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 히토미 11세, 댄스 때때로 탐정 마이다 히토미 시리즈 1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작가 - 우타노 쇼고



  최근 나에게 불어 닥친 우타노 쇼고 열풍 때문에 집어든 책이다. 역시 이번에도 나를 낚으려고 표지엔 귀여운 어린 소녀가 활짝 웃고 있었다. 추리, 즉 범죄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너무도 귀여운 여자아이와 밝은 배경이다. 작가 이름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 초등학생용 성장 동화정도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게 추리 코너에 있지? 그리고 표지에 적힌 작가 이름을 보는 순간, 속으로 외쳤다.


  ‘어머나! 이건 꼭 읽어야 해!’



  첫 장을 열기 전에, 속으로 온갖 상상을 했다. 11살 어린 소녀가 탐정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똑똑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끔찍한 살인이나 그런 것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하지만 기발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걸까?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보니, 표지와 제목의 귀여운 소녀인 히토미는 내가 상상한 탐정이 아니었다.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은 그녀의 삼촌인 형사 토시미.


  히토미는 삼촌과 게임을 한다거나 밥을 먹는다거나 하면서, 어른을 생각하기 힘든 어린이다운 기발한 상상력으로 사건에 대한 힌트를 주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그게 사건에 대한 힌트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책은 총 여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사건이 교묘하게 연결이 된다는 점이다.


  1편인 ‘검게 탄 할머니, 죽인 사람은 누구?’는 2편인 ‘금, 은, 다이아몬드, 푹팍푹팍’과 이어진다. 할머니의 불이나서 타버린 집에서 뭔가가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이 2편이다. 1편은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지 찾는 내용이고.


  3편 ‘착한 아저씨, 나쁜 아저씨’와 4편 ‘착한 아저씨? 나쁜 아저씨?’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교묘하게 연결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2편에서 나왔던 사건 관련자가 여기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5편 ‘도마뱀은 보았다, 알고 있었다.’ 와 6편 ‘그 눈동자에 비친 것’은 애석하게도 별로 연관이 없었다. 다만 6편에서는 두 가시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는데, 그 둘의 연관성이 참으로 기발하게 연결되었다. 거기에 막판에 드러나는 히토미의 비밀까지!


  거기에 대부분의 사건 힌트는 히토미가 다니는 학교나 방과 후 댄스 클럽에서 얻어오니, 초등학생의 사교 클럽은 무시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뒷담과 시기, 질투로 어른들의 네트워크와는 또 다른, 아이들만의 상상력과 기발함으로 똘똘 뭉친 세계.


  그래서 어른들이 복잡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건도 단순화하고, 자기들만의 시선으로 간단하고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글을 읽으면서, 히토미가 11살 소녀치곤 어른스럽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키워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대학 조교수라 바쁜 아빠와 둘이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삼촌이 놀이 상대가 되어주긴 하지만,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고 판단해야했기 때문일까. 중간 중간에 말하는 것이나 행동을 보면, 또래보다 좀 더 성숙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다음편인 ‘마이다 히토미 14세’가 더 기대가 된다. 이 어른스러우면서 귀여웠던 소녀가 어떻게 성장했을 지. 중학생의 세계는 초등학생이나 어른과 또 다르기에, 작가가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증과 기대가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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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작가 - 온다 리쿠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리세 시리즈’라 불리는 시리즈의 하나이다.


  책장을 덮고 '도서실의 바다'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에 이 소설의 주인공인 리세의 어린 시절이 나왔었다. 하지만 어리다고 해봤자, 이 책에서의 리세는 중학생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읽으면서 그 때의 리세와 지금의 리세를 비교해보고 싶다.


  부잣집 자제들만 입학이 가능하다는, 외진 곳에 있는 전교생 기숙사제인 외부와는 연락이 단절된 최고급 학원. 삼월의 나라이자, 교장의 나라이기도 한 그곳에서 아이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최고급 시설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가 보낸 아이들은 '요람파'

  특수한 재능(예체능 쪽)을 가진 아이들이 일대일로 전문가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양성소파'

  그리고 집에서 숨겨지거나 버려진 아이들의 '묘지파'


  그곳에 리세가 전학을 오자, 학생들은 술렁인다. 2월의 신입생은 재앙을 몰고 온다는 전설 때문이다. 각자 말 못할 비밀을 갖고 있는 학생들과 기이하게 실종된 아이. 그리고 사건의 중심에 휩쓸리게 된 리세.


  읽으면서 몽환적이고 나른한 분위기 속에 숨겨진 팽팽한 긴장감에 집중해서 읽다가, 마지막 장을 보면서 '반칙이야!'라고 외쳤다. 이런 반전이라니. 어떻게 이런 몽환적이면서 비현실적이고 배경에서 교묘하게 현실적이면서 믿기 어려운 사건이 일어날 수 있을까?


  분위기에 취해서 읽다보면, 어느새 독자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몸을 내맡긴 자신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주인공에게 동감하게 되고,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작가의 마력에 혼을 바치게 되고.


  그리고 번역판만 읽어서 잘 모르겠지만, 번역가가 원작자가 사용한 단어를 최대 99% 제대로 번역했다고 가정했을 때. 작가인 온다 리쿠는 참으로 풍부하고 생소한 어휘를 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소한 느낌을 주는 단어가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었다.


  본문에 나오는 '녹슨 양동이색 같은 파도'라는 표현을 봐도 그렇다. 파도라고 하면 대개 푸른색이나 검푸른 색 등등을 연상하는데, 녹슨 양동이라니……. 그 둘을 연결시키는 것이 참으로 낯설었다. 하지만 그 단어가 주는 느낌을 상상해보면, 작가가 주려고 하는 인상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다. 쓸쓸하고 음울한 느낌의 바다.


  책을 다 읽고, 리세와 같은 상황이라면 난 어땠을까? 리세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고 상상해본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히지리는? 요한은? 레이지는? 레이코는? 유리는? 그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찾았을까?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았을까? 아니면 결국 묘지파가 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하고 말았을까?


  십대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어른에 대한 미묘한 반발심과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 잘난 척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자기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심리, 독점욕, 동지 의식, 비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긴장감과 불안, 초조, 너무도 위험한 천진함과 순수함 등등.


  복잡 미묘한 감정들과 알 수 없는 긴장된 분위기가 읽으면서 마음을 약간은 불편하게 하고, 조마조마하게 만들며, 나른함까지 느끼게 했다.


  확실히 대단한 이야기꾼임에는 틀림없다, 온다 리쿠는. 그래서 마음에 드는 작가를 한 명 만날수록, 지름신의 압박은 날로 더해지기만 하다. 이래서 사람은 책을 읽으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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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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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 - 온다 리쿠



이 책은 4부로 구성이 되어 있다.


1부는 사라진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찾는 기묘한 모임에 초대받은 회사원의 이야기.

2부는 역시 '삼월을 붉은 구렁을'의 작가를 찾아 길을 떠난 두 편집장의 이야기.

3부는 좀 생뚱맞지만 두 소녀의 사고사를 둘러싼 비밀을 다루고 있다.

4부는 작가인 온다 리쿠가 직접 나서서, 4부작 시리즈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갔는지 리세의 이야기와 번갈아가면서 서술하고 있다.


작가 미상의, 200부 정도만 자비 출판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비밀의 책. 책의 소유자는 딱 한 명에게, 그것도 단 하룻밤만 빌려줄 수 있으며 그것도 나중에 작가의 대리인이 모든 책을 회수해갔다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는 전설의 소설.


총 4부작으로 각 편마다 문체가 조금씩 달라서 여러 사람이 썼다는 설과 한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써내려갔다는 설이 분분한, 그래서 더 미스터리하고 신비한 뒷이야기만 남긴 책.


이것이 바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다.


음, 그러니까 책의 제목이 바로 사람들이 찾아 헤매는 책이고, 1,2부는 그 책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거기에 4부에서 리세가 찾아낸 책도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기도 하고.


아, 뭔가 복잡하다.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에서도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책에 대해서 언급이 나오는데, 이 소설에서 나온 것과는 좀 거리가 멀다. 그 책이 그 책이 아닌가? 하긴 이 책의 4부와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도 내용이 조금 다르긴 하다. 뭐, 단편을 장편으로 만들면 달라지기도 하겠지. 애거서 크리스티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딱 이렇다하고 규정을 지을 수 없는 소설이다. 역시 어휘는 낯설면서 감각적이고 이해가 빨리 와 닿았다. 이건 순전히 번역본으로 판단하는 것이라, 전에도 언급했듯이 번역가가 원작자의 어휘를 얼마나 충실히 되살렸는지가 관건이지만.


글의 서술은 평범하고 조용하지만, 실 또는 고무줄이 느슨하지만 조금만 당기면 팽팽해질 것 같은 분위기가 밑바닥에 깔려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잡아당기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읽어갔다.


하지만, 어느새 작가의 의도에 휘말려 꽉꽉 잡아당기면서 미지의 상대에게 ‘놓지 마!’ 라고 외치고 있는 모양이 되어버렸다. 상대방이 놓아버리면, 내가 맞으니까. 그러면 아플 테니까.


전반적으로 각각의 내용은 책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생뚱맞게 남겨진 책. 그래서 더더욱 내용의 진위를 알 수 없는 책.


하지만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는 여정이 때로는 자신의 숨겨왔던 치부를 드러내는 길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그토록 감추고 싶었던 비밀을 캐내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누구나 다 비밀은 한두 가지씩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까.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에 따라 사람의 개성과 진심이 보이는 것이다. 그 사람의 본심을 알게 된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2부와 3부는 자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난 여자 형제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다른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볼 수는 있었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동성의 혈육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자신과 성염색체가 같은,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또 다른 존재.



조금씩 개성은 다르겠지만, 어쩌면 거울을 보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비슷한 모습을 비춰주거나, 다른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 어쩌면 또 다른 나일수도 있었던, 그런 가능성이 조금은 있는 존재.


어쩌면 내가 동성의 형제에 대해서 환상을 갖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성의 형제보다는 좀 더 가깝지는 않을까?



거울과 책.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과 자신의 고백일 수도 있는 책. 그러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보여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고백일 수도 있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 두 가지 사물.


그러고 보니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에서 리세가 제일 좋아했던 책이 '거울 나라의 앨리스'였다.


음, 뭔가 말이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머리와 입에서만 왔다 갔다 할 뿐. 그냥 ‘작가님 너무너무 좋아해요!’라고 마무리를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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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단편집 스티븐 킹 걸작선 5
스티븐 킹 지음, 김현우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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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킹의 단편이다. 또한 그의 다른 작품답게 공포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예외도 있다. 그린 마일이나 쇼생크 탈출은 공포가 아닌 휴머니즘이 철철 넘치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마음에 안 들게.


 

  킹의 원작이 영화된 것 치고 그 공포를 잘 드러낸 것은 없다는 업계의 관례처럼, 영화는 별로였다. 시리즈로 6편인가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매혹적인 소재였지만, 원작의 긴장감과 공포감은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정말이지 아까운 일이다.


 

  소설의 내용은 간단하다.


 

  길을 가던 커플이 한눈을 팔다가 그만 아이를 치고 만다. 아이는 즉사. 그런데 나중에 잘 보니 아이는 차에 치이기 전에 이미 죽어 있었다. 둘은 아이의 부모에게 사정을 얘기하겠다는 일념으로 근처 마을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 곳에는 아이들만이 바글거리고 있을 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커플의 시점으로, 그들이 찾아내는 힌트와 말을 통해 추측할 뿐이다.


 

  소설에서의 묘미는 아이들이 종교에 빠져 어른들을 죽인다는 것이다. 또한 배신자는 알아서 처단하고, 자기들끼리 아이를 낳으며 옥수수 밭을 지키는 것에 있다. 그야말로 종교에 미친 집단의 광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그 대상이 아이들이니 얼마나 끔찍한가!


 

  그런데 단순히 아이들을 광신도로 몰아붙이기는 수긍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죽인 이유는 그들이 너무 타락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오염시키고 전쟁을 일으키고 이 세계를 파괴의 길로 몰아가는 것은 어른들이기 때문에, 순수하고 순결한 아이들이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보면 일정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다. 은혜를 입는다는 멋진 이름으로 말이다.


 

  소년 십자군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어른들의 십자군 원정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이 세속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라며, 순결한 아이들이 승리를 이끌겠다던 그 집단. 물론 세속에 물든 어른들이 그들을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가장 비극으로 끝난 사건 중의 하나이다. 결국 어른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어른들을 불신하는 아이들.


 

  어렵지 않게 우리 주위에서도 볼 수 있다. 불신하고 불만에 가득 차 있고, 뭔가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너무도 많다. 일부는 기성 사회를 비판하면서 반항하고 일탈하기도 하고, 일부는 어른들과 타협하면서 더 나은 결과를 내려고 하기도 한다. 또 일부는 너무 쉽게 모든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아니면 사회에 대해 외면하거나.


 

  '아이들은 아이다워야지.' 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아이다움이라는 것이 무얼까?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아이?

  아니면 명작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쾌활하고 말썽은 부리는 아이? 물론 그 아이들은 기본이 착해서 사고뭉치일지라도 어른들의 말은 귀담아 듣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나쁜 것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그야말로 무균실에서 배양되어 '세상은 아름다워~' 라고 생각하는 아이?

  그것도 아니면 조숙해서 혼자 알아서 하는 아이?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거울을 닦아주는 것은 어른일 것이다. 거울의 틀을 만드는 것도 어른일 테고.


 

  결국 소설에서 아이들이 그런 극단적인 것을 벌이게 된 원인은 어른에게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소설일 뿐인데 너무 비약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집단적으로 일어나지 않다뿐이지 비슷한 사례는 찾아볼 수 있다. 부모를 죽이는 아이들, 길가다 시비 붙은 상대를 죽이는 아이들 등등.


 

  버릇없는 아이들이 커서 버릇없는 어른이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또 자기처럼 버릇없는 아이들을 생산한다. 돌고 도는 악순환이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요즘 세상이 너무 무서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스티븐 킹은 세상을 멀리 보는 눈이 있는 작가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통찰력과 생각의 깊이가 무척이나 부러운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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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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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타노 쇼고의 단편집이다.


 

  얼마 전에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너무 인상적으로 읽어서, 작가 이름만 보고 단번에 지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단편을 좋아하기도 하고, 추리 소설도 좋아하고, 작가도 마음에 들었으니, 3박자가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였다.



 

 

  첫 번째 단편인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맛으로 비유하자면, 시원하면서 톡 쏘는 맛이 느껴졌다. 하얀 생크림 제일 아랫부분에 연 겨자라든지 사워크림을 바른 격? 아니면 31가지 맛을 판다는 아이스크림 체인점의 입에 넣으면 알갱이가 톡톡 터지는 아이스크림이 밑에 깔려있거나.


 

  초반에 보여준 약간의 비틀림이 막판의 반전과 잘 어우러져서 그런 느낌을 주었다. 처음부터 상쾌한 맛이 입 안에 남아있는 상태에서 톡 튀어버리니, 놀랄 수밖에. 그래서 결말을 읽으면서, ‘헐’하고 놀라는 것이다.


 

  물론 범인의 트릭은 속임수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엘러리 퀸처럼 모든 힌트를 다 주는 작가는 드무니까.


 

  현실적이고 돈만 밝히는 탐정 캐릭터엔 큰소리를 내면서 웃어버렸다. 하긴, 예전처럼 탐정의 활약상을 이름만 바꿔서 책으로 내면 곤란하긴 할 거다. 요즘은 개인 정보나 사생활 보호법이라는 게 있으니까. 피해자도 보호해야하고.


 

‘아, 그렇구나!’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대의 변화라는 건, 탐정의 의식에도 변화를 주나보다. 예전처럼 유산을 물려받아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건을 추리하는, 박학다식하고 예의바르며 고상한 탐정은 보기 힘든 세상이다.



 

 

  두 번째 단편인 [생존자, 1명]은 맛있다고 열심히 먹다가 결국엔 목이 메고 마는, 크림이나 잼이 발라져있지 않은 약간은 단단한 식감의 빵을 떠올렸다. 물론 달달한 맛이 나긴 하지만, 그게 좋다고 계속 허겁지겁 먹다가는 물이나 우유를 부르짖게 된다.


 

  신흥 종교에 빠져 지하철 테러 사건을 일으킨 네 명의 남녀가 외딴 섬으로 피신을 한다. 교주는 그들에게 잠시만 기다리면 외국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교단은 그들을 버렸다. 의도치 않게 남은 한명의 입에서 나온 진실. 그들은 버림받았다는 배신감과 충격에 휩싸인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한 명씩 사라진다. 다섯 명밖에 없는 섬에서, 과연 누가 살인자인가?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자동적으로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읽게 만드는 글이었다. ‘아니, 잠깐만! 그럼 이건 누구의?’ 이러면서 읽다가 결국은 ‘난 바보인가 봐’라는 길고 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어쩌면 처음 먹은 톡 튀는 생크림 케이크를 맛보았기에, 두 번째는 약간 빡빡하지만 단단해서 중간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케이크까지 달면 맛이 다들 비슷비슷해서 별로일 테니까.



 

 

  세 번째 단편인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는 진한 커피 향을 오랫동안 입 안에 남기는, 뒷맛이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크림이 잔뜩 발라진 케이크였다. 그래서 마지막 케이크로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추억에 대한 것이다. 젊은 시절 불태웠던 탐정 소설에 대한 열정.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잊고 말았던 그 시절의 추억. 시간이 지나면서 소원해진 서로의 관계.


 

  이 모든 것을 되살리고 싶었던 중년의 고백이 가슴 아프면서도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언젠가 커피를 마시면서 흥얼거렸던 ‘Twilight Time’의 멜로디가 떠올랐다. 그리고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끝까지 놓을 수 없는 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어쩌면 그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찾았고, 이뤘으니까. 그리고 그 여운이 오래가는 진한 향처럼, 글을 읽는 내 눈과 기억 속에 계속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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