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의 아리아
곽재식 지음 / 아작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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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곽재식






  아홉 개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SF 단편집이다. 기발한 상상력도 상상력이지만, 과학적인 설명이 다수 들어있는 게 특징이다. 음, 저자의 약력을 보니 이과출신이다. 그런 거였군!



  『숲 속의 컴퓨터』는 주인공이 폴란드의 어느 시골 외딴 숲에서 발견한 인공지능컴퓨터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큰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 컴퓨터와 이를 따를 것인지 아닌지 고민하는 주인공. 스스로 성장하는 인공지능 컴퓨터를 보면서, 스카이넷의 결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망상을 해본다. 아, 나도 돈 벌게 해준다는 컴퓨터 만나고 싶다!



  『박승휴 망해라』는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뇌를 판 한 남자의 과거 회상으로 시작한다. 상대방은 신경도 쓰지 않는데 혼자 라이벌로 생각한 '박승휴'를 이기겠노라 평생을 바친 주인공. 그는 아무도 해내지 못한 우주 정복을 해보겠다고 결심하는데……. 걷는 놈 위에 뛰는 놈이 있고 또 그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말이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어쩐지 불쌍해 보이는 주인공이었다.



  『토끼의 아리아』의 주인공이 바에서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 그는 한국의 한 CPU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다른 기업에 회사 기밀을 팔아넘기려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다. 하지만 이건 거대한 음모였으니……. 읽으면서 대기업과 정부의 만행과 여론몰이를 하는 언론, 그리고 거기에 놀아나는 대중의 무능함에 화가 나는 이야기였다. 현재도 있을 법한 이야기라 더 그런 모양이다. 하아, 진짜 이런 일은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고, 현실에서는 안 일어나면 좋겠다.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박흥보 특급』는 고전 ‘흥부와 놀부’를 패러디한 작품인 것 같다. 망할 것 같은 아이디어에 투자를 해준다는 얘기에 솔깃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과연 제비 다리를 고쳐주면, 나중에 돈이 들어있는 박 씨를 물어다 주는 걸까? 너무도 유쾌한 결말이었다. 어디 다리 다친 제비 한 마리 없나 찾아봐야겠다.



  『흡혈귀의 여러 측면』에는 ‘토끼의 아리아’의 주인공이 유네스코 감사원으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연구비를 횡령하는 교수가 주인공이다. 횡령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뉴스에 등장하는 여러 비리 사건이 떠올랐다. 하여간 세상은 넓고 나쁜 놈은 엄청 많다.



  『빤히 보이는 생각』은 어느 날 옛사랑의 방문을 받은 남자가 주인공이다. 오랜만에 연락한 그녀는, 자신을 빠른 시간 내에 멍청하다는 판정을 받도록 도와달라고 얘기하는데……. 어쩐지 ‘토끼의 아리아’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해결 방법은 달랐다.



  『로봇복지법 위반』은 로봇이 보편화된 시대가 배경이다. 어느 순간부터 로봇에도 감정이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로봇의 복지에 관한 법이 제정된다. 이 때문에 감정이 있는 로봇이라는 판정을 받으면, 무차별적 폐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주인공 로봇은 그 판정을 받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데……. 감정이 있는 구형 로봇을 폐기하기 위해, 성능이 떨어지는 신형 로봇을 만들어낸다는 게 너무 아이러니했다. 같은 로봇끼리 파괴해야하니, 감정을 없애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해야 할까? 게다가 압박면접을 받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주인공 로봇을 보면서, 인간보다 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로봇은 왜 살아남고 싶었을까? 마무리가 통쾌했다.



  『4차원 얼굴』은 사고로 시력을 잃은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노인이 등장한다. 그 친구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본 것을 남에게 알려주기 위해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4차원의 그림을 남기게 되는데……. 사실 프로그램 응용이야기가 나오는 순간부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뼛속까지 문과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조용하게 퇴장하기』는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 정해진 미래가 배경이다. 이때부터 잔기, 그러니까 지구가 사라지는 날을 카운트 다운하는 연도를 사용한다. 이후 모든 것은 바뀌었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 관련 사업, 예를 들면 산부인과를 시작으로 소아과, 어린이집, 학교 등등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데……. 어쩐지 생각하면 암울한 미래였다. 하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기도 했다. 과연 그런 상황이 되면, 난 어떤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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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유모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4
듀나 지음 / 알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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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듀나

 

 

 

듀나의 단편집이다전에 리뷰를 적은 구부전과 비슷한 시기에 나왔는데이 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지구와 다른 별과거와 미래를 배경으로 다양한 사건들이 펼쳐지고 있다그런데 읽다 보면어쩐지 현대를 교묘하게 풍자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대리전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인간 숙주에 정신을 이동시켜 지구를 여행하는 외계인들이 많아진 미래주인공은 그런 외계인 여행객을 안내하는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었다어느 날 두 여행객이 여행사를 방문하는데사실 그들은 지구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다그들이 지구에서 노리는 것은 과연 무얼까?

 

처음에는 왜 제목이 대리전일까 싶었는데끝까지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럭비 경기아니 우주 전쟁소박한 거 같은데 은근히 스케일이 컸다한국은 미래에서도 다른 나라의 대리전이 벌어지는 장소가 될 운명이었단 말인가!

 

 

사춘기여안녕은 뇌시술을 통해 감정 조절이 가능해진 시대가 배경이다사춘기는 사라지고아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완벽히 발휘할 수 있게 된다또한어른들의 바람대로 집중력 있고 차분하며 감정의 변화 따위는 느끼지 않는 아이가 된다주인공은 아빠의 반대로 유일하게 시술을 받지 않았다이에 소년은 아빠의 판단에 따르지 않기로 하는데…….

 

분노 조절이 가능함에 따라 차분해지고 집중력이 좋아지며자신의 숨겨진 재능까지 파악하여 진로를 정할 수 있다니이건 완전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만약 그런 시술이 가능하다면나에게 아이가 있다면난 어떤 선택을 내릴까그런데 나노봇을 뇌에 이식한다면그건 내 의지일까 나노봇의 의지일까?

 

 

미래관리부는 어느 순간미래에서 온 후손들이라는 자들이 청각장애인을 통해 현재에 연락해온다그들은 역사를 완성하겠다며 현재의 일에 사사건건 개입을 한다이후사람들은 뭔가를 하겠다는 의지를 상실한다어차피 후손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 다 잘 될 테니 말이다그런데 이에 반대하는 자들이 등장하는데…….

 

과연 그들이 미래에서 온 후손들인지 의문이 들었다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대로 현재의 우리가 움직인다면그건 현재를 사는 걸까 미래를 사는 걸까내가 뭔가를 이루어간다는 성취감이 사라진 사람들이 삶에 대한 의지를 잃어가는 것도 이해가 갔다그건 뭐랄까미래를 움직이는 원동력을 위한 에너지를 만드는마치 배터리가 된 기분이 아닐까?

 

 

수련의 아이들은 LK 생물공학연구소에서 청소를 하는 수련의 이야기다우연히 연구소에서 만든 액체를 뒤집어쓰게 된 수련이후 그녀의 신체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데…….

 

LK라는 이름이 낯익다그렇다. ‘아직은 신이 아니야에서 어떻게 보면 악의 축으로 등장했던 기업이다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온갖 이상하고 위험한 일을 하고 있었다.

 

 

평형추에서도 LK 그룹이 등장한다대외업무부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우연히 최강우라는 신입사원을 눈여겨보게 된다왜인지 모르지만그는 죽은 회장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그를 조사하던 주인공은놀랄만한 비밀을 알게 되는데…….

 

이 시대에는 이라는 것을 뇌에 이식할 수 있다고 한다어떤 웜을 이식하느냐에 따라 그것의 활용도는 다양하다문제는 최강우가 이식받은 웜에 있었다그걸 다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패스하여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고부처님 손바닥 위라는 말이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각자의 시간 속에서는 시간 여행이 가능해져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간대로 오갈 수 있는 때가 배경이다. ‘시간인이라 불리는 그들은 다양한 시간대를 다니며침략하기도 하고 문물을 전달하기도 하고 때로는 신을 창조하기도 했다그리고 그때마다 시간선이 꼬이면서 다양한 분기점을 만들어내는데…….

 

뭔가 복잡하다는 기분이 드는 이야기였다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꼬이는 것이역시 시간 여행은 어렵다는 느낌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나 미래의 나를 만나면진짜 나는 누구일까모든 시간대에 있는 내가 다 진짜일까?

 

 

두 번째 유모의 배경은 해왕성이다. ‘아버지라 불리는 인공지능들의 전쟁이 있은 후, ‘어머니라 불리는 인공지능이 인간과 비슷한 신인류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었다아이들을 돌보며 어머니와 소통하던 가을 이모가 사망한 이후, ‘서린이라는 여인이 화성에서 도착한다그리고 그녀는 아버지의 침략에 맞설 준비를 하는데…….

 

보호하고 건설하는 어머니와 파괴하고 살육을 즐기는 아버지라……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이상한 믿음에 휩쓸리지 않고 양서류를 연상시키는 인간의 외모를 가진 아이들인간의 미래란 어떤 걸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인간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과연 지금의 이 겉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인간을 인간이라 결정짓는 건 어떤 요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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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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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Elevation, 2018

  작가 - 스티븐 킹




  어느 날부턴가 ‘스콧’에게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매일 일정하게 몸무게가 줄어들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없고, 옷을 입건 아령을 들건 무게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그런 기이한 일이었다. 은퇴한 의사 ‘밥’에게 상담을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결국 스콧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대신 그는 동성 커플이라는 이유로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옆집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데…….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전에 없던 상냥함’이라는 문구가 띠지에 적혀있다. 그걸 보고 처음 든 생각은, 그게 말이 되냐는 의문이었다. 어쩌면 일반적인 상냥함과는 다른, 그런 상냥함을 말하는 게 아닐까하는 추측도 해보았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진짜 상냥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 뒷면에는 잔혹하고 끔찍한 상황이 숨어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분위기는 따뜻하고 긍정적이고 상냥했다. 어떻게 스티븐 킹의 책에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어쩌면 스콧이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상태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했기에 그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사는 ‘캐슬록’은 스티븐 킹의 작품 세계에서 중심이 되는 동네로, 온갖 사악한 존재들이 들끓고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기에 또 다른 특징이 붙었는데, 동성 커플을 꺼린다는 점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드러내지만 않으면 괜찮은데, 그걸 밝히면 문제가 된다.’라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스콧은 달랐다. 그게 뭐가 문제냐는 태도로,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 상처받은 옆집 커플을 위로하려고 했다. 스콧은 밥과 함께 그들의 식당에 가기도 하고, 동네 마라톤에 함께 참가하여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마침내 옆집 커플과 닥터 밥 부부에게 자신의 비밀을 공개할 정도로 사이가 좋아진다. 그 과정은 무척이나 훈훈하고 따뜻했다. 그리고 스콧이 최후의 결단을 내리고 그걸 실행에 옮기는 과정 역시 무척이나 긍정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물론 그의 마지막 여정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끔찍하고 두려울 것 같지만, 스콧은 특유의 긍정적 마인드로 헤쳐 나간다. 그의 친구들 역시 슬프지만,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행복을 빌어준다.


  그런 전반적인 분위기가, 지금까지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느꼈던 오싹함이나 공포를 묻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에서 시련을 겪고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의 인물들은 그런 여지가 하나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순간 순간이 슬프지만 의미 있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은 매번 두툼한 분량으로 사람들에게 뿌리 깊은 공포와 그걸 이겨내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려줬다. 그런데 이번에는 얇은 분량으로 혐오를 이겨내는 과정의 공포 대신, 이해와 사랑에 대한 작품을 내놓았다. 나이가 있으셔서 그런가……. 뜻하지 않게,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책의 뒤표지에 ‘경장편소설’이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학교에서 소설의 길이로 분류할 때, ‘단편’과 ‘중편’ 그리고 ‘장편’과 ‘대하소설’로 배운 기억이 있다. 중편과 장편의 중간 단계라고 하는데, 이건 뭘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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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썰록
김성희 외 지음 / 시공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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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김성희, 전건우, 정명섭, 조영주, 차무진




 

  좀비가 언제부터 유행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죽은 시체가 되살아나 다른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설정은 상당히 공포스러우면서 또 매력적이다. 물론 홍콩에서 만든 강시는 귀엽고 코믹한 이미지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좀비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핫한 아이콘의 하나이고, 다양한 장르로 발전해왔다. 오리지널로 창작하는 것도 모자라, 이미 존재하는 기존의 작품에 변형을 가하기도 했다. 그런 작품들이 거의 영미권 문학쪽에서만 발견되어서 아쉽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국에서도 그런 시도를 한 작품이 있다는 소식에 ‘오오!’하며 설렘과 반가움이 앞섰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책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 책 재미있다고, 꼭 읽어보라고 권할 정도였다.



  『관동행: GAMA TO GWANDONG』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關東別曲, 1580’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관동별곡에 얽힌, 숨겨진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님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다. 십여 년도 동안 유배지에 있던 정철이 갑자기 관찰사로 임명된 이유, 그리고 부임지로 가는 길에 겪은 목숨을 건 사투 등등. 거기다 사람들의 신의와 배신, 충정 등이 잘 드러나 있었다. 여기서는 좀비를 ‘걸귀’라고 부른다.



  다 읽고 기억에 남은 건, 뭐니 뭐니 해도 김치였다. 역시 김치는 좋은 것이다.




  『만복사 좀비기』는 ‘매월당 김시습’이 조선 초기에 저술한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수록된 ‘만복사저포기 萬福寺樗蒲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배필을 구하고자 불상과 저포놀이로 내기를 한 양생에 관한 내용인데, 여기서도 비슷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시귀에게 쫓겨 만복사에 숨어있는 상황에서도 배필을 구해야한다고 하는 주인공의 심리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머니의 유언을 지키고자 그런다고 하는데, 흐음. 그런 상황에 아이 낳고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마지막 반전이 멋졌다.




  『사랑손님과 어머니, 그리고 죽은 아버지』는 ‘주요섭’이 1935년에 발표한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원작이다. 여섯 살 난 ‘옥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원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는 것이다. 오랜 병으로 괴팍해진 아버지와 시댁 식구들까지 건사하며 고된 시집살이를 하는 어머니, 그리고 의사인 사랑손님.



  아, 옥희 어머니에게 반해버렸다. ‘엄마는 참는 여자가 아니야.’라니! 그리고 시댁 식구들과 자신을 험담하던 마을 사람들에게 가차 없이 휘두르던, 읍읍 여기까지.




  『운수 좋은 날』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1924’를 각색했다. 다른 작품들은 소설 속의 시간대를 그대로 사용하는데, 이 이야기만 배경이 현대다. 채식 주의자였던 작가가 어느 날부터 육식을 즐기기 시작한다. 그러다 우연히 살인사건 현장을 목격하면서 사고를 당하고, 이후 자신의 입맛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김첨지’와 그 아내의 슬프면서 어쩐지 화도 났던 그런 이야기가 어쩐지 액션 활극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고기를 못 먹는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슬픈 이야기였다.




  『피, 소나기』는 ‘황순원’의 ‘소나기, 1953’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소녀가 죽은 그 이후를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소제목을 보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잔망스러웠던 소녀는, 계속 잔망스러웠다. 그리고 소년은 소녀를 너무 사랑했다. 이건 좋아한다는 걸 넘어서는, 진정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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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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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서 - Behind closed doors

  작가 - B. A. 패리스

 

 

 

  ‘그레이스에게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다운증후군이 있는 동생 밀리가 있다그레이스에게 밀리는 그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어느 날동생과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레이스에게 잘 생긴 외모의 한 남자가 나타난다. ‘이라는 이름의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여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였다둘은 사랑에 빠지고그레이스는 잭과 결혼을 한다하지만 신혼여행지인 태국에 도착하자잭의 태도가 돌변하는데…….

 

  이 작가의 다른 작품, ‘브레이크 다운 The Breakdown, 2017’과 브링 미 백 Bring Me Back, 2018’을 먼저 읽었다출판 순서로 보면이 책이 제일 먼저 나왔는데 말이다.

 

  이 책은 광고를 통해잭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밝혀졌다잭은 겉으로는 아내와 처제를 너무도 사랑하는 애처가이자 누구나 한 번쯤은 시선을 줄 만큼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에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는학대받는 여성의 대변인인 변호사이다하지만 실제로는 어린 처제를 볼모로 아내를 협박하며 공포에 질린 모습에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였다그러니 어떻게 그레이스가 그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가 관건인 셈이다.

 

  초반에는 그레이스가 좀 답답하게 여겨졌다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나오는데밝고 쾌활했던 그레이스가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이 그려져서 그런 모양이다내가 어떤 일을 해결하려고 할 때마다 사태가 악화한다면사람은 자신에 대해 믿음을 잃어버리고 만다그리고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야.’라는 생각과 함께뭔가를 더 해본다는 건 무의미하다고 여기며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여기서 그레이스가 그랬다여러 번 탈출과 반격 시도를 해봤지만결국 자신의 잭의 손바닥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냥 그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만다그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거나 반항하면동생인 밀리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가기 때문이다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보니까답답함은 좀 가시고 안쓰럽다는 생각만 들었다그리고 잭에게서 벗어나려는 그레이스를 응원하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이 그렇게 쉬운 건 아니었다아무래도 잭이 유능한 변호사다 보니까 이것저것 아는 것도 많고무엇보다 그는 무척이나 똑똑했다하아진짜 잭은 사악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었다처음부터 그가 그레이스를 점찍은 이유는다른 아이들과는 약간 다른 동생이 있었고 그 동생에게 헌신적이었기 때문이었다동생을 잘 돌볼 수도 있는 거지그걸 약점으로 잡고 사람을 괴롭히다니……완전 XX.

 

  결말은 과연 이게 먹힐까 하는 의문이 드는 마무리였다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경찰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을 텐데이런 생각과 몇몇 작품에서 나왔던 무능한 경찰을 떠올리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한국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나온 공권력을 보면그럴 가능성은 더 커진다거기나 여기나 사람 사는 곳이니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마지막 대사가 의미심장했다그래세상은 서로 돕고 사는 거야.

 

  잭 같은 남자가 창작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거면 좋겠다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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