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테이프 스토리콜렉터 57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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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원제 - 怪談のテ-プ起こし, 2016

  작가 - 미쓰다 신조






  분명 인쇄된 글자를 읽고 있는데, 마치 그 정경이 바로 앞에서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가들이 있다. 그런 작가들이 판타지나 SF 소설을 주로 쓴다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데, 호러를 쓴다면 그건 좀 위험하다. 평소에도 호러 영화를 즐겨보기에, 그동안 봐왔던 영화 장면들과 책의 글자들이 합쳐서 기괴한 영상을 눈앞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뭐에 홀린 듯이 신간이 나오면 자연스레 손이 가는 작가가 있다.



  ‘미쓰다 신조’는 그런 작가 중의 한 명이다. 읽고 나면 오늘 엄마랑 자야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읽으면서 자꾸 주위를 돌아보게 되고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러면서 신간이 나오면 ‘어머 이건 꼭 읽어야해!’라고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이번 책은 오랫동안 고민했다. 바로 표지 때문이다. 하아, 어쩜 표지마저 이렇게 오싹하게 만드는 건지. 내가 싫어하고 꺼려하며 가능하면 보지 않으려는 유형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람의 얼굴 모양이 이상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발 없는 미끄덩꾸물거리는 것들이고 말이다.



  책은 여섯 개의 이야기와 그들을 연결하는 막간과 서장과 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이야기 역시 작가인 미쓰다 신조가 주변 사람들의 경험담을 재구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막간과 서장, 종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미쓰다 신조와 그의 편집자들이다. 마치 ‘진짜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건 그의 다른 책에서도 사용되었던 방법이다. 작가가 아직 건강하게……는 모르겠지만 살아 있으니 실화가 아니라 창작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 이건 다 허구이고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래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미쓰다 신조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죽은 자의 테이프 녹취록』는 자살한 네 사람이 죽기 직전에 남긴 유언장과 같은 테이프에 얽힌 이야기다. 읽으면서 어쩐지 그들이 자살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테이프 내용을 읽으면서, 뭔가 이상한 연결 고리라고 할까? 그런게 느껴졌다.



  『빈집을 지키던 밤』은 읽을 때는 그냥 그랬는데, 다 읽고 나서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쁜 이야기였다. 누구 말이 진실인지, 그 방에 있던 건 누구였는지. 어쩐지 제물을 바치는 이상한 집단이 떠오르면서 영 뒷맛이 좋지 않았다.



  『우연히 모인 네 사람』은 주최자가 오지 않아 처음 보는 네 사람이 등산을 하는 내용이다. 산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경험하지 않을 사건이 펼쳐진다. 과연 그의 과대망상일까 아니면 진짜 뭔가 있는 걸까?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하다.



  『시체와 잠들지 마라』는 읽으면서 언젠가 보았던 일본 공포 단편 드라마가 떠올랐다. ‘기묘한 이야기 世にも奇妙な物語’의 한 에피소드였던가? 그때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봐서 그러려니 했는데, 여기서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느낌이 색달랐다. 만약 내가 상상한 것이 맞는다면 으음. 아니길 빌어본다.



  『기우메: 노란 우비의 여자』는 자연스레 표지가 연상되는 제목이다.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표지가 떠올라서 오싹했다. 표지처럼 생긴 사람이 내가 가는 곳마다 나타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스쳐 지나가는 것』은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던 주인공의 눈에 이상한 형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매일 조금씩 그녀의 집을 향해 오기 시작한다. 그것과 마주칠까 두려워 그녀는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된다. 의식하지 않으면 모르는데,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면 떨쳐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모르고 당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알고 당하는 것이 좋을까?



  여섯 개의 이야기 중에서 오싹한 것을 고르자면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책을 먼저 읽은 애인님의 선택과는 좀 다른데, 공포는 취향이니까. 덧붙이자면, 이젠 작가의 책에 면역이 되었는지 전에 읽은 ‘붉은 눈 赫眼, 2009’보다는 좀 덜 무서웠다. 엄마와 자야하나 말아야하나 오래 고민하지 않고, 혼자 잤다. 혹시라도 편집부에서 이 리뷰를 읽는다면, 다음 책 표지는 좀 안 무서운 걸로 해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아! 이 책은 6개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막간과 종장도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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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체파리의 비법 팁트리 주니어 걸작선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이수현 옮김 / 아작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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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Her Smoke Rose Up Forever, 2004

  작가 - 탑트리 주니어







  우선 이 책이 출판된 것은 2004년이지만, 수록된 작품들이 실제 발표된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인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이다. 단편으로 소개되었던 것을 모아서 단편집 형식으로 낸 것이 2004년인 모양이다. 저 필명으로 처음 단편이 나왔을 때 모두가 다 남자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여자여서 모두가 놀랐다고 한다. 남자글과 여자글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좀 우스웠다. 하지만 지금도 그런 인식이 여전한 걸 보면, 인간의 진화는 무척이나 더디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책에는 일곱 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어떤 것은 거의 200쪽에 달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10쪽이 조금 넘기도 했다. 하지만 긴 이야기건 짧은 이야기건 다 각각의 독특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체체파리의 비법 THE SCREWELY SOLUTION, 1977'은 예전에 미국 드라마 ‘마스터즈 오브 호러 Masters of Horror, 2006’에서 영상화되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으로 읽어보니 더 대단했다. 여자들을 학살하는 남자들을 피해 숨어사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경이라든지 놀라움이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하긴 우주의 존재가 보기에, 인간은 제거해야 할 해충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해충은 당연히 제거해야 한다. 그렇다는 걸 감안해도, 남자에 의한 여자 학살이라니……. 요즘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 특히 여자가 주로 피해자가 되는 사건 소식을 접하면서 ‘혹시?’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두 번째 이야기인 ‘접속된 소녀 THE GIRL WHO WAS PLUGGED IN, 1973’는 과학의 발달로 인해 몸과 정신을 분리시킬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된 시대가 배경이다. 극도의 외모 지상주의와 자본주의, 미디어의 조작을 대놓고 비판하고 있다. 길거리 소녀가 아름다운 생체 로봇(또는 인형)의 정신체가 되어 원격조종을 하고,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로봇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열광한다. 그러니까 립싱크 가수는 입만 벙긋하고 뒤에서 다른 사람이 소리를 내는 것처럼, 외부에서 활동하는 것은 아름다운 소녀지만 사실 그녀는 먼 곳에 있는 별로 예쁘지 않은 여자애가 조종하는 것이다. 그 소녀를 모든 이의 우상으로 만들어 광고를 하고 이득을 얻는 조직이 등장하는데,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격조종은 불가능해도, 우리에겐 성형수술과 의느님이 계시니 말이다. 예쁘고 잘생기면 장땡이라는 말이 떠오고, 그게 잘 먹히는 요즘 풍조를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씁쓸했다.



  세 번째 단편인 ‘보이지 않는 여자들 THE WOMEN MEN DON'T SEE, 1973’은 뭐랄까…….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주장을 내세우거나 억누르려고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한쪽이 결국 설득을 포기하고 반항하지 않고 그냥 따르는 것이 평화일까? 물론,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좋은 세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양 쪽에 다 해당되는 얘기일까? 이 이야기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억눌려 살던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 사람에게는 지구인이나 외계 생명체가 별로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같은 지구인이 더 말이 안 통하니 외계인으로 여겨졌을 지도 모르겠다.



  네 번째 이야기인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 HOUSTON, HOUSTON, DO YOU READ?, 1976’은 우주 비행사들이 우연히 미래로 가게 되면서 겪는 일을 그리고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의 남자다움을 자랑스러워하는 ‘버나드’나 그러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로리머’를 통해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또한 여자들만 남은 미래 사회를 보여주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제일 짧은 ‘아인 박사의 마지막 비행 THE LAST FLIGHT OF DR. AIN, 1969’는 지구를 위해 인간은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진 과학자가 주인공이다. 이야기에 좀 더 살을 붙여, 그를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설정해서 그의 계획을 막으려는 집단을 등장시키면 첩보 스릴러 액션물이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하면 완벽한 지구 종말물이 될 것이고.



  여섯 번째 이야기인 ‘덧없는 존재감 A MOMENTARY TASTE OF BEING, 1975’는 솔직히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다. 분량이 제일 긴데, 읽을 때는 인상적이었는데 다 읽고 나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와 닿지 않았다.



  마지막 이야기인 ‘비애곡 SLOW MUSIC, 1980’은 종말 이후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종말이지만, 지구 종말이 아니라 인간 종말의 세계이다. 인간이 사라진 후의 지구는 무척이나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여자와 남자로 추정되는 두 소년소녀가 주인공이다. 그 둘은 과연 새로운 아담과 이브가 될 것인가 아니면 결국 인류는 멸종하고 마는가? 결말을 읽으면서 허무하기도 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오오, 이런 발상의 전환이!’라고 감탄하기도 했고, ‘이건 너무 암울하잖아…….’라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단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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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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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火星に住むつもりかい?, 2015

  작가 - 이사카 코타로






  표지를 보면 온통 검은색의 옷을 입고 눈만 내놓은 사람이 의자에 앉아있다. 그의 옆에는 구슬이 담긴 병과 이발소를 의미하는 삼색등 그리고 목검 같은 것이 놓여있다. 그리고 배경은 온통 붉은 색의 사막이다. 처음에 표지와 제목을 보고, 진짜 화성에서 살아남기 위한 글인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럼 미래 배경인 SF소설인가? 화성 이주에 대한 글인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일본 정부는 ‘평화경찰’을 만들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감시 정책을 펼친다. 모든 곳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사회에 불만이 있는 사람을 골라내어 무차별적인 강압 수사를 펼치는 것이다. 물론 자원의 한계가 있기에, 매년 한 지역을 선정해 순회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겉으로는 ‘취조’이지만 사실상 ‘고문’이나 다름없는 수사가 끝나면, 위험인물이라 판정된 사람은 광장에서 목이 잘리는 공개처형을 당한다. 조사를 받고 석방된 경우는 없으며, 어떤 지역에서는 미성년자인 학생이 처형당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센다이’구의 차례인데, 특이하게 경찰에 대항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검은 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목검과 구슬을 사용해 평화 경찰에게 끌려가거나 고문을 당하는 사람을 구해준다. 이에 경찰은 그를 잡기 위해 온갖 수를 쓰는데…….



  책을 다 읽은 느낌은 '선한 사람은 자의건 타의건 고통을 받는다.‘였다.



  여기서는 너무 선했기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일희일비하며 스스로를 고통에 빠트리고 마는 사람들이 나왔다. 어떤 이는 복권에 당첨되어 빚에 허덕이는 친구를 도와줬을 뿐인데, 다른 사람은 돕지 않는다고 위선이라 비난받는다. 또 다른 이는 화재가 난 병원에서 한 사람을 구해 탈출했는데, 다른 사람은 돕지 않았다고 위선이라 비난받을까 두려워한다. 왜 모두를 구하지 않으면 위선이 되는 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적어도 하나라도 구했잖아? 그런 사람들을 위선자라 비난하는 것들은 하나도 도와주지 않으면서, 왜 욕하는 거지? 솔직히 ‘슈퍼맨’이나 ‘배트맨’이나 ‘아이언맨’은 한 도시나 한 나라만 돕는데, 그걸 보고 위선이라고 비난하지 않잖아? 초능력을 가졌거나 재벌도 일부만 구하는데, 왜 평범한 사람이 전부를 돕지 않는다고 욕을 먹어야 하는 거지? 그러면 아예 아무도 돕지 않으면 되는 걸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이 적당히 착해야지, 너무 착해서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평화경찰을 내세운 공포 정치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떠올랐다. 우리도 비슷한 시대가 있었으니까. 대학생을 비롯한 사람들이 잡혀가는 건 그들이 빨갱이고, 반미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무원은 물론이고 목사도 신부도 간첩에 포섭되다니! 다 잡아 죽여야지! 소설에 나온 사람들도 이런 비슷한 정서를 보였다. 공개 처형을 구경하며 나라를 좀먹는 무리가 제거된다고 좋아하고, 심지어 축제 분위기까지 연출했다. 자기와 아는 사람이 처형을 당해도,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라며 놀라워할 뿐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만,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자기가 아는 사람이 석연찮은 이유로 처형당하고 피해를 입었고, 우연히 평화 경찰의 비리를 목격하고 그 제도의 존재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책은 그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 단순히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어떻게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초반엔 상당히 어지럽다. 정부, 경찰, 일반 사람들의 여러 입장을 짧고 간결하게 빠른 속도로 보여준다. 사건을 따라가면서 죄 없는 사람의 체포에 안타까워도 하고, 사람들이 고문 받는 장면에서는 화가 나서 ‘이게 뭐야!’라고 소리도 지르고, 수사망이 좁혀가는 대목에서는 ‘어떡해’를 연발하며 조마조마해하고, 단서가 모리면서 의외의 전개가 펼쳐질 때는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점차 모든 단서들이 하나로 모이면서, 마지막에 통쾌함과 놀라움을 던져준다. 후반부에 배후 인물이 드러나는 순간,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The Usual Suspects, 1995’가 떠올랐다. 예상치 못한 사실을 알게 된 즐거움과 놀라움? 그런 기분 좋은 감정이 느껴졌다.



  한 번 손에 들면, 다른 데 눈 돌릴 여지를 주지 않는 책이었다. 덕분에 읽으면서 마시려고 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다 녹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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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 진구 시리즈 4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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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도진기






  '진구 시리즈‘ 네 번째 이야기라는데, 나에겐 첫 번째 만남이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잔뜩 기대가 되었다.



  대형 투자회사의 ‘상 준동’ 회장을 만난 ‘진구’는, 그에게서 아들 ‘선기’의 연인을 뒷조사해달라는 말을 듣는다. 업무적인 면에서는 더없이 믿음직하고 훌륭하지만, 며느리로는 마음에 들지 않으니 무슨 흠이라도 잡아내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조사대상이 동창인 ‘유 연부’라는 사실을 안 진구는 의뢰를 거절한다. 진구와 연부는 아버지들끼리도 잘 아는 사이였던, 초등학생 때부터 라이벌이자 서로를 이성으로 의식하던 관계였다. 하지만 중학생이던 둘은 아버지들을 따라 실크로드 탐사를 나갔고, 그곳에서 똑같이 아버지를 잃었다. 둘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연락이 끊겼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얼마 후, 상 회장이 살해당하는데…….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책의 띠지나 표지에 모든 것이 드러나 있는 경우가 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지만, 어떨 때는 너무 많은 걸 알려주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 책도 약간 그런 부류였다. ‘도덕이 뭔지는 알지만, 왜 따라야 하는지는 끝내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모호한 선악의 경계’라고 적힌 뒤표지, ‘드디어 밝혀지는 진구의 예측불허 과거’라는 띠지의 문장 그리고 역시 뒤표지에 적힌 앞부분의 줄거리 요약을 읽으면, 실크로드 탐사에서 진구가 뭔가를 했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큰 상처를 남겨주었고 말이다.



  이야기는 내 예상대로 흘러갔다. 물론 초반엔 진구와 연부의 과거에 많은 지분을 할애하고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지 않기에, 이 책이 추리소설이 맞나 다시 확인을 해봐야했다. 하지만 진구와 연부의 사이를 의심하는 진구의 여자친구 ‘해미’의 행동에 짜증도 내고, 자신을 무시한 상 회장에 대한 연부의 무시무시한 복수 계획에 놀라고, 실크로드 탐사에서 일행에게 닥친 어려움을 읽으면서 안타까워하다보면, 어느새 그 모든 일들이 하나의 결론으로 향하고 있었다. 초반에 너무 구구절절 과거 얘기와 사람들의 상황만 늘어놓는 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다 힌트이고 복선이었다. 거기에 사막에서의 사건 트릭은 우와, 진짜 별거 아닌 사소한 것 하나만으로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다니 놀랍기만 했다.



  진구를 보면서, 일본 만화 ‘Q.E.D. 증명종료 Q.E.D. 証明終了, 1999’의 주인공 ‘토마’가 떠올랐다. 수학에 엄청난 재능이 있고 모든 문제를 논리적으로 파악하고 추리할 수는 있지만, 사람 사이의 감정 교류에 대해서는 어설픈 천재. 아, 아쉽게도 진구는 토마처럼 천재는 아닌 것 같았다. 대신 남에게 말 못할 비밀과 여러 경험을 통한 연륜을 갖추었다. 그래서 그는 잔꾀를 부리기도 하고,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알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그들이 내린 선택에 대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꼭 그래야 했을까 라는 마음도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였을까? 라이벌이라는 게 좋은 방향으로 가면 바람직한 경쟁관계가 될 텐데, 그렇지 않으면 불행하게 끝날 수 있었다. 그런데 좋은 라이벌이 존재하던가? 역시 남과 비교하는 건 좋지 않다. 그건 자신뿐만 아니라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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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 소녀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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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La Ragazza Nella Nebbia, 2015

  작가 - 도나토 카리시







  조용하고 다소 폐쇄적인 산악마을 ‘아베쇼’에서 ‘애나 루’라는 10대 소녀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사라진다. 처음에는 단순 가출이 아닐까했지만, 범죄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유명 형사 한 사람이 수사에 참여한다. 그의 이름은 ‘포겔’로 사건 해결에 언론을 잘 이용하던 형사였다. 하지만 증거조작까지 하면서 자신이 범인이라 점찍었던 사람을 감옥에 보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침체기에 빠져있었다. 그는 이번 사건이 자신의 재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수사에 전념한다. 그리고 그의 눈에 애나를 따라다니던 한 소년이 들어온다. 소년의 캠코더에서 애나를 지켜보던 한 남자를 발견한 포겔. 하지만 뚜렷한 증거가 나오지 않아 초조해하던 그는 마지막 수를 쓰는데…….



  이야기는 애나 루의 실종 사건이 일어나고 두 달이 지난 후, 포겔이 피투성이로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그는 정신과 의사인 ‘플로레스’ 박사에게서 치료를 받으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한다. 실종 사건 발생 전과 발생 후, 그리고 포겔이 치료를 받는 현재까지,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건의 진상을 알려주고 있다. 주로 포겔의 시점에서 진행이 되지만, 그가 범인으로 지목한 학교 교사인 ‘마티니’의 입장에서도 이야기가 서술된다. 진짜 마티니가 범인인지, 아니면 포겔이 저번처럼 형사의 감만 믿고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것인지, 이야기는 두 사람의 상황을 교차로 보여주었다.



  ‘유죄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말이 있다. 또한 ‘모든 것은 양 쪽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인터넷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글들이 올라온다. 그 중에는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면서 분노를 일으키는 것도 있다. 그걸 읽은 사람들은 댓글을 달고 스크랩을 해가면서 여론 재판을 벌이고, 나름 판결을 내린다. 그리고 마치 정의의 사자라도 된 듯이 신상을 털고 그걸 또 대중에게 뿌리고 당사자들에게 모욕을 가한다. 심지어 합성까지 해 퍼트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 중 그 누구도 그 이야기의 진위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 이야기의 당사자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범죄자가 되고 만다.



  그런데 나중에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정이 난다고 해도, 사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또다시 재판관이자 집행자가 되어, 처음에 거짓을 퍼트린 사람을 욕하기 바쁘다. 이 모든 건 처음에 거짓을 퍼트린 너의 잘못이라는 말과 함께. 사실 제대로 된 사실을 잘 알려지지도 않는다.



  이 책에서는 그런 여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퍼지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보다, 지금 당장 욕하고 물어뜯을 대상이 필요했다. 마티니가 의심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친분이 있던 주위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비난하는데 앞장섰다. 평소에는 그냥 넘어갔던 그의 시선이나 행동, 말을 다르게 해석해 욕하기에 바빴다.



  이 모든 것은 언론과 대중의 심리를 파악한 포겔의 작품이었다. 확실히 효과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비열했다. 이미 증거 조작으로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보낸 전적이 있었던 그였기에 더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밀고 나간다는 건, 어떻게 보면 우직하고 곧은 성정이지만 달리 보면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힌 고집쟁이였다.



  결말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확실했던 포겔은 언론을 이용하여 사건을 유리하게 이끌어간다. 모든 정황만 보면, 마티니가 의심이 가는 건 사실이었다. 정황만으로 범인을 잡을 수 없는 경찰의 초조함은 이해가 가지만, 너무 거기에 사로잡혀서 다른 시각으로는 사건을 보지 못하는 단점도 있었다. 만약 포겔이 자신의 형사의 감에 너무 의존하지 않았다면, 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그가 자신만의 세계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언론으로 흥해 언론으로 망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애나 루와 그녀의 가족만 안쓰러웠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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