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의 비극
나쓰키 시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손안의책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 - Wの悲劇, 1982

  작가 - 나쓰키 시즈코

 





 

 

  제목을 보고 순간적으로 의아했다. 엘러리 퀸 소설에도 비슷한 제목이 있는데? 따라쟁이인가? 표지 안쪽을 보니, 엘러리 퀸과의 사숙을 인연으로 허가를 받고 똑같은 제목을 사용했다고 적혀있다. 사숙? 아쉽게도 한글로만 적혀있어 어떤 한자를 쓰는지 알 수가 없지만, 엘러리 퀸과 안면이 있다는 거잖아? 헐, 좋겠다. 그리고 진짜 부럽다.

 

 

  ‘하루미’는 영어를 가르치던 ‘마코’의 부탁으로, 논문을 봐주기 위해 ‘와쓰지 가’의 별장으로 향한다. 연초에 와쓰지 가문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연례행사처럼 모임을 갖는다. 하루미는 집안사람들 모두가 다 마코를 귀여워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큰할아버지 부부도, 작은 할아버지도, 새아버지와 엄마도, 아저씨도 심지어 집안 주치의까지 모두가 다 그녀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날 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거실로 마코가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난다. 자신을 덮치려는 큰할아버지인 ‘요헤’를 엉겁결에 죽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지만, 요헤가 죽은 이유가 부적절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멈칫한다. 그들은 마코를 재빨리 도쿄로 보내고 사건 현장을 조작하기로 한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그리고 마코의 앞날을 위해, 그들은 강도가 들어와 살인이 일어난 것처럼 꾸민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어가는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들이 조작한 증거가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두가 다 가문과 마코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배신자가 있었다. 배신자는 누구이고, 무엇을 노리는 것인가?

 

 

  와,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흘러갔다. 처음에 알리바이라든지 현장 조작 같은 걸 너무나도 척척 잘해내서, 설마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의를 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배신으로 조작한 증거들이 다 소용이 없어지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그동안 숨기고 있던 사람들의 비밀이 하나둘씩 폭로되면서, 실낱같던 유대감 대신 팽팽한 긴장감과 아슬아슬한 불안감이 집안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모든 억눌린 감정들이 터지면서, 모두를 연결하고 있던 끈은 끊어지고 만다.

 

 

  제목의 ‘W’는 가문의 이름인 와쓰지(Watsuji)를 뜻하기도 하고, 여자(Women)를 의미하기도 한다.

 

 

  평생 여자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며 바람을 피운 ‘요헤’와 ‘시게루’ 형제를 대신해 집안을 다스린 것은 부인인 ‘미네’였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집안의 명예와 가문의 존속이었다. 그 때문에 남편의 시체 앞에서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고 가족들을 이끌었다. ‘요시에’에게 중요한 것은 딸 마코보다는 남편의 사랑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결혼을 세 번이나 하면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찾아 헤맨 것이다. 그녀에게는 어머니로의 삶보다는 여자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한 사랑과 현실의 사랑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녀는 바뀐다. 그러면 마코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녀의 졸업 논문이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라는 것이 힌트가 될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제3자인 하루미의 시각으로 보고 있었기에, 확실히 전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집안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이이기에,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과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잔예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원제 - 殘穢, 2012

  작가 - 오노 후유미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원작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영화에서는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읽으면, 상상이 구체화가 되면서 그 느낌이 더 강렬하게 와 닿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원작이 있는 영화는, 영화를 먼저 보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간혹 영화가 너무 재미없으면, 원작을 읽고 싶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책 ‘잔예’는 영화를 보고나서, 꼭 원작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지름신이 오기도 전에 질러버렸다.

 

 

  주인공인 ‘나’는 소설가로 예전 작품 후기에 독자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알려달라고 쓴 적이 있다. 그 때 ‘쿠보’라는 기자가 편지를 보내온다. 자신이 이번에 이사 온 집에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별 거 아닐 것이라 답을 보냈지만, 몇 달 후에 다시 편지가 온다. 그 내용을 읽은 나는 그 집에 뭔가 있다는 확신에, 쿠보와 함께 전에 살던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이후 틈틈이 이어진 그들의 조사는 무려 6년이나 걸리고, 메이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마침내 알아낸 결론은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엄청난 원한이 맺힌 것이었는데…….

 

 

  대강의 내용은 영화와 비슷하지만, 몇 가지 세부적인 면에서는 다른 점도 있었다. 우선 쿠보가 대학생이 아니라 기자였고, 그들의 조사는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이나 걸린 것이었다. 그 기원도 전쟁 이전이 아니라 메이지 시대까지 올라가고, 관련된 사람들도 더 많았다. 그러니까 저주의 범위와 대상이 더 넓어지고 많아진 것이다.

 

 

  더러움이 묻은 집에서 살았던 사람은 그 저주에 걸리고 만다는 설정이 영화 ‘주온’과 무척이나 흡사했다. 작가도 그걸 의식했는지, 작품 내에서 그 얘기를 꺼낸다. 그런데 비교해보면, 이 책에 나오는 저주가 더 절망적이다. 주온에서는 ‘가야코’와 ‘토시오’가 살해당한 그 집만 가지 않으면 살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더러움이 남아있는 집에 갔던 사람이 저주로 자살하게 되면, 그 사람의 집에 새로운 저주의 근원지가 된다고 한다. 이른바 이중 저주에 걸린 집이 된다는 얘기다.

 

 

  소설에서는 맨 처음 문제가 있던 집을 헐고 그 위에 다른 집을 지었는데, 거기 이사 온 사람들이 이상하게 죽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저주 위에 또 저주가 쌓인 것이다. 그리고 또 집을 부수고 다른 집을 짓고, 그러면 또 자살하거나 이상한 일을 겪는 사람이 생기고, 그래서 아무도 안 살려고 하면 다시 부수고 새로운 집을 짓고……. 이런 식으로 저주가 계속 돌고 돌게 된다. 그 뿐인가? 그 집에 살다가 다른 곳으로 간 사람이 만약에 저주 때문에 죽으면, 그 집이 새로운 중심지가 된다. 이렇게 가다보면, 아무런 더러움이 없는 땅이 과연 존재할지 의문이 생긴다. 잘못하면 일본 전체가 저주에 걸린 땅이 되는 거 아닌가?

 

 

  이런 비슷한 얘기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집터’라든지 ‘조상의 묏자리’를 중요시했다.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으면, 터가 나쁘거나 조상의 묘를 잘못 썼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옆 나라니까 비슷한 게 있나보다.

 

 

  소설이지만, 어떻게 보면 탐구 보고서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각 시대별로 조사한 내용이나 인터뷰한 사람의 얘기를 적어서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진짜 있었던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진짜 어느 동네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믿어졌다. 그래서 집에 혼자 있을 때 읽다가 너무 오싹해서,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선풍기에서 나는 소리도 어쩐지 심상치 않게 들렸다. 선풍기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건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오노 후유미’다. 이 더위에 선풍기를 끄게 하다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리 많은 고양이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 - Cat of Many Tails, 1949

  작가 - 엘러리 퀸

 

 

 

 



 

  엘러리가 진범 앞에서 ‘저는 여가활동처럼 누군가 위기에 처했거나 누군가 하던 일이 위태로워졌을 때, 누군가의 행복을 돕기 위해 사람들의 일에 관여하고 조사를 하곤 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그런 걸 계속할 수 없게 만들었어요. 저는 끝났습니다. 저는 이제 다시는 어떠한 사건도 맡지 못할 겁니다.’ (p.404. ‘열흘간의 불가사의’ 중에서) 라고 심경을 토로한 이후 일 년이 지났다.

 

 

  음? 그런데 왜 ‘열흘간의 불가사의’ 감상문이 없지? 헐? 뭐지? 어째서? 분명히 읽고 썼……던 게 아니었나? 잠시 멘붕에 빠졌다. 우선은 쓰던 거 먼저 쓰고, 다음에 다시 읽고 적어야겠다. 으음, 그러면 시간대가 흐트러지는데……. 이런 멍충이! 이런 실수를 하다니!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벤혼 사건 (열흘간의 불가사의)’ 이후 다소 소심해져있던 ‘엘러리’는 집필에만 집중하고 사건에는 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사람들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시장과 경찰은 각각 엘러리를 ‘시장 직속 특별 수사관’으로, 아버지 퀸 경감을 ‘특별전담반장’으로 임명한다. 엘러리는 정신과 의사 ‘카잘리스’를 고문으로 하여, 사건에 뛰어든다. 하지만 사망자는 아홉 명에 이르고, 급기야 한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며 수많은 사상자가 나온다. 마침내 아홉 번째 희생자에게서 결정적인 힌트를 얻은 엘러리는 범인 체포에 박차를 가하는데…….

 


  이번 이야기에서 엘러리는 더 이상 예전의 재기발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긴 저 때가 그의 나이 마흔 정도 되었을 때니, 초반의 국명 시리즈에서처럼 잘난 척하거나 농담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변해도 너무 변했다. 사건을 돕겠다는 두 남녀와 대화할 때도 살짝 농담을 던지긴 하지만, 전처럼 밝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벤혼 사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가 사건을 한발 뒤로 물러나있는 듯한 상황에서,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은 주변의 분위기였다. 작가는 연쇄 살인마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와중에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었다. 뉴욕에서만 살인이 일어나기에 사람들은 하나둘씩 도시를 떠나기도 하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외면하거나 불안에 떤다.


 

  물론 ‘셀레스트’나 ‘지미’ 그리고 카잘리스 박사처럼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그들은 가족의 일원이 피해자였기에,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피해자의 가족은 그러지 않았으니, 흐음. 피해자의 가족이 수사팀의 일원이 되는 것은, 크리스티 소설에서도 종종 나온다. 그런 경우에는 사건의 해결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하고, 그들 중에 범인이 있기도 하다. 이번 소설에서는 사건 해결에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다. 그 와중에 그들만의 달달한 로맨스가 빠졌다면, 섭섭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퀸 경감님이 펼치는 황혼의 로맨스를 보고 싶다. 나이가 들어서도 다 큰 아들 네미 때문에 맘고생을 하는 모습이라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다.

 

 

  이번 사건에서의 엘러리는 치유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정신과 교수인 ‘셀리그먼’과의 대화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교수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밖에 다른 이가 없다. -p.469’ 이 대사는 ‘열흘간의 불가사의’에서 그가 ‘꼬마 깡통 신 노릇을 하지 못한다.’고 했던 말과 교묘하게 연결된다. 아마 엘러리에게 신이 될 필요가 없다고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에게 신이 되어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생각은 하지 말고,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으로 범인을 잡으라는 의미로 말한 게 아닐까? 그래서 이후 마음의 부담을 던 엘러리가 계속해서 사건을 수사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교수님 고마워요, 덕분에 그의 사건 수사를 계속해서 볼 수 있게 되었네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인더스 키퍼스 - 찾은 자가 갖는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 - Finders Keepers, 2015

  부제 - 찾은 자가 갖는다

  작가 - 스티븐 킹

 





 

 

 

  은퇴한 형사 ‘호지스’가 ‘제롬’과 ‘홀리’와 함께 콘서트 장에서 또다시 대형 사고를 일으키려던 ‘메르세데스 살인마 브레디 하츠필드’를 막아낸 지 4년이 지났다. 이후 그는 홀리를 조수로 채용하여 탐정 사무소를 개설했다. 그런 그에게 제롬의 여동생인 ‘바브라’가 친구를 한 명 데리고 온다. ‘티나’라는 이름의 소녀는 몇 년 전 아버지가 ‘메르세데스 살인마’에 의해 취업 박람회에서 부상을 당했고, 그 범인을 잡은 호지스에게 고민을 털어놓고자 온 것이다. 사건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매 달 정체불명의 사람이 돈을 보내왔다고 한다. 그녀는 그것이 오빠인 ‘피트’라고 생각한다며, 그가 엄청난 일에 휘말린 것 같다고 그녀는 말한다. 호지스는 소년이 범죄자들이 숨겨둔 돈을 발견해 썼으리라 추측한다. 그리고 그들이 소년을 찾아낸 것이 아닐까 예상한다. 호지스는 홀리, 제롬과 함께 소년 피트를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데…….

 

 

  사실 위에 적은 줄거리는 두 번째 챕터의 요약이다. 첫 번째 챕터는 ‘모리스 벨러미’와 피트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다. 모리스 벨러미가 어떻게 살아왔고, ‘로스스타인’이라는 작가에 대해 얼마나 집착하고 실망했는지 보여준다. 급기야 그는 자신의 우상인 소설 속 인물 ‘지미 골드’를 변절자로 만들어버린 작가에 분노해, 그의 집을 급습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를 죽이고 그의 미발표 원고들과 금고에 있던 돈을 갖고 달아난다. 그것들을 자신이 어릴 적에 살던 집에 숨긴 모리스는 술에 취해 사고를 쳐 교도소에 가고, 이후 그 집에 이사 온 피트가 돈과 원고를 발견하게 된다. 호지스는 티나의 의뢰로 두 번째 챕터에서 등장한다. 주인공 맞아? 하여간 출소하여 돈과 원고를 찾으려는 모리스와 그에게서 가족을 지키려는 피트 그리고 사건을 맡은 호지스. 이렇게 세 팀의 쫓고 쫓기는 과정이 그야말로 숨 쉴 틈 주지 않고 펼쳐져있다.

 

 

  탐정 추리 소설이라고 하지만, 범인도 동기도 모든 것이 다 처음부터 나와 있었다. 대신 쫓고 쫓기는 것이 주를 이루니 스릴러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부분에서 세 팀이 추격하는 장면은 으아,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긴장감이 넘치는지 물 마시는 것도 잊고, 화장실도 못 가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읽었다. 게다가 영화나 만화가 아니어도 동시간대에 일어나는 일을 이렇게 보여줄 수 있다니! 다시 한 번 킹느님에 대한 존경심이 대기권을 뚫고 치솟았다. 만약에 내 존경심이 빛으로 되었다면, 아마 목성 궤도에 진입한 탐사선 ‘주노’와 우주에서 마주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냥 추리 스릴러라기보다는, 작가와 팬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위대한 작가 로스스타인은 지미 골드 3부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1부를 읽고 그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품고 소설의 주인공을 우상화했던 모리스는 3부를 읽고 작가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그 전까지 보여줬던 주인공의 행동과 맞지 않는 전개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가 3부를 건성으로 읽지 말고 다시 한 번 꼼꼼히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보라고 충고했지만, 그는 실망이 너무 커서 그 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작가에게 찾아가 해명을 요구하고 급기야 그를 죽이고 말았다. 그 직후 그는 다른 범죄로 감옥에 가게 되어 미발표된 4,5부를 읽지 못했다.

 

 

  반면에 피트는 그 소설을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작가가 왜 3부에서 주인공을 그렇게 표현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작가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고, 도리어 그의 작품 세계를 더 확실하고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있었다. 로스스타인의 영향으로 그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키울 수 있었다.

 

 

  만약에 로스스타인이 4부와 5부를 출판했다면? 모리스가 그의 집을 습격하는 걸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아니, 모리스가 소설의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시하거나 우상화하는 걸 너무 과하게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모리스의 인생이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아 문학 소년으로 살았을 수도 있다. 같은 작가의 영향을 받았지만 확실히 길이 나뉜 두 소년을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주사가 심하고 성급한 성격의 모리스와 대범하고 생각이 깊은 피트. 소설의 인물을 우상시한 모리스와 작품으로 받아들인 피트. 한 명은 남자 버전의 ‘미저리’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은 능력을 인정받았다. 안타깝다.

 

 

  그러니까 자기가 술을 먹으면 주사가 심하다는 걸 알면, 술을 먹으면 안 된다. 그걸 알면서 술을 먹는 건, 미친 짓이다.

 

 

  그나저나 미국 드라마 ‘슈퍼내추럴’에서도 그렇고, 이 책에서도 ‘오렌지 이즈 뉴 블랙’이라는 드라마를 언급한다. 그렇게 재미있나? 킹느님도 보신 드라마인데 한 번 봐야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의 복수 발터 풀라스키 형사 시리즈 1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단숨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 - Rachesommer, 2009

  작가 - 안드레아스 그루버

 

 

 

 

 

 

 

 

  ‘발터 풀라스키’ 형사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다. 표지를 보면 매혹적인 여인의 얼굴이 보이는데, 주인공 발터 형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아쉽게도 발터의 성별은 남자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명망 있는 중년의 남자들이 죽는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지었지만, 변호사인 ‘에블린’은 뭔가 석연치 않았다. 사건 현장의 주변 CCTV를 조사하던 그녀는 매 사건마다 미모의 금발 여인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남자친구이자 사립탐정인 ‘파트릭’의 도움으로 그녀는 죽은 남자들의 연관성을 밝혀낸다. 그녀는 연결 고리를 찾아 독일로 향하는데…….

 

 

  독일 라이프치히의 한 정신병원에서 소녀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처음에는 자살로 보였던 사건이지만, ‘발터’ 형사는 그녀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그녀와 비슷한 수법으로 죽은 다른 또래 환자가 있었다는 제보를 받는다. 그들 모두는 발견되었을 당시에, 신원을 알 수 없었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상태였으며 성적 학대를 받은 기록이 있었다. 도대체 누가 그들을 자살로 위장해 죽이고 다니는 걸까? 발터 형사는 실마리를 찾아 그들을 처음 치료했던 병원으로 향하는데…….

 

 

  책은 한번 집어 들자 중간에 놓을 수가 없었다. 500쪽 정도 되는 분량이지만, 지루할 틈이 없었다. 에블린과 발터 그리고 살인범의 상황이 번갈아가면서 나오기도 하고, 앞에서 스치듯이 지나간 말이 뒤에서 중요한 힌트가 되어 다시 넘겨보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전개가 나오면서 ‘어, 이게 뭐야? 헐?’하면서 놀라기 바빴다.

 

 

  특히 두 개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 하나로 연결되는 장면에서는 소름이 끼쳤다. 그 절묘함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이 미친 새X들이!’라는 분노가 먼저 일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욕설이 튀어나오면서, '잘 죽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내가 평소에 욕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이 책은 읽으면서 방언 터지듯이 욕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읽은 넬레 노이하우스의 소설 ‘사악한 늑대 Boser Wolf, 2012’도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는 조직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독일에서 비슷한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범죄를 그렇게 조직적으로 저지른다는 설정이 비슷한 시기에 두 사람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을 리가……. 아니, 잠깐만. 그러면 비슷한 사건이 진짜 있었다는 얘긴데……. 하아, 그냥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도움으로 벨기에에서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 나쁘다! 내 믿음을 단 몇 초 만에 부숴버리다니.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만만치 않은 사건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섬마을 강간사건도 그렇고, 스무 명이나 되는 고등학생들의 집단 강간 사건도 그렇고……. 생각할수록 그런 X끼들과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게 너무 끔찍하다. 그런 놈들이 호흡하라고 존재하는 산소가 아닐 텐데.

 

 

  세상은 점점 더 누군가를 믿기 힘들어지고 있다. 뉴스를 보면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멸망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혹시 에블린이나 발터처럼 위험을 무릅쓰면서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까? 그런 사람들이 적어도 열 명이 넘었기에, 아직 불과 유황이 떨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음, 그러면 개별적으로 불화살을 내려주시면 안 될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