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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에게 생긴 일 ㅣ 한무릎읽기
미라 로베 지음, 박혜선 그림, 김세은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Die Sache mit dem Heinrich, 1989
작가 - 미라 로베
조금 늦게 탈의실로 간 ‘율리아’는, 남들 몰래 구석에서 체육복을 갈아입던 ‘하인리히’를 보게 된다. 놀랍게도 그의 등과 허벅지에는 피멍과 가느다란 끈으로 맞은 자국이 가득했다. 체육 시간에 확인해보니, 그의 뒤통수에는 누가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아 뜯은 것 같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인리히가 새아버지에게서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고 있으면서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율리아는 그를 돕기 위해 주위의 어른들,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한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어른들은 하인리히를 돕는 일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실망한 율리아는 직접 나서기로 하는데…….
종종 뉴스에서는 부모에게 폭행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아이들에 관한 기사가 올라온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아이를 죽인 부모를 처벌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 그런 분노는 사그라지고, 그 일이 잊힐 때쯤 되면 또 다른 아이 살해 소식이 들려온다. 이런 일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왜 그럴까?
친구들은 잘못한 일이 있으면, 맞는 건 당연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율리아의 생각은 달랐다. 굳이 때리거나 맞지 않아도 잘못된 행동을 고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맞는다는 범위는 어디까지 허용되는 걸까? 하인리히처럼 머리에 피딱지가 생기고, 채찍으로 맞은 것처럼 벌겋게 부어오른 자국들과 피멍이 온몸에 가득한 게 과연 정당한 체벌인 걸까? 가정폭력은 피해 당사자가 직접 고발하지 않는 이상 제3자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어른들의 얘기도, 평소에는 다른 이들을 도우라고 말을 하다가 하인리히 얘기를 하니, 괜한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하는 부모의 말도 율리아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하인리히의 일에 나섰다면 어땠을까? 소년이 사는 아파트의 주민은 물론이거니와 앞 건물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그가 맞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학교 선생님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학교 교장의 반대로 그냥 손을 놓고 있었다. 율리아가 직접 행동하지 않았다면, 하인리히는 그 날 새아버지의 손에 살해당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 왜 아이들이 부모의 손에 살해당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지에 관한 답이 여기 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때리는 사람이 제일 나쁜 건 맞다. 아마 처음에는 그 사람들도 훈육의 차원에서 손찌검을 한 번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자꾸 반복되면, 강도가 세지면서 훈육이 아닌 폭력이 되어버린다. 또한, 맞는 아이들 역시, 자신의 잘못으로 혼이 난다고 계속해서 세뇌되면 반항하지 못한다. 상대의 덩치도 그렇고 어른 또는 부모라는 이유로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다. 잘못했다고 빌면서 맞는 수밖에는……. 이런 상황에서 부모를 고발하라고 하면, 과연 아이들이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러니 고발이 없어도, 누군가 맞고 있다면 제 3자가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폭력이 되는 순간, 그건 가정 내의 일이 아니다. 가족 간의 일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폭행하는 사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인리히와 엄마는 공권력의 개입으로 새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났다. 그들은 그에게 돌아가는 일 없이,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떠올리니, 문득 기분이 좋지 않아졌다. 자식을 폭행하고 강간한 아버지라도 법적 보호자이기 때문에, 그가 출소하면 자식들과 함께 살 수도 있다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건, 제도의 보완과 사람들의 관심이라고 봐야겠다. 하지만 이 나라는 제도도 미흡하고, 그 제도를 제대로 만들 사람들이 일을 잘 안 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앞가림하느라 다른 데 신경 쓸 일이 없고……. 그냥 암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