할까? 흐음, 그러면 그는 인현왕후나 장희빈, 그 누구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아버지인 현종은 평생 후궁을 들이지 않고 왕비와 다정하게 살았다는데, 아들인 그는 그러지 않았다. 후궁도 많았고, 책에서 보면 바람둥이 같은 면모도 있었고 말이다. 흐음, 문득 이런 망상을 해보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지만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하지가 아니라, 처음부터 내 여자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경종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냥 슬펐다. 사실 경종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생모인 장희빈이 사약을 받으면서 아들인 그에게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고자가 되었다는 얘기뿐이다. 솔직히 내가 경종의 입장이었다면, 저렇게 착하게 지내지 못했을 것 같다. 친어머니와 새어머니 사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친어머니가 새어머니를 죽였다고 비난받고, 아버지라는 작자는 외삼촌을 비롯해서 친어머니를 죽이라고 명하고, 신하들은 예전 연산군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쑥덕거리며 동생을 왕위에 올리자고 음모를 꾸미고, 그 와중에 고자라는 의심까지 받고……. 비뚤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진짜.



  아, 물론 책은 왕실의 얘기만 다루는 건 아니다.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라든지 궁녀들의 일상, 조선 시대의 제사 풍습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홍동백서라든지 남자만 제사를 지낸다는 조항이 사실 조선시대에는 없었다는 게 놀라웠다. 아, 조선의 유교 때문에 어쩌구하면서 욕했던 게 죄송스러워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