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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중록 1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평점 :
원제 - 簪中錄, 2018
작가 – 처처칭한 侧侧輕寒
‘황재하’는 관리인 아버지 밑에서 여러 사건을 해결한, 천재라 불리는 소녀였다. 하지만 혼사에 관해 가족과 언쟁을 벌인 날, 그녀를 제외한 일가족이 독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생존자인 재하는 일가를 몰살한 범인으로 몰린다. 지인의 도움으로 수도인 장안에 숨어들었지만, 공교롭게도 그녀가 얻어탄 마차에는 황제의 아우인 황자 ‘이서백’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계약을 맺는다. 황재하가 그를 도와 장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 해결을 도우면, 이서백은 그녀 가족의 사건 재수사를 돕겠다는 내용이었다. 황재하는 환관 ‘양숭고’로 신분을 위장하고, 이서백을 도와 사건을 수사하는데…….
작년에 출간되어 만화로 만들어지고, 조만간 드라마로도 제작될 중국 소설이다. 추리물이면서 로맨스도 가미가 되어있고, 황실과 황자들이 등장하고, 살인 누명을 쓴 천재 미소녀가 남장여자로 활동하는, 그야말로 재미가 없을 수 없는 설정들로 이루어져 있다. 참고로 제목인 ‘잠중록 簪中錄’은 ‘비녀의 기록’이라고 한다. 황재하가 사건을 정리할 때 머리에 꽂은 비녀를 빼내 바닥이나 아무 데나 적기 때문이다.
이번 1권에서는 크게 두 개의 사건이 일어난다. 하나는 황재하가 장안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한 연쇄 살인 사건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서백의 신부로 간택된 ‘왕약’을 비롯한 비파 연주자 몇 명의 실종과 독살 사건이다. 첫 번째 사건은 ‘음?’하는 사이에 후다닥 해결되었고, 두 번째 사건은 12년 전의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꽤 많은 분량을 차지했다. 그 와중에 황재하와 혼담이 오가던 ‘왕온’도 등장하고, 황재하를 롤모델로 삼은 시체 검안 담당 ‘주자진’도 등장한다. 또한, 4년 전 반역도들을 제압하던 과정에 이서백에게 일어났던 기이한 일까지 연결되면서, 자질구레하지만 복선이 될 법한 사건들이 줄줄이 딸려온다.
이렇게 보면, 이야기가 상당히 진지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일 것이라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선 개그 담당이 확실한 주자진이 있다. 황재하를 우상으로 여기면서, 바로 앞에 있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또한, 집안에서 내놓은 괴짜로, 남들이 다 꺼리는 시체 검안을 너무도 좋아한다. 아, 시체를 쌓아놓고 옆에서 배고프다며 챙겨온 저녁을 먹는 남자라니!
게다가 황재하를 남자 환관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오해와 착각도 읽는 내내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외국에서 온 사절이 황재하를 보고 비록 환관이지만 남아의 당당함이 살아있다는 칭찬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더불어 이서백과 황재하의 다소 방향이 어긋난 대화라든지, 서로가 상대에게 품고 있는 착각도 무척 유쾌했다.
황재하의 성격이 활기차고 긍정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최고의 방법을 모색하고, 남의 도움에 고마워하고 또한 남을 돕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게다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죄를 저질렀으면 법 앞에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좋았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 위험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까지 로맨스 소설의 진행을 따르자면, 조만간 이서백은 황재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고 그녀의 옆에 얼쩡대는 주자진이라든지 왕온에 대해 경계의 눈길을 보낼 것이다. 주자진은 왜 내가 남자인 환관에게 눈길이 가는가 고민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황재하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좋은 협력자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왕온은 아마 양숭고라는 환관이 자신의 약혼녀이자 수배범인 황재하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 같다. 두 번째 사건을 해결할 때, 그가 남긴 말이 의미심장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 사실로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과연 그는 황재하의 적이 될 것인지 아니면 동료가 될 것인지, 그리고 이서백의 연적이 될지 아닌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추리 로맨스 소설 중에는 로맨스에 치중하는 바람에 추리적인 면이 상당히 빈약한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추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바람에, 로맨스 감정의 흐름이 이상할 때도 있었다. 이 작품은, 아직 1권밖에 읽지 않아서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흐름이나 두 장르에 대한 비중은 적절한 것 같았다. 계속 이런 분위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