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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려줘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2
A. S. 킹 지음, 박찬석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5년 6월
평점 :
원제 -
Reality Boy, 2013
작가 - A. S. 킹
제럴드는 이제 열여섯이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거나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지만, 그의 인생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큰누나 타샤는 매일같이 남자친구를 끌어들여 온 집안이 떠나가도록 섹스에 몰두하고, 엄마는 그런 누나에게 쩔쩔 매기만 한다. 게다가 아빠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모르는 척 하고, 작은 누나 리지는 가족과 연을 끊겠다며 먼 곳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해 연락도 없다. 그리고 제럴드에게는 다섯
살 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해서 보여줬던 행동 때문에, '똥싸개', '구제불능 저능아.'라는 낙인이 찍혀있다. 그 영향으로
분노조절장애 치료를 받고 있고, 학교에서는 저능아 반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친구는 하나도 없고, 자주 자기만의 세상으로 도피하는 불안한 심리
상태도 보이고 있다. 이러니 제럴드가 자기 인생은 망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제럴드는 왜 엄마가 타샤 누나가 자기와 리지 누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말을 믿어주지 않는지, 왜 엄마가 타샤 누나의 폭언과 폭력에 아무 말
못하는지, 왜 굳이 자신을 저능아 반으로 보내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바라는 건, 타샤 누나가 없는 곳에서 사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실현이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그런 그에게 단 하나의 낙이 있다면,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고 있는 1번 계산대의 소녀 한나이다. 그녀와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보지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그는 족했다. 아주 우연히 한나와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제럴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알게 된다. 거기에는 타샤 누나도 없고,
자신을 똥싸개로 바라보는 편견도 없는 곳이었다.
이야기는 제럴드의 어린 시절, 그러니까 방송국에서 그를 '구제불능 말썽쟁이'라는 틀에 맞춰서 촬영을 했던 때와 현재를 번갈아가면서 말해준다.
자신들의 틀에 맞춰서 시청률을 올리기에 적합한 화면만 내보내는 프로그램 제작진, 진짜로 그들이 타샤 누나에게서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믿었던
제럴드, 그리고 방송국에서 주는 출연료에 쩔쩔 매는 엄마와 아빠. 그런 상황에서 제럴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다섯 살밖에 안 된 꼬맹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똥을 싸는 것이다. 식탁 위, 엄마 구두, 누나 침대 위. 하지만 어른들은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그의 기행을 부각시켜 관심을 끄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이후 모든 것을 책임져야했던 것은 어린 제럴드였다. 편집된 방송만 보고 그가 어떤 아이일 것이라 판단한 사람들의 시선, 비난, 조롱 그 모든
것을 감내해야하는 것은 방송을 만든 어른이나 부모가 아니라 피해자일지도 모르는 제럴드였다. 이건 불공평하다. 어린 아이의 행동을 바로잡아주고
이끌어야하는 건 어른들인데, 여기서의 어른들은 자기들 입맛대로 아이를 휘두르고 떠나가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제럴드가 미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아, 제럴드데이라는 상상 속의 세계를 만들어 도피하고 있으니, 어쩌면 정상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꿈도 희망도 없던 그가 달라진 계기는 친구였다. 처음으로 그를 방송에 나온 꼬마로 보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그로 봐준 두 사람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나와 서커스단에서 일하는 조. 그 둘 역시 그리 평탄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고 있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100% 이해하지는 않는다. 셋은 언성을 높여 싸우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금방 화해한다. 이제 제럴드에게는 삶의 목표가 생겼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화가 났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방송은 한국에도 있다. 그 프로그램은 제목을 '우리 엄마아빠가
달라졌어요.'라고 바꾸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예를 확실히 보여주는 방송이었다.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알고 보면 아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 어른들에게 있었다. 조언을 받은 부모가 행동을 바꾸니 아이도 바뀌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온 어른들은 그런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들이 편해지려고 희생양을 하나 만들어, 모든 원인을 돌렸다. 마치 너 하나만
희생하면, 다른 사람들이 편해질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거기에 제일 적합한 것은, 어려서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제럴드였다.
이건 진짜 치졸하고 저열한 짓이었다.
낳는다고 다 부모는 아니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나이 먹었다고 다 어른이 아니라는 말 역시 생각났다. 그러니까 부모에게도 자격증이
필요하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