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のぞきめ, 2012
작가 - 마쓰다 신조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아주 우연이었다. 여름에 개봉하는 공포 영화가 뭐가 있나 찾아보니, ‘잔예’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원작을 쓴 작가 역시 믿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좋았어! 올 여름엔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또 뭐가 있을까 찾아보니, ‘노조키메’라는 영화도 개봉한다고 나오는데, 헐? 이것 역시 원작 소설이 있었고, 그 작가 역시 꽤나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바로 ‘미쓰다 신조’로, 책을 읽고 나서 ‘별로 안 무섭네, 엄마랑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세상에나, 일본에서 어쩐 일로 믿음직한 작가들의 소설을 두 편이나 영화화한 거지? 하지만 그동안 일본에서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망쳐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원작을 먼저 읽어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야 영화를 봤을 때 욕을 하더라도 찰지게 할 수 있고, 좋았던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노조키메’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 상영시간이 막 24시 30분, 26시 20분 이렇게 되어있는데, 이건 영화를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세상에 26시가 어디 있어? 상영관을 대기업이 독점하면서,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 그냥 네이버나 예스24에서 다운이 가능해질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이야기는 마쓰다 신조 본인을 지칭하는 ‘나’를 통해 진행된다. 나는 ‘토쿠라 시게루’라는 사람이 학생 시절에 경험했던 아르바이트에서 있었던 이상한 일을 듣게 된다. 그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바쁘게 지내던 중 ‘니구모 케이키’라는 사람을 소개받는다. 그 역시 기담이나 괴담, 전설을 찾아다니는 라이터였는데, 그는 나에게 ‘아이자와 소이치’라는 재야 민속학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학자가 딱 한 번 언급했던,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원고에 대해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사건이 꼬이면서, 나는 그 원고를 손에 넣게 된다. 이미 그것을 읽은 니구모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경고를 하지만, 난 과감히 내용을 보기로 결정한다.
이 책에 실린 첫 번째 이야기인 ‘엿보는 저택의 괴이’는 내가 토쿠라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고, 두 번째 이야기인 ‘종말 저택의 흉사’는 학자가 남긴 미발표 원고이다.
어떻게 보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이야기지만, 읽다보면 묘하게도 연결점이 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오싹해진다. 몇 백 년 전부터 외딴 마을에만 존재했던 저주가 도시로 나왔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첫 번째 이야기에서 그냥 스치듯이 지나갔던 대사가 아주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재방문한 손님이 없더라.’ 아, 그래서였구나.
‘노조키메’는 ‘엿보는 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길을 걷는데, 누군가 계속해서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면, 지나가는 집집마다 닫힌 문틈 사이로 누군가 날 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진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래서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데, 다시 걷기 시작하자마자 누군가 뚫어지게 나를 보는 것 같다면? 게다가 그 시선이 점점 가까워져서 집안에서까지 느껴진다면? 찬장 위, 문틈이나 창문 틈, 커튼 사이, 옷장과 천장 사이 등등 아무것도 있을 수 없는 곳에서 누군가 날 보고 있는 것 같다면? 문득 몰래 카메라가 떠올랐다. 어딘가에 있는 건 알지만 확실히 어디 있는지는 모르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보고 있는 시선. 이건 몰래 카메라라고 여길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몇 대 선조가 저지른 일 때문에 고통 받는 후손이 등장한다. 선조가 저지른 일 때문에 집안 대대로 저주를 받게 되고, 그것을 액땜하기 위해 악습을 반복해야하는 집안이 나온다. 그 때문에 그 집안은 마을에서 대대로 불길한 집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거의 없는 존재처럼 무시당하고 괴롭힘을 당한다. ‘종장’에서 ‘나’도 얘기하지만, 이 이야기는 차별이나 따돌림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작가는 비록 괴담 형식을 했지만 두 이야기를 통해 차별과 따돌림 그리고 몰래 카메라와 SNS의 무분별한 전파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특정인을 따돌리고 괴롭히는 것으로 모자라, 굴욕적인 동영상이나 비밀스런 사생활을 찍어 역시 퍼트리는 일이 많은 요즘, 두 이야기가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특히 노조키메에게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사람의 얘기는, 몰래 카메라에 개인적인 영상이 찍히고 그것이 SNS에 퍼져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하지만 노조키메에게 당하는 사람은 잘못을 저질러서 그런다고 하지만, 몰래 카메라에 찍히는 건 글쎄? 찍힌 사람에게 굳이 잘못이 있다면, 연인을 잘못 사귄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행히 작가의 다른 책인 ‘도조 겐야’ 시리즈처럼 다 읽고 나서 ‘뭐야, 별로 안 무섭잖아. 엄마랑 자야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문이랑 창문 꼭 닫고, 벽장 위는 절대로 안 보고, 책꽂이 사이나 장식장 밑에 벽장 사이 같은 곳만 안 보면 된다. 훗, 별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