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비서들 - 상위 1%의 눈먼 돈 좀 털어먹은 멋진 언니들
카밀 페리 지음, 김고명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부제 - 상위 1%의 눈먼 돈 좀 털어먹은 멋진 언니들

  원제 - The Assistants, 2016

  작가 - 카밀 페리

 

 

 

 

 

 

 

 

 

  ‘티나’는 세계적인 미디어 재벌 ‘로버트’의 비서다. 어느 날 그가 쓴 영수증을 처리하다가 카드회사의 실수로 공돈 2만 달러가 생긴다. 몇날며칠을 고민하던 그녀는 10년째 내고 있는 학자금 대출을 갚아버린다. 하지만 경비에 관련된 일을 처리하던 ‘에밀리’에게 그 사실을 들켜버리고, 이번에는 그녀의 학자금 대출을 갚도록 영수증 처리를 하라는 협박을 받는다. 은근슬쩍 공범이 되어 버린 두 사람. 그런데 공교롭게도 회사에서 제일 깐깐하다 일컬어지는 회계팀장 ‘마지’가 그 사실을 알아차린다. 고발당할줄 알았던 둘에게 마지는 의외의 제안을 한다. 자신이 아끼는 다른 비서의 대출금을 갚을 수 있게 일처리를 하라는 것이다. 이제 비밀을 아는 사람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티나의 고민은 깊어간다. 설상가상으로 회사 회계팀에서 내부 감사에 들어간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는데…….

 

 

  언젠가도 말했지만, 난 ‘뤼팽’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가 의적이라고 하지만 결국 도둑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 책을 올 초에 읽었다면, 혹평을 가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회사 공금을 횡령한 도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올 하반기에 이 나라를 휩쓴 엄청난 사건들을 보면서 그들의 행동을 응원하게 되었다.

 

 

  에밀리와 티나가 학교를 졸업한 후, 몇 년 동안 생활비를 아껴가면서 갚아야할 몇 만 달러나 되는 학자금은 로버트나 간부들에게는 별 거 아닌 푼돈이었다. 로버트가 호텔로 돌아가서 갖고 오기 귀찮다고 새로 구입하는 골프세트 가격이 두 사람의 대출금을 능가할 정도였고, 그가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손수건 값은 티나의 한 달 교통비와 맞먹었다. 그런 일들을 몇 년간 봐왔으니, 부의 불균형적인 재분배에 대해 불만이 생긴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상황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본 짧은 만화가 생각난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기라든지 생활비를 조달하는 학생과 부모에게서 모든 것을 지원받는 학생을 비교한 만화였다. 전자는 학비를 버느라 공부할 시간도 없었고 결국 좋은 스펙을 갖지 못해 회사 취업에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후자는 부모의 지원으로 어학연수라든지 자격증을 딸 시간이 넉넉해 취업에서 유리하다는 내용이었다. 남자 버전과 여자 버전이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참 씁쓸했다.

 

 

  어떻게 보면 시작점 자체가 달랐다. 누군가는 잘난 부모를 둔 것도 능력이고 돈도 실력이라고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주변의 많은 티나와 에밀리, 웬디, 진저 그리고 릴리에게는 그런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능력이나 실력은 없었다. 자기 힘으로 스스로 공부를 해야하고, 학비를 벌어야 했다. 결국 그들은 학자 대출금 때문에 졸업하기도 전에, 사회에 발을 내디디기도 전에 엄청난 빚을 지고 말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대학을 안가면 되잖아? 그렇게 되면 그건 또 다른 차별이고 새로운 계급사회의 성립이라고 볼 수 있다. 하아,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은 나오지 않는다. 개천은 말라버렸고, 어린 새끼 용들은 말라죽거나 굶어 죽어버렸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개천에서 죽기 직전의 용을 위해 그들은 횡령을 한 걸까? 그게 최선이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요즘 사회를 생각하니 통쾌하다가 답답해졌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티나와 에밀리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음. 아마 집 앞에 마티즈가 와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차 안에는 번개탄이…….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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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 - Have Space Suit: Will Travel, 1958

  작가 - 로버트 A. 하인라인

 

 

 

 

 

 

 

  예전에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다. ‘스타쉽 트루퍼스 Starship Troopers, 1997’라는 제목으로, 거대한 곤충 형태의 외계 생명체와 맞서 싸우는 내용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곤충이 거대한 모습으로 나와서 조금 징그러웠지만, 그것들을 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은 무척 속 시원했다. 그리고 최근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으로 본 영화가 있었다. ‘타임 패러독스 Predestination, 2014’로, 시간여행에 대한 내용인데 결말을 보면서 ‘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어디선가 스포일러를 당했기에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이라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위에 언급한 두 영화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두 작품 다 소설이 원작이고, 작가가 똑같다는 사실이다.

 

 

  ‘로버트 A. 하인라인’

 

 

  우주선을 타고 로봇끼리 싸우는 것만이 SF라고 알고 있던 나에게 다른 세상도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 비록 책을 읽은 건 ‘스타쉽 트루퍼스’ 한 권뿐이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러니 이 책,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의 작가가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이건 읽어야 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느 날, ‘킴’은 달에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어떻게? 이리저리 궁리하던 그는 공과대학에 가기로 한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등록금도 열심히 벌던 킴은 비누 회사에서 경품으로 달에 가는 비행 표를 내걸었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하지만 그는 아깝게도 우주복을 받는데 그친다. ‘오스카’라는 이름까지 붙인 우주복을 입고 뒤뜰을 산책하던 킴은 이상한 무선 통신을 하나 받는다. 곧이어 그의 눈앞에 우주선이 하나 불시착하고, 정신을 차리니 킴은 달에 와 있었다. 꿈이 이루어졌다 좋아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피위’라는 소녀와 함께 우주 해적에게 붙잡힌 신세였다. 우주 해적은 저명한 과학자인 피위의 아버지를 납치하려다가 피위와 우주 경찰인 ‘엄마 생물’을 잡게 된 것이다. 그들에게서 탈출하려던 피위와 엄마 생물이 불시착한 곳이 공교롭게도 킴네 뒤뜰이었고, 엉겁결에 그까지 납치된 것이다. 킴은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책은 우주 해적에게서 도망치려는 킴과 피위의 시도, 우주를 처음 나가본 킴의 놀라움과 호기심, 킴과 피위의 수학 능력, 우주 해적의 목적과 엄마 생물이 살던 별의 대단한 과학 기술 등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이 책이 나왔을 때는 아직 달에 가기 전이겠지만, 어쩐지 너무 자연스럽게 이미 달 개척은 끝나 있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어?’하는 의문이 들었다. 설마 이 책, 시대 배경이 미래인가? 어쩐지 책이 나온 1950년대 같은 생활 풍경인데, 대사라든지 슬쩍 지나가는 배경은 그게 아니었다. 헐! 이미 달에는 과학자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하긴 그러니 비누 회사에서 경품으로 달까지 가는 비행 표를 내걸었겠지.

 

 

  킴과 피위의 모험은 달, 명왕성, 베가 행성을 지나 소마젤란성운까지 이어진다. 그곳에서 그들은 법정에 서게 된다. 그곳에서 우주 해적의 범죄에 대한 증언을 하는 가 싶더니, 난데없이 인류 전체의 생존을 건 재판을 받게 된다. 인류가 미개하고 호전적이기에 제거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장면에서 멍해졌다. 처음에는 ‘어떻게 인간을!’이라고 화가 났는데, 그 순간 주위를 날아다니는 모기를 잡다가 깨달았다. 우리가 파리나 모기를 죽일 때, 그들의 지적 수준이나 공동체 의식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냥 우리에게 해가 되기 때문에 죽인다. 암컷모기건 수컷모기건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그걸 생각하니, 소마젤란성운의 법정에서 인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네안데르탈인과 로마인, 그리고 킴과 피위를 표본으로 삼은 건 그나마 공정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두 번의 전쟁을 겪은 뒤라서 그런지,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한 작가의 평은 신랄했다. ‘가장 원시적인 수준의 과학밖에 없으며, 그렇게 적은 지식밖에 없으면서도 그 지식을 부족끼리 서로 제거하는 일에 열성적으로 사용하고 있다.-p.359' 아, 읽으면서 뜨끔했다. 그래서 두 주인공과 지구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비밀이다.

 

 

  별로 어렵지 않고, 술술 읽혔다. 주인공이 십대라서 그런지 활기차고 톡톡 튀는 즐거움이 있었다. 다만 둘이 수학적인 얘기를 할 때는 뭔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그것만 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아! 우주복의 성능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어쩐지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나왔던 ‘수트’가 연상되었다. 같은 작가니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수트’는 철저하게 전투용으로 제작되었고 이 책의 ‘오스카’는 우주여행용이지만, 기본적인 부분은 비슷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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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마술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5 링컨 라임 시리즈 5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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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제 - The Vanished Man, 2003

  작가 - 제프리 디버

 

 

 

 






 

  링컨 라임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



  얼마 만에 읽는 링컨 라임 시리즈인가! 그동안 다른 책을 읽는다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거의 4개월 만에 집어 들었다. 이번 이야기 역시 쫓기는 범죄자의 심리와 쫓는 경찰의 심리가 번갈아가면서 드러나 있다. 그런데 이 구조 자체에도 함정이 있어서, 멍 때리고 읽다보면 뒤통수 거하게 얻어맞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마술쇼는 무척이나 신기하고 놀랍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마술과 마술사는 범죄 관련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놓칠 수 없는 소재이다. 좋은 쪽으로 사용하면 보는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나쁜 쪽으로 쓰면 잡기 어려운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마술사이다. 예를 들면 ‘나우 유 씨 미 : 마술사기단 Now You See Me, 2013’은 아예 마술사들이 팀을 이뤄 사기치고 다니고,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 金田一少年の事件簿, 1992’에서도 그의 최대 강적이 마술사였다. 이번 이야기의 범인은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마술사다. 하지만 원제에서는 마술사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역시 제목이 스포일러…….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사건이 금방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잠긴 문 안에서 인질을 잡고 있는 범인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 안에는 범인이 없었다. ‘아멜리아 색스’가 조사해온 현장 사진과 물건들을 본 ‘링컨 라임’은 범인이 마술과 관련이 있다고 추측한다. ‘아멜리아’는 탐문을 하던 중 만난 ‘카라’라는 새내기 마술사에게 마술과 관련된 조언을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 팀원들은 범인이 사용한 독특한 마술의 흔적을 보면서 정체를 밝히는 한편, 그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노력한다. 그 와중에 범인은 간발의 차로 아멜리아에게서 벗어나고, 분노한 그는 링컨 라임을 노리는데…….



  이번 이야기 역시 범인은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행적을 보여줬다. 경찰들이 뻔히 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눈 깜짝할 사이에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서 도망가고, 끝까지 자신의 이중 삼중의 연막작전을 펼쳤다. 아무래도 소설이니까 과장이 심한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어쩐지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술의 위력이 이 정도로 엄청나다면 첩보원들에게 기본적으로 마술을 가르쳐야하지 않을까? 그랬다면 멍청하게 외국 호텔 객실에서 첩보질하다가 들키지 않았을 것 같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구성은 앞선 책들과 비슷했다. 사건이 벌어지면 링컨 라임 팀이 투입된다. 한참 잘난 척 떠들던 링컨이 감을 잡으면, 아멜리아가 다른 경찰들과 열심히 뛰어다닌다. 그 와중에 아멜리아가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또는 집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링컨이 공격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아멜리아가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면, 그걸 바탕으로 링컨이 범인의 의도를 알아낸다. 마지막으로 선수를 쳐서 범인을 유인해내고 체포하면 끝. 다섯 번째 책이라서 그런지 어느 정도 익숙해졌나보다, 예전처럼 심각하게 호흡곤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그나저나 몰상식한 의원의 갑질 횡포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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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담백경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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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鬼談百景, 2012

  작가 - 오노 후유미

 

 

 

 

 

 

 

  어떤 작가는 이미 여러 권을 읽어도 신간이 나오면 읽을까 말까 고민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작가는 단 한 권만 읽었지만 어쩐지 그 사람 소설은 믿고 읽을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의 작가인 ‘오노 후유미’는 나에게 후자의 경우이다. ‘시귀 屍鬼, 1998’를 읽은 이후, 그런 믿음이 생겼다. 이 책은 그런 작가의 작품이자 얼마 전에 읽은 ‘잔예 殘穢, 2012’와 세트이기에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99개의 단편 괴담이 수록되어있다니, 두근두근 거렸다. 하지만 한 이야기 당 짧게는 반쪽, 길게는 서너 쪽에 해당하는 분량 때문인지, 책은 예상보다 얇았다. 그래서 좀 실망했다.

 

 

  처음 몇 개의 이야기를 읽을 때까지는 그렇게 무섭지도 않고, 그냥 그랬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서운 이야기 모음집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스무 개를 넘어가고 서른 개쯤 될 때, 갑자기 오싹해졌다. 책을 덮고 주위를 한 번 둘러본 다음에 물을 마시고 환한 밖을 한참 바라보고 나서야, 다시 책을 펼쳤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처음에는 그냥 짧은 이야기를 읽는데 급급해서 무섭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과 우리나라의 생활 습관이나 문화가 좀 다른 부분도 있어서, 그리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어릴 적에 살았던 동네나 학교를 연상시키는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내가 아는 동네와 학교가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그 순간부터 책에서 적힌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하아, 처음에 책이 얇다고 실망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얇은 게 이 책의 장점이었다. 만약 얼마 전에 읽은 ‘노조키메 のぞきめ, 2012’ 정도의 두께였다면, 아마 책을 읽다가 중간에 덮어버렸을지도 몰랐다. ‘시귀’에서 그렇게 당해놓고 그걸 까먹다니……. 하긴 그 책을 읽은 게 거의 십 년 전의 일이니까, 잊는 게 당연다고 우겨본다.

 

 

  이제부터 비 오는 날, 골목을 걸을 때, 그리고 밖에서 누가 문을 두드릴 때마다 이 책이 떠오를 거 같다. 누가 우산 밑으로 날 보면 어떡하지? 옆에 누가 서 있는 데, 그 위로는 아무것도 없는 거면 어쩌지? 집에 올 때 골목에 누군가 서 있으면 어떡하지?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데 아무도 없는 거면 어쩌지?

 

 

  그나저나 책을 다 읽고 오싹한 것은, 무려 99개나 되는 괴담을 적은 작가의 능력이었다. 비록 독자에게서 투고 받은 사연도 있다고 하지만, 장편으로 만들 수 있는 소재가 99개나 있다는 얘기다. 아, 이 중에서 몇 개는 ‘잔예’에 써먹으니까 빼야겠지. 그래도 90개가 넘는 소재가 있다니……. 어쩐지 기대가 되면서 또 다시 두근두근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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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키메 스토리콜렉터 2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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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のぞきめ, 2012

  작가 - 마쓰다 신조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아주 우연이었다. 여름에 개봉하는 공포 영화가 뭐가 있나 찾아보니, ‘잔예’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원작을 쓴 작가 역시 믿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좋았어! 올 여름엔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또 뭐가 있을까 찾아보니, ‘노조키메’라는 영화도 개봉한다고 나오는데, 헐? 이것 역시 원작 소설이 있었고, 그 작가 역시 꽤나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바로 ‘미쓰다 신조’로, 책을 읽고 나서 ‘별로 안 무섭네, 엄마랑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세상에나, 일본에서 어쩐 일로 믿음직한 작가들의 소설을 두 편이나 영화화한 거지? 하지만 그동안 일본에서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망쳐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원작을 먼저 읽어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야 영화를 봤을 때 욕을 하더라도 찰지게 할 수 있고, 좋았던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노조키메’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 상영시간이 막 24시 30분, 26시 20분 이렇게 되어있는데, 이건 영화를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세상에 26시가 어디 있어? 상영관을 대기업이 독점하면서,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 그냥 네이버나 예스24에서 다운이 가능해질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이야기는 마쓰다 신조 본인을 지칭하는 ‘나’를 통해 진행된다. 나는 ‘토쿠라 시게루’라는 사람이 학생 시절에 경험했던 아르바이트에서 있었던 이상한 일을 듣게 된다. 그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바쁘게 지내던 중 ‘니구모 케이키’라는 사람을 소개받는다. 그 역시 기담이나 괴담, 전설을 찾아다니는 라이터였는데, 그는 나에게 ‘아이자와 소이치’라는 재야 민속학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학자가 딱 한 번 언급했던,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원고에 대해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사건이 꼬이면서, 나는 그 원고를 손에 넣게 된다. 이미 그것을 읽은 니구모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경고를 하지만, 난 과감히 내용을 보기로 결정한다.

 


  이 책에 실린 첫 번째 이야기인 ‘엿보는 저택의 괴이’는 내가 토쿠라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고, 두 번째 이야기인 ‘종말 저택의 흉사’는 학자가 남긴 미발표 원고이다.

 


  어떻게 보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이야기지만, 읽다보면 묘하게도 연결점이 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오싹해진다. 몇 백 년 전부터 외딴 마을에만 존재했던 저주가 도시로 나왔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첫 번째 이야기에서 그냥 스치듯이 지나갔던 대사가 아주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재방문한 손님이 없더라.’ 아, 그래서였구나.

 


  ‘노조키메’는 ‘엿보는 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길을 걷는데, 누군가 계속해서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면, 지나가는 집집마다 닫힌 문틈 사이로 누군가 날 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진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래서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데, 다시 걷기 시작하자마자 누군가 뚫어지게 나를 보는 것 같다면? 게다가 그 시선이 점점 가까워져서 집안에서까지 느껴진다면? 찬장 위, 문틈이나 창문 틈, 커튼 사이, 옷장과 천장 사이 등등 아무것도 있을 수 없는 곳에서 누군가 날 보고 있는 것 같다면? 문득 몰래 카메라가 떠올랐다. 어딘가에 있는 건 알지만 확실히 어디 있는지는 모르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보고 있는 시선. 이건 몰래 카메라라고 여길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몇 대 선조가 저지른 일 때문에 고통 받는 후손이 등장한다. 선조가 저지른 일 때문에 집안 대대로 저주를 받게 되고, 그것을 액땜하기 위해 악습을 반복해야하는 집안이 나온다. 그 때문에 그 집안은 마을에서 대대로 불길한 집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거의 없는 존재처럼 무시당하고 괴롭힘을 당한다. ‘종장’에서 ‘나’도 얘기하지만, 이 이야기는 차별이나 따돌림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작가는 비록 괴담 형식을 했지만 두 이야기를 통해 차별과 따돌림 그리고 몰래 카메라와 SNS의 무분별한 전파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특정인을 따돌리고 괴롭히는 것으로 모자라, 굴욕적인 동영상이나 비밀스런 사생활을 찍어 역시 퍼트리는 일이 많은 요즘, 두 이야기가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특히 노조키메에게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사람의 얘기는, 몰래 카메라에 개인적인 영상이 찍히고 그것이 SNS에 퍼져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하지만 노조키메에게 당하는 사람은 잘못을 저질러서 그런다고 하지만, 몰래 카메라에 찍히는 건 글쎄? 찍힌 사람에게 굳이 잘못이 있다면, 연인을 잘못 사귄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행히 작가의 다른 책인 ‘도조 겐야’ 시리즈처럼 다 읽고 나서 ‘뭐야, 별로 안 무섭잖아. 엄마랑 자야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문이랑 창문 꼭 닫고, 벽장 위는 절대로 안 보고, 책꽂이 사이나 장식장 밑에 벽장 사이 같은 곳만 안 보면 된다. 훗, 별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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