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가 있었다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김예진 옮김 / 검은숲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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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re Was An Old Woman, 1943

  작가 - 엘러리 퀸






  언젠가도 말했지만, 거의 30년 전에 사망한 작가의 책이 새로 나오는 것은 설레는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어떻게 죽은 사람의 신간이 나올 수 있는 거지? 설마 죽은 작가의 혼이 영매를 통해 책을 집필하는 걸까? 물론 아니다. 그건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엘러리 퀸의 작품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소개되었던 적이 있지만, 절판되었다가 다시 재출간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이 책, ‘노파가 있었다.’는 후자의 경우이다. 


  어릴 적에 아빠가 아동용 추리 소설 명작 전집을 사주셨는데, 거기에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과 ‘노파가 있었다’가 들어있었다. 물론 아동용이라 상당히 많은 부분이 순화되어 있었고, 제목도 달랐다. 아동 버전을 읽다가 완역본을 보니, 어쩐지 어른들의 은밀한 세계를 엿보는 기분이다.


  판사를 기다리던 ‘엘러리’와 아버지 ‘퀸’ 경감은 우연히 ‘포츠’집안의 재판을 구경하게 된다. 그리고 엘러리는 그 집안의 고문 변호사인 ‘찰리 팩스턴’의 초대로 포츠 집안에 발을 디디게 된다. 그는 세계적인 구두 회사를 일군 여장부 ‘코닐리아’와 그녀의 여섯 아이 가문의 이름에 집착하는 마마보이 장남 ‘설로’, 이상한 물건을 발명하는 것에 몰두하는 ‘루엘라’, 동화 작가이자 자기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허레이쇼’, 부사장으로 회사를 이끌어가는 쌍둥이 ‘로버트’와 ‘매클린’ 그리고 막내 ‘실라’를 소개받는다. 앞의 셋은 첫 번째 남편에게서 얻은 아이고, 뒤의 셋은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았다. 그런데 코닐리아는 이상하게 첫 번째 남편에게서 낳은 아이들에게는 다정한데, 두 번째 남편에게서 얻은 아이들에게는 냉담하게 군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스티븐은 회사 경영 문제로 설로와 말다툼을 벌인다. 화가 난 설로는 동생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결투를 말리려다 실패한 엘러리와 찰리, 매클린 그리고 실라는 결국 권총의 총알을 바꿔치기하기로 한다. 하지만 로버트가 실탄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는데…….


  사건의 등장인물이나 배경이 ‘마더 구즈’ 이야기와 비슷해서, 어딘지 모르게 어른들을 위한 잔혹 동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사건의 동기나 범인의 트릭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진행이 무척이나 좋았다. 어쩐지 범인이 밝혀졌는데도 페이지가 많이 남아서 이상하다 싶었다. 그랬더니 막판에 그런 반전이 뙇!! 


  페이지를 넘기면서, 진짜 그 사람이 범인이냐는 충격과 범인의 트릭을 깨부술 때는 역시 내 탐정이라는 감동과 뿌듯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리고 안타까움과 동시에 그 사람의 새 출발에 박수와 자랑스러움까지 느껴졌다. 그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빨리 나오면 좋겠다. ‘포와로’에게 ‘헤이스팅즈’ 이외에도 ‘레몬’ 양과 ‘올리버’ 부인이 있어서 소소한 재미를 주는 것처럼, 엘러리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을 때가 되었다. 퀸 경감이나 ‘벨리’ 경사 그리고 ‘주나’도 좋지만, 다른 사람이 주위에 있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줄 것이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가 더 기대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왜 코닐리아가 아이들을 차별하는지 이유가 빈약했고, 엘러리가 두 번째 남편의 친구라는 ‘고치’의 정체에 대해 가설을 늘어놓았지만 그게 진짜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설마 독자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기회를 주는 건가? 헐, 엘러리 상냥해. 역시 내 최애 탐정 중의 하나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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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눈동자에 건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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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素敵な日本人, 2017

  작가 - 히가시노 게이고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살아있는 작가의 작품을 모으는 것보다는 돌아가신 분의 작품을 모으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끝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가 살아서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게, 팬 입장에서는 ‘역시 내 작가! 역시 상상력천재!’라는 뿌듯함과 그 사람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행복감을 느끼게는 한다. 혹시 지금 내가 마시는 공기에 혹시 몇 년 전에 내 작가가 내뱉은 숨이 섞여 있는 건 아닐까하는 이상한 상상에 좋아할 순간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내 지갑은 얇기에, 신작 소식을 들으면 안타까워할 때가 많다. 날 고민에 빠지게 하는 다작하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다.



  이번에는 단편집이다. 게이고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잡지에 발표한 총 아홉 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소소한 추리물에서부터 SF적인 내용까지,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몇몇 작품들은 마지막 부분의 반전이 멋졌다. 그리고 역시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요소도 들어있었다. 미스터리와 반전과 훈훈함이라니,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게이고의 소설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새해 첫날의 결심』은 새해 첫날 신사 참배를 떠난 노부부가 속옷차림으로 쓰러져있는 군수를 발견하면서 일어나는 소동을 그렸다. 새해 첫날부터 사건이라고 투덜대는 경찰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그렇지만 모르는 척하고 지나갔으면, 또 신고하지 않았다고 난리 피울 거면서……. 사건의 해결보다는 사람들의 위선이 더 추악한 이야기였다.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는 인기 미스터리 작가인 주인공에게 십 년 전 사귀던 친구가 연락을 해온다. 그런데 처음에는 추억에 젖어서 즐겁기만 하던 저녁 식사였다. 하지만 그녀가 난데없이 오래 전에 자살한 동기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주인공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 설정인데, 어딘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는 결혼을 앞둔 딸을 가진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연히 그는 죽은 부인에 얽힌 알지 못했던 비밀을 알게 된다. 현명함이란 어떤 건지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는 소개팅에 나간 주인공의 이야기다. 그는 거기서 자신과 말이 잘 통하는 여자를 만난다. 그런데 그녀가 수상하다! 이야기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유쾌하고 마무리도 깔끔했다. 다 읽고 나서도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는 단편이었다.



  『렌털 베이비』는 아마 미래가 배경일 것 같다. 아기를 갖기 전에, 육아 체험을 할 수 있는 회사가 배경이다. 주인공은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로봇 아기를 임대한다. 로봇이지만 진짜 인간 아기처럼 울고 먹고 열도 나고 대소변을 누는 아이를 돌보는 동안, 주인공은 점차 진짜 아이를 기르는 느낌을 갖는다. 진짜 있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설정이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에도 면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반전이…….



  『고장 난 시계』는 의뢰받은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주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오랜만에 만난 브로커는 그에게 간단한 일이라며 의뢰를 한다. 어떤 집에 들어가 물건을 빼내오라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던 중, 그는 갑작스런 일을 맞닥뜨리는데……. 사람이 당황하면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게 확실히 드러나는 이야기였다. 거기다 어떻게 보면 오지랖도 너무 심하면 역효과가 난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사파이어의 기적』은 게이고의 다른 소설이 떠오르는 설정이었다. 처음에는 연관이 없는데, 후반부에 가니 문득 그 이야기가 연상되었다. 크리스티는 단편을 장편으로 만들었는데, 게이고는 장편의 프리퀄을 단편으로 쓴 걸까?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는 자기 꾀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다. 자신이 연예계에서 성공하는데 도움이 되는 여자에게서 벗어나고자 살해하기로 결심한 주인공. 하지만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수정 염주』는 추리물이라기보다는 판타지였다. 아버지와 진로 문제로 다투고 집을 나온 주인공.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아버지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가문에서 이어지는 유품을 받게 되는데……. 아, 아버지의 사랑에 마음 한구석이 찌릿했다. 게이고의 이야기 중에는 이렇게 울컥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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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갑이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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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長い長い殺人, 1992

  작가 - 미야베 미유키







  열 한 개의 이야기가 모여서 하나의 사건을 이루는, 연작 형식의 소설이다. 이야기는 열 한 개지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는 모두 열 개다. 음? 사람이 아니라 존재라고 하고 열 명이 아니라 열 개라 써놓은 것을 보고, 드디어 이 사람이 맞춤법은 물론이거니와 한글도 제대로 못 쓰는 건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적는 것이 맞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지갑’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열 한 개인데 왜 지갑은 열 개냐면, 한 지갑이 두 번 등장하기 때문이다. 처음과 마무리를 맡고 있으니, 지갑계의 주인공이라고 해야 할까?



  한 남자가 사망한다. 처음에는 사고사일까 했지만, 곧 살인 사건일 가능성이 대두된다. 이후, 관련된 사람들의 지갑이 각자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서술한다. 『형사의 지갑』은 사건에 대한 대략적인 개요를, 『공갈꾼의 지갑』은 그 사건이 확실히 살인이라는 증거를, 『소년의 지갑』은 새로운 희생자의 등장을, 『탐정의 지갑』은 새로운 희생자와 처음의 희생자의 관계를, 『목격자의 지갑』은 점점 오리무중으로 흘러가는 사건을, 『죽은 이의 지갑』은 새로운 가능성의 제기를, 『옛 친구의 지갑』은 범인의 심리를, 『증인의 지갑』은 갑작스런 반전을, 『부하의 지갑』은 새로운 증거를, 『범인의 지갑』은 사건의 마무리를, 그리고 『다시, 형사의 지갑』은 사건의 뒷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지갑이라는 것이 원래 가방이나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것이기에, 보는 것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듣는 것에서도 왜곡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었다. 느낀 것이야 뭐 주인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일 테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사건의 대략적인 전개와 형사와 탐정의 초조함, 소년의 근심이 잘 느껴졌다. 거기다 범인의 지갑을 통해서는 범인의 심리까지 제대로 전달되었다. 지갑이 상당히 관찰력이 좋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모양이다.



  보험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일은 어떻게 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을 희생자로 삼는, 무척이나 비정한 범죄이다. 대부분의 보험금 수령자가 자식이나 배우자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 타인을 해치는 것도 악질이지만, 자신의 혈육을 돈 때문에 해치는 것도 만만치 않게 악질이다. 이 책의 범인은, 돈 때문에 배우자를 제거했다. 사실 돈 때문에 상대를 골랐으니, 애정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진짜 최악의 인간들이다. 상대는 진심이었는데!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하지만, 그러고 싶을까? 돈이 없어서 굶는 것도 아니고, 빚쟁이에 쫓기는 것도 아니면서! 책을 읽으면서 어이가 없었다.



  보험금을 노린 살인을 다룬 책으로는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 黑い家, 1997’이 있다. 그 책의 범인은 차갑고 음울하며 생계가 어려운, 사이코패스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범인은 여유 있고 타인보다 자기들이 뛰어나다는 우월감에 사로잡힌 사이코패스 느낌이었다. 똑같이 일반인과는 다른 심성을 가졌는데, 하나는 음침하고 다른 하나는 밝은 느낌? 솔직히 우울하고 음침하면 사람들이 은근슬쩍 피하게 되는데, 밝고 자신만만하고 대인관계가 좋으면 사람들이 은연중에 믿게 된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그런 위험한 사람들을 지갑의 시점으로 바라본 것이 독특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더 거리를 갖고 지켜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탐정이나 형사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면, 어쩐지 감정 이입이 돼서 무척이나 부들부들거렸을 것이다. 지갑을 서술자로 선정한 것은 작가의 훌륭한 선택 같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지갑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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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녹색 바람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
구라치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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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過ぎ行く風はみどり色

   작가 - 구라치 준






  ‘네코마루 선배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라고 한다. 선배 시리즈라고 하니 어쩐지 긴 생머리의 눈이 큰 소녀가 수줍은 얼굴로, 시니컬하게 생긴 안경 낀 남학생에게 ‘선배…….’라며 말을 거는 장면이 연상 되겠지만! 불행히도 여기에는 긴 생머리의 수줍은 얼굴을 한 소녀나 안경 낀 소년은 등장하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학원탐정물도 아니다. 대신 너무도 발랄한 여고생이 등장할 뿐이다.



  호조 가문의 가주인 ‘효마’는 오래 전에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에, 영매를 불러들인다. 그런 그를 못마땅해 한 딸은 초심리학을 연구하는 연구원을 불러들이고, 두 세력은 충돌을 일으킨다. 결국 모두가 다 참관하는 강령회를 열기로 결정한 날, 효마가 살해당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사망한 시간에, 집을 드나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강령술을 통해 죽은 효마의 혼을 부르겠다던 영매마저 강령회 도중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모든 사람이 용의자이지만, 모두가 다 알리바이가 있는 상황! 도대체 누가 어떤 방법으로 두 사람을 살해했을까? 효마의 손자인 ‘세이치’는 알고 지내는 대학 선배 ‘네코마루’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책은 500쪽이 넘는 꽤 두툼한 두께였는데, 의외로 한 번 손에 잡으니 놓을 수 가 없었다. 영혼을 믿는 영매와 과학으로 모든 것을 증명하려는 연구원의 대결이 꽤나 흥미로웠다. 물론 영매가 중간에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 대결은 맥없이 끝났지만 말이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가운데 집안에는 불길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으니, 무승부라고 해야 하는 걸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사촌인 ‘세이치’와 ‘사에코’ 두 사람이다. 세이치는 집안을 이으라는 할아버지와 싸우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다가 10년 만에 본가로 돌아온다. 공교롭게도 그가 돌아온 날 할아버지가 살해당해,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는다. 사에코는 어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자신은 장애를 얻는다. 할아버지인 효마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데, 이번 사건 전후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다. 사에코 부분은 거의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한 내용이었고, 세이치 부분은 사건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거의 후반부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이건 반칙이잖아!’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 전까지는 아무런 낌새가 없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힌트라니, 이건 좀 너무했다. 그 때문에 내 추측은 몽땅 헛수고가 되어버렸다. 히잉, 너무해! 앞부분에 암시가 있었는데 내가 놓친 걸까? 결정적인 그 힌트를 바탕으로 한 사건의 진상은 무척이나 정교했다. 그걸 착안해낸 범인도 놀라웠고, 그걸 밝혀낸 네코마루도 굉장했다. 솔직히 선배 시리즈라는 걸 몰랐다면, 주인공이 세이치가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네코마루의 활약은 적었다. 첫 등장은 뭐랄까, 그냥 오지랖 넓고 장난끼 많은 아는 사람 정도? 하지만 결말 부분에서는 아주 화려하게 모든 것을 장악하며 존재감을 내뿜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수만큼 지켜야 하는 가치나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 역시 다양하다. 그래서 법과 도덕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지키고 존중해야 할 가치와 경계선은 존재하니 말이다. 적어도 이건 서로 존중하고 지켜주자는 약속 같은 것이다. 범죄는 그걸 지키지 못해서 일어나는 법이다. 내 가치가 중요하면, 타인의 가치 역시 존중해야 한다. 이 책은 그걸 넘어서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 했기에 사건이 벌어졌다. 누군가는 지키려고 했고, 누군가는 어기려고 했다. 그래서 마지막 살인은 슬프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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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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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Ruins, 2006

   작가 - 스콧 스미스






  영화 ‘루인스 The Ruins, 2008’의 원작 소설이다.



  ‘제프’와 ‘에이미’, ‘에릭’과 ‘스테이시’ 커플은 멕시코 휴양지에서 방학을 즐기고 있다. 우연히 만난 독일인 ‘마티아스’ 형제의 싸움에 대해 듣고, 그들은 마티아스의 동생을 찾으러 가기로 한다. 여기에 그리스인 ‘파블로’가 가세하여, 여섯 명은 정글에 묻혀있다는 유적지로 향한다. 그런데 트럭 운전수가 그들의 정확한 목적지를 알자 버럭 화를 내며 다른 곳으로 갈 것을 권유하고, 이에 에이미는 불길한 느낌이 든다. 겨우 유적지에 도착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곳에 이미 가 있다던 고고학자 팀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근처 마을에 있던 사람들이 총과 화살로 무장하고, 그들이 유적지를 벗어나지 못하게 강요한다. 어쩔 수 없이 유적지 꼭대기에 올라온 그들은, 붉은 꽃이 피는 덩굴 속에서 사람들의 시체를 발견하는데…….



  책은 거의 540쪽에 해당하는 상당히 두꺼운 분량이었는데, 어쩐지 많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휴양지에서 즐겁게 노는 일행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성격과 과거에 대해 아주 조금 맛보기로 보여줬다. 그리고 유적지에 고립되면서, 본격적으로 그들의 아픈 과거라든지 트라우마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유적지에 숨어있는 괴생명체가 서서히 그들을 압박해오는데, 으아…….



  끔찍했다.



  영화는 책에서 보여주는 공포와 쫄깃함의 반에 반도 표현하지 못했다.



  괴생명체의 영악함과 교묘함, 잔인함 등이 너무도 잔인하고 경악스러웠다. 정말 그런 생명체가 있다면, 생명체의 생존 본능이라는 건 무시무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는 단순히 식인을 하는 생명체라고만 표현되었지만, 책에서는 더 나아가 식인으로 인해 지능이 발달해가는 과정까지 보여줬다. 그 때문에 괴생명체는 물리적인 공격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공격까지 가능했다. 물과 식량의 부족, 폭우와 추위 속에서 그것들의 공격은 치명적이었다. 하나둘씩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쓰러져가는 일행을 옆에 두고, 남은 생존자들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들의 정신은 조금씩 피폐해져갔고, 그걸 읽는 내 마음은 안타깝고 먹먹하기만 했다.



  앞부분에서 자신만만하고 활기찼던 그들의 모습과 중반 이후부터 보인 잔뜩 겁먹고 불안에 떨며 서로를 의심하는 모습이 대비되면서,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떤 안 좋은 상황에 처하면 사람의 본성이 나온다는데, 여기서도 그런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전에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갔던 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가 다 거슬리고 싸움의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주도한 것은, 바로 괴생명체였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다시 깨달았다. 물론 소설이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자는 그 과정을 무척이나 실감나게 서술했다. 진짜 그 괴생명체가 지구 상 어딘가, 특히 정글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말이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기 잘했다. 반대로 했으면, 영화를 보면서 무척이나 화를 냈을 것이다. 영화를 먼저 봤기에, 멋진 책과 뛰어난 작가를 알게 되어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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