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의 대모험 - 1년 52주, 전 세계의 모든 술을 마신 한 남자의 지적이고 유쾌한 음주 인문학
제프 시올레티 지음, 정영은 옮김, 정인성 감수 / 더숲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부제 - 1년 52주, 전 세계의 모든 술을 마신 한 남자의 지적이고 유쾌한 음주 인문학

  원제 - The Year of Drinking Adventurously: 52 Ways to Get Out of Your Comfort Zone, 2015


  저자 - 제프 시올레티







  이 책은, 저자가 지금까지 마셔본 술을 특별한 기념일에 맞춰서 52개의 종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가령 첫 번째 주는 추운 겨울이기에 이를 극복할 ‘스카치 위스키’를 소개한다. 그러면 두 번째 주에는 자연스레 미국의 위스키로 넘어가고, 세 번째 주는 당연히 캐나다로 이동한다. 그 와중에 봄에는 벚꽃이 생각나니 일본의 ‘사케’를 소개하고, 발렌다인데이가 있는 주에는 다크 초컬릿과 어울린다는 ‘아이리시 위스키’를, 5월 5일이 들어있는 18번째 주에는 멕시코의 기념일이 있으니 ‘테킬라’가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보면, 1년 52주내내 술을 마실 핑계가 만들어진다. 좋은데?



  처음 제목과 부제를 보았을 때는 단순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저자의 간이 걱정되었다. 저자는 일주일에 술 하나씩, 총 52개의 술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면, 52개가 아니다. 예를 들어 ‘배럴 숙성 맥주’인 9번째 주를 보면, 이에 해당하는 맥주를 만드는 회사들의 술을 대여섯 개 소개하고 있다. 향과 맛을 비교하는 걸 보니, 다 마셔본 모양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52개가 아니라 적어도 200개가 넘는 종류의 술을 마신 것이다. 건강이 조금 염려스럽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부러웠다. 나도 술 마실 줄 아는데…….



  전 세계라고 하지만, 주로 유럽과 미국의 술 소개가 많았다. 동양의 술은 한국의 ‘소주Soju’와 일본의 위스키와 ‘사케’, ‘소츄Shochu’, 그리고 중국의 ‘백주’와 ‘황주’가 다이다. 저자가 아직 한국의 ‘막걸리’를 맛보지 못한 모양이다. 혹시 2권을 낼 생각이 있다면, 꼭 막걸리 또는 ‘동동주’를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데 소츄라니? ‘김치’를 ‘기무치’라고 소개하는 일본의 상술이 생각나면서 혹시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소주에 대한 부분에서 술잔을 비운 후 처음 술을 따라준 이에게 다시 돌려주고 술을 따르는 것이 예의라고 나왔는데, 요즘은 아니지 않나? 내 주위에서만 안 그러는 건가?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세상은 넓고 술 종류는 많다’였다. 꽃 향을 넣는다거나 사이다(한국의 사이다와는 다르다) 또는 커피, 벌꿀을 첨가하는 건 애교였다. 왜 굳이 술에 피클 주스나 고추를 넣는 건지 모르겠다. 사람마다 취향이 제각각이라지만, 이건 내 상상을 뛰어넘는 조합이었다. 혹시 안주와 술을 한꺼번에 먹겠다는 의미인가? 그럼 나는 술에 치킨을 넣고 싶다!



  술에 대한 저자의 표현 중에 재미있는 게 많았다. ‘그라파’라는 술을 처음 마셨을 때,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악마에 빙의된 소녀가 성수를 맞을 때의 기분에 대해 애기한다거나, 술이 떡이 되었을 때 앞뒤를 분간 못한다는 말을 하면서 사실 금주법 시대에 불량 업체들이 만든 술을 마시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 등등. 그냥 술에 대한 얘기만 있었으면 지루했을 수도 있는데, 이런 재치 있는 문장들 덕분에 킥킥대며 읽을 수 있었다.



  작년에 우리 남한과 북한의 지도자가 만나 종전에 대해 애기할 때, 온 나라 더 나아가 관련국들이 들썩였다. 그 때 트위터 타임라인을 휩쓴 트윗 하나가 있었는데, 대동강 맥주에 관한 얘기였다. 그렇다. 북한에도 맥주가 있었다. 당연한 거지만 조금 놀라웠다. 요즘에는 편의점에서 만원 한 장이면 세계 맥주를 4캔에서 6캔 사먹을 수 있지만, 안타깝게 북한의 맥주는 구할 수가 없었다. 진짜 평화가 유지되어, 편의점에서 북한 맥주를 사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선 그 전에라도, 술파는 곳에 이 책을 들고 가서 하나씩 먹어봐야겠다. 아, 물론 1년 안에 다 마시진 않을 거다. 내 간은 소중하니까.



  아, 제일 아쉬웠던 것은 술병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이상 참지 않아도 괜찮아 - 눈치 보지 않고 나답게 사는 연습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예유진 옮김 / 샘터사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부제 - 눈치 보지 않고 나답게 사는 연습

  원제 - もう,がまんしない 2017

  저자 - 고코로야 진노스케






  나이를 먹어갈 수록,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난 그런 뜻이 아닌데 상대방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걸, 어릴 적에는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말을 꺼내기 전에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을까 머뭇거리고, 말을 하고 나서도 ‘혹시’라는 마음으로 상대의 눈치를 보게 된다. 또한 나이를 먹어갈 수록, 뭔가를 해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특히 뭔가를 하는 행위보다, 뭔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실행하는 그 준비 과정이 쉽지 않다. 이건 이래서 힘들고, 저건 저래서 어렵고……. 세상 모든 것이 다 내가 뭔가 하려는 걸 막아서는 느낌이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확신이 없어질 때가 있다. 어린 시절 내가 목표로 했던 삶과 동떨어진 지금의 모습을 보면,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이 책은 저런 생각이 들 때, 용기를 내라고, 넌 잘못 살지 않았다고, 뭔가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옆에서 누군가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기분을 주고 있다. 처음 몇 장을 읽을 때는 ‘뭐 이런 밑도 끝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대책 없이 낙천적인 책이지?’라는 느낌이었다. 저자가 하는 말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요즘 사회에서는 별로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자,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저자는 총 14개의 챕터를 통해, 어떻게 행동하고 살면 좋을지 얘기하고 있다. 각 챕터는 『그대로 괜찮다』,『패턴을 깨라』,『열심히 하지 않기』,『민폐를 끼쳐라』,『바꾸어가기』,『모든 게 기분 탓』,『나의 즐거움이 먼저』,『원래 행복하다』,『솔직해져라』,『지금 이 순간에 웃자』,『손해를 보자』,『야비한 사람이 되자』,『좋은 사람인 척하지 않기』,『제대로 살자』라는 소제목을 갖고 있다.



  죽 훑어보다가, ‘열심히 하지 않기’, ‘나의 즐거움이 먼저’, 그리고 ‘야비한 사람이 되자.’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뭐든지 열심히 하고, 즐거운 것만 하면서 살 생각 말고 정직하게 살라고 어릴 때부터 들어왔다. 그런데 열심히 하지 말고, 야비한 사람이 되라고? 그 부분을 읽어보면서, 잠시 혼란스러움과 고민과 생각에 잠겼다. 저자가 열심히 하지 말라는 이유는 공감이 갔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는데, 사람들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했다고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었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야비한 인간에 대한 부분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저자가 생각하는 ‘야비함’과 내가 생각하는 ‘야비함’의 뜻이 조금 다른 것 같다. 그 부분은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책은 계속해서 ‘힘내, 넌 할 수 있어.’, 라든지 ‘넌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야. 넌 이미 사랑받고 있어.’, 또는 ‘사람들을 믿어.’ 라고 계속해서 세뇌시키듯이 속삭였다. 그 때문인지 100% 바뀐 것은 아니지만, 아주 조금은 용기를 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별로 손해 볼 일이 없을 것 같고, 어쩐지 무난하게 잘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래,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해보자. 어쩌면 상대방도 하고 싶었던 말을 꾹꾹 참고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하고 싶었던 일도 해보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 해보자. 그래도 괜찮을 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한정판 겨울 에디션, 양장) - 아직 행복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곰돌이 푸 시리즈
곰돌이 푸 원작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부제 아직 행복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원작 – ‘A.A. 밀른의 곰돌이 푸 Winnie the Pooh, 1922’

 

 

 

 

  ‘곰돌이 푸라는 작품은조카들을 위한 수저 세트라든지 접시 세트에서 주로 보았다그래서 그냥 아이들을 위한 그림 동화책의 캐릭터라고 생각하고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는그냥 인기 있는 캐릭터를 이용해 대세에 편승하고자 만들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몇 장 읽어보고 나서그 생각들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이 책에 수록된 문장들이 원작에서 발견되었다는 뒤표지의 글을 읽고 나니그동안 곰돌이 푸를 평범한 어린이용 동화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에게 꿀밤을 때려주고 싶었다꿀만 좋아하는 노출증 곰이라고 생각했던 가 이렇게 따뜻하고 다정한 말을 할 줄이야……




  책에는 어린 시절에 읽으면분명히 자존감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문장이 가득 있었다어릴 때는 어쩌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고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나중에 나이가 들면서 떠올리면 힘이 될 말들이었다예를 들면다른 사람의 기분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라거나 남을 위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보고 자기 자신을 믿으라는 문장들은 찡하니 마음에 와 닿았다.

 

  어린 시절부터 저런 말들을 읽고무슨 의미일지 생각도 해보고가끔 떠올렸다면아마 자신만만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어른이 될 것 같았다조카들이 어릴 때 좀 많이 읽혀둘걸……덩달아 나도 좀 읽고.



 

  요 몇 년 사이에 힐링을 주제로 한 책이 유행하고 있다사람들의 마음에 난 상처가 어마어마하게 깊고 그 부위가 커서 그런 모양이다이 책도 힐링을 위해 만들어졌다그런데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힐링이라는 게 결국은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것이었다자기 자신을 돌보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즐겁게 하고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눈에 보이는 것에 흔들리지 말라는이 책에서 푸가 전해주는 말은 다 자신을 잃지 말라는 격려였고 응원이었다.

 

  어차피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처받는 걸 피할 수 없다면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그런 의미인 걸까? ‘Don't hide yourself in regret. Just love yourself and you're set’이라는 어떤 노래의 가사가 떠오르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 있기 좋은 방 - 오직 나를 위해, 그림 속에서 잠시 쉼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제 - 오직 나를 위해, 그림 속에서 잠시 쉼

   저자 - 우지현







  ‘방’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혼자 조용히 쉴 수 있는 곳? 여러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 방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쓰임 또한 다양하다. 그 중에서 특히 ‘내 방’이라는 공간은 모호한 경계에 있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곳이고 또한 내 물건들로 가득 차 있지만,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안식처이기도 하고 때로는 도피처이기도 하다. 나만의 은밀하고 비밀스런 보물창고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여러 가지 ‘방’을 그린 화가와 그들의 작품을 얘기한다. 그 방에는 진짜 방이 있고, 작업실이나 미술관, 카페, 욕실이 있었다. 또한 방에서 바라본 발코니라든지 거리 풍경 내지는 교통수단도 등장한다. 또한 위의 저런 방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화가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사실 카페나 미술관 또는 버스 안 같은 곳은 방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좀 더 확장된 개념으로 생각하면 그럴 듯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섞여 있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질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색조와 화가가 대상을 보여주는 각도에 의해, 방이 주는 느낌은 달랐다. 빛에 의해 화사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역시 빛과 그늘에 의해 어둑어둑하니 금방이라도 잠을 자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카페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어쩐지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았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는지 토닥여주고 싶었다. 어떻게 색과 구도로 그런 분위기를 자연스레 보여주는지, 역시 화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만약에 내가 방을 주제로 그린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방,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방, 그리고 내가 꿈꾸는 방의 이미지는 어떨까? 그리고 난 그 그림을 통해 무엇을 얘기하고 싶을까? 위에서 언급했지만, 내 방은 나만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보물 창고이고 도피처이자 안식처이다. 과연 그런 느낌을 한 번에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같은 방이지만 어떤 느낌으로 와 닿는가에 따라 다른 그림이 나올 것 같다. p.22에 있는 ‘마르셀 리더’의 ‘벽난로 앞에 있는 여인’처럼 아늑하고 쉬기 좋은 공간처럼 그리기도 하고, p.353~354에 있는 ‘프레데리크 바자유’의 ‘바자유의 아틀리에’처럼 보물 창고로 표현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그 정도의 그림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겠지만 말이다.



  p.360에 수록된 ‘마리 드니즈 빌레르’의 ‘그림 그리는 젊은 여자’에 관련된 이야기는 읽으면서 한숨이 나왔다. 화가가 누군지 잘 모를 때는 극찬을 늘어놓더니, 화가가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혹평을 쏟아내는 평론가들이라니……. 그런 사람들을 평론가라고 부를 수나 있을까 싶다.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인간은 이제 진화를 멈춘 모양이다. 아니면 퇴보를 하고 있거나.



  그동안은 별로 생각 없었던 ‘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온전히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크라테스 씨, 멋지게 차려입고 어딜 가시나요? - 패션으로 본 인문학 이야기
연희원 지음 / 문예출판사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제 - 패션으로 본 인문학 이야기

  저자 - 연희원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세계 역사 전집이 있었다. 지도와 사진, 그림과 함께 작은 글자가 아주 빽빽하게 적혀있던 10권이 넘는 책이었다. 당연히 어릴 적의 나는 작은 글자보다는 거기에 수록된 다양한 사진들을 더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의 화려한 드레스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그림들을 특히 좋아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리스 시대에는 남자들이 헐벗고 있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그린 그림은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다 벗고 있었으며, 르네상스 이후에는 여자들이 옷을 안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냥 옷을 벗는 성별도 시대에 따라 유행을 타는 건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잊고 있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는, 왜 그리스 시대에는 헐벗은 남자들 그림이 많았는지 이유를 알려주고 있었다.



  저자는 그리스 시대의 지배계층인 재산과 참정권이 있는 남자와 고급 매춘부인 ‘헤타이라’, 그리고 남자들의 아내와 딸인 여자들과 노예로 나누어 각각의 패션을 설명하고 있다. 그 시절에 외모를 꾸밀 수가 있는 부류는 남자와 헤타이라 뿐이었다. 헤타이라야 남자들을 유혹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그러려니 하겠지만, 남자가 외모를 가꾼다고? 여자가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뭔가 많이 불공평하고 황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예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경우에 그는 국가란 남자 시민들로 이루어져야 하고, 여자들은 밖으로 돌아다니지 말고 집안일이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와 똑같이 운동을 하고 바깥일을 하는 스파르타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는 스파르타 여자들이 화장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온갖 방종과 사치에 탐닉했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의 고급 매춘부인 헤타이라가 패셔니스타로 활동하는 것이나, 남자들이 자신을 꾸미고 심지어 멋진 근육을 자랑하기 위해 나체로 운동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건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역시 그리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 나체로 몸매를 자랑할 수 있는 건, 오직 남자들뿐이었다는 사실 역시 좀 웃겼다. 심지어 ‘프리네’라는 헤타이라는 연극에서 나체를 보였다고, 재판에 회부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나체로 멋진 몸매를 자랑할 수 있는 건, 오직 남자들뿐이었던 것이다. 물론 남자라고 해서 다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참정권이 없는 사람들은 제외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리스가 말한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학교 다닐 때 금권정치라든지 차별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이런 부분까지 나누어놓았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단지 옛날 중국처럼 황제나 황족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색이나 신료들의 지위에 따라 관복색에 차이를 두었을 것이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리스에서 한 건, 색차별보다 더 심했다. 지들은 매춘부 끼고 먹고 마시고 노는데, 그 음식이랑 장소 준비 다 한 부인이랑 딸은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라고 한 게 말이 되나? 아, 그래서 요즘은 술집이나 룸살롱으로 가는 건가?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란 고대 그리스 시대나 요즘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차별되는 뭔가를 갖기 원했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그 뭔가를 따라하거나 갖기 원했다. 그리스 시대에는 차별되는 뭔가가 화장이었다. 지금은 화장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허용되었고, 다른 뭔가가 또 차별을 가르는 요소가 되었다. 예를 들면 집이나 자동차? 어쩌면 역사라는 건, 계속해서 차별적인 그 뭔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 갖고, 그러면 또 다른 뭔가를 찾아내는 것의 연속인가보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를 투쟁의 역사라고 하는 걸까?



  어린 시절의 궁금증을 거의 30년 만에 해결할 수 있었던, 재미있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