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외계인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16
남강한 글.그림 / 북극곰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 남강한

  그림 - 남강한

 

 

 

 

 

 

  제목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드디어 학교 선생님과 (새)엄마에 이어 아빠까지 외계인이 되었구나.’였다. 그리고 이제야 아빠가 외계인이라니 너무 늦은 게 아닐까라는 우스운 상상마저 들었다. 아빠가 처음부터 외계인일 리는 없으니 바꿔치기 당한 걸까? 아이들이 진짜 아빠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일까? 아니면 새 아빠가 외계인? 이런저런 추측을 하면서 책을 펼쳤는데, 내 예상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책은 외계인이 어느 가정집에 아이가 담긴 바구니를 내려놓으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외계인인 아빠가 어린 시절부터 자기 동료들을 무척이나 그리워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뒤이은 이야기는 조금 슬펐다.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 아빠는 남들처럼 똑같이 행동해야했고, 남들처럼 군대를 가고, 자신과 같은 외계인이라 생각한 여자와 결혼을 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고 이어진다. 그러다 아빠는 자신과 꼭 닮은 아이를 얻고, 자기와 같은 외계인을 찾았다고 기뻐한다. 이제 어린아이가 된 아이는 아빠처럼 외계인을 찾길 바란다.

 

  장면마다 외계인이 곳곳에 숨어있어서, 그걸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렇게 몰래 지켜볼 거였으면 왜 지구인 집에 놓았는지 의문이지만…….

 

 




  아빠가 지구인처럼 지내기로 했다는 부분에서 어쩐지 울컥했다.

 

  아빠는 사실 외계인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는 남들과 조금은 다른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다른 아이들과 생각하는 방식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좀 튀는 성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선생님에게 혼이 나는 장면에서 알 수 있었다. 외계인 친구를 만나고 싶은 일념에 그는 다른 친구들이 수업을 받을 때 몰래 통신 기구를 만들었다. 어린 소년이 만든 것치고는 꽤 잘 만들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의 그런 창의성을 격려해주기는커녕, 어른들이 정해놓은 획일화된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고,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꾸지람을 했다. 그 때문에 아빠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행동하기로 했다. 즉, 그만이 갖고 있던 독특함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획일화된 교육이 어떻게 아이를 망치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아빠는 자식을 얻고 기뻐한다. 그리고 아이는 아빠처럼 외계인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마 아빠는 자기가 어렸을 때 겪었던 좌절을 자식이 또 다시 느끼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만약에 아빠가 이미 지구인과 너무도 동화가 되어서 자신의 어린 아이에게 지구인처럼 행동하라고 윽박지른다면……. 아, 그건 너무 슬프다.

 

  이 책은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그래서 남들과 똑같이 되라고 아이들에게 말하는 어른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성장한 외계인들이 많이 각성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표하기 무서워요! 괜찮아, 괜찮아 7
미나 뤼스타 지음, 오실 이르겐스 그림, 손화수 옮김 / 두레아이들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 - Alfred må lese høyt, 2015

  작가 - 미나 뤼스타

  그림 - 오실 이르겐스







  ‘알프레드’는 무슨 일에건 안절부절못하고 자신감이 없는 소년이다. 누군가 길을 물어볼 때도, 버스를 탈 때도, 심지어 전화통화를 할 때도 어쩔 줄 몰라 한다. 특히 그가 제일 두려워하는 건, 바로 학교에서 발표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진다. 선생님이 각 학생들에게 동물을 조사해 발표해오라는 과제를 낸 것이다. 그가 조사할 동물은 ‘대왕고래’. 조사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걸 아이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그에게는 더 큰 문제였다. 아빠의 도움으로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던 알프레드는 어느새 대왕고래에 푹 빠져버린다. 하지만 막상 발표 날이 되자, 그는 너무도 긴장하고 마는데…….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되면, 배가 살짝 아파오고 어쩐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갑자기 뭔가 얘기하라고 지목을 받으면 그런 증상은 특히 더 심해진다. 목소리도 떨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또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지금은 덜하지만, 어릴 적에는 혼자 버스를 타고 갈 때면 잘 내릴 수 있는지 걱정이 태산이었고, 전화를 받았을 때 갑자기 어른 목소리가 들리면 어떻게 말을 했는지 모르고 두근거리기만 했다. 전화를 끊고, ‘아, 좀 더 예의바르고 자연스럽게 말 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길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대책이 전화를 안 받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저 정도는 아니다.



  그런 기억 때문에 알프레드의 심정이 너무도 잘 이해가 되었다. 상상 속에서는 아주 낭랑한 목소리로 멋지게 발표를 하지만, 현실에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잔뜩 상기된 얼굴로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해하며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발표라는 건 커다란 짐이 된다. 이왕이면 안하고 싶고. 어린 알프레드에게 발표라는 건, 아주 괴로운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프레드는 그런 부담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벗어날 수나 있을까? 당연히 알프레드는 발표 공포증을 극복한다. 그가 그걸 이겨낼 수 있었던 계기는 뜻밖에도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조사 대상이었던 대왕고래에 대해 관심을 갖고 푹 빠져버린 것이다. 알프레드는 대왕고래가 부르는 노래를 매일 듣고 흥얼거릴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 발표를 시작할 때는 떨렸지만, 대왕고래만 생각하다보니 심지어 친구들 앞에서 노래까지 부를 정도로 대담해졌다.



  자신이 하려는 일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게 되면, 그래서 그 대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레 자신감이 생기고 당당해지게 되는 법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아는 것이 힘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면 주눅이 들거나 막무가내로 우기기 쉽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아는 것이 있으면, 자신이 모르는 것을 더 알고 싶어 하고 생각을 하고 논리적으로 자료를 모으게 된다. 그러면 당연히 확신이 생기기 마련이다. 부들부들 떨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작가는 알프레드의 헤어스타일 변화를 통해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책을 보면서 무척이나 마음에 든 장면이다. 처음에는 눈을 덮었던 머리카락들이 점차 옆으로 넘어가더니 나중에는 소년의 웃는 얼굴을 확실히 보여준다. 발표하기 어려워하는 어린 친구들이 읽으면 아주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옆집 아이 보고서 - 비루한 청춘의 웃기고 눈물 나는 관찰 일기, 제4회 한우리 문학상 청소년 부문 당선작 한우리 청소년 문학 5
최고나 지음 / 한우리문학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부제 - 비루한 청춘의 웃기고 눈물 나는 관찰 일기

  작가 - 최고나

 

 

 

 

 

  읽으면서 무척이나 화가 나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현실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떠올랐기에, 그 사건에 대한 처리 과정이나 이후 피해자의 상황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을 들었기에, 책을 읽으면서 그 사건이 자꾸만 떠올라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주 많이 부조리한 세상과 불공평한 사회에 화를 내고 싶고 어딘가에 태클을 걸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책의 표지에 적혀있는 부제가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들었다. 비루하다니? 누가 누굴 보고 비당하다고 하는 거지? 비루하다는 것의 정의는 누가 내리는 거지? '비루하다'는 말을 찾아보면 '사람이나 그 태도가 천하고 너절하다'는 뜻으로 나온다. 부제를 보면 관찰일기를 쓴 인물이 비루하다는 뉘앙스인데, 책을 읽어보면 정작 천하고 너절한, 비루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으아, 이런 식으로 주인공을 매도해도 되는 건가!

 

  하아, 진정하고 차분하게 이야기에 대해 말해보겠다.

 

  고등학교 2학년인 무민은 학교에서 이런저런 사고, 예를 들면 소각장에서 담배피기 같은 걸 저질러 퇴학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담임이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는데, 학교를 나오지 않고 있는 순희를 등교시킨다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는 것이다. 무민이 이사 간 곳이 순희의 옆집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1년 전까지는 밝고 모범생이어 선생들의 평이 좋았던 순희는 왜 그렇게 갑자기 변해버린 걸까? 자살시도로 인해 아파트 부녀회에서는 순희네를 내쫓을 기세고, 학교에서도 그녀를 퇴학시켜야하나 논의 중이다.

 

  처음에는 퇴학을 모면하기 위해서였다. 무민은 순희나 다른 아이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담임과 순희 엄마의 동의하에 몰래 카메라를로 순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무민은 점차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하는지 무민은 알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그 와중에 순희의 전 남자친구였던, 이사장의 아들이자 황태자로 불리는 양껌이 미국 유학을 갔다가 잘려서 돌아오면서, 그동안 숨겨졌던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여기까지 보면 순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양껌이 무슨 짓을 했는지 견적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양껌이 이사장의 아들이라는 부분에서 사건이 어떻게 돌아갔었고, 이번에도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지 추측이 가능하다.

 

  이 사회가 피해자에게, 그것도 시장에서 일하는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는 넉넉지 못한 집안의 어린 여자아이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이미 알고 있기에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사회가 부유층 집안의 자식들이 저지른 죄에는 얼마나 관대한지 익히 봐왔기에 책을 읽으면서 화가 났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도 있지만, 요즘은 바위를 치워버리거나 낙숫물이 떨어지지 못하도록 막아버리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 그런 건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다.

 

  무민이 순희를 위해 분노하고 울분을 터트리는 걸 보며 같이 화를 내고, 살고 싶어서 마음을 다잡으려는 순희를 안쓰러워하면서, 양껌의 새로운 피해자가 된 혜령이 너무나 불쌍해 한숨을 내쉬고, 그런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자기 일이 아니라고 나 몰라라 하는 아이들이 너무 미웠다.

 

  특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 너무도 분노를 느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일을 몰래 얘기하면서 비웃고 놀림감으로 삼으며 낄낄댔다. 자기가 당하는 게 아니라 이거지? 이사장에게 대들면 자기에게 불리하니까, 모른 척한다. 도리어 피해자를 무시하고, 가해자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 완전히 어른 사회의 축소판이다. 사실 그들에게는 모범이 될 어른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사장에게 쩔쩔매는 교장이나 교감, 선생을 보면서 공정함이나 정의에 대해 배울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책을 덮으면서 양껌과 무민에 대해 생각해봤다. 요즘 이 나라를 들썩이는 사건에 둘을 대입시켜보았다. 양껌은 부모의 배경으로 유학지에서 대충 졸업장 받은 다음에 기부금으로 한국의 명문대를 들어가겠지. 군대는 면제받을 거고, 나중에 아버지 자리를 물려받을 것이다. 그 와중에 제 버릇 남 못준다고 약 같은 걸 하면서 많은 여자들을 농락하겠지. 소문이 퍼질만하면 집안의 재력을 이용해 무마시킬 것이고, 겉으로는 명망 있는 사학 재단의 이사장으로 번지르르하게 살아갈 것이다. 유력 정치인의 딸을 부인으로 얻으면 검찰 수사도 받지 않을 것이다. 부인이 눈물로 읍소하면 장인이 봐줄 테니까.

 

  그에 비해 무민은……. 무민과 순희, 그리고 혜령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그리고 여자가 꼬리치는데 안 넘어갈 남자가 어디 있냐고? 안 넘어가라고 뇌가 있는 것이고 이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성도 뇌도 없으면 그게 인간입니까? 짐승이지. 아니, 짐승도 뇌는 붙어있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톡톡톡 - 제4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3
공지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 공지희





  중학교 3학년인 달림은 식당을 하는 엄마와 고등학생인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비록 우등생인 언니와 자신을 차별하는 것 같은 엄마지만, 달림은 가족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남자친구라고 할 수 있는 지평과 베프인 미루와 함께 그녀는 그럭저럭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미루가 울먹이며 임신했다고 말하는 순간, 그녀의 나름 평화로웠던 생활은 끝이 난다. 한 학년 위인 종하 선배와 사귀던 그녀는 기념일 날 사랑을 증명하라는 그의 요구에 잠자리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임신 소식을 들은 종하의 반응은 차가웠다. 같이 좋아서 한 것이고, 여자 책임이라는 식으로 회피한 것이다. 조언을 구할 어른도 없는 두 친구, 아니 지평까지 세 친구는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 것인지 머리를 모은다.


  한편 달림은 아주 우연히 엄마를 찾는 어린아이를 만난다. 그런데 이 아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사는 곳이라며 안내한 곳은 동굴이고, 여러 꼬마들과 함께 살고 있다. 게다가 그들을 돌보는 것은 노인 한사람뿐이다. 달림은 바쁘다. 미루의 문제도 같이 고민하고, 꼬마의 엄마도 같이 찾아봐야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달림은 언니의 일기장을 발견하는데…….


  아, 책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10대의 임신과 낙태라는 문제는 무척이나 민감한 사안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외면하는 분위기이다. 그 때문에 대책도 없고 예방도 없다. 주위에 도움도 요청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은 혼자 끙끙대다가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아 버리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문제에 접근해서 아이들이 현실에서 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현실적인 문제보다는 판타지적인 설정을 넣었다. 바로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의 존재였다.


  저 하늘 어딘가에는 낙태되어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이 모여 사는 별이 있다. 노랑모자와 다른 아이들은 그곳으로 가기 전에 잠시 지구에 머무르고 있었다. 작가는 그 아이들의 존재를 통해 달림의 입을 빌어 태아도 하나의 인격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달림은 미루에게 낙태를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자신이 본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또한 작가는 근처 산부인과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입을 빌어, 직접 낙태 수술을 해야 하는 사람의 괴로움과 자책감을 말해준다. 비록 엄마 뱃속에 있지만, 엄연한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태아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라고 얘기한다.


  낙태는 살인이 맞다. 뱃속에 있어도 생명은 생명이니까. 그래서 작가는 태아도 하나의 어엿한 인간이라는 얘기를 전달하고자, 이런저런 설정을 넣어두었다.


  하지만 어쩐지 난 그게 답답했다.


  결국 이 책에서 낙태를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미루의 몫이었다. 사랑을 증명하라며 성관계를 요구한 종호는 딱 한 장면 등장하고 사라진다. 돈을 모으려고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서술이 한 줄 나오긴 하는데, 이후 존재감이 없다. 어째서? 왜? 단지 '오빠는 날 사랑하지 않은 거 같아'라는 미루의 대사 하나로 그의 책임감과 존재가 없어질 수 있는 걸까?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자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남자와 성관계를 가진 여자아이 탓이라는 걸까? 낙태를 해서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든지, 아이를 낳아 어린 미혼모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거나 아니면 아이를 입양시키고 역시 자책하며 살아야하는 건 여자아이의 몫이라는 것이다. 왜? 사랑을 증명하라는 오빠의 요구를 뿌리치지 못한 죄가 있으니까. 어쩐지 종호의 대사인 '여자가 알아서 조심했어야 하는 거 아냐?'라는 대사가 떠오른다.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내가 느끼기에는, 모든 것을 여자아이의 책임으로 돌리는 듯 한 분위기다. 그래, '오빠 믿지'라는 개소리를 믿은 순진함이 죄다. 어린 나이에 남자친구를 사귄 게 죄고, 손을 잡고 뽀뽀를 허용하고 사랑을 증명하라는 오빠 말에 'X까'라고 대꾸하지 못한 게 죄다.


  그런 생각이 들자, 어쩐지 이 책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태어나지 못한 어린 보풀들을 통해서 태아도 하나의 생명을 갖고 있는 인격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알게 된 미루와 종호 그리고 달림을 통해서 사랑과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느끼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나라 세계기록유산 - 우리가 지켜 온 소중한 기억
한미경 지음, 윤유리 그림 / 현암주니어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 한미경

  그림 - 윤유리







  우선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세계 문화유산’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분류되는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뭐가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냥 막연히 흔히 들어본 유명한 것들, 예를 들면 ‘훈민정음’이라든지 ‘팔만대장경’ 같은 게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세계 기록 유산’이라는 게 대체 뭘까 의아했다. 문화유산은 들어봤는데 기록 유산? 음, 책 맨 뒤에 있는 부록을 읽어보니, 내가 참으로 무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유산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뉘는데, ‘기록 유산’과 ‘무형문화유산’ 그리고 ‘세계 유산’이 있다. ‘기록 유산’은 말 그대로 전 세계에서 기록된 자료들 중에서 마땅히 보존되고 알려져야 할 것들을 말하는데, 자세한 것은 책에서 살펴볼 것이니 넘어가겠다. ‘무형문화유산’은 구전으로 전승된 기술이나 공연예술을 말한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종묘제례악’과 ‘판소리’ 등이 등재되어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유산’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그리고 ‘복합유산’이 포함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석굴암과 불국사’, ‘수원화성’, ‘경주 역사 유적지구’, ‘제주 용암동굴’, ‘조선왕릉’, 그리고 ‘하회마을’ 등이 등재되었다고 한다. 더 많은 자료들이 있는데, 그건 ‘유네스코와 유산’이라는 사이트에 가면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러면 기록 문화유산에는 무엇이 있을까? 목차를 보고 놀랐다. ‘훈민정음’이나 ‘팔만대장경’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헐! ‘5.18 민주화 운동 기록물’과 ‘새마을 운동 기록물’ 그리고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까지 들어있었다. 아, 하긴 그 각각의 의의를 생각해보면 후대에까지 보존되어야 할 자료들이긴 하다. 전쟁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아픈 상처를 남기고, 독재 정권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할 수 있는지 잘 알려줄 테니 말이다.



  조선왕조실록이 편찬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그 꼼꼼함에 놀라고 중립을 지키려는 노력에 감탄했다. 물론 그 노력이 언제나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키려고 시도를 했다는 점이 대단했다. 최고 권력자의 요구에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고, 또 사관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라웠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하는데, 조선 시대에는 적어도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 태도가 엿보였다.





  ‘동의보감’이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있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동의보감’하면 ‘허준’, ‘허준’하면 드라마에서 유행했던 ‘줄을 서시오!’만 알았는데, 중국과 일본에까지 번역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와 조선 왕들의 일기인 ‘일성록’도 목록에서 볼 수 있다. 내가 만약 어릴 때부터 일기를 꼬박꼬박 적었는데, 후손들이 그걸 공유해서 돌려보고 외국 사람들까지 읽는다면? 아, 뭔가 부끄럽고 민망하고 이불을 뻥뻥 차면서 내 흑역사를 지워달라고 절규할 거 같다. 돌아가신 조상님들도 그런 기분이실까?



  기록이란 중요한 것이다. 오늘 저지른 과오를 내일 또 저지르지 않기 위해, 오늘 좋았던 일을 내일도 기억하기 위해 어딘가에 적어 둬야한다. 사람들이 맛집이나 좋은 곳에 가서 사진만 찍는 건 다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 기억조차 희미해졌을 때, 남는 것은 기록뿐이니까. 아, 그래서 그렇게 가짜 뉴스를 만들고, 인터넷백과사전을 임의로 조작하고, 언론을 통제하고, 댓글 부대를 만드는 거구나!





  문득 나중에 후손들이 2000년대의 한국을 대표할만한 기록 유산을 찾는다면,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